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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엔지니어인 저자가 미래를 이끌어갈 젊은 공학도들에게 자기 성찰의 시간을 갖게 해주고자 집필한 글이다. 작품의 초반부에 저자는 이런 지적을 한다: “어느정도 경력이 쌓인 엔지니어들이 모이면, 한결같이 대학을 졸업한 직후에 좀더 기술적인 강좌를 들었더라면 좋았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10년정도 경력을 쌓고 나면, 비즈니스와 경제학에 대해 좀더 많이 배우지 못한 것을 아쉬워 한다. 다시 10년이 흐른 사십대에 이르러, 그들은 리더쉽의 속성에 대해 생각하고 삶의 의미에 대해 숙고하면서 문학, 역사, 철학을 공부하지 않은 것을 후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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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는 근대 이후 과학의 시대를 전개하며 현대의 화려한 문명을 일구어냈다. 과학의 시대를 이끈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바로 환원주의이다. 즉 작은 것으로 분해하면 큰 것에 대한 의미를 깨달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학문자체도 세분화, 전문화되었고 이에 따라 개별 학문은 깊이를 더할 수 있어서 인간이 자연세계에서 가지고 있는 많은 의문을 풀어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이것은 또한 다른 문제를 내포하고 있었다.
자연세계에서 일어나는 현상은 어느 한 이론과 한 학문으로 풀기에는 너무도 복잡한 성질이 있었다. 이에 대한 해결책 중에 하나가학제간 연구이고, 20세기가 끝날 무렵에는 통섭이라는 의미도 대두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니까 여러 학문이 통합을 해야만 자연세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과학적으로 설명이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과학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엔지니어라는 직업은 인류사회에 많은 편안한과 안락함을 줄 수 있었다. 하지만 여러가지 문제점도 노정되었다. 무기경쟁, 환경오염 등 이전에는 생각지도 않았던 부분에 심각한 문제점이 생겼다는 것을 우리는 지각하게 되었고, 이에 대한 대안을 모색하기에 이르렀다. 이를테면 과학기술에 대한 윤리 문제 등이 본격적으로 논의의 대상이 된 것이다.
사실 과학이나 기술은 가치 중립적인 개념이다. 이것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서 그 결과는 인간에게 이롭게도 나타날 수 있지만 반대로 인류를 지구상에서 몰아낼 수도 있는 것이고, 이에 우리들은 새롭게 과학과 기술에도 어느 정도 한계를 정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고 이를 법적인 차원에서나 윤리도덕적 차원에서 다루게 되었다.
그러나 과학기술 전문가와 이를 통제하고자 하는 사람들 간에 대화가 용이한 것은 아니었고, 이를 기본적으로 통제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과학과 기술분야의 사람들의 시야를 넓혀서 자신이 전문으로 알고 있는 분야 이외로 지식을 확장할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그 확장해야 할 지식은 여러가지이다. 이 책에서는 이 중 인문학에 비중을 두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렇다면 엔지니어에게 필요한 인문학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인문학이란 교육적 사치가 아니며 인문학 전공자들만을 위한 것도 아니다. 그것은 지식의 몸통이며 엄연한 진실과 정당하다고 인정되는 판단 그리고 중요한 사상을 전달하는 탐구의 수단이다. 제대로만 배운다면 인문학은 인간사의 영원한 의문을 역사와 문학, 철학 그리고 예술의 위대한 작품과 결합시켜준다." 즉 인문학이라는 관문을 통해서 과학기술로 일어날 수 있는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기반을 갖출 수 있다는 말이다.
이제 인류 사회는 이제 과학 기술의 도움이 없이는 하루도 생활할 수 없게 되었고, 과학기술은 하루가 다르게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분야인데, 이의 가치를 판단하고 ,통제하기 위해서는 이에 대한 이해가 긴요하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이제 서로가 다르게 파온 우물을 이제 합칠 시기가 온 것을 알게 되었다. 어느 한 분야의 발전은 또다른 문제점을 만들어 낸다는 것을 알게되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해답은 바로 통섭인 것이다. 과학기술을 인문학과 합쳐져야만 인류를 위해 쓰여질 수 있다는 것이 이 책에서 말하는 주제인 것이다. 그래서 책의 제목도 인문학으로 무장한 '교양있는 엔지니어'이다. 인문학이나 사회과학을 전공한 사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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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어릴 때였다. 알수 없는 글들이 가득찬 모니터를 뚫어지게 응시하며 무언가에 몰두하던 누군가를 본적이 있었는데, 어린 마음에 그 모습이 너무 멋있게 보였다. 그 뒤로 부모님을 졸라 "애플"이라는 당시의 최고급(?) 컴퓨터를 장만했고, 그 컴퓨터는 쉽게 싫증 잘 내는 내게, 최장기간의 장난감이 되어주었다. 그 8비트 상자를 가지고 뚝딱거리던 기억이 결국 지금의 나를 있게 했다. 그렇게, 이과선택, 공학도, 전산병, 대학원, 연구원의 커리어패스를 걷게 되었는데, '내가 왜 엔지니어가 되었나?'라는 실존적 질문에 대해 깊이있게 고찰해 본적은 없었던 것 같다. 그저 이유없이 좋았을 뿐. 하지만, 그렇게 선택한 전공, 컴퓨터 사이언스가 그저 '좋아서' 내지는 '하고싶어서' 라는 단순한 모티베이션만으로는 쉽게 할 수 있는 학문은 아니었다. 기초적인 수학, 물리학부터, 다양한 전공지식을 습득하기 위한 상당한 고통의 시간이 필요했고, 특히 대학원 진학 후에는 세부전공에 필요한 전자, 전기공학의 커리큘럼까지 커버해야했다. 그렇게, 해당 분야의 전문가라고 불리기 위해, 많은 기술적 지식을 접하기 위한 노력을 거듭했지만, 내 마음 한켠으로는 왠지 채워지지 않는 '갈증'이 있었다. 입사해서 연수기간동안 받은 '적성검사'라는 것을 통해, 그 까닭모를 '갈증'의 원인을 어렴풋이 알게되었다. 검사결과, 내게 이성, 논리, 사고력 보다는 감성, 예술, 언어능력에 더 높은 점수가 나온 것이다. 내 안에는 잠재적 '문과적 소양'이라는 것이 있었고, 접해보지 못한 인문학과 예술에 대해 알 수없는 동경같은 것이 있었다. 특히, 현장에서 강조되는 '창조적인 마인드'를 강요받을 때 그 증상이 더 심해졌다. 대다수의 젊은 공학도들이 '적성에 맞아서' 내지는 '취직이 잘되서'라는 다소 가벼운 이유로 그 전공을 선택하고 취업의 문에 다다른다. 하지만 막상 현장에서 본격적으로 직무를 거듭하다 보면 알수없는 사명감 또는 보람을 느끼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실용 학문인 '공학'의 매력때문이다. 사회간접자본을 확충하고 국가기간산업을 이끄는 것은 '공학'이고, 보다 안락한 삶을 제공하기 위한 문명을 만들어 내는 것도 '공학'이다. 단지 빵을 이상자에서 저상자로 옮기는 '제로섬게임'의 여타 직군과는 달리, '무'에서부터 '유'를 탄생시켜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사회에 기여를 하는 학문이 바로 '공학' 즉 '엔지니어링'인 것이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젊고 총명한 공학도들의 '열정'과 '패기' 그리고 '사명감'만으로는 이 사회가 혹은 나라가 꿈꾸는 것처럼 아름답게 변하지는 않는다. 그러기엔 미래는 너무 불투명하고 기술적 변화는 변화무쌍하다. 이 책에서 언급한 것처럼, 엔지니어가 10년정도 경력을 쌓고 나면, 비지니스와 경제학에 대해 좀더 많이 배우지 못한 것을 아쉬워한다. 다시 10년이 흐른뒤에, 그들은 리더쉽의 속성에 대해 생각하고 삶의 의미에 대해 숙고면서 문학, 역사, 철학을 공부하지 않은 것을 후회한다. 태생적으로 창조적인 작업을 요구받는 엔지니어에게, 인문주의적 또는 예술적 사고를 통해 기술적 영감을 얻을 수 있는 교양이 점차 중요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이 책은 엔지니어들의 가치를 재발견하게 하고, 또한 그 가치를 더 의미있게 한다. 산, 학, 연에서 펼쳐지는 공학의 모습에는 구조적으로 괴리가 있게 마련인데, 그 간극을 매우기위해 필요한것이 바로 '인문학'이라는 것이다. 유연한 사고와 폭넓은 시각. 지식을 전달하기 위한 효과적인 말하기와 쓰기(혹은 그리기). 비지니스 감각. 인더스트리에서 필요한 이 모두가 인문학에 기인한다는 것이다. 전통, 역사, 생각, 세상에 대한 이해 등 우리를 사회로 함께 묶어주는 공통의 지식과 가치를 전수하는 것이 인문학이기 때문이다. 내 '갈증'을 풀기위해 노력했던 다양한 시도들을 통해, 이제 조금씩 '해갈'을 맛보고 있는 것 같다. 아직 그 깊이가 일천하여 여전히 목마르지만, 그렇게 쌓인 이종간의 지식과 경험들이, 어느순간 빅뱅을 일으키는 '메디치효과'로 이끌 것을 믿는다. 이러한 발걸음이 원천이되어, 통찰이 섬광처럼 스치게 될 것이고, 영감이 폭포수처럼 흘러내릴 것이다. 그렇다. 내가 꿈꾸는 '크리에이터'로서의 삶은 '교양있는 엔지니어'로부터 시작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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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학에 대해 문외한인 내가 교양있는 엔지니어를 읽으며 공학과의 흥미로운 만남의 시간을 가졌다. 이 책이 읽고 싶었던 이유는 두 아이를 키우며 아이들이 인문학적 소양이 풍부한 사람으로 커갔으면 좋겠다는 바램을 늘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순전히 제목에서 오는 호기심으로 이 책을 펴들었다.
저자는 엔지니어이자 저술가로서 엔지니어에게 인문학이 필요한 이유를 공학의 역사에서부터 꼼꼼히 찾아나간다. 언제나 기술적 진보의 대리인이며, 역사의 최첨단에 있었던 엔지니어들이지만 사회적 지위는 불안정했다. 또한 사회 발전의 주역이었지만 최종결정권에서는 멀어져 있었다. 20세기 내내 엔지니어들은 효율성이 강조되어지는 직업훈련으로서의 교육만을 충실히 받았다.
첼린저호 폭발의 비극이나, 러시아 체르노빌원자력발전소 사건에서 보여지듯 기술적 실수가 가져오는 파괴력이 커지고 있는 현대사회에서 공학의 도덕성은 중요해지고 있다.
"현대 공학에서 글이나 말로 이루어지는 소통의 중요성은 증가하고 있다." 이 말은 요즘 우리사회에서 많이 들려오는 말인듯 하다. 대학에서는 1학년들에게 교양교육이 강화되어지고, 대학 입학에서도 통합논술이 강조되어지고 있는 모습등.
꼭 엔지니어가 아니어도 지금 우리사회에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고민하는 사람에게 해답의 실마리를 줄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인문 교육이 지성을 확대하고 상상력을 훈련시킴으로써 엔지니어를 기술적으로 더 유능하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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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이 너무 부자연스러웠다. 내용은 좋았으나 과연 번역자가 제대로 이해했는지 의심스러웠다. 이런책은 교양있는 엔지니어가 번역했었어야 한다. (빨리 원문을 읽어내는 능력을 길러야겠다.. ><) 하나더.... 제본이 잘못 되어서인지 페이지를 넘기면 페이지가 빠질려고 한다. 황당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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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가 점점 발전할수록 엔지니어의 참여가 늘어나는 사회에 우리는 살고 있다. 기술의 발달이 우리의 생활을 대변해주는 핵심적인 사회에서 단순히 설계, 기계를 다루는 것만이 엔지니어의 전부인 세상은 지나가고 있다. 특히 정보폭발로 인해 거기에 대처하도록 훈련받는 것만이 엔지니어 전부였지만, 지금 세상에서 엔지니어의 자기 성찰이 점점 중요해가면서, 엔지니어란 무엇인가? 유래는 어디서부터 되었는가? 등 엔지니어의 도라고 할까 생각해봐야할 것들 23가지의 주제로 이 책에 소개되어 있다.
사실 엔지니어라고 해보았다. 도구를 다루어서 상황에 대처하는 사람이다. 관념론적이 아닌 실용주의 기초를 두고 있다. 그러나 한쪽만으로는 엔지니어는 생각이 고정되어 고집스럽게 되는 경향이 있다. 물론 이것만으로 살아갈 수 있지만, 세상이 권하는 여러가지는 경험하지 못한체 직업의 문에 다다르는 현실이 안타까운 현실이라고 저자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하지만 미래를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현재의 수명이 다하면 그에 대한 반작용들이 일어날 것이다. 이런 것에 대응하기 위해서라도 다른 분야에 대해서라도 배워야 나가야 할 것이다.
이책은 1987년에 쓰여진 책이다. 20년이 지난 책이라 현실에 맞지 않는 부분도 있다. 그러나 지금의 엔지니어를 꿈꾸는 사람들이나 일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꼭 읽어보라고 권유하고 싶다. 세월이 지나더라고 변하지 않는 가치를 알게해준 좋은 책인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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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이 C.P.스노우는『두 문화』에서 ‘과학자는 셰익스피어를 모르고’ 인문학자들은 ‘열역학 제2법칙을 설명하지 못한다’고 했다. 이에 견주어 새뮤얼 C. 플러먼은『교양있는 엔지니어』에서 엔지니어는 ‘죄와 벌을 모르고’ 인문학자들은 ‘열역학 제1법칙을 설명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이 책은 공학과 인문의 만남을 매우 흥미롭게 이야기하고 있다. 또한 왜 두 학문이 서로 만나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넘나들며 설명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이 책의 제목에 나와 있듯 교양있는 엔지니어가 되기 위해서다. 이것은 마치 아인슈타인이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것과 같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공학이 만든 세계이다. 즉 엔지니어들의 섬세하고 역동적인 작품이다. 만약 공학의 발전이 없었다면 우리의 미래는 회색빛이었을 것이다. 이처럼 공학을 담당하는 엔지니어에 대한 중요성이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공학의 역사를 보면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다. 엔지니어대한 냉소적인 편견은 역사적으로 오래되었다. 플라톤이 말하고 있듯 ‘기계적 예술’이라고 하면서 이런 직종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나쁜 친구이자 비애국자로 간주할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는 유토피아로 가는 마법의 양탄자로 불리고 있다. 이렇듯 공학의 변화는 그만큼 기술의 발달과 함께 인류의 무한한 도전을 만들어냈다. 가령, 지구에 사는 우리가 우주를 여행한다고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이밖에도 상상만으로 만족했던 여러 가지 경이로운 일들은 분명 공학의 힘이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우주선 챌린저 호 폭발사고에서 보듯 여러 가지 충격적인 사건들이 발생하고 있다. 우리에게 장밋빛 미래를 약속했던 공학이 무너져 내릴 때 마다 공학에 대한 문제제기는 곧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게 마련이다. 이 과정에서 단지 기술적인 결함을 문제 삼는다면 진실을 왜곡하고 만다. 그 보다는 엔지니어에 대한 다양한 접근이 필요하다. 엔지니어가 엘리트내지 재너럴 엔지니어라고 한다면 불의의 사고는 피할 수 없다. 반면에 교양있는 엔지니어이라고 한다면 사고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만큼 양심적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공학의 미래를 볼 수 있어 유익했다. 공학이 점점 더 포괄적이고 복잡해지며 전문적인 지식을 필요로 한다. 이 과정에서 책 읽는 엔지니어 혹은 악기를 연주하는 엔지니어를 바라는 것이 우리 시대의 패러다임이라는 깊이 있는 결론을 얻을 수 있다. 엔지니어가 춤을 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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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공학한림원과 생각의 나무가 펴내는 '공학과의 새로운 만남 시리즈' 중 최근작이다. 예전에 "시크릿 하우스"를 통해서 이런 시리즈가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는데, 꾸준히 이런 책이 나오고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책을 읽기 전에 한 가지 찜찜하게 생각했던 것은, 이 책의 원작과 번역판과의 시간 차이가 너무 난다는 거였다. 딱 20년 전에 나온 책을 지금 번역해서 내 놓는 바람에 책을 읽다가 1983년(원서는 87년 출간) 코넷티컷의 간선도로 일부가 유실된 일을 이야기하는 대목같은 부분을 만나게 되면 마치 '그때를 아십니까'의 흑백 TV를 보고 있는 것같은 착각이 들 때도 있다. 하지만, 이런 시간 차에도 불구하고 찬찬히 뜯어 읽다 보니, 20년이 흐른 뒤에도 여전히 읽을 가치가 있는 글들이기에 번역을 한 것이었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됐다.
엔지니어란 어떤 사람을 가리키는가? 쉽게 말해 '물건을 다루는 사람'이다. 대부분의 엔지니어들은 관념론자라기보다는 실용주의자인 경향이 많고, 공학이라는 일 자체가 논리와 정확성을 요구하기에 운 나쁘게도 그것은 냉정함과 엄격함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 책은 23개의 장(章)을 통해 이러한 단점을 지닐 확률이 큰 엔지니어들에게 '사람의 말과 생각'까지 함께 아우를 수 있는 마음의 여유와 지적 토양을 튼실히 할 것을 당부하고 있다.
제목의 '교양있는'에서의 교양이란 직접적으로는 '인문학적 교양'을 가리킨다. 이 책에서는 좀 더 나아가서 문학, 역사, 음악, 미술과 함께 사회적, 도덕적 윤리까지를 포괄하고 있다. 사회가 발전해 갈수록 그 모습을 형성하는 데에는 공학이 점점 핵심적인 지위를 차지하게 되므로 그에 따라 좀 더 올바르고 창의적인 엔지니어가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이 책의 집필이 시작된 것같다. 이상적인 엔지니어는 어떻게 훈련받아야 하고 어떻게 동기를 부여받아야 할 지에 대한 고민과 저자 나름대로의 짦막한 - 하지만 때로는 굵직하게 느껴지는 - 대안들이 책 전체에서 흘러 나온다.
예전에 대학에 다닐 때 도서대출카드를 수시로 살펴 보는 버릇이 있었다. 그때는 전산화가 되기 한참 전이라서 어느 학과의 누가 이 책을 빌려 봤는지 책 뒤에 꽂혀 있는 대출카드를 보면 다 알 수 있었다. 그때 놀랐던 건 인문학 관련 도서를 인문대학이나 사회대학 학생들보다 자연과학이나 공대 학생들이 훨씬 더 많이, 자주 빌려 본다는 사실이었다.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오래 전부터 공학도들의 - 더 넓게는 이공계- 정체성 파악과 자아계발은 시작되고 있었던 거다. 지금은 사회생활을 하고 있을 그때 그 학생들, 그리고 지금도 학교에서 책과 컴퓨터와 기계와 함께 밤을 지새울 젊은 공학도들도 함께 읽었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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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ivilized Engineer.
교양있는 엔지니어란 제목에서부터 책의 대략적인 내용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우리시대의 엔지니어라고 하면 어떤 사람이 떠오를까요?
보통은 일찍 출근하고, 날마다 야근하고, 그래서 늘 바쁜 사람이 떠오릅니다.
그리고 대화를 해 보면 자신의 분야 외에는 그리 할 말이 많지 않은 사람이라고 생각됩니다.
바빠서 그렇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우리 교육은 이공학과 인문학, 그리고 예술분야를 나누어서 그렇지 않을까요?
상대적으로 이공학 관련 학문을 하는 사람은 그 외 다른 분야를 접할 기회가 적다고 봅니다.
이제 시대가 요구하는 사람은 어느 한가지 분야에 집중해서 연구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봅니다.
어느 경영자의 인터뷰가 신문기사에 나왔던 것 처럼 말입니다.
우린 폭넓은 지식과 다양한 사고를 할 수 있는 사람을 원하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지식 전반에서 활약했던 훌륭한 옛 선배들 처럼 말이죠.
이공학은 시대가 변화함에 따라 더욱 더 중요한 위치를 가지게 되고 있습니다.
변화, 그 자체를 이공학의 발전이 주도해가고 있고 그에따라 삶의 방식도 달라집니다.
그런 가운데 엔지니어들이 어떻게 과학 기술의 발전을 주도해야 하는지 생각해야 할것입니다.
목적을 위해서 어떻게 자연환경과 자원을 이용할까 하는 것이 예전 패러다임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목적을 달성과 함께 자연환경에 대한 피해를 최소화 하는 것이 이슈입니다.
필요성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폭넓은 생각으로 함께 살아가는 방식을 고려하는 것.
책에서는 이제 그런 엔지니어가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문득 뜬금없는 생각들이 맘 속에 떠올랐습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던 시대를 돌아보고 싶었고, 르네상스의 다빈치와 미켈란젤로를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학문간의 경계에 얽매이지 않던, 생각이 자유롭던 그 시대의 사람들과 같은 마음을 공유할 수 있는 엔지니어가 되어야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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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책이다. 처음 나왔을 때 부터 읽고싶었음.(내책은 다 사놓은지 수년뒤에나 읽고, 기대 많이 했는데 조금 아쉽다.) 물론 저자가 말하는 내용은 아주 훌륭하고 수준이 높지만...... 책 표지 하드커버며,종이질이며 가벼우며 디자인 내가 좋아하는 종류다. 아주 좋은 내용임에도 내용은 조금 어렵다? 그나마 한 장이 짧아서 조금 낫다. 오래전 부터 별렀는데 기대했던 내용과는 조금 다르고 더 수준이 높다. 미국의 저명한 토목 공학자이고 글도 기고를 많이 하는 분이다. 1980년대 쓰인 내용으로 기본 취지는 시대 상황에 상관이 없다. 그때 미국도 공학도에게 인문 교양 교육이 필요함을 절감하고 강조하였으니,미국도 한국도 지금은 조금은 달라졌을 것이다.(이분이 강조해서 그런게 아니라 사회가 변했고 발전했다는 말)처음 몇장은 흥미진진하나 본 내용에 들어가자 조금 지루하고 저자의 수준이 굉장히 높다.맨 처음과 18장이 재밌고 그중 브루클린 다리 설계자인 로블링 부자가 아주 인상적이다.(아래 사진) 그런데 항상 궁금함이 이책에서도 소개하고 있는 천재 공학자이자 과학자들은 천재라서? 아무튼 악기 연주야, 다방면의 독서,그것도 고전, 철학등 참 시간 활용이 궁금하다. 천재들 뿐 아니라 저자도 그렇다.(한장에서만 소개하지 이런 내용이 주가 아님) 공학은 예술,수공예, 과학의 혼합물로 정확성, 예술 상상력, 지혜가 강조된다. 문화의 중심에 지혜,능력,노하우가 융합된 문화는 끝까지 살아남는다고 보면 그 중심에는 교양있는 엔지니어가 있을 것이다. &별로 읽을 가능성이 적지만 이책에서 우리나라에도 번역되어 있는 두 책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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