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책읽는 것을 좋아하긴 하지만 소설은 즐겨읽지 않는다. 소설도 나름의 매력이 있긴하지만 소설보다는 (개인적으로 소설과 비슷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영화를 즐겨본다. 그런내가 좋아하는 소설가가 네분이 있는데바로 '개미'의 베르나르 베르베르와 '향수'의 작가 파트리크 쥔스킨드,무라카미 하루키 그리고 '홍어'의 김주영님이다. 홍어만의 독특한 여운을 잊지 못하고 있던 차에 그분이 오랫만에 새로 책을 내셨다기에 주저없이 '멸치'를 구입하였다. 문학평론가도 아닌내가 달리 거창하게 할말은 없다.그냥 김주영님의 소설을 읽고 있으면 항상 내가 주인공이 되어 과거를 회상하고 있다는 편안하고 사실적인 느낌을 받게된다. 난 과거에 소년이 아니라 소녀였는데도 말이다. 분명 추리소설이 아닌데도 읽으면서 계속 긴장하게 된다. 의문에 싸인 사람들의 행동이 자못 궁금해서 책을 손에서 뗄수가 없다. 멸치도 그랬다. 특히 멸치에서는 마치 딴세계 사람인듯이 행동하는 삼촌에게 알수없는 동정심이 들어서 책을 다 읽었을때 아련히 서글퍼지기까지 했다. 대부분 주인공의 나이때쯤(12~14세) '나는 다컸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에와서 보면 주인공의 행동이 마냥 어리게 보이는 이유는 내가 그때보다 더 자랐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 그때의 행동이 어설퍼 보이지만 만약 다시 그나이가 되더라도 그렇게 행동할수 밖에 없을거라고 생각하게 되는 이유는 뭘까..그만큼 그의 소설에 표현된 어린 주인공은 보편성을 띠고 있는 인물로서 많은 이들의 과거를 대변해준다. 어리기때문에 더욱 솔직하게 바라볼수 있는 어른들의 세상은 그래서 볼때마다 재미있는 것 같다. 그의 소설을 읽고 나면 마치 투명한 수채화 한점을 오래도록 쳐다보고 있었던 것 같다. 그는 소설속에서 너무 많은 설명을 하지 않기에 읽는 이로 하여금 더욱 여운을 남긴다. |
| 이 책은 처음부터 잔잔한 분위기로 시작하여 끝까지 그런 분위기로 일관하는 어찌 보면 밋밋한 느낌을 주는 책이다. 저자는 가장 고조된 흐름이라 할 수 있는 마지막 부분의 멧돼지 사냥 장면에서조차 삶이냐 죽음이냐, 잡느냐 잡히느냐의 절대절명의 분위기를 집어내기보다는 그저 마당으로 달아나는 장닭 한 마리를 잡는 것같은 일상적인 느낌을 주려 애쓰는 것 같다. 주인공 대섭이나 외삼촌 달구, 아버지, 아버지의 애인들이 엮어내는 이야기는 어찌 보면 참으로 기구한 운명의 드라마로 표현할 수 있었을텐데 저자는 역시 그 일이 우리 이웃, 우리 친척, 아니 우리 자신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로 받아들여지기를 바라는 듯 보인다. 이 책의 제목이 멸치인 것을 봐도 저자의 의도는 마침내 드러나게 된다. 인생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물론 아름다울 수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 그 슬픈 그래서 운명을 바꿀만한 큰 사건 속에 들어가 있을지라도, 우리의 앞에 있는 일들이 우리를 잡아먹으려는 고래일지라도 그 고래 앞에 있는 멸치떼가 보여주는 의젓함마냥 여기 나오는 주인공들은 그 의젓함과 의연함, 삶의 여로를 묵묵히 걸어가고 있으며, 저자는 그것이 인생의 진정한 모습이 아니냐고 역설하고 있다. 한 그릇 간도 없는 멀국을 먹은 것 같은데 그 담백함이 오래도록 뇌리에 남아있는 것 같은, 바로 그런 여운을 남겨 주는 책이다. |
| 내나이 20이다. 책을 읽겠다고 마음먹고 나서 읽은소설중에 성장소설이 몇권있었다. 그것이 재미있게 읽었던터라 멸치또한 재밌을것 같아서 접하게 되었다. 보통 학교갈때 1시간동안의 지하철 안에서 책을 읽는다. 처음에 멸치를 읽는데 잠이 많이 쏟아졌다. 그래서 '별로구나. 내가 이렇게 졸고 있는거 보면.' 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이 아니었다. 어제 저녁 책을 잡았다. 그리고는 책을 놓지 못했다. 아직 성숙하지 못한탓인지 다 읽고 난 후에 혼란에 빠졌다. 성장소설 맞는가? 외삼촌은 어디 갔지? 재밌게 읽었지만 갈피를 잡을수가 없었다. 홈페이지에 들어와서 미디어 리뷰를 읽고나서 '그런것이구나....' 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무엇인가 모자란듯 하다. 내가 이해하지 못한 무엇인가 있는듯 하다. 대섭이 입장이 될수는 없습니다. 또 같은 생각을 가질수도 없습니다. 어머니의 부재로 인한 대섭이의 생활과 그외의 것들. 한 번 더 멸치를 먹어보고 생각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
| 김주영 작가의 소설은 홍어를 처음 접한 이후로 작가의 표현세계가 다른이들과는 다른 방식이라는 독특함때문에 그 외에도 여러권을 접해보았다. 아라리 난장, 거울속 여행, 그리고 몇편의 중단편들까지도... 이번 신작 멸치에서도 그의 독특한 표현방식은 예전의 모습을 그대로 본뜬 듯하다. 늘 특정한 화자를 통해서 (이번 멸치에서는 대섭) 주위 사람들의 각각 살아가는 성격, 행동, 생활양식등을 아주 세세히 묘사해주었다. 세 남자가 한 여자가 돌아오기를 애타게 기다리기는 하지만, 그 내면의 이유는 크게 차별성이 있다. 어떤 이는 무모한 자신의 실력을 과시함으로써, 어떤 이는 그리움반, 원망반을 마음속에 간칙한채, 나머지 한 이는 자신을 죽기까지 희생함으로써... 마지막 장면에서 무지 서글픔과 허탈함을 동시에 느끼게 하는 김주영씨만의 독특한 엔딩도 인상적이었다. |
| 언제부터인지 우리 집 책장의 한자리를 차지하고 그 일부인 양 있던 책. 어느 날인가 이 책이 눈에 띈 것은 왜일까? 하필이면 그날 반찬으로 멸치볶음이 나왔던 까닭일까? 아니면 새삼스레 이제껏 없었던 것처럼 취급한 것에 대한 미안함 때문일까? 내손은 움직여 책을 꺼내 펼쳤다. 14살의 ‘나’의 눈에 보이는 삼촌은 ‘너구리’이다. 그를 발견할 수 있는 장소가 너구리처럼 한결같이 강가였고, 토굴 속과 강물 속을 자유자재로 드나들며 살아 갈 수 있는 습성과 능력을 지녔기 때문이었다. 강가의 움막에서 조용히 유수지를 지키는 외삼촌. ‘나’는 그런 외삼촌과 낮을 함께 지내며 많은 것을 배운다. 종달새의 둥지를 찾기도 하고 물까마귀의 둥지를 찾기도 하며 낮을 지내고 밤에는 집으로 돌아간다. 집에는 집을 나간 어머니 대신 집을 지키는 아버지가 계신다. 하지만 아버지는 평소에는 도박을 즐기고, 한번씩 사냥을 나가지만 언제나 사냥감을 들고 집으로 돌아온 적은 없다. 한번씩 아버지가 사냥 가는 날에 ‘나’는 곧바로 외삼촌에게 달려가 그 사실을 알리면 언제나 외삼촌은 그런 날 밤에 집에 찾아와 자고가곤 한다. 어느 날 밤. ‘나’는 또래 아이들과 학교로 찾아간다. 그리고 자의 아닌 ‘큰 일’을 내버린다. 학교에 도착한 나는 그날따라 미리 잡힌 쥐를 받아다 석유에 흠뻑 적시고는 쥐에다 불을 내버린다. ‘쥐불 놓기’. 지금 생각해도 꽤나 잔인한 놀이이자 위험한 놀이이지 않나 싶다. 불길에 휩싸인 쥐는 그대로 운동장으로 달려가 사라진다. 그리고 각자 집으로 돌아가 잠들 무렵 학교 교장 선생님의 사택에 있는 창고에 불이 붙어버린다. 불붙은 쥐가 하필이면 창고에 불을 내버린 것이다. 나는 외삼촌의 움막으로 은신한다. 움막으로 은신한 ‘나’는 한동안 외삼촌과 함께 보내게 된다. 은신 기간 중에 찾아와 밥을 챙겨주는 여자는 나에게 엄마에게서 ‘올 것’이라는 있지도 않은 편지를 내놓으라 하기도하고, 삼촌을 노리는 듯한 알 수 없는 행동을 계속 한다. 은신 기간 중에 나는 꿈을 꾸면서 돌아온 어머니가 여러 가지 똥으로 진수성찬을 차리는, 궤짝에서 할머니가 다시 살아나 나와 대화하는 체험은 나로 하여금 하나의 판타지를 생각나게 했다. 한참의 기간 후에서야 나는 집으로 돌아 갈 수 있게 되고, ‘나’는 아버지와 외삼촌 사이를 오가며 둘의 사이를 좋게 해보려 노력한다. 거짓과 진실. 두 사람의 사이가 좋아지길 기대하는 선의의 거짓말. 서로가 알아주지 않는 진실. 겨울이 되고 ‘나’의 거짓말이 성공했는지는 확인할 길 없이 결국 외삼촌과 아버지와 멧돼지사냥을 나간다. 언제나처럼 마을에 공고를 하고 사냥을 갈 것이라 생각한 나는 아버지가 조용히 사냥준비를 하자 조금은 실망한다. 정말이지 화려한 걸 좋아하나보다 하고 생각 했다. 처음 몇일은 외삼촌을 따라 다니며 멧돼지의 자취를 찾아 간다. 하루...이틀... 멧돼지의 자취를 찾은 우리는 차츰차츰 준비를 하고 아래쪽에서 대기중이던 아버지는 총으로 멧돼지를 쏘지만 잡지 못하고, 사냥감의 흔적을 찾아 가다 총이 아닌 다른 연유로 죽어 쓰러져있는 그것을 발견한다. 그리고 외삼촌은 사라진다. 내장까지 들여다보이는 투명한 몸체로 일생을 살면서도 알을 밴 흔적만은 감추는 은둔자의 삶을 사는 멸치. 마지막의 그 멸치 떼들은 사라진 삼촌 대신이었을까? 아니...대신이 아니라 사라진 삼촌이었을 지도 모른다. 진정한 은둔자로 거듭나 다시 한번 ‘나’의 앞에 나타난 것이었을 지도 모른다. |
| 이 분의 글은 가족이란 과연 무엇인가를 나에게 느끼게 해준다. 항상 누군가가 부재중이다. 그래서 우리가 생각을 하고 있는 가족 상황과는 거리가 약간 먼 그래서 약간의 혼란이 존재하는 그런 가족상을 언제나 제시하고 있다. 물론 요즘에는 이런 가족들의 형태도 많이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가족들..결국은 함께 늘 하면서 아이를 낳고 아이를 정상적인 성인으로서 성장시키는 그런 가족들의 역할이 약간은 엇나갔을 때 그 속에서 오는 혼란이나 그 속에서 받아야만 하는 상처..하지만 그런 상처에 굽히는 것으로 끝내는 것만이 아니라 때로는 혼란스럽고 고통스러운 상처가 계속될지라도 그 고통을 이겨내고 한없이 푸르른 하늘을 바라볼 수 있는 자세를 이 책은 말을 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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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적으로 커다란 이슈나 에피소드는 없다. 박진감 넘치는 전개나 구성의 특이함도 없는것 같다. 하지만 잔잔하게 다가오는 옛추억의 구수함이랄까? 어릴적을 떠올리게 하는 그런 책인듯 하다. 우리의 고향...향수가 가지고 있는 정겨움이 묻어난다. 표지에 사소한 것들도 얼마나 눈부신가 라고 씌여있다. 우리가 쉽게 지나치고 흘려보낸 어린시절 지나가 세월의 소중함이 담겨있다. 사투리와 그 시대 사람들의 사고방식 어린아이의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의 빛깔 그순수함 때문에 더욱 평범함속에서 비범한 자태를 뽐내게 하는게 아닐런지....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에서 잠시 짬을 내어 맘에 여유를 가지게 해준다. [인상깊은구절] 사소한 것들도 얼마나 눈부신가 |
| 속이 투명하지만 아무때나 속을 보여주지 않으면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강인함까지 가지고 있는 멸치. 가장 작으면서 가장 크게 살아가는 멸치.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난 멸치에 대해서 잘 몰랐다. 그저 비오는 날 밥을 물에 말아서 맛있는 된장에 마른 멸치를 꾹 찍어먹으면 맛있다는 정도. 멸치에 대한 나의 생각은 맛있는 반찬 정도였다. 정말. 아! 하나 더 있다. 고 칼슘. 그래서 작은 내 키를 크게 해줄지도 모른다는... 하하하. 왜 제목이 멸치일까. 여기 나오는 인물 중에 멸치같은 인물이 있어서일까. 난 책을 읽으면서 내내 이런 생각을 해보았다. 그럼 외삼촌이 그런 인물인가... 사실 잘 모르겠다. 이 책속에서 가장 단순한 생활을 하면서도 가장 복잡한 인물이 외삼촌이다. 내가 볼 때는 그랬다. 외삼촌은 항상 같은 자리에서 같은 모습을 하고 있지만 정말 속을 알 수 없는 그래서 두려운 존재였다. 이런 모습이 멸치와 닮아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 소설속의 주인공(?)이면서 소설을 이끌어가는 '나'는 굳이 물고기에 비유하자면 소금쟁이 같은 존재인 것 같다. 물가 깊숙히는 들어가지 않으면서 물가 곁에서 맴돌며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그렇지만 없으면 물가가 너무 잔잔해 심심한. 그리고 마지막 한 사람. 아버지... 아버지는 능력없는 포수꾼이지만 교묘히 그걸 가린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다 눈치채고 있고, 은근히 아버지의 무능력을 비난하기도 한다. 난 이 아버지라는 인물이 가장 맘에 안든다. 위선에 가득차 있다는 느낌도 들고, 엄마를 내쫓은 장본인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리고 끝까지 자기 체면만 중시하는 정말 미운 인물이다. 하지만 이런 아버지라는 인물이 있음으로 해서 외삼촌이 더 돋보이는 것이 아닐까. 이 세 인물은 다 엄마를 그리워한다. 엄마면서 아내면서 이복누나 그리고 이 엄마 때문에 물과 기름 사이일 것 같은 세사람의 관계는 섞일 수 있다. 하지만 이 소설 속에서의 엄마의 모습은 어느누구에게서도 바로 보이지 않는다. 그게 바로 이 소설의 힘인 것 같다. 끝까지 읽는 사람을 붙잡고 있는 힘. 좀 어려운 책이란 생각도 들었지만 인물 하나하나가 참 와닿는 재밌는 책이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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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영씨의 소설에 대해서 난 선입견을 가지고 있다. 화척이 그렇고 야정이 그렇듯이 내가 읽기엔 버겁다는 생각이 그것이다. 현대문학이지만 결코 만만하게 읽어내려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솔직히 전작들은 읽기를 포기했었는데 그나마 홍어를 접하게 되어 그의 문학소설을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했다. 그 이전에 '고기잡이는 갈대를 꺾지 않는다'를 읽고서 그의 작품세계에 묘한 매력이 있음을 깨달았지만 사실 작품 몇편을 읽어다고 해서 그 작가에 대해서 잘 이해하고 있다라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전작 홍어와 멸치는 여러모로 닮은 구석이 있으면서 또한 다른 점도 눈에 띄인다. 그 두 작품모두 약간은 슬픈 구조를 갖고 있다. 그의 자전적인 배경이 녹아있다라고 하는데 애써 행복한체 하지않고 현실속에서 나름대로 행복을 추구하는 듯하다. 그냥 현실 그 자체를 받아들임으로써. 멸치는 단순한 인물구도를 가지고 있는듯하지만 글을 읽다보면 이상하게도 긴장감이 느껴진다. 외삼촌과 아버지사이의 보이지 않는 긴장감. 그 중간에 끼인 대섭이의 갈팡질팡하는 심리상태. 솔직히 개인적인 요즘의 내 심리상태로선 이 소설의 결말이 썩 마음에 들지 않지만 남편의 말처럼 현실은 그렇게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겠지. 그나저나 외삼촌 달구는 어떻게 되었을까. 너무나 희생적인 그가 참 안쓰럽다. 글에선 나오지 않지만 외삼촌을 기다리는 대섭이의 간절한 바램처럼 그가 어디선가 살아있었으면 하는 개인적인 바램이다. 역시 김주영씨의 소설은 독자를 끄는 묘한 매력이 있음을 느낀다. 경상도 사투리가 문학작품속에서 유머러스하게 때론 비통하게 느껴지는 것을 보면 그의 솜씨가 탁월한것임에 틀림이 없을 것 같다. 나같이 문학에 문외한인 사람의 눈에도 그렇게 보인다.
암튼 오랜만에 맛보는 외국작가의 번역물이 아닌 국내 작가의 훌륭한 글이라서 내게는 더욱 반갑게 다가온다. [인상깊은구절] 아저씨, 우리 아부지 욕하지 마이소. .... 나를 싸잡아, 입에 거품을 물고 욕설을 퍼부으며 설쳐대는몰이꾼을 처연하게 바라볼 수는 없었다. 순식간에 그에게 달려가서 다짜고짜 팔뚝을 물고 비틀었다. |
| 작가의 서문이 너무나 멋있어서 책을 읽는 동안 내내 '언제쯤 멸치가 등장할까?'생각을 하며 내 눈은 책에서 줄곧 "멸치"라는 단어를 찾아 헤멨다. 결국 마지막 장면에 이르러서 주인공 대섭이 멸치와 함께 수중발레를 하듯 물속에서 춤을 추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책을 덮고 나서 한참동안을 "멸치"에 대해 생각했다. 왜 책 제목을 "멸치"라고 했을까? 이 책에 등장하는 주요인물은 아버지와 외삼촌 달구, 화자인 나 대섭이다. 대섭의 성장소설과도 같은 이야기의 전개과정에서 이 셋을 서로 대섭의 어머니를 기다린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으면서 갈등과 반목을 하고 있다. 특히 대섭의 아버지와 외삼촌 달구는 여러면에서 서로 다른 면을 보이고 있다. 아버지는 허세뿐인 사냥꾼이지만 어떤 동물을 죽이는 사냥꾼임이고 또 사냥꾼으로 인정받고 싶어하는 반면 외삼촌 달구는 종달새, 까마귀, 너구리, 멧돼지 등 동물에 대해 아버지보다 더 잘 알고 있고 관찰하기를 좋아하지만 그 어떤 것도 죽이지 않는 심지어 먹지도 않고 사는 것처럼 보일만큼 자연에 가깝고 평온한 사람이다. 아버지가 어머니를 괴롭히고, 다른 여자에게 한눈을 팔고, 집에 있는 물건을 팔아먹는 인물은 반면 외삼촌은 어머니에게 헌신적이고 어떤 여자나 물질적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작가는 외삼촌 달구를 그 누구도 알아주는 않는 척추동물이자 어족인 그러나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먹고 있는 "멸치"로 은유하고 있다. 사소하고 하찮게 생각한 것, 멋지고 품위있는 모습을 그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것, 그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지라고 말하고 싶은 듯하다. 이렇게 생각하고 책을 덮으니 책 제목과 책 표지에 그려진 맑은 강물의 그림이 참 적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섭은 이 둘은 동시에 좋아하고 의지하면서 어머니를 기다리기도 하고 배신감을 느끼기도 하면서 커 간다. 그리고 결국은 마지막 장면에서 외삼촌의 빈자리를 지키는 성장한 소년의 모습을 보여준다. 처음으로 읽은 김주영의 소설은 글자 한자한자가 맑고 투명한 수채화를 보듯이 깔끔하고 정갈하다. 자연의 풍경을 그려내는 필치나 동물에 대한 묘사가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