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시 기대를 져버리지 않은 책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이덕일 선생님의 책을 읽으면서, 사흘을 넘긴 적이 없었습니다. 이 책 역시, 400페이지의 적지 않은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이틀동안 출퇴근하는 지하철안에서 다 읽을 수 있었습니다. 이덕일 선생님의 책은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정말 재미있게, 그리고 생각하면서 읽게 만드는 어떤 마력이 있는 듯 느껴집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도 그랬지만, 이덕일 선생님의 책을 읽다보면, 우리나라의 역사에서 정말 많은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외국의 침략이나 간섭에 의한 개혁의 실패보다는, 내부 기득권 세력의 방해로 인한 개혁의 완벽한(?) 저지 내지는 실패가 나라를 돌이킬 수 없는 나락의 길로 빠져들게 했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습니다. 물론, 당시 시대상황에서는 기득권세력의 그러한 책동이 당연하다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만, 그러한 책동들은 결과적으로 정유재란이나 삼전도 치욕, 그리고 경술국치와 같은 백성들에게나 나라 전체에, 그리고 역사에 돌이킬 수 없는 크나큰 상처를 안겨 준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러고도, 백성을 살피거나 나라를 살찌우는데 전력투구하기 보다는, 내 당파, 내 일족, 내 한 몸의 편안함만을 추구했던 일단의 사람들을 보면서, 역시 역사란 반복되는 것인가...를 수없이 되뇌었습니다.
이덕일 선생님의 책을 읽다가 책갈피를 끼우고 책을 잠시 덮고 있노라면, 책 속의 내용이 결코 과거완료형이 아니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됩니다. 좁게는 내 주변, 넓게는 현재의 정치상황 등이 그 당시의 화면과 중첩되는 것이 저 만의 헛된 공상일까요? |
|
조선조 임란과 정유난을 거치는 1590년대의 사회와 정치, 경제상황에 대한 인물중심의 역사기행이라 할 수 있겠다. 조선조의 당쟁하면 일본의 조선 식민사관으로 민족정기를 비하하려는 왜곡된 시각이라고 치부한다. 그러나 당시대 파벌의 주요 인물들의 전해져오는 서술을 빌리면 지독한 당파싸움을 목격치 않을 수 없게 된다. 작가는 유성룡을 저술하면서 당쟁을 중심으로 하는 파벌의 인식을 기반으로 하지 않겠다고 모두에서 선언하고 있으나 왜란이라는 국가의 위기가 눈앞에 펼쳐지고 있음에도 동인과 서인, 그리고 북인과 남인으로 나뉘어 헐뜯는데 세월을 보내는 묘당의 작태가 책의 전편에 도도이 흘러내려 수치스러움과 자괴감으로 절로 한숨을 내쉬게 한다. 김훈의 소설 “남한산성”이 청의 침입에 허허로운 말과 말싸움에 세월을 낚는 권력층의 무력함과 무익한 명분으로 치욕을 그렸다면, 역사학자 이덕일의 저술인 “유성룡”의 평전은 1세기전의 정확히 동일한 무지함과 무분별함, 세치 혀만 놀리는 양반사대부들의 허위를 여과 없이 목격할 수 있다. 역사의 대중화를 위해 활동하는 저자의 이 역작(力作)은 작금의 정치권력과 이념의 갈등을 시대를 거슬러 그 의미를 전달하려 한 듯한 인상을 갖게 한다. 이 책의 흥미로운 주제중 10만양병설의 주장이 율곡 이이가 아닐 수 있으며, 서인들의 역사왜곡에 의한 것으로 서애 유성룡의 양병주장이 있었음을 실증을 통해 보여주려 하고 있기도 하다. 어느 파벌에도 속하지 않고 이러한 파벌의 화합에 중추적 역할을 수행하던 유성룡에 대해 서인들의 수장인 ‘율곡’은 오히려 국가와 백성이 어려운데 많은 군대를 양성하는 것은 오히려 터무니없는 논리라고 주장하였음이 선조실록에 기록되어 있을 뿐 서인들의 악의적 창작품인 “율곡행장”의 서술은 날조된 것임을 보여준다. 위와 같은 역사적 진실에 대한 공방도 이 책의 매력을 더해주는 요소이기는 하나 ‘서애’의 전란중 상민과 천민에 대한 공평한 세제와 부담에 대한 의식과 양반의 군역회피, 세금탈루등에 대한 제도적인 형평원칙으로의 회귀를 통한 부과등의 노력은 오늘날의 기득권 세력과의 갈등처럼 개혁자의 힘겨운 노력을 엿보게 한다. 작미법(作米法)등 민생경제의 회복, 계급제도의 혁신, 국방전략체제의 개혁등 당대 최고의 제도 혁신의 리더였으나 무능하고 파렴치한 임금(선조)과 파벌의 투합으로 5세기가 지난 오늘의 지금에까지 이르게 되고 만다. ‘왜(倭)’가 조선을 침략한다. 무방비와 도망하기 바쁜 양반과 권력층의 이탈은 왜의 거침없는 조선반도 유린에 어떠한 대적도 하지 못한다. 임금은 궁을 버리고 북으로 북으로 피난하고 명으로 귀화하여 자신과 식솔들의 살길만을 모색한다. 왕(선조)은 나라를 버리려 한다. 백성과 국가에 대한 어떠한 책임감도 느끼지 않는다. 오로지 자신과 자신의 가족들만의 안위만이 최선의 대책일 뿐이다. 여기에 아부하여 살길을 모색 하는 서인들의 세력과 백성과 나라를 위한 군사의 모집과 방어책, 외교를 총합하여 왜와의 전쟁을 승리할 수 있다는 유성룡과의 한판 싸움이 벌어진다. 유성룡은 임진란과 정유재란을 거치는중 병조판서, 영의정을 두루 거치고 도체찰사로서 전쟁의 최전면에 나서 난을 진압하고 위기의 국가를 재건하는 최고의 리더쉽을 발휘한다. 그러나 전쟁의 소용돌이가 진정되자 선조와 그 간신세력(북인과 서인)들은 유성룡이 전쟁으로 나라를 피폐하게 하였다는 차마 웃지 못 할 누명으로 삭탈관직 시키고 만다. 이 책에는 선조실록은 물론이고 징비록, 율곡행장, 율곡연보, 선수실록, 국조보감, 기재잡기, 난중잡록, 광국지경록, 난중일기등 무수한 사료(史料)들이 인용되고 있으며, 관련 인물, 각종 경제, 국방, 정치, 문화제도를 읽을 수 있다. 인물 유성룡의 위기시대의 통합리더로서의 자질뿐 아니라 오늘의 우리사회에서도 그 삶과 도덕적 가치는 충분히 재해석되고 조명되어야 함에 이 저작물의 가치는 빛난다고 하겠다. |
|
'아는만큼 보인다'라는 말이 있다.
유성룡의 일대기를 보면서 참으로 타고난 관운이 눈에 띄었는데
임진왜란이란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속에서 자신의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진정으로 국가와 나라를 위하는 관료의 자세를 보는 것 같아서 현 시대에 정치인들이 한번쯤은 우리 역사속에 유성룡을 재인식해서 유성룡이 남긴 발자취를 다시한번 검토해보는 것이 어떨까란 생각을 가져본다.
임진왜란이 끝난 이후 또다시 고개를 드는 지긋지긋한 당쟁은 어쩌면 우리들의 전쟁영웅인 유성룡과 이순신 등을 온당하게 대접하고 평가해야하는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콤플렉스의 황제인 선조와 그의 눈치를 보는 난쟁이관료들 틈사이로 밀어넣어 임란이후 국가재건 및 부흥에 온전히 힘을 쏟았어야만 하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힘을 낭비한 측면은 없는지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위대한 전쟁영웅인 유성룡을 콤플렉스의 대가 선조의 불타는 시기심과 질투로인해 말년생활을 조용히 두문불출해야하는 상황으로 내몬 부분은 여간 씁쓸하지가 않다.
반복되는 일상에 묶여 제대로 된 독서를 못하고 있다가 이덕일작가의 책을 오랜만에 읽어보게 되었다.다시한번 이덕일작가는 글을 맛깔나게 쓰는 사람이구나란 생각을 절로 하면서 이 책에서 이병도의 식민사관을 꼬집는 부분은 되새겨볼만한 부분이란 생각을 하게된다.
'율곡이이의 십만양병설을 반대한 이가 유성룡이었다.'라는 주장
서애 유성룡도 율곡 이이도 한국인에게 있어서 없어서는 안될 역사의 거인들임에도 불구하고 과연 어떤인간이 왜,무슨이유로 한명은 선인의 탈을 쓰게하고 또다른 이에게는 악당의 이미지를 씌어 흑백논리에 사로잡히게 했는지 그 의도의 저열함에 서평을 쓰는 이 순간 나는 나도 모르게 어금니를 꽉 깨물게된다. 작지만 크게 느끼는 '역사속의 식민사관 뽑아내기'를 도와준 이덕일작가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하면서 서평을 마치고자 한다.E
|
|
여러 역사서들이 있지만 이덕일만큼 지루할수있고 어려운 역사 소재들을 쉽게 풀어서
또 다른 재미를 선사하는 사람은 드물다. 그리고 이책은 그것을 증명하는듯 거침없이
술술 읽힌다.
이 책은 임진왜란이라는 환란속에서 나라를 구한 서애 유성룡의 참모습을 생생하게
그려냈을 뿐만 아니라 당시 지배계층의 위선과 당쟁으로 인한 시대적 한계를 명쾌하
게 풀어내고 있다.
김훈의 남한산성이 명분론에 빠진 해결책 없는 무능한 인간들이 말장난에 불과하다면
이덕일의 '유성룡'은 난국은 의지만 있으면 극복할 수 있다는 참으로 감명을 주는 책
이다.
|
|
유성룡이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생각들은 이순신의 친구로 그를 천거해 임진왜란과 같은 시기에 나라를 지킬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과 그의 후손이 현재 잘 나가는 연예인 중 하나라는 것이다. 임진왜란 당시 영의정을 지냈으며 도제찰사 등 주요한 요직을 다 거친 인물이지만 그가 어떤 일들을 했는지에 대해선 아는 바가 없었다. 오직 친구 한명 잘 밀어줘서 역사에 무임승차한 인물과 같은 느낌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이덕일의 시각으로 바라본 유성룡의 인물평은 이순신처럼 직접 칼을 들고 전장에서 적과 맞서 싸우지는 않았지만 전쟁의 모든 면을 바라보고 관리, 통제하여 유래없는 국난의 상황을 극복한 지혜롭고 실천력을 겸비한 명재상이었다. 한창 동서로 남북으로 나뉘어진 당파 속에서도 자신이 분류된 특정 당파의 입장과 이해보다는 국가와 민생을 우선으로 국론을 모아내고 실행한 우리역사에 보기드문 리더의 모습을 보여준 인물이다. 무능하고 책임감 없는 임금, 하지만 국가의 존망이 달린 상황에서도 국가의 존망과 백성의 안위보다는 자신의 위신과 안위를 우선시 하는 선조 아래서 왕의 시기와 분화되기 시작하는 당파로 인한 공격과 도와주러 왔는지 괴롭히러 왔는지 모를 명(明)의 원군, 국토를 유린하고 있는 일본으로 둘러싸인 사면초가의 상황에서도 무너진 국가의 기강을 바로잡고 이순신, 권율 등 유능한 장수를 발굴해 전세를 역전시키고 대동법의 시행과 상업을 장려하는 등 획기적인 제도의 도입으로 민생을 돌본 명재상에 대한 제대로된 평가가 왜 없었는지 궁금할 정도다. 임금의 시기와 그가 속한 당파인 남인의 몰락, 우리역사사에서 국란 극복을 호국이라는 이름으로 몇몇 군인-그러한 군인들이 칭송을 받기에 모자라다는 얘기는 절대 아니다.-에게만 시선을 맞추길 원하는 현대사의 상황들이 잘 버물러져서 훌륭한 리더이자 사상자였던 그를 음지에 머무르게 했던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근래와 같은 우리 현실에서 필요한, 통합의 의지와 민생을 위한 뛰어난 비젼을 가지고 그것을 실천하는 훌륭한 리더의 모습을 갖춘 그와 같은 인물이 절실히 그립다. 작가 이덕일이 유성룡 당시의 상황을 바라보며 동서 분쟁시 서인보다는 동인에 가까운 시각으로 역사를 바라보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같은 문외한이 깊은 내막을 알 수 없으니 당시 어느 당파가 그때의 상황에 적절하게 대처했는지 평하기는 힘들다. 서로의 공과는 한번쯤 살펴보는 것도 좋지않나 하는 호기심이 들기도 한다. 이참에 이덕일이 평한 송시열도 한번 접해볼까 싶다. |
|
이 책 표지에 유성룡을 설득과 통합의 리더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책을 읽는 내내 과연 그러했는가에 대해서는 이책에 동의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정말 설득과 통합의 리더라면 유성룡이 활동한 시대의 동서가 나뉜 조정의 화합이 어느정도 나와야 하겠지만 (→ 물론 이이 와 더불어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나라가 일본에 절단이 나는 위기에서도 당파간의 화합은 전혀 없었습니다. |
| 이덕일 선생의 책은 즐겨읽는데, 다른책도 그렇고 사소한 오류들이 있네요 246페이지 밑부분 성왕선조를 두고 광해군이 왕노릇하기는쉽지 않은 것이었다에서 성왕이 아니고 상왕이 맞는 것 같고요, 261페이지 사진이 쌍성승구문이라 했는데 승욱문이 아닌지요? 작은 것이지만 역사책은 정확해야 합니다 |
|
우리 역사를 살펴보면 외침으로 종종 어려움을 겪었다. 내부분열로 고조선은 황하세력에게 망했고, 고구려와 백제, 고려 역시 외세의 침략에 망했거나 어려움을 겪었다. 이렇듯 어떤 역사든 외세와의 전쟁은 피할 수 없다. 그러나 외침의 징후를 알고도 내부적인 화합을 이루지 못해 슬기롭게 이겨내지 못했다면 안타까움은 배가 될 것이다. 조선시대 임진왜란이 그 대표적인 예다. 전쟁이 발발하면서 외세를 물리치려고 노력하기보다는 지배계층인 임금과 사대부들은 앞다투어 도망치기 바빴다. 그 뒤에 덩그러니 남은 백성들은 전쟁의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 하지만 전쟁은 상흔만 남긴 것이 아니라 백성들의 의식구조에 변화를 가져왔다.
조선시대에서 임진왜란이 갖는 의미는 매우 크다. 첫째는 사대부들의 리더십이 한계에 다다른 것을 확인하였고, 두 번째로 일반 백성들에게 사회개혁의 필요성을 심어주는 계기가 된 것이다. 물론 모든 지배계층이 숨거나 도망친 것은 아니다. 아무리 세상이 어지럽고 힘들더라도 국난극복을 위해 힘쓰는 자들이 나타나기 마련인데, 이순신이나 권율 같은 수많은 전쟁영웅들이 그 중 하나고, 다른 하나는 국난극복을 위해 힘쓴 위대한 정치가들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유성룡이다. 선조가 집권하던 시기의 인물들을 살펴보면 하나같이 대단한 사람들이다. 정파를 떠나 그 시대의 길이 남을만한 업적을 이룬 인물들이 한둘이 아니었다.이런 면에서 보면 선조는 복 받은 임금임에는 틀림없다. 단지 그 인물들을 제대로 부려가며 쓰질 못한 것은 선조가 책잡힐만하다.
선조는 자신의 리더십 부재를 전쟁영웅들에게 뒤집어 씌웠다. 전쟁 초기에 자신의 안위만을 생각했기에 전쟁 수습보다는 백성들을 버리고 피난을 떠났으며 이 때문에 임금으로서 백성들로부터 멸시를 받는다. 이런 이유로 백성들이 진심으로 존경하는 전쟁영웅들을 미워했는지도 모른다. 개인적으로는 충분히 이해는 하지만 나라를 다스려야 하는 지도자로서는 자질이 부족했다. 그 뿐만이 아니라 그런 선조 곁에서 정사를 돌봤던 유성룡은 전쟁 후반부에 토사구팽을 당한다. 이런 저런 이유가 있겠지만 선조의 의지로 버려져야 했다. 이 점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만약 유성룡이 전쟁 이후에도 정승으로서 정책을 지휘했다면 어땠을까? 조선후기의 정치색을 바꿀 기회를 잃어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유성룡이란 인물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다. 단지 학창시절에 유성룡의 후손이라는 친구를 알고 있었을 뿐이다. 그렇기에 유성룡이 어떤 인물이고 어떤 일을 했는지 궁금함을 조금 갖고 있었을 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유성룡이 임진왜란에 세운 공은 충무공 이순신이나 권율보다도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는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유성룡의 업적을 살펴보면 정치인 한 사람의 생각과 의지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이롭게 하는지 알게 된다. 반면에 기존의 기득권만 지키려면 세속적인 무리들이 어떻게 반대되는 의견을 갖은 사람을 매장하려 하는지도 알게 된다. 아마 대권을 앞두고 있는 우리 현실을 감안해 본다면 충분히 생각해볼 일이다. 정치란 그때나 지금이나 본질은 변하지 않았을 것이다. 권력에 대한 끊임없는 투쟁 오로지 그것만이 우리나라에 나타난 변종 정치색깔일 것이다. 지금 어떤 사람이 우리에게 필요한지 유성룡을 읽을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의 아쉬운 점은 유성룡은 좋은 점만 부각했다는 것이다. 그도 사람이기에 분명 잘못한 정책이나 생각들이 있을 것인데, 그렇게 다루질 못했다. 여러 시각에서 객관적으로 유성룡을 바라봤다면 한 인물을 깊이 알기에 더없이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한쪽의 시각으로만 바라본 유성룡은 절름발이 밖에 안 된다. 이 책을 통해 유성룡의 대략적인 업적을 알게 되었다면 다른 시각에서는 유성룡을 어떻게 살펴보는지 알고 싶어졌다. 그래야지만 우리의 위대한 선인들을 제대로 아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 책에서는 임진왜란의 업적을 주로 다뤘기에 그의 젊은 시절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 그저 정치인 유성룡만을 알 뿐이다. 그의 삶은 대략적으로 살펴본다면 선조와의 대립으로 국난극복을 이뤘다. 중요한 것은 보여지는 사실보다는 그런 행동을 유발하게 된 원인을 아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더 알고 싶어졌다. 유성룡에 대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