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인간이 평등의 가치에 눈을 뜬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그리고 과거와 같은 확고한 계급은 사라졌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에선 한 사람이 다른 사람보다 우월한 삶을 사는 게 허락되고 있다. 결과에 있어서의 절대적인 평등이 옳지 않음을 알긴 하지만, 태어난 그 순간부터 출발선이 다르기에 경쟁이 공정하다고만은 할 수 없을 것이다. 인류의 역사가 계속되는 한 이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듯하다. 체제에 변화를 꾀하고 제도를 바꾸고, 우리의 역사는 끊임없는 시행착오 그 자체였으니 말이다.
대개의 역사는 지배층을 중심으로 기술되어 있다. 그렇지만 존재하던 거대한 제국들이 오로지 지배층만의 힘으로 건설, 유지되었던 것은 아니다. 외려 이름 없이 살다간 수많은 이들이 없었더라면 오늘날 우리는 역사의 화려한 면모를 접할 기회를 갖기 힘들었을 것이다. 특히, 노예는 사회의 생산을 거의 전적으로 담당하는 계층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노동은 오늘날과 같이 대가를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물건처럼 매매, 상속, 증여의 대상이었던 그들은 인간다운 삶을 사는 게 불가능했다.
스파르타쿠스는 트라키아 인이었다. 그의 딱 훤칠한 키나 벌어진 어깨 등은 그가 비범한 인물임을 상징하는 듯했다. 하지만 유럽 세계를 호령하던 로마인들에게 그는 자신들의 발 밑에 놓인 이방인일 뿐이었다. 로마인들의 유흥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바쳐야만 하는 검투사가 된 그가 두려워했던 것은 자신이 죽는다는 사실이 아니었다. 자신의 검이 겨누어야 할 상대가 자신과 같은 인간이라는 점을 그는 괴로워했다.
작가는 크라수스 속주 총독의 부관인 가이우스 푸스쿠스 살리나토르의 입을 빌어 이야기를 전개했다. 스파르타쿠스의 반대편에 서 있는 이 인물에게 스파르타쿠스의 행위는 반란에 지나지 않아 보일 것이다. 하지만 그는 스파르타쿠스를 통해 죽음 아닌 삶을 얻었고, 자신의 상관이 보여주는 비열함이 노예들이 보이는 행동보다 더욱 잔혹할 수 있다는 사실에 눈을 떴다. 이러한 관점으로 인해 스파르타쿠스는 더욱 고귀한 인물로 탄생할 수 있었다. 역사는 그들의 움직임을 반란으로 기록하지만, 그들은 자유로웠고 노예 아닌 자유민으로서 죽었다.
원형경기장을 가득 메운 사람들의 모습을 그려본다. 그들의 눈은 검투사들의 싸움을 응시하고 있었고, 그들의 입에서는 "죽여!"라는 소리가 끊임없이 흘러나오고 있을 것이다. 개만도 못하다고 여겨진 존재들이 서로를 향해 겨눈 칼에 로마인들은 흥분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벌거벗은 검투사들의 몸 안에서 뛰고 있는 심장을 알지 못했다. 그들은 검투사들의 몸 안에 자신들이 지닌 것과 같은 뜨거운 피가 흐르고 있음을 알지 못했다. 그들 대부분은 '로마인'이라는 범주에 묶여 자기 자신의 이름을 역사에 남기지 못했다. 하지만 스파르타쿠스는 달랐다. 역사에 기록된 그는 실패하지도 죽지도 않았다. |
|
‘스파르타쿠스’라고 하면 로마사를 언급할 때 검투사들이 일으킨 반란을 주도한 인물로 알려져 있으며, 세계사 책에서도 그에 대해서는 많아봐야 한 두 줄 정도로 언급하고 넘어가는 것이 전부다. 그래서 실제로 스파르타쿠스가 어떠한 사람인지 그리고 당시 로마의 상황과 반란이 어떠한 식으로 전개되었는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알 길이 없었다.
일반적으로 역사가 왕조 중심 아니면, 권력자 중심으로 서술되다 보니 하층민이나 일반 대중의 눈을 통한 역사를 찾아보기는 힘들었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우리가 보는 역사는 실제 존재하는 역사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역사와 픽션을 가미한 역사소설이 많은 인기를 얻고 있는 것 같다. 물론 허구와 실재를 혼동하게 할 여지가 있다는 비판을 받는 측면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 책도 그와 같이 역사와 픽션을 적절히 섞어 스파르타쿠스라는 한 인물을 통해 로마제국 시대의 사회상과 함께 자유를 얻기 위한 노예들의 처절하면서도 아름답고 숭고한 투쟁을 그리고 있다. 기존의 왕조중심 내지는 권력자 중심으로 보는 역사가 아니라 피지배자의 입장에서 당시를 그리고 있어 보는 이에게 색다름 감흥을 불러 일으킨다.
어릴적 영화를 통해 검투사들이 서로 싸우고 죽이는 장면과 황제의 명에 따라 패배한 상대방을 죽이는 장면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 들이며 이를 찬란한 로마제국의 한 모습이라고 생각했지만, 책장을 한 장 두 장 넘기면서 비록 역사책에 한 두 줄 정도밖에 차지하지 않는 이야기라도 거기에 내포된 역사의 모습은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의 것이 담겨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책에 등장하는 많은 이야기들이 지은이의 상상력이 가미된 부분이 많다. 하지만 지은이가 역사학자여서인지 비록 픽션이 가미되었음에도 결코 스토리를 해칠 정도로 허무맹랑하게 들리지는 않는다. 지은이는 캐릭터들에 대한 세심한 인물묘사를 통하여 이야기에 대한 객관성을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각 챕터마다 화자가 바뀌면서 스파르타쿠스라는 인물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은 마치 다큐멘터리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지은이의 글을 이끌고 나가는 탁월함이 돋보이는 부분이었다.
노예로 살기를 거부하고 하루를 살더라도 자유롭게 살기를 원하는 노예들의 모습과 자신을 따르는 수많은 노예들을 살리려고 하는 스파르타쿠스의 번민과 고뇌는 행간을 통하여 아주 강하게 다가오며, 당시 그들에게 있어 자유가 얼마나 소중하고 절박한 문제였는지를 느끼게 한다. 비단 이는 로마제국에서만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이 살아 숨쉬는 모든 역사에 등장하는 공통 주제였고, 어떤 면에서는 역사는 피지배층의 자유를 향한 역사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기억되는 사람은 죽지 않는다!”라는 스파르타쿠스의 말이 오랜 동안 머리를 맴도는 자유에 대한 힘이 배어져 나오는 책이다.
비록 픽션이 가미된 역사소설이지만 당시의 시대상을 알 수 있게함과 동시에 읽는 이로 하여금 역사, 특히 로마역사에 대한 흥미를 유발하고 시대정신을 이끌고 가는 다수 대중의 힘이 느껴지는 매력을 가진 재미난 소설이다. |
|
정말 2주일에 걸쳐 읽게되었네요 ^^ 딱 오늘이 마감날입니다 ㅎ
스파르타쿠스... 책을 받고 스파르타쿠스를 찾아봤어요. 정말 실존 인물일까?
네이버 백과사전은 이렇게 알려주었어요~
트라키아에서 출생하였다. 중부 이탈리아 카푸아의 노예 검투사(劍鬪士) 양성소에 소속된 검투사였는데, BC 73년 70여 명의 동료 노예와 함께 양성소를 탈출, 목자(牧者) ·농노(農奴) ·빈농(貧農)을 규합하여 반란을 일으켰다. 정부에서 보낸 진압군 2개 군단을 차례로 격파하고 남부 이탈리아를 지배, 전성기에는 군세가 12만 명에 달하였다. 그러나 남이탈리아에서 시칠리아섬으로 건너가려다가 실패하고, BC 71년 원로원에서 파견된 크라수스의 군단에게 루카니아에서 패사(敗死)하였다. 이 반란은 로마의 지배계급을 전율시켰으며, 후에 그에 관한 갖가지 전설이 생겨났다.
책을 읽고나서 저 정보를 다시 읽어보니 딱 책 내용이네요 그렇습니다. 제가 만난 스파르타쿠스는 큰 뼈대를 가지고, 그에 관한 갖가지 전설이 엮여 책으로 만들어졌던 것이군요. 로마군이 되고 싶다는 생각에 로마군에 합류하지만 로마시민만이 사람대접을 받는 시기에 그는 '자유롭지'못합니다. 탈출하다가 잡혀와서 검투사로 팔려가 로마인들의 여흥을 위해 검투사들끼리 죽을때까지 싸워야 하죠. 그는 '자유인'으로서 죽고 싶습니다. 왜 서로를 죽여야 하는지도 모른채 그렇게 다른이들에게 고개 숙이고 살아가고 싶진 않아하죠. 또다시 감행된 탈출, 하지만 그에겐 검투소에서 같이 도망친 동료들과 노예들이 가세해 로마군을 벌벌떨게 만드는 사람이 됩니다.
스파르타쿠스는 영웅입니다. 로마인들을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만들었으며, 개보다 더한 취급을 받던 노예들에게 고개 들고 살아가고 싶은 욕구를 주게 됩니다. 스파르타쿠스는 영웅이지만, 완벽한 인간은 아닙니다. 노예들에게 '로마시민'답게 행동해주길, '로마군'처럼 싸워주길 바라지만 노예들은 갑작스레 맛본 자유가 너무나 달콤할 뿐입니다. 로마군은 점점 그들을 옥죄여 가고, 결국 그는 싸우다 죽게됩니다.
그에게 '자유'란 무엇일까요? 무엇이 그토록 '자유인'으로 살 수 있기를 갈망하게 만들고, 싸우게 했을까요? 나에게 '자유'가 가지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자유로워'보이는 나지만, '자유롭지'않고 보이지 않는 것에 구속되어 있는 건 아닐까요? 여러가지를 생각해 보게 합니다. |
|
재작년 스파르타쿠스 라는 발레를 본적이 있다. 그 당시는 스파르타쿠스 가 뭔지 몰랐다. 그저 스파르타 와 연관있는 것이겠거니 했을 뿐이다. 발레도 익숙한 장르가 아닌지라 전쟁을 하고 사랑이야기도 나오고 그런 내용으로만 알고 지나갔다. 이책 덕분에 조금이나마 알게 되어서 뿌듯했다.
스파르타쿠스의 반란이 이미 실패했다는것을 알고 읽었지만 성공하길 기대하면서 책을 읽었고 노예들을 이끌고 나아기는 인물의 어려움 과 혼란들 점점 세력이 커지면서 생겨나는 균열에 나는 안따까움을 느꼈다. 그만큼 흥미진진하게 써져있다.
책의 서술자가 다양하게 등장하여 더욱 재미를 더했다. 처음에는 좀 헷갈리는 부분도 있었지만 지나면서 박진감있고 긴장감을 유지하게 했다. 또한 사건을 하나하나 빠짐없이 쓰지않고 중간중간 독자에게 여지를 줄수있는 서술의 여백들도 좋았다.
내가 읽어 봤던 실제있었던 역사 소설들은 시간의 순서나 사건의 진실성, 해석 등으로 딱딱한 느낌을 받았는데, 스파르타의 죽음은 소설같이 재미있게 잘읽혔다. 그리고 그당시의 시민제도나 노예제도를 상상해보면 지금의 이 모습의 세상에 태어난것에 감사하는 마음이 생간다. |
|
나에게 스파르타쿠스라는 이름은 익숙하다. 대학교 3학년 1학기 당시 '그리스 로마 문명사'라는 3시간짜리 교양과목을 수강하면서 스파르타쿠스라는 인물을 처음으로 접했다. 지금은 고인이 된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1960년작 『스팔타커스』라는 영화를 강의시간에 시청하면서 스파르타쿠스의 삶과 그 시대의 역사를 경험했던 것이다. 주연이자 기획자였던 커크 더글라스와 스탠리 큐브릭 감독은 영화의 성격과 방향에 대해 적지 않은 논쟁을 일으켰는데 큐브릭은 로마 제국이 멸망할 수도 있었던 노예 반란 전쟁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을 그리고 싶어 했다. 하지만 더글라스는 전쟁과 러브스토리가 절반씩 섞인 영웅담을 원했다. 수많은 마찰음과 가위질이라는 치욕을 겪으면서 1,200만불을 투입하고도 밋밋한 영화가 되었다. "난 이 영화를 가능한 사실적으로 만들려 했다. 그래서 스팔타커스가 누구인지에 관해 신뢰할 만한 요소가 거의 없는 멍청한 시나리오에 반발했다. 만약 용납될 수 있는 한계 안에서만 필요하다면, 감독이란 그저 돈많이 받는 다른 기능공이나 제작자나 다를 바 없다. 내 생애에서 『스팔타커스』가 그 증거다."라고 말할 정도니 당시의 큐브릭 감독의 불편했던 심정을 알 만하다.
막스 갈로의 로마 인물 소설 『스파르타쿠스의 죽음』을 읽었다. 읽기 전에 책 표지와 제목에서 오는 강렬한 비쥬얼에 홀딱 반했고 로마 역사 사상 가장 위협적이고 큰 규모의 노예 반란 전쟁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어떤 관점으로 그릴지가 관심이었다. 크라수스, 폼페이우스, 카이사르의 삼두정치가 진행되면서 피비린내 나는 내정과 권력다툼의 소용돌이 속에서 로마가 공화정에서 제정의 정치형태로 변모해가는 발판을 마련해 준 전초가 된 역사이기에 많은 기대감을 갖고 한달음에 읽을 수 있었다. 게다가 '우리 시대의 알렉상드로 뒤마'라고 불리며 90권이 넘는 저서를 쓴 프랑스 최고의 이야기꾼으로 통한다는 막스 갈로와의 첫대면은 흥분 그 자체였다.
기대가 너무 컸던 것일까? 책의 마지막장을 덮은 후 기다리는 것은 허탈함뿐이었다. 마치 당시의 로마제국이 수많은 노예들의 인권을 잔인하게 유린했던 것처럼 이 소설은 내 기대감뿐만 아니라 최소한의 서사의 맥조차도 마음껏 유린하고 짓밟은 느낌이다. '내 이름은 가이우스 푸스쿠스 살리나토르이다.'라고 외치는 크라수스의 부관 살리나토르의 시점에서 소설은 시작한다. 자유를 갈구하는 트라키아인 스파르타쿠스, 디오니소스 신의 여사제 아폴로니아, 유대인 치료사 자이르, 그리스인 웅변술 교사 포시디오노스, 검투사 교관 쿠리우스 등의 중심인물들의 언어와 관점이 섞이면서 액자형구조 속으로 이야기를 침투시키고 있다. 하지만 집중할 수 없게 만드는 삼류 번역과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서사의 맥이 뒤범벅되어 스토리텔링의 형편 없는 수준을 보여주고 있다.
도대체 저자는 기원전 70년경에 발생한 이 노예반란사건을 독자들이 어떻게 인식하기를 원했던 것일까? 그저 고대 로마사 그 자체? 자신과 체제의 한계에 도전하는 한 남자의 영웅담? 로마제국의 공화정에서 제정으로의 변천과정을 전초하는 영웅들의 출현기? 자유로운 죽음을 위해 싸운 세계 역사에서 유일하게 정의로운 전쟁기?.. 머리속에서 정리되지 않은 채 아쉬움과 씁쓸함만이 일렁인다. 번역 또한 형편 없는 수준이다. 외국도서의 경우 번역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원작이 주는 느낌이 달라진다. 아무리 훌륭한 원작이라 할지라도 일관성 없고 깔끔하지 않은 문장으로 번역되면 작가가 제공하는 원초적인 맛이 희석될 것은 자명하기 때문이다.
굳이 이 소설에서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을 발견한 것이 있다면 스파르타쿠스의 조언자 역할을 하고 있는 유대인 치료사 자이르의 존재이다. 실존 인물인지 작가가 만든 허구의 인물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 소설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그는 스파르타쿠스가 끊임없는 결정과 판단의 기로에 설 때마다 자신이 섬기는 전지전능한 유일신의 기준에서 조언한다. 스파르타쿠스의 연인인 아폴로니아로 대변되는 디오니소스 신의 존재감과 자이르로 대변되는 유대의 유일신의 존재감이 교차되고 대조되며 하나의 흐름을 형성하고 있는 듯하다. 소설의 마지막은 "오, 모든 것을 아시고 보시는 유일신이시여, 정의의 지배자시여, 고통의 십자가가 희망의 십자가가 되도록 하소서!"라고 외치는 자이르의 기도로 정리된다. 기독교의 출생과 박해와 번영이라는 역설적인 역사가 머지않아 로마제국을 뒤덮을 것이라는 작가의 예언적 메시지일까? 흥미있는 천착이 아닐 수 없다.
형편 없는 번역과 어설프게 맞추려는 이야기 전개에 적지 않이 실망한 작품이다. 뒷표지에 이 책을 평가하는 문구가 매우 흥미롭다. 고대 로마사를 머릿속으로 그리며 쉽게 이해하기에 더없이 좋은 책이다. - 쿠리에 프랑세 역사가로서의 정확성과 엄정함, 소설가로서의 재치와 입담이 어우러져 훌륭한 작품이 탄생했다. 이 작품은 기독교가 탄생한 곳인 고대 로마 사회를 더욱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씌었다. - 레코 드 루에스트
위와 같은 평가를 한 이들에게 김훈의 『남한산성』이나 황석영의 『바리데기』를 책여행 보내고 싶을 심정이다.
Written by 다윗 |
|
별로 익숙하지도 않는 인물소설. 잘 알지도 모르는 로마의 역사. 하지만 그 모든 사건들을 한 권의 책으로 담아낸 작가 막스 갈로. 여러 배경이 있는 이 책은 처음부터 읽는데 쉽지 않았다. 심지어는 인물들의 이름도 어찌나 어렵던지. 내 머릿 속은 그 많은 이름들을 모두 기억해 주지 않았으며, 로마의 역사에 별 흥미도 없는 듯 했다. 스파르트쿠스의 죽음. 영웅에 관한 이야기인 것도 같고, 처참하게 죽은 자의 이야기인 것도 같았다. 유명한 작가의 필체가 담긴 이 책. 하지만 단순히 이 책만 본다면 이 책은 과연 그의 유명세에 걸맞는 재미와 감동을 지닌 책일까? 어떤 면에서 막심 갈로라는 작가가 유명한지 모르겠지만, 우선 소설을 읽는 독자의 입장이라면 당연히 소설의 재미를 원할 것이다. 소설 자체에 재미가 없는 책은 그만큼 독자들이 읽기 불편하고 어려워진다. 이 책이 바로 그랬다. 유명하다는 작가의 필체임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전혀 재밌지 않았다. 흥미로울 법한 배경마저도 너무 따분하게 만들어 버렸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매번 나오는 사람들의 이름을 잘 외우지 못해서 쩔쩔 맸었는데, 시점도 바껴가며 이야기가 전개되는 통에 이해하기가 더 힘들었다. 한 사람의 시점으로 이야기를 잘 이끌어나간다 싶으면 화자가 바뀌어 또 자신들의 이야기를 말하고 있다. 이름조차도 외우기 힘들었던 내가 그 많은 화자들의 이야기에 흥미를 가지지 않았던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인 듯 하다. 스파르타쿠스의 죽음. 제목만으론 엄청난 긴박감이 느껴진다. 죽음이란 단어만으로 유추해보건데, 좀 더 박진감 넘치는 이야기를 원했다. 그런데 왠걸 솔직히 말하자면 읽는 내내 지루함을 느꼈고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 별로 접하지 못한 장르였단 이유를 기대 반 걱정 반으로 보았던 이 책은 내가 그동안 인물소설에 손을 대지 못했던 이유를 다 담고 있었다. 딱딱한 이야기 전개에 지루한 스토리 전개. 인물소설이라는 어려운 장르를 작가는 논리적으로 잘 담아내긴 했으나, 좀 더 재미있게 써주었으면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운 생각이 든다. 인물소설을 별로 접하지 못한 독자들에겐 어렵게 다가갈 듯 하다. 스파르타쿠스. 자신들의 자유를 위해 싸우는 자들의 이야기. 비록 소설로서 재미는 없다하더라도 로마의 역사의 한부분을 알 수 있었다.소설의 가장 중요한 재미와 감동은 느낄 수 없었지만, 로마의 한부분을 알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 가치가 있었다. 사람이 아닌 물건 다루듯 돈으로 가격 매김을 당하고 인간 취급도 받지 못한 노예들의 자유를 찾는 이야기. 재미가 없어서 그런지 많은 사람들에게 권장해주고 싶지는 않다. |
|
별로 익숙하지도 않는 인물소설. 잘 알지도 모르는 로마의 역사. 하지만 그 모든 사건들을 한 권의 책으로 담아낸 작가 막스 갈로. 여러 배경이 있는 이 책은 처음부터 읽는데 쉽지 않았다. 심지어는 인물들의 이름도 어찌나 어렵던지. 내 머릿 속은 그 많은 이름들을 모두 기억해 주지 않았으며, 로마의 역사에 별 흥미도 없는 듯 했다. 스파르트쿠스의 죽음. 영웅에 관한 이야기인 것도 같고, 처참하게 죽은 자의 이야기인 것도 같았다. 유명한 작가의 필체가 담긴 이 책. 하지만 단순히 이 책만 본다면 이 책은 과연 그의 유명세에 걸맞는 재미와 감동을 지닌 책일까? 어떤 면에서 막심 갈로라는 작가가 유명한지 모르겠지만, 우선 소설을 읽는 독자의 입장이라면 당연히 소설의 재미를 원할 것이다. 소설 자체에 재미가 없는 책은 그만큼 독자들이 읽기 불편하고 어려워진다. 이 책이 바로 그랬다. 유명하다는 작가의 필체임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전혀 재밌지 않았다. 흥미로울 법한 배경마저도 너무 따분하게 만들어 버렸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매번 나오는 사람들의 이름을 잘 외우지 못해서 쩔쩔 맸었는데, 시점도 바껴가며 이야기가 전개되는 통에 이해하기가 더 힘들었다. 한 사람의 시점으로 이야기를 잘 이끌어나간다 싶으면 화자가 바뀌어 또 자신들의 이야기를 말하고 있다. 이름조차도 외우기 힘들었던 내가 그 많은 화자들의 이야기에 흥미를 가지지 않았던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인 듯 하다. 스파르타쿠스의 죽음. 제목만으론 엄청난 긴박감이 느껴진다. 죽음이란 단어만으로 유추해보건데, 좀 더 박진감 넘치는 이야기를 원했다. 그런데 왠걸 솔직히 말하자면 읽는 내내 지루함을 느꼈고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 별로 접하지 못한 장르였단 이유를 기대 반 걱정 반으로 보았던 이 책은 내가 그동안 인물소설에 손을 대지 못했던 이유를 다 담고 있었다. 딱딱한 이야기 전개에 지루한 스토리 전개. 인물소설이라는 어려운 장르를 작가는 논리적으로 잘 담아내긴 했으나, 좀 더 재미있게 써주었으면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운 생각이 든다. 인물소설을 별로 접하지 못한 독자들에겐 어렵게 다가갈 듯 하다. 스파르타쿠스. 자신들의 자유를 위해 싸우는 자들의 이야기. 비록 소설로서 재미는 없다하더라도 로마의 역사의 한부분을 알 수 있었다.소설의 가장 중요한 재미와 감동은 느낄 수 없었지만, 로마의 한부분을 알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 가치가 있었다. 사람이 아닌 물건 다루듯 돈으로 가격 매김을 당하고 인간 취급도 받지 못한 노예들의 자유를 찾는 이야기. 재미가 없어서 그런지 많은 사람들에게 권장해주고 싶지는 않다. |
|
지은이 : 막스 갈로 출판사 : 예담 옮긴이 : 이재형
|
|||||
|
스파르타쿠스... 처음에는 참 생소한 이름이었다. 읽기도 약간 어렵고, 그리고 무엇보다 처음듣는 이름이기에 더 생소했는지도. 셤기간이라 처음 몇장만 읽었는데 처음에는 약간 지루한 듯했다. 하지만 셤이 대충 끝나고 읽기 시작한 스파르타쿠스의 죽음은 처음의 지루한 느낌을 지우기에 충분했다. 요즘 집중도가 떨어져 10분이상 책을 못읽는 상황에서도 스파르타쿠스의 죽음은 내 손을 떠나지 않았다.
자유.. 자유를 꿈꾸는 노예의 왕 스파르타쿠스. 그는 진정한 자유인이였으며 자유를 갈망하는 사람이었다. 로마의 잔혹한 노예제도 앞에서도 그는 자유인이었다. 그를 사랑한 디오니소스 신의 여사제이자 예언가 아폴로니아, 유대인 치료사 자이르, 웅변술사 그리시은 포시디오노스 그리고 그를 따랐던 수 많은 노예들. 그들은 자유인이었지만 자유를 빼앗긴 노예들이었다. 사람이 아닌, 짐승보다 못한 그런 사람. 그들은 자신이 누렸던 자유를 그리워 하며 갈망했고 그래서 반란을 일으켰다. 성공하기를 바랬으나 결국은 실패한. 그러나 그들의 반란은 자유를 향한 그들의 몸부림이었다.
이책을 읽으면서 자유에 대한 생각을 해보았다. 가끔 나도 자유로워지고 싶다고 생각을 했지만.. 내가 생각하는 자유와 그들의 자유. 어쩌면 나는 너무 편안해서 자유로워서 자유로워지기를 바랬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는, 그리고 그렇게 살아왔던 이들이 빼앗긴 자유는 어쩌면 그들의 생명이였고, 그들의 삶이었는지도 모른다.
"기억되는 사람은 죽지 않는 법이야." "나와 저 노예들은 그들이 자네에게 들려줄 이야기 속에서 살아남게 될거야" "자이르, 우리가 자유로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해요! 패배는 했지만 자유로었다는 사실을요!" |
|
시오노 나나미씨의 "로마인 이야기"를 감동적으로 읽은 나는 로마가 너무 쉽게 멸망하는 모습을 보고 마음이 아팠었다. 로마의 최후는 허무했다. 찬란한 문명을 꽃피웠고, 앞서가는 문화를 자랑했던 로마.. 그들은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스스로 자멸의 길을 갔다. 로마가 그렇듯 허무하게 무너진 건 그들의 오만함과 지나친 자만심 그리고 잔인성 때문이 아니었을까?
로마는 수많은 나라들을 침략했고, 그 속에서 많은 노예가 생겨났다. 로마인들의 잔인성을 보여주는 것 중 대표적인 것이 검투사 시합이다. 로마를 배경으로 하는 많은 영화들을 통해서 수없이 봤지만 아직도 적응 안되는 장면이 검투사 시합이다. 한쪽이 죽을때까지 계속되는 경기도 그렇지만, 후에 사자같은 맹수들을 경기장에 풀어놔서 사람들이 그 짐승들에게 잔인하게 죽임 당한 후 잡아먹히는 장면을 보면서 환호하는 로마시민들을 보면 과연 그들이 최고의 지성을 가지고 최고의 문화를 꽃피운 민족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뿐이다.
로마는 이렇게 시대를 앞서가는 문명인 동시에 가장 야만스럽고 잔인한 민족이었다. 이런 이중적인 모습을 지닌 나라에서 노예신분으로 검투사 생활을 하던 이가 바로 "스파르타쿠스"다. 그는 트리키아 출신으로 로마군인들의 모습을 동경하다 어려움에 처한 로마병사들을 구해주고 로마군인에 들어가지만, 그의 생각과는 달리 그는 노예대접을 받게 된다. 로마인들에게 그는 말하는 짐승에 불과했다.
자유를 중요하게 생각했던 그에게 짐승과 같은 노에 생활은 견디기 힘든 수치였다. 특히, 검투사 생활을 하면서 로마인들을 즐겁게 하기 위해 동료 검투사들이 잔인한 죽음을 맞는 걸 보면서 그는 분노하게 된다. 또 스파르타쿠스 자신이 살기 위해 다른 동료들의 피를 봐야 한다는 사실이 견딜 수 없었다.
마침내 스파르타쿠스는 노예로 사느니 자유인으로 살다 죽기로 결심하고, 검투사양성소를 탈출한다. 그의 뒤를 동료 검투사들과 그의 연인이자, 디오니소스신의 여사제인 아폴로니아가 뒤따른다. 수많은 노예들과 가난한 백성들이 그의 뒤를 따랐다. 그리고 스파르타쿠스와 로마인과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스파르타쿠스는 로마군과의 전쟁에서 승승장구 하게 된다. 그동안 억눌려 살던 노예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들은 또다시 노예로 비참하게 사느니 자유롭게 창을 들고 로마군과의 싸움을 원했다. 잃을게 없는 사람들에게 두려움이 없었다.
하지만 스파르타쿠스의 반란은 완전한 승리를 거두지 못했다. "기억되는 사람은 죽지 않는다"는 말로 자신들의 전쟁을 기억해주기 바라던 스파르타쿠스..
갑자기 자유를 손에 쥐게 된 노예들은 스스로 분열했다. 진정한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또하나의 규율이 필요했는데, 그들은 최소한의 규율도 거부했다. 스파르타쿠스의 반란이 성공했다면 로마사는 새롭게 쓰여졌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긴다.
스파르타쿠스의 반란이 성공하지 못했다고 해도 그리 슬프지는 않다. 그들은 주인의 뜻에 따라 죽거나, 로마인들의 즐거움을 위해서 억울하게 죽은게 아니라, 스스로 결정한 일을 성공시키기 위해, 자유의지로 창과 칼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의 전쟁사를 우리가 기억하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