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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만인지 모르겠다. 이렇게 집중해서 한가지 책을 보아온게 말이다. 순전히 표지속의 푸른하늘과 초목사이의 길에 반해서 읽기를 소망했던 책인데 조이스럽의 이 작품은 감히 내 영혼까지 정화시켰다는 말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제 눈 앞에 30대를 앞두고 있는 지금 나는 제 2의 사춘기를 겪는 것 처럼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앞으로 펼쳐질 내 인생과 짐 그리고 인간관계의 어려움등 세상의 짐을 혼자서 진 것 처럼 고민과 고독을 혼자서 끌어안고 가려던 내게 이 책은 그야말로 멈추어 되돌아 볼 수 있게한 책이다. 사실 나는 특정종교를 가지고 있지도 않고 어찌보면 반감마저 가지고 있다고 할 만큼 종교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마음이 없었다. 그래서 이 책을 처음 받았을때 순례자라는 말이나 여러 종교적인 문구에 대해 반감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신념은 종교가 없어도 가능한 것이라고 어떤 프로그램에서 신부님이 하신 말씀을 들었다. 어떤 모습으로든 내 안에 믿음을 가지고자 하는 마음이 가득했고 선한마음으로 살기를 간절히 바랬기에 진심으로 이 책을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종교에 대한 편견을 배제하고 받아들이려는 마음을 가지고 책읽기에 임한다면 내 안을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가 무한할 것이라 생각되며 나처럼 제 2의 사춘기를(^^) 겪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다.
산티아고 순례길 처럼 아주 먼거리도 장기간의 거리도 아니었지만 내게도 힘든 보행의 시간이 있었다. 작년 여름쯤 친구와 함께 지리산 종주에 나선적이 있었다. 그때의 나는 마음의 준비도, 신체적인 준비도 되지 않은채 그저 종주의 끝에 서있는 멋진 나의 모습만을 꿈꾸며 짐을 꾸렸었다. 배낭속엔 갖은 허영의 산물들과 과한 생필품으로 가득찼고 그것들은 지리산을 오르는 내내 그 무게만큼 내 영혼을 짓눌렀다. 2박 3일이라는 짧지도 길지도 않은 시간동안 입에는 불평을 달고 있었고 얼굴엔 짜증만을 담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그 모든 불평과 짜증을 참고 나를 인도해준 친구와 길동무들에게 무한한 감사와 미안함을 느낀다. 그 힘든 시간들동안 내가 얻은 걷은 무엇이었을까. 내 홈페이지속엔 가득한 사진들속에서 힘든와중에도 밝은 미소들을 볼 수 있지만 1년이 훌쩍지난 지금 내 마음속엔 무엇이 남아있는지 알 수가 없다. 조이스와 톰이 순례의 목적지인 산티아고에 도착한후 피니스테레라는 소읍에서 반추의 시간을 갖았던 부분을 읽으면서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 힘든 지리산 산행을 무사히 끝내고서도 내 내면으로의 반추의 시간을 잠시도 주지 않은채 내 육신의 안위만을 위해서 서둘러 현실로 돌아왔던 것이다. 그 귀한 시간들은 현실로 돌아온후 한달이라는 시간동안 서서히 현실속으로 잠식되어 나는 예전의 나로 돌아와 지금도 내면의 싸움을 지속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달라질것이다. 달라질 수 있을 것이라는 깊은 마음이 든다. 비록 직접 산티아고 순례길을 떠나진 않았지만 이 책을 읽는 동안 조이스와 톰이 그들의 친구들과 함께 기도문을 나누고 같이 기도해주기를 소망하고 그들의 친구들이 함께한것 처럼 나 또한 정신적으로 순례길에 동참하고 감동을 느끼고 아쉬움도 느꼈던 것이다. 나도 함께 기도하고 싶다. 힘든 투병의 길에 들어선 직장선배의 아픔을 나누어 함께 있지는 않지만 기도하고 선하고 긍정적인 기운을 주고 싶다.
이 글이 바로 내게는 반추의 시간이 된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느낀 감동들을 어찌 정리할 지 몰라 허둥대는 내게 지금 이 리뷰의 시간은 조이스와 톰이 가진 피니스테레에서의 반추의 시간만큼 아름답진 않겠지만 충분히 행복하고 마음은 선함으로 가득차 있다.
**자신의 어깨로 자기를 지려하는, 오 어리석은 자여! 자신의 문간에서 구걸하는, 오 걸인이여! 모든 것을 감당하실수 있는 그분의 손안에 그대의 모든 짐을 놓으라. 그리고 절대로 돌아보며 후회하지 말라. - 라빈드라니트 타고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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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기독교도가 아니어서 이 책을 더 잘 읽을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어떤 종교를 갖고 있고, 그래서 종교 순례에 대한 남다른 소망을 품고 있는 사람이었다면 이 책을 읽는 일이 지금보다 더 어렵지 않았을까. 막연하지만 책을 읽는 내내 그런 기분이 들었다. 하느님을 믿지도 않고, 천사의 존재를 인정하지도 않으며, 기도하는 일은 전혀 해 본 적이 없는 내가 이 글을 쓴 작가와 같은 사명감이나 목적 없이 그저 길 떠나는 게 좋을 것이라는 기대 하나만으로 따라 갔으니 마음 편한 여정일 수밖에.
길을 떠나 떠돌면서 작가와 같은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군데군데 작가의 글을 옮겨 타이핑을 하면서 부럽다는 생각을 했다. 어쩌면 나도 살아오면서 이런 생각을 했을 수도 있고 작가와 같은 비슷한 다짐을 했던 적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생각이나 다짐의 순간은 잠시였을 것이고 아마도 곧 빠르고 정신없는 일상으로 되돌아왔겠지.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겠지.
타이핑을 하면서, 나도 이렇게 살아야겠다 거듭 다짐해 보면서, 과연 내가 이 책을 덮고, 이 글을 올리고 난 뒤에도 이런 생각을 유지할 수 있을까 스스로에게 물어보았다. 자신이 없다. 구절 하나하나, 단락 하나하나 내 마음을 사로잡는 부분이 여간 많은 책이 아니었는데, 할 수만 있다면 이런 마음으로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까지는 하는데, 마음과 행동 사이의 거리는 좀처럼 가까워지는 게 아니었다. 그래서 내가 그저그런 보통 사람일 수밖에 없겠지만.
돌아보면 우리 모두는 어느 누구랄 것도 없이 살면서 사는 문제를 풀기 위해 애쓰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죽는 날까지, 자신이 언제 죽을지 알지 못하는 최후의 그 순간까지 살아 있는 동안 사는 문제로 고민하고 해결하고 기뻐하고 나누어 주면서 살게 되는 것. 그러고 보면 지금의 나처럼 살아가는 것도 괜찮을 수 있겠다. 끝없이 다짐하고 실천하려 하고 다 못한 일에 실망하고 다시 새로운 결심을 하면서 살아가는 것. 지금 이 순간 이 글을 마무리 짓기 위해 내 모든 정신을 잠시 동안이라도 집중시키는 일. 그리하여 아마도 인터넷에 이 글을 올리고 나면 짧은 순간 작은 성취감과 만족감으로 행복해지겠지. 그런 행복의 연속이 매순간 이어질 수 있다면 내 삶 또한 다른 어떤 사람에 비해 보람된 여정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총 25장의 내용 가운데 내가 아주 새롭게 받아들인 것이 있다. 다른 사람의 친절과 도움을 기꺼이 받아들이라는 내용이다. 9장의 ‘모르는 사람들의 친절을 받아들이라’와 20장의 ‘약함을 통해 겸손을 배우라’에 담겨 있다. 혼자 잘난 척 하면서 고집스럽게 혼자의 힘으로만 살려고 하지 말라고, 친절도 도움도 고마운 마음으로 받아들이라고. 그 마음이 마음을 주고받는 서로를 더 행복하게 해 줄 것이라고. 나이가 들면서 점점 더 내 안으로만 파고 드는 자기애 때문에 시달리는 중이었는데 참 고맙다는 느낌을 주는 격려의 말이었다. 나만 혼자서 이 세상을 살고 있는 게 아니라는 것, 내가 도움을 주어도 기쁘고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도 기쁘고 그 마음이 진정이기만 하다면, 그래, 세상이 얼마나 좋은 곳이 되겠는가. 살아 있는 일이 얼마나 축복이 되겠는가.
책을 덮은 뒤에, 글을 올린 뒤에도 내가 가졌던 마음을 쉬이 잃지 말고 오래 지니고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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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 다람쥐 쳇바퀴 돌듯 그렇게 정신없이 보내는 일상생활...무엇인가 잘못된 것 같다고 느끼면서도 그것이 무엇인지 돌이켜볼 여유를 갖지 못하는 것이 현대인들의 삶이 아닐까? 이 책은 나이 예순의 수녀인 저자가 절친한 친구와 함께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며 얻은 육체적인 깨달음과 영적인 통찰력을 순례길의 여정과 함께 담은 책이다. 저자는 순례길에서 겪은 육체적인 고통과 불편함, 다른 순례자들과의 만남과 교제, 그리고 그 안에서 얻게된 인생의 교훈들을 잔잔하면서도 뜨겁게 독자들에게 전달해주고 있다. 저자가 경험한 사건들속에서 느낀 감정들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그 감정들을 돌이켜보면서 변화하고 성장하는 모습(저자는 60세임에도 영적으로 성장하고 있다!!)은 독자들에게도 스스로를 돌이켜볼 수 있는 자극제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내용의 흐름은 여정의 시간순서대로 가지는 않는다. 저자의 느낌과 깨달음을 중심으로 그에 맞는 여정속의 사건과 내용이 전개되는 형식이다. 그러면서도 내용이 저자의 느낌과 깨달음쪽으로만 강조되어 있지는 않다. 여정속의 사건들도 생생하고 자세하게 표현하여 독자들에게 순례길의 여정을 실감나게 전달하고 있으며, 그렇기에 저자가 여정속에서 경험한 느낌들이 더욱 깊이있게 전해지는 것 같다. 책 속에는 다음과 같은 저자의 인생 교훈들이 담겨 있다.
'내 경우 모든 껍질들 밑에 한 가지 중심 진리가 있었다. 매사를 내가 원하는대로 통제하려는 태도를 버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지금 너에게 있는 것을 누리되 거기에 매달리지는 말라' '버리는 것 없이는 내가 원하는 것을 다 얻을 수는 없었다.' '나의 그 부족한 수용력을 통해 카미노가 나에게 가르쳐 준 것이 있다. 내가 힘든 상황에 치중하여 생각과 감정을 거기에 빼앗기면, 그 저항심이 다른 좋은 것을 방해하고 압도하여 결국 그것을 쉽게 놓치게 된다는 것이다.' '실망을 인정하고 그 실상대로, 나의 기대가 채워지지 않는 경험을 받아들일 때, 나는 훨씬 침착하게 그리고 성장에 더 유익한 방식으로 실망을 대할 수 있다.' '가장 바쁘게 쫓기는 사람에게도 고독은 가능하다. 그 열쇠는 하루 중에 의식적으로 약간이라도 시간과 공간을 내는 것이다.' '프리메로 디오스(Primero Dios - 하나님을 첫자리에)라는 스페인어 문구를 기억해냈다. 하나님을 삶의 첫자리에 모시면 무슨 일이 벌어지든 결국 다 잘된다는 의미가 담긴 말이다.'
그냥 이 교훈들만 봐서는 특별한 깨달음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책속에서 나오는 순례여정을 읽어본다면 위의 짧은 교훈의 문구들이 가슴에 깊이 새겨지는 감동을 분명히 경험하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
바쁜 삶속에서 저자처럼 7주간 순례여행을 갈 수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꼭 순례여행을 가지 않더라도 이 책을 통해서 간접적으로나마 순례여행을 경험하고 그 속에서 얻을 수 있는 인생의 교훈들과 깨달음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이런 목적으로 저자도 이 책을 출간했다고 한다...) 이 책을 통해서 자신을 돌이켜볼 수 있는 여유를 한번 가져보심이 어떨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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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스 럽 지음 복 있는 사람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어 가면서 배운 고난과 역경을...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면서 배운 고난과 역경의 길에서 오랜 친구인 노목사 톰 페퍼와 떠난 40일간의 여정에서 배운 25가지의 교훈을 담고 있다. 시련과 고통의 시간에 하느님을 의지하는 법을 배우고 믿음과 확신이 충만할 때 모든 순례자의 마음속에 카미의 평화가 깃든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나도 순례자가 된 것 같았다. 지금의 인생도 산티아고를 걷는 것이 아니지만 순례의 길이 아닌가 싶다. 때로는 즐겁고 슬프고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
책속으로... -분명히 힘든 시간들이 닥쳐 오겠지만 여태까지 내가 본 모든 아름다움, 이미 만난 귀한 사람들, 그 모두가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심을 확인해준다. 이 길이 내가 꼭 걸어야 할 길이라는 것도. ------ p.138 -함께 길 가는 길동무에게 보조를 맞추려 한 나의 노력은 거기서 비롯된 선물을 생각해 보면 얼마든지 가치가 있었다. ------ p.282 #느긋하게걸어라 #조이스럽 #복있는사람출판사 #신독365 #필사단모집 #글스타그램 #북스타그램 #신간도서추천 #책추천하는사람 #장미꽃향기 #독서스타그램 #독서습관 #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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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어떤 책이든 두번은 잘 안읽는 편인데... 느긋하게 걸어라를 읽으면서 앞으로 몇 번이라도 더 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일 아침 순례자의 기도를 읽거나 떠올리며 하루를 시작한다. 우리 인생 하루 하루가 바로 순례길이란데 공감한다. 지금 두번째 읽고 있다. 두번째 산티아고 순례를 가는 기분이다. 그리고 한 명에게 선물을 했다. 그런데 다시 두 권을 더 주문하려고 한다. 지금 나는 조이 럽 할머니가 처음 카미노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는 바로 그 나이다. 처음 몇 페이지를 보면서 나도 가봐야지 했는데... 읽다보니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정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까지 계속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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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보는 이들에 대한 판단하는 습관을, 내 속으로 어떤 부류의 사람이라는 규정지어버리는 무의식적인 습관을 생각하게 해주었다.판단함으로 내 안에 들어오는 죄성을 경계하게해 주었다. 일년에 일주일정도는 일상, 소음, 계획으로부터 모두 내려놓고 자신을 위한 시간을 주는게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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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 카미노 순례의 씨앗이 깨어나던 날, 나는 그 씨앗이 영적 성장의 열매로 맺히기를 바랐다. 그리고 정말 그대로 되었다. (p18)
최근 카미노에 대한 열풍이 불어와서 많은 사람들이 이 길을 걷고있고, 또 다녀온 이야기를 많이 접하고 있었다. 대부분이 걷는다는 것에 의미를 둔다거나 여행으로서의 안내, 또는 그 길에서 있었던 에피소드들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러나 내가 원하던 것은 바로 이책처럼 영적인 순례의 길이 되기를 바랬고 그런 방법으로 다녀온 이야기를 듣고싶었다. 그렇게 다녀온 사람들도 많다는 것을 아는데 그분들은 그 내용들을 글로 남기지않았다. 아니 내가 만나지 못했던 것이었겠지만. 그런데 이 책의 저자 조이스 럽 수녀님은 그 소중한 영적 열매를 나누어 주었다. 물론 처음부터 그럴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다. 이 소중한 경험은 나만의 것이고 이 순례는 내 것이라는 강렬한 욕망이 있었지만 결국 마음이 열려 이것들을 다른 많은 사람들과 나누기로 결정한다. 매우 감사한 일이다. 하느님께 "네, 네! 알았어요! 알아들었어요!" 하고 외치는 그녀의 모습이 무슨 영화의 한장면을 보는 듯 극적으로 느껴지는 것이었다.
책 내용은 각 장의 제목만으로 유추해볼 수 있다. 그 하나하나에 실려있는 것들은 책을 읽어봄으로써 같이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생전 안하던 행동을 해봤다. 책상에 앉아서 연필을 들고 책을 읽어나가면서 밑줄을 그었다. 그러나 곧 그만 두어야했다. 어느 부분에서 밑줄을 긋고 어느 부분에서 긋지 말아야하는지가 불분명해졌기 때문에 그저 순례의 길에 나도 서있는 것처럼 깊이 동참하는 마음으로 연필을 놓아버렸다. 제목 중의 마음을 흔들었던 몇 장만 적어보면, 순례자가 되라, 느긋하게 걸어라, 내려놓으라, 삶이 위대한 모험임을 잊지 말라. 현재를 살라, 아름다움을 끌어안으라, 노숙자의 처지를 경험하라, 기도의 네트워크를 유지하라. 예고없이 찾아오는 천사를 기대하라, 고독을 음미하라, 유머감각을 놓치지 말라. 길동무 하느님을 신뢰하라. 약함을 통해 겸손을 배우라, 함께 길 가는 길동무와 보조를 맞추라, 인류의 웅성거림 속으로 들어가라, 그리고 멈추어 되돌아보라. 사실 모든 장을 다 쓰고싶지만 이정도는 제목이라도 다시 적어보고싶었다.
나도 산티아고 순례길에 나서겠다고 목표를 세운 뒤로 여러가지 걱정이 되는 일들이 많이 있었다. 어떻게 시간을 만들어야하는지부터가 문제지만, 만일 가게되었다하더라도 내가 생각하고 남들이 말하는 것처럼 '변화'의 기미나 '깨우침'이 없으면 어쩌나하는 것을 미리 겁먹고 있었던 것이다. 저자도 마찬가지로 순례의 마지막 시간에 되돌아보았지만 그리 큰 변화가 없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때는 몰랐었지만 책을 쓰는 동안,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삶에 대한 방식에 변화가 생기고 여러 교훈들이 나타나보인다고 고백한다. 아직도 다 인식하지 못했지만 앞으로도 계속해서 영적 성장이 이루어질 거고 인내심을 가지고 묵상하며 다시 되새기면 중요한 변화의 근원들이 점차 분명해질거라고 말한다. 아, 이제 불안감을 떨쳐버리고 산티아고 순례길을 준비할 수 있을 것 같다.
순례길을 어떻게 걸을까하는 방법에 대한 것도 많은 것을 얻었다. 할수만 있다면 주변 사람들에게 기도를 청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몰래는 아니더라도 조용히 다녀오고싶었는데 그보다는 많은 사람들의 기도속에 다녀오는 것이 더욱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사람의 인생길은 산티아고 순례길에서와 마찬가지로 혼자 가는 길은 아닌 것이다. 순례공동체란 표현으로 전에 걸었던 사람들과 현재 같이 걷는 사람들, 또한 다음에 걸을 사람들까지의 모든 이들이 공동체가 되는 것이다. 우리 인생길도 마찬가지다. 내가 살아가면서 혼자만 살 수는 없는 것이다. 저자가 수도생활을 하는 사람이므로 더욱 그러했겠지만 매우 부러운 순례길을 걸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마다 순례의 기도를 하는 것이며 다른 이들과 함께 나누는 것도 그러하다. 그러나 본인이 수녀임을 드러내지않고 끝까지 순례를 마치고 있다. 그러면서도 인간적인 나약함을 그대로 드러내보여주니 나도 따라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도 생긴다. 투덜거리는 마음과 동행자 톰의 원숙하면서도 때로 다른 성격때문에 불편을 겪는 모습들이 우리 사는 모습과 똑같아서 한층 친숙하게 느껴지기도 하는 것이었다. 남편에게 이 책을 권하면서 우리도 이런 순례길을 걸어보자고 청할 것이다. 우리는 좀더 사람냄새 풀풀나는 순례길을 걷지않을까 상상하면서 말이다.
실질적으로 궁금했던 것들도 많이 해소가 되었다. 각 대피소에서 저녁마다 기도시간이 있는지, 가는 길의 성당에서 미사는 어떻게 진행되는지, 사람을 사귀러 가는 길이 아닌데 동행이 되는 사람들에게 얼마만큼 마음을 열어야하는지, 실제로 먹을 것과 시설들은 어떠한지, 구체적으로 그것들만을 표현하지않았어도 다른 책에서보다 더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사실 그동안 알고 있었던 것보다 더욱 열악하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다른 사람들에게서 들었던 것보다 훨씬 더 어려울 것 같은 시설들이지만 그래도 더욱 가고싶어지게 만들어준다. 난 이제 충분히 갈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에서처럼 순례길은 내가 모르는 사이에 변화가 이루어지게 되고 그 의미를 시간이 지날수록 깨닫게 되는 길이 될 것이므로 미리 이런 사실을 알게 되었음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여행기와 인생의 교훈들, 영적인 변화의 기록들, 그리고 단연 돋보이는 글솜씨로 재미있기까지한 이 순례기를 모든 사람들에게 권한다. 그리고 어디에서 걷고있든 인생의 '카미노'에 좋은 지표가 되기를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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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등산 인구가 늘어난다는 뉴스를 접하게 되었다. 혼잡하고 거북한 도시를 떠나 보다 자연적인 삶의 모습을 찾으려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는 무척이나 흐뭇한 소식 이었다. 등산은 두 다리의 힘으로 걷는 운동이다. 아무리 힘이 좋은 사람도 한 걸음 떼야만 겨우 몇 보를 걸을 수 있는 자연의 힘을 느끼는 대표적인 친환경 운동이 아닌가 생각한다. 가까우신 분이 성지 순례를 다녀왔다고 들은 적이 있다. 참 대단한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도보의 순례라기 보다는 버스로 이동하는 답사에 가깝다는 말을 듣곤 다소간은 허망한 마음이 문득 솟아 오른다. 우리나라의 환갑의 나이에 도보로 36일간을 걷는 다는 것은 쉽지 않은 결정이다. 조이스 럽은 친구 톰과 자신이 변화해 나가는 과정을 카미노 순례를 통해 보여 준다. 우린 일상의 모든 일에 자신만의 결정을 내린다. 그리고 묵묵히 혹은 서두르면서 암묵적이고 다소간은 기계적인 일에 자신을 빠뜨린다. 흔히들 우리가 말하는 사회적인 일이다. 무척이나 분주하고 바쁘기만 한 일들 속에서 우린 내적인 성숙은 물론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잊어버리고 오직 보이지 않은 신기루만을 위해 발걸음을 내디딜 뿐이다. 내려 놓으라! 이젠 허망한 욕구와 기대를 버리고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 일줄 알아야 한다. 하루 하루의 순례는 모든 이들에게 같은 결과를 주지 않는다. 성숙하고 완전한 인간이 되려고 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 되가는 것이다, 인생 대부분의 일들 조차 마찬가지다. 우리들이 아무리 꽉 쥐고 있는 것도 결국은 오래 지속되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 익숙한 것과의 이별이란 말은 삶은 곧 여행이자 모험이라는 말과 같은 뜻임을 말한다. 여행은 생각했던 것보다 많은 기회와 풍요로움을 선물해준다. 그리고 익숙한 것과의 결별은 우리의 삶을 다른 세계로 인도해 준다. 우린 무엇을 가지고 무엇을 추구하며 세상을 살아가느냐 보다 어떠한 자세로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지 모험과 여행은 삶의 현재를 보여 줄 것이다. 우리가 가지는 불안 염려, 불만의 근원은 무엇일까? 느긋하게 걷는 것은 그간 보이지 않았던 현재에 눈을 뜨게 해준다. 걷기 자체에 즐거움을 느끼게 해주고 단순한 쉼 자체에 깊이를 느끼게 해준다. 우린 우리의 인생을 너무 가혹하게 내몰지 말아야 한다. 조금만 여유를 가지고 느긋하게 세상을 걸어간다면 우리들이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세상이 아름답고 풍요로움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프랑스의 생장피드포르에서 스페인의 산티아고까지의 순례는 저자가 60인생 동안 느끼지 못했거나 실천하지 못했던 인생의 진리를 체험하게 해준 소중한 순간들이었다. 또한 순례는 그러한 일상 속에서 자신을 건져주는 훌륭한 역할을 수행한다.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