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플럼빌리지에서 틱낫한 스님과 함께한 저자 김병수>
책을 읽고서 가슴 벅차오르는 떨림을 받은 건 참으로 오래간만이다.
한 농부가 삶의 애정과 열정이 느껴지는 <사람에게 가는 길>. 정말 대단하다!
40대에 그 모든 건 뒤로 하고 배낭하고 달랑 메고 떠날 수 있었던 저자의 용기. 그리고 삶의 깨달음을 얻기 위해 세계 공동체를 전전하며 삶의 대안 아니 이 시대의 대안을 찾기 위해 다녔던 저자의 여정이 참으로 눈물겨웠다.
공동체 마을... 생소한 삶의 방식이었지만 그들의 삶이 인상깊었다. 계획, 교육, 농촌(제3세계), 명상, 평화라는 공동체 목적에 맞게 자신의 삶, 아니 우리의 삶을 살며 더 큰 것을 위해 함께 하는 그들의 모습이 말이다.
경제 경영서나 처세술이 판치는 요즘, 오랜간만에 참으로 좋은 책을 만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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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 받은 사람은 남의 상처를 쉽게 알아 보는 법이다 상처 받은 사람은 혼자 고립되기 쉽지만 사람과 사람 속에서 소통하며 서로를 치유해 나간다 자신을 포기하지 않고 사랑할 줄 알며 자신을 알아 간다 가슴이 따뜻해지는 진정 소중한 경험이 되었다
어떤 기러기가 병을 얻었거나 상처를 입었거나 하여 추락하게 되면, 다른 두 마리의 기러기가 무리에서 이탈해 그를 보호하고 돕기 위해 상처 입은 기러기를 따라간다. 두 마리의 기러기는 상처당한 기러기가 완쾌되어 비행할 수 있게 되거나 혹은 죽거나 할 때까지 그와 함께 머문 후 그들의 행동을 결정한다. 그들은 자신의 무리들을 따라 잡거나 혹은 다른 무리에 합류한다.
만일 우리가 기러기와 같은 감각을 가지고 있다면, 곧 각자가 그와 같이 행동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으면 된다.
p.38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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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 와서 산지 만 3년째다. 올해는 마을도서관을 통해 좋은 사람들을 만나 삶 자체가 풍부해 졌지만 이전에는 참 힘들었다. 체질적으로 소비 지향적인 삶이 아니다보니 자급자족하며 소박하게 사는 것은 좋았으나 남과 비교하는 못된 버릇이 남아 있어서였다. 남이 나를 안타깝거나 불쌍히 여기는 것은 상관없지만 내가 그들을 슬며시 부러워하고 있다는 점이 날 괴롭혔다.내가 잘 살고 있는 것인가 하는 의구심이 들 때마다 친구가 절실히 필요했다. 지금의 삶을 공유하고 이해하고 지향할 친구 말이다.
물질우선주의, 폭력, 차별, 분쟁, 경쟁, 소외된 인간관계 이 모든 것에 질린 사람들이 새로운 삶을 찾을 때 혼자는 외롭다. 오래갈 수도 없다. 사람들은 함께 가면 좀 더 쉽게 위로 받으며 갈 수 있다고 본능적으로 깨닫나 보다. 이러니 공동체를 지향하는 것이다. 개인주의가 만연한 서구사회일수록 공동체가 더 발전하는 걸 보면 그렇다.
팔당에서 유기농업을 하는 저자 김병수씨가 새로운 공동체, 보다 나은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세계 공동체를 방문했다. 순례 여행을 시작했을 당시 저자는 많이 지쳐 있었다. 너무 바빴고 인간관계도 힘들었다. 저자는 많은 공동체를 둘러 본다. 거기서 그는 공동체에 살고 있는 사람을 통해 그 공동체가 지닌 장점과 단점을 깨닫는다. 저자가 그 과정 속에 지금까지의 삶을 반성하고 치유해 나간다. 이 과정이 공동체가 지향하는 평화, 검소, 나눔처럼 감동적이다.
저자는 2년 6개월 동안 세계 21개국 38개 공동체마을을 찾아간다. 선진국의 공동체는 소외된 사람들, 영혼에 상처입은 사람들, 마약 환자들을 위한 공동체가 많았고 제3세계 공동체는 굶주리고 배고픈 사람을 위한 공동체가 많았다.
나라 공동체처럼 보였던 쿠바의 문제점이 안타까웠고, 유명한 네덜란드 축구선수가 거의 모든 재정을 책임지고 있는 인도의 불가촉천민을 위한 롭스가 희망적이었고, 진짜 낙원같은 아마존 밀림 속 마을이 좋았다.
공동체에 관심있는 사람은 물론 이 책이 도움이 될 것이고, 지금의 생활에 문제가 있는게 아닌가 싶은 사람, 자기를 성찰하고 싶은 사람에게도 도움이 될 책이다. 세상엔 희망 따윈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도 좋을 책이다. 자주 이 책을 보게 될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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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공동체 마을을 다녀온 이야기가 담겨있다니... 그 말만으로도 나를 가슴 뛰게 만들었다. 그냥 배낭을 메고 가는 흔한 해외 여행이 아니라 세계 각국의 공동체 마을을 돌아보았다는 게 눈에 띄었다.
내가 생각하기에 공동체란 어떻게 보면 이 넓디 넓은 세상에 하고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그 중에 나와 생각이나 뜻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세상에 그 많고 많은 사람중에 나와 함께 갈 배우자를 찾기가 힘들듯이 내 맘에 딱 맞는 단체란 어디에도 없을 지도 모르고... 있어도 꼭꼭 숨어있는 배우자처럼 무지 찾기가 힘들지도 모른다고 여겼다. 운이 좋으면 금방 찾을수도 있고 아니면 평생이 걸릴수도 있는 것처럼...
그런데 그런 곳들만 다니고 온 사람이 책을 냈다니 어찌 마음이 들뜨지 않을 수 있으랴. 물론 내가 직접 다녀온 것이 아니기에 섣불리 판단할 수 없는 것이지만 어차피 책을 읽는 다는 것은 간접경험을 한다는 것이니 무얼 더 바라리..
사람에게 가는 길... 처음에 공동체 이야기를 담았는데 왜 사람에게 가는 길이 제목일까 한편으로 의아했는데... 책을 읽는 동안 그 궁금점이 사라졌다. 궁극적으로 공동체에에서 살아가는 것도 사람이고.. 우리가 좋은 세상을 꾸미려 노력하는 것도 모두 사람이 잘 살고자 하는 것이니 이 모든것이 사람에게 사람이 잘 살자고 가는 길이라는 것 같았다.
나는 특히나 오로꼬네스에 있는 공동체가 참 의미있게 다가왔다. 자폐아들을 치료하고 있는 이 공동체는 그 치유 능력이 아주 뛰어나 세계 각국에서 부모들이 아이들을 맡기러 온다고 한다.
이곳에서 하는 치료는 치료라기 보다 그냥 그들과 함께 살아가는 삶을 택하는 것 같았는데... 그 관심과 사랑 속에서 이들은 치유되고 있었다. 물론 그 관심과 사랑이라는 것은 주변의 몇몇 사람들뿐만이 아니라 공동체를 둘러싼 모든 환경을 포괄함을 일컫는다. 즉 자폐아를 어떤 일정한 곳에 가두거나 외출을 제한하는 식이 아닌 함께 생활하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이곳에서 유독 어느 병원보다 치료의 효과가 높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우리 사회에서는 가족들이 아무리 관심과 사랑을 보여도 이들을 둘러싼 환경적 요소(친구, 사회활동... 등)까지 원만하게 만들어 가기가 쉬운 일이 아니다. 다들 제 일이 아닌데 끝없는 관심과 사랑 배려 등을 보내기가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오로꼬네스에서는 그 것이 가능한 것 같았다. 그래서 자폐아들도 이곳을 더없이 좋아하고 보통사람과 다름없는 치료효과를 보이고 있었다.
이 책에 나오는 여러 공동체 모습의 하나이지만... 이런 각 공동체가 가지는 장점들을 우리 삶에서도 적용시켜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더욱 밝아지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에게 가는 길... 오랜만에 좋은 책을 읽은 것 같아 기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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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찾아, 마을을 찾아, 미래를 찾아
농부 김병수. 김병수씨는 오랫동안 농민운동과 팔당에서 유기농을 해왔다. 97년이었던가?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전국귀농운동본부’를 만든 직후 나는 부본부장이라는 직책으로 그는 아마도 지도위원의 직책으로 같이 회의를 몇차례 했었다. 같은 연배, 그리고 같은 한량출신(탈반)정도로 알고 있고 환경운동, 생명운동, 귀농운동, 생협운동 등, 나와 활동범위가 다소 중첩되어 여러모임에서 스치듯 눈웃음으로만 만났었다. 그러다 그가 이번 공동체여행을 가기 전이라고 생각되는데, 내가 2001년 1월부터 약 2개월간 살았던 트윈오크스에 대한 이야기와 자료를 건내준적이 있었고, 이후 우리가 준비한 유럽공동체 방문프로그램으로 영국과 덴마크를 방문했을 때 황대권씨와 함께 영국에서 잠시 만났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2년반뒤에 그는 한국에 돌아왔고, 나도 2005년 8월 아프가니스탄에서 돌아와 서로 몇번의 메일교환과 전화통화만 했었다. 그러다 올 초 그가 있는 팔당생명살림 모임에 아프가니스탄의 활동경험과 정토회 공동체에 대한 이야기를 청하여 팔당을 가서 오랜만에 다시 그를 만나게 되었다. 사실 나도 그의 공동체여정에 대해 자못 궁금해 있던 터였고 2년 반에 걸친 그의 오랜 공동체 경험을 퍽이나 듣고 싶었다. 또한 내가 머물던 트윈오크스 공동체가 변했는지 궁금했고 어머니 같았던 메리온할머니의 근황도 궁금했다. 그래서 팔당으로 돌아오면 자신의 공동체여정에 대한 경험을 빨리 글로 정리하라고 독촉했다. 2년반 동안을 다니면서 수많은 사람들의 친절과 배려, 도움에 대한 은혜를 갚는 방법중에 하나가 자신의 경험이 사유하지 않고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도록 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수개월 뒤, 5월 13일 북경에서 모임을 끝내고 돌아오는 비행기안에서 한 신문을 들춰보다가 문득 그가 쓴 책의 소개 글을 보았다. 드디어 나왔구나.... 돌아와서 득달같이 서점에 가서 책을 구입했다. 그리고 다음날 우리 정토회의 광주포살모임에 내려가고 올라오면서 삼키듯 책을 읽었다. 사람에게 파고들어 자신을 찾는 공동체여정 그가 2년반 동안 21개국 38개 공동체에서 비교적 환대를 받았던 것은 바로 그가 농부였기 때문이었다. 대부분의 공동체가 자연친화적인 삶을 살고 있고 농업을 기반으로 하거나 농업을 생활의 일부분으로 하며 더욱이 유기농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이미 유기농 농사전문가인 그의 기능과 기술은 공동체에서 환영받을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다 부지런하고 붙임성있는 그를 공동체가 마다할리가 없었고... 시꺼먼 얼굴에 촌티나는 큰 금테안경과 흩날리는 숫없는 장발머리의 용모임에도 불구하고 공동체 사람들이 그에게 더없이 친절하고 다정다감했던 것은, 아마도 공동체 사람들이 따뜻하고 인간적이며 친절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그가 사람에 대한 끊임없는 호기심과 깊은 관심, 애정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더우기 그들과 대화속에 감정을 함께하며 때로는 깊은 눈물로 공감을 하는 감수성때문이라는 것도 깨달았다. 만나는 사람 사람의 마음과 삶의 역정 깊이 파고 들어가 깊이 이해하고 공감하며 함께하는 것이 그가 사람들과 관계맺는 방식의 특징이라는 것을 알게되었다. 더우기 그는 시적인 감성까지 있으니 사람들이 그를 좋아할수 밖에... 그에게 그런 인간미가 있었구나... 분쟁과 갈등의 치유를 위한 공동체 그의 책에 기록된 공동체중에는 몇곳은 나도 방문했던 적이 있다. 영국의 다벨 브루더호프나 덴마아크의 스반홀름은 잠깐 방문한 적이 있었고, 트윈오크스는 약 2개월 정도 있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미국의 트윈오크스나 멕시코의 로스 오로꼬네스 둘다 행동주의 심리학자인 스키너의 ‘월든투’의 영향을 받았고 그 책을 현실화하기 위해 설립된 공동체이면서도 30여년이 지나면서 서로 많이 다르게 발전해온 것같다. 트윈오크스는 생활과 삶을 중심으로 하는 반면에 로스 오로꼬네스는 자폐아들을 대상으로한 교육공동체로 ‘월든투’의 특정 부분을 현실화한 것같았다. 더우기 내가 관심이 많이 갔던 것은 차별과 갈등의 땅 북아일랜드의 코리밀라공동체였다. 구교와 신교간의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평화교육과 그들의 부모도 함께 참여하는 교육을 통해 분쟁과 갈등을 이해와 화해로 바꾸는 40년간의 역사가 있었고, 바로 이런 평화의 교육공동체로 인하여 북아일랜드의 갈등과 분쟁은 그나마 줄어들수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최근 우리나라도 새터민들과 함께 내려온 그들의 아이들이 남한사회에서 겪는 어려움과 고통을 접하면서 어떻게하면 이들에게 좀더 갈등과 상처를 줄이고 남한사회속에서 평화적인 관계를 맺을까 고민해오는 나에게 코리밀라공동체의 사례는 참으로 훌륭한 모델이 될 것같았다. 그리고 그의 말처럼 소위 남북연합이나 낮은단계의 연방이 되면, 아니 그전이라도 지금의 비무장지대에 코리밀라와 같은 평화교육공동체가 만들어져, 50여년간 분단의 상처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기성세대와는 달리 어린이들에게는 그러한 상처가 대물림되지 않게 하고, 오히려 어린이들을 통해 어른의 상처도 치유되는 좋은 기회가 마련되면 좋겠다고 생각되었다. 그의 여행의 대미이자 최종 기착지 그리고 무엇보다 이 책의 백미이자 그의 공동체여정의 대미가 바로 브라질 아마존의 공동체인 ‘세오 도 마피아’인 듯하다. 지금 불교의 깨달음의 세계를 접한지 20여년이 넘었지만, 과거 나는 중고등학교때 열심 그이상의 열정으로 교회를 다닌 몸이었다. 나는 그 유명한 몇몇 기도원도 다녀봤지만 남들이 다하는 방언이니 신유와 같은 신비한 종교적 몸부림에는 도저히 결합되지 못하고, 거부감을 느낄 뿐아니라 감정이입이 되지 않았다. 수백명이 무속적 종교 체험으로 온산이 요란하도록 통성의 기도를 할수록 나는 더욱더 명료하고 또렷하게 객관주의자(?)가 되어갔었다. 아마 그도 그랬던 것같다. 그런 그에게 ‘세오 도 마피아’에서의 산토 다이메를 통해 영성적 신비의 체험을 했다니, 신비적 분위기에 저항감이 강한 나에게도 그런 체험이 가능하겠구나... 더우기 뼈속까지 보이는 상처를 10시간도 안되어 아물게 만드는 신비한 약초와 모기와 벌레를 불러들이는 체질이 약도 없이 멀쩡해지는 그 영성에 대한 경험, 그리고 나무들과 바람, 구름과 소낙비, 대지의 흙, 돌덩이, 온갖 곤충들과 뭇 존재들이 모두들 영적존재로 어우러지고 한데 연결돼 너와 나를 구별할 수 없는 조화된 하나의 모습으로 다가와, 나무를 만지만 나무가되고, 나무가 나로 보이고, 개미가 다가와 인사하고 별들이 노래를 하고, 온갖 나무들이 잎사귀의 잎을 통해 부르는 합창의 하모니를 체험한 그의 이 경험이 단순히 시적인 감수성이 아니라 자연과 인간이 소통하면서 긴밀한 ‘관계’를 체화하고 있는 이 공동체의 에너지에 힘입은 그의 직접적인 체험이라고 생각된다. 바로 뭇생명들과 더불어 조화의 하모니로 우주자연을 경배하고 찬양하며, 그 벅찬 자유로움과 설명할 수 없는 환희의 희열이야 말로 바로 그가 길고 긴 공동체여정의 마무리였던 것같다. 그는 사회운동을 하는 동안 수많은 관계속에 도저히 지탱할 수 없는 무겁고 참담한 고뇌, 절망 좌절감, 그래서 결국 죽음까지 생각하게 만들었던 것이 한국을 떠나게 만든 (밀어내는) 에너지였다면 사람에 대한 호기심, 나아가 사람의 열망과 희망이 만들어 놓은 공동체에 대한 못말리는 호기심이 공동체를 찾아돌도록 만든 (당기는) 에너지였던 것같다. 본인이 처음 혼자 트윈오크스를 방문할 때와 가나스를 방문할때도, 그리고 아프가니스탄의 그 오지의 마을을 처음 방문할 때 언제나 느끼는 황량한 광야에 혼자 외로이 버려진 듯한 고독감을 느껴야 했다. 미루어 짐작컨데 그도 그런 외로움과 마주했을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러한 고독과 외로움을 견디는 것을 ‘모험(Venture)'라고 하지 않는가. 그의 수많은 공동체를 (무턱대고) 찾아가는 그 용기와 모험은 바로 미는 에너지와 당기는 에너지의 융합하여 만든 모험가적 에너지였던 것같다. 그동안 많은 공동체에 대한 글들과 방문기가 있었다. 이런 공동체방문기가 공동체를 만드는 사람을 만들기보다 공동체여행가, 공동체구경꾼을 만들지 않을까 항상 우려했었다. 그러나 많은 공동체방문기가 주로 소개를 중심으로 한 것이라면, 이 책은 방문과정에서 본인의 고뇌와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 그리고 자신을 찾아나가는 여정을 중심으로 공동체를 묘사했다는 점이 남다르다. 내가 그의 글에 각 공동체 자체를 소개하는데 완벽하게 만족스럽지 않은 이유가 아마도 그의 자기 중심적 여정때문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다시 묻는 물음, 왜 공동체인가 공동체를 살면, 수많은 방문들이 찾아온다. 대부분 돌아가 그들이 기술한 공동체의 소감을 보면 ‘있는 그대로의 현실보다는 자신들이 보고싶은 현실’을 중심으로 기록되어 있는 경우가 많아. 공동체에 살고 있는 사람이 볼때, ‘우리가 이렇던가’하는 새삼스러운 느낌을 갖곤한다. 그러나 실제 그것이 옳고 그르다고 말할 수는 없다. 숲에서 숲을 모르는 것처럼 공동체에 사는 사람들이 자신들을 언제나 정확하게 아는 것은 아니니까. 돈과 물질, 경박한 유물주의 세계속에 진실한 인간을 찾고 인간본성의 속살을 경험하면서,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일체를 이루며 물질적인 풍요만이 아니라 진정한 삶의 질을 느끼며 경험하려는 갈급한 요구가 갈수록 더해가는 사회환경이 바로 공동체에 대한 관심을 갖게 만드는 이유이다. 거스를 수 없는 도도한 자본과 산업 기술문명의 물결을 헤쳐나갈 수 있는 것은 결국 그 세계에 포섭되어 있지 않은 틈(영역, 섬, 혹은 방주)을 만드는 것, 그래서 그 틈을 벌려 나가 오늘날의 문명적 변화의 중심축을 이동시키는 것을 희망하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 서구에서는 이미 수많은 공동체가 있고 우리나라에도 이미 20여곳의 공동체들이 성공적으로 혹은 준비단계에 있기도 하다. 그리고 관련된 많은 책들이 발간되고 있고 단순한 삶(Simple Life)과 웰빙 (Well Being) 혹은 로하스(LOHAS)등, 삶의 질과 자연친화적인 삶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그러한 사람들의 삶의 총체인 공동체에 대한 관심을 더욱더 높아질 것이다. 이제 2년반동안 그는 수많은 사람들의 은혜와 배려, 그리고 자연의 아름다움의 감흥을 회향(되돌려 나눠주기)를 해야할 것이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에게 물질적 정신적인 빚이기 때문이다. 그 은혜를 갚는 방법은 결국 그가 자리하고 있는 곳에 자신이 경험하고 본 모든 것을 잘 버무려 새로운 창조의 삶을 만들어놓는 것이리라. 그의 그런 의지에 힘과 용기를 갖고 해나가길 바라며, 수년뒤에 그가 방문한 모든 공동체의 사람들을 불러 그가 이루어놓은 삶터를 방문하는 날이 빨리 오길 기대한다. 남은 몇가지 1) 그의 책에는 수많은 공동체사람들의 춤과 음악에 감동하는 글은 있는데, 탈춤반 출신인 그가 그 신명에 그다지 깊이 취하고 감흥하고 있다는 느낌이 안들었다. 그가 탈‘춤’만 배웠지 ‘신명’은 없는거 아닐까? 2) 트윈오크스의 창립자인 캐트(Kat)가 공동체 밖에 살고 있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는데 그 이유가 공동체가 너무 채식위주의 식사를 하고 있고, 너무도 많은 논쟁과 토론, 주장으로 이제는 조용히 혼자, 작곡을 하고 싶다는 것이라면...결국 그녀가 살고 싶은 공동체를 만들지는 못한 것일까 (끝)
유정길 (에코붓다 대표 / 평화재단 기획실장 / 공동체 정토회 법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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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중간 정도 읽다 갑자기 지루해졌다. 그냥 글이 쉽게 읽히는 장점이 있긴 했으나, 반복되는 문체는 두꺼운 책을 읽는 동안 계속 지루한 느낌을 주기 충분했다. 물론 저자가 전문 저술가가 아니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 부분이 그리 흠이 되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아무튼 잘 안 읽히는 걸 어쩌란 말인가! 그래서 한참 책상위에 이 책을 방치하다가 서울 가는 길에 이 책을 다시 집어들었고, 끝까지 모두 읽어버렸다.
한 참 읽다가 이 사람이 이 책을 쓴 동기가 결국은 '관계'의 문제 때문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결국 관계의 문제라는 것은 실존의 문제이다. 피투된 존재이든 기투된 존재이든 말이다. 특히 우리가 피투되었다는 것, 우리가 이 세상에 던져졌다는 근본적인 실존의 문제가 관계에서 시작된다는 것(어머니 아버지 등)은 어쩌면 우리 삶의 중요한 문제일지도 모른다. 저자는 이 문제를 순례의 첫 화두로 삼고 있으면서도, 이를 의식하지 못한듯 보인다. 순례의 시간적 순서는 잘 모르겠으나, 읽는 순서에 따르면 초반에는 이런 관계의 문제를 제대로 못보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 이 책의 중반에서는 저자의 이런 의식이 제대로 드러나고 마지막 후기에서는 노골적으로 관계의 문제가 드러난다.
그런데 이런 관계의 연장선이 공동체라는 것이 어쩌면 강력한 자본주의, 특히 신자유주의가 조장하고 있는 것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어 남미에서 기아 때문에 공동부엌이라는 게 만들어졌다고 한다. 이는 기아를 해결하기 위해서 고육치책으로 만들어낸 것이라나...(경향신문) 경쟁력 있는 개인에 맞서기 위한 새로운 삶의 방식 그게 바로 사람과 사람의 연대가 아닐까. 그리고 여기서 관계가 끊어졌던 자연과 사람의 연대 아닐까. 아무튼 이런 여러 가지 생각들을 하게 해준 책이 이 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정말 다양한 공동체를 조목조목 소개했다는 점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한 번쯤 방문하고 싶다는 동기부여 정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