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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수녀님의 독특한 경력에 눈길이 갔습니다. 미디어 생태학을 전공하신 수녀님의 이야기를 듣고 신문방송학과 조경학을 함께 공부하고 있는 제가 어디로 가야할 지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수녀님 자체가 저에겐 하나의 역할 모델로써 다가왔기 때문에 더욱 흥미롭게 이 책을 읽어 내려가게 되었습니다. 디지털로 인해 발생하는 편리함의 이면에는 우리 스스로 인간다움을 잃어버리게 되는 단점이 존재합니다. 이러한 비판에서 저 역시도 자유롭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더욱 안타까운 기분이 듭니다. 이 책은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벽을 자유롭게 넘나들면서 현 사회의 문제, 그리고 우리들의 문제를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휴머니즘이라고 해야 할까요? 성직자이면서 현실 참여를 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주위의 편견에 굴하지 않고 용기 있게 세상을 향하여 따뜻함과 관심 배려를 말씀하시는 수녀님의 용기에 박수를 보냅니다. 제가 인간관계에 어려움을 느껴서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가장 마음에 드는 이야기는 두 친구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누군가 나에게 상처를 주었을 때는 모래위에 쓰고 은혜를 베풀어 주었을 때는 바위에 세긴다” 라는 글이었습니다. 이 글처럼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글들이 이 책에 가득 차 있습니다. 배운다는 것 그리고 깨닫는다는 것은 얼마나 멋진 일인지……. “사람들이 선한 일을 보거나 생각하기만 해도 착해지고 체내에서도 면역물질이 생겨 생명력이 강해지는 현상을 테레사 효과라고 한다.” 테레사 효과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해주는 책입니다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 라는 질문에 톨스토이는 사랑이라고 대답하고 있습니다. 사랑. 그리고 관심, 배려……. 시계가 시선을 먹고 살듯이 사람은 관심을 먹고 삽니다. 관심을 받지 못한다면…….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우리는 스스로의 섬에 홀로 갇혀있는 것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관심과 배려는 내가 다른 사람에게 나타내는 마음이므로 내가 느끼는 것보다 상대방이 느끼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좀 더 따뜻하게 세상을 향해 다다가려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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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내용: 휴대폰, 노트북, MP3, PMP, DMB, CATV, 위성방송 등 24시간 1분 1초도 조용할 수 없이 미디어와 생활하는 우리에게, 진짜가 무엇인지 차분한 목소리로 의문을 제기하는 책이다. 미디어에 의해서 보는 세상이 진짜라고 믿고, 그에 감응하다가 잊혀져 버리는 세상들, 보이는 것을 믿으며, 스스로 보려 하지 않는 현실, 저자는 미디어 전문가로서 우리에게 미디어를 이해하고 진실한 세상에 눈을 떠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나의 느낌: 아들 래현이는 별명을 똑돌이라 지어줄 만큼, 책 읽고 글씨 쓰고 컴퓨터 하기를 좋아하는데 이상하리만큼 냄새를 잘 맡는다. 이 녀석은 시골에서 농사와 식당일을 하시는 외할머니만 보면 냄새 난다고 싫어하고, 처가에만 가면 코를 막고 다닌다. 그런데 몇 주전 사촌 형제들과 하루를 외할머니댁에서 보내고 와서는 외할머니가 최고라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1박2일동안 아들녀석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전라북도 진안, 산 좋고, 물 좋은 외할머니댁에서 아이들은 또랑에서 올챙이 잡고, 논두렁을 뛰어다니고, 산자락을 오르내리며, 이틀을 보낸 것이다. 풀벌레, 나무 짝대기 하나, 손목에 두른 클로버 꽃 시계가 TV와 컴퓨터를 잊게 만들고, 냄새나는 시골마을이 최고의 놀이터로 변한 것이다. 이게 진짜 재미이고, 즐거움이다. 컴퓨터 화면에서 칼 휘두르고, 총 쏴대는 즐거움과는 전혀 다른 온 몸으로 생생하게 느끼는 이게 진짜가 아닐까 "What is real?"이라고 '네오'에게 물었던 '메트릭스'의 '모피어스'가 생각난다. 기술의 발전과 함께 우리는 유목민의 생활로 몰리고 있고, 유목 생활을 위해 모든 것들이 가상 공간에서 가능해지고 있다. 어느 것이 진짜이고 어느 것이 가짜인지, 아니 그런 질문조차도 무의미하게 만들어버린 기술과 생활들, 기술은 사람의, 사람에 의한, 사람을 위한 것이라는데 의문이 생긴다. 이 책은 기술의 이면으로 사람이 숨어버리는 차가운 디지털 현실에 온기를 불어넣고 의미를 찾으려는 시도의 산물로 보여진다. 책을 쓰신 분이 수녀님이어서 이 책이 주는 느낌이 또한 남다른 것 같다. 정보와 기술의 시대에 사람을 잊어가는 것을 경고하는 책은 많지만, 한 종교에 너무 치우친 책들은 대중들에게 읽히기 힘들며, 반감을 사고, 너무 신비주의적인 책들은 현실과의 괴리감에 좋다는 느낌만을 가져야 했는데, 이 책은 천주교적인 색체보다는 미디어 전문가로서의 시각과, 수녀님의 따뜻하고 세심한 눈길, 그리고 수도자로서의 소명의식이 잘 조화된 책이라 생각된다. 그래서 이 책이 깊은 산사의 풍경소리처럼 마음속의 작은 울림으로 기억되는 것 같다.
인상 깊은 구절: P. 5 "수녀가 뭘 알아?" 세상물정 모르는 수녀, 그래서 더 말할 수 있고 더 말해야겠습니다. 뭘 모르니 용기도 있습니다. 그저 희망하기에 말합니다. 디지털 세상에서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그리고 이미지 덫에 걸려 허우적대는 현실, 뿐만 아니라 아픈 우리 몸과 허약한 영혼에 대해서 말합니다. 브랜드로 배고픔을 채우는 허기진 우리, 지독하게 소통을 사랑하기에 진정한 소통을 이뤄내지 못하는 우리들의 이야기를 해야겠습니다.
P. 20 우리는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지, 그래서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과 만나지도 못하고 그것들과 대화하는 법도 모르고 말이다. 우리는 대리 체험이 가득한 디지털 세상에서 욕망의 노예가 되어, 중요하지 않은 것들을 위하여 시간을 잃고 기억을 잃고 그리고 영혼을 잃어가고 있다. 그래서 영혼은 너무 슬프다. 그리고 오늘도 우리의 영혼은 이렇게 외친다. "돈, 명예, 외모, 학력이 모두 떠나더라도 끝까지 남아 당신을 지켜주는 것은, 당신이 그토록 외면했던 영혼이라고……."
P. 212 그러나 보는 것과 느끼는 것, 그리고 아는 것과 실천하는 것이 달랐다. 머리와 가슴이 분리되어 있다고 할까. 우리 아이들은 캄보디아의 비참한 현실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캄보디아는 동남아 중에서도 가장 가난해요. 전체 국민 가운데 거의 40퍼센트 정도가 밥을 제대로 못 먹을 걸요." "일인당 국민소득이 280달러라고 알고 있어요. 우리는 1만 4천 달러, 엄청 차이지요." 아이들은 캄보디아에 오기 전 기아와 질병, 문맹으로 고통 하는 캄보디아 어린이들의 실상에 대하여 충분히 공부했고 기부금도 마련해왔다. 그러나 거리 곳곳마다 구걸하는 아이들을 만나고도 식사 때에는 음식을 가져와 매번 맛만 보고 버리기를 거듭하는 아이들을 바라보니 착잡하기 이를 데 없었다. - 중략 - 자연 체험보다 테크놀로지에 길들여진 우리 아이들에게 있어서 지금 체험하고 있는 이 '공간'에 대한 감각은 어떤 것일까? 상상할 수도 없는 빈곤의 현장에 있으면서도, 그 '공간'은 단지 버튼만 누르면 보이는 테크놀로지의 세상으로 체험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과연 아이들에게서 공간의 '진실'은 무엇인가? 동화책에서 주인공이 나무 위에 올라가 푸른 하늘을 보며 즐겁게 놀고 생각에 잠기는 장면을 읽을 때, 실제 체험이 없는 우리 아이들은 어떤 연상을 할까? 게임 속의 한 장면, 혹은 광고나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실제에 대한 감정이 지속되지 않고 굶어 죽어가는 아이들과 만나 눈물을 흘리고 슬퍼하다가도 돌아서면 아주 다른 감정으로 바뀌는 것일까
☺☼ 책 읽는 두 아이의 아빠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