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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에 부르심을 받다/스텔라 프라이스/코리아닷컴/개신교 최초의 순교사, 제너럴셔먼호를 타다~
"조선에 부르심을 받다/스텔라 프라이스/코리아닷컴/개신교 최초의 순교사, 제너럴셔먼호를 타다~" 내용보기
조선에 부르심을 받다/스텔라 프라이스/코리아닷컴/개신교 최초의 순교사, 제너럴셔먼호를 타다~   선교를 하다가 죽음에 이르는 것을 순교라고 하는데요. 대개 순교가 그렇듯 조선에서도 개신교 최초의 순교 이후에 개신교 전파가 활발했다니, 신기한 일입니다.   역사책에서 배운 제너럴셔먼호 사건 속에도 개신교 최초의 순교가 있었다니 역사의 뒷 이야기를 읽는 듯 합니다. 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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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에 부르심을 받다/스텔라 프라이스/코리아닷컴/개신교 최초의 순교사, 제너럴셔먼호를 타다~

 

 

 

선교를 하다가 죽음에 이르는 것을 순교라고 하는데요. 대개 순교가 그렇듯 조선에서도 개신교 최초의 순교 이후에 개신교 전파가 활발했다니, 신기한 일입니다.   역사책에서 배운 제너럴셔먼호 사건 속에도 개신교 최초의 순교가 있었다니 역사의 뒷 이야기를 읽는 듯 합니다. 더구나 그 순교 이후로 평양에 개신교가 퍼지기 시작했고 평양 부흥의 디딤돌이 되기도 했다니 희한한 일입니다. 제너럴셔먼 호 사건은 대원군의 쇄국정책과 서양 제국주의자들의 충돌 정도로 알았는데요. 당시 문호 개방에 대한 준비가 되지 못했던 조선의 입장에서는 외국 세력의 거센 문호 개방 압력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기에 대원군의 쇄국정책을 옹호하기도 했었는데요. 그런 와중에 조선에 개신교를 전파하고자 한 개신교 최초의 선교사가 있었다니, 참으로 드라마틱합니다. 그의 순교 이후로 평양엔 개신교가 널리 전파되는 계기가 되었다니 그의 순교의 피는 헛되지 않았군요. 더구나 그가 뿌린 성경으로 개신교인이 된 이들이 많았고 지금도 그의 업적을 기리는 한국인들이 많다는 것을 알면 그는 천국에서도 기뻐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지금으로부터 150년 전 조선은 대원군이 쇄국정책을 펼치던 시기였는데요. 그 위험한 시기에 조선 땅을 밟으면서  순교한 최초의 개신교 선교사인 토마스 목사의 일대기를 보며 토마스 목사가 조선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한 후에 조선 땅을 밟았더라면 죽음을 면치 않았을까 싶어서 안타까움이 있네요.

 

책을 통해 세계에 제국주의 광풍이 휩쓸던 시절에 영국에서 개신교의 부흥이 일어나면서 중국 선교사 파송이 이뤄지는 이야기가 낯설면서도 그 시대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어요. 목사인 아버지의 영향을 받은 토마스 목사가 신학 공부를 하고 중국어를 배워 중국 선교사로 파송되는 여정엔  선교에 대한 토마스의 열정을 볼 수 있었어요. 중국에 온 토마스는 중국에서 만난 조선인을 통해 조선의 천주교 신자들 이야기를 들으면서 조선 선교사로 오기를 자원했는데요. 하지만 기회가 닿지 않았기에 선교사가 아닌 일반인의 신분으로 올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제너럴셔먼 호를 타기 전에  해군 제독의 통역사로 있으면서 조선을 방문하려다 백령도까지 온 적도 있기에 더욱 조선 선교에 대한 희망을 품었다고 합니다. 그가 선교부의 반대를 무릅쓰고 미국 상선인 제너럴셔먼호를 탔던 이유엔 조선에 대한 선교 열망이 그만큼 강렬했기 때문이겠죠. 하지만 그가 제너럴셔먼 호를 탔던 시점이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이 극에 달했던 시절이기에 아무리 통상을 목적으로 하던 제너럴 셔먼 호라고 해도 위험스런 항해였을 겁니다. 더구나 통상이 목적이라던 제너럴셔먼 호가 조선 정부의 경고를 무시한 채 평양 만경대까지 깊숙히 침투했다는 사실은 조선을 자극하기에 충분했겠죠. 아무리 선의의 통상 요구라해도 조선을 무시하던 행동을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말입니다. 

 

어쨌든 대동강물이 빠지면서 좌초된 제너럴셔먼 호는 조선 관군과 총질을 하다가 성난 평양 사람들에 의해 불에 타면서 장렬한 최후를 맞았답니다. 그리고 토마스 목사는 배에서 끌려나와 강변 모래 위에서 '야수'를 외치고 성경을 건네며 최후를 맞았다고 합니다.

 

지금 한국의 개신교의 시작에 제너럴셔먼 호 사건과 그 배를 탔던 토마스 목사의 순교가 있었다니 역사의 뒷담화를 읽은 느낌입니다. 조선 개신교의 부흥과 한국 교회의 발전, 지금의 한국을 본다면 토마스는 어떤 말을 할 지 궁금해집니다. 

 

 제너럴셔먼호를 탔던 개신교 최초의 순교사 토마스와  저자의 인연도 신기하네요. 저자는 영국 웨일스에서 나고 자라 미국에서 교편을 잡았다가 남편과 함께 우연히 웨일스 여행을 하던 중 토마스 목사의 이야기를 듣고 감동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후로는 남편과 함께 토마스가 자랐던 웨일스의 집을 사들여 살면서  선교와  토마스 목사를 기리는 일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a******7 2016.04.26.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조선에 부르심을 받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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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역사 교과서를 보면 제너럴 셔먼허에 대해서 짤막하게 기록되어 있을 뿐 그때 당시의 정황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였다. 그래서 이 책을 읽게 되면 그 당시 우리나라의 천주교 박해가 어떠했는지 알수가 있으며 제너럴 셔먼호에 탓던 선교사 토마스 목사의 삶 또한 같이 알수가 있다.개신교 최초의 순교자 토마스 목사의 아버지 로버트 토마스 또한 목사로서의 삶을 살았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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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역사 교과서를 보면 제너럴 셔먼허에 대해서 짤막하게 기록되어 있을 뿐 그때 당시의 정황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였다. 그래서 이 책을 읽게 되면 그 당시 우리나라의 천주교 박해가 어떠했는지 알수가 있으며 제너럴 셔먼호에 탓던 선교사 토마스 목사의 삶 또한 같이 알수가 있다.



개신교 최초의 순교자 토마스 목사의 아버지 로버트 토마스 또한 목사로서의 삶을 살았으며,토마스 선교사는 어려서부터 아버지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는 걸 알 수가 있다. 그것은 그가 옥스퍼드 대학교 지저스 칼리지에 장학생으로 입학할 수 있었으며 휴학과 선교사로서의 일을 하기 위한 7년의 시간,그 시간이 지난 후 그는 영국이 아닌 중국에서 선교활동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이렇게 그가 중국에서의 선교 활동을 하기 위해 도착한 곳은 중국 상하이였으며 아내 캐롤라인과 결혼을 하게 된다.그렇지만 중국에서의 삶은 녹록치 않았으며 아내 캐롤라인은 중국의 풍토병으로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그렇게 아내의 죽음으로 인하여 토머스는 중국이 아닌 조선이라는 비밀스러운 땅에서의 선교활동에 관심 가졌으며 제너럴 셔먼호를 타고 백령도로 향하게 된다. 그렇지만 그가 도착한 백령도에서 고종의 엄명이 있었기에 제너럴 셔먼호는 그자리에서 불타버렸으며 토머스의 삶 또한 그곳에서 순교를 하게 되었다. 이처럼 책에서 토머스 목사의 삶을 알 수 있으며,그가 조선에 개신교를 퍼트리는데 큰 역할을 했다는 걸 알 수 있다. 


k*******2 2016.04.27.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조선에 부르심을 받다' 토마스 목사님을 생각하며~~
"'조선에 부르심을 받다' 토마스 목사님을 생각하며~~" 내용보기
'조선에 부르심을 받다' 토마스 목사님을 생각하며~~   믿음생활, 신앙생활을 하면서 우리나라에 개신교 최초 순교자 토마스목사님이였다는 것을저는 이책을 통해서 처음 알게 되었답니다. 우리나라처럼 쇄국정치에 외국문물을 절대 반대했던 나라도 없을텐데요..그만큼 강성했던 우리나라에 개신교라는 신앙이 들어오기 시작했던것도 바로 영국 웨일스 출신 토마스목사님의 순교덕택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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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에 부르심을 받다' 토마스 목사님을 생각하며~~

 

 

 

믿음생활, 신앙생활을 하면서 우리나라에 개신교 최초 순교자 토마스목사님이였다는 것을

저는 이책을 통해서 처음 알게 되었답니다.

 

우리나라처럼 쇄국정치에 외국문물을 절대 반대했던 나라도 없을텐데요..

그만큼 강성했던 우리나라에 개신교라는 신앙이 들어오기 시작했던것도

바로 영국 웨일스 출신 토마스목사님의 순교덕택이지 않았나 싶어진답니다.

 

 

 

조선이라는 나라에 대해서도 전혀 모르고 계시고..

조선이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던 토마스목사님이 어떻게 조선을 알게 되고.

조선으로 성경책을 들여보내게 되었는지..

그 발자취를 외국인 영국 웨일스 출신 작가의 눈을 통해서 만나본

토마스목사님의 일대기를 만나 볼수 있었는데요..

 

보통 우리나라 목사님이나 유명하신분들에 의해서 최초 순교자의 일대기에 대해서 그려지는데요

이번 조선에 부르심을 받다는 영국 웨일스 출신 작가의 눈을 통해서

외국에서는 어떻게 고증하고 있으며 그분을 평가하는지 담담하게 그려졌더라구요..

 

흥미위주의 글이 아니라..

토마스목사님이 주고 받았던 편지나 사진을 통해서 좀더 정확하게 고증하고 있는

역사드라마같은 내용이였어요..

 

 

스텔라 프라이스님 또한 선교사역을 하시는 분들로..

우연히 영국여행을 하게 되면서 토마스 선교사님의 이야기를 듣게 되고..

그분에 대한 발자취를 역추적하다 보니 이렇게 아름다운 순교가 있어..

더 많은 성도들을 부흥하게 되었다는 이야기인데요..

 

한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더 많은 열매를 맺었듯이..

토마스목사님의 순교로 인해 조선과 웨일스 지역에 부흥의 기적을 만나게 되었으니 말이죠..

 

 

 

'조선에 부르심을 받다 '이책은..

단순한 흥미위주의 글은 아니더라구요..

토마스목사님이 어떠한 환경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며

외국어 습득에 있어서 남달라 어느나라 언어든 빠르게 배우고 익히는 재능을 부여 받게

되었는데요..무엇보다도 토마스 목사는 중국선교사를 사명으로 생각하게 되었더라구요..

 

 

목차를 보면 총 6장으로 구성이 되어 있어요..

웨일스의 소년, 선교사를 꿈꾸며, 상하이로 가다

 

 

조선을 향해, 제너럴셔먼호를 타고, 순교자의 피

부록으로 토마스 선교사의 생애와 역사연표

토마스 선교사 순교후 평양 대부흥 열매들을 만나 볼수 있답니다..

 

무엇보다도 그 시대의 사진과 편지..

실제로 일어났던 이야기들을 토대로 옮겨놓았기에 더욱 신빙성이 있어 보이더라구요..

 

 

주기철목사님의 친손자 주승중목사님의 추천사를 보더라도..

우리가 믿고 있는 이 신앙이..

바로 토마스 선교사님의 순교로 인해서 안전하게 믿고..

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으며 또 다른 해외로 선교사역을 떠나고 있는

한국사회의 모습이 되지 않았나 싶어진답니다..

 

 

과거 믿음의 선배님들의 순교로 인해서..

더욱 믿음이 견고해지고 더 많은 부흥의 열매를 맺게 되지 않았나 싶어지는데요..

 

요즘은 바로 요 초심이 많이 없어지고 타락해 가는것 같아서 안타깝답니다..

하나,둘이 모여도 기도하는 자리가 되어야 하는데..

기도가 많이 없어져가는 모습,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더라구요..

 

 

 

우리는 바로 토마스선교사님의 은혜의 빚을 지고 있는 사람들인데요..

지금이라도 더 많은 분들이..

토마스 선교사님의 순교 덕택에 내가 믿는 신앙이 더욱 견고하고

안전하게 믿고 있는게 아닌가를 기억하게 해주는 책이랍니다..

 

 

 

토마스의 아버지 또한 목사님이셨다..

토마스아버지 로버트 토마스는 목회에 전념하셨으며 점차 부흥하기 시작했답니다.

또한 선교에도 힘썼답니다..

 

로버트 토마스 목사님에게는 아들이 태어났는데요..

토마스 는 로버트 토마스 목사님의 둘째아들로 언어의 특별한 은사가 부어졌답니다..

토마스는 외국어에 능통하게 되어 좀더 큰 학교에서 배움을 시작하게 되고

그때 런던선교회를 통해서 선교사 사역을 사명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더라구요..

 

 

 

그당시 영국에서는 런던선교회를 통해 중국선교사의 사역을 꿈꾸기 시작했는데요.

많은 분들이 중국선교사로 활동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신의 언어적인 재능을 선교사라는 사명으로 쓰이길 원했던 토마스..

 

남들보다 보다 빠른 언어습득으로..

중국어,영어,등 수많은 언어들을 빠르게 익혔던 토마스..

 

 

젊은 나이에  이른 결혼과 동시에 목사 안수와 함께 중국선교지로 출발하게 되고..

하지만 중국에서 선교사 활동하는것은 굉장히 힘이 든 생활이였답니다..

 

중국이라는 기온과 날씨변화에 적응을 잘 하지 못해 결국

사랑하는 아내와 아기가 유산이 되면서 모두 하나님 곁으로 떠나보내게 되는데요..

 

하지만 토마스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선교사역이 굉장히 의미가 깊고

사명을 가지고 있었기에 중국선교사역에 있어서도 더욱 선교에 목적을 두었답니다..

하지만 외국이라는 신분때문에 믿음이 전파되는게 많이 힘들었는데요..

 

 

 

 

바로 그때 자신이 일하던 곳에서 조선에서 온 분들을 만나게 되고..

조선이 어떤 나라인지 알면서 더욱 미지의 세계에 찾아가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고자 했던 토마스..

 

조선은 천주교가 이미 들어와서 수많은 신도들을 확보한 상태였지만..

대원군의 쇠국정책으로 천구교인들이나 신부님들이 학살을 당하게 되었지요..

이런 순교의 소용돌이 속에 있던 토마스는..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은 굉장했다는 것을 우리도 역사책을 통해서 배웠는데요..

그당시에 토마스선교사님이 함께 했었다니 얼마나 심했을지가 느껴지더라구요..

 

역사적인 고증과 함께한 토마스선교사님의 순교..

제너럴셔먼호에 승선하셔서 조선의부르심을 받고..

조선땅에 성경책을 필요로 하는 분들에게 성경책을 나눠주고..

하나님을 전하고자 했던 그분의 순수함..

 

 

 

 

마지막 순간까지도 사람들이 모여있고 나와있는곳에..

성경책을 뿌리면서 오직 예수라 외치면서 순교하셨던 토마스선교사님..

 

외국인 선교사가 던진 성경책을 주워서 읽고 하나님을 영접하고..

더 많은 분들이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계기가 되어..

평양에서 부흥의 열매들이 열리게 되지 않았나 싶어진답니다..

 

 

 

현재 내가 믿고 있는 하나님..

이나라에 복음의 씨앗이 어떻게 뿌려졌는지..

어떠한 분의 순교로  이렇게 많은 열매들을 맺게 되고..

이제는 더 나아가 더 오지의 나라에 선교의 씨앗까지 열매를 맺게 되었는지..

토마스선교사님의 순교를 생각하면서 내가 믿고 있는 믿음에 대해서

좀더 깊이 생각하고 나도 이분의 뜻을 따라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답니다..

 

오직 예수..

토마스선교사님의 순교를 기념하며

우리도 다시 부흥의 열매를 만들어가야겠네요..

 

 

 

a*****4 2016.04.2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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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에 부르심을 받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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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 천주교 순교자에 대한 이야기는 역사를 배우면서 대부분 알게 된다. 특히, 병인박해를 통해 천주교 순교자와 프랑스 신부들이 살해당했고, 그로 인해 병인양요가 발생했다는 것이 역사의 주된 사실이다.  그런데 개신교에 대한 부분은 문호가 개방되면서 교육 사업이나 의료사업을 통해 우리나라에 들어왔던 목사들에 대한 이야기만 들었지 최초의 순교자에 대한 이야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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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 천주교 순교자에 대한 이야기는 역사를 배우면서 대부분 알게 된다. 특히, 병인박해를 통해 천주교 순교자와 프랑스 신부들이 살해당했고, 그로 인해 병인양요가 발생했다는 것이 역사의 주된 사실이다.

 그런데 개신교에 대한 부분은 문호가 개방되면서 교육 사업이나 의료사업을 통해 우리나라에 들어왔던 목사들에 대한 이야기만 들었지 최초의 순교자에 대한 이야기는 생소하게 들렸다.

 그랬기에 이 책의 제목과 소개는 새로운 시선과 관심을 불러 일으키기 충분했다.

 과연, 개신교 최초의 순교자는 누구인지, 과연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이었기에 문호 개방 이전에 조선을 찾아왔고, 왜 순교자가 되었는지에 대한 궁금증에 이 책을 펼칠수 있었다.

 처음 한국을 찾와왔던 그는 토마스 목사는 영국에서 태어나서 목회를 했던 분이었다. 그런 분이 어떻게 한국까지 왔을까? 지금도 그렇지만, 영국은 영국정교회라고 해서 다른 나라와 다른 종교적 형태를 뛴다. 그것은 영국이라는 역사와 문화 속에서 자리 잡은 것이기에 색다른 부분을 갖는다.

 그런데 그런 영국도 개신교 신자들은 그렇게 많지는 않았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토마스 목사가 목회 활동을 할때 쯤 영국에서 개신교가 붐을 이루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당시 해외 선교에 관심을 가지고 중국에 처음 선교를 했던 목사가 나타났고, 그런 여러 사건과 정황 속에 토마스 목사는 중국 선교에 관심을 가진다.

 토마스 목사는 결혼을 한 뒤, 반려자와 함게 중국으로 선교 활동을 떠나게 되고, 중국에서 쉽지 않은 선교 활동을 한다. 선교활동과 병행에 무역회사의 통역자로도 활동하면서 포교 활동을 펼치게 된다.

 해안가 부두에서 무역을 하는 곳에서 중국인들에게 한문으로 쓰여진 성경책을 배부함으로서 선교의 첫걸음을 시작했던 것이다. 우연히 무역장에서 조선인들을 접하게 되고, 조선이라는 곳으로 가서 선교활동을 하고자 하는 꿈을 꾸게 된다.

 그래서 중국 무역선을 타고 조선으로 향한다. 처음 접했던 곳이 백령도였다. 그러나. 배가 좌초되면서 조선으로 들어가고자 하는 그의 꿈은 일시적으로 좌절된다.

 다시 중국으로 돌와갔던 토마스 목사는 미국의 상선 제너럴셔먼호를 타고 평양 대동강을 통해 조선으로 들어간다. 그러나. 우리가 아는 역사 속에 제너럴셔먼호는 불타고 선원들은 살해당하면서 신미양요를 야기했었다.

 즉, 토마스 목사는 제너럴셔먼호가 불타고 공격을 받게 되고, 그는 대동강 물에 뛰어들고 뭍으로 걸어나오지만 조선의 병사에 의해 살해당한다.

 그가 창에 찔리기 전, 그는 그의 손에 들고 있던 성경을 자신을 찌른 병사에게 내민다.

 그 병사는 그 책이 무엇인지도 모르지만 받아들고 집으로 돌아온다. 그것이 아마 우리가 접했던 첫 선교자 토마스의 영혼이 깃든 성경이었을 것이다.

 그 후 신미양요가 발생하고 미국와 통상 수호 조약을 체결하면서 조선은 미국에게 문호를 개방한다. 그 이후 외국인 선교사가 공식적으로 들어오면서 조선에는 여러 교회와 학교가 들어서게 된다.

 최초의 조선의 개신교 순교자 토마스 목사, 그의 발자취를 따라가면서 한국의 개신교의 발자취를 다시 한번 돌아볼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과연 토마스 목사는 왜 조선이라는 곳을 택했고, 그가 하고자 했던 일들은 무엇이었는지 궁금해진다.

k***5 2016.04.22. 신고 공감 0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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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에 부르심을 받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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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초의 개신교 순교자 로버트 토마스 목사는 중국에서 선교하던 중 조선에서 일어나는 가톨릭 박해 소식을 듣고 조선 선교를 결심하게 된다. 한국말(조선어)을 배우면서 기회를 찾던 중 27세 때인 1866년 제너럴 셔먼호가 평양에 입항한다는 소식을 듣고 통역관 자격으로 배에 탔다. 그러나 제너럴 셔먼호는 조선의 퇴각 명령을 무시한 채 대동강변으로 들어왔고, 결국 강바닥에 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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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초의 개신교 순교자 로버트 토마스 목사는 중국에서 선교하던 중 조선에서 일어나는 가톨릭 박해 소식을 듣고 조선 선교를 결심하게 된다. 한국말(조선어)을 배우면서 기회를 찾던 중 27세 때인 1866년 제너럴 셔먼호가 평양에 입항한다는 소식을 듣고 통역관 자격으로 배에 탔다. 그러나 제너럴 셔먼호는 조선의 퇴각 명령을 무시한 채 대동강변으로 들어왔고, 결국 강바닥에 좌초되어 불태워졌다. 배에 불이 붙자 미국 선원들과 함께 토마스 목사는 배에서 뛰어내렸고 자기를 죽이려는 박춘권 이라는 조선 병사에게 품고 있던 성경 몇 권을 건네주고 그 자리에서 목이 잘려 순교했다.

 

토마스 목사의 죽음은 조선 선교의 놀라운 출발점이 되었다. 토마스 목사로부터 성경을 받은 박춘권은 집으로 돌아와 그 성경을 읽고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 그는 훗날 영주교회의 지도자가 되었다. 그의 조카인 이영태도 그와 함께 그 성경을 읽고 예수를 믿게 되었고, 이후 한국어성경 3분의2를 번역하는 결정적인 공헌을 하게 되었다.

 

이 책은 영국 웨일스 출신으로 미국에서 교편생활을 하던 저자 스텔라 프라이스가 토마스 선교사의 일대기를 추적하기 위하여 미국과 영국 웨일스 등을 오가며 관련 인물들을 만나고, 오래된 귀한 자료들을 수집한 끝에 토마스 선교사가 자신의 소명에 순종하여 순교하기까지의 개인의 헌신을 주된 시각으로 다루고 있다.

 

한국교회가 오늘날 놀랍도록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붉은 피를 뿌리며 주를 위해, 그리고 자신의 신앙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고 믿음을 지킨 순교자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한국교회와 성도들은 매 순간, 각자의 위치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깨닫고 아름다운 섬김과 헌신을 통해 순교 신앙의 정신을 품고 살아야 한다.

 

토마스 목사가 순교할 당시 군중 속에 끼어 있던 12세 소년 최치량은 한문성경 3권을 가져갔는데, 그는 기독교에 대한 박해가 두려워 성경을 몰래 숨기고 있다가 한 권을 박영식이라는 사람에게 주었다. 박영식은 받은 성경의 종이 질이 좋아 한 장씩 뜯어 자기 집 방 벽지로 발랐다. 나중에 박영식은 벽지의 말씀들을 읽다 감동받아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었다. 책을 전해준 최치량도 도배된 성경말씀을 읽으며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자 하나님의 말씀으로 도배된 그 집은 평양 최초 교회인 널다리골교회가 되었다.

 

복음에 헌신했던 토마스의 생애는 짧았지만 눈부셨다. 1932년에 세워진 토마스 선교사 기념 예배당에는 스코틀랜드 성서공회가 기부한 주춧돌이 세워졌는데, 거기에는 이러한 문구가 새겨져 있다고 한다. “순교자의 피는 교회를 세우는 씨앗이요. 씨앗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p.162)

 

토마스는 죽음으로 자신의 선교의 뜻, 열망을 성취하였다. 실로 그의 죽음은 안타깝고 처참한 것이었지만, 이후 조선에 생명의 꽃을 만발케 하였다. 토마스의 순교 후 실로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일이 전개되어, 오늘 한국교회는 2,000년 기독교 역사상 유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부흥하였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해 험지를 마다하지 않고 자기 생애를 헌신한 토마스 목사가 남긴 거룩한 열정은 오늘 우리들을 위한 소중한 유산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이 한국교회의 성도들에게 널리 읽혀 순교신앙으로 무장하기를 바란다.

k*****6 2016.04.16.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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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에 부르심을받다][서평]-고귀한 그 희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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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이 삶을 살 수 있는 것은 누군가 이 땅에 죽음을 무릅쓰고 복음을 전했기 때문일 겁니다. 지금 우린 편하게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고 교제를 하고 성경 말씀을 읽을 수 있지만... 19세기 후반만 하더라도, 성경을 읽고 선교사와 대화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참수(斬首)에 당할 만큼 박해가 심했습니다. 저는 사실 대한민국에 복음을 전한 이들 선교사에 대해
"[조선에 부르심을받다][서평]-고귀한 그 희생" 내용보기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이 삶을 살 수 있는 것은 누군가 이 땅에 죽음을 무릅쓰고 복음을 전했기 때문일 겁니다. 지금 우린 편하게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고 교제를 하고 성경 말씀을 읽을 수 있지만... 19세기 후반만 하더라도, 성경을 읽고 선교사와 대화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참수(斬首)에 당할 만큼 박해가 심했습니다.

저는 사실 대한민국에 복음을 전한 이들 선교사에 대해 무지했습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복음을 전하기 위해 죽음도 무릅쓴 그 사명감에 가슴에서부터 뜨거운 것이 올라왔습니다.

토마스 목사는 아버지 로버트 토마스 어머니 메리 사이에 출생하였습니다. 그는 런던대학 뉴칼리지신학교를 졸업하고 아내와 같이 런던 선교회 선교사로 상해에 오게 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상해에서 부인은 아이를 유산하고 그 후유증으로 별세하게 됩니다. 아내를 잃은 슬픔에 상심도 너무나 컸지만, 하나님이 주신 숭고한 사역에 대한 열망까지 꺾을 수는 없었습니다. 선임 선교사와의 갈등으로 한때 선교사역을 포기하기도 했지만 세관에서 통역 일을 하던 그에게 조선 선교라는 새로운 길이 열리게 됩니다.

런던에서 상해까지 같이 배를 타고 상해에서 처음같이 지냈던 지부에 있는 스코틀랜드 장로교 선교사 윌리암슨을 찾아가 여기에 온 가톨릭 신자인 한인 2명과 사귀어 한국어를 익히게 됩니다.

1866년 병인년 우리나라 교회 역사상 가장 험난한 한 해로 기억될 것입니다. 새해 벽두부터 나라안의 천주교인들을 무차별적으로 학살한 병인박해와 뒤이어 병인양요까지 외세에 대한 조선의 쇄국정책은 극으로 치닫게 되었습니다. 같은 해 8월 평양의 대동강에 미국의 상선인 제너럴 셔먼 호가 나타나는데 이 배에는 스코틀랜드 성서공회의 후원을 받은 로버트 토마스라는 선교사가 통역관으로 동승하고 있었습니다.

제너럴 셔먼 호가 불길에 휩싸였을 때, 그 긴박한 순간에도 토마스 선교사는 성경책을 품고 배에서 나왔습니다. 그를 향해 창을 겨누는 병사에게 ‘야소!(예수)’를 외치며 성경책을 건넸고, 그는 곧 죽음을 맞았습니다. 1866년 9월 5일, 스물일곱의 젊은 나이에 순교한 토마스 선교사. 그러나 그의 죽음은 조선 땅에 복음을 심는 한 알의 밀알이 되었습니다.

그의 처단은 즉시 집행됐고 그 임무를 맡은 조선 군사가 바로 박춘권이라는 자였습니다. 실제로 그에게 성경을 받은 이들 중에 훗날 평양에 유력한 신앙 가문을 일으킨 이들이 많은데 박춘권은 평양 교회의 장로가 되었고 석호정 만경대의 최취량은 평양 교회를 창설한 인물로 지목되고 있습니다. 또한 그가 준 성경을 뜯어 벽지를 바른 영문 주사 박영식의 집은 널다리 교회의 예배처소가 되었다고 합니다. 성경을 찢어 도배를 했던 박영식도 이 이야기를 듣고 감동을 받아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토마스 선교사의 순교는 1907년 평양 대부흥의 단초가 되었습니다.

당시 평양의 부흥을 직접 목격했던 윌리엄 블레어 선교사는 캔자스에 살고 있던 그의 친구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자세히 묘사했습니다.

2월에 평양으로 돌아왔을 때, 각 교회에서는 오후 성경 공부반 이외에도 저녁 모임까지 하고 있었어. 오후 성경 공부 모임이 끝나면 사람들은 두 명씩 짝을 지어 시내로 나가 전도를 하고, 저녁 모임에 사람들을 초대하곤 하지. 그 열매로 매일 밤마다 수백 명의 사람들이 교회로 몰려오고 있어. 어느 날 저녁에는 50여 명이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네. 밤마다 교회의 열기가 대단해. 여기 사람들은 모든 것을 제쳐 두고 주님의 일에 헌신하는 듯해. 감리교회를 비롯해 장로교회, 남문에 위치한 교회 등 벌서 네 곳에서 집회가 열리고 있지.(하략)-1905년 3월 12일 사랑하는 친구 윌리엄 블레어

어쩌면 토마스 선교사의 사역은 실패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의 부모도 어쩌면 그 순간에는 아들의 죽음에 그렇게 판단할 수 있었습니다. 그의 죽음은 복음의 씨앗이 되어서 그가 자랐던 하노버 교회와 사택은 이제 대한민국 예수 믿는 자들이 영국 웨일스를 방문할 때 여행코스가 된 것입니다.

내 신앙은 결코 싸지 않습니다. 우린 결코 예수님을 쉽게 믿지 않았습니다. 선교사들의 고귀한 피로 세워진 이 땅의 교회가 주님의 것이 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아직도 복음이 전해지지 않은 오지에 예수님의 말씀이 전해질 수 있도록 토마스 선교사가 그렇게 했던 것처럼 우리도 그 마음을 놓아선 안되겠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향한 그의 열심이 너무나 커 내 부족한 신앙으로는 감히 그의 본을 쫓아갈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어떻게 그 희생에 제가 감히 감사할 수 있을까요?

"토마스 선교사님 대한민국에 성경을 전해주셔서 감사합니다.그 희생, 그 정신, 그 마음 절대로 잊지 않겠습니다."

1.해당 출판사가 제공하는 도서를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2.토마스 선교사 관련된 인터넷의 자료를 인용하였습니다.
http://kin.naver.com/qna/detail.nhn?d1id=6&dirId=60901&docId=221178532&qb=7Yag66eI7IqkIOyEoOq1kOyCrA==&enc=utf8§ion=kin&rank=1&search_sort=0&spq=0&pid=Sx8EDsoRR1dssatmvvwsssssssZ-284856&sid=rNA9W57g2JBbczzkkPloYA%3D%3D

a********n 2016.04.27.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