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잡지에서 박완서 작가를 인터뷰한 기사를 보고 “가장 한국적인 언어를 쓰는 작가”라는 글귀에 이끌려 그의 글을 읽어봐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사실, 이름만 알고 있었을 뿐, 제대로 작품을 읽어본 적이 없어 속으로 부끄럽기도, 궁금하기도 한 참이었다. 무엇을 읽어야 하나 고르다 눈에 띤 건 세계사에서 나온 이 다섯권을 책 묶음이었다.
저렴한 가격에 그녀의 작품 세계를 대강이나마 접할 수 있다는 기대때문인지 책을 기다리는 사나흘의 시간조차 정말 길게 느껴졌고, 책을 받아 든 순간부터 며칠 굶은 사람 첫술 떠 넣듯 정신없이 읽기 시작했다.
출판사에서 나름 의미를 두고 정한 순서대로 하자면 가장 먼저 그녀의 대뷔작인 <나목>으로부터 시작해야 했으나 내 맘을 끄는 것은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였다. 어릴적 겪었던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그려지고 있는 <그 많던 싱아는...>을 시작으로 삼은건 참 잘한 일이었다. 그 뒤로 읽은 <그 산은 정말 거기 있었을까>와 함께 단편소설과 수필들까지도 더 잘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박완서 작가의 손끝에서 그려지는 한국은 내가 경험해보지는 않았지만 마치 내가 실제 그 일을 겪은 듯, 아니면 책 속 주인공이 바로 내 절친한 동무의 이야기인듯 생생한 감정을 고스란히 느끼게 해주었다. 처음 들어보는 낱말을 만나는 묘미도 더불어 느낄 수 있었다. 무관심한듯 까칠한 시선으로 써내려간, 그러나 그 깊은 곳에는 삶에 대해, 인물들에 대한 따듯한 애정이 깃들어 있는 그녀의 작품들은 다섯권을 쉴새없이 읽는 와중에서도 때로 내게 눈물 찔끔할 정도의 웃음을, 가슴이 먹먹해지는 감동을, 무릎을 딱 치게 만드는 공감을 선사해 주었다.
작가의 힘이란 바로 이런것을 말하는가보다. 단한번의 책읽기를 통해 이제 나는 그녀, 박.완.서.라는 이름을 그냥 지나칠 수 없게 되었다.
박완서 작가라는 거대한 산을 산허리쯤에서 둘러본 것 만으로도 이렇게 벅차다니.. 이게 바로 한국 문학을 살리는 작가의 힘이고, 독자들을 사로잡는 박완서 작가의 펜의 힘인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