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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은 그 유명한 파랑새의 작가가 20년간 벌을 키우며 관찰한 경험을 토대로 써나간 책이라고 한다.
[벌], [흰개미의 생활],[개미의 생활]등 사회생활을 하는 곤충을 주제로 쓴 책중에 한권이며 노벨문학상을 받은 그의 대표작이라고 하는데 사실은 처음 알게 되었다. 벌하면 벌침을 놓는 무서운 존재로 나에게는 인식되어있다. 물론 사람에게 꿀을 제공해주는 존재이지만 어렸을 때 소풍가서 음료수를 마시려면 달콤한 냄새에 달려드는 벌들이 너무 무서워서 음료수를 못먹었던 기억이 있다. 지금도 벌이 너무 무섭다..ㅠㅠ 이책은 벌들에 관한 이야기가 들어있다. 인간생활을 닮아있는 벌들의 세계는 신기하기만 했다.
벌집의 정신은 일벌들에게 각자 할 일을 알려준다. 업무는 나이에 따라 다르게 할당된다. 예를 들면 유충과 번데기를 돌보는 유모, 여왕벌에게 필요한것을 준비해주는 시녀, 날개로 바람을 일으켜 벌집의 온도를 조절 하고 꿀의 증발을 촉진하는 송풍가, 건축가, 석수, 밀랍을 만드는 밀랍공, 대열을 지어 벌집 틀을 만드는 조각가, 꿀을 만들기 위한 화밀, 유충과 번데기의 영양분이 될 꽃가루, 건축물의 틈을 메워 강도를 높이는 봉랍, 젊은 벌들에게 필요한 수분이나 소금따위를 모으는 채집가 등이 있다. 또한 자기 침으로 의산을 주입해 꿀의 보존상태를 관리하는 화학가, 숙성된 보물을 저장하는 벌집 방을 봉하는 덮개 전문가,통로나 공공 장소를 청소하는 청소부, 시체를 멀리 내다버리는 시체 운반꾼도 있다. 입구의 안전을 위해 오가는 자를 검문하고, 젊은이들의 첫 외출을 감시하고, 부랑자와 약탈자에게 위협을 가하고, 필요하다면 입구를 막기까지 하는 파수꾼도 있다. 벌과, 벌침, 꿀, 여와벌 내가 아는건 이정도 였는데 정말 그들의 역할은 인간사회의 축소판 같았다. 벌집을 수없이 왔다 갔다 하는 벌들에게는 질서가 있었던 것이였다. 알면 알수록 신기해지는 꿀들.. 분봉이 결정되면 일족전체는 부와 세력이 정점에 달했음에도 다음 세대를 위해 그 모든것을 버리고 멀리 새로운 조국을 찾아 떠난다고 한다. 인간의 도덕을 초월한 행위라고 말한다. 벌집의 정신은 도대체 어떤것일까?? 인간들은 자신의 행복만 보고 살고 있다. 자연환경이 파괴되고, 오염되어가고 있는데 다음세대를 위해서 우리도 벌집의 정신을 발휘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꿀벌 한마리를 무리에서 떨어뜨려놓는다면 어떻게 될까? 충분한 음식물과 적당한 온기를 제공해주어도 꿀벌은 다른 무엇이 아닌 바로 고독 때문에 며칠 이내로 숨진다. 꿀벌에게 집단과 도시는 꿀과 같은 중요한 영양소이다. 벌집의 법칙에 깃든 정신을 알아보려면 이요소도 알아두어야 한다. 벌집 안에서 하나의 개체는 매우 사소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개체의 삶은 집단의 영속성과 완전성에 의해 철저히 희생된다. 흥미롭게도 꿀벌 이외의 동물들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찾아 볼수 없다. 집단이 아니면 살수 없는 꿀벌들 각자 다른일에 매달려 열심히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지, 그들의 규칙은 한치의 망설임 없이 이루어지는걸 보면 태어날때부터 몸에 배어 나오는지 정말 신기하다. 인간의 복사본이라고 하지만 인간은 자연의 법칙을 따른지 않는 능력도 있고 이능력을 발휘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판단할수 있는 능력도 있다. 개체 각자의 자유와 행복을 희생하면서 하는 그들의 임무는 책을 읽어 나갈수록 신기했다.
결혼비행 햇빛이 반짝일때 1만 마리가 넘는 구혼자 행렬에서 선택된 단 한 마리만이 여왕과 합체하고, 동시에 죽음과도 함체한다. 여왕벌이 높이 비상할수록 능력의 한계에 부딪친 수벌들은 탈락하고 한마리만 결합한다고 한다. 결합이 끝나면 수벌의 배가 갈라지고, 생식기관을 따라 창자가 터져나오며, 날개에 힘이 빠진다고 한다. 그리고 희생된 한마리의 수벌외에 나머지 수벌들도 모두 학살을 당한다고 한다. 제일 신기한 부분이다. 벌집의 미래를 위해 수벌을 희생시키는 것이다. 이책은 벌에 관한 책이지만 그들의 생활을 엿보며 철학적인 사고를 할수 있는 책이다. 읽으면 읽을수록 신기한 벌들의 세계 , 벌들의 신기한 모습에 촛점을 맞추어 읽었지만 이번에는 철학적인 모습을 생각하며 다시 읽어봐야겠다. 좀 어렵게 다가오긴 했지만 정말 매력적인 책인거 같다.
벌들은 인간이라는 존재의 가장 불가사의한 부분의 일종의 복사본이다. 그들의 세게는 우리 인간이 철저히 풀어 헤칠수도, 최후까지 파헤칠 수도 없는 크고 단순한 선으로 축소되어 있다. 그들은 정신과 물질, 진화와 블변, 과거와 미래, 생과 사가 한손으로 다 들 수 있을 정도로 작은 방 안에 모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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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약 100여년 전인 1901년에 쓰여진 책으로써 벌의 생태와 습성에 대하여 전문성을 요하는 학문적 시각이 아니라 일반인들도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문학적 시각으로 쓰여졌다는 점이 특이하다.저자는 벨기에 태생임에도 불구하고 본격적인 문학활동은 프랑스 파리에서 하였는데 아마도 프랑스가 저명한 곤충학자 파브로와 '개미'의 저자 베르나르 베르베르를 굳이 들먹이지 않더라도 곤충에 관한 연구 및 저술을 하기에 필요한 자료가 다른 나라보다도 풍요로운 것에 기인하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특히 이 책을 접하는 대부분의 독자들은 한번 이상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장편소설 '개미'를 연상할 수 있는데 '개미'가 소설적 근간인 허구적 기법을 사용하여 독자로 하여금 개미의 생태에 대하여 흥미를 유발한 반면 이 책은 벌을 연구한 수많은 곤충학자들의 논문을 적절하게 인용함은 물론 자신이 직접 오랜 기간동안 벌을 양봉함으로써 터득한 경험을 토대로 한 사실적 현상을 저자의 치밀하고 화려한 문체로 그려내어 더욱 더 현실감과 생동감을 준다.
특히 이 책은 벌들의 행동양식에 대하여 인간이 일반 곤충에 대하여 가지는 우월적 편견을 최대한 배제한 채 가능한 객관적인 입장에서 벌들의 생태를 그려내고 있다.여왕벌,수벌 그리고 일벌...이러한 명칭은 어쩌면 인간의 시각에서 바라본 명칭인 것이며 그들간에는 철저히 역할분담이 되어 있어 각자 계층은 교묘하게 주고 받음이 명확하게 분배된...따라서 어느 누구도 불평등하지 않게 이루어진 자연의 신비로운 구도인 것이다.즉 여왕벌이 한순간이라도 번식에 소홀히 하는 순간 철저히 암벌들에 의하여 살육당할 수 있고 숫벌 또한 수천마리 중 오로지 한마리만..그것도 딱 한번 여왕벌과 교미에 성공하게 되면 즉시 처절하게 죽음을 맞이하며 교미에 실패한 나머지 수벌들도 어느날 갑자기 천벌을 맞은 양 살육을 당한다.이 점에서 자연은 모든 생물의 성접촉은 철저히 번식을 위한 것이라고 교시를 내린 듯 하다.인간 세계처럼 성이 번식이 아닌 쾌락의 도구로서 잠시라도 사용되어지는 것을 전혀 허용하지 않는 것이다.
또한 수많은 정교한 정육각형의 집합체인 벌집의 불가사의한 생성에 대하여 여러 곤충학자들이 연구결과를 냈지만 저자는 그 어떤 연구논문도 이 위대한 벌집의 생성구조에 대하여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였다고 판단을 내린 듯 하다.인간세계에서는 소위 세계 7대 불가사의 건축물에 대하여 이런 저런 추측이 많지만 그 어떤 불가사의 인공건축물보다 벌집구조는 훨씬 신비로움을 보여주고 있다.전혀 한치의 수학적 오차를 허용하지 않는 벌집형성에 대하여 그 많은 벌들이 어떻게 서로 의사소통을 하면서 집을 짓는지에 대하여 저자는 경외를 표하고 있다.
이 책은 어린 시절부터 벌들의 생활 및 벌집의 구조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보였던 본인에게 더 없이 중요한 선물을 주었다.일반인들에게 곤충학이라는 영역은 너무나 전문적이고 접근하기 힘든 영역이지만 저자 모리스 메테를링크는 독자들에게 접근하기 쉬운 문학적 필체로 함께 연구하고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는 점에서 이 책의 가치는 실로 빛난다고 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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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들은 인간이라는 존재의 가장 불가사의한 부분의 일종의 복사본이다. 그들의 세계는 우리 인간이 철저히 풀어헤칠 수도, 최후까지 파헤칠 수도 없는 크고 단순한 선으로 축소되어 있다. 그들은 정신과 물질, 진화와 불변, 과거와 미래, 생과 사가 한 손으로 다 들 수 있을 정도로 작은 방 안에 모여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개미]를 무척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난다. 작은 곤충, 벌레라고 치부해 버리기엔 그들의 세계는 우리의 궁금증을 자아냄은 물론 그들의 삶을 통한 우리내 삶마저 생각해보는 기회로 적용되고 있다. 그런 이유에서 [개미]는 단순히 새로운 소재나 이야기 거리의 제공이 아닌 의미로 또다른 재미를 주었던 것 같다. 이 책 [벌] 또한 그런 의미에서 매우 흥미진진하다. 벌에 대한 새로운 사실들을 이학적 잣대가 아닌, 감성과 지성 그리고 철학을 가지고 그려내고 있다는 점, 우리가 자연에 대해 아직도 모르는 것이 많다는 것은 인간이 세상에서 많은 것을 배웠음을 반증한다는 역설적 시각이, 그가 하고자 하는 많은 벌의 이야기를 돋보이게 한다.
분봉과 새도시의 건설, 젊은 여왕벌, 결혼 비행, 수벌 살육, 종의 진화 등 각 장마다 그들의 삶과 우리들의 삶을 비교한다. 어쩌면 우리에겐 무의미하게 보이거나 너무 맹목적인 것에 그들의 삶의 존폐마저 거는 그들의 행동이 과연 잘못된 것일까? 우리 인간이 만들어 온 가치관이나 이념을 그들의 삶에 적용한다는 시각이 잘못된 것은 아닐까.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개미]보다 훨씬 전에 지어진 [벌]. 벌을 통해 그들의 삶을 지켜보면 가지는 즐거움 보다는, 그들의 삶을 비판하고 나무랄 수 있는 우리 인간들의 기준이 잘못되었거나 그럴만한 지위가 있는지조차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아무리 미물이지만 배울 점은 배워야 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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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하면 생각나는 단어.꽃과 벌. 벌하면 또 생각나는 것이 달콤한 꿀이다. 달콤한 꿀을 만들어내지만, 그렇게 신비롭게 다가오지도 못했었다. 아무래도 벌에 대한 좋은기억보다는 무섭고 떨리고쓰리고 아픈기억ㅠ-ㅠ이 많으니
벌.을 자세히 알지도 못했으니 꿀을 주고 8자춤을 추는것밖에 알지 못함 속에서도 이책을 읽고싶었던 이유는 벌의세계를 엿봄으로서 보더 더 철학적으로 이해하고 마음으로읽어서 작은 꺠달음이라도 얻을수 있을것같았기 때문이였다.
벌을 연구했다는 저자. 그러나 그 연구는 논문이아니라 벌에 관한 철학적이며 문학적인 글을 씀으로벌을 통해 우리를 돌아보고 나자신을 돌아보게 함이 아니였을까 생각된다.
그렇게 단호하게 말하는 저자의 글에서는 인간적이면서도 벌의 삶의진솔함이 느껴지는 글이였다. 몰랐던 사실을 하나,둘 알아가는것도 벌을 철학적으로 구성하고 읽고있다는 사실도 마냥 재미있었던것 같다. 그속에서 생각에 꼬리를물고...그렇게 인간의 삶을 돌아보는 책이 였다. 벌.이라고 하면 수많은 곤충중에 하나일 뿐이겠지만, 나는 수많은 곤충들중에서도 '벌'이 가지고 있는 매력을 읽을수있었다. 여왕벌,수벌,꿀벌등..자신이 갖고있는 일에 대해충실히 하는벌.집단생활을 하고, 때로는 각자에게 시련이 다가오는것 처럼 느껴졌지만 그렇게 태어났기에 자신에 알맞는 삶을 살다 가는 벌들을 바라보며 나또한 벌들속에서 '나'라는 인간에 대한 자아를다시 되찾아가는 기분이마냥 들었다. 좋았던 문장도곳곳숨어있고, 읽다가 그렇게 좋은문장이 나올때마다번쩍 번쩍 정신이 들었다. 벌의 움직임,행동, 모든것을 사람화시켜가며! 상상하며! 읽는 재미도 있다.
어려울것 같지만 읽다보면 쉽게빠져들었던같다. 분석해가면서 읽기보다는 차분하게 물흐르듯이 그렇게 부담을 버리고 읽어가다보면 문학적인 구절을 통해 나를돌아보게 되고 벌에 대한 신비로움, 그리고달콤한 향기가 전해져오는듯한 느낌을 받을수 있을것이다~
읽으면서 내내 달콤한 꿀이생각났다. 이젠 벌을 무서워 하지 말아야지!ㅋ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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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가 인간의 사회성과 닮아 있어서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있다. <벌>을 읽으면서도 같은 느낌을 받았다. 소설인 듯하지만 에세이의 성격이 강한 <파랑새>의 작가 메테를링크의 작품 <벌>. 참으로 아름다운 문체에 우선 매료되고, 그리고 소재의 특이함에 흠뻑 빠져들었다. 게다가 국내 최초 번역 출간된 책이다. 전세계적으로 많이 읽힌 책인데도 불구하고 늦게 소개된 데에 무슨 연유 있지 않을까 책을 읽으면서 엉뚱한 궁금증이 들었다. <개미>는 극화체의 소설이다. 하지만 <벌>은 그와 다른 서술방식을 구사하고 있다. 어느 정도의 거리를 두고서 관찰하고 있다. 벌의 생태, 군집성 등을 자세히 묘사하고 있는 작가의 필법은 참으로 살갑고 때로는 냉정하리만큼 차갑다. 하지만 그토록 냉철한 작가정신이 그를 노벨문학상의 주인공으로 이끌지 않았을까, 부러움이 들었다. 상을 받고 아니 받고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벌>은 그 제재뿐 아니라 문체에 있어서도 참으로 귀한 작품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메테를링크는 벌을 인간의 복사본으로 벌을 다루고 있다. 벌을 관찰하고 있는 그의 시선은 인간세계에 대한 애착을 비유적으로 드러낸다. 벌의 정신과 물질,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그들의 공간에서 찾아낸다. 인간문명의 수준과 나란히 하고 있는 그들의 세계를 보며 감탄을, 존경을, 경외심을 드러낸다. 그리고 무엇을 배워야 할지를 메테를링크는 우리에게 알리고 있다. 메테를링크는 훌륭한 양봉가라고 한다. 하지만 그는 말한다. “나는 이 책에서 양봉과 꿀벌의 사육에 관한 논문을 쓸 생각이 없다. 이미 여러 나라에서 뛰어난 연구논문이 많이 나와 있기 때문이다.” <벌>의 첫 문장에서 메테를링크는 자신의 의도를 직접적으로 밝히고 있다. 그러면 왜 이 책을 썼는가. 읽는이의 의문을 증폭시킨다. 메테를링크는 벌에 대한 정보를 더 많이 알고, 밝히려는 입장을 취하지 않았다. 물론 생태학적인 지식을 책에서 쉽게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작가는 무게 중심을 다른 곳에 두고 있다. 자연의 신비에 대해서, 그 불가사의에 다가가기 위해서 우리가 지녀야 할 자세를 피력한다. 그것은 관심이다. 무심함이 얼마나 많은 물리, 정신적 폭력을 자아내는지 우리는 수없이 목격해왔다. 그리고 여전히 무심함으로 세계는 파괴되어 가고 있다. <벌>은 그들의 세계가 인간의 사회와 어떻게 닮았는지를 보여주면서, 인간의 거만함이, 인간의 무지가 왜 문제인지를 드러내고 있다.
메테를링크가 파랑새의 작가라 한다. 외국문학에 대해서 거의 문외한이라 새로운 정보를 얻게 되었다. ^^;; 게다가 파랑새가 소설 아니라 희곡이었다는 것까지 이번 <벌>을 만나면서 알게 되었다. <벌>을 읽으면서 파랑새의 작가가 가진 세계관, 문학관이 어떠한지 알게 되어 참으로 큰 수확이었다. <벌>은 <흰개미의 생활>, <개미의 생활>과 더불어 곤충 3부작이라고 한다. 그리고 메테를링크는 <꽃의 지혜>를 비롯한 많은 식물서적을 남겼다고 한다. 많은 작가들이 왜 자연을 소재로 한 글로써 끊임없이 독자에게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는지, 그 의미를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벌>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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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벌’이라는 제목을 가진 이 책의 소개 즉, ‘논문보다 더 생생하게 사실을 기록하고, 구체적이면서도 자유로운 고찰을 바탕으로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꿀벌에 관한 놀랍고도 흥미로운 사실들을 접할 수 있을 것이다.’ 라는 설명을 보면서 벌이나 벌집의 그림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이 책에서 벌과 벌집, 그리고 그 주변환경에 대한 그림은 볼 수 없다. 그러나 충분히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을만한 훌륭한 문학적 표현들을 수없이 만나게 된다. 파랑새의 작가인 모리스 메테를링크, 시인이며 극작가이자 수필가라는 소개에 걸맞는 생생한 문장들이 쉴새 없이 계속된다. 그리고 그 속에서 벌에 대한 애정이 묻어난다. 그가 ‘결혼비행’이라 부르는 벌의 짝짓기에 대한 표현이다. ‘...이 얼마나 놀라운 도취인가? 쾌락의 정점에 이르렀을 때 죽지만, 지독히도 투명한 하늘 속에서 행복의 순간을 결정하고, 티끌 하나 없이 투명한 빛 속에서 정화하고, 포옹을 영원 속에 남긴다. 그리고 이때만큼은 죽음도 관대한 세금을 징수하는 데 만족하고, 어머니의 손길로 먼 미래를 위해 작고 약한 두 생명을 이끌어주고, 결합시켜주며, 한 몸 안에서 더는 헤어지지 않도록 보살핀다.’(p.164) 이렇듯 작가가 벌의 세계를 바라보는 눈은 특별하다. ‘꿀벌은 자신들이 모으는 꿀을 자신들이 먹을 수 있는지 어떤지 신경 쓰지 않았다. 우리는 우리가 우주에 끌어들이는 정신의 힘을 누가 이용하는지 않지 못한다...’(p.222) 면서, 우리 인간도 유기체로서의 의무를 다했다는 확신을 가지고 만반의 준비를 하자고 이야기한다. '인간적인 의무에 열의를 가진 인간에게는 모든 일이 필연적으로 수월하게 흘러갈 것이다.‘(p.223) 라고 마무리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좋은 문장을 만나는 대신, 그 만큼의 댓가는 치러야했다. 모든 문장을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며, 꼭꼭 씹어먹듯 읽어야 했기에 다른 독서보다 많은 시간이 투자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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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 / 모리스 메테를링크 지음, 김현영 옮김 / 이너북
벌과 파리를 상자에 같이 넣고 상자 아래에 구멍을 내고 두면 파리는 몇분 후에 구멍을 통해 나오지만 벌은 나오지 못하고 배회한다. 그래서 벌보다 파리가 더 영리하고 머리를 쓸줄 알고 지능이 벌보다 높다고 말들 한다. 하지만 이런 상황의 내막을 조금 들여다보면 파리는 구멍이 있는 줄 알고 그 구멍을 통해 밖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아니라 파리는 이리 저리 빠져나갈 곳이 없나 머리로 부딪히면서 찾아다닌다. 그래서 우연히 구멍을 발견하면 소 뒷걸음질하다 개구리 잡는다는 격으로 빠져나가는 것이다. 자신의 몸을 벽에 부딪히는 고통을 감수하는 파리의 내면에는 이런 비밀이 숨겨져 있다. 벌은 구멍으로 빛이 들어오지 않기 때문에 찾을 수 없었던 것이다. 벌은 오감을 동원해 구멍을 통해 빛이 들어오는 것을 감지하고 이 곳이 세상과 소통하는 유일한 통로라는 것을 인식한다. 상자에 낸 구멍을 위로 하거나 옆으로 했을 때 벌은 구멍 주위를 이리저리 몇번 배회하다가 결국 빠져나왔다. 결과적으로 벌이 더 영리하고 자신의 오감을 동원할 줄 하는 곤충이다. 우리 인간도 벌가 비교했을 때 지각능력을 이용할 줄 아는 동물이다. 주먹구구식으로 무조건적인 반사로 행위를 하는 파리보다는 벌처럼 빛을 찾아 배회하는 행위를 하고 있는 고도의 지능을 소유한 동물로 비교 분석할 수 있겠다.
모리스 메테를링크의의 <벌>은 오랫동안 벌에 대한 관찰 결과를 자세히 기록해 놓고 있으며 작가 개인의 벌에 대한 철학이 담겨 있다. 철학이라고 해서 인간이 곤충에 대한 철학을 논할 수 있겠냐는 반문을 해볼 수도 있겠다. 허나 찬양이라기 보다는 인간과 벌을 비교하면서 공통점, 차이점, 유사성에 따른 비교, 그리고 벌 자체의 독특한 습성에 대한 연구가 포함되었다는 정도로 이야기할 수 있다.
#삶의 순환 : 벌은 인간이 신비로운 꿀벌들의 정신세계를 살펴보기 위해 또 생활을 위해서 그 벌집을 열어본다. 분봉을 하는 시기는 그 신비로움이 밝혀지는 순간으로 여왕벌을 중심으로 꿀을 모으는 벌의 부지런함과 지혜로움을 인간은 혜택을 받는 행위라고 여긴다. 벌들은 스스로 선택했던 아니면 강제적으로 어쩔 수 없이 선택했든 분봉을 해서 또 다른 자신들만의 세계를 건설한다. 육각형 모양의 집을 짓고 거기에 여왕벌, 알집, 일벌들이 꿀 저장창고, 입구, 도로 등을 만드는 힘겨운 시기를 거친다. 우리는 흔히 벌집을 역 원뿔 모양의 허공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모양이라고 간주한다. 여왕벌들은 수 많은 수벌들을 거느리고 살아남기 위해 여왕벌로서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수정을 하고 수정을 위해 소위 '결혼비행'이라는 성스러운 행위를 한다. 결혼비행에 대한 묘사가 이 책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이내 결혼비행을 끝내면 수벌들은 무참히 생을 마감하는 독특한 삶의 순환을 발견할 수 있다.
#벌의 능력/한계 : 분봉이 시작되면-그러니까 타의든 자의든 자신들이 도시(벌집)를 파괴하고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는 단계-불안정한 생황에 뛰어들 시기가 온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사람들은 이들이 결국 숙명적인 광기나 기계적인 충동, 거부할 수 없는 자연의 의지, 즉 어떤 생물도 피해갈 수 없는 저 시간속에서 감취진 신비한 힘을 따른다고 믿는다. 꿀벌들에게 배우는 숙명을 초연하게 받아들이는 능력! 분봉은 반드시 무의식의 신이 정한 희생에 대한 열광이라고 작가는 표현한다. 그것은 꿀의 제전이며 종족과 미래의 승리하고 작가는 또한 말한다. 벌들은 자신들이 피해갈 수 없는 상황에 자포자기 하거나 쉽게 생명의 끈을 놓지 않고 의연하고 태연하게 받아들이며 어떻게 해서든지 종족을 번식하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고 그런 행동을 서슴지않고 행한다. 이것이 벌에 대한 찬사를 보내는 이유며 우리 인간들이 본받아야할 철학이 담긴 생물의 몸부림이다. 하지만 벌은 산업, 보안체제, 놀라운 자기희생 정신은 우리를 놀라게 하지만 그들에게는 우리가 결코 칭찬할 수 없는 부분이 분명히 있다. 그것은 동료의 죽임이나 불행에 무심하다는 것이다. 이중성을 지녔다. 시험삼아 벌집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벌이 다리를 부러뜨리거나 거의 죽음 직전에 가게끔 한 후 놓아보면 벌들은 무심히 지나치고 계속 꿀을 모으는 일에 열중한다. 이는 종족번식과 생존에 대한 본능이라고 하겠지만 인간처럼 아니 다른 동물처럼 어떤 연민이나 동정, 연대감 등을 찾아볼 수는 없다.
#벌 이야기 : 꿀벌의 세계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는 이 책 <벌>을 접하면 꿀벌 세계의 셀 수 없이 많은 규칙, 놀라운 재능, 지식, 다양한 산업, 미래에 대한 예측, 영리한 습관 등이 비밀스럽게 감춰져 있음을 지나쳐버린다. 민약 꿀벌 한마리를 무리에서 떨어뜨려 놓는다면 어떻게 될까? 충분한 음식물과 적당한 온기를 제공해주어도 꿀벌은 다른 무엇이 아닌 바로 고독 때문에 숨진다. 꿀벌에게 집단과 도시는 꿀과 같은 중요한 영양소다. 이것이 벌들의 놀랍고 신비스런 이야기다.
현재까지 알려진 벌의 종류는 모두 4,500종에 이른다고 하는데 이 모든 종류의 벌들이 모두 마찬가지 생활습성을 가질 것이다. 인간이 생긴모양이나 사고방식, 정신세계가 다르지만 공통보편적인 사고나 행동은-기본적인 의식이나 의지가 있는 인간이라는 조건하에-모두 같을 것이다. 벌들도 마찬가지 아닐까?
작가는 벌을 찬양하거나 인간보다 뛰어난 능력을 가졌다는 사실을 밝히려고 한 것은 아니다. 단지 벌의 독특한 습성이나 방식이 다른 생물들과 다르고 인간의 습성과 비교했을 때 비교할만한 부분이 있기 때문에 관찰하고 표현한 것으로 본다. 심오한 종족번식의 진리, 그리고 삶의 방식, 독특한 자기만의 양식 등은 중요하다. 이런 점에서 벌도 역시 독특함을 가지고 있어 우리들이 한번쯤 심사숙고해서 벌을 연구할 필요가 있다. 벌을 하등동물로 여기는 것은 당연한다. 하지만 무턱대고 미물일지라도 벌의 습성을 따라가지 못하는 우리들의 한계도 존재한다. 그 한계를 발견하는 것-벌과 비교할 할 수도 있지만-이 우리가 벌을 연구하고 글로 읽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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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기 전에는 벌을 주인공으로 한 일종의 의인화 소설이 아닐까 생각했었다. 그러나 막상 책장을 넘기고 보니 이 책은 벌에 대한 분석, 감상, 연구, 평가 등을 총 망라하여 벌의 생태와 습성, 사회적 특성을 설명하고 있으며 그에 덧붙여 인간 또한 벌에 빗대어 이야기하고 있다.
작가가 벌에 대한 오랜 연구와 관찰을 토대로 [분봉/ 도시건설/ 여왕벌 / 결혼비행 / 수벌사육 / 종의 진화] 등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바로 분봉이다.
작가는 분봉을 "벌집정신"이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다. 이는 쉽게 말해 기성세대가 자라날 신세대를 위해서 기득권을 포기하고 자신들을 희생하여 떠나줌으로써 기존의 벌통에서는 새로운 세대가 주역이 되게 된다.
한편 기존의 여왕벌과 함께 벌통의 주축이었던 전체 일벌의 70%에 달하는 일벌들은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아서 여행을 떠나고 장소를 정하면 그곳에 처음부터 새로 벌집을 만들고 그들의 새로운 터전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미래의 세대를 위한 기성세대의 철저한 자기희생.. 자식들의 장래를 위해 파출부, 노래방 도우미까지 마다 않는 우리의 어머니들을 생각나게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런 희생이 이루어지는 벌의 사회가 얼마나 독특한 사회인지 또한번 깨닫게 해주었다.
책의 내용도 내용이지만 읽는 내내 예전에 보았던 [가타카]라는 영화가 계속 생각났다. 가까운 미래에는 유전자의 우열에 따라 인간들도 등급이 매겨지고 유전자가 우등할 수록 좋은일과 좋은 배우자를 선택할 수 있고 그렇지 않을 수록 하급의 선택만이 주어지는 사회에 대한 영화였는데, 평생 알만 낳는 여왕벌과, 각자의 분야가 확실히 나누어져 있는 일벌, 그리고 수벌들의 세계가 왠지 그 사회와 닮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읽는 내내 놀라기도 하고 왠지 섬뜩해지기도 하는 그런 글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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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 - 모리스 메테를링크
벌. 처음 생각했던 벌은 죄와벌 할때 그 벌이었는데...
벌의 분봉의 모습.
끊임없이 벌과 인간을 나란히 놓고 이야기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