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가 있기전 원작이 있는 작품이라면 누구나 그 원작에 관심이 가는게 인지상정이다. 그래서 원작을 찾아 읽게 되는 경우도 있고 아니면 영화를 먼저 접하고 읽을 수도 있고.. 원작을 읽고나서 영화가 나와 볼 수도 있다. 암튼, 무엇이 먼저이든 간에 중요한건 영화판처럼 원작과 불가불의 관계도 없을 것이다. 여기 그렇게 불가불처럼 나온 작품이 있으니 바로 장예모 감독의 <인생>과 '위화'의 원작 <인생>이다.
http://www.yes24.com/24/goods/2634965?scode=032&srank=2 |
|
중국어 학습용으로 사용하려고 했는데 광동어네요.. 그래서 알아듣는 말이 없다는..ㅠ.ㅠ 좋은 영화라는 것은 말씀 안드려도 다들 아실테지만.. 번체와 영어 자막 위에 한국어 자막이 뜨는 것이라 한국어로 볼 때는 보기 힘드네요.. |
|
다시 봐도 장예모 감독의 <인생>은 참 좋은 작품이다. 이렇게 되지 않을까라고 예상한 전개와 가끔 다르게 가다가도 또 어느 순간 또 그렇게 예상한 전개를 따라가기도 한다. 아마도 그런 것이 인생이 아닐까 싶다.
격변하는 시대에 살았던 한 남자와 그의 가족에 관한 영화다. 다시 봐도 참 좋은 영화다. 삶이란 참 이해하기 힘든 구석이 많고, 아이러니하다고 느낀다면 아마 당신은 이 영화를 보면서 많은 것을 느낄 거라 확신한다.
장예모 감독의 영화 중에 이 작품이 단연 최고라고 생각한다. |
|
작가 위화와 영화감독 장이모의 팬이라면, 이 작품이 위화의 동명소설 "活着"을 영화화했으며 칸느 영화제 수상작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원작을 뛰어넘는 걸출한 작품이라고 생각하여 지금도 많은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있다.
몇 년 전, 2,900원이라는 특가에 DVD를 구입하여 (중국어를 할 줄 알기에) 원어자막으로 다시 재밌게 보았더랬다.
그러다가 중국 현대사를 이해하기 위한 부교재로 이 DVD를 학생들과 함께 감상하게 되었는데, 아뿔싸~ 내가 그때까지 확인하지 않았던 한국어 자막 수준이 그야말로 엉망진창이었던 것이다. 그때의 당황스러움이란......
자막만 보고 내용을 이해해야 하는 학생들은 웃어야 하는 타이밍에 웃지 않고, 눈물이 맺힐 대목에서 하품을 하는, 고달픈 억지 관람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학생들에게 얼마나 미안했던지...... 자막과 번역가의 수준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닫는 계기가 되었음은 물론이다.
영화가 아무리 훌륭한들 무엇하나. 작품 이해의 통로가 되어줘야 할 자막이 관객들을 산으로 몰고 가는데......
|
|
1940년대 중국, 부유한 지주집 아들인 부귀(갈우 분)는 아름다운 아내(공리 분)까지 둔 부러울것 없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도박에 빠져 전재산을 잃게 되자 아내는 자식을 데리고 친정으로 가버리고, 아버지는 충격으로 숨을거둔다. 일순간에 생의 밑바닥으로 추락한 그는 아내가 돌아오자 자신의 재산을 빼앗은 사람에게서 그림자극 도구를 얻어와 그림자극을 하며 생계를 유지하게 된다. 그렇게 행복을 조금씩 배워가는 그에게 역사는 그를 역사의 소용돌이 속으로 밀어넣는다. 장이모우 초기 영화 컬렉션의 마지막 작품, 그의 95년작 <인생>. 이제 그의 완숙한 연출력에 어느정도 적응이 되어서인가, 물흐르듯이 흘러가는 이 영화는 그의 전작들처럼 센세이셔널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그들 부부가 혼란스러웠던 중국 역사의 한 부분을 살아내는 모습이 매번 막다른 길인 듯 하면서도 또 살아나갈 구멍을 찾아가는 인생사가 너무나도 자연스럽고도.. 객관적으로 보이게끔 만들어져 있어서 나는 등장인물의 심리에 공감하는 대신 할머니가 들려주는 옛날이야기를 듣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도박으로 집을 잃은 부귀는 장사 밑천을 마련하기 위해 자신의 집을 빼앗은 사람을 찾아간다. 돈대신 그로부터 빌린 건 그림자극 도구였다. 그 때부터 그 그림자극 도구가 담긴 나무상자는 부귀 가족의 밥줄이 됨과 동시에 무슨 업보처럼 부귀에 등에 매달려 전쟁통을 돌아다니게 된다. 꼭 살아남아 가족에게 돌아가고 나무상자를 주인에게 돌려주어야 한다는 일념으로 부귀는 전쟁터에서 살아나가지만 그의 집을 빼앗은 자는 동네 사람들의 미움을 사 총살당한다. 그의 나무상자는 전쟁에 필요한 물자를 조달하기 위해 쇠를 공출할 때 뜯겨나갈 뻔 하는 위기를 거치고 문화 혁명 즈음에는 그림자극 인형들을 태워버리도록 종용받는다. 영화 마지막에 그 나무상자의 새로운 주인이 된 것은 노부부가 된 부귀와 자이젠의 어린 손자가 키우는 병아리들이었다. 세월이 바뀌고 시대가 변해 사상이 변화되는 동안 세상이 담긴 그릇은 그대로지만 그 안의 내용물은 전부 교체되었다. 부부는 늙고 누군가 죽고 새로운 사람이 태어나고 친구가 떠나고 새 가족이 생기고... 결함이 있지만 선한 그들의 사위의 신체처럼 그들은 불완전하지만 대안적 가족의 형태를 이룬채 또 살아가게 된다. 인생이란 그런 것이라지. 장이모우 영화에서 등장인물들이 무언갈 먹는 장면이 항상 중요하게 나온다. 그렇게 먹고 자고 사랑하고 미워하고 죽게 되는 개인사와 그 모든 것을 관장하는 거대한 역사, 그 안에서 인생과 영화는 언제나 비슷한 보폭으로 걸어나가는 것 같다. 중국의 근현대사를 이렇게 꼼꼼하게 영화 안에 담아낼 수 있다니 장이모우 감독이 진정한 내셔널 시네마의 거장인 이유를 거듭 깨닫고 있다. 장이모우 감독과 공리 정도의 필모와 아우라가 되어야 진정한 '국민'감독, '국민'배우라는 호칭을 붙일 수 있는 게 아닐까. 장이모우 초기 영화로 중국 근현대사 보기 : 2009/01/09 - [영화] 귀주 이야기 (秋菊打官司: The Story Of Qiu Ju,1992, 장이모우)_순박한 신념은 때론 배반당한다 2009/01/14 - [영화] 홍등 (大紅燈籠高高掛: Raise The Red Lantern, 1991, 장이모우)_절제와 응축의 미 2009/01/20 - [영화] 국두 (菊豆: Judou, 1990, 장이모우)_상처받는 여성과 중국의 오버랩 2009/01/10 - [영화] 붉은 수수밭 (紅高梁, Red Sorghum, 1987, 장이모우)_중국의 색에 취하다 * 영화는 좋은데 자막이 엉망이다...;; |
| 소설은 장예모 감독의 영화를 보고서 보게 되었다. 쓸쓸하지만 폐부를 찌르는 듯한, 뭔가 날것이 살아 숨쉰다. . 냉정히 평가했을 때 문학성이 뛰어나다거나, 문체가 좋다던가 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높은 수준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좋아할 수 있는 그런 느낌이랄까. 원작 소설을 그대로 살린 줄거리에 공리와 장예모가 색을 입힌다. 너무 슬쓸하지만 그래서 더 처연한 사람의 인생이다. 장예모의 변질이 너무 안타깝게 느껴지는 초기작, 그래서 더 좋다. |
|
이욱연 씨의 책 <중국이 내게 말을 걸다>를 읽다보면 중국 여행까지는 아니더라도, 각 지명마다 언급되는 중국 영화들을 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특히 내가 읽던 위화의 <인생>의 영화를 풀어내는 장을 읽고, 디비디가 믿을 수 없게 “싼” 가격에 나왔기에 얼른 구입했다.
그런데, 역시, 옛말 틀린 게 없다더니, 싼 게 비지떡이다. 화면은 부옇고 초반부는 배우들의 목소리와 입술 모양이 엇갈리는 듯 해서 영 어색하기만 한데다 중문, 영문 자막 위로 겹치는 우리말 자막도 이상했다. 중국어를 모르니 영문 자막과 비교해서 한글 자막은 많이 줄인데다 틀린 번역도 많고 이욱연 씨가 설명했던 감동적인 장면의 명대사 마저 다 건너 뛰었다. 한글 자막을 없애고 영문 자막만 읽자니 부연 화면에 부연 자막이 눈을 괴롭힌다.
영화 시작 후 삼십 분 정도 이렇게 고행을 하다보면 어느 정도 영화 속 이야기에 익숙해 지는데, 오늘 읽은 <몽실이>가 자꾸만 겹쳐서 떠오른다. 푸쿼이 주변이나 몽실이 주변에나 다 너무 착하기만 한 사람들이 힘든 세상에서 고생하고 있었다. 두 아이를 다 잃고 마는 푸쿼이와 그 부인의 이야기에 가슴이 아리기도 했는데, 화질과 자막 덕에 감동의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그림자극은 원 소설 <인생>에는 없었지만 영화에서는 유용한 도구로 쓰였다. 억지스러운 중국 문화 알리기라는 생각도 들지만, 그림자극이나 영화, 그리고 소설 모두 인생을 펼쳐 보여주는 놀음 아닐까, 싶기도 했다. 한 판 신나게, 구성지게 놀고 나면, 다들 쓸쓸해지는 것.
아, 그리고 계속 해서 나오는 만두, 만두, 만두. 나는 그 중 늙은 의사 선생이 일곱 개나 먹고 기절해 버린 왕만두가 제일 탐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