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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조어'만으로 모든 걸 덮을 수는 없다
"'신조어'만으로 모든 걸 덮을 수는 없다 " 내용보기
저자, 그리고 저자가 그토록 목메어 자찬하는 <수유..너머>의 공부사랑과 그에 속하는 일군의 공부하는 이들에 대한 애정, 또한 그들이 쏟아내고 있는 다양한 글들에 대해 늘 존경하며 탐독하는 독자로서 이 책을 읽은 소감은 '아니올시다' 이다. 하지만 먼저, 글이 잘 읽힌다는 칭찬부터 해야겠다. 책을 잡고 서너시간이면 족히, 그리고 별 어렵지도 않게 잘 읽힌다. 중간 중간 재
"'신조어'만으로 모든 걸 덮을 수는 없다 " 내용보기

저자, 그리고 저자가 그토록 목메어 자찬하는 <수유..너머>의 공부사랑과 그에 속하는 일군의 공부하는 이들에 대한 애정, 또한 그들이 쏟아내고 있는 다양한 글들에 대해 늘 존경하며 탐독하는 독자로서 이 책을 읽은 소감은 '아니올시다' 이다.

하지만 먼저, 글이 잘 읽힌다는 칭찬부터 해야겠다.

책을 잡고 서너시간이면 족히, 그리고 별 어렵지도 않게 잘 읽힌다.

중간 중간 재미난 말들을 덧붙여, 피식~ 하는 웃음도 간간히 터져 나온다

그리고 내용에서도 이미 '현대의 고전'으로서 반열에 올라 있는 이반 일리히의 주장을 큰 줄기로 삼고 있는 점, 저자의 장기인 연암의 글들을 시도 때도 없이 펼쳐 놓은 점 등 등등은 내용의 전반적인 기조가 그저 에세이 풍의 글에서는 좀 벗어난 무게감을 느끼게 하기도 한다.

그러나 다 읽고 나면 허망하다.  

우선 10대부터 60대까지를 아울러 '공부하자!'는 주장을 설파하려 했다는데, 좀 지나친 느낌이다.

어디 문화강좌의 한 귀퉁이를 차지하자는 말이라면 그 정도는 참아 줄 수 있을 것같다. 그러나 기껏 '工夫'의 중국식 방음을 차용한 '인간 규정'(호모 쿵푸스) 이라는 조어 하나만으로 이 모두를 감싸기에는 저자의 평소 내공(?)으로는 좀 모자라도 한참 모자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어디선가 누구에겐가 한번쯤은 모두 들어 본 이야기를 중언부언하고 있음은 물론이고 우리의 학교, 교실, 수업을 비롯하여, 소비위주의 문화, 출세 지향 혹은 물질적 안락 추구의 사회상 등등에 대한 현실 비평 또한 어지간한 '시평'에서 두루 볼 수 있는 내용들이 아닌가?

저자의 다른 작품 몇몇을 흥미롭고 진지하게 읽은 독자의 입장에서는 다른 무엇을 기대헀는데, 무엇 하나 핵심 줄기를 잡고 이에 천착하는 진지함이 도무지 결여되어 있다. 책을 쓰기 위한 책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어느 정도 분량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미 <아무도 기획하지 않은..>이라는 저작에서 소개한 <수유..너머>에 대한 지리한 소개, 그리고 그 주변을 둘러싼 이들에 대한 장황한 이야기는 짜증이 난다.

물론 그 연구공간과 소속의 공부하는 이들을 매도하거나 폄하혀는 의도는 추호도 없다.

적당한 저작으로 종이와 독자의 시간을 뺏지는 말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추상적이고 두리뭉실하고 그리고 광범한 이야기를 숨차게 펼치면서 주마간산식으로 흐르다 보니 독후감에 집어 넣을 알맹이를 하나도 건질 수 없어 안타깝다.

저자 역시 이처럼 대충 '구호식 주장' 몇번을 반복하다 종장에 이르고 보니, 입시지옥의 철옹성같은 감옥에 갇혀 있는 우리 청소년을 향해 ' 이 억압과 소외의 사슬을 끊기 위해선 무엇을 해야 할까? 자기가 발 딛고 있는 곳을 배움터의 배치로 바꾸고, 지식의 향연을 구가하는 학습망을 조직할 것. 즉, 청춘의 패기와 열정을 모아 지식의 노예가 아니라 지식을 통해 자유를 누리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고 소리 높여 부르짖는 것으로 마무리하고 만다.

우리 청소년이 이 말을 듣고 일떠설 수만 있다면!! 아~ 아름다운 단어와 현란한 문장이여, 제발 우리 청소년들에게 각성제 역할 다해 주기를!!??

평소 경외하는 저자의 소임이 이래서는 아니된다는 생각이다. 자꾸 쓰다 보니 이런 저작도 한 권 양념으로 보탤 양이라면 모를까...독자에게 할 일은 아니지 싶다. 적어도 <수유..너머>를 지키고 보듬고 있는 저자라면 더구나 말이다. 좀 더 매사에 진지하고 과작이라도 좋으니 읽고 나면 한참이나 생각케 하는 글들을 내보내야 한다는 책임의식도 가져주면 좋겠다. 

더 할 말은 이쯤 줄이고 중간 중간 들어 있는 '시쳇말' '농짓거리'는 더욱 눈쌀을 찌푸리게 한다. 삼가해 주시길...독자도 그리 만만하지만은 않다. 더구나 불특정 다수의 독자인 경우엔...

이 책은 분량과 내용, 그 어느 경우를 따져보아도(내지의 지질이 고급스럽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너무  싸 다.  

 

2***d 2007.05.21. 신고 공감 55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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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궁극적인 목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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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하는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답하기란 그리 쉽지 않을 것이다. 보통사람들의 대답은 통상 '잘 먹고 잘 살기'아닐까 싶다.그런데 이 책의 저자는 공부해서 남주자고 이야기 한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는 공부하는 목적을 크게 가지라고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과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나누며 산다는 것이 한차원 높은 삶의 영위라고 생각되어지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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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하는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답하기란 그리 쉽지 않을 것이다.

보통사람들의 대답은 통상 '잘 먹고 잘 살기'아닐까 싶다.그런데 이 책의 저자는 공부해서 남주자고 이야기 한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는 공부하는 목적을 크게 가지라고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과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나누며 산다는 것이 한차원 높은 삶의 영위라고 생각되어지는 것은 비록 나이가 들어서만은 아닐 것 같다.

 

책의 내용이 그리 어렵거나 난해한 부분이 별로 없어 청소년을 비롯하여 학부모들에게도 읽어서 좋은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특히 젊은이들이 이 책을 읽고 원대한 꿈을 갖고 공부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유익을 끼치며 삶의 보람을 느끼고 찾으며 살았으면 좋겠다. 젊은이와 학생들은 황금보다 귀한 시간을 쪼개어 독서를 많이 하여 영혼을 살찌우고 학업에 정진하였으면 좋겠다. 나눌 것이 많아지도록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으로 자라주기를 부모님들을 간절히 기도하고 있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느끼는 사람들에게만 돌아가는 많은 것들을 덤으로 받으면서.............

 

호모 쿵푸스가 낯설어서 공부의 달인이 더 마음에 든다. 부모가 되어서 공부할 게 없다고 생각하고 사는 나에게도 부단히 공부 또는 독서를 해야겠다고 도전을 준 고마운 책이었다.

 

 

e******0 2007.05.25. 신고 공감 1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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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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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말한다. 공부는 머리가 아닌 몸으로 하는 것이라고, 공부는 단순한 지식의 획득이 아니라 일상 전체라고. 김용옥 선생 이후(?) 많은 식자들이 공부는 몸의 차원에서 익히는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지만, 삶에서 이를 실행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잘 느낀다. 공부는 잘만 하면 재밌고 신나는 일이라고 아무리 강조해도 애들은 어쩔 수 없이 하는 걸로 받아들인다. 성적이 오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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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말한다. 공부는 머리가 아닌 몸으로 하는 것이라고, 공부는 단순한 지식의 획득이 아니라 일상 전체라고. 김용옥 선생 이후(?) 많은 식자들이 공부는 몸의 차원에서 익히는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지만, 삶에서 이를 실행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잘 느낀다. 공부는 잘만 하면 재밌고 신나는 일이라고 아무리 강조해도 애들은 어쩔 수 없이 하는 걸로 받아들인다. 성적이 오르면 오른 대로 칭찬하고 떨어지면 떨어지는 대로 격려하지만 성적 하나에 일희일비하는 모습도 여전히 쉽게 볼 수 있다. 학부모 앞에서는 더 문제. 학부모 앞에만 서면 성적과 관련한 나의 최대 노하우를 다 쏟아부어 강하게 어필해야 한다. 이렇게 저렇게 하면 아이의 성적이 오를 거라며.

성적에 묶여 있는 공부를 어떻게 풀게 할 것인가. 이 책은 근대의 학교 제도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과 아울러 지금의 공부법과는 아주 다른, 그러나 고전의 시대에는 익히 통용되었던 공부법을 들고 나온다. 책읽기, 그것도 그냥 하는 게 아니라 독송과 암송을 통해서, 구술 같은 이야기 풀어내기, 모여서 공부하기, 자연에 대한 탐구, 나아가 문명과 몸, 일상 전체를 공부의 자원으로 삼아 삶을 공부 자체로 바꿔가는 변화로서의 공부이다. 성적이 공부의 전부가 아니라는 걸 잘 보여준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이걸 가지고 애들을, 부모들을 설득할 수 있을까? 기존의 학교 제도에 묶여 있는 공부의 배치(?)를 앎의 즐거움으로 가득한 즐거운 배치로 바꿀 수 있을까? 곰곰히 생각해보면, 무언가 실행할 만한 걸 찾을 수 있겠다. 암기와 문제풀이를 당장에 그만둘 순 없겠지만, 간간히 암송을 해보자고 하면 어떨까? 이걸 외워라 라고 말하면 애들은 외우지 않는다. 우리 한 번 같이 읽어보자며 같이 독송을 해보는 거다. 암송하며 익히는 구절 같은 걸 학습지 중간에 껴놓는 걸 개발해도 괜찮을 듯하다. 논술 공부도 무조건 쓰기부터 시키는 게 아니라 책을 먼저 읽게 하는 것도 좋겠다. 작은 한 걸음이 변화의 시작이 될 것이다.

i***y 2007.05.28. 신고 공감 7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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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로 또 같이 함께 가는 이가 있다는 사실이 기쁠 따름이다
"따로 또 같이 함께 가는 이가 있다는 사실이 기쁠 따름이다" 내용보기
즐겁게 공부하는 방법은 없을까? 라는 고민을 고등학교 시절부터 해왔더랬다. 좋아하는 과목을 공부할 때는 마구마구 파고들고 싶고, 싫어하는 과목은 기본적인 지식만 배우고 넘어갔으면 싶은데, 우리네 학교에서는 이런 방법을 결코 용납하지 않으니 꽤나 심각하게 고민했더랬다.     이런 고민을 요즘에는 <독서>를 하면서 달래고는 있는데, 아이들에게 가르칠 때는 또다시 어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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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즐겁게 공부하는 방법은 없을까? 라는 고민을 고등학교 시절부터 해왔더랬다. 좋아하는 과목을 공부할 때는 마구마구 파고들고 싶고, 싫어하는 과목은 기본적인 지식만 배우고 넘어갔으면 싶은데, 우리네 학교에서는 이런 방법을 결코 용납하지 않으니 꽤나 심각하게 고민했더랬다.

 

  이런 고민을 요즘에는 <독서>를 하면서 달래고는 있는데, 아이들에게 가르칠 때는 또다시 어쩔 수 없이 아이들이 좋아하는 과목이든, 싫어하는 과목이든 꾹 참고서 두루두루 공부해야 한다고..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고...억울하면 너희들이 열심히 공부해서 <교육부 장관>이나 <대통령>..기타등등이 되어서 '권력'을 잡은 다음에 몽땅 뜯어고치라고..그때 선생님을 고문으로 세우면 다 뜯어고치겠다고..이미 계획을 다 잡아놨다고..'권력'만 잡으라고..<우스개소리>를 하며 달래주곤 한다.

 

  정말 이만큼이나 <공부>는 짜증나고 힘들기만 한 걸까? 아니다. <공부>가 짜증나는 것은 아니다. 또 세상에 <공부>만큼 즐거운 일도 없다는 것은 죽을 때까지 <공부>를 하시는 분들을 보아도 충분히 알 수 있다. 만약 <공부>가 짜증나는 것이라면 그렇게 할 리가 없지 않는가 말이다.

 

  <공부>가 짜증나는 까닭은 단지 <성적>으로 공부를 평가하고, 내 앎과 슬기를 재는 잣대로 오로지 <시험>만을 들이대기 때문이다. 예수가 하나님이 내준 성경학교문제집을 풀고서 인류의 구원자가 되었던가? 석가모니가 보리수 밑에서 단식하며 고시공부하며 열반에 패스하여 부처가 되었던가? 공자는 3천 명이나 되는 제자들을 구름처럼 몰고 다닌 것이 출세를 보장하는 쪽집게과외를 했기 때문이었을까?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만능공식만 암기하면 그 어떤 궤변자(소피스트)라도 한방에 쓰러뜨릴 수 있다고 강변했다가 사기꾼으로 몰려주 독배를 들고 죽었던가? 적어도 난 그런 소리 못 들어봤다.

 

  위에 열거한 위인들은 너무 옛날분들이라면 아인슈타인은 어떤까? 물리학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몰고온 그는 학창시절 어떤 대접을 받았던가? 과연 아인슈타인 같은 위대한 학자가 우리 나라 <공부>방식으로 나올 수나 있을까? 마하트마 간디는 도대체 어느 대학을 나와야 그처럼 위대한 성인이 될 수 있다던가? 에디슨처럼 위대한 발명가는 또 어느 대학 박사출신이길래 오늘날 모든 인류에게 빛을 준 위대한 발명가가 되었단 말인가?

 

  무언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 되었다. 무엇이 잘못 되었을까? 나는 <공부=시험> 또는 <공부=성적>이라고 보는 우리의 인식이 잘못 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진짜 공부는 시험 잘 보아서 성적 높이는 것만으로는 한참 모자르다. 시험점수 잘 나오게 하는 공부말고 자기가 알고자 하는 욕구, 깨닫고자 하는 앎과 슬기를 스스로 채워나갈 때 비로소 진짜 공부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또 공부하는 목적이 <돈을 벌어 부자>가 되는 것이라든가, <돈을 잘 벌 수 있는 안정적인 직업>을 구하기 위한 것이 될 수는 없다. 좋다. <부자>가 목표가 될 수 있다고치자 그 돈을 벌어 무엇을 하려고? 안락한 삶과 여유를 즐기는 삶을 살기 위해? 닭장같은 아파트가 아무리 비싸보아야 사방이 꽉 막혀있기는 마찬가지고, 고작 바깥으로 향한 통로는 인터넷과 같은 <가상세계> 뿐이고, 세상을 보는 시선은 텔레비전이 고작인 그곳에서 배부르게 먹고 편안하게 널부러져 있기 위해 <공부>를 하는 것이라고?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가?

 

  요즘 학생들에게 도대체 왜 공부를 하느냐고 물어보아라. 열이면 열 모두 대학가기 위해서라고 대답하고, 학부모들은 대학만 보내놓으면 당신의 할 일을 모두 다 한 것인냥 한시름 놓는다고 말한다. 내놓으라는 대학을 졸업하고도 백수로 놀고 먹는다면...그건 아이들 몫이라고 생각한다. 부모가 해줄 수 있는 것은 <대학까지>. 더이상은 양보할 수 없노라고 생각하기 일쑤다. 과연 이것이 대학물을 드신 <지성인들>의 입에서 나올 소리인지...참으로 <헛공부>하셨습니다. 쯧쯧..

 

  이 책에는 온갖 푸념이 들어 있다. 우리 나라 학교교육의 잘잘못을 가리기라도 할 요량인지 온갖 푸념이 <종합선물셋트>마냥 풍성하고도 넘치도록 담겨 있다. 그리고도 더 늘어놓지 못해 아쉬움을 토로하곤 했다. 절대 공감한다. 지금 우리 아이들이 하고 있는 공부는 절대 공부라고 이름을 붙이기도 부끄러운 썩은 공부를 하고 있다. 다시 말해, 100년 전에나 쓸모가 있을 법한 썩은 지식나부랭이와 온갖 잡동사니를 곱고 예쁜 우리 어린아이들의 머리속에 억지로 퍼담고 있고, 아이들이 싫다고 아우성을 쳐도 온갖 감언이설로 꼬셔서 머릿속에 넣어야 한다고 세뇌시키는 형국이다. 뭣하려고? 오직 시험점수 올리려고...이런 공부 백날 해봐야 <위대한 위인>은커녕 그토록 갈망하는 <노벨상> 하나 못 타먹을 것이 뻔하다.

 

  그렇다면 어떤 <공부>가 진짜일꺼나? 이 책은 <독서>라고 말한다. 그 가운데서도 <고전명작>을 읽는 것을 강추강추 또 강추하고 있다. 이 책을 쓴 글쓴이는 <고전명작>이 아니고서는 <참공부>를 할 수 없다고 말한다. 또 읽었으면 꼭 <글쓰기>를 하란다. 쉽지는 않지만 그래도 몇 자라도 손수 쓰는 버릇을 들여야 효과만점이란다.

여기까지 내공을 쌓았으면 <고전>에서 배우고, <글쓰기>로 익힌 다진 자기 깜냥으로 세상에 접목시키라고 한다. 다시 말해, <배운 것 써먹기>. 그래야 완전히 자기 것이 되며 자기가 배운 것을 제대로 정리할 수 있는 거라고 말했다.

 

  한마디로 이 책 별 것 없다. 이미 다 아는 얘기만 하고, 그 얘기도 대부분 훈계조로 푸념만 늘어놓았다. 그런데도 이 책을 읽으면서 굉장히 기분이 좋았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그래, 맞아맞아!" "내말이~"를 연발하며 끝까지 읽었다. 물론 자기 자랑(?)이 조금 섞인 부분을 읽을 때는 살짝 껄끄럽기도 했으나 완전 밉상까지는 아니었기에 읽는데 큰 불편은 못 느꼈다.

 

  마지막으로 아쉽지만, 난 이 책의 조언에 따라 <호모 쿵푸스>가 되고 싶진 않다. 이 책의 표현을 빌어 말하자면, 난 이미 <다른 문파의 고수>이기 때문이다. 단지 이 책의 글쓴이와 많은 부분에서 깊이 공감하였기에 정말 기뻤을 뿐, 글쓴이를 따라하고 싶지는 않다. 난 이미 글쓴이를 만나기 이전부터 이미 그래왔으니 그냥 그대로 쭉 갈 뿐이다. 그래도 이렇게 <같은 길>을 함께 가는 이가 있다는 사실에 많은 위안이 되었다. 곧 당신을 따라잡을 거예요. 기다려요.



YES마니아 : 로얄 이달의 사락 z******8 2011.02.09. 신고 공감 5 댓글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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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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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우리시대는 타오르는 교육열과 미쳐 타지 못하는 교육비로 고통받는 학생과 학부형들이 많다. 저자가 말하는 공부란 학교에서의 학습을 통한 천편일률적 교육방식의 문제점과 이를 벗어나 사람이 살아가면서의 참다운 공부의 방향을 가르쳐주고 있다. 사람으로 태어나 학교라는 장에서 20년이상 공부를하고 그 다음에는 직업을 구해 사회라는 장으로 바뀌어 또 공부를 한다..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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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우리시대는 타오르는 교육열과 미쳐 타지 못하는 교육비로 고통받는 학생과 학부형들이 많다. 저자가 말하는 공부란 학교에서의 학습을 통한 천편일률적 교육방식의 문제점과 이를 벗어나 사람이 살아가면서의 참다운 공부의 방향을 가르쳐주고 있다.

사람으로 태어나 학교라는 장에서 20년이상 공부를하고 그 다음에는 직업을 구해 사회라는 장으로 바뀌어 또 공부를 한다..  (참으로 공부하기 싫은 사람은 괴롭겠네...^^ 그치요?)

 이렇게 평생하는 공부는 왜 하는걸까? 저자는 배워서 남주는 교육이념을 원하고 창의적은 생각을 가진 인간형으로 교육시키기를 원한다. (맞다 동의한다.)...이러한 열린 교육적 생각은 현재의 교육열에 불타는 학부형 취향에는 벗어 나겠지만..인간이 사는 궁극목표는 잘 살고 참되게 살기 위함이기에 (너무 이상적이죠? 당연한 말이 진리인 것을...)

 참으로 재밌게 쓴 책이다. 처음 받을때 책의 가벼움보단 내용의 무게감이 압도하는 ...읽어보고 웃고 넘기기엔 이 책엔 사람이 사는 이유도 있고 저자의 철학적 안목도 있다. 읽어 보시길~~

w******2 2007.06.05. 신고 공감 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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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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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기획하지 않은 자유'를 연상하게 한다.   이 책의 제목인 '공부의 달인'은 '삶의 달인'이라는 말로 옮겨도 될 성 싶다. 저자는 꽤 괜찮은 삶을 살기 위한 방법으로 '공부'를 추천한다. 이 공부는 돈을 벌기 위한 공부도 아니고,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한 공부도 아니다. 그런 공부는 하면 할 수록 자신을 소외시키기 때문이다. 저자가 제시하는 공부는 하면 할 수록 스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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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기획하지 않은 자유'를 연상하게 한다.

 

이 책의 제목인 '공부의 달인'은 '삶의 달인'이라는 말로 옮겨도 될 성 싶다. 저자는 꽤 괜찮은 삶을 살기 위한 방법으로 '공부'를 추천한다. 이 공부는 돈을 벌기 위한 공부도 아니고,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한 공부도 아니다. 그런 공부는 하면 할 수록 자신을 소외시키기 때문이다. 저자가 제시하는 공부는 하면 할 수록 스스로 완성되어 가고 자신의 완성을 넘어 주변까지 완성시키는 공부다. 신기하기도 하지.

 

공부의 구체적 방법으로 독서, 암송, 구술이 기억난다. 새로운 교육 방법이 계속 나오고, 협동학습에 대한 중요성이 강조되다 보니, 우리 교육 현장은 어느새 기본을 잊어 먹지 않아나 생각하게 됐다. 적어도 한 시간 동안 한 마디 했다고 해서, 그것이 토론 수업이 완성되었다고 볼 수는 없다. 혹시 그런 새로운 교육 방법들이 교사의 자기 만족에 그치지는 않는지 생각해 보게 한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암송과 구술로 돌아가 다시 가르치는 일을 생각해 보게 된다.

 

공부 방법에서 위 세가지 말로 반드시 추가해야 할 것이 하나 더 있다. 공부하고 싶은 사람들과 네트워크를 만드는 것이다. 이 네트워크를 만들기 위해서는 밥심이 중요하다.

 

우리의 공부의 관심은 일반적으로 내가 공부하는 것이 시험에 나오느냐이다. 그래서, 내가 시험에 합격할 것이냐는 거다. 문제는 과연 그런 공부가 나에게 남기는 것이 무엇이냐는 거다. 시험 문제 하나 더 맞아서 나는 더 행복해 질 수 있을까. 삶 속에서 실천은 현실적이어야 하지만, 삶에서 실천하기 위한 공부도 현실의 벽을 넘어서야 하지 않을까

 

책은 장단이 있다. 단점은 저자가 이 책 저 책에서 하던 이야기를 모아 놓은 느낌이라는 것이고, 장점은 살아가면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을 다시 상기시켜 주고 새롭게 알려 주었다는 것이다.

 

 

 

 

g********m 2007.06.03.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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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의 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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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해도 성적이 안나온다고 14살짜리가 고층아파트에서 투신했다는 뉴스를 접했다. 도대체 공부가 뭐라고 성적이 뭐라고 천하보다 귀한 생명을 포기했을까? 그 엄청난 일을 저지르기 전 그 아이의 호소는 왜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았을까?  불황의 그늘이 짙어지는 요즘 영유아를 위한 사교육 시장까지 커지고 있다니 이 나라가 도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궁금해진다. 그렇게 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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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부해도 성적이 안나온다고 14살짜리가 고층아파트에서 투신했다는 뉴스를 접했다. 도대체 공부가 뭐라고 성적이 뭐라고 천하보다 귀한 생명을 포기했을까? 그 엄청난 일을 저지르기 전 그 아이의 호소는 왜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았을까?  불황의 그늘이 짙어지는 요즘 영유아를 위한 사교육 시장까지 커지고 있다니 이 나라가 도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궁금해진다. 그렇게 미친듯이 공부에 매달려도 사람들은 내가 누구인지, 왜 사는지,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는지 알지 못한다.


  공부란 바로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이라고 생각된다. 율곡 이이가 "지금 사람들은 공부하는 것이 일상생활 가운데 있음을 알지 못하고 망령되게도 높고 먼데 있어 행하기 어려운 것으로 생각한다."고 갈파했다고 한다. 결국 잘먹고 잘사는 방법을 배워나가고 익히는 것이 참공부이니 우주자연, 노동과 생활, 독서, 사람들과의 만남이 다 공부라고 생각된다.


  노년을 같이 보낼 친구가 있으면 노후대책이 된 것이고  학교에서는 의기투합하는 친구를 만나면 된다는 저자의 말에 공감한다. 밥과 책을 나눌 수 있고, 아플때 서로 보살펴 줄 수 있는 친구와 같이 하는 노후, 생각만해도 흐뭇해진다.  지금의 사회는 돈에 대한 불안을 증폭시켜 사람들을 소시민화하고 비굴하게 만들지만 "기존의 배치를 거스르면서 전혀 다른 욕망의 지도를 그려낼 수 있는 과감성, 전혀 다른 삶을 창안할 수 있는 상상력"을 공부하고 싶다.



y***d 2011.12.15. 신고 공감 2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공부의 달인, 호모 쿵푸스]
"[공부의 달인, 호모 쿵푸스]" 내용보기
초반에 잘 나가더니 자기 감정에 도취된 듯 자신의 이야기를 늘어 놓는다. 자랑은하고 싶은데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싶지는 않고... 그런 약간의 절제가 담긴 자부심을 지닌 자랑들이 느껴진다. 그런 점이 소심한 내 마음에 걸리긴 하지만, 전체적인 책(고전)을 통한 공부하기에 대한 시선에는 공감이 간다.    2012년에 세운 독서 계획에도 활력을 불어 넣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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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반에 잘 나가더니 자기 감정에 도취된 듯 자신의 이야기를 늘어 놓는다. 자랑은하고 싶은데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싶지는 않고... 그런 약간의 절제가 담긴 자부심을 지닌 자랑들이 느껴진다. 그런 점이 소심한 내 마음에 걸리긴 하지만, 전체적인 책(고전)을 통한 공부하기에 대한 시선에는 공감이 간다.

 

 2012년에 세운 독서 계획에도 활력을 불어 넣어준다.

 



YES마니아 : 로얄 c********9 2012.01.19.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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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유 불급-공부 하지 않으면 존재하지도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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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에렉투스, 호모 사피엔스, 호모 사피엔스사피엔스.... 인류의 발달 과정은 초등학교 과정부터 학습되어왔다. 라틴어에서 나온 이 말은 각각의 발달 과정에 기인하여 그 특징을 기술한 것 이다. homo erectus는 '직립인간' 이라는 뜻이고 homo sapiens는 '지혜가 있는 사람'을 나타낸 것이다. 우리 시대의 사람들을 먼 미래에서는 무엇으로 규정지을지에 대한 궁금증이 생기기도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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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에렉투스, 호모 사피엔스, 호모 사피엔스사피엔스....

인류의 발달 과정은 초등학교 과정부터 학습되어왔다. 라틴어에서 나온 이 말은 각각의 발달 과정에 기인하여 그 특징을 기술한 것 이다. homo erectus는 '직립인간' 이라는 뜻이고 homo sapiens는 '지혜가 있는 사람'을 나타낸 것이다. 우리 시대의 사람들을 먼 미래에서는 무엇으로 규정지을지에 대한 궁금증이 생기기도 하는 대목이다.

 

책의 저자는 3권의 책

-호모 부커스, 호모 코뮤니타스와 오늘 소개할 책인 호모 쿵푸스

를 통해 우리를 해석하고 그 해석에 대한 방향을 제시한다. 책 표지에서도 알 수 있듯이 '공부하거나 존재하지 않거나!' 라는 구절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명확히 드러낸다. 어렵지 않은 어휘와 무겁지 않은 문장때문인지 정말 빨리 읽혔다.(이해가 잘 된다는 말과는 별개의 것이다. 쉽게 읽힌 만큼 저자의 논지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하는 시간이 많았다.)

 

책은 크게 3개의 덩어리로 이루어져 있다. 1부에서는 공부와 독서를 구분짓게 되는 학교공부의 실체를 낱낱이 드러내고 있다. 말미에서는 이로 인해 생겨난 대안학교의 상황도 되짚어 본다. 2부는 공부의 방향을 소개하고 본격적으로 독서의 중요성을 강하게 외친다. 이는 글쓰기로 연결시켜야 한다고 말을 한다. 3부에서는 살아가는 방식의 전환을 설명한다. 책의 말미에서는 공부의 혁명적 태도를 역설하며 마무리를 한다. 중간중간 역사적 에피소드로 근거를 찾으려고 하는 것이 눈에 띈다.

 

학교에 대한 비판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대부분의 우리들은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을 바꾸려고 하거나 다르게 보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굉장히 효율적이고 편하기 때문이다. 의문을 갖기 시작해도 해결책이 쉽게 나올 수도 없을 뿐더러 이것은 쓸데없는 생각이라고 치부하는 경향도 있다. 세상에 완벽한 것은 없고, 최소한의 단점을 선택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우리들의 생각이다. 물론 나도 같았다. 적어도, 학교라는 조직은 옳고 그름의 대상이 아니었다. 학교 없는 청소년기는 있을 수 없다. 나의 뼛 속까지 지배하고 있는 사상이다. 학교는 나와 성장을 함께 해왔다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이제 사실이 아닐지도 모른다 는 의문으로 자리 잡았다. 나는 철저하게 학교교육의 결과물로 나온 것이 아닌가? 학교에 의해서 초등학교 부터 나이로 구분짓는 시대가 된 셈이다. 1년의 차이에 민감하고 그들과는 친구가 되기는 힘들다는 단념은 어디서 나온 것 일까? 살다보면 나와 같은 나이라고 해서 친구라 느껴지지 않는 사람도 있다. 관계의 범위를 학교가 강제한다고 생각을 한다면.......

 

'왜 고전을 읽어야 하는가? 고전은 그 자체로 하나의 우주이자 매트릭스 이기 때문이다. .......(중략)...... 하지만, 고전이 있기에 그 협소한 시공간을 넘어 아득한 역사의 궤적을 조망할 수도 있고,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비전을 탐구할 수도 있다. 전혀 낯설고 이질적인 삶을 체험할 수도 있고, 생명과 존재의 심연을 항해할 수도 있다. 산으로 치면 설악산이나 금강산 혹은 히말라야 고봉을 오를 수도 있고, 바다로 치면 동해를 지나 태평양, 대서양까지 항해할 수 있다. 다시 말해, 그런 책과 접속하는 순간, 나는 단번에 우주적 존재로 도약한다.'

                                                                                                p.119 중에서

 

'요컨대, 공부란 특정한 시공간에 고착되지 않고 끊임없이 다른 존재로 변이되는 것을 의미한다. 존재의 변이를 통해 세상의 질서와 배치를 바꾸는 것. 거기가 바로 공부가 혁명과 조우하는 지점이다.'

                                                                                                 p.195~196중에서

 

저자는 공부의 중요성을 처음부터 끝까지 되새김질을 한다. 그리고 공부의 시작은 독서라고 정해준다. 너무 과하다 싶을 정도로 말이다. 나중에는 불편하기까지 하였다. 대학생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한 대목이다. 독서와 현실을 연결할 수 있는 고리가 있을 것 인가? 내 생각은 없다. 나도 찾아보려고 부단히 노력을 하고 싶지만 구체적인 근거를 찾기 힘들다. 조금은 도움이 될 수 있으나 그 조금으로는 안돼는게 대학생의 현실이다. 당장의 스펙 따위가 차라리 더 요긴하게 쓰일테니 말이다. 생각의 확장을 하면서 씁쓸해져만 가는 나를 볼 수 있었다. 독서가 최고의 스펙이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인문학의 대두로 인하여 서점을 찾는 사람들이 늘긴 하였지만 그 순간조차 후회하지 않게 되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요즈음 비로소 책과 친하게 지내고 있다가도 다음날 아침이 되면 어김없이 종로로 향하는 발걸음은 역설적이다.

 

개인적으로는 피드백과 경험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텍스트로 얻는 습득하는 것과 하면서 얻어지는 것은 분명히 다르다. 직접 몸으로 부딪치면서 느끼는 감정은 내 성장의 원동력이 되니까. 깨지고 넘어지고 해야 정말 뼈저리게 와 닿을 수 있다. 그리고 아무리 책을 많이 읽었다고 하더라도 함께 공유할 사람이 없을 때에도 문제가 발생한다. 나와 상충되는 생각을 들으며 우리의 생각은 확장을 할 수 있다. 자신만의 독서가 굳어진다면 그 자체가 하나의 큰 울타리가 된다. 견고한 성이다. 쉽사리 무너지기 힘들다. 스스로의 벽이 너무 강해서 다른 생각까지 담아둘 수 없는 것이다. 독서의 한계는 이런 점에서 앞서 두 가지를 뛰어넘기 힘들어 보인다. 저자는 특히 공부로서 얻는 장점이나 효과를 다룰 때에는 무협지에 나올 법한 비유들이 등장했다. 공부를 해야한다는 사실을 일관되게 펼쳐 나간 점은 칭찬할 만 하나, 그냥 허무맹랑한 소리로 여길 수 있다. 이러한 종류의 책은 적어도 비유보다는 은유로 정리해야 된다는 소신을 가지고 있다.

 

중간중간 공감하는 부분도 있었지만 나에게는 비판적인 책 읽기를 가능하게끔 만들어준 책이다.

d********w 2012.01.14.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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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인문독서] 호모 쿵푸스, 너무나 주관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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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쿵푸스, 너무나 주관적인   호모 쿵푸스 단순히 머리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 전체를 온몸으로 공부한다는 의미에서 다시 정립된 '공부하는 인간'이다. 호모 쿵푸스에게 공부는 쿵푸(功夫)처럼 온몸으로 배우는 공부, 앎에 대한 열정과 배움의 기쁨으로 인생의 모든 순간을 학습하는 공부이다. <공부의 달인, 호모 쿵푸스>는 '공부'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여 기존에 우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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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쿵푸스, 너무나 주관적인

 

호모 쿵푸스

단순히 머리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 전체를 온몸으로 공부한다는 의미에서 다시 정립된 '공부하는 인간'이다. 호모 쿵푸스에게 공부는 쿵푸(功夫)처럼 온몸으로 배우는 공부, 앎에 대한 열정과 배움의 기쁨으로 인생의 모든 순간을 학습하는 공부이다.


공부의 달인, 호모 쿵푸스'공부'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여 기존에 우리가 갖고 있던 공부에 대한 편견을 깨고 공부에 대한 새로운 의미를 정립, 새로운 공부 방법을 통해 인생역전할 수 있음을 주장하고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이전과는 차별화된 공부의 의미와 실험적인 공부 방법을 제시하고자 한다.

책의 내용을 따라 읽으며 전체적인 느낌은 교장선생님의 훈화 말씀 같았다. 멋있고 좋은 말씀들의 향연이지만 왠지 졸리고 듣다보면 반감이 드는 책. 호모쿵푸스라는 단어는 멋져 보이지만 그 말이 지칭하는 개념은 너무 모호하고 공부를 책에서만 찾는 것 같은 느낌은 너무 고리타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독서는 중요하다. 세상에 있는 많은 책들 중 고전이란 시대를 아우르고 세대간 공감을 이끌어 낼 수 있고 지역과 장소, 그 어떤 배경과 지식을 뛰어넘어 공감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어떤 힘을 가진 작품이기에 더욱 중요하다. 나 또한 삼십이 다 되어가는 나이에 안델센의 동화를 찾고, 제대로 읽지도 못하는 한자를 배껴쓰며 손자병법을 읽고, 공자의 해설서를 찾고, 아직도 삼국지에 헤매며 고전에 대한 독서는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책에는 내가 찾는 세가지가 없었다. 첫번째 공부를 화두로 제시하고서는 공부에 공부가 가리키는 대상이 무엇인지 모르겠다학교공부, 인생공부, 전문적 지식을 얻으려는 공부, 직무를 위한 공부, 스스로 하는 공부, 교육체제하에서의 공부,체험을 통한 공부, 대화를 통한 공부.... 어떤 공부를 말하는 지 모르겠다. 책을 읽으며 이런 부분이 해소되겠지 하고 기대했었는데 공부의 영역을 확장시키고자하는 저자의 의도와는 다르게 학교교육에 대한 비판을 하다가 갑자기 공부가 지칭하는 대상은 독서로 옮겨가고 그 독서중 고전을 읽어야하며 페스트푸드와도 같은 책은 멀리하고 음독이라는 하나의 방법에 치중하여 우리사회 교육을 비판을 하며 제시한 공부가 단지 독서뿐 인양 말하면서 독서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는 것인지 아님 앎 그 자체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는 것인지 아님 학교 정규 교육을 바꿔야 한다는 이야기인지 분별되지 않았다.

두 번째 공감이 없었다우선 예시들은 너무 주관적이며 와닫지 않았다. 소설 속의 인물을 논거의 근거로 제시하는 것은 허구에 의존하는 논거로서 설득력이 떨어진다. 또한 허생전은 노동활동을 하지 않으며 단지 서책만 공부하고 현실과는 담을 쌓는 당 시대의 선비 특히 당장의 생업을 위한 어떠한 노력조차하지 않으며 현실을 외면하는 잔반들의 무능력함과 위선을 보여준다고 느꼈었다. 그가 많은 돈을 번 것은 서책을 통한 능력고양이라기 보다는 막강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빈약한 경제체제를 악용하여 매점매석하여 부를 축적하였다. 이러한 부 축적은 소설 속 허생 조차 달가워 하지 않았고 축적한 부를 사람들을 위해 이롭게 쓰기보다는 바다에 버리는 어리석음 마저 보인다는 생각이 강했었는데 그의 능력이 독서에서 나왔다고 이야기 하는 저자의 말이 공감이 가지 않았다. 제갈량 또한 실존인물을 바탕으로 만들어 낸 인물이라지만 독서를 통해 남동풍을 만들어 낼 수 있겠는가? 허황된 말로 독자를 현혹시킨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또한 교육에 대한 비판은 세부적인 내용에 들어가면 갈수록 자기중심적인 이야기라는 생각이 너무 강했다. 대안학교의 독서 교육을 비판하는 모습에서 굳이 독서에서 인생의 길을 찾아야만 하는 가? 진정한 공부가 앎 그 자체에 있다면 독서가 아니더라고 하더라도 공부의 방법 또한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인데 고전을 소리내서 읽고 글을 쓰며 소통하고 저자 기준 책 같지 않은 책들은 멀리하라는 것은 조선시대 선비의 가치관 같았다. 소통하라면서 화제를 가리고 방법을 강요한 소통 보다는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표현하는 것에 더 할애하여 이야기 했다면 여러 가지 길들을 이야기 하며 본인이 걸어왔던 길을 이야기 했더라면 보다 소통의 본질에 대해 더 가까워질 수 있지 않았을 까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자신의 극적인 경험만을 이야기 하며 이 것만 하며 모든 것이 만사형통이다 라는 약장수 같은 느낌이 고전을 찾아 볼려고 노력은 하는 나에게 과연 나의 방식이 올바른 것일까?” “이런 독서의 끝에 나는 또 한사람의 화랑의 후예가 되지 않을 까?” 하는 걱정이 들며 고전에 대한 독서에 절박한 필요성 보다는 반감이 더 들었다.

 세 번째로 자가당착의 논리로 인하여 주장에 설득력이 없었다음독하라, 모여서 하라, 그럼 아무리 어려운 고전에서도 즐거움을 찾을 것이다. 즐거움 위주의 책을 읽지마라.’ 이런 행동의 참의미를 말해주기 보다는 일률적이고 일방적이고 먼가 있어보이는 행위의 강요는 바로 앞에서 우리사회의 교육제도와 교육인식을 비판하며 보였던 저자가 과연 같은 사람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국어, 영어, 수학 거기에 독서교육 추가요. 이런 느낌이 들었다. 또한 읽어야 한다는 고전은 무엇을 지칭하는 지 정확히 읽고 나서 어떤 고전을 말하는지 모르겠다. 그 나마 구체적으로 자신과 교류한 사람들에 대한 기술은 단지 자신의 자랑 같다는 느낌 외에는 와 닫는 게 없었다.


 이 책은 전반적으로 내가 고전을 읽으려 하는 이유와 또 독서토론을 하려 하는 이유와 상당부분 유사하다. 하지만 공부에 대해서는 추상적으로 이야기 하고 단지 양서를 많이 소리 내서 읽고 글을 써 보며 앎의 코뮌을 만들어 평생 함께 한다면 허생과 같은 많은 돈을 버는 부자 또는 제갈량과 같은 남동풍을 쓰는 인재로 거듭나는 것처럼 이야기 하는 방법론을 이야기하는 이 책이 일률적이고 자의적인 기준에 따라 좋은말씀을 위해 전교생을 운동장에 모아두고 학생들이 탈진할 때까지 말씀하시던 내 학창시절 교장선생님을 떠오르게 할 뿐 수긍하기 힘들다.


인문학은 문제제기를 위한 학문이다. 여기서 해답을 찾는 일은 책을 읽은 독자의 몫이다. 하나의 길만이 올바르고 그 쪽으로 가야한다는 이야기는 종교에서도 지양하는 이야기가 되어가고 있다. 우리가 생각하는 공부와 독서, 고전에 대해 대화해 보고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 해 주시기면 했어도 아 고전 한번 읽어 봐야지하는 생각이 들었을 것 같다. 답을 내리고 하나의 방법을 강권하는 것은 독자의 몫을 빼앗은 일이라는 생각이 문득 든다. 방법론에 대한 강권이 불편함을 주는 책이었다.

원제 How to Talk About Books You Haven't Read (2007) | 패러독스 1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
피에르 바야르 (지은이) | 김병욱 (옮긴이) | 여름언덕 | 2008-02-20


이 책을 읽은 사람들께 같이 읽었음 좋겠다고 생각한 책은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이다.

참 독서란 무엇인가? 참배움은 무엇일까? 우리는 어떤 책을 읽어야 하는가? 어떻게 읽어야 하는 가?

이러한 방향제시가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에 비하여 너무 빈약했다. 책만 많이 읽어라 고전을 읽어라 (작가기준)쓸데없는 책을 읽지마라....

이런 말들은 내게 와 닿지 않았다.

어떤 책을 읽는 가 보다는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표현하는 것이 책을 통한 소통의 본질이 아닐까?


t******4 2012.01.04.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