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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우리나라에 왔던 독일 그린피스(Greenpeace)의 의장인 볼프강 작스(Wolfgang Sachs)는 이런 얘기를 한다. 어느 날 한 관광객이 목가적인 풍경을 찍으러 해변에 갔다가 허름한 옷차림의 어부가 파도에 흔들리는 고깃배에서 꾸벅꾸벅 조는 모습을 보았다. 아마 그는 어부에게 날씨는 좋고, 바다에 고기도 많은데 왜 이렇게 누워서 빈둥거리느냐고 물었나보다. 어부는 자신이 오늘 아침에 필요한 만큼 충분히 고기를 잡았기 때문이라고 대답한다. 그러자 관광객이 말했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노동하는 사람만이 인간이다.” “게으름은 문명의 적이다.”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는 말을 귀에 닳도록 듣고 자라 왔다. 그래서일까, 일하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숙식을 제공하고, 노인이나 장애인과 같이 노동을 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연금과 같은 생활수단을 제공하는 것을, 자칫하면 우리 사회의 질서를 뿌리부터 흔들 수 있는 위험한 짓으로 여기곤 한다. 이렇게 우리 사회는 노동하지 않는 삶을 죽음으로 내세우고 있다.
우리 모두 가슴에 손을 얹고 솔직히 말해보자. 직장 상사로부터 스트레스 받아가며 야근에 시달리며 하루를 보내고 싶겠는가? 아니면 마음이 맞는 친구들과 산책도 하고 좋아하는 책도 읽으며 여유롭게 하루를 보내고 싶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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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주의 방법은 그 규칙과 심각하게 싸울 때만이 아니라 새로운 규칙들을 만들어내고, 우릴 지배하고 있는 규칙을 가볍게 만들 때도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 새로운 규칙을 만들어라. 웃으면서 권위와 명령을 돌파하고 무력화시켜라. (...) 중력에 짓눌려 땅바닥에 납작하게 달라붙은 벌레가 되는 대신 가볍게 날아오기 위해선, 무엇보다도 춤추고 노는 법을 배워야 한다. 춤을 추기 시작할 때 비로소 무거운 중력은 흔들린다. 한 곳에 머물지 않는 경쾌한 스텝, 삶과 자신과 친구들을 사랑하며 웃는 정신만이 중력을 깨뜨리며 날아오를 수 있다." (p. 205~206)
책의 결론은... "제작 매뉴얼대로 반복되는 노동이 아니라 무수한 가능성을 창조해내는 놀이. 지루하게 참고 견디는 현재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즐거움으로 가장 충만한 현재만이 나를, 세상을, 친구를 바꿀 수 있다. 놀이가 그 파워풀한 생명력을 되찾고 우리의 삶이 다시 놀이의 에너지로 채워질 때, 비로소 우리는 매순간 충만하게 행복할 것이다. 우리의 매일은 어느 하루도 다시는 반복되지 않을 것이다. 어때? 그럼, 한판 놀아볼까? 실패를 두려워하지는 말라구. 우린 단지 놀고 있을 뿐인 걸."(p.208)
책속 부록에서 얼마전 종영한 "베토벤 바이러스"에 등장했던 존 케이지의 「4분 33초」이야기가 나와 반가웠다. "케이지의 음악을 듣는다는 것은 누군가가 만들어낸 결과물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아니라, 매번 다르게 창조되는 우발적인 세계에 동참하여 스스로가 음악이 되는 것이다."(p.221)
짧게 감상을 정리하자면... 현실을 벗어나고자 하는 것은 삶에 대한 도저한 낙관이거나 기존의 권위와 상식에 도전하는 용기이거나 무모하거나 무책임한 자만이거나 혹은 자기 기만 일 수 있다. 어쨌든 주어진 현실을 반성없이 또는 자포자기 한 채로 재미없어 하면서 억지로 -죽지 못해- 살기보다는 삶과 생명과 사랑의 의미를 생각해보며, 나름의 재미와 놀이를 찾는 삶이 생동감이 있지 않겠나. 그래서 종국에는 내 안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내 가족과, 이웃들과 연대하고, 나누고, 함께 할 수 있는 -오늘은 왠지 반복에 반복이다..- 자발적이고, 스스로 뿌듯한, 재밌는 '꺼리'를 찾기위해 몸부림을 쳐봐야... 겠다.
역시 책속 부록에 담긴 조약골(1973~ ,네이버 백과사전의 설명으론 .. 아나키스트 운동가이자 돕헤드(dopehead)라는 예명으로 활동하는 음악가)를 검색해 보니, 이런 노래가사가 있더라.
공장에서 쫓겨난 노동자가 원직복직하는 것이 평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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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접하는 달인 시리즈! 왠지 제목부터 몹시 끌리는 놀이의 달인이시다~ㅎㅎㅎ 부담없는 분량과 시원시원허니 충분히 삽입된 사진이 참으로 흐뭇한 책이다. 저자의 재치있는 입담에 고개를 끄덕끄덕. 옳지, 그렇지, 맞소! 그대가 정답이네~라며 혼자 방청객 놀이를 하며 재밌게 읽었다.
"시간을 아낄수록, 우리는 점점 더 바빠진다." 얼마전에 인터넷에서 읽은 글이 떠올랐다. 일찍나는 새가 더 피곤하다. <<이상한나라의 엘리스>>에 나오는 붉은여왕의 세계처럼 편안한 휴식을 할 그날을 바라며 바쁘게 달리지만 우리는 점점 더 속도를 높여야할 뿐이다. 편안한 휴식은 영원히 오지 않는다. 내가 굴린 쳇바퀴에 넘어지지 않으려면 더욱 힘차게 뛰어야한다. 이것이 진정 내가 바라던 것인가? 나중에는 이런 생각을 할 시간도 남지 않게 될 것이다. 가슴이 답답해져온다.
"시간은 금이 아니다. 시간은 내가 살아있는 매 순간이며 삶 그 자체이다." 차갑고 딱딱해져가는 마음을 따뜻한 손으로 슥슥-문질러준다. 그리고 잔잔한 목소리로 한껏 우울해진 마음을 위로해준다. 시간은 금이 아니야. 네 시간은 네 것이야. 살아있는 매 순간, 그건 네 삶이야. 달리기의 속도는 네 마음대로 조정이 가능해. 어쩌면 걸어갈 수도 있어. 걱정하지말고 주위를 둘러보며 네 인생의 즐거움을 찾아.
"우리의 삶이 무엇도 박탈당하지 않고 그 자체로 충실한 현재일 수는 없을까?" 무언가를 그 자체로 즐기는 것, 고대인들은 지혜를 놀이하고 철학을 놀이했다고 한다. 지식으로 놀 수 있다니~ 아테네 학당에 모인 수많은 철학자들의 모습이 상상된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함께 식사하며 혹은 다과를 먹으며 서로의 의견을 나누며 즐겁게 사상을 만드는... 참으로 부러우면서도 고고해보이는 놀이~ㅎㅎㅎ 만약 내가 저렇게 매일 친구들과 만나 지식을 논한다면 정신못차리고 철없이 시간이나 보내는 한량쯤으로 보겠지? 흠...- -+
하지만 현실이 그러한 걸? 재벌집 따님이 아니고서야 먹고살기가 바쁜데 놀이는 무슨 놀이...라며 씁쓸하게 현실과 타협할 나를 위해 위해 저자는 '놀수 있는'방법을 제시한다. 생각의 전환이라면 식상하려나? 놀이에 대한 정의를 다시 한 것이다. 현재 내가 하고 있는 일에서 재미를 찾고 놀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생각보다 놀 것들은 널리고 널렸다. 내가 즐거움을 느끼는 행동, 그 자체가 놀이가 아니던가?ㅎㅎㅎ
맛도 좋고 소화도 잘 되는 책이다. 내가 만들어놓은 투명틀에 눌려 점점 색을 잃어가던 내게 재밌고 즐거운 시간을 가져다 준 이 책에 감사를 전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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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그들이 소유하고 있는 상품 속에서 자기 모습을 발견한다.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자동차와 하이파이 세트, 삼 층짜리 집, 부엌 시설 속에서 자신의 영혼을 발견한다. - 허버트 마르쿠제, [일차원적 인간]에서 - (중략) 우리의 욕망을 쉴 새 없이 자극하는 광고의 홍수 속에서 우리는 점점 늘어나는 '필수품'을 사기 위해 끝없이 노동력을 팔아야 한다. 영화 [파이트 클럽]에서 주인공이 말했듯이, "우린 필요도 없이 비싼 차나 고급 옷을 사겠다고 개처럼 일한다." 한경애 [놀이의 달인, 호모 루덴스] 중 ======================================== 특정상품과 자신의 존재감을 일치시키는 경우가 많습니다. (난 OO 없인 못 살아!!) 차, 보석, 각종 명품. 이름만 대도 황홀해 하며 사죽을 못 쓰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온갖 유지비를 아낌없이 붓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기 위해 자신의 대부분의 노동시간을 보냅니다. 하지만 그 물건이 정녕 우리의 영혼일까요? 오히려 우리의 영혼이 제대로 중심을 못 잡고 있기 때문에 그 물건이라도 대리만족으로 그 중심으로 세우고 싶은 건 아닐까요? 내 삶의 가치관에는 물질이 자리잡고, 그러기 위해서 내 삶의 대부분 시간에는 하기 싫어하는 노동이 자리잡는다면, 과연 그것이 진정 자신이 추구하는 삶일까요? 저는 다른 물욕이 별로 없습니다. (차도, 집도, 음향시설도.. 다 오래 되었죠. 굴러가고 음악만 나오면 된다는 주의..) 반면 배우는 욕심은 꽤 되기 때문에 책 같은 경우 별 절약 정신없이 일단 삽니다. 하지만 결국 책 또한 그것을 소장한다고 저자의 정신을 배우는 건 아닙니다. 찬찬히 읽고 음미하고, 그런 삶을 살아야만 내 삶이 되는 것 뿐이죠. 우리가 소유하려는 것이 우리의 영혼이 아닌 이상, 그것은 결국 다른 사람이 만든 작품의 삶을 공유하는 것일 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닐지 모릅니다. 지금 당신의 영혼은 어디에 있습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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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나 일은 하기 싫어도 해야하는 것, 이라고 세뇌당하며 살아왔다. 그래서 공부나 일을 하면서 즐거운 마음으로 빠져들지 못한다. 자기극복의 수단이고 주마가편의 마음으로 항상 자기자신을 채찍질해야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반대로 노는 것은 항상 죄책감같은 느낌을 받는다. 불안한 마음 때문에 마음 편하게 쉬고 놀지 못한다. 계속 놀기만 하면 그 불안한 마음은 더 커진다. 본인은 아니더라도 주변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 그 의미를 알게 될 것이다.
이 책을 선택하게 된 데에는 얼마전에 읽은 <공부의 달인, 호모 쿵푸스>가 생각나서이기도 했다. 이 책의 뒷면에 보니 인문학 인생역전 프로젝트!로 네 권의 책이 소개되어 있다. <공부의 달인, 호모 쿵푸스>, <놀이의 달인, 호모 루덴스>, <언어의 달인, 호모 로퀜스>, <예술의 달인, 호모 아르텍스>, 그렇게 네 권이 있는데, 지금 읽은 책은 그 두 번째, <놀이의 달인, 호모 루덴스>이다. 놀이에 익숙치 못한 현대인, 이 책 <놀이의 달인, 호모 루덴스>를 보며 노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는다.
이 책의 프롤로그가 마음에 와닿는다. 개미와 베짱이의 딜레마 속에서 길 찾기라! 어린 시절에 듣던 옛날 이야기에서 이제야 새로운 의미를 생각해본다. 교훈을 강요받은 우리는 개미처럼 부지런히 살아야된다고 생각했고, 베짱이처럼 하다가는 거지꼴을 면하지 못한다고 배웠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개미가 더 나은 삶을 살지, 베짱이가 더 나은 삶을 살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스스로의 만족도와 행복도가 중요한 것이지, 다른 이의 삶에 어느 것이 더 낫다는 판단은 정말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놀이에 대해 제대로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게 한다. 나자신만의 시간을 창조적으로 가지면서 즐겁게 존재하는 것, 앞으로 추구하고 싶은 나의 삶임을 깨닫는다. 미술은 무언가를 모방해야 할 아무런 의무가 없다. 미술은 새로운 규칙에 의해서만 판단될 수 있다. 새로운 규칙, 그것은 매일같이 새롭게 만들어지고 있다. -마크 애론슨 <도발>에서
(놀이의 달인, 호모 루덴스 98쪽)
이 책을 읽으며 마음에 든 점은 놀이에 대해 어렵거나 거창하게 이론적으로만 무장한 책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두께도 적당히 얇고, 사진도 적당히 첨부되어 있어서 좋았다. 책 속에 첨부된 그림을 보며 놀이의 과거와 현재를 가늠해본다. 인문학 인생역전 프로젝트, 나머지 두 권도 읽어봐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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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들어 처음으로 읽기 시작한 책이 '놀이의 달인'이라니.. 의도한 건 아니지만, 의미하는 것은 있는 선택이었던 것 같다.
나는 참 '놀 줄 모르는 인간'이라는 생각을 항상 한다. 자유시간이 주어지면, '쉴'뿐이지 '놀'지는 못하고. '노는 것'은 일하는 사이사이에, 그러니까 일의 대가로서 누릴 수 있는 어떤 보상같은 느낌이었다.
잠시 직장생활을 쉬었던 3개월이라는 기간동안 시간으로 따지만 2개월이상을 집에서 뒹굴거리고, 일자리를 찾아 컴퓨터 앞을 지키고 있었던 것 같다. 회사생활을 하는 중에는 일년에 한두번은 꼭 해외여행을 다녀오는 나로서는 참 의아한 일이다. 항상 시간이 없어서 오래,멀리 여행하지 못한다고 투덜대던 내가 아닌가.
그건 아마도 노동(좀 극단적인 표현같지만, 이 책에서 놀이의 상대적인 의미로 표현된) 에 중독되었거나, 좀 가볍게 얘기하면 너무 익숙해져버린 것이다. 휴가를 내고 잠깐잠깐 다녀올 떄는 다시 돌아올 노동의 공간이 있지만, 쉬고있는 기간에는 아무리 놀 시간은 많아도 마음이 불안한 것이다.
뭐.. 책에서 얘기하고 있는 내용과는 좀 다른 얘기지만,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처럼 노동에 중독되어 있는 것이 아닐까? 일을 놀이처럼 즐기기에는 너무 노동에 익숙해져버린.
놀이와 노동의 구분은 그 행위의 차이가 아니라 마음가짐의 차이다. 같은 일을 하더라도 즐거운 마음으로 일을 즐긴다면 그것은 '노동'으로까지 의미가 퇴락되지는 않을 것이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억지로 지하철을 타고, 버스를 타고 일터로 나가는 그 마음가짐을 새로 가지라는 의미를 가진 책이 아닐까 싶다.
아쉬운 것은... 놀이가 기존의 질서를 파괴하고, 거기서 그치지 않고 새로운 질서를 세워야 한다고 하는 이책에는 '노동하는 인간'의 대안책이 없다. 마음가짐을 어떻게 가지라든가. 여차하면 박차고 나가라든가.. 그런 얘기는 없고 그저 노동은 나쁘고 놀이가 좋다. 과거에는 놀이하는 인간들이 살았는데 요즘은 노동하는 인간만 남아있다.. 그런 얘기만 초지일관 반복하고 있으니.. 이거 책읽기가 조금은 '노동'으로 변하는 것을 느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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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의 달인 호모루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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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을 두고 신성한 것이라 말한다. 언제부터 그런 말이 생겨났는지 잘은 모르겠지만, 대학 졸업 후에도 취업하지 못하는 이들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은 냉담하기만 하다. 취업하지 못해 안달이 난 이들 역시 남들이 무어라 하기 전에 제가 먼저 주눅이 들어 버리기 일쑤다. 하지만 노동을 진정 즐길 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아니, 우린 너무도 긴 시간 동안 노동에 찌들어 살았는지라, 노동이라는 말만 들으면 이내 쉬고 싶어 한다. 몸을 움직여 힘을 쓰고 땀을 흘리는 것만을 노동이라 일컫는다면 이야기는 달라질 것이다. 하지만 사회 곳곳에 널려 있는 노동의 형태는 참으로 다양하다. 앉아서 골똘히 생각하는 것도 노동이요, 심지어 학교에서 수업을 듣는 것 역시, 내 몸을 일정 시간 동안 제도권 교육이 원하는 방향으로 통제해야 된다는 점에서 노동이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우린 세상 어느 나라 사람들보다도 노동을 많이 하고 있다. 굳이 OECD 국가 중 최장시간 노동하고 있다는 통계치를 언급하지 않아도… 급기야 요즘 대학생들은 제대로 놀 줄 몰라 걱정이라는 기사가 신문에까지 났다. 그렇지만 아주 어린 시절부터 학원에, 과외까지 길들여진 아이들이 놀 줄 모르는 건 당연한 말이 아닐지 싶다. 텔레비전 모 채널을 틀면 ‘생활의 달인’이라는 프로그램을 시청할 수 있다. 그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이들의 모습을 볼 때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와-‘라는 내뱉곤 한다. 그들이 멋진 일에 종사하고 있다거나 남들보다 훨씬 많은 임금을 받고 있어서가 아니다. 단순한 박스 하나를 접는 일이거나 종이를 넘겨 숫자를 세는 일일지라도 그들은 그 일을 위해 자신을 단련시키길 게을리 하지 않았다. 게다가 다른 이들과는 다르게 자신만의 노하우마저 개발했으니, 진정 일을 즐기는 자가 아니라면 달인의 경지에 도달치 못했을 것이다. 그들의 모습이 감동적일 수밖에 없었던 까닭은 바로 거기에 있었다. 그들은 노동을 즐거운 놀이로 전화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만일 그들이 단지 손놀림이 남들보다 빠르기만 했더라면, 프로그램은 ‘경쟁에 뒤쳐지지 않기 위해선 이들처럼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을 것이며, 사람들은 채널을 돌리기에 급급했을 것이다. 책은 우리에게 잘 알려진 개미와 베짱이 이야기를 우리에게 하고 있었다. 막스 베버가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라는 책을 통해 서구의 자본주의가 성공할 수 있었던 원인을 분석했던 게 문득 떠오른다. 기독교는 서구 사회를 지탱하는 하나의 기둥이었다. 종교를 사회의 산출물로 이해하는 관점이 모든 이들에게 환영 받진 못하겠지만, 노동을 중시하고 부를 축적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종교의 흐름이 자본주의의 성공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친 것만은 사실이다. 한국인들이 부동산에 열을 올리고, 강남을 부르짖으며 노동에 몰두하는 까닭이 무엇인진 정확히 모르겠지만, 서구 사회에서 그랬던 것처럼 우리 사회 역시 베짱이는 퇴출의 대상이다. 모두가 개미가 되어 열심히 미래를 준비하는… 하지만 개미의 노동은 고달프다. 심지어 개미가 준비하는 미래가 도대체 언제를 의미하는지 아는 이는 단 한 명도 없다. 자유를 중시하는 풍조, 타인의 삶에 대한 간섭은 덜해졌을지도 모른다. 허나 우리의 여가마저도 자본에 의해 잠식 당한지 오래며, 이젠 노는 것도 돈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세상이다. 컴퓨터 앞에 앉아 맹한 눈을 하고 키보드를 두드리고, 놀이동산에 가 줄어들지 않는 줄을 한탄하며 화끈하게 놀아야 한다는 스트레스에 치를 떠는… 이런 분위기 하에서 놀이의 달인, 즉 ‘호모 루덴스’란 이름으로 부를 수 있는 이들이 존재할 수 있긴 할까? 중요한 건 죽을 때 얼마나 많은 돈을 베개 밑에 깔고 있느냐가 아니다. 내 삶이 즐겁고 남의 삶이 즐겁고, 그래서 진정 웃을 수 있는 순간이 많았다면 그 삶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성공이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