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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의 어린 나이로 작가에 데뷔해 인기를 끌었던 여류 소설가 고미 나루미(필명). 삼십대 중반이 된 그녀에게 어느 날 편지 한통이 날아든다. "날 용서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나도 당신을 용서하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돌연 고미 나루미는 사라지고 만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남긴 원고 잔혹기. 원고의 내용은 고미 나루미가 열 살 되던 해 겐지에게 납치되어 1년 동안 감금되었던 일을 담고 있다. 집으로 돌아온 후에도 굳게 입을 닫고 있었던 게이코가 왜 글로 그 당시의 이야기를 쓰게 된 것일까?
이런 책을 읽다보면 의문을 갖게 된다. 열 살의 여자 아이가 똑똑하면 얼마나 똑똑하고 영악하면 얼마나 영악할까? 아님 주어진 현실에 빠른 속도로 적응해 나가는 것일까? 살기 위해서? 언젠가는 이곳에서 나갈 수 있다는 희망이 열 살 아이를 다부지고 단단하게 만드는 것일까? 아님 사건이 아이를 모습만 열 살이고, 내면은 어른으로 만들어 버린 것일까? 사실 나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남자 아이 둘을 키우면서 우리아이들을 보고 있노라면 아직도 어리 버리 하고, 늘 아이 같아서 걱정이 앞서는 건 내가 부모이기 때문일까? 그렇게 바라보는 내 시선이 잘못된 것일까? 아님 아직은 어린이의 시선으로 어린이의 순진함을 갖고 있길 바라기 때문일까?
1년이란 감금이 아이에게 준 충격은 실로 대단할 것 같지만 아이는 무섭다 싶게 적응하고, 현실로 돌아와서도 모든 것을 내 뱉지 않는다. 정신적인 힘겨움을 나름의 상상으로 꿈으로 대체하고 있는 게이코를 보는 건 결코 유쾌하지 않다. 나는 주어진 상처가 깊으면 깊을수록 선의와 동정조차도 상처를 더 깊이 후빈다는 것을 배웠다 (109) 어른인 우리도 그런 상황이 되면 흔들리고 겁내하고 아팠을 것 같은데 게이코의 행동은 뭔가 부자연스럽게 어른스럽다. 그래서 읽는 내내 그런 생각을 했다. 혹시 게이코는 낮에는 어른 겐지로, 밤에는 자신과 똑같은 아이 4학년 겐지로 돌아오는 그 사람을 사랑했던 것은 아닌지 그런 의구심이 들었다. 겐지와 게이코의 1년 생활.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고, 마음속에 있던 진실 사랑. 하지만 겐지가 형을 마치고 나오면서 자신을 용서하지 않겠다는 말에 충격을 받았던 것은 아닐까? 그래서 둘만의 비밀을, 침묵으로 일관했던 일을 글로 써 내려간 것은 아닐까?
아마도 겐지를 사랑한다고 믿어야지 그 1년의 감금생활이 덜 힘들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본다. 그런 자기 암시가 훗날 감금 상태에서 벗어났어도 지워지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겐지를 사랑하고 있다는 꿈과 바깥 세계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 안에서 분명 게이코는 고민했을 것이다. 그리고 겐지와 게이코가 서로 사랑했다는 사실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채 20년의 세월이 흐른 건지도.. 그리고 게이코는 생각하지 않았을까? 겐지를 정말 사랑했던 것인지 아님.. 그렇게 착각하고 꿈꾸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용서하지 않겠다는 말은 서로의 사랑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겐지의 마지막 발악이었을까?
사람의 심리는 오묘하고 무섭고 잔인하고 아프다. 극단적인 상황에 처한 적이 없는 보통의 평범한 사람에게 이런 감정은 굉장히 거북하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냐며 반기들 들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읽는 내내 목에 가시가 걸린 것처럼 답답했는지 모르겠다. 열 살의 어린 아이가 부모에게 조차 의지할 수 없었던 시간, 아무도 믿을 수 없었던 세상. 게이코의 불안한 심리가,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려고 했던 그녀의 인생이 아프게 다가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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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리노 나쓰오 여사님은 독자의 감정을 건드리는데 능숙합니다. 때문에 글을 읽고 나면 여운이 상당히 오래 갑니다. 해서 즐겁게 읽고 잠깐 사이에 잊어버릴 수 있는 여타 쟝르 소설들과는 다른 감정을 느끼게 됩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아마 등장인물의 감정과 욕망을 밑바닥까지 들여다 본 후에 고스란히 건져올려서 독자에게 불친절하게 던져버리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다른 작가 같으면 예쁘게 혹은 정반대로 추하게 포장을 할 텐데, 기리노 여사님은 그런 게 없습니다. 그냥 날 것 그대로의 욕망을 적나라하게 표현합니다. 자기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이나 그 인물을 읽어나가는 독자에 대한 배려가 없다고 볼 수 있지요. 그런 독특함이 여사님을 베스트셀러 작가의 위치까지 끌어올리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그래서 팬이 많은가 봅니다. 저도 그 팬 중의 한 명입니다만 가끔은 불편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글을 읽다가 차갑다는 느낌을 받을 때 종종 그런 감정을 느낍니다. 그렇다고 작가가 특별히 차갑게 서술하고 묘사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냥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데 그게 차갑게 보일 뿐입니다. 있는 사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데 왜 차갑게 느껴지는 걸까요? 우리가 포장하는 삶에 익숙해졌기 때문이 아닐까요? 전 그렇게 생각합니다. 잔학기에 나오는 사람들의 삶이 비루하게 느껴지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요. 잔학기의 줄거리는 상당히 자극적입니다. 이 책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장 흉악한 범죄로 꼽는 유괴를 다루고 있습니다. 유괴 중에서도 가장 악질적인 유괴는 성적인 쾌락을 위해 미성년자를 유괴하는 것입니다. 이런 경우는 성이 결부되어서 돈을 노린 유괴보다 더욱 끔찍하게 느껴집니다. 잔학기에 나오는 유괴가 바로 그런 유형의 유괴입니다. 우부카타 게이코는 10살 때 아베카와 겐지라는 25살짜리 공장 노동자에게 유괴되어 그의 방에 1년간 감금이 됩니다. 게이코는 일 년 후에 우여곡절 끝에 풀려나고, 겐지는 무기징역을 선고 받고 복역을 합니다. 게이코의 삶은 그 유괴 때문에 온통 뒤틀려 버립니다. 그러나 다행히 잔학한 범죄의 희생자로만 머물러 있지는 않습니다. 그녀는 글을 통해 감정을 쏟아내는 것으로 유괴를 극복합니다. 게이코는 16살 때 고미 나루미로 데뷔를 해서 인기를 끕니다. 나름 유명한 여류작가로 그럭저럭 꾸려가던 삶은 어느날 날아온 한 통의 편지로 뒤흔들립니다. 30대 중반이 된 그녀에게 범인 아베카와 겐지가 편지를 보낸 겁니다. 편지에 쓰인 문구가 실로 묘합니다. '날 용서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나도 당신을 용서하지 않을 겁니다.' 굉장히 뻔뻔한 문구입니다. 사람이 얼마나 뻔뻔해지면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저 따위 말을 적어 보낼 수 있을까요. 그런 감정이 드는 동시에 이상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범인이 피해자를 용서하지 않겠다고? 뭔가 숨겨진 사실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죠. 게이코는 유괴에서 풀려난 후 아무에게도 진상을 털어놓은 적이 없습니다. 어른들도 나어린 피해자에게 꼬치꼬치 캐묻기가 어려워서 그냥 넘겼죠. 이제 게이코는 처음으로, 사건이 일어난 지 25년이나 지난 시점에서 그 사건에 대한 글을 남겨놓고 집을 나가 버립니다. 우리는 그 자서전 같은 소설을 통해서 유괴사건의 진실에 접근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과연 이 소설이 진실 그대로일까요. 글을 읽는 와중에도 계속 의심이 생깁니다. 왜냐하면 작가는 근본적으로 거짓말쟁이니까요. 게이코의 소설을 통해서 몇몇 부분은 선명하게 해명이 됩니다만 몇몇 부분은 여전히 의문으로 남습니다. 그 미진한 부분은 남편의 이야기에서 조금씩 풀려나갑니다. 그래도 끝까지 걸리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완벽한 해명을 위해 머리를 굴릴 수도 있습니다만 전 여기서 만족합니다. 왜냐구요? 타인의 감정과 욕망을 훤히 들여다 볼 수 있는 사람이 아닌 한 모두 진실을 알아낼 수는 없는 법이니까요. 그건 글을 창조해낸 기리노 나쓰오 여사님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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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까지가 픽션이고 어디까지가 논픽션인지 알 수 없는 한 아이의 엄청난 유괴사건 속의 이야기와 그 사건을 평생 끌어안고 살 수밖에 없었던 작가가 자신을 유괴했던 남자가 출소해서 보낸 한 장의 편지를 받고 쓴 <잔학기>라는 소설은 역시 기리노 나츠오가 아니면 쓸 수 없는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다. 열 살 때 한 남자에게 유괴되어 1년 이상 감금되었다가 풀려나게 된 게이코는 그 사건으로 자신이 이제는 결코 전과 같은 상태로 돌아갈 수 없음을 느낀다. 그것은 현실과 분리되어버린 주변 사람들의 상상과 자신의 치유될 수 없는 상상 때문이다. 한 아이가 겪은 사건을 보면서 인간의 잔학성은 어디까지 인지를 새삼 생각하게 된다. 비단 이 작품에서뿐만 아니라 매스컴에 나오는 사건들을 때로는 그 이면까지 집요하게 파헤치는 모습 속에서, 그것을 궁금해 하는 시청자인 내 모습 속에서 아무 생각 없이 쯧쯧쯧 거렸던 것 속에 잔인한 엿보기 습성이 숨어 도사리고 있었음을 깨닫는다. 그것을 이미 알아버렸기에 게이코는 어린 나이에 아무 것도 말하지 않고 그 누구도 신뢰하지 않게 되어버린 것이다. 부모와 의사, 경찰, 검사, 그 누구도. 그래도 자신을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은 가해자인 겐지 뿐이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자신과 겐지 사이에서 둘을 가장 잘 이어줄 수 있는 사람은 집요하게 캐물으며 자신의 호기심을 충족시키려는 검사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것은 갑옷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함을 알고 누군가에게, 그가 가해자이든, 자신을 모욕한 염탐꾼이든 중요하지 않았다는 뜻은 아닐까. 현실이 붕괴되고 밤의 꿈만으로 살아가게 되어버린 한 인간의 고통을 너무도 침착하게 보여주고 있어 그것이 더 슬프게 느껴진다. 이 작품은 기리노 나츠오의 기존의 작품들과는 형식적인 면에서 약간 다르게 한 명의 여성과 네 명의 남성이 등장하는 구조를 보이고 있다고 생각된다. 피해자이면서 주인공인 게이코, 게이코의 일상 속에서 언제나 그녀에게 아무 것도 해주지 못한 심약한 아버지, 그녀를 납치 감금한 겐지, 겐지에게서 자신을 구해줄 거라고 믿고 신처럼 기도를 했던 야타베, 잔인하게 게이코의 내면을 알아내려고 접근하는 검사 미야사카... 이들 네 명은 게이코의 인생에 현실을 없애고 상상만 남기는 커다란 역할 하나씩을 맡아 스스로 사라지기를 결심하게 될 때까지 그녀의 인생을 좌지우지한다. 그녀의 사라짐은 이제 현실에 발을 디디고 싶다는 바람은 아니었을까. 그동안 살았던 세계는 하나의 허구였으니까. 20쪽에 이런 말이 나온다. 25전 사건. 나는 어째서 그 사건을 은폐하고 싶은 것인가. 아니 더 큰 의문이 있다. 나는 어째서 소설을 쓰기 시작한 것인가 하는 것. 그리고 겐지는 대체 어떤 인간이었는가 하는 것이었다. 게이코는 왜 그 사건을 사실 그대로 말하지 못했을까? 그것은 사실 그대로 전달될 수 없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아무도 믿어주지 않을 이야기로 또 한 번 상처받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린 아이라고 모든 것에 솔직하고 순진한 것은 아니다. 어린 아이이기 때문에 더 벗어나고 싶은 생각과 그곳에서 1년 넘게 살았다는 것에 스스로 자책했을 것이다. 그것을 누가 이해해줄 수 있겠는가. 소설을 쓰기 시작한 것은 현실에 발을 디디지 못한 그녀만의 상상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살아가야 할 의미가 필요했을 테니까. 또한 그녀의 마음속에 빗장이 걸려 있던 그 사건에 대한 그녀만이 아는 사실, 혹은 진실을 말하고 싶었기 때문에 소설을 쓰기 시작한 것인지 모른다. 처음에는 현실 도피의 수단이었지만 픽션을 통해서라도 아니 마지막 작품은 가장 솔직하게 쓸 수밖에 없는 것을 써야 한다는 작가로서의 피의 맹세가 아니었을까. 그리고 겐지는 어쩌면 또 다른 게이코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용서받을 수 없는 짓을 저지른 자이지만 자꾸만 그의 어린 시절과 성장과정, 그리고 상상의 상상이 이어지면서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용서하지 않겠다는 말을 하게 만들었다. 이 부분이 가장 잔혹한 부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십오년 동안 그녀를 따라다닌 존재의 실체를 그녀는 정말 깨닫지 못한 것일까, 아님 깨닫고 만 것일까... 상상은 현실을 멀리하게 만든다. 상상은 어떤 것도 받아들이게 만든다. 그리고 그 상상은 자신이 가장 괴로울 때 더 발휘된다. 현실이 고통스럽지 않고 안락한 이가 상상의 방이 필요할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이런 상상을 하고라도 살게 만들어버린 가정과 이웃,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는 크다. 이 책 속 어디엔가 우리 모습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우리 모두의 잔학기인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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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리노 나츠오의 소설은 섬뜩하다. 인간 내면의 심리를 밑바닥부터 파헤쳐서 숨겨져있던 욕망을 끄집어내는듯한 그녀의 글속에는, 마치 자유자재로 사람의 속을 들여다보는 무언가가 붙어있는것같은 기분이 들어 전율이 느껴진다. 그야말로 신들린 작가라는 생각이 든다. 그녀의 이런 능력은 이 작품 잔학기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된다. 잔학기는 납치감금사건이라는 소재를 다루면서도 납치극 자체가 주가되는 일반 범죄소설과는 확연히 노선을 달리한다. 2000년 가을 일본 니가타에서 초등학생 소녀가 납치 감금되었다가 9년여만에 구출된 사건이 있었다. 잔학기는 일명 니가타 소녀감금사건으로 불리는 이사건을 모티브로 해서 쓰여진것으로 짐작되는데 작가는 이 엽기적인 사건을 지켜보면서 사건 자체보다는 세간에 과도한 관심과 호기심으로 인해 정작 구출된후에도 계속해서 괴로움을 겪어야했을 소녀의 고통에 주목한것 같다. 잔학기는 피해자와 가해자 그리고 사회다수인 대중을 대변하는 인물들의 생각을 사실적이고 치밀하게 묘사하여 독자로 하여금 작가와 똑같은 시각에서 고민하고 생각해볼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데 이는 인간의 심리를 꿰뚫어보는 기리노 나츠오의 통찰력이 없었다면 가능하지 않았을것이다.
이런 사회를 오히려 가장 무서운 존재로 느꼈다면 니가타 사건의 실제 피해자는 어디에서 안식처를 찾아야했을까 고미 나루미는 스스로 밝혔듯이 자유라는 끈을 놓지 않고 끔찍한 감금생활을 견뎌올수 있었다. 그렇다면 역으로 자신의 이해자이며 자신을 구할수 있는 유일한 인간만을 의지하며 가장 무서운 존재로부터 버텨온 그녀가, 양쪽 모두로부터 버림받은 그녀가 있어야 할곳은 어디일까 그녀는 어디로 간것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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겐지에게 납치 당해 1년간 감금되어 있으며 '밋치'라고 불린 게이코. 얼마나 겁나고 무서웠을까. 겐지가 감옥에서 22년이 넘게 복역한 것에 대해서는 죗값을 받았다는 생각을 했었으나 아베카와 겐지가 편지에서 언급한 "저를 용서해 주시지 않아도 좋습니다. 저도 선생님을 용서하지 않을 겁니다"라는 말에 당황하게 된다. "1년간 이 둘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기에 피해자에게 가해자가 용서를 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 의문이 생기는 것이다. 게이코는 작가로 등단하여 자신이 겪은 일을 바탕으로 글을 쓰면서 분명 범인에게 연대의식을 가지게 되는 '스톡홀름 증후군'은 아니었다고 밝히고 있다.
옆방에 살고 있는 야타베에게 구조되기를 바라던 게이코에겐 야타베가 소리를 들을 수 없다는 말은 정말 하늘이 무너지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녀가 구조 요청의 글을 적어 방문 밖으로 내보낸 종이는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야타베가 이 종이를 발견하길 바랬었으나 회사를 그만두고 나갔다는 말을 들었을때의 절망감이란, 아마도 겐지에게 이 편지가 발각되어 죽임을 당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공포심을 갖게 했으리라. 이 때의 상황은 나로서는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었으나 나중에 게이코가 그녀의 이야기를 글로 쓰면서 하나씩 실체가 드러남에 따라 가슴이 서늘해지고 놀라게 되었다.
사장 마누라에 의해 겐지의 방에서 풀려나게 되었을때 대체 게이코는 무슨 정신으로 야타베의 방을 둘러볼 정신이 있었을까. 게다가 겐지의 방을 엿볼 수 있는 구멍을 발견하기까지 하다니 대단하지 않는가. 1년간을 야타베에 의해 구조 되기를 바란 마음에 그의 방이 궁금해 들어가 보았겠지만 이것으로 야타베와 겐지, 이 두사람이 공범이라 생각하다니 나는 이때부터 소설속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해지기 시작했다.
왜 자신이 당한 일을 사람들에게 이야기 하지 않은 것일까. 죽음의 공포와 구타를 당했건만 밤의 겐지의 모습을 보며 게이코는 겐지의 우위에 서 있었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친구라는 공감대를 형성하며 비슷한 정신세계를 가졌던 시간이었기에 그에 대해 함구했던 것일까. 아마도 그녀가 정말로 미워한 사람은 야타베였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겐지는 야타베에게 사랑받고 싶어하는 존재일뿐이었으나 게이코를 납치함으로써 야타베와 별개로 게이코와 함께하고 싶었으니까. 허나 그렇다면 여기에서 또 하나 궁금증이 생긴다. 야타베가 요구하는대로 해 주지 않은 겐지는 왜 야타베가 겐지의 방을 계속 보도록 허용했는가 하는 문제가 남는다. 역시 겐지는 여전히 야타베에게서 벗어날 수 없었던 것인가.
글을 남겨두고 사라진 게이코, 그녀가 어디로 갔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우연히 야타베를 만나고도 그를 잡지 않고 놔주고 겐지에 대해 아무말도 하지 않았던 게이코의 마음을 알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자신도 명쾌하게 답을 못 내리고 있지 않을까. 1년간의 감금생활로 잃은 것은 '현재'라고 했다. 그녀가 감금생활에서 풀려나 집으로 돌아왔을때 자신을 바라보던 사람들의 시선에 증오심을 느꼈다는 글을 보면서, 아마 나도 뭇 사람들처럼 그렇게 그녀를 쳐다보았을테니 그녀의 증오심의 대상에 포함되리라 생각했다. 사건에 대해 입을 열지 않음으로써 겐지가 사형을 면할 수도 있었다는 상황에 대해 사람들은 물론 나도 이해가 되지 않지만 그녀가 이야기 하지 않은 1년간의 또 다른 이야기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볼 뿐이다. 소설속에서 어디까지가 진실인지는 그녀만이 알 것이므로 이후에 결론지어진 일들에 대해서는 그녀 자신이 충분히 생각하고 결정했으리라 믿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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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리노 나쓰오의 작품은 읽고 나면 힘이 든다. 꽤 재미있고 수준높은 작품임에는 틀림없지만 너무 잔혹할 만큼의 사실적인 묘사가 받아들이기 버겁다고 해야 할까. 아니, 그것보다는 사실은 내 안에도 이런 비슷한 생각과 감정이 있는데 그것을 남한테 내보이는 것은 부끄럽고 창피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기리노 나쓰오의 작품에는 고스란히 들어나서 그런 듯 하다. 이번 작품인 '잔학기'는 초등학교 4학년때 한 남자에게 납치되어 1년간 감금되어 있던 한 소녀가 자라서 작가가 되고, 자신이 어렸을 적 겪었던 일을 소설로 펴낸 내용을 그 남편이 편집자에게 보낸다는 구성이다. 실제 소녀가 겪었던 일도 충격적이었지만 나중에 그녀가 어른이 되어 책속에 등장하는 '잔학기'라는 소설에서 묘사한 장면은 더더욱 소름이 끼쳤다. 어린 소녀가 겪기엔 너무나 힘든 현실, 하지만 그녀가 구출된 다음에 그녀를 둘러싼 주변 사람들의 호기심 어린 눈초리가 오히려 그녀에겐 더 큰 상처로 다가왔다. 그래서 소녀는 낮의 자신을 지켜내기 위해 밤에 상상의 나래를 펴면서 자신이 당했던 일 뒤편의 알려지지 않는 사실들을 추리해 나간다. 자신을 가두었던 겐지는 사실 자기한테 관심이 있었다기 보다는 어렸을 적부터 겐지가 의지했던 야타베라는 남자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라는 것이라던가, 고등학교 친구를 따라 누드 모델 데생 장소에 가서 우연히 야타베라고 짐작되는 사람을 다시 만난 일, 겐지가 자신을 납치하기 전에 어린 필리핀 여자를 데리고 살다가 그녀가 죽어서 뒷마당에 묻은 일 등등.. 지금까지 읽었던 기리노 나쓰오의 책보다는 좀 덜했지만 이번에도 역시 상당한 임팩트가 있었다. 무엇보다 갇힌 소녀의 사실적인 심리 묘사가 뛰어나다. 역시 하드보일드의 여제답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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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읽은지 좀 됬는데 이제 리뷰를 쓴다. 왜냐면 딱히 할 말이 없기때문이다. 물론 소설이 담고 있는 것들은 많이 있다. 개인적으로 나에게는 그닥 와 닿지는 않았다.
일본에서 실제 있었던 납치 사건을 모티브로 했다고 한다. 어떤 소녀가 1년가 납치 감금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읽는 도중에 마지막 결말이 예상되로였다고 할까 흥미진진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기리노 나쓰오는 반전이나 깔끔한 추리는 없지만 인간의 내면은 무서울 정도로 묘사한다.
겐지에게 감금된 게이코는 1년 동안 너무 성숙해 버린다. 내면은 이미 어른이나 마찬가지이며 학생다움은 보이지 않는다. 지금 공부하고 있는 심리학이 생각난다. 인간은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자라온 환경에 따라 인간의 성격은 발달한다고 하는데 게이코의 경우는 좀 많이 절망적인 것 같다.
의문점이 있다면 납치범 겐지가 이중인격자인가 하는 것이다. 소설에서도 정확히 답을 알려주지 않았는데 겐지가 스스로 게이코를 도와주었는지 아니면 또 다른 겐지가 게이코를 풀어주었는지 의문이다. 아...............난 확실한게 좋은데
그리고!! 재수없는 검사, 게이코와 결혼했구나 평범한 사람이 그녀와 결혼 할 수 있을리는 없겠지만 좀 의외였다. 하지만 이 부분은 만족한다. 검사와의 결혼을 반전으로 생각할란다.
결론은 예상데로....결국 납치범에게 감정을 갖게 된다. TV에서 본 적이 있다. 인질들이 범인과 함께 지내면서 범인에게 애정을 느낀다는 것이다. 솔직히 이해는 잘 되지 않는다. 내가 경험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어쨌든 게이코와 겐지는 모두 피해자라는 것 하지만 피해자는 가해자도 될 수 있다. 갑자기 악의 근원이 무엇인가에 대해 논의하게 된것 같다. 심오한 것은 관심 없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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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에 나오는 것은 그 안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사실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게 모호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것은 소설 속에서 말하는 사람이 작가일 때라고 생각한다. 아니, 꼭 작가일 필요는 없다. 그저 글을 쓰는 사람이어도 상관없다. 하지만 내가 그런 것을 많이 읽었느냐 하면, 잘 생각나지 않는다. 어쩌면 이런 생각을 하게 한 것은 이 책과 얼마전에 읽은 《악의》(히가시노 게이고)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그런 모호함 때문에 이 책 《잔학기》를 읽은 느낌을 어떻게 써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다. 소설 속 인물 고미 나루미(기타무라 게이코이기도 하다)는 마지막 말 때문에 《잔학기》를 쓴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꿈에 갇혀버린 자신에 대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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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이 하교길에 납치가 된다. 그리고 1년여를 남자의 방에 갇혀서 지낸다. 물론 납치당한 아이는 여자 아이. 나이는 열한 살이다.
책을 주문하기 위해 줄거리를 뒤적거리면서 이 소설이 위와 같은 내용을 다루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 순간 내 머릿속에 든 생각은?
밤 12시 이후만 되면 텔레비전에서 각종 음란물이 범람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그런 환경에서 살아서 어쩔 수 없이 [완전한 사육]을 몇편 시청할 수밖에 없었던 현대인으로서 책장을 열면서 주인공 여자 아이가 무슨 일을 당했을까, 나쁜 쪽으로 상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책의 주인공은 30대 중반의 소설가이다. 라는 건 상상을 업으로 해서 먹고 사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녀는 열한살 때 어떤 남자에 의해서 납치되어 1년동안 감금생활을 했다. 그녀는 구제된 이후에도 자기가 무슨 일을 당했는지 입을 열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사람들은 '상상'을 하게 된다. 그 상상 속에서 그녀는 무한히 불행한 존재로 추락하고, 동정받아 마땅한 존재가 된다. 그녀가 있으면 환경이 일그러진다. 다들 그녀에게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전전긍긍한다. 그녀는 자기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가해자가 자기에게 무슨 일을 했는지 정확하게 기억하지만 그 동기는, 그리고 그 욕망의 근원은 이해할 수 없다. 내가 왜 그런 취급을 당했는지 납득하고 싶다. 자기 인생을 통째로 바꿔버린 그 사건, 그 사건은 어째서 일어났는가. 그 사건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 그녀는 가해자의 머릿속을 '상상'하게 된다. 집으로 무사히 귀환한 뒤 어린 소녀는 매일밤 가해자를 생각한다. 그의 과거를 그의 욕망을 분해하기를 원한다. 그녀의 이런 작업은 열아홉살이 되던해 말의 격류를 일으켰고 그것을 받아쓰는 과정에서 한편의 소설이 탄생한다. 그녀는 그 소설로 인해 소설가의 길을 걷게 된다. 이 소설안에는 그녀가 쓴 소설들 몇편이 들어있다. 그녀의 꿈과 그녀의 생각도 들어 있다. 끝없이, '상상'이 '상상'을 만들어낸다.
이 소설을 읽고 기리노 나쓰오에게 완전히 반해버렸다. 그녀는 범죄를 흥미로 즐기려고 하는 인간 내면의 깊숙한 욕망을 드러냈다. 남의 일, 어떤 여자가 당한 일, 신문을 읽으면서 자신의 안락한 일상에 만족하는 사람들. 범죄를 이런 식으로도 다룰 수 있구나, 그리고 사람을 이렇게도 깊게 통찰할 수 있구나 하는 것을 느끼게 해준 작품. 겨우 200페이지 남짓한 적은 분량이지만 안에 담긴 내용의 밀도는 치밀하다. 이 한권을 읽고 기리노 나쓰오의 팬이 되어 버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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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고미 나루미는 유명 소설작가다. 홀연히 잔학기라는 원고하나와 잔학기를 쓴 계기를 적은 편지 한장을 남기고 종적을 감춘다. 그리고 나루미에게 도착한 편지 한통. 25년전 나루미를 1년 1개월 동안 납치 감금하고 감옥에 수감된 겐지에게서 도착한 편지다. 겐지는 " 날 용서 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나도 당신을 용서하지 않을겁니다" 라는 글귀를 적어보냈다. 어찌 된일인가? 초등학교 4학년이였던 나루미는 25년전에 어떤일이 있던것일까??
책은 액자식 구성으로 되어있는데 나루미가 강금됐을당시 상황을 회상하는듯한 소설 "잔학기"의 이야기가 펼처진다. 1년 1개월동안 어린 나루미에게는 감당하지 못할 아픈 기억과 상처가 베어 서려있을것이다. 감금생활에 탈출한후에도 주위에서 관심과 걱정을 빙자한 호기심은 10대의 감수성어린 소녀에게 그야말로 "잔학기"였을것이다. 나루미가 세상을 등지고 도망간것은 1년동안 겐지에게 당한 괴로움도 있겠지만, 도와줄꺼라 생각했던 옆방의 야타베에 대한 실망감, 그리고 진실을 말하더라도 들어줄 사람없는 외로움이 겹치면서 25년이 흐른후에도 상실감을 극복하지 못해 그녀는 세상에서 사라진게 아닐까?
일본에서 소설과 비슷한 납치사건이 발생해서 화제가 됐다고한다. 납치장면과 나루미가 학대받는 장면은 스릴있지만 읽는이를 불편하게 만든다. 밑바닥까지 모든것을 보고, 또 다른 진실이 있을지 모른다는 불편함과 궁금증이 이 소설의 매력이다.
소설 "잔학기"와 실제 사라져버린 현실의 나루미 그리고 그의 남편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제 각각 달라서 어느게 진실인지 알수없다. 현실과 소설 "잔학기"의 경계도 모호하고 뒤섞여서 더 햇갈린다. 정말 나루미가 겐지를 사랑했는지, 성적으로 학대를 받았는지, 어떤 계기로 이 소설을 쓰고 나루미는 사라져버렸는지 소설은 끝까지 진실을 알려주지 않는다. 진실을 알수없기에, 나루미는 진실을 말할수없었기에 이 소설은 잔학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