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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만큼이나 해로운 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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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히포크라테스 선서로부터 시작해서 의학에 관한 모든 것에 대한 내용을 다시 살펴본다. 작가는 의사이지만 진정으로 중립적인 지대에서 의학이 정말 인간을 치료해주었는가? 라는 점에 대해서 진지하게 써내려가고 있다.   저자는 ‘이 책의 주요내용은  정말로 좋은 의료라고 믿었지만 실상은 해를 가한 의료에 관한 것이다.’ 이렇게 선언한다. 그리고 의학의 발전과 더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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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히포크라테스 선서로부터 시작해서 의학에 관한 모든 것에 대한 내용을 다시 살펴본다. 작가는 의사이지만 진정으로 중립적인 지대에서 의학이 정말 인간을 치료해주었는가? 라는 점에 대해서 진지하게 써내려가고 있다.
  저자는 ‘이 책의 주요내용은  정말로 좋은 의료라고 믿었지만 실상은 해를 가한 의료에 관한 것이다.’ 이렇게 선언한다. 그리고 의학의 발전과 더불어 질병이 해소되거나 그 고통이 완화되거나, 혹은 장수하게 되리라고 믿었던 것들이 사실은 다 속임수였음을 알려준다. ‘ 1941년 페니실린이 발명되기 전까지 의사들 대부분은 전염병에 속수무책이었고, 새로운 과학조차도 질병에 사실상 무기력’했었던 것이다. 
  의사들의 진료행위에 대한 믿음이 환자들의 병을 낫게 하거나, 환자들이 자체면역이 증진되면서 병이 자연 치유되는 것이 과거의 진료행태였다. 의사들이 질병을 치료하기는 커녕 오히려 의사들이 질병을 다른 환자들에게 전염시키는 예도 허다했다. 19세기 말까지 적절한 살균에 대한 인식이 희박했기 때문에 의료장비가 세균의 온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의사들의 왕진가방이 세균덩어리였던 시절도 있었다 한다.
  세균병인설이 근대 의학을 가능하게 해 줄 때까지 의사들은 자신들의 의료행위가 효과가 있는 지 알지 못한 채로 때로는 알지만 어쩔 수 없는 상태로 자신들의 지위를 유지했었던 것이다.

 모든 의사가 이 책의 저자처럼 자신들의 신념과 의료행위에 대해 반성할 수 있다면 저자가 말하는 '나쁜 의학'은 사라질 것이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가 의사들은 환자에게 가혹행위를 하며 그들이 치료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질병들 만큼이나 해롭다’고 비판했다 한다. 환자들의 목숨을 다루는 의사들의 책임에 대한 냉혹한 비평이지만 헤라클레이토스의 이 말은 현시대의 의사들에게도 따끔한 자기반성으로 곱씹어볼 만한 가치가 있는 것 같다.

 

 덧붙이는 글: 이 책은 역사적인 의학사의 사건들과 의학의 발전상 그리고 때로는 퇴보하거나 정지했었던 안타까운 시절들을 논하며 아주 전문적으로 서술되어 있어서 그리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닌 듯 합니다.
 

YES마니아 : 로얄 l*****a 2007.06.25.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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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로써 본 의학의 궁금증
"의사로써 본 의학의 궁금증" 내용보기
우선 이야기 하면 사실 필자가 하는 일은 내과 전문의이다. 현장에서 진료를 하면서 평소에 궁금했던 일이 있는데 과거 (적어도 100년 이전에)에는 과연 의사들이 환자를 어떻게 진료하였는지에 대한 궁금증이다. 이 시기에 과연 의사들이 환자에게 유익한 치료를 할 만한 의료 기술이 있었는가?.    물론 현재에도 비교적 많은 질환에서 의사들이 환자에게 약간 밖에는 도움을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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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선 이야기 하면 사실 필자가 하는 일은 내과 전문의이다. 현장에서 진료를 하면서 평소에 궁금했던 일이 있는데 과거 (적어도 100년 이전에)에는 과연 의사들이 환자를 어떻게 진료하였는지에 대한 궁금증이다. 이 시기에 과연 의사들이 환자에게 유익한 치료를 할 만한 의료 기술이 있었는가?.

 

 물론 현재에도 비교적 많은 질환에서 의사들이 환자에게 약간 밖에는 도움을 주지 못하거나 아니면 다소 무기력하게 지켜봐야 하는 경우들이 있다. 그러나 분명이 많은 질환에서 획기적인 치료방법들이 발명되어 의료현장에서 쓰이는 것이 현실이다. 만약 CT 같은 진단 도구나 항생제같은 약이 없었다면, 아마 내가 아는 환자 중에도 많은 환자들이 살아서 퇴원하지 못했을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약이나 진단 기술 혹은 여러 치료적인 술기들이 개발된 것은 대부분 20세기 들어와서이다. 그러면 대체 이전에 의사들은 어떻게 진단을 하고 치료를 했단 말인가?

 

 이 책은 여기에 대한 대답으로 상당히 비판적인 시각에서 의학의 역사를 바라본다. 그리고 사실 그러한 내용등은 사실에 기초한 내용들이다. 과거에 행했던 피를 뽑는 치료(phlebotomy 라는 이런 치료는 실제로 지금도 필요로 하는 질환들이 있다. 물론 이전에 효과가 전혀 입증 된 바 없는 phlebotomy 가 아니라 정말로 과학적으로 필요한 경우다) 나 매독에 대한 납을 이용한 치료들은 치료가 아니라 환자에게 오히려 크나큰 해악을 가져오는 치료로 지금으로 말하면 malpractice (의료과오) 이다.

 

 이와 같은 치료가 2000년 이상 지속되었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는 데 사실 생각해 보면 현대 과학 중에서 생물학의 발달이 다소 늦은 19세기 이후에서 본격적으로 발전하였다는 점을 생각하면, 과학 기술 발전의 미비로 당시 의사들이 뭔가 효과적인 치료를 하기는 어차피 어려웠을 것이다. 그리고 그건 누가 그 시기에 의사를 해도 변하지 않을 사실이다. 이런 점을 생각하면 지금같은 시기에 태어나 의사를 하게된 점에 대해서 감사히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한가지 이 책이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라면 너무 비판적인 시각에서만  바라본다는 것이다. 이를 테면 중세이후에 행해진 사지 절단술은 항생제 치료를 할 수 없던 시절에 팔다리에 심각한 상처에 대한 감염술을 치료하는 유일한 방법이었고, 사실 그런 치료를 통해서 비록 팔다리는 잃었지만 생명을 구한 환자들도 아마 적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당시의 사지 절단술 (이름 처럼 창상 감염이 된 팔다리를 자르는 수술이다. 상처를 통해 세균이 들어와서 궁극적으로 피를 타고 패혈증에 빠지기 전에 감염의 원천을 없애는 것이다) 이 지금으로써는 하지 않을 수술이라도 아무튼 당시에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범위에서 생명을 구하기 위한 노력이었던 것이다. 아마 이런 노력을한 의료인들이라도 있었기에 이후에 과학기술이 발달한 후에 이를 기반으로 보다 복잡한 수술이 가능해진 것이다.

 

 결국 어느 시대에나 의사가 할 수 있는 치료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고, 당시 의학지식의 한계에서 불필요 하거나 하지 말아야 할 치료를 하게 되는 경우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의사로써의 책무를 다하기 위해 노력했던 사람들을 모두 비난할 필요는 없다. 다만 과거에 행해진 사지 절단술과 같이 효과가 있어보이는 치료 말고 왜 효과가 당연히 의문시되는 황당한 치료들이 행해졌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을 가져볼 수 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이 책에도 언급이 잠시 되지만 당시 의학에는 치료 방법의 '과학적 검증'이라는 부분이 빠져있기 때문이다. 요즈음에 와서야 EBM (evidance based medicine, 근거 중심 의학이란 뜻으로 당연히 과학적 근거를 말한다) 가 아주 중요하게 생각되지만 당시에는 이 치료가 과거의 치료와 비교해서 과학적으로 검증했을 때 보다 나은 결과를 가져다 주는지 혹은 치료를 했을 때 와 치료를 하지 않았을 때 경과가 어떻게 다른 지에 대해서 전혀 검증을 해보지 않았던 것이다.

 

 한가지 예를 들면 매독의 납을 이용한 치료가 그렇게 근세에 인기를 끌었던 이유는 최대 75%가 치료 후 1년 이내에 매독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왜냐면 매독은 치료하지 않아도 자연 경과상 그 정도의 자연 치유율을 당시 보였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자세한 언급이 빠진 이야기라 한번 추가해 보았다). 따라서 실제로 치료의 효과를 검증하지 않는 경우에 마치 그것이 치료인 것 처럼 생각될 수 있는 것이다. 실제 근세와 현대에 이르러 과학 문명이 발달된 이후에야 과학적인 검증이 중요해졌다. 그리고 의학에서도 EBM 이니 RCT 이니 하는 것들이 중시되고, 또 눈부신 과학 기술에 의해서 지금과 같은 의학의 모습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나 종종 하는 생각이지만 지금의 우리가 그러하듯이 아마 수백년 후의 의사들은 지금의 우리가 했던 치료들을 황당하게 여길 지도 모르는 일이다. 후세의 의사들이 우습게 치료할 그런 질환들은 지금에 우리가 정말 나중에 보면 웃기는 방법으로 치료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오늘의 우리들은 일단 가능한 방법 안에서 최대한 치료를 해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치료법이 좋지 않다고 환자가 생기지 않는 것은 아닐 테고 환자가 있다면 의사는 어떻게든 치료를 해보기 위해서 노력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단지 지금은 명백한 오류라고 생각되는 치료들을 히포크라테스와 그의 제자들이 했을 지라도 우리가 무조건 폄하 할 수도 없는 일이다. 당시에도 환자는 있었고, 비록 방법들이 적절하지 않았지만 그들은 의사로써 나름대로 도리를 다하기 위해 노력한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당시의 과학기술 수준이 환자를 치료할 수준이 안 되는게 문제지만.

 

 또 한가지 지적할 수 있는 부분은 저자가 현대 의학 및 백신이 가져다온 역활을 너무 과소 평가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부분이다. 오늘날 생각하기에 보건위생의 향상이 물론 가장 중요한 전염성 질병 감소의 원인이지만 백신 및 항생제의 역활을 과소 평가 할 수는 없다. 저자는 이 역활을 다소 과소 평가하는 논문이나 연구 결과들만 인용하는게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 수 밖에 없다.

 

 이렇게 말하면 이 책의 단점만 이야기 한 것 같지만 사실 이 책은 장점도 많은 책이고 또 과거 역사에 대한 내용은 모두 사실에 기초한 것이다. 이것과 약간은 다른 시각에서 의학의 역사를 바라본 책으로 이재담 교수님이 쓴 의학의 역사가 있으니 (사실 이 책을 먼저 읽었다) 한번 비교해서 읽어 보는 것도 재미 있을 것 같다.

YES마니아 : 로얄 j****1 2007.07.13.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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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의학은 왜 그렇게 오래 지속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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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의학은 1865년 3월, 글래스고의 외과 교수였던 서른일곱의 조지프 리스터가 자신이 ‘부패의 세균설’이라고 부른 원칙을 적용해 다리의 복합골절을 치료하려 한 순간 시작되었다.” (300쪽)린지 피츠해리스는 《수술의 탄생》에서 그 시점을 진정한 수술이 탄생한 시점이라고 했지만, 역사가 데이비드 우튼은 한술 더 떠 의학의 역사를 단절하는 시점을 1865년으로 단정 짓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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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의학은 1865년 3월, 글래스고의 외과 교수였던 서른일곱의 조지프 리스터가 자신이 ‘부패의 세균설’이라고 부른 원칙을 적용해 다리의 복합골절을 치료하려 한 순간 시작되었다.” (300쪽)


린지 피츠해리스는 《수술의 탄생》에서 그 시점을 진정한 수술이 탄생한 시점이라고 했지만, 역사가 데이비드 우튼은 한술 더 떠 의학의 역사를 단절하는 시점을 1865년으로 단정 짓고 있다. 


조지프 리스터는 파스퇴르의 세균설을 적극 받아들여 방부 수술(혹은 무균 수술)을 처음 시도했으며 이러한 시도 이후 그가 절단 수술한 환자들의 사망률을 45퍼센트에서 15퍼센트를 낮추었다(데이드비 우튼은 리스터가 파스퇴르의 이론을 받아들여 그런 시도를 한 게 아니라고 하고 있지만). 


그런데 데이비드 우튼은 리스터의 그 시도가 얼마나 위대하고 중요했는지에 가장 중요한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그는 왜 그때서야 진짜 의학이 시작되었는지가 가장 큰 의문이다. 1670년대 레이우엔훅(이 책에서는 레벤후크라는 예전에 영어식으로 불렀던 이름을 쓰고 있다. 하위헌스가 아니라 호이겐스라고 쓰고 있기도 하고, 이름을 쓰는 방식은 매우 구식이다)이 세균을 처음 발견하고 거의 200년이 지나서야 그런 일이 벌어졌다는 것이 놀라운 일이라는 것이다. 그러한 의문에 대한 긴 서술이 바로 이 책이다. 


데이비드 우튼은 그 이전에는 의학이 사람을 살리지 못했다고 본다. 전혀! 히포크라테스의 의학도, 갈레노스의 의학도, 그리고 베살리우스 이후의 의학도 그랬다. 대표적인 것이 사혈법이다. 어떤 병에도 피를 내게 하는 이 의료법은 히포크라테스에서부터 비롯되었고, 진짜 의학이 시작되었다는 19세기 중반 이후, 20세기 초반까지도 행해졌다(물론 거머리 요법도 사혈법의 일종이고, 일부 질병에는 효과가 있다고도 한다). 어떤 비교도 없이 과거의 의료 행위를 답습하는 의사들의 행태는 무려 2000년이 넘기 지속되었던 것이다. 


현미경이 발명된 이후, 금세 현미경학이 별로 의학에 도움을 주지 못한 것도 의문이다. 레이우엔훅만 오랫동안 현미경을 붙잡고 있었을 뿐, 초기의 현미경학자들은 금방 현미경을 놓고 말았다. 그리고 세균이 발견되고도 자연발생설을 완전히 잠들지 못하고 파스퇴르가 나타나기를 기다려야만 했다. 의학은 여전히 사람을 살리지 못하고 있었다. 


데이비드 우튼은 토마스 쿤의 패러다임과 정상과학에 의지하여 ‘심리적, 문화적, 혹은 제도적 요소들“이 의학적 발전을 가로막았다고 보고 있다. 의사들은 자신들의 영역에서 조금도 벗어나려 하지 않았고, 환자들이 자신들의 요법으로 정말 치료되는 것인지, 그렇지 않은 것인지를 ’과학적으로‘ 비교해려는 시도를 거의 하지 않았다. 그런 시도는 바로 무시되곤 했다. 그렇게 자신들의 지위는 유지되었고, ’나쁜 의학‘은 지속되었다. 


이렇게 데이비드 우튼은 의학이 실제로 오랫동안 사람을 살리지 못하는 나쁜 의학이었음을, 그리고 다른 이유도 아닌 심리적 이유, 문화적 이유로 새로운 의학에 꿋꿋이 저항해왔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 논의를 현대 의학에까지 연결짓고 있는 것은 아니다. 물론 플레밍이 페니실린을 발견해놓고도 그것을 적극적으로 의약품으로 만들고자 하지 않았던 점이나, 20세기 중반 담배와 폐암의 관련성을 인정하지 않았던 의사와 보건 당국의 문제를 제기하고는 있지만, 그 자신이 복합 골절, 충수염을 치료받을 수 있었기에 살아남아 책을 쓸 수 있었다는 것을 언급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반전은 또 있다. 20세기 중반 이후 급격한 기대 수명의 증가가 의학 덕분이 아니라는 여러 증거가 있다. 이 부분은 참 아이러니하기도 한데, 이미 접해본 바도 있다. 바로 항생제가 사용되기 전에 이미 세균 감염 질환으로 인한 사망률이 많이 떨어졌다는 데이터가 있다(여기서도 언급하고 있다). 이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는 사람마다 다르다. 나는 20세기 이후 기대수명을 늘리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이 바로 상하수도 시설을 비롯한 ’위생‘이라는 것에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고 본다(데이비드 우튼은 대신 다른 이유를 든다. 조금 의아스럽긴 하다). 


의사들은 이 책의 논의를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하다. 읽다 잠깐 들여다본 독자 후기를 보면 인정도 하지만 좀 심하다는 투의 글이 있다. 아마 당연한 반응이라고 생각한다. 데이비드 우튼은 그런 걸 의도했다고도 본다. 어쩌면 충격요법? 여기의 데이비드 우튼의 관점이 반드시 옳다고만 보지 않는다면 충분히 생각해볼 만한 여지가 많은 내용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개인적인 입장에서는 이 책을 왜 이제야 발견했나 싶다. 책을 쓰면서 놓쳤던 부분들이 적지 않게 있고, 지금 쓰고 있는 책에서 추가하고 수정해야겠다 싶은 부분도 여기서 알게 되었다(좀 더 생각은 해봐야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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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마니아 : 로얄 n*****m 2026.07.03.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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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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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에 관한 역사적인 흐름을 잘 알진 못하지만 가장 기억나는 사람이 전설에 등장하는 화타라는 명의다. 그는 삼국시절 관우의 팔에 박힌 화살을 빼내고 사람을 살리는 명의로 이름을 날렸다고 한다. 그에게 한번의 치료를 받으려 세상의 병든 이들이 모두 모여들었다고 하니 생로병사의 인간사를 논하는데 의학은 없어서는 안될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하겠다. 헌데 화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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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에 관한 역사적인 흐름을 알진 못하지만 가장 기억나는 사람이 전설에 등장하는 화타라는 명의다. 그는 삼국시절 관우의 팔에 박힌 화살을 빼내고 사람을 살리는 명의로 이름을 날렸다고 한다. 그에게 한번의 치료를 받으려 세상의 병든 이들이 모두 모여들었다고 하니 생로병사의 인간사를 논하는데 의학은 없어서는 안될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하겠다.

헌데 화타의 의학은 현재의 의학을 논하는 수준의 단계가 아닌 그대로 원시적이고 자연적인 의학술을 고집하고 있었을 것이다.

현재 의학의 발달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불치의 병과 생명 연장을 늘리는데 최선의 경주를 기울이고 있으며 발전 속도는 여느 부분 못지 않게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의학의 이러한 발전의 이면엔 믿지 못하는 의학의 진실이 숨겨져 있다고 한다.

 

의학에 관한 진실은 우리에게 무엇을 전달하려는 것일까?

고령화로 인한 21세기의 인간들의 생명 연장엔 약과 의술이 존재한다.

의학은 그대로 인간의 생명을 담보로 보다 나은 삶을 가능케 해주는 인류 최고의 선물 되어가고 있다. 하지만 19세기 중반까지의 의학은 진실을 숨긴 인류에게 득보다는 해악을 일으켰다는 주장이다.

의사의 권위에 감히 도전하기 보다는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체재에 순응하는 시대를 거친 것이다.

이제 진실들이 하나씩 밝혀지고 의학은 스스로에 대한 비판을 감수하고 있다.

의학의 진실은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보는 의학사에 관한 내용이 주를 이룬다. 특히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의 절대적인 권위를 파헤치며 그들이 진정으로 환자들에게 어떠한 시술을 했는지 진실성에 대한 강한 의문을 제기한다.

특히 요즘도 시행하고 있는 제왕절개시술은 고대에도 널리 알려져 왔는데 19세기 이전에 제왕절개시술로 산모가 살았다는 어떠한 기록도 남아있지 않다고 한다.

의학에 관한 기준이 모호 해지는 순간이다.

마찬가지로 의사가 왕진을 사용하는 가방엔 온갖 박테리아 득실거렸을 것이다.

의학에 관한 기준이 새롭게 쓰여진 시기가 얼마 되지 않았다.

한가지 우리의 현실도 미래엔 어떤 방식으로 평가가 내려질지 의문이다.

 

알고 먹든 모르고 먹든 의학의 발전은 우리에게 약과 병을 주는 필요악임에는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과용은 언제나 치명적인 부작용을 일으킨다.

의학에 관한 국민의 기대는 갈수록 커질 것이다.

의학에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간결하다.

하지만 그의 진정한 뜻을 품은 의학의 진실을 생각해 시점이다.

우린 책을 통해 의학에 관한 해악을 중심으로 과거 인류의 삶의 흔적을 있다.

하지만 가벼운 주제처럼 편안하게 느낄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드는 책이다.

눈에서 사라지지 않는 책의 제목이 눈길을 끈다

 

k****4 2007.06.23.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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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운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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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환자에게 해를 끼치지 말라.” 이 말은 너무나 당연한 말로 들린다. 의학은 환자를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다. 의학에 기초한 진료와 치료행위가 환자에게 해를 끼친다면, 이는 의료와 의학이 존재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에는 놀랍게도 적어도 1860년 이전의 의학이라고 불린 것의 대부분은, 환자에게 엄청난 해를 끼친 것으로 밝히는 내용들이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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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환자에게 해를 끼치지 말라.” 이 말은 너무나 당연한 말로 들린다. 의학은 환자를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다. 의학에 기초한 진료와 치료행위가 환자에게 해를 끼친다면, 이는 의료와 의학이 존재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에는 놀랍게도 적어도 1860년 이전의 의학이라고 불린 것의 대부분은, 환자에게 엄청난 해를 끼친 것으로 밝히는 내용들이 가득히 적혀 있다.


의학의 진실은 “적어도 1860년 전에는 의학이 실제로(심리적인 것 외에) 환자에게 도움을 준 것은 별로 없다.”라는 것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저자는 그 강력한 증거로 병의 세균기인에 관한 인식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실제로 현미경으로 세균을 발견하고, 그 세균이 병을 일으키는 원인일 것이라는 의문이 제기된 것은 1600-1700년 대였다. 그러나 그것은 150년이나 지나서야 의학계에서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의학계가 새로운 지적을 받아들이기 보다는, 기존의 전통을 유지하는데 더 많은 관심을 기울였기 때문이다.


저자는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개념을 동원하여, 1860년대를 의학에 새로운 패러다임이 등장하기 시작한 시기로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그 이전의 시기는 히포크라테스의 이론에 근거하여 근본적인 변화나 진전이 이루어지지 않았던 ‘정상상태’ 즉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시기였다는 지적이다. 쿤의 이론처럼 기존의 이론으로는 도저히 설명되지 않는 근거들이 상당히 축적되고 나서야 정상상태는 도전받기 시작하고, 그때야 비로소 그 많은 설명되지 않는 질문들에 대답할 수 있는 학문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찾는 노력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최소한 감염설에 관해서는 저자의 논리가 맞는 듯이 보인다. 사실 근대이전의 질병으로 인한 사망의 대부분은 감염에 의한 것이었다. 감염에 대한 대응능력이 전혀 없었던 서구인들은 페스트의 유해만으로도 인구의 절반을 잃곤 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부상당한 군인을 전쟁터의 막사에서 수술한 경우가, 병원에서 수술한 경우보다 생존율이 훨씬 높았다고 한다. 바로 병원의 오염된 환경과 의료기구 때문이었다.


오늘날 인류의 수명이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증가하고, 의료기술이 암을 완치하는 것에 도전하고, 생명공학의 발전으로 불노의 한계에 도전하는 상황에서 이런 일들은 도저히 믿기지 않을 정도로 충격적인 사실들이다. 그러나 적어도 서양에서는 그런 일들이 실제로 일어났었다는 것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이 책은 모든 의료인들이나 의료이용자들이 귀감으로 삼아야 할만한 예리한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이다.


다만. 쿤의 과학발전의 이론을 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입장을 택한다면, 1860년 이전에는 서양의학에는 아무런 진전이 없었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을 것 같다. 또 반대로 쿤의 이론을 받아들인다면, 오늘날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는 의료과학 속에는 혹시 정상상태의 맹점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를 되돌아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과학은 항상 근거에 의지하여 현실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속에서 발전을 한다.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발전이라는 것이 진정한 발전이 아닌 것은 아닌지... 과학을 불신하는 입장이 아니라, 과학내부적인 입장에서의 비판적 성찰이 필요할 것 같은 생각이 문득 들기 시작한다.


s***g 2007.06.1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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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하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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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표지의 그림을 보니 문득 소름이 끼친다. 새의 부리를 가진 동물이 인간을 머리부터 삼키고 있지 않은가. 뭐냐, <의학의 진실>이라는 제목을 가진 책의 표지에 이런 그림을 넣다니, 의학의 진실이란 인간을 살리기보다는 오히려 잡아먹는 기술이었다는 말인가?   저자인 데이비드 우튼은 약력에 보자면, 역사학과 교수이며 정치사상사의 권위자로 근대 초기의
"의학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하는 책" 내용보기
책 표지의 그림을 보니 문득 소름이 끼친다. 새의 부리를 가진 동물이 인간을 머리부터 삼키고 있지 않은가. 뭐냐, <의학의 진실>이라는 제목을 가진 책의 표지에 이런 그림을 넣다니, 의학의 진실이란 인간을 살리기보다는 오히려 잡아먹는 기술이었다는 말인가?
 
저자인 데이비드 우튼은 약력에 보자면, 역사학과 교수이며 정치사상사의 권위자로 근대 초기의 지성사에 대한 여러 권의 책을 저술했다고 한다. 그런데 히포크라테스 시절부터 현대에 이르는 의학의 역사를 아우르는 책을 썼다는 것이 놀랍다. 그렇다고 이 책이 유명 저술가가 자기 전공 이외의 영역이라도 이름값을 믿고 쓰는 대중교양서가 아니다. 오히려 술술 읽기 어려운 전문서이다. 역사적이면서 의학적인 자료들로 가득한 책은 저자가 힘주어 말하는 1865년의 시점에 이르기까지 의학사의 거짓된 진보의 과정을 낱낱히 목격하게 만드는 노력으로 가득하다.
 
사실 나는 의학이란 것에 기대와 맹신을 없애려고 개인적으로 노력하는 삶이었다. 이때 의학이라고 말할 때는 '근대 의학'을 의미한다. 과학적으로 급발전을 이루어오고 있는 근대 의학에 대한 불신은 의학 내부의 문제가 핵심이 아니라 근대의 과학과 진보라는 개념의 문제가 핵심이다. 그래서 <의학의 진실>이라는 제목을 접했을 때 근대 의학의 신화를 부수어 주는 믿음직한 언설을 기대했다. 한 명의 독자인 나의 기대와는 달리 저자는 그것을 의도하지 않았다. 오히려 19세기 이후의 의학과 그 이전의 의학을 좋은 의학과 나쁜 의학이라는 표현으로 대비시키고 있다.
 
그러나 내가 '근대의학'을 의학이라는 용어 자체로 의미화했던 것의 오류처럼, 하나의 단단한 범주로서 '의학'을 사고하는 인식에 대해 지적하는 힘은 강하다. 어린 시절 필독서처럼 읽었던 위인전에 빠지지 않는 의사 슈바이처 박사에 대한 이미지처럼, 의학은 선하고 고마우며 필수적인 것으로 의미화되어 있는 것에 반대하며 의학이 인간에, 그리고 인류에 나쁘게 작용하던 역사적 사례들을 거론하면서 의학의 개념을 분화시켰다.
 
의학에 대한 맹신의 허점을 가장 잘 드러내는 역사적 실례 중 하나는 병원 자체가 질병의 원인이 된다는 '병원증'에 대한 것이다.(250-251쪽) 이것은 비유적으로 병원이라는 공간에서 펼쳐지는 의학이 질병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것으로도 읽힌다. 과잉된 의학은 그럴 수 있다. 현대 사회는 노년 인구가 증가하고 건강과 질병에 대한 대비가 삶의 질에 중대한 요소가 되고 있는데, 저자가 비록 동시대에서의 의학 개념을 구분한 것은 아니지만, 의학이 단일한 범주로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는 인식을 이해하는데 큰 영향을 주는 책이다. 과학적인 서술에 조금의 인내심만 발휘한다면.  
c******e 2007.07.04.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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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포크라테스 의학의 진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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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의사들이 사명을 강조 할 때 히포크라테스의 선서를 이야기 하고,  의사 또는 의학에 관련된 영화에서 시작 장면이나 마지막 장면에서 히포크라테스의 선서를 낭독하는 것을 보아왔다. 따라서, 히포크라테스의 의학이 인간의 생명을 구하고자 하는 숭고한 사상을 대표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의학의 진실’의 저자인 데이비드 우튼은 히포크라테스의 의학이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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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의사들이 사명을 강조 할 때 히포크라테스의 선서를 이야기 하고,  의사 또는 의학에 관련된 영화에서 시작 장면이나 마지막 장면에서 히포크라테스의 선서를 낭독하는 것을 보아왔다. 따라서, 히포크라테스의 의학이 인간의 생명을 구하고자 하는 숭고한 사상을 대표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의학의 진실의 저자인 데이비드 우튼은 히포크라테스의 의학이 고통 완화, 질병 기간 단축, 생명 연장의 관점에서 보면은 나쁜 의학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의학은 기원전 5세기 그리스의 히포크라테스부터 시작되었지만, 항생제가 질병 치료에 사용되기 시작한 1940년대까지 의사들은 환자들에게 도움보다는 해를 끼치는 사람들 이었음을 사례를 들어 논증하고 있다. 히포크라테스를 추종하는 의사들은 토출, 사하, 사혈, 소작으로 대표되는 네 가지 치료 유형을 거의 2000년간 변함없이 기본 치료법으로 사용하였다. 히포크라테스의 의사들은 2000년 동안 환자들의 헛된 믿음 즉 의사들이 자신들을 치료해줄 것이라는 믿음에 의지하여 존속해 왔음을 도발적으로 주장하고 있다.

체온계의 사용, 맥박의 측정, 생체 해부학의 발달, 현미경을 통한 미생물의 규명, 임상 실험의 도입 등 생명을 구할 수 있는 발견들이 매번 의사들의 저항 또는 집요한 반대와 무시 등으로 치료에 사용하지 못함으로써, 환자들의 고통을 가중하거나 사망을 가속시켜다는 사실은 우리를 경악하게 한다.

저자는 이 책의 마지막 결론에서 히포크라테스의 의학을 의학이라고 할 수 없다는 주장을 다음 세 가지로 요약하고 있다. 첫 째, 질병을 치료하는 기능으로 의학을 정의한다면 사혈, 사하제, 구토제 등으로 상징되는 히포크라테스 의학이 사용된 1865년 이전에는 의학이  거의 없었다는 것이다. 둘 째는 효과적인 의학은 의사들이 수치를 계산하고 치료법을 비교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 세 째는 근대 의학을 가능하게 한 주요 요인은 세균 병인설이라는 것이다. 이 책을 읽는 내내 현대적인 의미의 의학은 200년이 채 안 된다는 저자의 주장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s*****m 2007.06.2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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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나는 조명 더 진한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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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완독한 후, 나를 20세기에 세상에 보내주신 신께 감사드렸다. 그 전 세기 언젠가 태어나 다치거나 병이 걸렸다면 고통스럽게 죽어갔을 것이다. 20세기 이후의 의학은 죽더라도 덜 고통스럽게 죽도록 도와준다. 현대 의학은 생명공학과 연계되어 최첨단의 인기 있고 경제성이 높은 학문이다. 우리 사회에서도 의사는 그들이 하는 일을 통해, 또한 그들이 가진 부를 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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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완독한 후, 나를 20세기에 세상에 보내주신 신께 감사드렸다.

그 전 세기 언젠가 태어나 다치거나 병이 걸렸다면 고통스럽게 죽어갔을 것이다.

20세기 이후의 의학은 죽더라도 덜 고통스럽게 죽도록 도와준다.

현대 의학은 생명공학과 연계되어 최첨단의 인기 있고 경제성이 높은 학문이다.

우리 사회에서도 의사는 그들이 하는 일을 통해, 또한 그들이 가진 부를 통해 인정받고 존경받고 있다. 지금도 많은 학생들이 자기특성과 사명보다는 직업에 대한 대우 때문에 의대에 가려고 노력하고 있다. 의사들은 대부분 많은 수익을 올리고 외제차 구입의 주 고객들이며 가장 비싼 아파트에 거주한다. 그러나 의학에는 현대 사회의 가장 빛나는 학문 중에 하나가 되기까지 지녀온 진한 그림자가 있다. 아직 사라지지 않은 그림자. 이 책은 그 그림자의 역사를 알려준다.


“그 책 어때?” 가끔 만나서 책 이야기를 하던 친구와 처음 꺼내는 말이다. 이 책에 대해 묻는다면 “정말 지루해. 재미없어! 그런데 꼭 읽어봐!”라고 대답할 것이다.

이 책이 지루한 것은 내용의 반복 때문이 아니다. 거의 매 쪽 마다 새로운 사건과 인물이 등장한다. 일반적인 스테디셀러의 320 페이지보다  70페이지 많은 392페이지의 분량에 히포크라테스에서 로버트 포겔에 이르기 까지 너무 많아 셀 수도 없는 인물과 그들의 활동이 등장한다. 그러나 서로 다른 이 내용들이 공통된 느낌을 주는데 진흙구덩이에 발끝부터 목까지 빠져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듯한 것이다. 아직 죽지 않았는데 탈출하지는 못한다. ‘도대체 언제쯤 합리적인 의술이 등장하지?’ 독서 중에 떠오르는 생각이었다. 그 긴 시간동안 왜 진보하기를 그토록 두려워했을까? 지는 싸움을 계속하게 되면 싸움에서 이기는 방법을 잊어버리게 된다. 이것은 운동 경기에서 잘 드러나는 데 한 번 연패가 시작되면 한 번 이기기가 매우 어렵다. 이 책에 드러난 의학의 발전이 그러했다. 지루한 연패! 우리 팀이 경기에서 계속 지기만하고 있으니 응원하며 지켜보는 팬은 얼마나 답답할 것인가! 내가 좋아하는 야구팀이 3연패중인데  상대편에 점수가 뒤진 그 다음 경기를 지켜보고 있을 때의 답답함, 그 답답함이 독서하는 내내 느껴졌다.

나는 저자에게 찬사를 보내고 싶다. 이렇듯 계속 허우적대는 지루한 실패를 모두 찾아내고 세세히 분류하여 기록한 것을 보면 신념이 강하거나 편집증적 이거나 할 것인데, 끈기 있고 조용한 사람으로 생각된다. 실패한 역사, 답답한 역사의 집필 자체가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번역에는 아쉬움이 느껴졌다. 번역된 문장들이 늘어지는 느낌이 많이 들었다. 예를 들자면 “결코 없었다는 거다.”라는 문장은 “결코 없었다.”로 번역해야 매끄럽고 진행이 빠르다. 많은 문장의 번역이 이러한 문제를 가지고 있었는데 만약 원본이 이러한 형식의 문장이었다 해도 번역에서 매끄럽게 조정할 수 있었으리라 생각된다. 비슷한 내용들이 계속 나열되는 형식이라 구성 자체가 지루해지기 쉬운 책인데 번역된 문장이 늘어지고 꼬인 느린 진행을 하고 있어서 탐독이 매끄럽지 못했다. 지식전달이 목적인 책은 문장이 단순하고 명료해야 제대로 전달을 할 수 있는데 그렇지 못했다.


완독 이후 내 사고방식에 대해 많은 반성을 했다.

2300년 동안 보여준 의사들의 헛된 믿음, 진실에 대한 저항, 무력한 진보, 비도덕적 진보, 진보의 지연이라는 모습들이 나에게도 존재한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교사자격을 취득하고 대학원에서 교육학을 전공했지만, 그것 때문에 실제 교육현장에 가서는 내가 배우고 익힌 것, 내가 참이라고 믿는 것들만을 진리라고 고집하였고, 학생들 개개인의 사정과 생각을 모두 획일화하려고 하였다. 진보를 두려워 한 것이 아니라 귀찮아 한 것이다.


이전 의학에서의 과실은 실패였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몰랐다는 변명을 할 만하다. 그러나 고도로 발달된 과학기술이 배경이 되는 현대의학에서 벌어지는 과실은 실수이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두 알고 있다.

실패의 반복은 새로운 접근, 새로운 시도라는 가능성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실수의 반복은 더 이상 새로워 질 것이 없다. 단지 절대 반복하지 않는 것만이 유일한 성공 방법이다.

더 이상 교만하고 오만한 의사들이 나타나지 않기를 바란다.

m*****s 2007.06.26.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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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의 진실, 의학사(!)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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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의 진실>이란 제목에서 의학속에 뭔가 숨겨진 비밀들이 있는 듯 호기심을 자극하는 요소가 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의사들은 얼마나 많은 해악을 끼쳤는가?'라는 조금은 도발적인 부제에서는 의학이나 의사들에 대한 일종의 도전적인 자세마저도 느껴집니다. 뭔가 부도덕하고 부조리한 것이 의학과 의사들 안에 숨어 있는 것은 아닌가?    Bad Medicine. 저자는 좋은 의학과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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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학의 진실>이란 제목에서 의학속에 뭔가 숨겨진 비밀들이 있는 듯 호기심을 자극하는 요소가 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의사들은 얼마나 많은 해악을 끼쳤는가?'라는 조금은 도발적인 부제에서는 의학이나 의사들에 대한 일종의 도전적인 자세마저도 느껴집니다. 뭔가 부도덕하고 부조리한 것이 의학과 의사들 안에 숨어 있는 것은 아닌가?

 

 Bad Medicine. 저자는 좋은 의학과 나쁜 의학이라는 구분으로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의 뼈대를 구축하는 듯 합니다. 사람들을 치료하는데 아무런 이득을 주지 못하고 오히려 해를 입히기 일쑤였던 시대의 의학을 아마도 나쁜 의학이라고 하고, 인간의 생명을 연장하고 질병의 치료에 진정한 도움을 주기 시작한 의학을 좋은 의학이라고 구분하고 있습니다. 나쁜 의학이라는 의미가 현대의학속에서 발생하는 의료사고나 병원에서의 질병감염 등의 문제들을 포함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세균의 발견과 예방접종 등의 발견으로 진정한 근대의학이 시작되기 이전 히포크라테스로부터 시작된, 환자들에게 오히려 해가 되기 일쑤였던 사혈, 사하 등의 치료법에 대한 공격적인 의미에서의 나쁜 의학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1865년을 리스터의 방부외과수술을 기점으로 진정한 좋은 의학이 탄생했다고 믿는 저자는, 하지만 19세기에 이르기까지 저자가 말하는 나쁜 의학이 지지를 받고 여전히 치료법으로 행해졌다는 점에 대한 신랄한 문제제기에 이 책의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습니다. 분명한 진보라고 생각되는 여러 치료법이나 학문적인 발전에도 불구하고 그토록 오랫동안 나쁜의학이 과학적 통계적으로 증명되지 않은 채 지속된 이유, 의학이 많은 획기적인 발견에도 불구하고 치료법의 진보라는 측면에서 지연된 이유가 무엇인가? 가 아마도 이 책의 가장 주된 논점인 듯 합니다.   

 

 저자는 의학의 역사가 히포크라테스 이후로 맥을 이어오는 것으로 모든 의학사에 설명되지만, 자신의 좋은 의학, 나쁜 의학의 관점에서 본다면 1865년을 기점으로 발전한 근대의학과 히포크라테스 의학 사이에는 아무런 연관성도 연속성도 찾을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그런데도 그런 나쁜의학이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고 1920년대까지 지속된 이유는 성공에 대한 환영, 위약 효과, 질병이 아닌 환자를 생각하는 경향, 순응의 압력, 통계에 대한 저항 등이라고 지적합니다. 그러면 1865년을 기점으로 발전한 근대의학의 발전과 치료법들이 아주 더디게 발전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는 정서의 역할과 상상력의 한계, 그리고 제도의 보수성에서 그 설명을 찾고 있는데, 사람들이 어떤 기술을 익히는데 많은 노력과 비용을 들이면 자신과 동일시하는 경향이 생기는데 기존의학의 토대로 교육을 받은 의사들이 그러한 경향을 가졌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 이유의 하나라는 것입니다. 또한 새로운 생각을 추구하는 데 따르는 위험을 그 이유로 드는데, 예를 들면 세균설이 자리잡기 시작하던 때에는 전염병의 퇴치모델이 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천연두의 예방접종이라는 것 밖에 없었기 때문에, 항생제라는 개념이 발전하기 전까지는 질병의 전체적인 분야에 이것을 적용할 수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혁신적인 것에 저항하는 문화적 심리적 요소들이 저자가 말하는 나쁜 의학이 19세기초까지 존재하였던, 그리고 지금은 너무도 명확하게 보이는 의학의 진보들이 지체되었던 이유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역사로서의 의학사에서 그러한 예들이 발견되는 것처럼, 전염병이후 시대라고 할 수 있는 현재에는 암이나 기타 전혀 새로운 종류의 전염병들에 대한 현대의학의 대처가 과거에 근대의학의 발전과정에서 보였던 오류를 다시 반복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의료종사자들의 진지한 자기 성찰이 요구되는 부분입니다.

 

 책의 제목을 보고는 현대의학의 부조리를 고발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였는데, 실제 내용은 현대의학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역사로서의 의학의 부조리나 왜곡, 실패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모든 인간사에 부정적인 측면들이 있듯이 의학사에도 그러한 것들이 끼어들어 있다고 해야겠지요. 그리고 현재 최신기술이니 획기적인 약물이니 치료법이니 하는 것들도 나중에 시간이 지나고 나면 웃음거리가 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의학의 발전이라는 것은 어떤 획기적인 발견보다는 끊임없는 시행착오와 그것의 개선이라는 과정속에서 이루어진 면이 크다는 생각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의학이 끊임없이 자기탈피의 과정을 거치고 있다면 그것은 건강한 것이고 좋은 의학이라고 할수 있을 듯 하고, 의료인들의 입장에서는 저자가 제기한 의료외적인 면 때문에 지연의 역사를 썼던 근대의학의 발전과정이 보여주는 교훈과 근거없이 맹신되었던 히포크라테스 의학에 대한 반성을 통해, 진지하게 자신이 처한 환경에서 스스로에게 되물어보는 과정이 필요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d******n 2007.06.26.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