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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졸업 여행으로 제주도를 방문했다. 지금으로부터 10년도 더 전의 일이다. 당시에는 걷기 열풍도 없었고, 많은 사람들을 제주로 이끈다는 올레길도 없었다. 중국인들의 본격적인 투기 또한 조짐조차 느끼기 힘들었다. 자고 일어나니 모든 게 달라졌다는 말이 제주에선 통용될 듯. 짧을 기간 동안 제주는 확 달라졌다. 새로운 관광지가 개발됐으며, ‘힐링’하기 딱 좋은 장소라는 이미지가 확고해졌다.아예 육지를 떠나 정착하기 위해 제주를 택한 이들도 있었다. 과연 제주는 이상적인 공간일까. 누구나 살고 싶어한다는 힐링과 치유의 섬 제주. 지난 역사를 살펴보니 섬은 섬이었다. 아니, 단순히 변방에만 해당하는 게 아니었다. 그 안에는 언어로는 다 담아내기 힘든 복잡한 심경들이 다 녹아 있었다. 시작은 일제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갔다. 저자의 서술은 어딘가 모르게 발칙하게까지 느껴졌다. 엄연히 우리의 섬인 제주가 우리보다 일본과 더 가깝다는 식의 뉘앙스를 풍긴 탓이었다. 근데 당대의 일반적인 관점이 그러했다. 육지에 속한 사람들에게 제주는 너무도 멀었다. 굳이 적극적으로 배척하지 않을지라도 하나라는 정체성을 확립하기가 쉽지 않았다. 빈틈을 파고 든 건 일본인이었다. 그들은 적극적으로 제주가 본토와는 다르다는 상상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조선인들은 대개가 게으르고 미개한데 반해 제주 사람들은 그렇지가 않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상은 일본인과 제주인이 하나의 뿌리를 가졌다는 식의 사고로까지 뻗어나간다. 어디 가당치도 아니한 소리를 한다 싶겠지만 은근히 먹혔던 듯하다. 생각해보면 과거에 섬은 유배지였다. 사람이 태어나면 서울로 보내고 말은 제주로 보낸다는 말이 떠올랐다. 이 말은 제주는 사람 아닌 말이 살기에 적합함을 암시한다. 인간답지 아니 한, 인간 이하의 존재들만이 머물 수 있는 척박한 제주. 알게 모르게 차별을 받아온 제주 사람들에게 일본인들의 꿍꿍이 가득한 사탕발림(!)은 매우 달콤했다. 나라를 되찾고 나서도 제주의 운명은 나아지지 않았다. 좌우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나날들이 이어졌는데, 제주에서도 이는 마찬가지였다. 아니, 4월 3일의 비극이 발생할 정도로 제주는 여느 지역보다도 격렬한 사상 투쟁으로 앓았다. 남로당 극렬분자들의 선동으로 인해 수많은 무고한 인명이 희생당했다는 식의 사고는 여전히 유효하다. 대통령이 나서서 이를 사죄하고 보상을 약속했지만 언어는 여전히 진압의 주체에 대해서는 말이 없다. 그렇게 국가 폭력은 사라지고 공산주의 계열의 폭동이 강조된다. 여전히 역사는 뒤틀린 것이다. 결국 아무도 말해주지 않는 걸 말하는 건 제주에서 생을 이어나가는 자의 몫이었다. 오래 전 한 예능 프로그램에 추천 도서로 <지상에 숟가락 하나>가 등장하면서 현기영에 대해서는 많이 알려졌다. 많은 이들이 그러하겠지만 오성찬이라는 이름을 이번 독서를 통해 처음 접했다. ‘사건을 삽화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지적이 그의 글에 덧붙는다고 했다. 저자는 판단과 해석이 아닌 기록 그 자체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럼서 이와 같이 말했다. 숱하게 반복되는 취재의 편린들이 작품 곳곳에 편재되어 있는 것은 기록함으로써 망각과 싸우고 비존재의 숨죽인 아우성을 드러내려고 하는 시도라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그러내는 것 또한 기록자의 역할이다. 아무도 기록하려 들지 않을까 용감하게 나설 수 있는 용기가 기록자에게 필요하다. 필요에 따라 폭도들의 섬으로 둔갑하기도 했고, 치유의 공간으로 선전되기도 했다. 외부인들의 시선이 어떠하든 변하지 않은 건 하나 있었다. 국가가 의도한(?) 세련된 차별과 착취 구도는 무너져야 한다. 필요에 따라 제주를 각색(!)하는 시도는 이제 지양해야 할 필요가 있다. 제주 사람으로 하여금 제주의 이야기를 하게끔, 그들에게도 진정한 의미의 봄을 누릴 자유가 이젠 주어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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