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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링궐 에디션에 이어 도서출판 아시아의 한영 대역 소설 시리즈가 탄생했다. 이름 하여 K-Fiction 시리즈다. 나는 바이링궐 에디션을 약 20권정도 소장하고 있는데, 이런 기획에 대해 고맙게 생각한다. 맨 처음 만난 K-Fiction은 손보미의 <에드벌룬>이다.
소설은 평범한 남자의 이야기다. 소설의 문체는 애드벌룬이라는 활력 있는 제목과는 달리 건조하다. 서술자는 담담히 남자의 삶을 진술한다. 소설은 “그의 어머니는 그가 여덟 살이 되던 해에 죽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본래 그의 아버지는 몸이 약했던 그의 어머니를 염려하여 출산을 반대한 바 있다. 그의 어머니는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출산 중 죽지는 않았지만 팔 년 동안 병에 시달리다 죽게 된 것이다. 그 후 아버지와 살게 된 그는 별 말썽 없이 잘 자라지만, 고등학교 2학년 어떤 사건에 휘말려 아버지를 곤란하게 한다. 그때 그의 아버지는 그의 마음을 풀어줄 겸 그가 좋아했던 록 밴드 내한공연에 그를 데려간다. 거기서 사고가 벌어지고, 아버지는 지팡이를 짚고 살아간다. 성인이 된 그는 잘 나가는 번역가가 되어 부유한 집안의 여자와 결혼하여 딸을 낳고 살지만, 어느 날 충동적으로 자신의 번역서를 마당에서 불태우고 그것이 계기가 돼 이혼한다. 아내의 재혼으로 아내만이 아니라 딸까지 잃어버렸다 깨닫게 된 어느 날 그는 차를 타고 오다 간선도로에서 애드벌룬이라고 생각되는 일곱 개의 물체를 목격한다. 그 물체들은 마치 유에프오인 것도 같다. 그러나 기사를 검색해도 그날 유에프오가 나타났다는 말은 찾을 수 없다. 그리고 사귀고 있던 연인과 누워있던 어느 날 그는 다시 유에프오를 보게 된다. 그리고 알게 된다. “그는 그제야, 자신이 그토록 간절하게 바라온 것이 무엇인지 알 것만 같았다. 그는 오래전부터 저 유에프오를 기다려왔던 것이다.”
이 소설에 극적 사건은 나오지 않는다. 어머니와 아버지, 여자친구들, 아내, 딸, 연인을 끝없이 차례로 잃은 한 남자가 도착한 것은 유에프오라는 이야기다. 그는 자기 때문에 어머니가 죽었고, 아버지가 다리를 절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런 생각 때문에 많은 여자를 만나지만 누구에게도 마음을 위로 받을 수 없다. 그렇다면 비로소 다시 보게 된 유에프오가 그를 구원해 준다고 말해야 할 것인가.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그는 단지 막연하게나마 자신의 인생에서 자신을 위로해 줄 무언가를 찾아왔던 것이고, 자신의 삶에서 멈춰서 과거를 반추할 수 있는 때가 되었을 때, 그 시점을 유에프오라는 어떤 환영을 보고 알게 된 것이리라. 그도 잘 알고 있듯이 유에프오를 보았다고 그의 삶이 달라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나마 함께 해주었던 연인은 떠나버렸고, 그는 혼자가 되었을 뿐이다. 그렇지만 어쩌면 그가 혼자가 되었기에 자신과 대면할 수 있게 된 것은 아닐까. 그래서 그의 마음속에 떠오른 “운이 좋았다.”는 아버지의 그 말, 문득 생각난 그 말을 그는 이제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이 아닐까. 상실의 고통을 이겨낼 수 있게 해 주는 것은 그 무엇 때문도 아니라, 아무에게도 마음 둘 데 없는 사람이 자신과 대면하기로 결심했을 때 부여되는 선물 같은 것이 아닐까. 마침내 그에게도 그런 시간이 찾아온 것이 아닐까.
덧붙여 손보미의 문체에 관해서도 간단하게 언급하고 싶다. 어떤 이는 손보미의 문체를 두고 번역투라고 하는데, 이에 관해선 좀더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손보미의 문체는 번역투보다는 번역하기 좋은 문체라고 하는 편이 옳다고 생각한다. 한국 작가들의 글이 서구어로 번역될 때 문장의 어순이 심하게 변형되거나 한 문장이 두 문장 이상으로 끊어서 번역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어휘도 본래의 빛을 많이 잃는다. 적지 않은 작가들의 문장이나 어휘가 많은 대목 원문과 다른 색채로 번역된다면, 손보미의 문장이나 어휘는 훼손이나 첨가 없이 그대로 번역된다. 이를테면 “두 번째 작업은 이듬해에 곧바로 이루어졌다.” 같은 문장. 이 문장에 대한 번역은 다음과 같다. "The second project followed the very next year." 약간의 어순만 바뀌었을 뿐 직역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이 소설의 문장을 영어 번역문과 대조해 보면 이런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국어의 순수성을 염려하는 사람들은 위 문장을 “그는 이듬해에 두 번째 작업을 했다.”는 식으로 고칠 것이다. 그렇지만 원래 문장은 어차피 현재 한국인의 사고에서 익숙해진 문장일 뿐이다. 고종석이 <감염된 언어>에서 지적했듯이 우리가 쓰는 한국어 가운데 번역투가 아닌 것은 사실 찾아보기 어렵다. 그렇기에 문체에 대한 호불호는 있을 수 있어도 옳고 그름은 따질 수 없다고 생각한다.
바이링궐 에디션과 K-Fiction 시리즈를 아끼는 만큼 아쉬움도 없지는 않다. 한국어 원문의 길이가 영어 번역문의 길이보다 더 길다. 그렇기 때문에 소설의 후반부를 읽을 때는 한국어 원문 부분과 영어 번역문을 대조하기가 쉽지 않았다. 아마 영어권 독자가 이 판본을 보아도 나와 마찬가지의 곤란을 겪을 것이다. 나는 도서출판 아시아의 한영 소설집이 정말 고맙고 또 고맙지만 이 문제는 해결책을 찾아주었으면 좋겠다. 같은 크기의 글자라도 영어가 한국어보다 작게 보이는 점을 감안해서 영문자의 크기를 조금 키우는 방법은 어떨지 싶다. 그것이 아니더라도 줄간격을 늘린다든지 하는 방법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 번역자의 노트도 간략하게라도 삽입되었으면 한다. 그들이 한국 작가들의 한국어를 대하면서 무엇을 생각했는지 듣고 싶다. 그리고 한 가지 제안을 더 드린다면 장편 소설도 도서출판 아시아에서 한영 대역으로 출간해 주었으면 좋겠다. 처음부터 새로운 번역을 하게 되면 너무 시간이 오래 걸릴 터이니, 이미 나와 있는 번역을 편집해서 출간하는 방법도 고려해 주었으면 한다.
약간의 아쉬움을 언급하긴 했지만, 나는 시리즈를 계속 응원할 것이다. 이 시리즈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들이 아직은 많지 않아 안타까운데, 일선 국어 선생님들이나 영어 선생님들이 언어 학습이라는 실용적 유익에 관해 강조하는 식으로라도 이 시리즈가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다. 많은 국민들이 매년 10월만 되면 한국 문학은 언제쯤 노벨상 받느냐며 한탄하는데, 이런 판본을 한 권이라도 읽고, 아는 외국인들에게 선물하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나름의 홍보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