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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쿠만큼 범접하기 어려운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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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작가 이경혜님이 보내주신 책인데, 이제껏 잘 모셔두다가 올해가 가기전에 읽어볼 마음이 생긴 작품이다. 프랑스 작가가 쓴 일본을 배경으로 하고 등장인물도 죄다 일본사람인 책인데다 아주 얇아서 내용이 아주 어려울 것만 같은 첫인상을 가진 책이다. 일본의 전통적인 시의 형식인 '하이쿠'가 작품의 모티브라고 할 수 있다. 하이쿠는 석줄짜리 17음절의 형식을 지닌, 그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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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작가 이경혜님이 보내주신 책인데, 이제껏 잘 모셔두다가 올해가 가기전에 읽어볼 마음이 생긴 작품이다. 프랑스 작가가 쓴 일본을 배경으로 하고 등장인물도 죄다 일본사람인 책인데다 아주 얇아서 내용이 아주 어려울 것만 같은 첫인상을 가진 책이다. 일본의 전통적인 시의 형식인 '하이쿠'가 작품의 모티브라고 할 수 있다. 하이쿠는 석줄짜리 17음절의 형식을 지닌, 그래서 그 짧은 글 속에 담긴 내용은 아주 밀도가 진할 수 밖에 없는 시의 형식이다. 책 속에 나온 예를 하나 들자면,

 

투명한 눈

침묵과 아름다움을 잇는

가교

 

이런식이다. 시의 소재가 되는 사물을 장황하게 묘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찰나적인 인상을 표현해내는 미술로 따지자면 인상파와 같은 형식이라고나 할까. 하이쿠를 거의 접해보지 못한 나로서는 아직 마음에 착 감기는 하이쿠를 만나보지 못해서인지, 하이쿠라는 장르가 어렵게만 느껴졌다. 하이쿠 뿐만 아니라 '시'의 형식을 띤 모든 것이 나에게는 아직 낯설게 느껴진다.

 

내용은 단순하다. 하이쿠를 좋아해 하이쿠 시인이 되고자 갈망하는 유코라는 젊은이가 '눈(雪)'을 묘사하는 백색의 하이쿠만 쓰다가 스승 소세키를 만나 진정한 하이쿠의 대가가 되고 한 여인을 사랑하게 되는 내용을 소설의 하이쿠화라고 생각될 정도로 간략하게 풀어낸 작품이다. 하이쿠만큼 나에게는 어렵게만 느껴지는 작품이었지만 프랑스에서는 '언어의 연금술사'로 불리어지는 작가의 처녀작이라고 하니 한번쯤 읽고 기억해두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 아주 얇은 책이지만 페이지는 쉽게 넘어가지 않는, 만만한 책은 아니라는 것만 염두에 둔다면 말이다. 사실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언어라고 자부하는 프랑스어로 작품을 직접 읽었다면 좀 더 느낌이 달랐으리라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l********d 2011.12.12.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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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쿠와 눈, 그리고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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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의 이 프랑스 작가는 어찌해서 이런 동양적인 아름다움을 가질 수 있었을까. 이 책을 읽다보면 작가가 하이쿠를 잘 알고 있음을, 하이쿠의 시어에 깊이 빠져 있음을 느낄 수 있다. 고작 118페이지, 그마저도 언어의 절제가 깊이 베어든 내용전개는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다. 열일곱 음절외에 절대로 덧붙일 수 없는 하이쿠의 형식을 소설로 이어나간 듯, 작가의 필체는 너무도 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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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른의 이 프랑스 작가는 어찌해서 이런 동양적인 아름다움을 가질 수 있었을까. 이 책을 읽다보면 작가가 하이쿠를 잘 알고 있음을, 하이쿠의 시어에 깊이 빠져 있음을 느낄 수 있다. 고작 118페이지, 그마저도 언어의 절제가 깊이 베어든 내용전개는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다. 열일곱 음절외에 절대로 덧붙일 수 없는 하이쿠의 형식을 소설로 이어나간 듯, 작가의 필체는 너무도 간결하다. [눈]은 사실적인 느낌보다 허구라는 느낌이 강했지만 기존의 어느 소설보다 더 아름답게 느껴졌다.

    

     특이한 발상이었다. 하이쿠 시인과 사무라이, 프랑스 곡예사와 그녀의 딸. 이국에서의 사랑과 2대에 걸친 그들의 운명적인 만남. 하이쿠 시인 유코의 눈에 대한 갈증과 사랑은 성적인 탐닉과도 이어지고, 그 마저도 눈에 대한 갈망앞에선 무의미하다. 눈처럼 백색인 자신의 하이쿠에 색을 입히고자 스승을 찾아가는 길에서 죽은 스승의 연인을 만나고, 그 여인을 사랑하게 된다. 죽었으나 죽지않은 그들의 사랑앞에 고개를 숙이며 되돌아 온 길, 그의 하이쿠에는 색이 입혀지고 그를 바라보는 여인이 있으니, 그녀가 바로 죽음에도 굴복치 않은 그 사랑의 딸이었다.

    

     유코는 눈에 대하여 "눈() 은 백색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시(詩)입니다. 가장 순수한 시예요. 눈은 자연을 얼어붙게 하여 보전합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그림입니다. 가장 미묘한 겨울의 그림이에요. 눈은 끊임없이 변화합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서예입니다. 붓으로 눈이라는 단어를 쓰는 데에는 1만 가지 방식이 있습니다. 눈은 미끄러운 표면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춤이에요. 눈 위에서는 모두가 자신을 줄타는 곡예사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눈은 물이 됩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음악이에요. 봄이 되면 눈은 강과 급류를 백색 악보의 교향곡으로 만들어 줍니다."(25쪽)라고 표현하고 있다. 그가 눈을 통해 갈망하는 것은 진실된 사랑이 아니였을까. 진실된 사랑을 찾아가는 어떤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유코가 애닳아 하는 하이쿠와 백색 선명한 눈, 그리고 사랑은 같은 것의 다른 이름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프랑스 작가의 호기심으로 만든 작품일 것이라는 나만의 잣대는 여지없이 무너졌다. 작가가 동양의 이국적인 아름다움을 사랑해 표현했다기 보다는, 사랑 그 자체를 얘기하고자 했음을 이 책을 덮으며 깨닫는다. 참 아름다운 작품이다.

h*****1 2007.04.12.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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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백색의 함축의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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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상스 페르민이라는 무척 생소한 작가의 작품을 우연히 접하고 한동안 깊은 꿈을 꾸는 듯한 몽상에 잠겼다. 주인공이 꿈꿨던 순백의 이미지처럼 나의 몽상 역시 하얀 것이었다.모처럼 느끼는 맑고 영롱한 감정이어서 내 스스로에게 조금 쑥스러워지기까지 했는데, 이처럼 짧으면서도 깊이 각이되고, 눈이 녹듯 가슴을 적셔주는 소설을 혼자보기 너무 아까워 이렇게 몇자 적어보네요. 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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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상스 페르민이라는 무척 생소한 작가의 작품을 우연히 접하고 한동안 깊은 꿈을 꾸는 듯한 몽상에 잠겼다. 주인공이 꿈꿨던 순백의 이미지처럼 나의 몽상 역시 하얀 것이었다.모처럼 느끼는 맑고 영롱한 감정이어서 내 스스로에게 조금 쑥스러워지기까지 했는데, 이처럼 짧으면서도 깊이 각이되고, 눈이 녹듯 가슴을 적셔주는 소설을 혼자보기 너무 아까워 이렇게 몇자 적어보네요. 연인끼리, 아니면 사랑하는 사람이 이제 막 생긴사람, 혹은 누군가를 죽도록 사랑하고픈 사람이라면 꼭 한번 권해주고 싶은 책이다. "눈" 같은 사랑 하고 픈 사람에게...
b******l 2002.02.16.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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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멸을 영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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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이 짧고 투명하고 개운하다. 가볍게 흩날려 눈에 들어간 얼음가시처럼, 동상을 일으키는 피부 속에 박힌 얼음처럼 여운이 깊다. 문장은, 순식간에 눈(眼)에 들어가자마자 촉촉이 젖어 녹아버린다. 깔끔하고 상쾌하다. 깊은 여백에서 새하얀 막연한 공간의 공허에 빠져 되려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가볍게 내뱉는 날숨에도 순식간에 녹아버려 날아가는 문장들. 막상스 페르민의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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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장이 짧고 투명하고 개운하다. 가볍게 흩날려 눈에 들어간 얼음가시처럼, 동상을 일으키는 피부 속에 박힌 얼음처럼 여운이 깊다. 문장은, 순식간에 눈(眼)에 들어가자마자 촉촉이 젖어 녹아버린다. 깔끔하고 상쾌하다. 깊은 여백에서 새하얀 막연한 공간의 공허에 빠져 되려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가볍게 내뱉는 날숨에도 순식간에 녹아버려 날아가는 문장들. 막상스 페르민의 문장은 말 그대로 <눈>을 닮았다. 눈을 지향한다. 작가의 처녀작부터 막상스 페르민이라는 작가의 문장은 완성된 듯 보인다. 크리스토프 바타이유 이후 짧은 문장을 날 푸른 칼처럼 단숨에 핵심을 찌르는 프랑스 작가를 처음 만났다. 막상스 페르민의 문장은 동양의 여백과 단절, 급작스런 상승과 침묵을 지향한다. 그는 눈이라는 화두와 아울러 훌륭한 이미지의 파트너, '하이쿠'를 연결시킨다. 눈과 하이쿠를 맞대어 그는 하나의 사라지는 의미를 만들어내었다. 모든 예술가가 지향하는 불멸을 향해, 완성의 극치를 향해, 결코 사라지지 않는 불꽃처럼, 영원히 녹지 않는 눈송이처럼, 문장을 가다듬어 나간다.   바르트는, 하이쿠가 서양의 오랜 서술 방식의 두 가지, 즉 묘사(描寫)와 정의(定意)가 사라졌다고 말했다. 사라짐을 통해 번짐을 이룰 수 있게 되었고, 공허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을 배경으로 삼을 수 있게 되었다. 막상스 페르민은 이러한 하이쿠를 자신의 문장으로 삼기 위해 노력한다. 시인을 꿈꾸는 유코 아키타를 가르치는 소세키 스승은 “시인에게 가장 어려운 것은 글이라는 팽팽한 줄 위에 한없이 머무르는 것, 꿈의 고도(高度)에서 삶의 매순간을 살아가는 것, 단 한 순간이라도 상상의 줄에서 땅으로 내려오지 않는 것”이라 말하는데 이는 작가 자신의 예술관, 문장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이라 할 수 있다. 그러니 이 소설은 하이쿠이며 여백이며 녹아 없어지는 눈의 속성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결합, 파괴, 초월, 부재, 극치, 침묵, 설명하지 않음, 표현 못함, 감춤, 번짐, 난해를 버무려낸 처녀작은 무척이나 흥미롭다. 유코 아키타가 매료되었던 눈의 투명함이 서서히 색깔을 얻어 예술로 이루어지듯 막상스 페르민의 문장 역시 소재가 아니라 자체로 완성되기를 바란다.    막상스 페르민의 다른 작품 <검은 바이올린>과 <꿀벌치는 사람>도 읽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아쉽게도 우리 나라에는 아직 번역되지 못한 것 같다. 위의 작품은 작가가 구상한 색깔에 대한 연작 작품이다. 뒤에 나온 번역자 조광희의 ‘옮긴이의 말’은 내가 읽은 번역자의 말 중에서 가장 빼어난 수작이다. 롤랑 바르트의 <카메라 루시다>를 번역한 번역자이기도 하다는 걸 알았다. 재미나서 조금 옮긴다. “일본적인 것, 일본문화에 대한 일반 프랑스인들의 기호가 다분히 피상적이고, 동양의 먼 섬나라에 대한 이국 취미 이상의 것이 아님도 우리는 알고 있다. 일본 사무라이와 프랑스 곡예사 여인간의 사랑이라는, 다소 우스꽝스럽게 보이기까지도 한 것도 사실이다. 또 옮긴이 자신도 일본 찬사나 그 병적으로 섬세한 미학에 유보적인 한국인의 한 사람으로서 처음엔 이 책을 소개하고 싶은 마음은 썩 내키지 않았다. (여담이지만, 별 시원찮은 책 한 권 만드는 데에 저 푸른 숲 속의 아름드리 나무를 몇 그루나 베어내어야 하는지를, 함께 산에 가는 친구에게서 들은 뒤로, 책이 나무 백정이라는 말을 들은 뒤로, 나는 지금 손에 들고 읽고 있는 책이 과연 그 나무의 푸르름만큼이나 가치 있는가를 가끔 자신에게 물어보곤 한다.)”   한 가지 의아한 점이 있는데, 이 글에 언급되고 있는 하이쿠들이 형식에 맞지 않게 번역되고 있다는 거다. 일본의 하이쿠 작품을 막상스 페르민이 나름대로 해석해놓은 프랑스 하이쿠를 다시 우리말로 옮긴 것인지, 아니면 일본의 작품을 찾아서 곧바로 번역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5-7-5의 열일곱 음절의 규칙을 어기고 있다는 게 좀 걸린다. 아무려나, 말이라고 하는 게, 글이라고 하는 게, 결국은 ‘소통’을 가장한 공허와 허무라는 증거이니. 어기야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  
n******s 2005.04.2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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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대한 이야기... '눈'이란 외국인이나 동양인에게나 특별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일까? 푸른눈의 서양인이 그려내는 동양인이 주인공이 된 이 소설 은 이국적인 정서를 많이 닮은 짧은 단문들 덕택에 아주 쉽고 빨리 읽을 수 있었다. 예술가의 생활을 그린 덕택에 조금은 환상적인 면 역시 소설에 빠져들 수 있게 하였고, 인생의 의미나 생활의 패턴이란 각자의 생각에 따라 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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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대한 이야기... '눈'이란 외국인이나 동양인에게나 특별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일까? 푸른눈의 서양인이 그려내는 동양인이 주인공이 된 이 소설 <눈>은 이국적인 정서를 많이 닮은 짧은 단문들 덕택에 아주 쉽고 빨리 읽을 수 있었다. 예술가의 생활을 그린 덕택에 조금은 환상적인 면 역시 소설에 빠져들 수 있게 하였고, 인생의 의미나 생활의 패턴이란 각자의 생각에 따라 얼마나 다른지, 혹은 스스로가 의미 지우는 것들에 대한 아주 많은 차이들이 얼마나 많은 인생의 차이를 만드는지가 궁금증을 더 해 갔다. 주인공의 말처럼, 눈처럼 밝고 희고 순결한 어떤 미의 기준을 정해 놓게 자신의 삶을 정진해 가는 이들이야 말로 얼마나 색깔 있는 삶인가? 언제나 인간의 인생의 물음을 쫓는 과정에서 죽음이라는 매듭을 매듯, 인생은 과정이고 인간 역시도 과정의 한 갈래에 불과하다는 점이 꽤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 빨간색의 책 표지가 너무 이뻐서 책을 구입했는데 책 속에는 오로지 흰 것에 관한 의미들과 감상들 뿐이다.

[인상깊은구절]
"제가 하고 싶은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시간의 흐름을 바라보는 법을 배우고 싶어요"
c******e 2002.10.2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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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들여 과대포장한 프랑스인의 하이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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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고유한 문학 장르인 하이쿠, 세 줄에 열일곱 음절(일본말의 음절이 어떻게 나뉘는지 모르지만 어쨌든)로 이루어진 이 짧은 시를 프랑스의 작가가 자신의 첫번째 소설에 깊숙하게 끌어들였다. 승려인 아버지로부터 윤리와 종교 교육을 받았던 유코는 열일곱살이 되던 해에 시인이 되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시는 직업이 아니며 흘러가는 물과 같은 것이라고 말하면서 종교와 군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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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고유한 문학 장르인 하이쿠, 세 줄에 열일곱 음절(일본말의 음절이 어떻게 나뉘는지 모르지만 어쨌든)로 이루어진 이 짧은 시를 프랑스의 작가가 자신의 첫번째 소설에 깊숙하게 끌어들였다. 승려인 아버지로부터 윤리와 종교 교육을 받았던 유코는 열일곱살이 되던 해에 시인이 되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시는 직업이 아니며 흘러가는 물과 같은 것이라고 말하면서 종교와 군무(軍務) 중 하나를 선택하기 바라는 아버지에게 말한다. "제가 하고 싶은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시간의 흐름을 바라보는 법을 배우고 싶어요." 그리고 일흔일곱 편의 하이쿠를 써낸 유코는 드디어 자신의 시의 목표로 눈(雪)을 설정한다. 그때부터 그는 눈내리는 겨울 산에 올라 매년 일흔일곱편의 시를 쓰는 것으로 한 계절을 마감한다. "하이쿠란 그런 것이었다. 투명한 어떤 것. 자연스러운 것. 그저 일상적인 것. 미묘한, 혹은 산문적인 아름다움. 일반 사람들이 보기에 그것은 별 대수로운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시적인 영혼에게, 그것은 신성한 불빛으로 건너가는 가교와도 같은 것이었다. 천사들의 백색빛으로 건너가는 가교." 그러던 어느날 유코는 궁정시인과 같이 온 묘령의 여자에게 이끌려 자신의 시에 색채를 부여해줄 스승 소세키를 찾아 길을 떠나다. 그리고 그 길의 와중에 눈덮인 산 그 얼음 더미 아래서 신비스런 여인의 시체와 대면한다. 그 후 유코는 소세키의 문하에서 일년여동안 공부를 하고 그 사이 소세키의 하인에게서 소세키의 부인이었던 프랑스 여인 네에쥬(Neige:불어로 눈을 가리키는 말)와의 사랑에 대해서 듣는다. 그리고 유코 자신이 산 속에서 보았던 그 신비의 여인이 바로 네에쥬였음을 알게 되고, 스승과 함께 다시 그 산을 찾는다. 눈먼 스승은 잃었던 자신의 여인임을 확인하고 그곳에 드러누워 영면을 청한다. 유코는 집으로 돌아오고 궁정시인과 함께 왔던 묘령의 여인은 바로 소세키와 네에쥬의 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두 사람은 그리고 결혼한다. 어른들이 읽는 동화쯤으로 전락할 수도 있는 소설은 그러나 하나의 예술 장르(물론 프랑스인인 작가에게는 또는 그 독자들에게는 이국적이어서 더욱 극적일 수밖에 없는)를 소재로 끌어들이고 그것을 꽤 공들여 과대포장하고 있다. 그러니 글을 읽는 사람이 하이쿠라는 그 일본의 짧은 시에 실린 도도한 풍경과 사색의 깊이에 다가가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게다가 작품 속에 있는 하이쿠, 시, 시인에 대한 대담들은 그것이 굳이 하이쿠가 아니라 여타의 다른 예술 장르라도 별 상관이 없다. 그러니까 소설은 하이쿠를 빌려 하나의 예술가가 되기 위한 그 예술에 대한 조예를 공든탑처럼 쌓는 방식을 말하고 있고, 그것이 사랑이라는 보편적인 추상의 개념을 날개 삼아 소설로 날아오른 셈이다. "왜냐고? 참으로, 시인은, 진정한 시인은, 곡예사의 기예를 터득해야 하기 때문이야. 글을 쓴다는 것은 팽팽한 아름다움의 줄 위로, 한 글자 한 글자씩 나아가는 일이야. 한 편의 시, 하나의 작품, 비단 위에 쓰여진 한 이야기의 줄 위로 말이야. 글을 쓴다는 것은 책의 길 위에서 한 걸음 한 걸음, 한 페이지 한 페이지씩 나아가는 일이야. 가장 어려운 것은 땅에서 몸을 띄워 언어의 줄 위에 올라서는 것도, 평형봉과도 같은 붓에 의지해서 균형을 잡는 것도 아니지. 때때로 쉼표의 낙하나 마침표의 장애물 같은 남모르는 현기증으로 끊어지곤 하는, 곧은 선을 따라 똑바로 나아가는 일도 아니지. 그래, 시인에게 가장 어려운 것은 글이라는 팽팽한 줄 위에 한없이 머무르는 것, 꿈의 고도(高度)에서 삶의 매순간을 살아가는 것, 단 한 순간이라도 상상의 줄에서 땅으로 내려오지 않는 것이야. 참으로, 가장 어려운 일은 언어의 곡예사가 되는 일이지." 그래서 소세키가 죽은 자신의 부인인 네에쥬의 곡예, 결국 거대한 산봉우리를 연결시킨 강철 케이블 위를 걷다 추락사한 부인에게 의지하여 시와 시인을 논할 때 간혹 고개 숙이게 된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k******i 2002.04.12.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