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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의 거울'이라는 말은 군주가 사라진 지금 시대에 뒤떨어진 말 같이 생각되지만, 사회가 혼란하고 절망이 깊어지는 요즘, 밝은 미래를 제시해주는 리더가 나타나기를 바라는 심정이기에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유구한 전통을 들여다보는 것도 도움이 되겠다. 트로이의 유민으로 이탈리아에 이주를 시도하던 아이네아스가 하는 말을 들어보면 그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다. 부상당한 몸으로 전투에 임하며 아들에게 "내 아들아, 너는 용기와 진정한 노고는 나에게서 배우고, 행운은 다른 사람에게서 배우도록 하라!"(p24)
그리스도 세 번의 큰 위기를 맞았다. 첫번째는 페르시아 전쟁, 두번째는 펠로폰네소스 전쟁, 세번째는 소크라테스의 죽음이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전쟁을 맞은 나라가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지는 것이야 당연하지만 소크라테스의 죽음을 전쟁과 같은 위기로 자리매김한 저자의 의도에 대해 의아한 마음을 품었지만 인간됨의 가치, 정의로운 사회를 부정하는 것은 전쟁 못지 않은 사회위기임을 알게 된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쓴 투키디데스가 펠로폰네소스 전쟁은 "그리스에서 일어난 내전에 대한 기록이지만, 인간의 본성에 따라서 영원히 반복될 보편적 역사에 대한 성찰"(p92)이라는 말처럼 페르시아의 침략전쟁을 일본의 식민지배,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한국전쟁, 소크라테스의 죽음을 근대화와 경제발전 후 우리가 맞은 가치관의 붕괴, 물질만능주의와 연결해보면 인류의 역사에서 시대와 지역을 뛰어넘는 보편성을 느끼게 한다. 아테네의 지도자인 페리클레스가 펠레폰네소스 전쟁의 전반부를 잘 이끌었지만 병사하면서 결국 아테네는 스파르타에 패배하게 된다. 페리클레스의 뒤를 이은 알키비아데스의 행적에 대해서는 입에 담을 가치조차 없을 지경이니 훌륭한 지도자를 뽑지 못한 아테네 시민들에게도 책임이 있다.
"무릇 지도자란 특히 아포리아 시대의 지도자란, 페리클레스의 삶처럼 식견이 있어야 하고 그 식견을 공동체와 나눌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하며,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사랑해야 하고, 사리사욕과 탐욕에 초연해야 한다."(p130) 사물의 순리와 사태의 흐름을 판단하여 미래를 예측하고 방향을 결정해야하는 것은 물론이고 이 식견을 공동체와 소통하여 공동체 일원들의 합의를 이끌어내는 능력이 있어야 된다는 말에 느끼는 바가 있다. 공동체와 소통할때 로고스(논리), 에토스(열정), 파토스(공감)가 있어야 하며, 탐욕스러운 지도자는 공동체를 타락시킨다는 말에도 동의한다. 지식인들도 사회의 위기를 겪으면서 자신들의 사명을 다했다. 펠로폰네소스 전쟁후에 헤로도토스는 『역사』를, 투키디데스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썼으며, 소크라테스의 죽음이후 제자인 플라톤과 크세노폰은 각각 『국가』와 『키루스의 교육』을 써서 후대의 사람들이 거울로 삼도록 했으니 말이다.
크세노폰의 『키루스의 교육』은 책의 후반부에 따로 상세히 설명하고 있는데, 키루스는 어린시절부터 남달랐다며, 그의 부모들까지 완벽한 모습으로 그리고 있다. "이렇게 키루스는 다른 사람과 행복을 나누면서, 다른 사람이 행복해지도록 도우면서, 어떤 이에게도 슬픔을 주지 않으면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p201) 알렉산드로스가 존경했던, 페르시아 제국을 세운 정복왕으로서의 키루스의 모습보다는 이런 온화하고 관용적인 인간성이야말로 군주가 아닌 범인의 거울도 될 수 있겠다. 바빌론을 정복한 후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있던 모든 민족을 해방시켜 고향으로 보내주었고, 고향에 가서 각자의 신을 섬기라고 했다. 그 일환으로 유대 민족도 해방되었고 예루살렘에 솔로몬성전을 재건하게 되는데, 성경에 메시아와 같은 인물로 기록된 바사왕 고레스가 바로 페르시아왕 키루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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