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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비가 내린다는 예보는 집을 지키는 아내에게는 '하필이면...'하는 푸념이 나올 법한 소식이겠지만 일주일 내내 다람쥐 쳇바퀴 돌 듯하는 일상사에 지친 직장인에게는 그보다 더한 호사도 없다. 모처럼의 늦잠도, 딱히 볼 것도 없는 채널을 빙빙 돌리는 일도, 느긋하게 웹서핑을 즐기는 일도 비를 핑계로 돌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정도가 지나치면 외출길이 막힌 아내의 뒤틀린 심사가 불호령으로 떨어지기 일쑤이지만 적당한 선에서는 모른 체 눈 감아주는 것도 일반적이다. 나는 이런 빈 시간이 좋다. 어떤 계획도 없이 시간에 쫓기지 않는 이런 시간은 어림짐작으로 셈해 보아도 일 년을 통 털어 며칠 되지 않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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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프랑켄슈타인》을 보면서 눈물을 흘린 사람이 있다. 내 가슴엔 활화산 같은 뜨거움과 빙산 같은 차가움이 공존한다고 닥터/아버지에게 넋두리하던 괴물 프랑켄슈타인은 인간의 원시적인 내면세계를 재현한다. 어쩌면 사람은 못되더라도 짐승은 되지 말자던 어느 영화대사는 이럴 때 제격이다.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는 괴물이 살고 있다. 그리고 의식하지 못한 채 가해자나 악의 동조자 역할을 맡을 수 있다. 나치전범을 놓고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가 논한 「악의 평범함the banality of evil」이 바로 그런 맥락이다.
신화는 악의 문제를 논할 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상징의 보고다. 신화는 문자 이전의 역사요 상징적인 시원의 역사다. 보통 세상의 악을 말할 때 그 기원으로 판도라의 상자를 언급한다. 판도라의 상자는 그리스 신화에서 나이, 질병, 분만의 고통, 잘못, 악습, 광기 같은 온갖 재난이 담긴 악의 종합선물세트처럼 등장한다. 한마디로 말해서 판도라 상자는 외재적 악의 기원에 대한 단순한 해석이다. 그러나 신화적 관점에서 내가 주목하는 바는 괴물이야기다. 신화 속의 괴물은 공격성이나 폭력성 같은 인간의 본성적 측면과 무질서나 아노미 같은 사회적 정황을 모두 지칭할 수 있는 상징이다. 괴물담론은 증오, 차별, 배제 같은 내재적 악을 재현하는 드라마다. 영웅과 괴물간의 전쟁은 심리적 측면에서 자가치료의 정화과정으로 해석할 수 있고, 생태적 측면에서 적자생존의 과정으로도 해석할 수도 있다. 미리 밝혀두고 싶은 것은 발생론적 차원에서 내재적 악은 천성과 문화, 달리 말해 본능과 환경의 합성작용이라는 점이다.
신화에선 괴물과 영웅이 짝패처럼 등장한다. 이들은 운명적으로 서로를 갈구하는 그런 문화원형적 짝패들이다. 그리스 신화의 메두사와 페르세우스, 휘드라와 헤라클레스, 미노타우로스와 테세우스, 키마이라와 벨레로폰. 중요한 건 이들이 신화에서 차지하는 상징적 기능이다. 일반적으로 신화의 내용은 마니교적 시각을 담지한다. 마니교의 이원론적 관점에서 역사는 선과 악의 끝없는 투쟁과정이고, 마침내 선이 궁극적으로 승리한다는 묵시론적 결말을 예시한다. 신화의 역사에서도 영웅전사가 괴물을 물리치고 궁극적으로 승리한다는 결말이 도식화되어 있다. 그러나 그리스 신화는 마니교적 시각을 초월하는데 승리 이후의 세계가 그저 단순한 에덴낙원의 재탕이 아니기 때문이다. 피의 제전에서 마지막 승리를 쟁취한 영웅은 타락의 길을 걸을 수도 있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고 높이 올라갈수록 추락도 깊은 법. 니체의 유명한 충고를 다시금 떠올리게 하는 회귀적 순간이다.
괴물과 영웅의 상징적 의미에 대한 공통된 해석이 있다. 가령 괴물은 영웅의 인생역정에 출몰하는 시련으로 통과의례적인 문턱이다. 그리고 영웅은 한 부족의 리더이자 전사로 그려진다. 종교적으로 보면, 괴물은 그리스도를 유혹하는 마귀와 같다. 신화에 나오는 괴물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있어선 이미 박제되어버린 악의 상징인 듯 하지만 상상력의 시공간 속에선 여전히 살아 숨쉬는 욕망의 원천이다. |
| 이윤기씨를 처음 접한 것은 그리이스 로마 신화에 대한 그의 번역서를 통해서이다. 언젠가 EBS에서 그의 특강을 들으며 “참.. 말 주변이 없으신 분이구나..”하는 생각을 했다. 그의 번역은 탁월했다. 단순히 단어를 알기 때문에 사전 뒤저가며 한 번역이 아니라. 원서의 내용과 그 배경, 저자의 사고방식, 관용적인 표현을 쓰는 인문학적인 배경까지 다 알고 난 뒤에 한국어로 바꿔서 푸는 것이 여실히 느껴졌다. 번역자로서 이만한 분을 일찍 만나본 적이 없는지라 이윤기씨 번역서는 안심하고 구입한다. (번역이 개떡같아 책을 읽다가 집어던지고 싶은 충동이 이는 쓰레기 번역서들이 얼마나 많은지...) 그러다 그의 특강을 듣는데... 글은 아주 깔끔한데 말은 별로라는 생각이 들었다. 머리에 든것도 없으면서 뭔가 굉장히 많이 아는 것처럼 보여지도록 자신을 포장하는 Presentation 능력이 ‘실력’으로 인정받는 시대 아닌가.. 이런 시대의 조류에 오히려 역행하는 분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괜찮은 분일 것이라는 판단이 섰다. 가진 것이 굉장히 풍부함에도 불구하고 버벅거리며 말하는 이윤기씨의 태도가 오히려 더 호감이 갔다. 경북 군위 출신이라 구수한 경상도 말이 더 나의 구미를 당겼다. 아무튼 이윤기씨의 인문학적인 편력의 방대함은 혀를 내두를 정도다. 정확 정보의 출처를 찾아 헤매는 그의 집요함도 거의 편집증 수준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글은 고급이다. 내용이 고급이고 문장이 수려하다. 그의 번역서는 익히 읽어본터라 그의 첫산문집이라고 알려진 ‘무지개와 프리즘’을 Yes24를 통해 구입했다. 나는 책을 Cover to cover로 다 읽고나면 반드시 책 첫페이지 빈장에 책에 대한 독후감을 한문단정도 기록하는 버릇이 있다. 이렇게 해놓는 이유는 나중에 다시 그 책을 펼쳐볼 때, 그 독후감만 보고도 책 전체 내용이 전부 떠오르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이 책 앞쪽 여백에 이렇게 적혀있다. “2004년 10월 14일 올림픽아파트 소방도로에 차를 대놓고 마지막장을 덮었다.”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잠시 여유를 내서 올림픽 아파트 가을 정취를 누리며 책을 읽었겠지... 그리곤 책 내용에 대한 언급은 없이 ‘글이 맛있다.’라는 한문장만 적혀있다. ㅎㅎ 그 때 책 다 읽고 무슨 생각들었는지 머리 속에 다시 다 떠오른다...ㅋㅋ... 오랜만에 故정운영씨 정도의 촌철살인의 글은 아니지만, 맛깔나는 인물과 신화, 문화에 관한 인문학적인 정보가 풍부한 고급 글을 읽었다. |
| 이 책은 그의 그리스 로마신화와 같은 여러가지 책과는 달리 책에서 무엇을 얻기보다는, 작가 이윤기에 대하여 조금은 엿볼 수 있는 그런 책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윤기가 어떤 책을 읽었는지를 알 수 있어 독서를 좋아하는 사람은 '양서'를 추천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아닌가 합니다. 저도 몰랐던 책 몇권을 알게되어 주문했는데 깊은 겨울 독서의 깊이를 더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