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국가가 하나의 역사적 구축물의 하나라는 사실을 말하기 위함이 아니라 오히려 환상과 상상에 의해서만 구축될 수 있었던 국민-국가의 집단성이, 어떻게 해서 그토록 압도적이며 절대적인 사회적 현실로 존재해 왔는지, 더욱이 그것이 어떻게 인종주의를 비롯한 사회적 차별구조를 산출했는지 고찰하고자 한 것이었습니다.
1. 국민-국가의 허상성을 폭로하는 것만으로는 실정성을 확보하고 자명한 원리로써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국민-국가의 집단성을 적절히 비판할 수 없다는 사실,(아무리 상상의 공동체에 불과하다고 말해도 현실의 국가, 국민 의식에 별 타격을 주지 못한다는 점에서) 그 근저에 깔린 인식론적 구조를 파헤칠 필요가 있다는 것이 저자의 문제의식이다.
2. 근대
성과 속이 분리되어 있고 본질적이고 영원한 것은 성의 세계인 사회에서 중요한 것은 신(오해의 소지가 있는 단어이긴 하다.)의 관점이다. 현실적 사실성은 영원의 무수한 변형에 불과하고 진리는 변형 너머에 있는 어떤 원칙으로 인식되는 사회에서 현실은 독립적 의미로 포착되기 어렵다. 개인의 개별성을 위한 공간 역시 마련되지 않는다. (<내 이름은 빨강>을 보면 화가들의 주된 수련은 진리를 표상하는 특정 고전 작품을 끊임없이 반복하여 완벽하게 재현하는 것이었다. 원근법과 스타일로 표상되는 근대적 세계관의 도전에 직면한 중세 오스만제국이 잘 묘사되어 있다.)
성의 아우라가 벗겨진 사회, 인간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 통일적인 신의 관점을 버림으로써 가능해진 진정한 개인의 등장, 개성과 특성의 성립은 결국 모든 것의 균질화 (동일 수준에서 비교를 통해서 가능한 개념)를 통해 이루어졌다는 사실, 개성이란 보편성의 상실과 동시적 과정이며 결과적으로 독립적이나 상대적일 수밖에 없는 무수한 관점의 전개, 그럼에도 경험 속에 초월적 시점을 내재화한 것이 세속화이다.
그 결과 전형이 아닌 현실에서 포착한 익명의 풍경이, 들리는 소리를 보이는 글이 똑같다는 언문일치가 성립되고 세계는 균질화된다. 개별적 균질화 경험은 근대적 미디어의 출현, 신문과 교통, 근대교육제도를 통해 간주간성을 획득하게 된다. 즉 경험의 균질화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일본국가와 국민의식 형성의 직접적 계기는 일청전쟁이었다. 내연의 확대와 외연의 경계설정은 동시적 과정이었고, ‘자’의 정체성은 언제나 ‘타’라는 외부적, 이질적 존재를 필요로 한다. ‘자기’의 동일성은 긍정적 포섭의 방식이 아니라 부정적 배척의 방식으로 규정된다. 즉 ‘이것이 일본인이다’가 아니라 ‘저것이 일본인이 아니다’라는 방식으로 경계지워진다.
고유성과 특성은 다른 개념이다. 근대화를 통한 균질화의 바탕위에서 비로소 비교가 가능해지고 그 지점에서 특색이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균질성과 특색, ‘자기’와 ‘타자’는 의존적 관계이다. 반면 고유성은 비교를 수반하지 않는다.
3. 오늘날 현실화된 민족주의와 국가의 폭력성은 민족과 국가에 대한 비판적 반성을 요구한다. 민족과 국가의 역사적 상대성을 주장하는데 그치지 않고 그 근저에 깔린 근대적 인식코드를, 일본 역사를 통해 구체적으로 검토하는 작가의 노력, 민족적 소외와 국가의 부재라는 재일한국인의 규정성이 빚어내는 저자의 예리한 시각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결코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니었지만 내용은 흥미진진했다. 우리의 경우에도 민족은 일종의 뇌관이다. 일본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부족하다 할 수없는 민족을 둘러싼 수많은 신화와 갈등과 오해를 극복하기 위해 비판적 검토가 절실히 요청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