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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국가라는 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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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책을 월드컵 기간동안 읽었다. 붉은 물결과 대~한민국이라는 구호의 외침! 4강 신화(?), 카퍼레이드, 정몽준의 부상으로 이어진 일련의 사건들 틈바구니 속에서. 국민학교에 들어서기 전에 박정희 대통령의 사망했지만, 국민교육헌장을 반강제로 외우면서 유년시절을 보낸 나로서는 국가에 대해 의문을 품을 수 있었던 것은 대학을 들어가서의 일이었다. 그리고 앤더슨의 '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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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책을 월드컵 기간동안 읽었다. 붉은 물결과 대~한민국이라는 구호의 외침! 4강 신화(?), 카퍼레이드, 정몽준의 부상으로 이어진 일련의 사건들 틈바구니 속에서. 국민학교에 들어서기 전에 박정희 대통령의 사망했지만, 국민교육헌장을 반강제로 외우면서 유년시절을 보낸 나로서는 국가에 대해 의문을 품을 수 있었던 것은 대학을 들어가서의 일이었다. 그리고 앤더슨의 '상상의 공동체'론과 미셸 바렛의 '가족'론을 통해서 국가와 가족의 담합관계(?)를 인식할 수 있었다. 이 책은 앤더슨과 바렛 그리고 아나키즘에 대한 기초 지식을 가지고 대한다면 참 감칠맛이 날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참으로 딱딱하고 맛없게 될 것이다. 모든 책을 읽을 때는 선입관을 깰 망치를 하나 준비하라고 카프카가 말했던가. 아무튼 이 책은 작금의 무조건 애국심에 일대 경종을 울릴 만한 책이다.
b****s 2002.07.26. 신고 공감 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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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한 것을 의심하라. 만들어진 괴물 국민, 민족
"당연한 것을 의심하라. 만들어진 괴물 국민, 민족 " 내용보기
1934년 평안북도 강계출생, ‘만약 유.소년기를 보낸 장소를 고향이라고 부른다면 저의 고향은 틀림없이 조선입니다’는 작가의 이력이 눈길을 끈다. 더불어 ‘제 자신의 전쟁 체험과 전후 체험의 일체, 즉 지금까지의 전 생애와 그 전 생애를 좌우했던 것에 대한 반성과 분노에서 나온 통한의 담론’이라는 저자의 고백 은 비장하기까지 하다. 이 책의 주장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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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4년 평안북도 강계출생, ‘만약 유.소년기를 보낸 장소를 고향이라고 부른다면 저의 고향은 틀림없이 조선입니다’는 작가의 이력이 눈길을 끈다. 더불어 ‘제 자신의 전쟁 체험과 전후 체험의 일체, 즉 지금까지의 전 생애와 그 전 생애를 좌우했던 것에 대한 반성과 분노에서 나온 통한의 담론’이라는 저자의 고백 은 비장하기까지 하다.


이 책의 주장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근대, 국가, 국민 비판이다. 근대에 대한 비판은 다각도에서 진행되고 있다. 근대의 철학적 토대인 주체에 대해, 인식과 판단의 기초로서 사유하는 존재, 자명하고 통일적인 주체가 과연 진실인가? 라는 의심을 거쳐 그 특성은 자기와 타자의 구별과 배제, 동일화의 포섭논리라는 비판으로 이어진다.


산업화의 요구에 따라 역사적으로 형성된 따라서 의도적이고 만들어진 국가, 민족, 국민의 개념 역시 동일한 특성을 공유한다. 공간, 시간, 습속, 신체, 언어와 사고의 통합을 통해 근대 국민이 탄생되는 것이다. 국어, 애국심, 국문학, 복장, 인사, 노동, 호적, 근대공원, 대중문화, 여가, 분, 초를 다투는 시간 감각, 익명의 풍경, 국기, 국가, 경찰 등이 근대를 분석하는 핵심 소재인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더구나 자본주의는 출발부터 세계체제로서 작동했다는 세계체제론과 결합하면 국민국가의 폐해는 현 체제 안에서 해결 방법을 찾을 수가 없다. 요즘의 대세, 세계화를 보고 있자면 이 논리는 더욱 설득력이 있다. 제국주의적 민족주의는 말할 것도 없고 제 3세계 식민지 국가의 저항적 민족주의마저 현실에서 유사 파시즘의 형태로 귀결(우리로 말하자면 박정희식의 국가주도 경제개발이 여기에 해당될 터이다.)되고 마는 비극적 결말 역시 국민국가 체제의 한계에 기인한다. 결국 한정된 의자 뺏기 싸움이 반복될 뿐인 것이다. (일본 역시 저항적 민족주의에서 출발했으나 결국 확대적, 침략적 민족주의로 전환되었다는 저자의 주장에 일순 당혹한다. 아니 일본이 언제 저항적 민족주의였단 말인가? 시간이 흐르지 않는, 언제나 일제 식민지 기억만이 유일하고 절대적인 교점인 나의 일본관이 새삼 드러나는 순간이다.)


국민국가, 민족이란 단어의 배후에는 동일성, 편 가르기, 순수성, 기원 등의 광폭한 열망이 어른거린다. 그런 의미에서 잡종, 하이브리드, 혼혈, 경계 허물기, 다민족, 다문화, 다언어에서 근대를, 국민국가를 넘어서는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세계화의 상충된 이중성 역시 이런 측면을 강화시킨다.


문명과 문화, 국민과 민족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결합했는가? 작가의 참신한 설명이 돋보인다. 문명, 문화, 근대, 민족, 국민이란 단어가 언제, 어떤 경로를 통해 우리에게 어떤 형식으로 수용되었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용어는 서구에서 일본으로, 일본에서 한자를 조합하여 중국, 한국, 대만 등으로 수출되었다. 특히 민족이란 단어는 고유한 한자어가 아니며 일본이 만들어 낸 신조어이다. 


우리의 민족주의는 어떻게 형성되었는가? 지금 우리에게 자명한 단군의 자손, 한민족 한겨레라는 민족의식은 필시 개화기와 식민지 시대를 통해 만들어졌을 것이다. 또한 한글의 강조와 국문학의 탄생, 애국적 역사서의 저술, 근대교육 등 민족주의 이름으로 실행된 근대화 프로젝트, 국민의 형성과정은 어떤 경로를 거쳤는가? 보다 넓고 깊은 연구가 필요하다. 그리고 다시 물어야 할 것이다. 우리에게 민족주의는 여전히 저항적이고 진보적인가?


YES마니아 : 로얄 n****o 2007.05.13. 신고 공감 1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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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이라는 이름의 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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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초까지 저는 상당히 낙관적이었습니다. 그것은 한국, 중국, 대만, 혹은 인도와 인도네시아 등은 식민지 지배에서 해방된 나라의 민족주의와 국민국가 형성에 기대를 걸었고 그 나라들의 미래를 믿을 수 있었기때문입니다.   저는 손문과 다케우치 요소미의 말대로 세계 열강의 민족주의는 침략적이지만, 식민지 지배에서 해방된 신흥국의 민족주의는 자유와 해방을 추구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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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초까지 저는 상당히 낙관적이었습니다. 그것은 한국, 중국, 대만, 혹은 인도와 인도네시아 등은 식민지 지배에서 해방된 나라의 민족주의와 국민국가 형성에 기대를 걸었고 그 나라들의 미래를 믿을 수 있었기때문입니다.

 

저는 손문과 다케우치 요소미의 말대로 세계 열강의 민족주의는 침략적이지만, 식민지 지배에서 해방된 신흥국의 민족주의는 자유와 해방을 추구하는 저항적 민족주의이고 결코 침략적으로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아시아와 아프리카 신흥 국민국가는 손문의 삼민주의에 나오는 말을 빌면, '약한 것을 구하고, 위기를 더는' 국가가 될 거라 믿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이상은 결국 실현되지 못했습니다. 과거 40년 동안 국민국가의 역사는 우리들의 기대를 배반했습니다. 식민지 지배로부터 해방과 독립이라는 말을 우리들은 너무나 단순하게 이해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한 나라가 주권을 회복하고 국민국가를 수립하는 것이 반드시 그 나라 인민의 독립과 해방을 의미하지 않음을 우리들은 최근 반세기 동안 수많은 사례를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대부분의 신흥국가는 구종주국과 열강의 제도를 모델로 하여 국민국가 형성을 시작했습니다. 식민지에서 해방된 신흥국가는 지배적인 ㅇ려강과는 다른 새로운 이상을 내걸고 국민국가를 만들기 시작했을 터인데 실제로 만들어진 국가를 보면 동일한 원리에 따라 동일한 기능을 수행하는 국가가 되어 있습니다. 더군다나 대개의 경우 독재, 아니면 개발독재형의 국가입니다. 이러한 현실은 식민지 지배로부터의 해방이 얼마나 얼벼고 또한 식민지 지배의 후유증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역사는 저항적 민족주의가 지배적 정복적 민족주의로 변질되었던 사례를 무수히 제공하고 있습니다."

 

<표1> 국민통합의 전제와 요소

(1) 교통(커뮤니케이션)망/토지 제도/조세/화폐 도량형의 통일/시장…식민지 ◀ 경제통합

(2) 헌법/국민의회/(집권적)정부-지방 자치단체/재판소/경찰-형무소/군대(국민군,징병제)/병원 ◀ 국가통합

(3) 호적-가족/학교-교회(사찰)/박물관/극장/정당/신문(저널리즘) ◀ 국민통합

(4) 다양한 국민적 상징/모토/서약/국기/국가/역/국어/문학/예술/건축/역사편찬/지리지 편찬 ◀ 문화통합

(5) 시민(국민)종교-제전(새로운 종교의 창출, 전통의 창출)

 

<표2> 국민화(문명화)

(1) 공간의 국민화 : 균질 평준화된 밝고 청결한 공간/국경 중앙(도시)-지방(농촌)-해외(식민지)/중심과 주변, 풍경

(2) 시간의 국민화 : 역(시간의 재편), 노동 생활의 리듬/신화/역사

(3) 습속의 국민화 : 복장, 인사. 의식(권위-복종)/새로운 전통

(4) 신체의 국민화 : 오감(미각, 음감, …), 거주, 걸음걸이, 학교 공장 군대 등의 생활에 적응할 수 잇는 신체와 감각/가정

(5) 언어와 사고의 국민화 : 국어/애국심

                                            ▼

                                      내셔널리즘

                                      국민의 탄생

 

국민국가의 특색 가운데 하나는 상호 모방성이다. 모든 국가는 국민국가인 한 국경이라는 제한된 경계선 속에서 철도 및 그 외의 교통망을 가지며 통이된 화폐와 도량형을 가지며, 조세 제도를 가지며, 단일한 시장과 경제 제도를 가지며, 가능하면 식민지를 만들려고한다. 어느 나라에도 동일하게 헌법과 의회, 중앙집권적인 정부, 경찰과 군대가 있고, 호적과 가족제도가 있고, 학교와 박물관이 있고, 국민사와 신화가 있고 기념비와 국기고아 국가가 있다. 복제양은 아니지만 세계 국가간 시스템은 서로 닮은 국가를 하나하나 지구상에 만들어 간다. 65쪽

 

앤더슨이 예로 들고 있는 것은 필리핀 내셔널리즘이 아버지 호세 리살의 소설 놀리 메 탕헤레(1886), 멕시코의 호세 호아퀸 페르난데스 드 리사르디의 엘 페리키료 사르니엔트(1816), 인도네시아의 급진거 저널리스트 마스 마르코 카르토디크로모의 검은 세마랑(1924) 등 모두 제3세계의 국민주의적 소설인데, 이 경우 반드시 국민주의적인 작품일 필요는 없고 소설이기만 하면된다. 앤더슨에 의하면 그것은 발자크의 명작에서 적브한 소설에 이르기까지 모든 소설에 공통된 구조이기 때문이다.

근대적인 시간 축에 따른 동시성과 국민을 독자의 상상력을 매개로 결합시키는 앤더슨의 착상은 탁월하지만 나아가 신문에서 편집의 문제와 소설에서 작가의 상상력 속에 반영된 국민국가의 문제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신문의 경우 기사의 내용은 별도로 하더라도 지면에서 기사의 분류와 배치 방법이 이미 일정한 국민 국가의 이미지를 전제로 하고 있을 터이다. 79-80쪽

 

발자크의 인간 희극은 새로이 형성되어 가고 있던 국민국가의 정경과 전체적인 구조를 묘사하려 했던 것이다. 발자크는 서재에 나폴레옹의 흉상을 두고 나폴레옹이 칼로 실현했던 것을 자신은 펜으로 실현한다고 썼다. 나폴레옹을 단순한 정복자와 폭군이 아니라 프랑스 혁명으로 시작도니 국민국가 건설의 완성자라고 생각하면 이 에피소드의 의미는 명확해힌다.80-81쪽

 

민족은 독일어의 volk에 가장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는 우선 국민에 해당하는 것을 문명의 관점에 근접시키면 국민이 되고, 문화에 근접시키면 민족이 된다고 하는 애매한 설명에 그치겠습니다. 근대 이후 프랑스와 독일 사이에서 반복된 전쟁의 역사는 문명과 문화 사이이의 투쟁의 역사라는 양상을 띠고 있었습니다. 프랑스는 문명의 옹호를 구실로 독일은 문화의 옹호를 구실로 부르짖으며 싸웠습니다. 그것은 제2차 대전까지 계속되어 전후 독일과 일본의 전쟁 범죄인이 문명에 대한 범죄로 재판받았던 것은 아직도 기억이 새롭습니다. 문명 개념은 식민지주의의 구실이 되었습니다. 미개인의 문명화를 위해(문명화 사명)라는 것이 그 구실입니다. 이러한 문명 개념은 현재에도 근대화론과 개발주의로 형태를 바꾸어 나타나고 있습니다. 문화 개념은 그것은 가장 극단적인 형태로 나치즘이라는 형태를 취했습니다. 히틀러는 인류를 문화의 창조자, 문화 지지자, 문화 파괴자의 세 종류로 나누었습니다. 106-107쪽

 

국경으로 둘러싸인 국민국가를 모델로 하여 만들어진 현재의 고전적이고정태적인 문화 모델을 대신할 새롭고 다이나믹한 동태적 문화모델을 구상하는 것. 문화상대주의는 문화의 교류와 변용에 충분한 주의를 기울이지 못하고 오히려 문화들 사이의 국경을 강화하는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현제 화제가 되고 있는 다문화주의에 대해서도 비슷한 식으로 말할 수 있습니다. 만약 문화들 간의 다이나믹한 교류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다문화주의는 민족 혹은 에스닉 그룹 수만큼의 미니 네이션을 생산하는 것으로 끝나버리겠지요. 현재 저의 주요 관심은 교류하고 변용하는 다이나믹한 문화 모델을 어떻게 구상할까 하는 것입니다. 125쪽

 

차이에서 우월로, 저항에서 지배로, 혹은 개별주의에서 보편주의로 전환하는 국민주의의 논리는 세계 모든 국민주의의 역사를 특징지우는 공통적 현상이 아닐까요. 우리들은 그것을 우리들이 체험한 역사적 사실로서, 혹은 세계 여러 국민국가의 역사적 분석을 통해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프랑스의 문명에 대항했던 독일의 문화개념이 나치즘의 인종차별과 대량학살에 이어져 있는 것, 일본정신이 대동아공영권의 이론으로 이어지고 마침내는 아시아에서의 려러 가지 만행에 이르게 되는 것은 아주 극단적인 예이지만 비슷한 현상은 보다 작은 규모로 눈에 띠지 않는 형태로 지구 각지에서 지금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문명의 개념과 마찬가지로 문화의 개념 또한 식민지 지배를 위한 이데올로기가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문명과 문화가 일종의 공범 관계에 있음을 예상케 합니다. 문명이란 저항에서 지배로 전화한 강국, 혹은 패권국의 문화 개념이라고 정의해 두고 앞으로는 문화에 대해서만 논의를 진행시켜 나가겠습니다. 실제 국내에서 문화 개념을 고집하는 국가라도 식민지 지배에서는 문명-미개라는 이분법을 적용했던 것입니다. 134-135쪽

 

이문화 교류는 자기 발전과 자기 부정이라는 서로 모순된 두 가지 계기를 포함합니다. 이문화 이해라는 것은 그만큼 자신이 변한다는 것이고 이문화 교류라는 것은 상호 변용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요(상호 변용의 커뮤니케이션) 140-141쪽

 

다문화주의는 민족적 문화적 언어적 다양성이 한층 풍부한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야말로 이 문제가 제기되어야 하며, 또한 한편으로 일본처럼 민족적 통일성을 자랑하는 나라에서 단일 민족적 환상을 타파하기 위해 논의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문화주의는 하나의 사회 혹은 하나의 국가 내부에 복수의 문화가 있다는 것을 긍정하고 그것을 추진해 나가는 것을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는 문화상대주의와 다르지만 문화의 고유한 가치를 인정하고 자문화 중심적인 발상을 거부한다는 점에서는 공통적입니다. 147쪽

 

다문화주의에는 한 언어, 한 문화, 한 민족이라는 국민국가가 예전에 가지고 있던 기본적인 통합약식과는 다른 보다 자유스럽고 보다 풍부하고 보다 창조적인 인간-사회 관계의 실현을 지향하는 방향성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다문화주의는 데모크라시와 시민의 새로운 존재방식을 지향하고 있기 때문에, 저는 이 점에서 다문화주의가 21세기의 새로운 인권선언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합니다. 148쪽

 

문화 상대주의에는 식민주의가 지배적이었던 시대의, 종주국 지식인과 식민지 지식인의 자기반성이라는 특징이 새겨져 있습니다. 다문화주의에도 포스트 식민지시대 서구 엘리트 계급의 자기반성이라는 특징이 각인되어 있습니다. 149쪽

 

민권=국권형의 정치 사상이란 국민의 자유와 권리의 발전과 거기서 발양된 광범위한 사람들의 능력과 활동성이야말로 근대적 국민국가 형성의 기본원리라고 하는 입장이다라고 쓰여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하나의 흐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신문과 연설회에서 그러한 정치적 공공성이 창출되어 간다는 것, 즉 앤더슨이 말하는 상상의 공동체가 창출되어 간다는 것 자체가 이미, 이 운동이 국민국가 형성의 움직임 가운데 휩쓸려 들어가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것이 반체제의 운동이끼 때문에 국민국가 비판이 되는가 하면, 그렇지 않아 오히려 반체제 운동이기 때문에 민중을 개입시켜 국민국가의 형성을 돕습니다. 내셔널리즘을 강화하는 기능 효과를 가지게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163쪽

 

프랑스 혁명의 이미지가 시대와 더불어, 세계 상황의 변화와 더불어 바뀌어 간다는 것은 오히려 그것의 영원한 가치를 증명하는 것입니다. 해방의 모든 가능성을 내포한 프랑스 혁명은 마지막에는 많은 것을 억압하고 배제하였습니다. 여성과 외국인은 배제된 것의 두 가지 대표적 예입니다. 프랑스 혁명은 국민국가에 이의를 주장하고 인권선언을 다시 쓰려 했던 두 사람의 인물을 단두대에 처했습니다. 인권선언은 남자의 입장에서 이루어진 것이라 하며 사람=남자를 여자로 바꿔 쓰려했던 올랭프 드 구쥬와 인권선언은 프랑스인의 권리선언에 그쳐서는 안된다고 주장하며 국민을 인류로 바꿔 쓰려 했던 아나카르시스 클로츠가 그 두 사람입니다. 211-212쪽

 

어떤 의미에서 국민적 기념비는 19-20세기의 토템폴이었다. 사회의 위대한 현현은 무의식적 존재의 레벨에 기원을 둔다고하는 클로드 레비-스트로스의 단언은 의심할 여지없이 정당하다. 251쪽

 

국민국가란 명확한 국경의 존재-국민국가는 국경선으로 구별된 정ㅊ치적 경제적 문화적 공간입니다. 고대와 중세의 국가에도 중심적인 정치권력과 정치기구는 존재했지만 국가주권이 미치는 경계선으로서 명확한 국경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289쪽

 

국민국가론에는 다양한 입장이 있을 수 있지만 저는 궁극적으로 국민국가론은 그러한 차별의 구조를 어떻게든 타파하고 인류의 새로운 결합 형식 원리의 탐구를 지향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여기서 특히 강조하고 싶은 것은 지금 우리들이 지향하는 국민국가론이란 우리들 자신이 몸과 마음 모두 그 일부가 되어 있는 국민과 국민국가를 대상화하여 역사적 현상으로 분석 고찰하고 그것을 초월하는 길을 모색하는 시도이고 그 시도는 필연적으로 자기 자신의 탈국민화, 비국민화에 이르게 되리라는 것입니다. 292쪽

 

전후 50년의 역사는 사람은 어떻게 국가로 회수되는가, 사람은 어떠한 회로를 통해 국가로 회수되는가 하는 과정을 선명하게 보여주었습니다. 잿더미에 던져진 사람들은 바라크로 만든 작은 건물에서 시영 주택으로, 학교와 직작으로, 그리고 마지막에는 국가로 회수되어 갔던 것입니다. 302쪽

 

국가의 상대화는 국민의 상대화이기도 합니다. 지금 말하고 있는 국민으로서의 나와 나의 상대화가 문제시되지 않으면 안됩니다. 사회과학자에 대해 제가 가지고 있는 불신의 이유 가운데 하나는 마치 객관적 진리가 자신과는 동떨어진 곳에 존재하는 것처럼 말하며 말하고 있는 자기 자신을 문제의 바깥에 두고 있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316쪽

 

국민국가가 흔들이고 있는 시대의 변화를 관찰하는 시각을 국가의 주박 즉 국가 이데올로기로부터 가능한 한 멀리 떨어진 지점에 설정하기 위한 궁리와 노력을 하는 것. 그리고 거기서부터 세계의 변화와 동시에 우리들이 국가로 회수되는 무수한 회로를 확실히 응시하고, 그 회로에서 몸을 빼기 위한 궁리와 노력을 하는 것. 그리고 그 지점에서 발견되는 다양한 착취와 차별에 대해 최대로 가능한 이의를 제기하는 것이 아닐까요. 새로운 사회운동을 그러한 문맥 속에 생각하고 싶습니다. 그러한 궁리와 노력의 결과로 자신이 조금씩 변해가고, 그것에 따라 새로운 세계가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에 그럴듯한 예언과 대안에는 주의하는 편이 좋습니다. 318쪽

t****b 2013.04.0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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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셔널리즘 국민의 탄생 과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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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책이다. 일단 이 책은 일본인이 쓴 군국주의, 민족, 국가주의 담론에 대한 책이라는 점에서 한국인이 마땅히 읽을 필요가 있다. 다음으로, 국가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 시민들의 정체성을 비판적으로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 때문에 마땅히 읽어야 한다. 사실, 나는 전자보다는 후자의 측면에서 이 책을 흥미롭게 읽었다. 사실 나는 내각 한국인이라는 정체성과 그에 수반되
"내셔널리즘 국민의 탄생 과정은? " 내용보기
흥미로운 책이다. 일단 이 책은 일본인이 쓴 군국주의, 민족, 국가주의 담론에 대한 책이라는 점에서 한국인이 마땅히 읽을 필요가 있다. 다음으로, 국가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 시민들의 정체성을 비판적으로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 때문에 마땅히 읽어야 한다. 사실, 나는 전자보다는 후자의 측면에서 이 책을 흥미롭게 읽었다. 사실 나는 내각 한국인이라는 정체성과 그에 수반되는 애국심이 아주 미약하다. 그것이 필연적이어야 하는 경험도 없었고, 그런 판단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똑똑한 사람은 다 유학에 이민이고, 조국이라고 남아있는 이곳도 부정과 부패 뿐이다. 그래서 나는 도대체 국민으로서의 정체성을 느낄 수 없고, 느끼기도 싫었다. 이 책은 물론 그런 의미에서 불평을 하는 책은 아니다. 오히려 내셔널리즘 국민의 탄생 과정을 분석하고 있다. 즉, 공간과 시간, 습속, 신체, 언어와 사고가 국민화 되는 과정을 묻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경제, 국가, 국민, 문화의 통합 속에서 가능한데...거기에 대해서는 생각해볼 문제가 많다. 책 자체는 어렵고 전문적이다. 그러나, 논쟁적이고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주기 때문에 교양인이라면 읽어봐야 할 것 같다. 이 세상에 국민 아닌 이는 없기 때문에 더더욱 더.
e****l 2004.11.02.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