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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봉암은 1899년에 태어나 1959년 세상을 떠났다. 그의 사회 활동은 1919년 3.1운동에서 시작되었다. 3.1운동으로 체포돼 1년 정도 투옥 생활을 했다. 1905년 을사조약이 강제된 후 근대적 민족의식, 애국심, 국가 의식 같은 것을 가진 사람들이 상당수 늘어났다. 조봉암은 서대문형무소에서 나온 직후 다시 체포돼어 엄청난 고문을 당했다. 수십 차례 유치장 살이를 해봤지만 이때보다 더 힘든 일은 없었다고 이야기 하였다. 이듬해 일본 중앙대학전문부 정경과에 입학하면서 박열 등과 함께 흑도회를 조직했다고 자료상에 나온다. 조봉암은 귀국 후 1923년부터 청년 운동을 많이 했다. ‘내가 사회주의자다’라고 자처라는 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사회주의자들이 노동 운동의 현장으로 직접 뛰어드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공산주의자와 민족주의자가 함께 활동하는 모습이 여러 군데에서 나타난다. 조봉암은 33세이던 1932년 상해에서 체포된다. 그 후 7년간 옥살이를 하며 감옥에서 40대를 맞는다. 윤봉길의 거사가 일어난 대단한 폭탄의 위력을 보여주었다. 거의 비슷한 시기에 안창호 등도 체포된다.
일제 강점기에 활약한 사회주의자들에겐 유명한 애인들이 있었다. 박헌영에겐 주세죽이라고 서양인처럼 생긴 여성이 있었다. 조봉암은 김이옥이라고 강화도의 부잣집 딸이 있었다. 감옥소에 갔을 때 옥바라지를 하면서 서로 사랑하게 됐는데 김이옥 집에서는 용납을 안 했다고 한다. 상해로 와서 재회했고 큰딸 호정 씨가 태어나게 된다. 김이옥이 죽고 김조이와 재결합했지만 한국전쟁이 나자마자 헤어지게 된다. 여성 문제, 김이옥과 같이 산 것이 ‘동지 김조이가 있는데 그럴 수 있느냐’는 식으로 구설에 올랐다.
이승만 대통령이 초대 내각을 발표할 때 조봉암은 농림부 장관으로 입각해 또 세상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이승만 초대 내각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게 있다면 조봉암이 농림부 장관이 된 것이었다. 농림부 장관에서 물러난 조봉암은 한민당의 후신인 민국당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사건이 생겼다. 민국당의 내각제 개헌안을 공격한 내용을 보면, 상당히 의미심장하다. 조봉암이 이승만 쪽을 지키기 위해 내각제를 그렇게 강하게 비판했다고 보기 어려운 내용이 많다.
조봉암은 대중 정치뿐만 아니라 정당 정치, 의회 정치를 중시한 사람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정당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알고 있었다. 1961년 5.16쿠데타가 나기 전까지 우리나라의 혁신 정당 중에는 농민, 노동자를 기반으로 한 당이 없었다. 그 이유 중 가장 중요한 것으로 진보당의 경우 이승만 정권이 그것을 결코 용납하지 않았던 것을 들 수 있다. 조봉암과 신익희는 1956년 대통령 선거에 나올 가능성이 높으니까 이 두 사람은 못 나오게 해야 한다고 봤다. 1960년 3.15 부정 선거를 지휘한 내무부 장관 바로 그 사람이다. 신익희가 나오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임무가 최인규한테 주어졌다고 최인규 글에 나온다.
1956년 대선에서는 그 후 오랫동안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유명한 구호가 탄생했다. 민주당에서 내건 “못살겠다 갈아보자”, “갈아봤자 별 수 없다”, “구관이 명관이다”같은 것들을 비롯한 여러 구호를 정하고, 나름대로 묘안이라고 여겨 각지에 포스터 같은 걸 덕지덕지 붙였다. 하지만 못살겠다 갈아보자 이 구호는 아무 효력이 없었다. 한 신문은 이렇게 표현했다. “벽보전을 가지고 비유한다면 자유당은 비행기, 민주당은 버스로 하고 다니고 진보당은 지게일지 모른다.” 세 당이 당시 어떤 식으로 움직이는지를 표현한 것이다.
북진 통일 운동이 이 대통령의 권력을 강화하는 데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을 강조했다. 그와 동시에 극우 반공 체제를 강화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반공, 방일, 북진 통일” 및 중립국 감시 위원단에서 ‘적성국’ 철퇴 요구, 재일 교포 북송 반대 같은 것들은 모두 극우 반공 체제를 강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었다.
1958년 5월로 예정된 총선을 앞두고 그해 1월에 진보당 간부들 검거가 시작되면서 진보당 사건이 일어나게 된다. 조봉암은 이승만 정권에 의해 간첩으로 몰려 1심에서 조봉암에게 사형이 구형되었고 2심에서 사형선고를 내렸다. 대법원 판결 후 조봉암은 재심을 청구했지만 기각됐다. 다음 날인 7월 31일 사형이 돌연히 집행된다. 처형 당시 60세였던 조봉암은 형장에서 이렇게 이야기한 것으로 전해진다. “나는 이 박사와 싸우다 졌으니 승자로부터 패자가 이렇게 죽음을 당하는 것은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다만 내 죽음이 헛되지 않고 이 나라의 민주 발전에 도움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억울하게 사형에 처해진 조봉암은 52년이 흐른 2011년에야 명예를 회복한다. 2011년 1월 대법원은 전원 합의 판결로 조봉암에게 무죄를 선고한 것이다.
진보 정치인 조봉암은 어떤 정치를 펼쳤는가? 진보당 사건은 왜 일어났는가? 이승만은 극우 반공 독재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무엇을 했는가? 왜 조봉암은 사형되어야 했는가? 민주주의를 위해 행동하려면 목숨을 걸 수밖에 없던 시기에 조봉암은 활약했고, 결국 죽음에 이르고 말았다. 이 책은 진보 정치인 조봉암을 재조명하는 책이며, 동시에 이승만 정권의 폐해를 낱낱이 고발하는 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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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의 봄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제3권입니다. 주제는 조봉암과 이승만, 평화 통일 대 극우 반공 독재 입니다. 인터뷰 대담 형식으로 진행되는 이 책을 통해 역사적 사실을 명확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주입식 교육에서 배울 수 없었던 우리 역사의 아픔을 느낄 수 있었고 많은 생각할 거리를 제공하여 감명깊게 볼 수 있었습니다. 주제들은 과거를 새롭게 반추하여 오늘날의 현실을 제대로 성찰하게 하며, 앞으로의 대안과 문제의식까지 제시하여 많은 생각할 거리를 제공합니다. 주입식 교육에서 배울 수 없었던 우리 역사의 아픔을 느낄 수 있었고 많은 생각할 거리를 제공하여 감명깊게 볼 수 있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