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나리오를 읽는 법을 따로 배우기라도 해야 하는 것일까. 그게 아니라면 이 작품은 그야말로 허접이다. 예술 영화의 시나리오라고 하기엔 등장인물들의 행위가 너무 가볍고, 오락 영화의 시나리오라고 하기엔 에피소드가 부족하고, 에로 영화의 시나리오라고 하기엔 섹스신의 처리가 불만족스럽고, 멜로 영화의 시나리오라고 하기엔 애틋함이 너무너무 없다. 작가는 후기에서 이 작품을 두고 영화소설이라고 이름붙였는데, 혹시 그것이 미완의 시나리오라는 사실을 은근히 에둘러 말하려 한 것이 아닌가 의심스럽다. 그러니까 마노 카비나의 추억은 시놉시스와 시나리오의 중간 즈음이라고 보아야 할 것 같다. 사실 간혹 시나라오라는 것을 읽고는 하는데, 이 시나리오라는 것을 읽는 재미는 가감의 미학에서 비롯된다. 그러니까 완결된 한 편의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아 이 장면은 뺐으면 좋겠다, 또는 이 즈음에 이런 장면이 하나 들어간다면 좋겠는걸, 하면서 보면 그만큼 재밌다는 것. 하지만 하일지의 이번 작품은 그야말로 얼기설기여서 뭘 빼고 뭘 보태어야 한다고 말하기도 어려울 정도. 시나리오의 주요 인물은 서인하와 강수미이다. 서인하는 50세의 시인이자 교수이며 강수미는 23세의 학생이다. 서인하는 자신의 시를 배경으로 하여 만들게 되는 다큐멘타리를 찍을 예정이다. 그리고 함께 다큐멘타리를 찍기 위해 유하영이라는 학생을 소개받는다. 그런데 다큐멘타리를 찍기 위한 여행을 시작하기 직전 강수미로부터 유하영의 모친이 아파 참여할 수 없음을 알리고 대신 자신이 가면 안 되겠느냐며 접근한다. 그리고 방송국 사람들과 이 두 사람의 여행이 시작된다. 그런데 강수미는 여행 도중 방송국 사람들에게 차례차례 몸보시를 한다. 처음에 서인하는 강수미의 이런 몸가짐에 대해 불쾌해하는 듯한데, 어느 순간부터인지 점점 강수미를 원하게 된다. 그러나 강수미는 서인하에게만은 당신은 완벽한 여자를 찾고 있다는 이유로 몸의 여지를 주지 않고, 결국 서인하는 여행의 막바지 스스로 제 목숨을 끊어 버린다. 도무지 어떠한 설득력도 없고, 어떠한 인과관계도 없는 인물들과 행위로 가득차 있다. 영화화를 염두에 두고 있기는 한 것인지 의심스럽고, 그것이 아니라면 학부 영화과 학생들의 워크숍 작품용 시나리오로나 사용가능하지 않겠나 싶다. 귀엽게 그 미숙한 완결을 용인받을 수 있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