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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왜 상처에 민감할까? 그것은 감정에 관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하다못해 블로그에 달려있는 댓글 하나 때문에, 블로그에서는 얼굴도 마주치지 않고 이름도 모르기 때문에 상처를 입거나 입힐 일도 없는 줄 알았는데 역시 사람들이 모인 곳이라 어느날 말이 돌고 돌아 내 귀에 까지 들려올 때 상처로 남는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상처 때문에 아파하고 신음한다. 이 책은 공지영씨가 가장 아픈 시절에 읽고 위로가 되었던 책이라고 해서 무조건 구입을 했는데 저자는 안젤름 그륀이라는 신부님이다. ‘너 자신을 아프게 하지 말라’는 제목이 너무 마음에 든다. 내가 가지고 있는 상처가 외부로부터 오는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읽을 가치가 있다. 왜냐하면 상처는 외부에서 오는 것 보다 내가 만드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이다. 가톨릭 학자의 책은 한스 큉이나, 헨리 나우엔 외에는 읽은 기억이 없기에 호기심이 생겼다. 머리말을 펼치자마자 ‘신약성경의 저자들이 자유의 표상을 펼친 방식은 스토아 철학의 전개방식을 발전시킨 것이다’라는 저자의 주장에 흥미를 느꼈다. 왜냐하면 그리스 철학과 기독교 신앙은 항상 물과 불처럼 상극이라고 생각했는데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다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 외에 상처 주는 이는 아무도 없다’ 이 말은 그리스 스토아학파의 대표적인 철학자인 에픽테토스가 할 말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기독교 초기의 교리를 완성시킨 교부들(교회의 아버지’라는 뜻으로 5~8세기경까지 교리(敎理)의 정립과 교회의 발전에 이바지하면서, 신앙이나 교회생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 사람)이 이 문장을 항상 반복해서 인용한 것은 놀라운 일이라는 것이 안젤름 신부의 주장이다. 이 책은 에픽테토스의 이 한 문장을 요한 크리소스토무스(한참 헷갈렸는데 개신교에서는 설교를 워낙 잘해 황금의 입이라고 불렸던 크리스스톰을 말함)가 ‘자기가 자신을 상처 내는 경우를 제외하면 아무도 상처 받을 수 없다’는 글을 읽고 매료되어 쓴 책이다. 노예였기에 주인에게 심하게 맞아 다리를 절었던 에픽테토스는 이렇게 말했다. ‘다른 사람이 자신에게 상처 입히는 것을 허용하는 것은 자신의 책임이다. 왜냐하면 온전히 자기 자신으로 있으면 즉 자기 중심을 가지고 서 있으면 어느 누구에게도 상처받지 않기 때문이다. 그럴 때 그 누구도 그를 지배하지 못한다’ (21쪽) 이 정도면 대단한 내공을 가지고 있다. 상처를 준 사람보다 상처를 입은 사람이 더 못났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온전하지 못하고 중심이 없기 때문에 그 상처가 나를 지배한다는 것이다. 정말일까 이 말은 진실에 대한 것보다 삶의 성숙에 관한 문제다. 미성숙한 사람들은 작은 일에도 상처를 입는다. 특히 그 상처는 자존감 때문에 일어난다. “니 따위가 나에게 이럴 수 있어” 자존심을 다쳤을 때 누구나 하는 말이다. 상대방은 깎아 내리고 자신은 높이는 전형적인 이 말속에는 자신에 대한 보호의식이 발동하고 있다. 상대방을 공격함으로 자신을 합리화 시키려는 태도는 분명히 미성숙된 사람이 본능적으로 갖는 태도다. 주인에게 맞아서 절름발이가 된 에픽테토스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누군가에게 나쁜 것을 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누구나 다 자신의 행위를 통해서 나쁜 것, 좋은 것을 스스로에게 준다’고 말한다. 어떻게 에픽테토스에게 이런 깨달음이 있었을까 나에게 일어난 모든 일에 대하여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이고 감사하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스토아 철학자였지만 하나님을 긍정했던 에픽테토스의 사상은 초기 교부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 특히 요한 크리소스토무스는 성경에 나타난 인물들을 중심으로 이 사상을 발전시켜 나간다. 감옥에 들어가고 돌에 맞아 죽고 사자의 밥이 되었다 할지라도 그들은 오히려 그 고난을 기뻐하며 자랑스러워 했다는 것이다. 꼭 기독교적인 신앙관이 아니라 할지라도 이런 부분은 신앙의 힘으로 인정한다. 문제는 우리 시대에 이런 사람들을 발견할 수 없다는 것뿐이다. 안젤름 신부는 헨리 나우엔(가톨릭 복음주의자로 53세때 예일, 하버드 대학의 교수직을 버리고 정신 지체자들을 위해 새로운 공동체에서 생활함)의 글을 인용하며 책을 마무리 한다. 예수님은 성읍의 성문 앞에 많은 상처 입은 사람들과 함께 살고 계시는데 다른 것이 하나 있다.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상처를 한꺼번에 들어내고 다시 싸는데 예수님은 항상 붕대를 하나만을 벗겼다가 다시 감는다고 한다. 그 이유는 ‘아마도 사람들이 나를 필요로 할 거야 그렇다면 늘 준비하고 있어야 해. 한 순간도 꾸물거려서는 안 되지’ 다른 사람의 상처를 싸매어 주는 것이 예수님의 삶이었다. 굳이 매슬로우의 인간욕구단계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삶은 단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할 것이다. 생리적 욕구 수준에 머물러 있는 사람, 존경의 욕구 단계를 지나는 사람, 자아실현의 욕구에 몰두해 있는 사람등 누구나 거울을 보는 것처럼 자신이 어느 수준에 머물러 있는지 잘 알 수 있을 것 같다. 비록 나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들로 가득한 세상에 둘러 싸여 있다 할지라도 예수님처럼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 살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다면 상처는 없겠지?. 자존감이 낮아질수록 상처는 나에게 나쁜 친구로 다가온다. 때론 아내가, 자식이 나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일 때가 있을 것이고, 조금 더 범위를 넓히면 친구, 직장 동료등 내 주변은 항상 상처를 주는 사람들에게 둘러 싸여 있다고 말할 수 도 있다. 그들은 매일 매일 나를 아프게 하고 힘들게 할 수 있다. 지금도 등에 난 상처가 나를 아프게 하고 있지만 이 상처로 인해 죽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치명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상처는 감정의 문제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바뀔 수 있다. 싫었던 사람이 좋아질 수 도 있고 사랑했던 사람이 미워질 수도 있다. 이 감정의 흐름 때문에 날마다 상처를 부여 앉고 자신의 혀로 그 상처를 쓸어낼지 도 모른다. 이때 이 책의 한 구절을 기억한다면 조금은 자유로움이 있지 않을까 ‘자기가 자신을 상처 내는 경우를 제외하면 아무도 상처 받을 수 없다’ 상처에 민감한 사람들이 읽으면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괜찮은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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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다른 사람들에게 생각하고 있던 것을 말할 때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참 생각이 많구나?' 라고 말할 때도 있고 어떤 사람은 '뭘 그런 것 까지 걱정하냐?'하고 이야기 할 때도 많습니다. 사실 제가 다른 사람에게 사소한 고민거리들을 이야기 할 때는 정말 그것이 고민이 되어서 이야기 할 때는 거의 없습니다. 진짜 고민은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죠. 사소한 것이기 때문에 한 번 말하고 잊어버릴 수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도 한 번쯤 이런 생각을 해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가지고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 번 말하고 잊어버릴 수 있는 고민들은 (예를 들어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라던지 사람들과의 관계같은 것들 말입니다.)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스스로가 충분히 해결해 나갈 수 있는 문제고 또 시간이 지나면서 계속해서 변하는 것이니까요.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고민들이 문제가 됩니다. 이 고민들은 저를 계속해서 자해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말해보라고 해도 저에게는 심각하고 중요한 고민이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누구나 그렇다거나 혹은 심약하다는 느낌을 가지고 보기 일쑤 입니다. 예전에 봤던 어떤 영화의 대사에는 '누구도 날 평가할 수 없어'라는 대사가 있었습니다. 자못 유치해보이기까지 한 말이지만 우리들...끊임없이 누군가 혹은 무언가를 평가하고 평가당하고 거기서 상처받고 치유받고 있습니다. 우리 두뇌에 씌여져 있는 편견이란 막은 어지간해서 뚫어지기 힘들어서 편견없는 판단이라고 생각하는 생각조차 편견해 둘러쌓인 생각이기 일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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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로 하여금 할 말을 잃게 하는 상처들이 있다. 나는 먼저 인간의 고통에 경외심을 품고 굴복해야 한다. 그리고 그 상처에 대해 무어라고 설명하는 것을 내 스스로 금한다. 할 말이 없는 상태를 유지한다. - 안젤름 그륀의《너 자신을 아프게 하지 말라》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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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서 오는 고통 우리가 밖에서 오는 고통을 더 크게 만드는 이유 중의 하나는 정말 고통 없이 살아야 한다는, 고통을 겪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환상 때문이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고통에 대해 가지고 있는 잘못된 표상이며, 이로 인해 우리는 자신에게 상처를 입힌다. - 안젤름 그륀의《너 자신을 아프게 하지 말라》중에서 - * 살다보면 고통이 밖에서 예고도 없이 찾아올 때가 있습니다. 너무 아파서 견디다 못해 죽고싶기도 합니다. 그러나 바로 이 때가 자신을 시험하는 시간입니다. 고통을 통해 고통을 이길 수 있는 힘, 다른 사람의 더 아픈 고통과 상처를 이해하고 치유할 수 있는 힘을 안겨주는 감사와 기쁨의 시간이기도 합니다. 그것을 깨닫는 사람에게는 고통도 큰 선물이고 축복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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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자신 외에 상처 주는 이는 아무도 없다는 명제 아래 이 책은 시작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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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첫 페이지를 시작하면서
자기 자신 외에 상처주는 이는 아무도 없다.
라는 글을 대하고 가슴이 먹먹해 졌습니다.
사람을 대하면서 늘 상처 받고 상처 주는것에 예민하여
사람을 대하기를 두려워했던 제게,
결혼하여 남편과 함께 살면서도 어쩌면 그에게 상처 받지 않기 위해
늘 부단이 애써온 내게,
아이를 낳아 아이를 키우면서 아이의 모습에서 상처 받지 않기 위해
늘 나는 나를 단단히 하려 애썼답니다.
상처는 늘 누군가에게서 내게 오는 것이라 생각 했으니까요.
공지영님의 책을 읽다가 발견한 이 글귀를 보고
이 책을 바로 구입했습니다.
그리고 첫 페이지를 읽어 넘어 가는데,
가슴이 먹먹해 지더군요.
그리곤 계속 읽어 내려가는데, 자세히 보니 신부님이 쓰신 책이었습니다.
끝없이 자신을 낮추고 갈고 닦아야 하는 성자의 책이었지요.
책 전체를 통해서 많은걸 얻은건 아니지만,
시작 부분에 이 한문장만으로도 저는 많이 치유받고
편해졌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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