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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에게 상처를 주지마!
"자신에게 상처를 주지마!" 내용보기
주일 저녁에는 씻으러 들어갔다가 목욕탕에서 넘어져 등이 길게 찢어지며 상처가 생겼다. 비명소리를 듣고 제일 먼저 뛰쳐나온 사람이 아내였다. 이럴 때 자식놈들이 밉다.  아들이 약국에서 몇 가지 상비약을 사가지고 와서 등에 바르고 붙이곤 했는데 움직임이 있을 때 마다 쓰라리고 아프다. 월요일 늙다리 아저씨 모임에서는 “신기에 가까운 플레이를 한다.는 칭찬에 현혹되어 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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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저녁에는 씻으러 들어갔다가 목욕탕에서 넘어져 등이 길게 찢어지며 상처가 생겼다
.
비명소리를 듣고 제일 먼저 뛰쳐나온 사람이 아내였다. 이럴 때 자식놈들이 밉다.  아들이 약국에서 몇 가지 상비약을 사가지고 와서 등에 바르고 붙이곤 했는데 움직임이 있을 때 마다 쓰라리고 아프다. 월요일 늙다리 아저씨 모임에서는 신기에 가까운 플레이를 한다.는 칭찬에 현혹되어 무리하게 다리를 벌려 공을 넘기려하다가 갑자기 돌에 맞은 듯한 통증을 느끼며 주저 앉았는데 종아리에 근육이 뭉쳤는지 걷지를 못한다. 결국은 지난번처럼 한의원에 가서 침 맞고 물리치료를 받았다.


똑같은 외상이지만 등이 찢어진 것은 아무리 좋은 약을 바른다 할지라도 상처가 남는다
. 그러나 종아리는 며칠 치료 받으면 감쪽같이 원상복귀 된다. 상처와 통증은 똑같은 아픔을 주지만 차이점은 상처가 남아있냐 없냐?”는 것이다. 사람들은 흔히 상처 받았다고 한다. 그 말은 아직도 그 상처가 나에게 남아있고 순간순간 아픔으로 다가온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 상처의 대표가 사랑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닐까 

 

사람들은 왜 상처에 민감할까?

그것은 감정에 관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하다못해 블로그에 달려있는 댓글 하나 때문에, 블로그에서는 얼굴도 마주치지 않고 이름도 모르기 때문에 상처를 입거나 입힐 일도 없는 줄 알았는데 역시 사람들이 모인 곳이라 어느날 말이 돌고 돌아 내 귀에 까지 들려올 때 상처로 남는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상처 때문에 아파하고 신음한다.

 

이 책은 공지영씨가 가장 아픈 시절에 읽고 위로가 되었던 책이라고 해서 무조건 구입을 했는데 저자는 안젤름 그륀이라는 신부님이다. 너 자신을 아프게 하지 말라는 제목이 너무 마음에 든다.

내가 가지고 있는 상처가 외부로부터 오는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읽을 가치가 있다. 왜냐하면 상처는 외부에서 오는 것 보다 내가 만드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이다.

가톨릭 학자의 책은 한스 큉이나, 헨리 나우엔 외에는 읽은 기억이 없기에 호기심이 생겼다.

머리말을 펼치자마자 신약성경의 저자들이 자유의 표상을 펼친 방식은 스토아 철학의 전개방식을 발전시킨 것이다라는 저자의 주장에 흥미를 느꼈다. 왜냐하면 그리스 철학과 기독교 신앙은 항상 물과 불처럼 상극이라고 생각했는데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다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 외에 상처 주는 이는 아무도 없다

이 말은 그리스 스토아학파의 대표적인 철학자인 에픽테토스가 할 말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기독교 초기의 교리를 완성시킨 교부들(교회의 아버지라는 뜻으로 5~8세기경까지 교리(敎理)의 정립과 교회의 발전에 이바지하면서, 신앙이나 교회생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 사람)이 이 문장을 항상 반복해서 인용한 것은 놀라운 일이라는 것이 안젤름 신부의 주장이다. 이 책은 에픽테토스의 이 한 문장을 요한 크리소스토무스(한참 헷갈렸는데 개신교에서는 설교를 워낙 잘해 황금의 입이라고 불렸던 크리스스톰을 말함)자기가 자신을 상처 내는 경우를 제외하면 아무도 상처 받을 수 없다는 글을 읽고 매료되어 쓴 책이다.

 

노예였기에 주인에게 심하게 맞아 다리를 절었던 에픽테토스는 이렇게 말했다.

다른 사람이 자신에게 상처 입히는 것을 허용하는 것은 자신의 책임이다. 왜냐하면 온전히 자기 자신으로 있으면 즉 자기 중심을 가지고 서 있으면 어느 누구에게도 상처받지 않기 때문이다. 그럴 때 그 누구도 그를 지배하지 못한다’ (21) 이 정도면 대단한 내공을 가지고 있다.

상처를 준 사람보다 상처를 입은 사람이 더 못났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온전하지 못하고 중심이 없기 때문에 그 상처가 나를 지배한다는 것이다. 정말일까 

이 말은 진실에 대한 것보다 삶의 성숙에 관한 문제다.

미성숙한 사람들은 작은 일에도 상처를 입는다. 특히 그 상처는 자존감 때문에 일어난다. 니 따위가 나에게 이럴 수 있어자존심을 다쳤을 때 누구나 하는 말이다. 상대방은 깎아 내리고 자신은 높이는 전형적인 이 말속에는 자신에 대한 보호의식이 발동하고 있다. 상대방을 공격함으로 자신을 합리화 시키려는 태도는 분명히 미성숙된 사람이 본능적으로 갖는 태도다.

주인에게 맞아서 절름발이가 된 에픽테토스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누군가에게 나쁜 것을 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누구나 다 자신의 행위를 통해서 나쁜 것, 좋은 것을 스스로에게 준다고 말한다.

 

어떻게 에픽테토스에게 이런 깨달음이 있었을까 

나에게 일어난 모든 일에 대하여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이고 감사하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스토아 철학자였지만 하나님을 긍정했던 에픽테토스의 사상은 초기 교부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

특히 요한 크리소스토무스는 성경에 나타난 인물들을 중심으로 이 사상을 발전시켜 나간다.

감옥에 들어가고 돌에 맞아 죽고 사자의 밥이 되었다 할지라도 그들은 오히려 그 고난을 기뻐하며 자랑스러워 했다는 것이다. 꼭 기독교적인 신앙관이 아니라 할지라도 이런 부분은 신앙의 힘으로 인정한다. 문제는 우리 시대에 이런 사람들을 발견할 수 없다는 것뿐이다.

 

안젤름 신부는 헨리 나우엔(가톨릭 복음주의자로 53세때 예일, 하버드 대학의 교수직을 버리고 정신 지체자들을 위해 새로운 공동체에서 생활함)의 글을 인용하며 책을 마무리 한다.

예수님은 성읍의 성문 앞에 많은 상처 입은 사람들과 함께 살고 계시는데 다른 것이 하나 있다.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상처를 한꺼번에 들어내고 다시 싸는데 예수님은 항상 붕대를 하나만을 벗겼다가 다시 감는다고 한다. 그 이유는 아마도 사람들이 나를 필요로 할 거야 그렇다면 늘 준비하고 있어야 해. 한 순간도 꾸물거려서는 안 되지

다른 사람의 상처를 싸매어 주는 것이 예수님의 삶이었다.

 

굳이 매슬로우의 인간욕구단계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삶은 단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할 것이다. 생리적 욕구 수준에 머물러 있는 사람, 존경의 욕구 단계를 지나는 사람, 자아실현의 욕구에 몰두해 있는 사람등 누구나 거울을 보는 것처럼 자신이 어느 수준에 머물러 있는지 잘 알 수 있을 것 같다. 비록 나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들로 가득한 세상에 둘러 싸여 있다 할지라도 예수님처럼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 살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다면 상처는 없겠지?.

 

자존감이 낮아질수록 상처는 나에게 나쁜 친구로 다가온다.

때론 아내가, 자식이 나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일 때가 있을 것이고, 조금 더 범위를 넓히면 친구, 직장 동료등 내 주변은 항상 상처를 주는 사람들에게 둘러 싸여 있다고 말할 수 도 있다.

그들은 매일 매일 나를 아프게 하고 힘들게 할 수 있다. 지금도 등에 난 상처가 나를 아프게 하고 있지만 이 상처로 인해 죽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치명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상처는 감정의 문제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바뀔 수 있다. 싫었던 사람이 좋아질 수 도 있고 사랑했던 사람이 미워질 수도 있다. 이 감정의 흐름 때문에 날마다 상처를 부여 앉고 자신의 혀로 그 상처를 쓸어낼지 도 모른다. 이때 이 책의 한 구절을 기억한다면 조금은 자유로움이 있지 않을까 

자기가 자신을 상처 내는 경우를 제외하면 아무도 상처 받을 수 없다

상처에 민감한 사람들이 읽으면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괜찮은 책이다.

 



YES마니아 : 로얄 j*****r 2011.03.31. 신고 공감 11 댓글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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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 바닥에서 읽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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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다른 사람들에게 생각하고 있던 것을 말할 때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참 생각이 많구나?' 라고 말할 때도 있고 어떤 사람은 '뭘 그런 것 까지 걱정하냐?'하고 이야기 할 때도 많습니다. 사실 제가 다른 사람에게 사소한 고민거리들을 이야기 할 때는 정말 그것이 고민이 되어서 이야기 할 때는 거의 없습니다. 진짜 고민은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죠. 사소한 것이기 때문에 한 번
"서울역 바닥에서 읽은 책" 내용보기

 가끔 다른 사람들에게 생각하고 있던 것을 말할 때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참 생각이 많구나?' 라고 말할 때도 있고 어떤 사람은 '뭘 그런 것 까지 걱정하냐?'하고 이야기 할 때도 많습니다. 사실 제가 다른 사람에게 사소한 고민거리들을 이야기 할 때는 정말 그것이 고민이 되어서 이야기 할 때는 거의 없습니다. 진짜 고민은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죠. 사소한 것이기 때문에 한 번 말하고 잊어버릴 수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도 한 번쯤 이런 생각을 해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가지고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 번 말하고 잊어버릴 수 있는 고민들은 (예를 들어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라던지 사람들과의 관계같은 것들 말입니다.)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스스로가 충분히 해결해 나갈 수 있는 문제고 또 시간이 지나면서 계속해서 변하는 것이니까요.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고민들이 문제가 됩니다. 이 고민들은 저를 계속해서 자해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말해보라고 해도 저에게는 심각하고 중요한 고민이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누구나 그렇다거나 혹은 심약하다는 느낌을 가지고 보기 일쑤 입니다. 예전에 봤던 어떤 영화의 대사에는 '누구도 날 평가할 수 없어'라는 대사가 있었습니다. 자못 유치해보이기까지 한 말이지만 우리들...끊임없이 누군가 혹은 무언가를 평가하고 평가당하고 거기서 상처받고 치유받고 있습니다. 우리 두뇌에 씌여져 있는 편견이란 막은 어지간해서 뚫어지기 힘들어서 편견없는 판단이라고 생각하는 생각조차 편견해 둘러쌓인 생각이기 일쑤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어하지만 기댈 수 없는 이유가 여기있습니다. 누구도 자신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고 자신이 보는 눈으로 똑같이 봐 줄 수 없기 때문이죠. 얼마전 tv에서 이혼할 위기에 처한 부부들에게 관계를 회복시켜주는 프로그램을 봤습니다. 위기에 처한 이 부부들은 대동소이한 말들을 했습니다. 이유는 다르지만 모두 자신이 힘들고 자신이 아픈데 왜 사랑해주고 이해해주고 위로해주지 않는 다는 말을 반복했습니다. 그리고 모두 자신은 노력했는데 상대방이 문제라는 말도 했습니다. 나이도 사람도 사는 지역까지 다른 데 사랑해서 결혼까지 해놓고 결국은 사랑해주지 않아서 헤어지고 싶다고 하더라구요. 다들 생각하셨다시피 서로 더 많이 사랑하고 아껴주는 것이 해결책이라 생각되지만 우리의 안경으로 tv에 나오는 그 사람들만을 보고 판단하기는 조금 힘들다고 생각했습니다. 말은 쉽지만 그게 얼마나 많은 노력과 인내가 필요한건지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들도 진정 속에 있는 말하지 못할 고민은 계속 가지고 있을 겁니다. 아마 죽어서도 말하지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말할 수 있는 고민을 다 해결하고 모든것이 순조로울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정말 중요한것은 말하지 않은 어쩌면 인식조차 못하고 있는 고민이 아닐까 합니다. 
 

  이 깊숙한 곳에 있는 고민들은 우리를 더 힙들게 만들고 있습니다. 우리를 자해하고 있습니다. 힘든 것 곱씹고 고씹어서 상처가 아물기 전에 다시 상처를 내서 덧나게 만들고 처음의 상처보다 더 크게 만들고 맘니다. 한 문장으로 보편 타당을 논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생각입니다. 삶엔 언제난 예외가 있고 우리가 모르게 튀어나온 송곳은 부지불식간에 우리의 몸에 생채기를 냅니다. 많은 사람들은 마음에 중요하던 중요하지 않던 상처를 입고 살아갑니다. 어렸을 때 자신을 학대하던 부모님일 수도 있고 사춘기 시절 자신을 모욕하던 친구나 선생님일 수도 있습니다. 자신의 탓이라고 생각하고 자신을 더 힘들게 하지는 않았으면 합니다. 또 남의 탓이라고 자신을 더 힘들게 하지도 않았으면 합니다. 자르고 분해해서 더 곱씹기 보다는 그것을 있는 그대로 속깊숙한 곳에 넣어두고 쓰다듭고 보고 있으면 어느순간에 '아'하는 탄성과 함께 어떤 깨달음이 있지 않을까 합니다. 그리고 덧나지 않은 상처는 어느새 아물어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제 속에 있는 저를 많이 힘들게 하던 것도 대부분 제가 그것에 상처를 아물 시간을 주지 않음으로써 그 상처가 더 덧났던 거 같습니다. 그 일에 작은 일에 다른 것이 덧 붙여저서 자존심이 상하고 슬프고 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외부의 요인이 나를 괴롭히고 그것을 개선의 여지가 있다면 과감히 바꿀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하지만 지나간 일, 다른 사람의 일 같이 이미 나의 마음속에는 들어와있지만 바꿀 수 없는 일이라면 속상하겠지만 진정이 되면 되돌아보거나 곱씹지 말고 한 발 물러나서 조용이 그 것을 바라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아마 상처가 아물수 있는 시간을 줄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저는 불교도 입니다. 이 책을 신부님이 쓴거라 혹시 다른 종교의 사람들이 거북해 할 내용이 있지 않을까 하신다면 부담없이 책을 드셔도 좋을 거라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아니라 하느님 즉 어딘가에서 우리의 운명을 만들고 보고 있는 하늘님이라고 생각하시고 보시면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하루 힘든일이 있으시다면 하늘보고 하늘님에게 '날 왜 이렇게 힘들게 하냐' 하고 시원하게 욕한번 해주고 가뿐하게 하루 마무리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d****7 2011.06.15. 신고 공감 5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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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자신을 아프게 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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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로 하여금 할 말을 잃게 하는 상처들이 있다. 나는 먼저 인간의 고통에 경외심을 품고 굴복해야 한다. 그리고 그 상처에 대해 무어라고 설명하는 것을 내 스스로 금한다. 할 말이 없는 상태를 유지한다.- 안젤름 그륀의《너 자신을 아프게 하지 말라》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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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로 하여금
할 말을 잃게 하는 상처들이 있다.
나는 먼저 인간의 고통에 경외심을 품고
굴복해야 한다. 그리고 그 상처에 대해 무어라고
설명하는 것을 내 스스로 금한다.
할 말이 없는 상태를 유지한다.


- 안젤름 그륀의《너 자신을 아프게 하지 말라》중에서 -

 

t***o 2011.03.18.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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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서 오는 고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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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서 오는 고통 우리가 밖에서 오는 고통을 더 크게 만드는 이유 중의 하나는 정말 고통 없이 살아야 한다는, 고통을 겪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환상 때문이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고통에 대해 가지고 있는 잘못된 표상이며, 이로 인해 우리는 자신에게 상처를 입힌다.- 안젤름 그륀의《너 자신을 아프게 하지 말라》중에서 -* 살다보면 고통이 밖에서 예고도 없이 찾아올 때가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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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서 오는 고통


우리가
밖에서 오는 고통을
더 크게 만드는 이유 중의 하나는
정말 고통 없이 살아야 한다는,
고통을 겪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환상 때문이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고통에 대해 가지고 있는
잘못된 표상이며, 이로 인해 우리는
자신에게 상처를 입힌다.


- 안젤름 그륀의《너 자신을 아프게 하지 말라》중에서 -


* 살다보면 고통이 밖에서
예고도 없이 찾아올 때가 있습니다.
너무 아파서 견디다 못해 죽고싶기도 합니다.
그러나 바로 이 때가 자신을 시험하는 시간입니다.
고통을 통해 고통을 이길 수 있는 힘, 다른 사람의
더 아픈 고통과 상처를 이해하고 치유할 수 있는 힘을
안겨주는 감사와 기쁨의 시간이기도 합니다.
그것을 깨닫는 사람에게는 고통도
큰 선물이고 축복입니다.
y***o 2010.10.16.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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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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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자신 외에 상처 주는 이는 아무도 없다는 명제 아래 이 책은 시작된다. 자기 자신에게 상처 입히는 주체가 항상 자기 자신이라는 이야기이다.  일반적으로 상처는 주거나 받는다고 한다. 즉 타인에 의해 양도 된다는 이야기. 그러나 그륀 신부님은 상처를 입히는 주체는 타인이 아니라 나라고 이야기 한다. 그것도 항상 나였다고. 왜냐하면 내가 나로 서지 못해서 내 중심에 내가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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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자신 외에 상처 주는 이는 아무도 없다는 명제 아래 이 책은 시작된다. 
자기 자신에게 상처 입히는 주체가 항상 자기 자신이라는 이야기이다.  
일반적으로 상처는 주거나 받는다고 한다. 즉 타인에 의해 양도 된다는 이야기. 그러나 그륀 신부님은 상처를 입히는 주체는 타인이 아니라 나라고 이야기 한다. 그것도 항상 나였다고. 
왜냐하면 내가 나로 서지 못해서 내 중심에 내가 있지 않았기에 누군가가 나를 그러쥐고 지배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어떠한 사건이 나를 혼란에 빠뜨리는 것이 아니라 나 스스로 만든 표상이 나를 함정에 빠뜨린다. 죽음이 끔찍한 것이 아니라 내가 만들어논 죽음의 틀이 끔찍한 것이다. 내 마음에 들지 않는 어떤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는 정말 내가 생각하는 한 최악이라고 하자. 그러나 그것은 그 인간이 최악이 아니라 내가 만들어 놓은 틀이 최악이라는 이야기이다. 바꿔말하면 누군가에게 내가 최악일 수 있으나 그것은 그의 문제이지 내가 최악의 인간은 아니라는 거다.
얼마나 매력적인 이야기인가. 내 중심에 내가 있을 때 나는 어떠한 바람에도 어떠한 풍파에도 흔들리지 않고 꿋꿋할 수 있다.
더군다나 사람의 중심에는 하느님이 계시다고 한다. 하늘에서 하느님을 바라볼 것이 아니라 내 깊은 곳에 계시는 하느님을 찾고 느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내가 평화로울 수 있다. 그래야 내가 상처받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정말 상처를 낸 것이 아니라 받은 경우도 있을 것이다. 어린날 성폭행을 당했다던가 부모로 부터 끊임없이 학대를 받았다거나 하는 경우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그런경우 폭행이나 폭력은 아이들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남긴다. 평생....
물리적으로 당한 폭행을 내가 끌어들였다고 더 자책해야 할까. 아니면 어쩔수 없었던 일에서 헤어나오지 평생 되새김질 하며 자기 자신에게 반복해서 상처내지 말라는 이야기 일까.......
그륀신부님께 묻고 싶다. 이 책에는 그에 대한 답도 있는 것 같은데 나는 아직 갈피를 못잡겠다. 신부님의 다른 책들도 읽어볼 생각이다.
다만 이제는 조금 자신이 있다. 내 중심에 나 자신을 두고 타인에게 휘둘리지 않을 자신... 다른 사람들의 자유를 존중하며 그들을 올바르고 공정하게 대할 자신.....

a*****0 2009.08.15.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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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은 모든게 나의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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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첫 페이지를 시작하면서   자기 자신 외에 상처주는 이는 아무도 없다.   라는 글을 대하고 가슴이 먹먹해 졌습니다.   사람을 대하면서 늘 상처 받고 상처 주는것에 예민하여   사람을 대하기를 두려워했던 제게,   결혼하여 남편과 함께 살면서도 어쩌면 그에게 상처 받지 않기 위해   늘 부단이 애써온 내게,   아이를 낳아 아이를 키우면서 아이의 모습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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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첫 페이지를 시작하면서

 

자기 자신 외에 상처주는 이는 아무도 없다.

 

라는 글을 대하고 가슴이 먹먹해 졌습니다.

 

사람을 대하면서 늘 상처 받고 상처 주는것에 예민하여

 

사람을 대하기를 두려워했던 제게,

 

결혼하여 남편과 함께 살면서도 어쩌면 그에게 상처 받지 않기 위해

 

늘 부단이 애써온 내게,

 

아이를 낳아 아이를 키우면서 아이의 모습에서 상처 받지 않기 위해

 

늘 나는 나를 단단히 하려 애썼답니다.

 

상처는 늘 누군가에게서 내게 오는 것이라 생각 했으니까요.

 

공지영님의 책을 읽다가 발견한 이 글귀를 보고

 

이 책을 바로 구입했습니다.

 

그리고 첫 페이지를 읽어 넘어 가는데,

 

가슴이 먹먹해 지더군요.

 

그리곤 계속 읽어 내려가는데, 자세히 보니 신부님이 쓰신 책이었습니다.

 

끝없이 자신을 낮추고 갈고 닦아야 하는 성자의 책이었지요.

 

책 전체를 통해서 많은걸 얻은건 아니지만,

 

시작 부분에 이 한문장만으로도 저는 많이 치유받고

 

편해졌답니다.

 

 

y*****1 2009.04.22.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