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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쪽 나는 너희가 내 책에서 단순한 사실의 연속보다 더 중요한 어떤 것을 배웠으면 한다. 나는 너희가 어떤 것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마음가짐으로 모든 역사적 사건에 접근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렇게 그런 일이 그때 거기에서 일어났다"는 간단한 서술에 만족해서는 안된다. 모든 행동의 이면에 숨겨진 동기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면 너희는 주변 세계를 좀더 잘 이해할 수 있고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는 더 큰 가능성을 갖게 될 것이다. 나는 이것만이 (단, 말과 행동이 일치할 때) 유일하게 만족할 만한 삶의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처음 책을 읽을 때는 중간중간있는 그림을 보고 왜 직접 그렸을까했다. 그러나 아버지(내 느낌은 할아버지인데)가 아이에게 옛날얘기하듯 역사 이야기를 해주시던 중에 앞에 있는 종이에 그 사건에 떠오르는 이미지를 대충 그리는 것이라 생각하니 너무나 잘 어울린다.
시간 흐름에 따른 사건을 알려 주는 것이 아니라 진짜 이야기가 들어있다. |
| "혁명이란 몇 세기 동안 땅 속에서 뿌리 박혀 꿈쩍도 하지 않는 제도를, 아무리 열렬한 개혁가라 할지라도 자신의 저작 속에서 감히 공격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제도를 일순간에 송두리째 전복시켜버리는 것이다. 그것은 당시의 시점까지 한 나라의 사회적, 종교적, 정치적, 경제적 생활의 본질을 구성해온 모든 것을 짧은 시간 안에 무너뜨리는 것이다."(한 유명한 러시아 저술가의 말)(13쪽). 나쁜 시기에 나쁜 방법으로 옳은 일을 하는 것이 왕실의 버릇이었다. 국민이 A를 요구하면서 떠들면, 왕은 그들을 꾸짖으며 아무 것도 들어주지 않았다. 그 뒤 왕궁이 아우성치는 빈민 대중에게 포위되자 왕은 이에 굴복하고 국민이 요구하는 바를 들어주었다. 그러나 이때쯤 국민은 A에다 B를 덧붙여 요구하는 것이었다. 이와 같은 희극은 반복되게 마련이었다. 왕이 사랑하는 국민에게 A와 B를 승낙하는 왕령에 서명했을 때, 국민은 A와 B와 C를 받지 못하면 왕족을 전부 죽이겠다고 위협했다. 그런 식으로 하다가 왕이 처형대에 이르기까지 알파벳 전부가 나열되었다)(22-23쪽). 매우 재미있는 표현이다. 욕심이란 한이 없는 것을 표현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렇고 그런 일이 그때 거기에서 일어났다"는 간단한 서술에 만족해서는 안된다. 모든 행동의 이면에 숨겨진 동기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면 너희는 주변 세계를 좀더 잘 이해할 수 있고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는 더 큰 가능성을 갖게 될 것이다. 나는 이것만이(단, 말과 행동이 일치할 때) 유일하게 만족할 만한 삶의 방식이라고 생각한다)(55쪽). 역사를 보는 눈을 기르는 것이 인생을 보는 눈을 기르는 것만큼이나 어렵다는 것 같다. 미국에서는 노예 제도가 심각한 문제로 발전하여 급기야는 장기간의 전쟁이 벌어졌다. 비록 독립선언에는 "만인은 평등하다"는 원칙이 들어 있었지만, 남부의 농장에서 일하는 피부색 검은 사람들에게만은 이 원칙이 적용되지 않았던 것이다)(115쪽). 미국의 이중잣대야 어제 오늘 일이 아니지 않은가. 그들의 국익이면 다른 나라의 민중들을 쳐다 보지도 않는 것이 강대국의 국익논리 아니었던가. 우리가 완전한 귀머거리가 아닌 이상, 누구나 곡조를 따라갈 수 있어 어떤 음악이라도 즐길 수 있다. (중략) 성가는 리듬이나 하모니에서 매우 엄격한 법칙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곧 지나치게 단조로워졌다)(136쪽). 이탈리아어로 강하게는 '포르테'이고 약하게는 '피아노'였으므로, 이 악기는 '피아노포르테' 또는 피아노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139쪽). 3권으로 된 인류이야기는 뉴욕 배로 8번가에서 1921년 6월 26일 토요일에 저자가 쓴 역사는 영원하다라는 제목의 1쪽 정도의 작가의 말로 끝이 난다. 물론 저자가 1921년에 이 책을 썼으므로 그 이후의 역사가 없는 것이 아쉽기는 하지만 역사 책을 이런 형태로 읽는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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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정치경제적 차원의 이야기다. 정치와 경제를 건드리지 못하는 혁명은 혁명이라 불릴 자격이 없다. '혁명'이란 말그대로 인간 활동의 특정 국면에서 나타나 그 국면과 연결된 사회적 심리적 현실의 광범위한 관계망에 급격한 혁신적 결과를 낳는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변화를 말한다.
18세기 프랑스 혁명이 바로 그런 혁명이었다. 이는 절대주의 체제의 붕괴를 낳았다. 경제적 물질구조를 변모시킨 산업혁명도 바로 그런 혁명이었다. 그런데 반 룬은 산업혁명의 열기관이 이 세상을 우스꽝스러운 굴뚝과 먼지와 매연으로 가득 채우는 더러운 피조물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내 판단이 그르지 않다면, 먼 옛날에 더욱 조직화된 선사시대의 동물이 덜 능률적인 이웃들을 축출했던 것처럼, 전력 기관은 머지 않아 '열기관'을 이 지상에서 완전히 몰아내버릴 것이다."(3권 104쪽)
작용에는 반작용이 따르고 혁명에는 보수적 반동이 따르는 법이다. 나폴레옹이 세인트 헬레나로 유배되자마자, 나폴레옹에게 번번이 패했던 유럽의 지배자들은 빈에서 모여 프랑스 혁명이 파생시킨 수많은 변화들을 원래의 상태로 되돌리려고 했다. 빈 회의의 결과인 신성동맹이 그런 반혁명적인 대반동이었다. 빈 회의의 가장 중요한 세 인물은 러시아의 알렉산드르 황제, 오스트리아 수상이자 합스부르크가의 외교정책을 주도한 메테르니히, 프랑스 외툉의 옛 주교 탈레랑이었다. 1815년 러시아의 알렉산드르 1세가 기독교 정신에 입각하여 제안하여 오스트리아 제국, 프로이센 왕국이 참가한 것이다. 신비주의에 심취한 알렉산드르는 '영혼의 조언자' 폰 크뤼데너 남작 부인의 지지에 힘입어 유럽 대륙에 평화와 안정을 가져오길 원했다. 신성동맹의 원동력이 된 이 두 사람을 반 룬은 이렇게 묘사한다.
"신성동맹은 끔찍한 정신적 충격을 당한 후 갈가리 찢겨진 영혼을 달래려고 애쓴 한 불행한 남자와, 방종한 생활로 아름다움과 매력을 잃어버린 후에 이상한 교리를 들고 나와 자칭 메시아의 역할을 떠맡음으로써 허영심과 욕망을 채웠던 한 야심만만한 여자의 합작품이었다."(3권 56쪽)
신성동맹이 체결된 이후 러시아, 영국, 오스트리아, 프로이센, 프랑스의 5국동맹이 결성되었다. 이들은 민족주의, 자유주의 "반란"이나 폭동, 소요 사태가 발생할 경우 무력으로 개입하여 진압하려 하였다. 반동적이고 반민주적인 신성동맹은 미국의 먼로주의의 선포를 유발시킨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
1914년 6월 28일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자인 페르디난트 대공이 보스니아의 수도 사라예보에서 암살당했다. 암살자는 순수한 애국적인 동기에서 사건을 저지른 세르비아의 학생이었다. 반 룬은 세계1차대전은 사실상 더 나은 신세계를 위한 투쟁이었다고 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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