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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한 인간이었던 예수님 내가 신학교에 다니면서 여러 교육을 받았지만,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것은 예수님을 철저한 인간으로 바라보는 교육이었다. 어쩌면 그것은 나에게 훈련처럼 고된 교육이었다. 이러한 교육을 받기 전 예수님은 항상 내게 완전하고도 절대적인 신이셨다. 내가 기도만 하면 나의 모든 문제를 말끔히 해결해 주실 수 있고, 그리고 예수님이 이 땅 가운데서 이루신 모든 일들은 신이신 예수님께 당연하고도 쉬운 일들로 여겨 졌었다. 그러나 예수님을 이천년 전에 살았던 나와 같은 한 청년으로 바라보기 시작하면서 나는 혼란을 겪을 수 밖에 없었다. 너무나도 초라하고 연약한 예수님의 모습이 먼저 보여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완전한 신으로만 인식하던 그때와는 또 다른 예수님의 아름다움을 곧 만나게 되었다. 울기도 하셨고, 화내기도 하셨으며, 불쌍한 사람들을 보며 안타까움도 느끼신 인간 예수님. 그분은 그야말로 인격적이고, 아름다운 사람이자 신이셨다. "사람의 아들 예수"는 내가 대학을 다니면서 느꼈던 인간 예수님의 대한 아름다운을 다시금 상기시켜주었다. 그리고 더 폭 넓게 인간 예수를 바라볼 수 있는 시각도 갖게해주었다. 그 당시 약제사나 천문학자들의 관점에서 인간 예수를 바라 본 것은 나에게 큰 흥미를 주었다. 한 번도 그러한 관점으로 그 당시에 인간 예수를 생각해본적이 없기 때문이다. 또한 예수에게 자신에 아들을 빼앗겼다고 생각하면서 평생동안 예수를 혐호했던 한 사람의 고백도 참 인상 깊었다. 예수님께서는 완전한 인간이셨기에 그러한 사람들의 인식도 허용되는 것이었다. 이처럼 책을 통해 본 인간 예수는 인간들의 삶 가운데 신이라는 절대적인 존재가 아니라, 서로가 가깝게 교감할 수 있어서 그 누군가에게 주관적인 존재로 인식 될 수 있는 분이셨다. 즉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신으로서 찬양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람들과 교감하기 위해서 이 땅에 태어나셨고, 사람들로부터 평가 받는 것을 피하지 않으신 분이시다. 그가 그러한 선택을 했기에 모든 사람을 섬기며,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을 수도 있었던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누구나 읽으면 좋겠지만 먼저는 예수님을 믿는 기독교인들이 읽어보아야 할 책이라고 생각이 되었다. 어떤이는 이 책이 예수님의 신성을 모독한다고 느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인간이신 예수님을 탐구하다보면, 예수님의 인성이 신성을 훼손하는 것이 아니라, 더욱더 빛나게 하는 것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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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상기도를 - 교회의 가르침에서 벗어나서 - 지나치게 한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하고.... 긴 소설을 쓰려고 인물의 성격 묘사를 한 내용의 모음인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하고....
왜인지 몰라도 대부분 포근한? 느낌을 주는 짧은 글의 모음인데....
별점이 3개인 이유는, 그리스도교인이 읽는다면 만족스럽지 않은 내용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전도용으로 쓰기에는 곤란하고 잘 해봐야 관상기도 용으로나 쓸 수 있는데 몇몇 글에서의 묘사는, 있는 그대로의 성경구절의 묘사보다 못하다고 느껴진다.
어쨌거나 저자의 상상력은 꽤 재미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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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에 대한 책은 수없이 많이 나왔고 지금도 계속 나오고 또 앞으로도 계속나올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에 대한 책은 읽어도 읽어도 지루하지 않다. 성경은 여러번읽었지만 예수님의 탄생, 3년반공생애.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사건들은 내 작은믿음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워서 항상 예수님을 더 깊이 알고싶은 목마름이 있었다. <사람의 아들예수>저자 칼란지브란은 진실한 기독교 인이라는 것은 이책을 읽으면서 알게되었다. 그런데 <사람의 아들예수> 의 역자의 고백이 더 놀라웠다. 3편의 원고를 놓고 우선순위를 정해야 할때 생소한파일 하나를 컴퓨터 를 켤때 바탕화면 아래쪽에서 발견하게되었는데 < 진리에목마른 자에게 고함> 이란 제목의 내용이였다고 한다. 역자는하나님의 뜻인줄 깨닫고 주저없이 세편역중 제일 먼저 < 사람의 아들 예수>를 번역하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참으로 놀랍다. 이천년전에 예수님은 지금도 믿음의 사람들과 함께 하신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일이였다. 또한 이책은 그동안 카돌릭 입장에서 번역이 되었지만 이번에는 역자가 개신교적입장에서 새롭게 번역 하는 수고가 있어서 읽는자들이 진리되신 예수님을 좀더 깊고 넓게 느낄수있는 계기가 될것이란 생각을 해본다. 지금까지 성경속 인물들에 대한 책도 많이 읽었고 설교도 많이 들었지만 이책을 보면서 예수님을 만난 다양한 사람들에 생각들을 재구성하여서 성경에서 읽을수 없었던 새로운 이야기들을 만날수 있었던 것이 이책이 주는 감동이였던 것같다. 특히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을 만나서 변하게되는 과정은 바로 이 시대를 향한 현대인들에게 주는 메세지란 생각을 하게된다. 이책을 읽으면서 저자의신앙이 문장 구석구석에 보석같이 묻혀 있음을 발견하게된다. 예수님을 표현한 문장들을 읽으면서 가슴이 뭉클하면서 내가 지금 예수님곁에 있다는 착각이 들었다. <그분의 보이지 않는 사랑의 향기가 저를 사랑의 잔치에 초대했고p109> <그분의 생명수는 여러 사람들에게 오래도록 머물러 지금도 이 세상의 구석구석을 찾아 모든 곳에 스미고 있습니다p137> 이책은 인간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지만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을 통해서 예수님이 완전한 인간이고 완전한 하나님이심을 알게해준다. <그분은 우리를 찾아온 생명의 숨길로서 우리와 함께 하기 위해 우리와 똑같이 인간의 육신을 취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분의 실체는 곧 하나님이십니다 . p17 그러나 예수님을 비방하는 사람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생각이 거의 같다는 것도 느낄 수 있다. 책속에서 예수님을 비방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이시대에 사람들과 동일하다는 생각이든다. 아무리 예수님을 전해도 마음에 문을 전혀열지않고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다. 예수님이 나와 무슨상관이 있냐고 반문하고 보이는 세계만이 전부라고 생각한다. <보이는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다.>라고 성경은 말씀한다. 마지막 장에서 저자 칼란지브란은 고결한 영혼의 소유자로서 우리가 지은 모든 죄를 용서해달라고 아름다운 시로서 예수님을 찬양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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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릴 지브란의 책 중에서 '예언자' 를 처음 읽었습니다. 그의 대표작이면서 많은 사람들이 추천하는 책이기에 궁금해서 읽기 시작했었네요. 그런데 아직 철학이나 종교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기 때문인지 글은 읽지만 그게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는 파악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읽어도 제대로 읽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네요. 그러다가 우연히 칼릴 지브란의 다른 책인 '사람의 아들 예수' 을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지브란은 중동에 있는 나라 중 하나인 레바논에서 태어났습니다. 중동 지역 국가 대부분은 이슬람교인데 지브란은 어릴 때 레바논을 떠나 미국에서 공부를 하기도 했고, 아버지와 함께 유럽 여러 나라를 여행한 까닭에 특정 종교에 얽매이지 않고 기독교, 서양 사상에 대해서도 객관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유대교, 기독교, 그리고 이슬람교에서 모두 중요한 인물이기는 하지만 그중 기독교에서 가장 유명한 예수에 대해서 글을 쓸 수 있었던 것 같네요. 종교를 가지고 있다면 예수에 대해서 이성적으로 접근하거나 비판적인 시각을 가질 수 없습니다. 그 자체로 믿어야 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여기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 자체가 용납되지 않습니다. 말 그대로 종교의 권위에 복종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사람의 아들' 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는 것처럼 이 책에서는 예수의 신성보다는 인간적인 존재로 더 묘사하고 있습니다. 특히 동시대에 살았던 여러 사람들의 입장에서 각자가 느끼는 예수가 어떤지 설명하고 있기 떄문에 성경책에서 읽는 것과는 느낌이 다르네요. 예수가 처음 태어나서 활동한 시기만 해도 기독교가 널리 퍼지기 전입니다. 그래서 기존 유대교나 다신교의 입장에서는 기존 종교들을 부정하는 예수의 가르침에 불안감을 느낄 수 밖에 없습니다. 더구나 많은 사람들이 예수의 가르침을 따르게 되었으니까요. 그래서 대제사장이나 지역의 원로들의 글에서는 예수의 가르침을 부정하고 무슨 권리로 그러한 행동을 하는지 비난합니다. 반면에 시간이 갈수록 예수의 가르침은 점점 널리 퍼져 나갑니다. 기독교 최초의 순교자 스데반과 사울의 글에서는 어떻게 예수의 가르침을 받아들였고 어떻게 죽음을 무릅쓸 정도가 되었는지를 잘 알 수 있네요.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내용들은 대부분 성경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책에서는 복음서마다 중복되는 내용도 있고 서로 사건이 섞여 있으며 무엇보다 문체가 쉽게 읽히지 않은데 이 책에서는 예수라는 인물을 그와 얽힌 다양한 사람들의 시각에서 묘사하고 있기 때문에 당시에 예수의 가르침에 대해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했었는지 잘 알 수 있었습니다. 종교를 떠나서 역사적인 관점에서도 꼭 읽어볼만한 책 같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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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릴 지브란 하면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는 교본과 지혜서와도 같은 글을 남긴 작가로 기억되지 않을까 싶다. 특히나 그의 <예언자>는 직접 그린 수채화들이 수록된 시집으로 세계적 베스트셀러이기도 하다. 칼릴 지브란의 명성만으로도 왠지 그의 작품은 꼭 읽어봐야 할 것만 같았다. 그러다보니 벌써 이번이 4번째로 그의 작품을 읽게 되는 기쁨을 갖을 수 있었다. <광인>을 시작으로 <예언자> 그리고 <보여줄 수 있는 사랑은 아주 작습니다>를 읽으면서 칼릴 지브란의 매력에 점점 빠져들게 되었다. 철학적이면서도 어렵지 않고 종교적이면서도 배타적이지 않은 그의 글들은 삶의 지혜를 은근하게 스며들게 해준다. 칼릴 지브란의 작품들은 각 작품마다 독특함이 있다. <사람의 아들 예수> 역시도 칼릴 지브란만이 전해줄 수 있는 삶과 진리에 대한 독특함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책은 '예수'에 관해 들려준다. 성경에 있는, 하느님의 아들 그 예수에 관한 이야기다. 그러나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한 형식으로 예수에 관해서 설명하듯 들려주고 있는 것이 아니라, 상상력이 가미되어 예수 시대의 사람들이 동원되어 그들의 입장에서 '예수'에 대해 들려주는 것이다. 하여 어떤 이는 <사람의 아들 예수>를 '지브란에 의한 복음서'라고 하기도 한단다. 직접 읽어보면 '지브란에 의한 복음서'라는 말에 공감을 할 수 밖에 없으리라 생각한다. <사람의 아들 예수>는 51명의 사람들이 각기 그들의 관점에서 예수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 사람들은 예수의 탄생에서부터 1900년 후 사람까지 있는데, 1900년 후 사람을 빼고는 모두 예수와 같은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이 직접 예수를 만나고 경험하였던 것들을 들려주는 형식이다. 다마스쿠스에 사는 페르시아 철학자의 이야기에서부터 <사람의 아들 예수>는 시작되고 있다. 그런데 이 사람 예수, 나사렛 사람이라 부르는 이 사람은 어떤 신과도 닮지 않은 자비로운 신을 우리에게 이야기했습니다. 그 신은 인간에게 벌을 내리기엔 너무도 이해심이 많고, 인간의 죄를 기억하기엔 너무나 사랑이 넘치시는 신입니다. p 15 페르시아 철학자는 이집트의 신이나 조로아스터교 신들이 어떤 모습의 신들인지를 말하면서 다른 신은 필요로 하지 않는, 예수를 필요로 하지 않고 있는 것에 안타까워 한다. '마리아의 이웃이었던 수잔나'의 이야기에서는 예수의 어머니인 마리아가 자신의 아들이지만 또 아들이 아니기도 한 분인 예수를 향한 마음을 애절하게 담고 있으며, '막달라의 여인 마리아'에서는 예수를 만나게 된 과정과 한 여인에서 미리암이라는 한 영혼으로 다시 태어났음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사람의 아들 예수>에는 좋은 이야기만 담은 것은 아니다. 가버나움의 젊은 제사장, 대제사장 안나스등에게서는 예수를 마술사, 선동자에 불과하다고 말하기도 한다. 사실과 다르기에 약간은 불편하기도 한 내용들이기도 했지만 예수를 핍박하고 적으로 생각했던 그 당시 사람들에게는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예수를 없애야만 했으니까... 그는 율법을 어기고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 무법자들의 지지를 받아 함께 안식일을 지키지 않았고, 산혜드린 회당 앞에서는 우리의 고귀하신 제사장들을 비난함으로써 사람들의 주의를 끌고 자신의 명성을 드높였습니다. p 51 예수를 팔아넘긴 가롯 유다에 관해서는 유다의 어머니 시보리아와 예루살렘 외곽에 사는 유다의 친구의 입장에서 두 개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제 아들은 단지 유대 민족이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영광을 되찾기를 원했고, 자신도 유능한 지도자를 도와 그 영광을 찾으려 했던 것입니다. p169 유다에 관한 두 편의 이야기를 통해서는 그저 예수를 배신한 못된 제자 가롯 유다가 아니라 한 사람으로써 유다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계기가 되어주기도 한다. 이렇듯 <사람의 아들 예수>는 성경 속 예수들과 함께 했던 사람들에게서 다양한 관점으로 예수를 느끼고 있는 것을 알 수 있게 된다. 또한 예수가 들려주었던 진리의 말씀도 만날 수 있다. 각양각색의 사람들에게서 예수의 모습을 볼 수 있으며 그렇기에 왜 칼릴 지브란이 예수를 '사람의 아들 예수'라 하였는지도 자연스레 느낄 수 있었다. 비난의 이야기였든 찬사의 이야기였든 어느 곳에서는 예수는 사람들과 함께 있었고, 그 사람들 안에서 예수는 빛이 되어 주셨다. 제 마음 속에는 영원히 '사람의 아들 예수'가 살아 계십니다. 가장 인간다운 초월자로서, 그리고 우리들 모두에게 시를 지어주셨던 시인으로서, 그리고 깊이 잠든 우리의 영혼의 문을 두드려 우리를 무지로부터 깨어나게 하시고 방해물 없이 앞으로 나아가 참된 진리를 만날 수 있게 해 주신 성령으로서 말입니다. p 21 칼릴 지브란의 글을 보면 칼릴 지브란이 예수와 많이 닮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곤 하는데 <사람의 아들 예수>는 그런 느낌이 더욱 강하게 전달되는 작품이었다. 이 책으로 언제나 우리와 함께하시는, 사람의 아들 예수를 만날 수 있기를... 그리고 진리를 만날 수 있게 해 주시는 성령과 항상 함께 하기를 ...기도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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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종교를 갖고 있지 않은 사람입니다.
이 책의 저자는 소설가이자 시인, 화가라고 합니다. 나는 아직 종교에 대한 문외안이라 무엇이 사실이고 무엇이 진리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과연 신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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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우리들 중 어떤 사람은 예수를 '그리스도'라 부르고, 어떤 사람은 '말씀'이라 부르고, 어떤 사람은 '나사렛 사람'이라 부르고, 도 어떤 사람은 '사람의 아들'이라 부르는 것을 들어보셨을 겁니다. 저는 이제 제 마음에 비추어진 대로 그러한 이름들에 대해 명확히 밝혀보고자 합니다. - 17쪽- 칼릴 지브란의 [사람의 아들 예수]는 위의 발췌문에 내용처럼 성경속에 등장하는 사람들마다 기억하고 있는 '예수'의 존재를 저자가 마치 인터뷰한 것처럼 풀어쓴 책이다. 예수님의 제자였던 이들은 한없이 선하고 좋으신 분이자 부족한 자신들에게 사명을 주신 분이지만 예수님의 어머니인 성모님의 엄마에게는 위대한 '분'이기 전에 보통의 아이들과는 다르며 그리운 손자였다. 그런가하면 빌라도와 군중들의 심리를 교란시켜 예수님께 십자가형을 내리게 유도했던 제사장들에게 예수님은 그저 '주의 뜻을 거스리는 간교한 죄인'일뿐이었다. 그런가하면 어떤 천문학자에게 예수님은 신비로운 능력을 발휘하여 영원한 젊음을 가능케한 존재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또 다른 천문학자에게는 이방인이자 로마의 군대로 보내져 사회성을 길러야하는 아웃사이더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지금 내게 예수님은 어떤 존재인가.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지금 느끼고 있는, 그리고 내가 알고 있으며 믿고 있는 예수님을 묘사한 부분을 찾아보았다. 세베데의 아들 요한이 말한 '깊이 잠든 우리의 영혼을 깨우시어 방해물 없이 참된 진리를 만날 수 있게 해주신 '성령'이시며, 가버나움의 마태처럼 우리를 끊임없이 기도케 하신 분이며, 티레의 연설가 아사프의 말처럼 아테네나 로마의 연설가들이 할 수 없는 '초월적인 힘'을 가지신 분이다. 무엇보다 파트모스 출신의 요한의 말처럼 '사랑을 말로 표현하지 않고 몸소 행동으로 표현하신 분'으로 제한이 없고 차별없는 사랑을 보여주신 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책의 제목은 '사람의 아들 예수'다. 그럼 여기서 말하는 '사람의 아들'은 내가 느끼고 있는 한없이 좋고 거룩하시며 신비로운 분과는 대조적인 것처럼 느껴질테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오히려 예수님께서 이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못박히시고 돌아가시기까지의 과정이 사람의 아들이었기에 더더욱 놀랍고 감사할 일인것이다. 고통이나 아픔을 우리 인간처럼 느끼셨고, 그과정속에서도 하느님께 인간을 벌하고 탓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무지를 말씀하시며 감싸주셨던 예수님이셨기에 '사람의 아들'임을 강조하면 강조할 수록 결국 하늘아버지의 유일한 아드님으로써 부활하신 거룩한 분이라는 것에 확신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무신론 혹은 기독교 자체에 거부감이나 심지어 혐오감을 가진 사람들은 어쩌면 제사장이나 이방인이라 표현했던 천문학자와 같은 시선으로 예수님을 바라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예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는다면 칼릴 지브란이 재구성한 그들의 대답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어떤 대상을 바라볼 때 자신안에 갇혀있으면 제대로 볼 수 없을때가 있다. 자신도 모르는 자신의 마음을 타인이 거울이 되어야 비로소 깨닫게 되는 순간도 있다. 만약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이 틀린것은 아닌지 혹은 의심스럽다는 생각이 든다면 이 책을 통해 자신이 원하는 모습과 현실과의 괴리를 통해 예수님을 올바로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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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릴 지브란의 <예언자>를 읽고 그의 사상에 흠뻑 취했던 적이 있었다. 아주 아주 오래 전 일이다. 세월이 흘러 얼마 전에 다시 한 번 <예언자>를 읽었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또 다른 의미와 느낌으로 다가왔다. 그러면서 그의 또 다른 저서 <사람의 아들 예수>가 읽고 싶어졌다.
이 책을 읽고 싶은 마음이 컸지만 선뜻 손이 가지 않았던 이유는 제목에서 풍기는 느낌이 왠지 종교적으로 문제가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선입견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그런 느낌을 지울 수 없었지만 그래도 한 번 읽어보자 생각했다.
이 책은 예수님이 살았던 그 당시의 사람들의 눈으로 바라본 예수님의 모습을 들려준다. 때로는 성경에 나오는 이의 눈으로 본 예수님의 모습을, 때로는 저자의 상상력에서 나온 인물의 시선으로 바라본 예수님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렇기에 이 책은 신학적인 근거를 토대로 이루어진 책은 아니다. 저자의 깊은 묵상과 상상력을 통해 나온 이야기들이다. 그래서 누군가는 그 내용에 거부감을 가질지도 모르겠다. 누군가는 예수님을 더욱 친밀하게 느끼게 될지도 모르겠다.
나 같은 경우에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예수님을 따랐던 이들의 모습에서는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믿는 시대를 초월한 수많은 제자들을 볼 수 있었고, 예수님을 거부하고 부인했던 학자나 사람들의 모습에서는 오늘날 예수님을 거부하는 이들의 모습이 겹쳐져 보였다.
이 점이 내게 가장 크게 다가왔다. 신학적으로는 어떨지 모르지만 사람들의 마음을 들여다봄으로써 예수님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이해하고 그들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를 생각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신 예수님, 사람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모습을 깊이 묵상함으로써 사람들에게 어떻게 예수님을 소개해야 할지를 다시 한 번 고민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분명 하나님이시며 또한 온전한 사람으로 이 땅에 오셨다. 하나님이시며 사람이신 예수님이 남기신 흔적과 목적은 이 순간을 살아가는 믿는 우리 모두가 깊이 깨달아야 할 부분이다. 저자는 그런 깨달음을 위해 우리에게 이 책을 통해서 이야기한다. 예수님의 참된 모습을 올바로 바라보라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