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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에서 진화한 인류는 수십 만 년 전부터 거대하고도 지속적인 이동을 시작했다. 유라시아 대륙 동쪽 끝에 다다른 인류의 일부는 기원전 1만 5천 년 빙하기 동안 유라시아 대륙과 아메리카 대륙을 연결한, 이른바 베링 육교를 통해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간다. 그리고 얼마 후 빙하기가 끝나고 두 대륙의 연결은 끊어졌고, 양쪽의 인류는 서로 다른 역사를 가지게 된다. 1492년 콜럼버스의 발견(사실은 상징적 의미이긴 하다)에 이르기까지 서로의 존재를 알지 못하였고, 아메리카 대륙의 발견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두 세계는 서로가 아주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다(물론 그 인식은 비대칭적이었고, 대응도 비대칭적이었다. 그래서 결과도 비극이었다.)
언론인이자 역사학자인 피터 왓슨은 커다란 도전을 하고 있다. 바로 그 1만 6,500년이라는 시간 동안 두 세계(여기서는 이 두 세계를 구세계와 신세계라 칭하고 있다. 이 명칭이 한쪽의 관점을 취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래서 결코 옳을 수는 없는 명칭이긴 하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더라도, 아니 그렇게 말해야 모든 사람이 이해하는 명칭이기도 하다. 거부감은 들지만 받아들여야만 하는 용어가 되어 버렸다.)가 어떻게 달라졌으며, 그렇게 달라진 이유는 무엇일까를 규명하는 것이다. 이 기획은 규모의 차이는 있지만 많은 학자들이 시도한 것이고, 피터 왓슨은 그 많은 시도들을 모으고 하나의 관점으로 모으고 있다.
피터 왓슨은 우선 공통점, 유사점보다는 일단 차이점에 중심을 두고 있다. 이 때문에 약간의 오해는 생길 수 있지만, 그런 접근을 통해서 누가 봐도 분명한 두 세계, 대륙의 상이한 발전이 어떤 이유에서 그렇게 된 것인지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럼 그 이유는 무엇이었나? 구세계와 신세계가 서로 다른 발전의 역사를 가지게 된 것은 자연 환경 때문이었다. 기원전 1만 5,000년 베링 육교를 건넌 인류가 맞닥뜨린 것은 구세계보다 더 많은 지진과 화산 활동이었고, 정기적인 엘리뇨로 인한 파괴적인 환경이었다(구세계에서의 몬순의 약화는 도시화, 문명화로 이어졌다는 것이 저자의 시각이다). 가축화할 수 있는 동물은 거의 없었으며, 대신 구세계에서는 희귀한 환각성 식물은 많았다. 통제할 수 없는 극한의 자연 환경으로 신세계에서의 종교는 극히 종말론적이었고, 신에게서 벗어날 수 없었다. 또한 수렵과 채집만으로도 생존을 이어갈 수 있었으므로(즉, 그들에게는 결핍이 없었다) 구세계와 같은 농경 사회로 진입도 굉장히 제한적일 수 밖에 없었다. 결국 애초에 인류는 동질적이었으나(베링 육교를 건너간 인류도 구세계에서 비롯했으니), 자연 환경 때문에 전혀 다른 경로의 역사를 가질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즉, 구세계는 ‘양치기’의 역사를, 신세계는 ‘주술사’의 역사를 가지게 되었다.
그런데 이런 시도, 기획은 어디선가 본 듯하다. 바로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 이른바 신세계가 구세계에 어떻게 발전이 뒤처졌는지를 자연적, 문화적 원인을 명쾌하게 밝힌 『총, 균, 쇠』는 십 수년 간 우리나라 대학 도서관의 대출 순위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는 베스트셀러다. 두 세계, 대륙이 상이한 발전의 길을 걸었고, 한쪽은 빠른 문명의 길을, 다른 한쪽은 더딘 문명의 길, 혹은 반문명의 길을 걸었다는 시각은 동일하다. 그리고, 아메리카의 더딘 발전이 그곳에 사는 인간의 문제가 아니라 자연 환경으로 인한 어쩔 수 없는 귀결이었다는 것도 거의 일치한다. 다만 『거대한 단절』은 특히 아메리카의 환경과 문화를 정말 많은 문헌을 통해서 생생하게 재현해내고 있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그로 인해 더욱 신세계의 후진성이 도드라질 수도 있다는 것이 읽는 내내 불편했다면 불편한 점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혹은 그럼에도 『거대한 단절』은 『총, 균, 쇠』를 뛰어넘지 못한다.)
저자 스스로도 자부하듯이 이처럼 방대하게 두 세계를 비교하고, 특히 신세계의 환경과 문화를 분석한 책은 드물다. 사실 그것만으로도 의미를 갖는 책이다. 비록 구세계와 신세계의 역사가 비대칭적으로 서술(시기상으로 서로 똑같이 비교되고 있지 않은 부분들이 많고, 구세계의 분열과 비이성에 대해서는 거의 무시되고 있다)되고 있다는 것이 불편하지만, 그래도 두 세계가 비대칭적으로 발전했다는 것은 누구라도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사실이라는 것을 인정해야만 한다. 그걸 인정한다면 그 비대칭적 발전이 무엇 때문인지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필요를 느낄 것이고, 그것이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환경의 문제라는 결론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결론일 듯하다. 그러나 그것을 증명하는 것은 그리 녹록한 문제는 아니라는 것은 이 책처럼 많은 분량이 필요하다는 것으로 알 수 있다. 『거대한 단절』은 그 분량을 통해 자신의 질문에 대해 명확하게 답을 주고 있다.
* 이 책의 또 다른 의의는, 20년도 더 전에 읽었던 『총, 균, 쇠』를 책장에서 찾아내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