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 3부는 각각 특색이 있다. 1부 (9권, 약50년) 도쿠가와 이에야스 탄생부터 오다 노부나가가 혼노사에서 죽을 때까지를 다루고 있다. 50년의 기간을 다루고 있으므로 전개가 빠르다. 처음 몇권동안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이름이 자꾸 바뀌므로 적응하기 힘들지만 이름이 바뀔 수 있다는 것의 묘한 매력이 있다. 이에야스만 바뀌는 것은 아니고 노부나가도 히데요시도 이름이 자주 바뀐다. 교토와 긴키의 지리에 관심이 생긴다. 이에야스는 늙은 가신들이 훌륭하다. 머리보다는 근성! 2부 (11권, 12년)-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집권기 히데요시가 집권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이 책을 읽고 나도 불분명하다. 히데요시가 그다지 매력적인 인물로 묘사되지 않는다. 과연? 미천한 출신의 히데요시가 집권자가 될 수 있었다는 건 엄청난 카리스마가 있었다는 건데.. 임진왜란을 다루는 장에서는 이순신도 등장한다. "조선수군에는 해전의 귀재가 있어서... 대패하고 말았습니다." 히데요시의 조카 히데츠구가 아연실색하는 장면의 대사다. 카토 키요마사와 코니시 유키나가는 아주 비교가 되는 인물인데, 단연 키요마사가 멋지다. 3부 (12권, 16년)-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집권기 도대체 3부가 12권이나 되는 이유가 뭔지 불만이다. 오쿠보 나가야스 이야기가 절반은 되는데, 반란 한 번 못해보고 죽는다. 오사카 전투에서 히데요리를 죽이는 대목은 미화가 너무 심하다. 후계자 3남 히데타다의 장애물이 될 5남 타다테루를 제거하는 과정도 장식이 거창하다. 그것 때문에 다테 마사무네가 괴팍한 인물로 묘사되는 면이 있다. 국민학교 4학년 때, 친구집 책꽂이에서 보았던 '대망'을 25년만에 읽었다. 그냥 우연히 한권을 샀는데, 줄줄이 사게 되었다. 3부는 좀 억지로 읽은 느낌이 든다. '이제 뭘 읽나' 하는 생각도 든다. 각권 마지막마다 들어 있는 부록들이 다채롭다. 특히 전국시대 각 무장들의 '아이콘'들이 멋지다. 일본의 디자인이 발전한 이유를 알 듯도.. 임진왜란을 다룬 장에서, 히데요시가 조선의 백성도 백성, 절대로 백성들을 해하지 말라는 말이 마치 이라크 국민을 보호하라는 조지 부시의 말같지 않는가. 그러나 전장에 선 미군의 눈에 이라크 국민은 적이다. 마찬가지로 일본군의 눈에도 의병인지 농민인지 헷갈렸으리라. 전국시대를 거치고도 일본의 하나의 국가, 하나의 민족이다. 꼭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아니었더라도 통일은 이루어졌으리라. 하지만 짧았던 일본 제국주의는 한국과 일본을 영원히 원수로 만들었다. 민족 내의 전쟁은 쉽게 아물지만, 다른 민족사이에는 상처가 오래간다. 언제 한 일은 다시 친구가 될 수 있을까. |
| 이제 겨우 삼십줄.. 이삼년 있으면 사십줄에 접어 든다. 추억을 한아름 머금은 음악을 들을 때나 예전에 사귀다가 헤어진 여자친구의 소식을 들을 때나, 문득 들고 있는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싶을 때.. 흘러가는 세월을 잠시 "PAUSE"위치에 놓고 옷 매무새를 추스리고 싶을 때.. 그리고 멀리 떠나버리고 싶을 때.. 누구나 한번쯤은 느껴보았을 것이다. 나는 이럴 때마다 드는 책이 있다. 고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 때 한번 잡은 이후로 수십번 들었고, 병세가 좀 지나칠 때는 전권을 단숨에 읽어 내곤 했던 책이었다. 고등학교 때 한번 대학때 두번, 취직하고 두 번... 이책은 삼국지가 가진 웅장한 스케일과 케릭트와는 다른 맛이 있다. 삼국지에서 거품을 뺀듯한 그러나 좀 의도된 것 같은 주인공 오다 노부나가, 토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 주인공들이 담고 있는 캐릭터와 메시지. 오오닌의 난이후 전국시대를 마감하기 위해 철저히 기존의 패러다임을 깨부수는 캐릭터인 오다 노부나가. 그가 주는 메시지 새로운 시대를 열기위해서는 새로운 이데올로기가 필요하다는 것. 기존의 패러다임은 무너졌으나 아직은 새로운 체계가 구체화되지 않았을 때는 야심과 그를 지탱해주는 근면성, 그리고 어느 정도의 권모술수... 이러한 메시지를 전달해주는 히데요시라는 케릭터.. 새로운 패러다임이 시대에 부응하여 자랄 때까지 끈기있게 기다리고 대세가 되어 봇물처럼 터져나올 때까지 기다리는 인내력의 케릭터 도쿠가와 이에야스. 마치 가공의 인물처럼 동시대에 살았던 세영웅 대비하고 있다. 바로 그것이 잠시 인생의 무게가 무거울 때, "PAUSE"버튼을 누르고 이책을 들 때마다 한때는 노부나가가 한때는 히데요시, 한때는 이에야스의 인생철학에 귀가 솔깃해지곤해져서 매번 읽을 때마다 새로운 느낌을 받게 한다. 고등학교 때 세상의 모든 것을 이룰 수 있을 거라는 것. 지금은 비롯 빈한하지만 언제가 꿈꾸는 무엇인가를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을 때에는 히데요시에 무게가 실렸다가, 386세대로써 대학시절에는 모든 기존의 패러다임자체를 부인할 때는 오다 노부나가의 논리가 더 설득력이 있었다. 이제 나이 사십줄에 들어서면서 이책을 들게 된다면, "기다림"이나 "인내"의 미덕을 배울 수 있을까? 아니면 아직까지 꿈틀거리는 "열정"을 발견할 수 있을까? 다시 책을 잡으면서 새삼 가슴이 두근거려 지는 것은 무엇때문일까? |
| 독서가 주는 쾌감을 이제야 조금씩 맛본다. 읽고픈 책을 손에 들고 '아.. 언제 다 읽지?' 하며 게으름으로 한숨지었던 어릴적 기억이 있는 내게 수십 권의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실로 개벽과 같은 일이다. 이제야 겨우 내 삶의 기초를 다듬는 범생(?)이 되어 간다. 독후감을 쓰는데 대작을 읽었으니까 참 멋드러지고 거창하게 써야겠는데, 어휘력 부족과 감동표현의 한계, 기억력의 한계로 인하여 느낀점을 모두 표현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섬에서 이 책을 읽는 동안에는 즐겁고 신나는 시간이었다. 퇴근하여 자정까지만 읽었고 밤샘 독서는 억제하였다.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慶)』즉『大望』은 山岡莊八이 쓴 32권으로 5개월간 읽은 대하소설이다. 이 소설은 일본역사를 배경으로 하는 무협지와 같다. 일본국민에게 역할 모델이 될만한 역사적 인물로 미화시켜서 그를 닮아 가고 자긍심을 갖도록 계몽적 요소가 있는 50여 년 전에 쓰여진 이상소설이다. 주인공 도쿠가와 이에야스(1542-1616)는 일본 국민상의 좌표임에 틀림없다. 울지 않는 두견새는 죽인다는 오다 노부나가, 울도록 만드는 호전적인 토요토미 히데요시, 두견새가 울 때까지 끈기있게 기다리는 도쿠가와 이에야스... 이 세 사람이 일본을 통일시키는 이 책의 줄거리지만 이에야스가 남긴 교훈과 업적과 피땀이 오늘의 일본을 만들었지 않았나 생각한다. 이 작품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전쟁기자가 자기 역사를 배경으로 집대성한 세계적인 걸작품이다. 그 당시 전쟁에서 오는 피폐한 국민생활에 주인공을 통하여 평화에 대한 희망과 용기를 응축시킨 작품으로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내가 일본인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고 그런 거목을 늦게나마 알게 된 것이 다행이다. 오래전에 이 책을 읽으시고 이에야스의 향취가 나는 선배님의 일상을 볼 때 그 책의 영향이 얼마나 컸는지 짐작이 간다. 일본인 특유의 대륙 지향적이며 세계를 지배하려는 기질이 보인다. 자기의 뜻을 펴고자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은 무모함과 집요한 응집력, 과거의 노략질을 반성하거나 자성의 뉘우침보다는 자기 변명으로 일관하면서 일본 내부의 수많은 문제점을 끌어안고 그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가는 미래지향적인 진취성, 세계대전에서 진 이유가 힘(경제적)이 약한 결과이기 때문에 그 능력(힘)을 기르기 위하여 부단히 노력하는 - 그래서 경제동물로 보이는 특수한 섬인의 끈기, 이런 근성은 임진왜란을 입안한 광란자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피가 일본인에게 지금도 흐르고 있다고 본다. 자신의 명예나 권력욕, 소유욕이나 치부에 안주하지 않고 대의(大義)로 나라를 다스리는 정도(正道)의 지도자 - 전쟁이 없는 태평천하를 이루려는 이에야스의 노력이야말로 오늘의 일본이라는 나라를 만드는데 직·간접적으로 큰 영향을 주었다. 무사는 자기를 알아주는 지도자를 위하여 목숨을 내어놓을 수 있도록 유도한다거나, 모반을 꽤하는 자에게 스스로 뉘우치고 반성하여 내란을 무마시키는 교학(敎學)을 통하여 예(禮)를 가르쳐서 법(法) 이전에 덕(德)으로 나라를 다스리는 이에야스, 70살이 넘는 나이에도 20세의 스님에게 논어강의를 듣고 어떤 중요한 결정을 할 때에는 실패의 여지가 없이 완전무결하게 준비하는 무흠의 겸손한 선각자, 시대의 흐름(무사시대에서 문치 시대로)을 읽고 인재를 발굴 육성하여 이에야스 사후 260여 년 간 전쟁이 없는 나라로 이끌도록 인재를 육성하는 혜안의 거인, 신불에 심취하여 아미타불의 빛(?)을 본 - 신인합일의 극치를 체험(성경에서 바울이 삼층천 경험)한 인물로 미화시킨 일본의 역사적인 거물. 주인공은 인간에 대하여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 절대적인 신뢰로 의리를 지켜 항상 긍정적인 방향으로 부하(국민)들을 유도하였다. 반란이나 모반, 불가피한 전쟁일지라도 국민의 안전을 최우선 지키는 신중한 사나이다. 사건의 원인을 내 자신으로부터 찾아내고 나로부터 해결점을 도출해 내는 - 사건의 발단을 찾아 근원부터 치료하여 문제의 뿌리를 제거하는 지혜로운 자. 또한 전장터에서 승리에만 집착하지 않고 전쟁의 비밀들을 공개하여 장군이나 병사들로 하여금 가족이 걱정되는 자는 가족에게 돌아가게 하거나 적에게 투항할 수 있는 선택의 기회를 주어 판단 착오에서 오는 결과를 본인이 책임짓도록 하는 사람을 초월한 지도자다. 적절한 인재등용과 비정한 공·사를 잘 구분한 조조, 넓은 포용력과 뛰어난 인재를 양성한 유비, 참을성 있게 때를 기다릴 줄 아는 손권과 같은 삼국지의 달인들을 집대성하여 높이선 이에야스는 특히 소리(小利)를 절대로 초월한 인격있는 대가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인간경영』(도몬 후유지 저)이라는 책을 출간하여 현대 최고경영자(CEO)들이 조직관리의 지침서로 활용, 기업을 이끄는 기본 덕목을 배우는 겸손한 일본 지식층 인사들이다. 책을 빌려올 수 없을 때 이 책도 읽어보았다. 오늘 나의 선 자리에서 과거를 거울삼아 앞으로 남은 삶을 생각하고 행동의 변화를 모색해 본다. 오르지 못할 나무일지라도 올려다보면서 자신을 싸구려로 취급하지 않고 값있게 살고자, 정말 한 그루의 거목을 봤으니 그 능력과 업적, 이상을 실천하는 능력을 본받아 새로운 내 인생을 찾아보겠다. 남은 반평생은 예수를 더욱 닮아 가는 길에 집중해 보겠다 |
| 80년대에 책께나 읽었던 사람이라면 대망이라는 책을 알것이다. 그때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며 최고의 책이라고 불리는 대망. 나도 이책을 8년전 중학교 2학년때 읽었다. 그때는 40권으로 출간되었었으며 활자체는 작고 책의 두께는 무척 두꺼웠다. 평소에 무협지를 한달에 수백권씩 읽은 나로서는 책읽는 속도로 보나 어느면에서 책에 대한 두려움은 없는 상태였다. 하지만 이책은 보통의 책과는 달랐다. 아무리 두껍운 책이라도 두어시간이면 다 읽어버리던 내가 이책 한권은 읽는데 거의 5~6시간이나 걸렸던 것이다. 게다가 이책의 대화 하나하나는 그냥 쉽게 넘어갈 그런 대화들이 아니고 아주 깊은 인간 본성의 철학을 담고 있는 것 같았다. 거의 방학 한달을 다 날리고서야 대망이라는 책 40권을 다읽었고 마치 무언가의 속박에서 벗어난듯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지금 8년이란 시간이 지난 지금 나를 뒤돌아 보며 나의 인생에 대망이라는 책이 준 영향은 무척 많은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삼국지는 다들 읽어 보셨는가? 아마 삼국지는 읽어보지 않은 사람은 드물것이다. 하지만 왜 대망은 읽어보지 않았을가? 내가 보기에는 최소한 삼국지보다 그이상으로 감동과 삶의 지혜를 얻을수 잇는 책이라고 생각되는데 말이다. 한번쯤 시간을 내서 꼭 읽어보기를 권장한다. 비록 우리의 역사가 아닌 일본의 역사지만 삼국지는 누구나 읽는데 이책이라고 못읽을 이유는 없지 않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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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련하지만 떨떠름하다는 기분이 이런 걸까? 한 달 조금 못되는 시간에 너무 방대한 분량을 읽어서 소화불량에 걸린 것은 아닐까? 아직은 모르겠다.
작가는 그토록 평화를 추구했다는데 왜 일본인들은 이 책을 경영의 지침서니 처세의 지침서니 했을까? 한국인이 가지고 있는 일본에 대한 3가지 오해 중 하나가 무슨 일이 있을 때 일본인들은 책임을 진다는 것이라는 말이 생각난다(일본 여행 중 한국인 가이드가 한 얘기이긴 하지만...) 아마도 할복이라는 극단적이지만 비겁한 장면이 이러한 오해를 갖게 하는데 크게 기여한 것 같다. 지겹게도 계속되는 배신과 음모, 전투와 모략, 이런 것인 경영이나 처세를 위한 지침이라면 그것은 너무 슬프다. '강한 것이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것이 강한 것이다'라는 찰스 다윈의 말이 생각난다. 결국 결과론이요,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못내 아쉽다. 이 작품의 작가가 지은 '오다 노부나가'로 부터 이 작품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읽는 내내 조정래 선생의 '아리랑'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한 쪽은 일본의 전국시대를 평정한 주역 3인방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 하면서 제 3 주자인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통해 '평화'를 화두로 던진다. 반면 한쪽은 그 일본에 의해 수탈 당하는 식민지의 이름없는 민초들을 주인공으로 우리의 아픈역사를 그리고 있다. 나는 '아리랑'을 읽으면서 여러번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이 작품을 읽으면서 아무리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평화를 위한 노력에도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주인공이 내전의 종식을 위해 처자식을 죽게 하는 장면에서도 눈물이 나오기 보다는 그러한 주인공의 못남에 화가 치미는 것은 왜일까? 내가 일본인이 아니라 한국인이기 때문일까? 아무튼 일본인들이 신겨화 하는 주인공이 내게는 정말 못난 사람 정도 밖에는 안되는 인물로 보인다. 이 책, 정말로 읽기 힘들다. 우선 등장인물들의 이름이 너무 어렵고 자주 바뀐다. 지명도 익숙하지 않다. 물론 이건 작가의 책임은 아닐것이다. 내가 일본사람이 아닌것이 죄라면 죄겠지... 이런 류의 대하소설은 다 읽고 나면 가슴이 뻐근한 감상이 최소한 하루는 지속된다. 허나 이 작품은 그런게 없다. 정말 긴 소설을 포기하지 않고 읽어냈다는 자기만족 정도.... 어디가서 읽은 책 이야기가 화제에 올랐을 때 이 책도 읽었다는 정도... 이 책을 여러번 읽었다는 분들이 적지 않은 것 같다. 그 분들은 과연 무엇때문에 반복해서 읽을까 정말로 궁금하다. 내 생각에는 이 책은 두번읽을 책은 아닌것 같다. 오히려 이 책은 내게 '아리랑'을 다시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이제 새로 손에 잡은 '료마가 간다'를 읽는 것으로 일본쪽 작품을 손을 놓을 생각이다. 그리고 나서 중국쪽 작품을 보고 나서 우리의 보물 '아리랑'을 다시 볼 생각이다. 영화 등 영상물은 나이에 따라 시청 가능여부를 구분하고 있다. 하지만 책에는 그런 것이 없다. 이 책과 관련된 리뷰중에는 청소년이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것도 있고, 지금은 성인이지만 청소년기에 이 책(대개는 '대망'이지만)을 처음 접했던 분들이 작성한 것도 보인다. 하지만 완전한 내 주관적인 생각은 이거다. 이 책은 청소년들에게는 권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 이유는 당연히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인데,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지나치게 승리만을 생각하게 할 우려가 있다. 또한 바람직한 결과를 목적으로 한다면 어떠한 수단과 방법도 용납될 수 있다는 가치관을 형성하게 할 우려도 다분히 있다. 과연 이 책이 주말과 심야에 가족들의 핀잔을 들어가며 읽을 만큼의 가치가 있는 작품이었던가? 책을 놓은 직후인 지금의 대답은 이렇다. "아니다" '료마가 간다'는 작가가 다른 사람이니 다시 조금 기대를 해 볼까나? 그런데 번역자가 같구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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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나긴 여정이 끝이났다.
작년가을에 너무 서정적인 프랑스 작품만 출장 읽어왔던 탓에, 조금 강한(?) 이야기를 읽고 싶었고...사전 내용 파악으로 짐작컨데, '인생 뭐 별거 있나, 즐기다 가는거지'하는 나의 은근 허무주의를 충족시키고픈 작품으로 이 세트를 골랐다.
아마... 그래서 노부나가의 '덧없음'에 맞는 증거를 찾아내려고 용을 썼는지 모르겠다.
32권의 책을 쪼개어 읽으면서, 나에게도 이런 저런 일들이 있었다. 엄청난 사건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나는 즐겁기도했고, 화도 났고, 힘이 넘치기도 했으며, 지치기도 했다. 즉, 다른 사람의 그것과 약간 다를 뿐이지...다른 사람들처럼 똑같은 감정의 모험(?) 속에서 살아왔다는 뜻이다.
이 책을 읽고 나서, 갑자기 뭔가 뭉클한다거나 하는 것은 없다. 처세술이나, 전략 같은 것은..별로 주의깊게 보지 않아서 그런지..그닥 남는 것도 없었고, 은근 비호감이였던 이에야스에 대해서도... 그의 평화메세지는 사실 조금 닭살이였으니까.
16년간 쉴틈없이 글을 써댄 야마오카 소하치,의 필력에 감탄할 뿐이다. 글이 길어서 대단한 것도 있지만...전반적으로 재미있었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32권에 한 사람의 인생을 담았기 때문에 읽기는 권하고 싶고...따라서, 인생을 맛보고 싶은 사람은 한 번 읽어보는 것도 괜찮겠다.
일단, 32권의 기나긴 장편소설을 읽었다는 자부심이 또 하나 생겼다. 그리고, 잘 모르고 있었던 일본 센코쿠시대라고 불리는 16세기 즈음의 역사에 대해서 조금은 자세히 알게 되었고... 사건마다, 각 권마다 나오는 인물들의 감정과 행위를 관찰하면서, 나에게 필요한건 무엇보다도 나에게 더 관대하고 넉넉해져야 함을 새삼 느꼈다. 그리고, 이왕이면..어차피 어떻게든 살아가게 되어 있는 것, 더 자신감을 갖고 살아야겠다는 그런 생각도 들었고...뭐.
Season1.(대망:1~9권)
1부 대망을 일고 나니, '도쿠가와' 보다는 '노부나가'가 더 기억에 남는다.
혼노사의 변에서 노부나가가 자살 하는 장면까지 왔을 때, 나는 더 이상 남은 책에서 그를 볼 수 없음이 미리 마음이 아팠다.
그의 기괴한 언행과..특히 '덧없다'라는 말의 의미가 과연 무엇일까, 읽는 내내 흥미 진진하면서도, 그 답을 찾기위하여 나 역시 헤매였었나.
그에 비하여 도쿠가와는 그닥 매력적이지 않다. 학생으로 예를 든다면...공부도 잘 하는데, 영감같이 족족 맞는 말만 해서..조금 재수 없는 그런 스타일인 것 같았다.
오프닝 부분에서 '도쿠가와'의 엄마인 '오다이'의 활약상이 크지만 1부의 중반부를 넘어서면 그다지 비중이 커 보이지 않는다. 그만큼 이야기는 흐름을 이끌고 나가는 노부나가,히데요시,이에야스 중심으로 펼쳐지지만...그들 주변인들 역시 나름의 훌륭한 역활을 하고 사라지기 때문에, 중간에 비중이 낮아지면 조금 아쉬운 생각도 든다.
대신에, 처음의 기대와 달리 훌륭한 내조와 부부지간의 환상적 궁합을 이뤄내는 노부나가의 와이프 '노히메'라는 캐릭터가 차라리 멋져 보이고...
그리고, 어느 시대나 존재하는 완전 미친년, 세나(=츠키야마)의 활약(?)을 보며... 어느 집이든 여자가 잘 들어와야 가문이 번창한다,는 말을 새삼 실감했다. 특히 이런 미친 여자가 도쿠가와의 와이프라는 것은...인생의 아이러니고 모순이고, 기가막힌 반전인 듯 싶다.
또.. 나는 무엇보다도,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도쿠가와와 노부나가의 많은 가신들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다. 그들의 '묻지마'식 충성이...도쿠가와를 만들었고, 노부나가를 만들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그들의 우직한 신뢰와 눈물은 이 책의 드러나지 않는 다른 묘미일 것 같다.
9권.일단, 발단은 노부나가 였지만...도쿠가와의 선택과...그것을 처음 제안한 노부나가. " 대의를 위해서라면 ~~ 할 수 있을까? " 라는 자문을 해보면서, 너무 작은 내 자신이 부끄러워지기도 했다.
내가 이 세트를 선택한 이유는 딱 하나. 어렴풋이라도 인생을 느껴보고 싶었는데... 도입부의 '덧없다'가 어떻게 그려질지 내심 궁금해진다.
Season2.(승자와 패자:10~20권)
나에게는 노부나가의 영향이 무척 컸었나보다. 막상 2부가 시작되고, 내가 너무 좋아했던 노부나가가 더이상 나오지 않으니, 사실 읽는 순간 재미가 조금 떨어지기도 했다.
대신에, 노부나가를 대신에 세상을 지배하게 되는 히데요시가 슬금 슬금 그 영역을 넓히고 지위를 올려 칸파쿠의 자리까지 올라가는 모습을 보면서...나는 엉뚱하게도 '최진실'이 생각이 났다. 노부나가도 이에야스도 어떻게 보면, 뼈대있는 집 자식이었음에 반해 히데요시는 출신에 상관없이 얼마나 노력하고 또 노력했었는가.
그렇다고 그가 그다지 매력적이지는 않고... 죽음의 순간 앞에서, 드라마틱하다기 보다는 '정말 사는게 뭔가?'라고 물어보고 싶을 정도로 칸파쿠의 지위에 어울리지 않게 어린 아들의 아비로서의 걱정과 근심으로 일관할 수 밖에 없는 '인간'적인 면이 쓸쓸하게 느껴졌다.
1부에서도 얼핏 보이지만, 2부 전반에보면...이에야스를 만든건 이에야스가 아니라, 그의 가신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현실이든 소설이든, 나는 묵묵히 미련하게 충성을 다하고 신뢰를 주는 사람을 좋아한다.그런 사람이 곁에 있다면, 일본이 아니라, 어디 강원도 산골에서 감자를 캐먹고 살아도 아무런 욕심도 근심도 없을 것이다.
season2를 읽으면서, 아쉽고 슬프게도 '무소유'의 법정스님이 타계하셨다. 그 '무소유'란 제목만 들어도 clean 혹은 white 해져야겠다,는 생각이 들곤 했는데...궁극적으로 평화의 시대,를 그렸다는 이 책의 내용은 죄다 빼앗고 싸우기 위한 내용들만 태반이라서...살짝 책을 놓고 싶어지기도 했다.
거기에다 그 뿐일까. 나는 더불어 지금 '행복의 조건'이라는 책을 읽고 있는데..책의 어디에도,(다 읽지는 않았지만, 앞으로도..)땅따먹기하면서 난세를 극복해 나간 사람이 행복했다는 이야기는 없다.
<덧붙여> 2부를 읽고 나서, 다른 사람들의 리뷰를 보니 이 책의 내용은 리더십, 지략, 처세 등등 담고 있는 것이 많아서, 무슨 무슨 CEO도 읽고, 정계에서도 읽고 어쩌구 저쩌구 하는 글들을 보았다. 지나가던 개도 웃고 소도 웃겠다. 이 책은 '인생이 얼마나 덧없는 것'인지 32권에 걸쳐서 풀쓰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대책없는 허무주의가 아니라, '덧없음'을 알고 나서 내 삶의 1분 1초에 대한 attitude를 바꿔나가기 위하여 이런 책들이 읽혀야 하지 않나, 하는 뭐..단순한 생각. 아니면 말고.
Season3.(천하 통일:21~32권)
이에야스가 좀 빨리 죽었으면...하는 마음으로 읽었다. 그만큼, 1~2부에 비해서 긴장감이 살짝 떨어졌다는 뜻이다.
3부에는 세키카하라 전투, 오사카 전투, 이에야스의 사망 사건이 주축을 이룬다. 이 세 가지 사건을 중심으로 이런 저런 인간군상들의 처세나 마음가짐, 행동들을 보면서..혀를 차게 되기도 하고, 다소 난감해 하기도 한다.
오사카 전투후에 히데요리와 요도부인이 죽을 때, 조금 어처구니가 없었다. 당사자와는 상관없는 '오해' 그리고 측근들이 만들어 내는 말들에 의해서 사건은 어떻게 결론내어질 수 있는지 보여주는 기가막힌 사건이겠다.
오사카 전투 후에는 이에야스가 죽기 전에 이런 저런 것들을 마무리하는 작업이 나오는데, 나는 여기서 조금 빈정이 상했다. 한 마디로 너무 미화되었다는 것이다. 도저히 공감할 수 없는 교과서적인 이야기가 다분히 나오니..은근 거부감이 들었다.
나는 3부를 읽으면서도 종종 이름이라도 언급되는 '노부나가'에 많은 애정을 갖었었다. 그만큼 이에야스는..뭐랄까 노부나가와 히데요시가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 들고 덤벼든 꼴 밖에 되지 않는 것 같은데, 왜 이 세트의 제목은 도쿠가와 이에야스,일까--;;
우울증과 미친년 본좌의 요도부인과 그녀의 손아귀에서 놀아난 히데요리, 신불의 뜻(?)이라는 미명하에 지 자식들한테 그다지 좋은 아버지는 아니였던것 같은 이에야스, 그리고 그들을 주축으로 차라리 더 현실적이였던 주변 인물들.
1,2부에 비해서 다소 약발이 떨어지지만, 어쨌든...결론적으로 3부까지 읽고 나니 이런 저런 정리할 수 없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그랬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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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장마의 영향으로 올 여름은 유난히 후덥지근한 날씨 탓에, 더위를 타는 사람들에게는 고역스런 여름이 될 것이라 기상청은 전한다. 지난 7월 1일부터는 대단위 사업장을 중심으로 새로운 생활의 패턴을 불러올 주5일제근무의 시행에 들어갔고 20여일 후부터는 본격적인 여름휴가 시즌이다. 여름휴가를 맞아 어디를 갈까 하는 고민을 지금쯤은 하고 있을 독자들이 많이 있을 줄 안다. 휴가의 행선지를 정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필자의 생각으로는, 이번 여름에는 나름대로 좋아하는 분야의 독서여행도 함께 계획하면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올 여름에 독서여행을 고려하고 있다면, 그동안 시간여유의 부족과 여러 이유들로 접하지 못했던 대하소설을 읽어보시라 권하고 싶다. 마침 브라운관에서는 대하소설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가 방영되고 있기도 하고 제작을 준비 중인 ‘토지’의 서희 역에 캐스팅된 탤런트 김현주의 회당 출연료가 일천만원임과 50부작임을 연계하여, 그녀의 직전 출연작 ‘미스 김 10억 벌기’를 패러디 한 ‘김현주의 5억벌기’라는 기사제목도 눈에 띤다. 또한 각 대형서점과 출판사들은 대하소설 할인판매에 나서고 있어 독자들의 부담도 훨씬 덜할 것이다. 굳이 문학사회학 혹은 소설사회학의 입장에서 벗어나 소설은 픽션에 불과할 뿐이라 정의한다 하여도, 한 시대 또는 한 시기의 역사를 통시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대하소설은 그 자체가 ‘문제적’이다. 여기에서 문제적이란 대하소설이 그리고 있는 당대의 사회상이나 그 안의 인물들이 보여주는 활약상은, 곧바로 그 시대의 한 전형인 동시에 당대를 이해하는데 가장 중요한 사건들의 기록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그 안의 주인공은 ‘문제적 개인’이며 그 문제적 개인이 부딪치고 갈등하며 스스로의 삶에 영향을 받는 모든 사건들은 ‘문제적 사건’으로서, 당대를 한마디로 표현해주는 핵심 키워드다. 대하소설을 읽는 첫 번째의 즐거움은 바로 이런 사실에서 연유한다. 그 문제적 소설 중 우리의 것을 우선 소개하자면, ‘불새’가 끝난 월화요일, 시청자들을 sbs채널에 고정시킬 황석영의 <<장길산/전12권/창비 간>>이 있다. 1984년 출간되어 꾸준한 사랑을 받아온 장길산은 작가 자신이 결말 부분의 삽화 등을 손질하여 개정판을 출간하였다. 길산과 묘옥의 애틋한 사랑, 탐관오리의 전횡과 수탈에 저항하는 민초들의 힘겨운 애환과 눈물, 한 맺힌 민중들의 새로운 세상을 향한 절절한 염원, 수많은 인걸들의 눈부신 활약상과 갈등 등이 박진감 있게 그려진 장길산은 어찌 보면 한국판 수호전인 것 같다. 독자 대부분이 알고 있듯이, 한국 문단의 대표적인 현실참여 작가인 황석영의 시선으로 그려진 조선 사회의 부패상과 민초들의 저항과 삶은 오락적인 요소만을 강조하는 드라마의 감동과 견줄 바 못된다. 새삼 강조하지만 글로 쓰여진 작품은 글로 읽어야 한다. 또 다른 방송국에서 제작준비 중인 박경리의 대표작 <<토지/전21권/나남 간>>는 이미 한 번 대하드라마로 제작된 바 있고 그 드라마에서 서희 역을 맡았던 최수지는 일약 브라운관의 히로인으로 급부상한 적이 있다. 경남 하동군 평사리를 무대로 5대째 대지주로 군림하고 있는 최참판댁과 그 소작인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 토지는, 1860년대부터 시작된 동학운동, 개항과 외세(특히 일본)의 개입과 강화, 갑오개혁 등을 다루면서 구한말에서 식민지 시대까지의 구체적인 전사를 보여준다. 동학장군 김개주와 윤씨부인의 얽힌 비밀이 차차 풀려나가고, 신분문제와 이기적인 욕망에 사로잡힌 귀녀와 평산 등이 최치수를 살해하는 대목에서는, 우리의 민중들 역시 새로운 질서를 향한 자각이 행해지고 있음을 알게 해준다. 신분을 뛰어넘은 서희와 길상의 혼인은 스탕달의 ‘적과 흑’의 줄리앙 소렐만이 문제적 주인공이 아님을 깨닫게 해준다. 다음으로 권하고 싶은 책은 김성종의 <<여명의 눈동자/남도 간>>이다. 필자가 이 책을 우연히 시집간 누님의 집에서 발견하여 읽었을 때의 기억을 떠올리면, 마치 신들린 듯이 읽었다고 밖에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하루에 거의 두 권씩을 읽으면서도 좀처럼 책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추리작가로 잘 알려진 김성종이 일반 소설의 작가임을, 그것도 문학적 역량이 탁월한 작가임을 알게 해준 소설이다. 모래시계의 김종학/송지나 콤비를 세인의 뇌리에 각인시킨 동명의 드라마 역시 제작되어, 단지 얼굴만 예쁜 탤런트 채시라에서 연기자 채시라로, 청춘드라마의 히어로에 불과했던 최재성을 또한 연기자로, 부담 없어 좋았던 무용 전공의 박상원을 진정한 연기자로 출세시킨 드라마 역시 여명의 눈동자였다. 일제치하에서부터 해방과 6.25로 이어지는 소설공간에서 주인공 최대치, 윤여옥, 장하림 이 세 주인공이 벌이는 사랑과 배신, 극한적인 삶에서의 살아남기, 적과 백의 양극에서 벌이는 처절한 혈투. 특히나 주인공 최대치가 학도병으로 끌려가서 남방전선(인도차이나 일대)의 정글에서 동료의 살육과 식인으로 버티며 탈출하는 과정에서는 섬뜩한 공포와 함께 생존을 향한 인간의 의지가 얼마나 강하고 숭고한지를 저절로 실감할 수가 있다. 불행한 역사의 뒤안길에서, 이데올로기라는 아편에 중독 되어, 한 민족이 적과 아로 구분되어야 하는 숙명과도 같은 불행을 작가는 웅대한 필치로 그려낸다. 그 불행한 역사의 현장에서 만나는 여옥, 읽는 이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지 않을 도리가 없다. 이미 드라마로 제작되어 그것을 다시 읽기가 내키지 않은 독자들에게는 올 여름만큼은 조정래와 만나보기를 간절히 권한다. 조정래의 근현대사 시리즈 역작 <<태백산맥/전10권/해냄>>, <<아리랑/전12권/해냄>>, <<한강/전10권/해냄>> 이 중 어떤 것을 골라 읽어도 좋다. 임권택의 노련한 연출로 영화화된 ‘태백산맥’이 식상하다면 ‘아리랑’을 먼저 읽고 ‘한강’을 읽는 것이 무난하리라. 태백산맥에서부터 한강까지, 작가 자신이 ‘글의 감옥’에 감금되어 살았다고 표현할 만큼, 우리의 부끄럽고 불행한 근현대사의 굴곡을 담고 있는 역작 중의 역작이다. 작가가 자신의 위 세 작품을 아들과 며느리에게 필사시킨 일화는 지금도 인구에 회자된다. 아리랑의 주무대는 소설에서 ‘징게 맹게 너른들’로 표현되는 전북의 김제평야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지평선을 볼 수 있는 곡창지대, 그곳이 어찌 제국침략 일본의 수탈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겠는가. 아리랑은 바로 그런 일본의 침탈로 파괴되어가는 우리의 농촌공동체와 민초들의 망가진 삶, 만주로 북간도로 유랑민처럼 떠돌지 않을 수 없었던 우리의 슬픈 식민지역사를 장대한 스케일로 그려내고 있고 소설공간을 미대륙까지 확장시키며 식민지 지식인의 명암을 보여주기도 한다. 아리랑은 이제 식민지 백성의 슬픈 넋이 떠돌고 있는 만주에서 연해주에서 중경에서 아메리카에서 불리워지고 우리의 눈물을 자아낸다. 한강은 가장 가깝게 우리의 현대사를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는 작품이다. 유신과 부마항쟁 광주민주화 운동 등 해방에서 1980년 초입까지의 파란만장한 격동의 현대사를 그리고 있는 이 작품을 읽다보면 여러분은 어느 곳에선가 불현듯 당시의 자신과 만날지도 모른다. 또한 소설공간의 어디에선가는 불쑥 소식 궁금한 친구의 모습과 조우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헤지고 낡은 자신의 일기장을 우연히 발견하여 긴 상념에 잠길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 한창 세계의 시선이 쏠리고 있는 중동의 사막까지 소설적 공간은 넓어져 있다. 월북한 아버지를 둔 죄로 원죄와도 같은 출신성분의 덫에 걸려 일생을 살아야 하는 주인공 유일민. 그 불우한 시대에 반항하지 않고는 살 수 없는 뜨거운 신념의 소유자, 유일민의 동생 유일표. 시대와 권력을 따라 기민하게 대응하며 늘 권력의 언저리에서 더러운 욕망의 노예가 되는 국회의원 강기수. 그의 돈으로 공부하여 출세의 욕망에만 사로잡힌 유일민의 선배이며 빗나간 영재들인 이규백과 김선오. 대표적인 정경유착형 악덕기업인 아버지와는 다르게 일방적이고 무조건 적으로 일민을 연모하며 그를 위해 헌신하는 불행한 운명의 여인 임채옥 등. 소설 한강은 그 소설의 무대가 바로 우리가 살아온 혹은 우리의 선배세대가 방금 지나온 우리의 현대이기에 그 소설읽기의 매혹에 매료당할 수밖에 없는 장편이다. 그 곳에 있는 ‘나’를 만나러 찾아가는 독서여행, 벌써 근사하지 않은가. 우리의 소설을 읽으며 필자가 늘 아쉽게 생각하는 것 중의 하나가 우리에게는 왜 삼국지 같은 소설이 없을까 하는 것이다. 즉 한 시기를 통시적이고 웅대한 스케일로 그려내는 이야기 역사책 같은 소설, 그것만으로 우리는 우리의 역사를 재미나게 들여다볼 수 있지 않은가. 중국의 춘추전국시대를 다루고 있는 대하장편 <<동주열국지/풍몽룡 저/김구용 역/솔 간>>를 소개하는 이유다. 열국지가 다루고 있는 소설의 공간은 기원전 8세기 주의 동천 직전부터 진의 시황이 천하를 통일하는 기원전 3세기까지, 장장 550년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역자가 번역에만 8년의 세월을 소진하였다니 그것만으로도 우리가 이 책을 읽어야할 당위는 성립되는 것이 아닌가 한다. 이 소설적 시간인 550년은 천명을 받았다 여겨지던 주왕실이 동천(東遷)과 함께 신성한 권위가 무너지면서 제후들이 자신의 영지와 양민을 기반으로 각기 천하통일의 웅지를 드러내는 시기다. 그러나 이런 권력의 부침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열국지가 다루고 있는 550년의 역사가 지금의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바로 그 시기가 백가쟁명 제자백가로 대표되는 중국문화의 황금 시기라는 데에 있다. 굳이 법가며 공자며 노,장자를 만나기 위해 애쓸 필요가 무에 있을까. 그들이 이룬 황금의 문화적 유산 속으로 이 여름에 들어가 보는 것도 의미 있는 독서가 될 것이다. 중국에 열국지 삼국지 등이 있다면, 일본에는 ‘대망’이 있다. 필자는 이 책을 고교졸업쯤에서 대학신입생 시절의 시기에 걸쳐 읽었다. 당시 친구집의 형님 서가에 꽂혀있었던 그 책은 권당 무려 400여 쪽의 분량과 이단 인쇄로 판형이 짜여진 것이었다. 지금 생각하여도 스스로가 대견스럽다. 아마도 그 ‘대망’속에 그처럼 빠져들 수 있었던 것은 일본 통일의 초석을 다진 바람 같은 풍운아 오다 노부나가에 대한 나의 흠모와 열애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읽었던 책이 존재할까 의심이 가지만, 인터넷에 확인해본 결과, 중앙출판사의 20권짜리 <<대망/야마오까 소하찌>>가 출간되어 있음을 알았고, 필자의 기억으로는 이 책 말고도 다른 출판사의 것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물론 대망이 오다 노부나가를 중심으로 서술된 역사소설은 아니다. 주인공은 오늘날 일본의 초석을 다진 도꾸가와 이에야스다. 힘없는 작은 성의 성주의 아들로 태어나 음모와 정략의 틈바구니에서, 서슬 퍼런 전국의 무장들 사이에서 볼모(인질)의 고난을 겪으며, 마침내 통일 일본의 패주가 되는 인내의 대명사 덕천가강. 그는 노부나가 사후, 일개 몸종 출신의 토요토미 히데요시와의 일전을 결할 충분한 세력을 가지고 있었고 또한 그의 무장들은 건곤일척의 주전론으로 전의를 불태웠다. 그러나 그는 그 몸종 출신의 원숭이 인간 풍신수길에게 무릎을 꿇는다. 모처럼 일기시작한 통일의 기운에 찬물을 끼얹고 전국을 다시 분열과 대립의 수렁으로 몰아넣을 수는 없다는 것이 이유의 전부였다. 아! 이 얼마나 위대한 인간의 결단인가. 헤아릴 수 없는 고난과 사생의 고비를 넘어 이루려는 큰 뜻이 바로 목전에 있건만, 그것을 이룰 충분한 힘도 있었건만 그는 무릎을 꿇은 것이다. 그 위대한 결단이 260년 에도막부의 초석이 되었고 에도막부는 메이지 유신으로 대표되는 일본의 근대화와 개화의 주춧돌이 아니었던가. 우리에게서는 왜 그런 지도자를 찾기 힘든 것인가. 필자는 대망을 읽으며 덕천가강에게도 매료 되었지만, 바람처럼 일어나 전국을 질타하며 통일의 회오리바람을 일으키다 죽어간 진정한 사내, 시대의 풍운아 오다 노부나가에게 흠뻑 빠졌었다. 여러분도 이번 여름에는 저와 같이 바로 자신의 영혼을 바람처럼 뒤흔들며 다가서는 누군가의 포로가 되어 보시기를... 이 여름에 만난 대하소설 속에서 여러분의 자화상을, 혹은 여러분의 아비와 어미, 할애비와 할머니의 이야기에 밤새는 줄 모르는 삼매경에 빠져보시기를 기원한다./4 jul 2004. 동주 열국지 (전12권) |
| 고등학교때 윤리 선생님께서 추천해주셨던 책이다. 삼국지보다도 장대한 스케일을 가지고 있다며 읽어볼 것을 권하셨던 책이다. 일단 권수로 엄청나다 --; 때문에 시간도 무척 많이 걸린다는 점도 간과할수 없다. 대망20권으로 되어있던 시리즈가 이렇게 도쿠가와이에야스 32권으로 새로 나오는데 대학교 도서관에 바로바로 나오는 것이었다. 대망은 정말 많은 사람이 보았는지 더럽고 너덜너덜했으므로 나는 당연히 이 32권의 신판에 도전했다. 결과, 방학 동안 이 책에만 매달린 결과 방학 2달 동안 10여권밖에 읽지 못했다는 것. 게다가 나중에는 지겹기까지 했다. 인물들의 성격도 왠지 삼국지를 흉내낸 듯한 기분이 들었고 삼국지처럼 장수들의 무력이나 지력 등이 별로 부각되지 않는 등 흥미로운 요소가 덜했다. 특히 오다 노부나가가 부하의 배신으로 죽는 장면. 치명적 부상을 입으면서도 혼자서 수십, 수백명을 죽이는 모습이란. 그 장면에서 내가 현실과 너무 괴리되었다고, 재미없게 느낀 것은 이미 질려가고 있었기 때문일까. 정말 스케일은 웅장하다고 하고 싶다. 시간도 잘 간다. 잘 가지 않겠는가 한두권도 아닌데. 사람들은 다들 좋은 평가를 하지만 -명성이나 그 방대한 분량의 영향 대문인지 몰라도- 난 왠지 회의가 들어서 중간에 포기한 소설이다. 하지만 대작인 것은 분명하다. |
| 누렇게 바래고 때로는 책벌레가 나오기도 하던 세로로 된 '대망' 권수도 무지하게 많았고 세로에다 활자 자체도 정말 작아서 읽기 어려웠지만 왜 그렇게도 손에서 놓기가 어려웠던지.. 1년에도 몇차례씩 전권을 완독하던 나에게 새롭게 나온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정말 반가운 소식이었다. 가격도 만만치 않지만 그래도 가로로 눈 아프지 않게 읽을 수 있다는 것만도 어디인가..게다가 번역도 새로 했다고 하는데.. 인생을 살아가면서 삼국지는 꼭 읽어야 한다고 하는데 난 거기에다 이 책도 추가하고싶다. 삼국지처럼 과장된 면도 거의 없고 일본의 전국시대 속에서 살다간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란 인물들이 그 당시 시대 상황과 주변 인물들과 엮어 흥미진진하게 전개된다. 성격과 환경이 판이하게 다른 세사람을 비교해서 읽는 재미도 쏠쏠하고 읽는 사람의 연령과 성격에 따라 좋아하게 될 인물도 아마 다르게 나타날 것이다. 아마 젊은 사람일수록 오다 노부나가의 매력에 빠져들 것이고 연령이 높아질 수록 도쿠가야 이에야스의 삶과 철학에 동감을 할 것이다. 작품에 드러난 패권주의 의식이라든가, 지나칠 정도로 작가가 개입하여 이에야스를 성인처럼 부각시켜려 한 점은 다소 거슬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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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시대를 종결하고 에도막부시대를 연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일생을 다룬 역사 소설이다.
완전한 사실을 다룬 역사서가 아닌 소설이라는 점과 이 소설이 완성된 이후 발견된 추가 사료들로 인하여 실제 역사적 사실과 차이 있는 부분이 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실제보다 미화한 점도 있고...
하지만, 일본 전국시대를 묘사한 소설 중 이 작품보다 더 오랜 기간을 상세하게 다룬 소설은 없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부모가 정략 결혼하는 시점인 1542년부터 1616년 사망시까지 74년간의 긴 세월을 다룬다.
정식 판권 계약과 전국시대 관련된 여러 자료들을 부록으로 수록한 점도 마음에 든다. 일본 전국시대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줄 것이라 생각한다.
일본 역사에 관심이 있다면 반드시 읽어야 하는 소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