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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담 우린 어떻게 살아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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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시절 하이텔 재즈동호회의 juju님에게 추천받았으나 당시 번역본이 품절이었던 탓에 읽지 못하고 있던걸 최근에야 다시 번역되어 출판되어 읽게 되었다. 물론 역자이신 서울대 영문과 교수 김성곤선생님께서 "사랑의 오류"라는 책에서 소개하신 대표적인 3편을 예전에 읽은 바 있었으나, 이번 기회를 통해 책 전체를 읽고나니 그 느낌이 새롭기만 하다. ("사랑의 오류"에 소개된 3편
"그렇담 우린 어떻게 살아야 할까?" 내용보기
대학시절 하이텔 재즈동호회의 juju님에게 추천받았으나 당시 번역본이 품절이었던 탓에 읽지 못하고 있던걸 최근에야 다시 번역되어 출판되어 읽게 되었다. 물론 역자이신 서울대 영문과 교수 김성곤선생님께서 "사랑의 오류"라는 책에서 소개하신 대표적인 3편을 예전에 읽은 바 있었으나, 이번 기회를 통해 책 전체를 읽고나니 그 느낌이 새롭기만 하다. ("사랑의 오류"에 소개된 3편은 "쿨 에이드 중독자", "미국의 송어낚시 테러리스트", "클리블랜드 페선장"임.) 미국이라고 하면 우리에게 무척 익숙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실상 나에겐 그 지명, 인명을 위시한 책속에 나오는 일상의 많은 것들이 한낯 문자로만 인식되어 온전히 이해하고 느끼며 읽어내기가 쉽지 않았다. 이렇게 안개속을 걷듯 힘겨웠던 책읽기에 도움을 준것은 바로 각 장의 뒤쪽에 달아놓은 김성곤선생님의 해설. 대개의 책에서 만나는 해설이나 각주는 내 책읽기에 피할수 없는 덫과 같은 틀을 던져놓은 것같아 피하고 싶은 대상이었지만 이번엔 훌륭한 가이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해준 것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여기서 권말의 김성곤 선생님의 해설중 일부를 인용해보기로 한다. 이 소설의 표지는 샌프란시스코의 위싱턴 광장에 서 있는 벤자민 프랭클린의 동상을 배경으로 브라우티건과 한 여자가 시니컬한 미소를 지으며 찍은 사진으로 되어있다. 저자가 표지에 나타난 이유는 첫 페이지를 펼쳐보면 드러난다. 그렇다면 이 책의 표지는 자신의 유명한 저서인 "플랭클린서전"에서 성실, 근면, 검소하면 누구나 잘 살 수 있다고 주장한 벤자민 프랭클린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자 항의가 된다. 왜나하면 약 200여년 전 아메리칸 드림의 가능성을 자신있게 주장했던 프랭클린의 동상이 지금 바라보고 있는 것은 성실, 근면, 검소해도 결코 잘살 수 없는 가난한 사람들이 자신의 발치에 앉아 교회의 무료급식을 기다리고 있는 광격이기 때문이다. 이들 역시 피츠제랄드의 "위대한 개츠비"처럼 프랭클린의 신화 -곧 공식적인 아메리칸 드림-에 의해 배반당한 사람들이다. 이 소설을 읽으며 생각할 수 있었던 것은 자연파괴와 함께 우리 가슴속의 목가적 꿈도 파괴되고 있었다는 사실에 대한 재인식이었다. 주5일제니 뭐니해서 자연을 찾아 다니고, 그것도 모자라 해외로 발길을 돌리고 있는 우리지만 실상 우린 정말 사랑스런 자연을 찾아가고 있었던 걸까? 혹시 문명에 지쳐 반발로 가게된 길을 아름답게 꾸민 또 다른 형식의 자연파괴는 아니었을까? 자연을 사랑하기도 말같이 쉽지는 않은 것같다는 생각이 불쑥 든다. 최근 나는 나 자신을 "로스트 제너레이션"이라고 생각하곤 하며 혼란러워했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실상을 몸소 경험하며 느끼게 되는 좌절과 상실속에서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하는지 묻곤 했는데... 이 소설을 빌어 리처드 브라우티건도 그런 고민을 토로하고 있는 것같아 우습게도 가슴 한 켠이 가벼워지는 듯 했다. 아직도 그 해답은 구하지 못했는데도 말이다. "왜 미국 젊은이들은 이 책을 경전처럼 옆구리에 끼고 다녔을까? 60년대 대학생들을 매료시킨 리처드 브라우티건의 대표적 생태소설"이라는 광고 문구에서 처럼 그들은 그 해답을 구했을까 궁금해지기만 한다.

[인상깊은구절]
다음날 그는 마켓 가에 있는 고급 문구점에 가서 황금 펜촉이 달린 60달러짤리 만년필을 샀다. 그는 내게 그걸 보여주며 말했다. "이걸로 써, 하지만 이건 세게 눌러쓰면 안 돼. 황금펜촉은 예민해서 말야. 얼마 지나면 이건 쓰는 사람의 성격을 닮게 돼. 다른 사람은 쓸 수가 없게 되는 거지. 이 펜은 쓰는 사람의 그림자와도 같아. 이 펜만 있으면 돼. 하지만 조심해야 해."
YES마니아 : 플래티넘 c*****g 2002.12.08.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미국식 코드의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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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그대로이다. 미국식 코드의 한계라고 할까. 미국인이 극찬할 수는 있지만, 미국을 잘 모르는 독자에게는 그 코드 하나하나가 낯설 뿐이다. 루이지애나 주의 느낌을 모르는 이에게, 40년대 코메디영화 주인공의 느낌이, 번역서가 아닌 직접 영어로 읽는 이들에게처럼 확실한 의미와 느낌을 가져다주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러한 모든 단점을 뛰어넘더라도 이 책은 분명 소중하다. 흔하
"미국식 코드의 한계" 내용보기
제목 그대로이다. 미국식 코드의 한계라고 할까. 미국인이 극찬할 수는 있지만, 미국을 잘 모르는 독자에게는 그 코드 하나하나가 낯설 뿐이다. 루이지애나 주의 느낌을 모르는 이에게, 40년대 코메디영화 주인공의 느낌이, 번역서가 아닌 직접 영어로 읽는 이들에게처럼 확실한 의미와 느낌을 가져다주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러한 모든 단점을 뛰어넘더라도 이 책은 분명 소중하다. 흔하지 않은 소설을 찾아 나서는 이들에게는 강력하게 권할만 하다. 하지만 정말로 아쉬운 것은 이 책을 읽으면서 때때로 과잉친절의 각주가 거슬렸다. 그 지명이나 사람이 어떠하다는 것만을 알려주는 것을 넘어 소설 속에서 어떠한 의미로까지 쓰이고 있다는 것을 일일이 읽기는 매우 불편했다. 마치 고등학교 자습서를 읽는 기분? 나중에는 각주의 한 두줄만 읽고 나머지 세세한 내용은 읽지 않았다. 각주의 세세한 설명이 오히려 몰입을 방해할 정도였으니. 그러나 번역도 깔끔하고, 내용도 좋다. 내용을 일일이 밝히는 것은 책을 읽으려는 이들에게 그다지 도움이 될 것같지는 않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현대소설이 모두 거기에서 거기같다는 이들에게는 새로운 자극이 될 것이라는 것은 자명하다.
YES마니아 : 로얄 v***a 2004.01.1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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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송어낚시/리처드 브라우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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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려드는 일감에다가, 하필이면 머리가 복잡해지는 사회과학 서적 등을 많이 읽다보니 책 읽는 즐거움을 한동안 읽어버렸었고, 자연스레 리뷰도 쓰지 않게 되었다. 한번 하락세에 접어들고 나니 재미나다고 하는 어지간한 책을 읽어도 한창의 흥은 느껴지지 않았고 지지부진해온 것이 지금까지이다. 그러던 중에 손에 쥐게 된 책이 리처드 브라우티건의 <미국의 송어낚시>이다. 이전
"미국의 송어낚시/리처드 브라우티건" 내용보기

밀려드는 일감에다가, 하필이면 머리가 복잡해지는 사회과학 서적 등을 많이 읽다보니 책 읽는 즐거움을 한동안 읽어버렸었고, 자연스레 리뷰도 쓰지 않게 되었다. 한번 하락세에 접어들고 나니 재미나다고 하는 어지간한 책을 읽어도 한창의 흥은 느껴지지 않았고 지지부진해온 것이 지금까지이다. 그러던 중에 손에 쥐게 된 책이 리처드 브라우티건의 <미국의 송어낚시>이다. 이전부터 소로우의 뒤를 잇는 자연주의, 생태주의 작가의 책으로 들은 적이 있었고, 언젠가 한번쯤 읽어보자고 했던 기억도 나지만 지금까지 그러지 못하다가 결국 손에 들게 된 것은 우습게도 책 표지 때문이었다. 다소 바랜 녹색의 책 표지는 심신이 고달픈 나의 눈을 끌었고, 그 다음에서야 책의 제목이 눈에 들어왔던 것이다.

서설이 길었지만, 실제로 그렇게 재미난 책은 아니다. 산업화, 기계화를 통해 성취된 미국의 아메리칸 드림이 실제로는 인간을, 자연을 얼마나 피폐시키고 있는가라는 주제를 픽션과 논픽션이 반반 정도 섞인 일련의 에세이를 통해  비판하고 있는 저자의 유머러스한 문장들은 그 맛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결정적으로 미국인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코드와 배경지식을 필요로 하고 있는 이유로 태평양 건너의 우리에게는 생각만큼 그리 통절하게 다가오지 못하는 것이다. 옮긴이의 각주 해설을 보고서 그 숨은 의미를 파악하는 것도 매번 반복하게 되면 그리 즐거운 경험은 아니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토요일 오후 쿠션에 기대어 묽게 탄 커피 한 잔을 곁에 두고 천천히 읽어내려가기에 그리 나쁘지 않았다. 다소 무거운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쉬이 읽어내려 갈 수 있는 것은 짧게 짧게 문장을 구사하면서도 그 묘사가 선명하게 다가오는 저자의 공력 때문일 것이다.

YES마니아 : 로얄 s******i 2011.09.18.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