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찍이 아마도 역사상 가장 유명한 신동으로 이름을 날렸고, 아직까지도 연주회를 열기만 하면 가장 빨리 완전 매진을 시키는 연주자로도 이름이 높지만, 사실 키신으로서 그러한 재능과 명성에 걸맞는 음반들이 무엇이냐고 한다면 저로서는 쉽게 떠오르지 않습니다. 물론 일반적인 기준으로 본다면 매우 훌륭한 음반들이 이미 여럿 있기는 했지만, 제 개인적인 느낌으로는 키신의 재능과 명성에 걸맞는 '압도적인' 수준의 음반은 쉽게 찾기 어렵지 않나 싶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제 주관적인 판단으로는, 키신의 이름을 빛내주었던 몇몇 음반들은 그 레파토리가 매우 한정되어 있는 편입니다. 즉, 키신의 경우 실제 연주회장에서와는 달리 레코딩에 있어서는 대부분 쇼팽과 슈만, 리스트 등 낭만주의 작곡가의 곡들에 한정되어 있는 느낌이고, 특히 이들 음반중에서 아주 훌륭하다고 자신있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들은 거의 쇼팽뿐이라고 할 수 있을 지경입니다.(카네기홀에서 녹음된 유명한 키신의 쇼팽 연주집 1집은 정말 뛰어납니다. 이 쇼팽 음반은 본 음반과 더불어 제가 제일 좋아하는 키신의 음반입니다.)
따라서 그 재능과 명성에도 불구하고 어쩐지 레코딩에 있어서는 아쉬움이 적지 않았던 것이 사실인데, 이제 이 음반으로 인하여 그런 아쉬움을 완전히 해소시켜 준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선 첫곡인 베토벤 소나타 14번의 경우, 개인적으로 제가 들어본 여러 연주들 중에서 가장 뛰어난 연주라고 확신합니다. 전 악장을 통하여 한순간도 주저함이 없이 어느 피아니스트보다 자연스러우면서도 유창한 흐름을 만들어 내고 있는데, 바로 이러한 자연스러움에서 제가 이제까지 제일 좋아했던 길렐스의 연주를 뛰어 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다른 피아니스트들의 연주에서 흔히 찾아 볼 수 있는 약간의 상투적인 진부함-이러한 약점을 극복했다는 점에서 그동안 길렐스를 좋아했었습니다만-을 뛰어 넘어 개성적인 연주를 들려 주고 있다는 점에서도 이 연주는 매우 호감이 가는 것입니다. 또한 브람스의 파가니니 변주곡에 있어서도 그야말로 엄청난 연주를 들려 주고 있습니다. 이제까지 미켈란젤리, 카첸, 리히테르 등의 어마어마한 명연들을 들어 보았지만, 키신의 이 연주만큼 압도적인 연주는 처음이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키신은 그야말로 완벽한 기교와 전혀 예측할 수 없을 정도의 개성으로 이 난곡을 연주해내고 있습니다. 단 한순간도 기교적으로 흔들림이 없이 순간순간 엄청난 빠른 템포와 자유분방함으로 이 곡의 매력을 남김없이 끌어 내고 있는데, 이 한 곡만으로도 이 음반은 충분히 가치가 있을 것 같습니다. 게다가, 지나친 잔향으로 인한 피아노 음색의 왜곡 등 이제까지 키신의 음반에서 간혹 발견되었던 음질상의 문제도 전혀 없어서, 근래 들은 음반들 중 피아노 음색이 가장 적절하게 녹음되어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이러한 녹음상의 장점도 이 음반의 커다란 매력 중에 하나라고 생각됩니다.
결론적으로 키신 최고의 음반중에 하나이며, 오랫동안 두고두고 들을 만한 훌륭한 연주임이 틀림없다고 생각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