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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말한다..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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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에 집중하는 삶에 대해 진지하게 알고 싶다면 권하고 싶은 책이다. 극적 감동 실화는 들어있지 않다. 다만, 담담히 풀고있는 면면들이 내가 일상 생활에서 느껴왔던것들이 많아서 더 그런 생각이 들었던거같다. 스스로가 짊어진 삶의 무게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믿는 이에게 인생의 시련을 어떻게 극복하냐고 묻는다면, 대부분 기도를 한다거나, 믿음을 강조한다. 믿음이 없는이들에게는 무슨 뜬 구름잡는 소리로 들릴법한 말일 것이다. 세상에 집중하느냐, 하나님께 집중하느냐는 자신의 판단이라고 여겼던거 같다. 나 자신이 중심이다 보면 하나님이 뒷전이 되는경우가 많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인식하지 못하면서 그렇게 되어버린다. 되돌아 생각해보면 세상에 빠져있는 동안은 자신이 그 속에서 무언가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여긴다.또한 세상 가운데 있는것을 자연스러워하며 그것에 안도감을 느끼기도 한다. 정신없이 시간이 지나가 버린 후,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자신에게 믿음이 악세사리처럼 보여지는 것에 익숙해져 버린게 아닌가 깜짝놀라게 된다. 믿음은 나무가 크는것처럼 자라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시간을 보내왔다고 생각하지만, 교회를 다닌 기간 만큼도 믿음이 자신에게 차여있지 않다. 왜 그럴까?
오죽 하면, 성경에도 하나님이 우리에게 바라시는것이 겨자씨만한 믿음'일까 그 만한 믿음도 마음속에 간직하며 살아가는게 어렵기 때문이리라. 상황이 변할때마다. 환경이 달라질때마다, 조그마한 트러블이 있을때마다, 사람들은 쉽게 변하고 주위의 모습은 내 생각과는 달리 돌아갈때가 많다 나'만 가득한 마음 속에는 하나님의 마음을 느끼기 어렵다. 내가 원하는 하나님'이라는 틀 속에 하나님을 정형화시켜두고 크신 하나님을 가둬두고있는것이 그리스도인이 빠지기 쉬운 오류이고 그것이 곧 우상'이라고 말하는 저자의 글에 고개가 끄덕여진다.일이 틀어지면 왜 이렇게 되었을까 하나님은 어디에 계셨길래...라며 자조하기에만 급급하다. 하나님은 전능하시고 인간 개인이 판단하기에 따라 이미지를 바꾸시는 분이 아니시다. 성경을 읽다보면 꽤나 적나라한 표현들과 좋은 말과 모습들만 나오지 않는다는것에 적지않게 놀라게 된다. 멋진 모습만이 진정한 인간의 모습이 아니듯이, 성경은 흐름을 가지고 있고 한 구절로 성경을 판단하기는 힘들다는걸 어렴풋이 느껴가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다 이해도 못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다 알 수는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인간이 하나님의 크신 뜻을 다 이해한다는것도 불가능하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시는 모든것(고통까지도..)을 받아들이고 겸손히 순종해야함을 의미하는게 아닐지. 내 안의 주권자가 내'가 아니라 주님'이심을 인정해야하는것에서부터 시작해야하는것같다.
삶의 모든것이 기적이라는 말이 있다. -하나님이 우리의 이해력에 이적을 베푸셔야 우리는 제대로 깨달을 수 있다.복음은 하나님만이 밝힐 수 있는 은밀함이다. - 믿는자에게 기적은 우리가 하나님을 안다는것이 아닐까! 복음을 전하는 것이 특히나 주위의 지인들에게 전하는 것조차도 쉽지 않다는것을 경험한 사람들이라면 이 말의 의미를 이해할 것이다. 회의주의자에게뿐만 아니라 복음을 전하는것은 쉬운일이 아니다. 상대가 받아들일 마음이 든다는것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부족하여 하나님을 이해시키는게 어려운가 실망한 적이 있었는데, 전도는 하나님의 일'라는 글이 위로가 되기도한다. 하나님을 아는자,믿음을 가진자인것에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다. 특히나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나님:경건한 믿음은 과시하거나 위선으로 보여지는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보시는것은 겉모습이 아니고 중심이다.보여지는 것에 치중하는 세상에서 중심을 잡아야하는것이 믿는자의 소명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어둠으로 인도하시는것은 오로지 하나님 가까이에서 걷는 법을 가르치기 위함이다. - 보이는것으로 행하지 않고 믿음으로 행하는것은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나아간다는것이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현실에서 믿음은 한 발자욱 내딪게하는 소망이 되어준다. 믿음에 관한 가장 멋진 비유로 룻과 나오미의 아무것도 없는 중에 하나님만 따르는것, 무에서 유를 만드실 이로 무조건적인 믿음의 삶을 보여준다. 보잘것없는 현실을 원망하기 보다는 이런 현실에서도 하나님이 공급하심을 믿는다는것. 죽음 가운데서도 새 생명의 싹을 틔우시는 하나님을 믿는것이 우리의 나아갈 바요, 하나님이 예비하신 인생의 희노애락을 기쁨으로 살아가는게 믿는자의 일인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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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설교집인 줄 모르고 읽기 시작했는데, 읽다 보니 설교집이더군요. 그런데 성공회 사제의 설교집이라서 그런지, 지금까지 읽어 본 다른 목회자분들의 설교집과는 분위기가 조금 달랐습니다. 우선 설교들의 길이가 상당히 짧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대부분의 설교가 약 10-15분 정도 분량의 길이였습니다. 가장 긴 설교도 20분 정도 분량 밖에 되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성만찬에 관한 강조가 계속해서 나타나고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성만찬을 강조하는 내용의 설교를 보면서 저자가 성공회 사제라는 사실을 불현듯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고, 주일 예배 때마다 성찬식을 거행하는 성공회의 특성을 기억하면서 짧은 분량의 설교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설교의 전체적인 강조점이나 내용에 있어서는 여러 다른 교단 목회자분들의 설교와 별반 다를 것이 없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설교 내용 중에 칼빈의 글을 인용하고 있는 것만 보아도 저자가 어떤 신학적 입장에 동의하고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저자에 대한 일부의 비판에 대해 그들의 판단이 옳다고 인정할 만한 어떠한 잘못된 주장도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자신을 비판하는 사람들의 주장을 의식한 듯 이렇게 말하고 있었습니다. "이 대목을 문맥에서 벗어나 불쑥 읽는 독자들이, 내가 '믿음으로 말미암은 칭의'교리를 폐지하고 대신 '순종으로 말미암은 칭의'교리를 확립한다고 생각하지 않도록 경고를 해 두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 절대로 그런 것이 아니다(115쪽)."
그리고 이를 뒷받침 하듯 이렇게 말하기도 하였습니다. "복음의 영광스러운 점은 이런 것들을 문제삼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전에는 완벽한 삶을 살지 못했다가 지금은 완벽한 삶을 살게 되었기 때문이 아니다. 완벽한 삶에 대한 환상은 속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율법주의에 불과하다. 우리가 천국에 가게 되는 것은 오로지 십자가에서 보여 주신 하나님의 사랑 덕택이다. 우리는 믿음으로만 그 사랑을 알 수 있고 받아들일 수 있다(164-165쪽)."
또한 이렇게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다 이루었다'는 말에 들어 있는 의미를 충분히 이해해야 한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셨을 때,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절반만 수행하시고 나머지는 미완의 상태로 남겨두신 것이 아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신부인 교회를 위해 구원을 하셨다. 예수님은 그 값을 온전히 치르셨다.. 구세주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일은 우리 구원을 위한 값이 이미 완전히 지불되었음을 의미한다(81쪽)." 저자의 이러한 말을 볼 때 그가 '행위 구원'을 말하고 있다는 비판은 적절치 않다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이 책을 읽는 동안 계속해서 제 시선을 사로잡았던 것은 저자가 믿음에 대해 정의해 놓은 다양한 설명들이었습니다. 믿음에 관한 저자 자신의 정의가 책의 앞부분에서부터 끝부분에 이르기까지 계속해서 서술되어 있었는데, 하나같이 마음에 와서 부딪치는 내용들이었습니다.
저자가 이 책에서 믿음에 관해 설명해 놓은 것 중에 가장 중요한 설명은 서문에 기록되어 있는 "창조주와 구속주가 되시는 하나님의 '크심'이 중요하지 하나님의 '크심'을 파악하는 우리의 작은 믿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설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자는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나 깨달음이나 믿음이나 웅변이나 순례는 중요치 않다"고 말하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하나님 그분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었습니다(9쪽).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저자가 우리의 믿음에 대해 아무런 가치도 없는 하찮은 것이라고 취급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이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믿음에 대해 설명해 놓은 저자의 설명을 살펴볼 때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저자가 믿음에 대해 설명해 놓은 내용 가운데 특별히 마음을 사로잡았던 설명 몇 가지를 적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믿음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와, 우리를 위해 어떤 일을 행하셨는지를 충분히 고려하여, 우리 자신의 처지와 연약함을 보는 것이다.. 믿음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와 우리를 위해 무엇을 약속하셨는지를 충분히 고려하여 미래를 보는 것이며, 해를 거듭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는 것이다(33쪽)."
"믿음은 비록 하나님에 대해 아는 것이 아주 작다고 해도 하나님을 아는 것을 기초하여 생각하고 행동하고자 하는 자발성이요, 하나님이 우리를 저버리지 않으실 것이라 믿고 의지하는 자발성이다(36쪽)."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확신이다.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들을 의심하지 않는 것이다. BAT성경은 히브리서 11장 1절을 '믿음은 바라는 것들을 확신하는 것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을 의심하지 않는 것이다'라고 번역했다(39쪽)."
"그리스도인의 믿음은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 시간 안에서나 영원 안에서나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맡기는 것,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 하나님이 '우리를 위한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 덕택에 우리를 있는 그대로 받아 주신다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는 것이다(40쪽)."
"두 여인(나오미와 룻)은 우리에게 성경적인 믿음에 관한 멋진 그림을 보여 준다. 그것은 암담했던 과거를 바라보며 '하나님은 전능하시다'라고 말하는 믿음이며, 안정감을 느낄 수 없는 현재를 바라보며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에 속해 있다'라고 말하는 믿음이다. 또한 그것은 전망이 불투명한 미래를 바라보며 '하나님이 공급하실 것이다'라고 말하는 믿음이다(169쪽)."
이 책에서 저자가 믿음에 관한 설명을 책의 처음부터 끝가지 계속해서 풀어 놓은 이유는 저자가 '사랑'이나 '소망'을 '믿음'의 다른 모습으로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에서 사람들을 사랑하는 힘이 나오고, 하나님에 대한 믿음에서 천국에 대한 소망을 품게 된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1부에서는 믿음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믿음의 대상인 하나님은 어떤 분인지를 설명한 다음에, 2부에 가서는 사람들을 사랑하는데 하나님을 믿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고, 3부에 가서는 현재의 고난을 이겨내고 천국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설명 가운데 몇 가지는 상당히 중요한 깨달음을 소개해 주고 있었습니다. 특히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에 들어오실 때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기 위해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들, 특히 순종을 요구하시고, 징계를 가하시는 일들에 대해 설명한 내용들은 특히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특히 마음을 사로잡았던 내용 한 가지는 부활하신 후에 갈릴리 바닷가에 나타나신 예수님과 제자들 사이에 있었던 일을 예로 들어 '순종'에 대해 저자가 설명해 놓은 부분이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이 잡은 153마리의 물고리를 해변으로 가져오라고 명하셨던 것처럼 우리 삶과 우리가 성취한 것들을 가져와 자기 앞에 놓으라고 강력하게 명령하실 때도 그리스도의 거룩함에 그러한 경이로움을 느끼고 순종해야 한다. 그러면 그 때, 제자들이 자신들은 예수님의 도움 없이 물고기를 잡는 것이 불가능했지만 예수님은 자기들의 도움이 없이도 그들을 먹일 수 잇다는 점을 부수적으로 깨달았던 것처럼, 우리 역시 예수님이 우리가 가진 것들이 필요해서 순종을 요구하시는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72족)."
제자들이 잡은 물고기를 가져오기 전에 이미 예수님께서는 조반을 마련해 놓고 계셨습니다. 잡은 고기를 가져오라 하셨지만 이미 불 위에는 고기가 놓여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도움 없이도 그들을 먹이실 수 있으셨습니다. 지금까지 한 번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부분이었습니다.
또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지 못한 사람들을 위한 귀한 조언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저도 얼마 전에야 이 사실을 깨닫고 성도들에게 가르치기 시작했는데, 저자의 글을 통해 제 자신의 깨달음이 저 자신만의 깨달음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무척이나 기뻤습니다.
"하나님 사랑의 완전한 능력이나 힘을 느낀 적도 없고 깨달은 적도 없다면, 십자가에서 죽어 가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라(154쪽).. 하나님을 자신의 아들을 선물로 주심으로써 우리를 향한 사랑을 증명하셨다. 또 하나님은 보혜사 성령을 보내주셔서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가능하게 해 주셨다.. 만일 당신 마음과 뜻과 힘이 당신을 위해 대신 죽으신 하나님의 아들의 죽음에 의해 아무 감동도 받지 못한다면, 생명과 사랑을 주시는 성령을 선물로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라.(155-156쪽)"
저자가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는 일에 대해 무척이나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이 기쁨으로 다가왔고,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는 방법에 대해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도 기쁨으로 다가왔습니다. 제가 찾은 길이 틀리지 않았다는 사실에 대해 감사했고, 또 그 길을 부지런히 가야겠다는 결심을 더 분명히 할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며 특별히 마음에 와 닿은 구절들, 특히 중요한 깨달음을 가져다 준 구절들을 전부 모아 보았더니 한 스무 곳 정도가 되더군요. 그 중에서 약 1/3 정도를 이 글에서 소개해 드렸습니다. 그러나 제가 이 글에서 소개해 드리지 못한 2/3 정도의 내용이 아직 이 책의 여러 곳에 숨겨져 있습니다. 그 구절들은 여러분들이 직접 찾아 보시는 것이 어떨까 생각합니다.
이 책에 실려진 설교들이 대부분 감성적인 자극을 주기보다는 지적인 깨달음을 자극하는 스타일의 설교라서 어떤 분들에게는 별로 감동이 되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지적인 자극과 깨달음을 원하시는 분들이라면 참으로 많은 도전과 감동, 그리고 유익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추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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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크고 광대하심을 망각하며 살아갈 때가 허다하다. ‘믿음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전에 ‘우리는 누구를 믿는가?’라는 질문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이 시대의 변증가 톰 라이트의 글을 읽노라면 마치 로마서나, 갈라디아서, 야고보서를 읽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야고보서의 저자는 독설가라는 별명을 가진 만큼 믿는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잘못된 생각과 행동에 대하여 거침없이 들춰내며 책망하는 듯한 성격을 가졌다고 생각되어졌다. 교리적으로는 이신칭의 교훈과 상반되어 보이는 행함으로의 구원을 강조하는 듯 보이나, 하나님을 믿는 진실한 믿음에는 그에 따른 성숙한 마음가짐과 또한 행동이 드러난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독설을 퍼붓는 듯한 말투 속에는 이 시대에서 부르짖지 않고 있는 중요한 진리를 닮고 있으며, 어쩌면 구원에 대한 안도감과 안위로 인해 정체되어 있는 우리의 신앙생활에 가속도를 붙여주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되었다. 세 개의 큰 부분으로 나눠진 이 책에서는 첫째, 크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 관하여, 둘째, 살며 사랑하는 믿음에 대하여 그리고 어둠 속을 걷는 믿음에 대하여 소개하고 있다. 첫째 부분에서는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크신 하나님을 믿음을 강조하고 있다. 믿음은 보는 것에 정반대이며, 또한 의심의 정반대이다. 다시 말해 보이지 않는 것에 의심이 없다면 그것이 바로 믿음인 것이다. 눈에 보이는 상황들로 인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신실하신 약속의 말씀을 받고도 우리는 믿음과는 정반대의 삶을 살아간다. 무엇보다, 쉽게 범죄하고 쉽게 우리의 마음을 무너뜨리는 의심의 눈을 버리고, 믿음의 눈을 소유해야 할 것이다. 둘째 파트에서는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믿음이 하나님의 사랑을 어떻게 드러나게 되는 지를 깨닫게 된다. 무엇보다 10장에서 다루고 있는 ‘위선’에 대하여 우리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된다. 위선이란 무엇인가? 위선자는 외적인 모습과 내적인 모습이 완전히 다른 사람이다. 신앙생활에서의 위선이란 무엇인가? 이 책에서 말해주고 있는 것처럼 ‘남에게 보이기 위한 경건’이다. 하나님을 마음에 중심에 두지 않고, 사람 앞에서의 모습만 의식하는 우리의 신앙생활의 잘못된 모습을 지적한다. 이 책을 읽으며 신앙생활의 모습을 많이 돌아보게 된다. 오늘날의 신앙생활의 모습은 이전과는 분명 다르다. 한국의 초대 신앙과는 많이 다르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은혜만으로 하나님을 믿고 섬긴다는 것 자체로 감격하는 시대가 아니다. 믿는 사람들의 수가 많기에 교회 안에서는 여러 믿는 사람들보다 더 잘 믿어 보이려 애를 쓰고, 교회 밖에서는 때때로 하나님과 상관도 없는 사람처럼 지낼 때가 있다. 사람으로부터 칭찬받고 인정받는 일에 집중하고, 사람 눈을 의식한다. 그리고 진정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일이 무엇인지, 내가 지금 주님께 드려지는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이 기뻐하고 계신지는 전혀 개의치 않아한다. 우리는 바울의 통해 성경에 그리고 있는 다양한 모델들을 통해 그들이 어떻게 예수님을 모방하며 살아왔는지를 힘써 배워야 한다. 예수님을 아는 지식은 넘쳐나지만 우리는 힘써서 주님을 알거나 주님이 말씀과 교훈에 집착하지는 않는다. 본서를 읽으며 나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흘러넘치는 통로가 되기를 소망해 본다. 셋째 파트에서는 우리의 믿음이 고난의 삶과 상황에서 소망을 통해 어떻게 회복되어 지는지를 가르친다. 이 파트를 통해서 문제 앞에서 어두운 문제 앞에서 우리는 낙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우리는 소망을 가지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대됨을 다시 한번 새롭게 깨닫게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고통 중에도 고난에 처해 있어도 칠흑 같은 어둠 속에 우리를 두신 것은 우리를 더 겸손하게 만들고, 우리를 단련시키고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도록 하기 위함임을 알게 된다. 본서의 20개의 장들은 각장의 주제에 따라 신구약성경을 중심으로 전개하고 있으며, 파트가 끝나거나 몇몇의 장에서는 옛 기도문이나, 찬송가 글귀 그리고 신학자들이 쓴 시기 담겨있다. 그에 대한 내용들 역시 각 장의 주제들과 연관되어 마음과 영혼을 울리는 것들이었다. 그리고 믿음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께 예배하는 삶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오늘날을 사는 사람들의 신앙생활을 모습을 거침없이 질탄 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변화되어야 하는 지를 제시해주고 있다. 최근 개인적으로 고통과 고민의 시간을 겪었었다. 때때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나에게는 더디 이루어지거나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은 것처럼 느껴져 나의 믿음이 낙심되고 좌절되고 연약해 지는 것을 느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은 어둠 속에서 아무 희망도 소망도 잃어버린 자처럼 실망에 빠져 있을 때, 이 책을 읽고 묵상하는 동안 크신 하나님께서 잠들어 있던 나의 믿음을 정체된 나의 믿음을 다시금 깨워주시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크신 하나님 앞에 우리는 순전하고 거룩한 예배로 성만찬 중심적인 그분의 구원하심과 사랑에 대한 감격의 예배로 나의 생애와 삶을 주님께 드려야 함을 망각하고 있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이 책을 읽는 동안 현재 나의 상황과 비교하여 큰 위로를 받았을 뿐만 아니라, 나의 삶에 내가 주인이 되어 적은 믿음조차 없었던 나의 삶을 회개하며, 크신 하나님 앞에 다시 겸손함으로 몸과 마음으로 무릎 꿇고 단련된 성숙한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더욱 깊이 의하며 소망 중에 날마다 기뻐하며 새롭게 주님을 향하여 믿음의 고백을 쉬지 않으리라 다짐해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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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 '작은 믿음, 크신 하나님'은 책 내용을 너무나 잘 함축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작은 믿음 크신 하나님’이란 말은 우리의 신앙의 내용을 참으로 잘 표현해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저자 톰 라이트가 말하고 싶었던 것도, 하나님이 얼마나 크신지 그것에 비해 우리의 믿음이 얼마나 보잘 것 없는지,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 믿음을 얼마나 귀하게 보시는지를 설명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래서 총 3부로 구성된 이 책은 먼저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하고 있다. 기독교 신앙은 사실 하나님에 관한 것이다. “신앙이 내게 어떠한 의미가 있는가? 내게 어떤 유익이 있는가?”는 것은 부차적이고 어떤 의미에서 전혀 필요없는 질문이다. 하나님이 실재하시며 살아계시기에 그 분을 높이며 섬기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할 때, 중요한 것은 나의 믿음이 아니라 믿음의 대상인 하나님이다. 따라서 하나님을 아는 것이 신앙의 첫걸음이요 가장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그 하나님이 결코 우리의 이성에 포착될 수 없을 만큼 크고 거룩하신 분이기에, 우리 스스로 하나님을 만들어 내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며, 말씀에 계시된 바로 그 하나님을 믿어야 한다. 제 2부에서는 그렇다면, 그 하나님을 우리가 어떻게 믿어야 할 것인가를 조명하고 있다. 신자는 천국을 소망하며 살지만 현실에 뿌리박고 사는 균형잡힌 삶을 살아야 한다. 그 삶을 방해하는 첫 번째 요소는 위선이다. 저자는 먼저 위선의 의미를 조명하면서, 우리 마음에 원하는대로, 혹은 하나님께 호의를 얻어내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리 말씀하셨으니, 그 말씀에 순종해야 함을 지적한다. 그 순종의 내용은 관계와 사랑이다. 빌레몬의 예와 바울과 바나바와의 다툼, 그리고 결혼 생활의 예를 들어서 우리의 믿음은 바로 사랑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그것은 올바른 관계로 이어져야 함을 말하고 있다. 제 3부에서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삶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고 있다. 믿음으로 행한다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을 소망하며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며 살아간다는 뜻이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는 그 어떤 만족도 완점함도 맛볼 수 없고 도리어 우리의 삶에는 고난이 어두움과 불안한 미래가 기다린다. 그러나 그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믿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것이 바로 믿음의 삶이다. ‘작은 믿음, 크신 하나님’은 내가 읽은 톰 라이트의 여러 저서들 중에 가장 읽기 쉬운 책이었다. 그렇지만 그 내용까지 가벼운 것은 결코 아니다. 각 챕터의 분량은 작지만 깊이 숙고해야 할 주제들이 많이 담겨져 있다. 한 번 읽고 지나칠 내용이 아니라 깊이 묵상해야할 필요를 느꼈다. 오늘날 교회는 뒤틀리고 왜곡된 신앙들이 범람하고 있다. 이 책은 이런 현실 속에서 우리에게 바른 신앙의 기준을 제시하며, 우리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신실하고 참되게 살아가려고 하는 모든 신앙인들에게 이 책은 좋은 신앙의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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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B 필립스의 "네 하나님은 너무 작다"라는 책은 상당한 명저서로 꼽힌다 물론 국내에서는 그렇게 인기가 없는 듯 하지만 말이다 톰 라이트 하면 바울신학의 새관점 학파의 태두로 알려져 있어 보수적인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경계의 인물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이 책을 선뜻 구매하는데 주저함이 있었지만, 이 책은 우리 중심의 믿음과 우리 자신의 인지 체계 내에서 하나님을 제한함으로 바른 그리스도 신앙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기에 구매했다 팀 켈러의 내가 만든 신, 서두에 적은 J B 필립스의 네 하나님은 너무 작다(당신의 하나님은 너무 작다)와 함께 병독한다면 바른 신앙으로 성장과 성숙에 지대한 지평을 열어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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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말씀을 생생하게 느낀다는 것은 생각보다 매우 어려운 것 같다. 다행인 것은 마음에 양심은 있어서 이 책을 읽으며 가장 좋았던 것은 말씀이 생생히 와닿았다는 것이다. 또한 말씀에 근거해서 삶을 돌아볼 수 있도록 해준다. 책을 덮고 깨달은 것은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회복이 우선이라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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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우리 시대의 c.s 루이스라 불릴 만큼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학자 톰라이트가 쓴 책이다. 그가 20대 시절 강당에서 선포했던 설교의 원고들을 모아 출간한 책이다. 40년이라는 시간이 흘렸지만 진정한 복음의 메시지와 우리가 믿는 믿음의 대상인 하나님에 대해 명확하게 성경적으로 짚어주기에 너무나 귀한 책이다. 책은 총 3부로 되어있다. 필자가 신학자이기에 성경에 기초해서 명확하게 풀어준다. 1부에서는 복음, 믿음의 대상에 대해 다룬다.“우리는 지금 누구를 섬기고 있는가?”라는 필자의 질문에 올바르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책에 쓰여진 대로 이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크심'이지 하나님의 ‘크심’을 파악하는 '우리의 작은 믿음'이 아니다. 또한 성경은 유익한 구절들만 선별해서 모아놓은 책이 아니라고 정확히 말한다. 솔직히, 성경을 읽을 때에 나에게 유익이 되는 성경구절들만 골라 읽게 되는 좋지 않는 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성경은 진짜 책들의 결집체임을 다시 한번 가슴 깊이 새겼다. 2부에서는 이렇게 복음으로 말미암아 천국의 시민이 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하는지에 대해 다룬다.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의 충돌이나 관계에 문제가 생겼을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믿는 믿음이라고 확실하게 제시해 준다. 천국의 시민으로서 '하나님이 지금 여기에서 우리에게 주시는 과업을 기쁘게 전념해야 한다'는 필자의 말에 나의 삶을 돌아보게 되었다. 또한 선한 위선과 악한 위선을 구별하라는 구절에서는 나의 이중적인 면을 깨닫는 귀중한 시간이 되었다. 특히 가장 인상깊었던 chapter는 chapter14였다. 짧게 다뤄져서 아쉬웠지만. 결혼생활을 하는 부부들이 꼭 알아야하는 점이 나와 있다. 즉 성경이 제시하는 결혼생활의 귀감은 배우자가 대접을 받을 만한 자격이 있기 때문에 서로에게 충실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단지 배우자를 ‘계속 사랑할’마음이 있기 때문에 서로에게 충실해야 한다는 것이다. 3부에서는 내일에 대한 소망으로 사는 믿음을 다룬다. 이 책은 기독교인이라면 한 번쯤 읽으면 좋은 책이다. 단지 초신자들이 읽기에는 다소 어렵게 느껴질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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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책을 접했을 때, 톰라이트라는 저자에 끌렸고 제목에 매료되었다. 그렇지! 큰 믿음을 위해 늘 기도하지만, 매순간 나의 작은 믿음에 대한 일종의 콤플렉스를 이 책을 통해 해결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이었다. 여전히 우리의 믿음은 작을지라도, 크신 하나님에 대한 그 작은 믿음은 놀라운 이끌림과 경험, 임재 가운데로 우리를 초대하시리라는 생각에서였다. 책의 표지에는 ‘이 시대가 오용하고 남용하는 믿음에 대한 성경적 고찰, 그리스도인들이 겪는 믿음과 삶 사이의 괴리를 풀다’라고 말하고 있지만, 책을 다 읽고 덮으면서 더 많은 괴리감(?)이 생겼다. 톰라이트의 40년전 설교를 복간해 놓은 이 책의 내용이 어떻게 한권의 책으로 연결되는지 감을 잡는데 애를 써야 했다. 분명 설교문이라고 말하는데, 제목도 없고 본문도 없다. 제목은 목차에만 있지 실상 본문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아, 책을 읽다가 새로운 chapter로 넘어갈 때마다, 다시금 목차를 살피며 책의 전체적인 흐름을 잡아야 했다. 설교본문도 분명 있을 것인데, 적혀 있지 않으니 chapter를 읽을 때마다 본문이 무엇일지 찾아내야 했다. 그리고 어떤 본문은 명시적이고 어떤 부분에서는 명확하지 않아서 맥락을 잡는데 애를 써야 했던 것이다. 책의 편집도 책읽기를 하기에 충분한 방해가 되었다. 좌우 하단에 기록된 책의 번호의 크기도 다르고 -물론 편집자의 의도가 있으시겠지만- 책을 읽고자 하는 독자에게 불편함을 주었다. 적어도 나에게는... 하단의 여백도 너무 많이 편집되어 책의 헐렁한 느낌(?)마저 주는 것 같다. 아, 힘든 톰라이트의 책읽기여!
이 책은 크게 세 개의 주제로 연결되어 있는 듯하다. 전체가 세 파트로 나뉘어져 있는데, 나의 언어로 간단히 바꾸면 믿음-사랑-소망(p.162)이다. 이 성경적 세가지 주제를 믿음이라는 큰 흐름 안에서 저자는 조망하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믿음을 이렇게 정의한다. ‘믿음은 모든 문을 열 수 있는 비밀 열쇠를 갖고 인생을 항해하는 신비한 능력이 아니다. 그보다 믿음은 비록 하나님께 대해 아는 것이 아주 적다고 해도 하나님을 아는 것에 기초하여 생각하고 행동하고자 하는 자발성이요, 하나님이 우리를 저버리지 않으실 것이라 믿고 의지하는 자발성이다.’(p.36) 이는 매우 편협한 우리의 믿음에 대한 생각에 반전을 심어 넣는다. 그리고 말하길,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큰 믿음이 아니라 크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다.’(p.41)라고 말한다. 이 얼마나 통찰력있고 시원한 저자의 선포인지 모른다. 그리고 믿음을 하나의 선물, 고정된 그 무엇으로 여기는 나와 우리에게 ‘그리스도인의 믿음은 하나님과의 관계다. 즉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다.’(p.43)라고 말한다. 그렇다! 우리의 믿음이란 지속적인 관계 속에서 형성되는 것이지, 어제의 믿음이 오늘의 믿음이 될 수 없고, 내일의 믿음을 장담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늘 두렵고 떨림으로 우리의 구원을 이루어가게 된다. 그리고 그 믿음의 현장,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 속에서 우리는 사랑(2장의 주제)하고, 고통의 현실 속에서 소망(3장의 주제)의 믿음을 가지고 나아갈 수 있다.
저자는 책에서 이렇게 도전한다. ‘나를 만드신 하나님인가, 내가 만든 하나님인가?’(p.28) 정말이지, 오늘의 기독교는 내가 만든 하나님을 신앙하고 믿는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잘못된 믿음의 추종하는 예가 많다. 내 속사람을 살펴 보아도 그렇지 않은가. 내가 이해하고 알아가고 만난, 그래서 내 안에 이미 조작되어 있는 하나님이 진짜 하나님인줄 알고 살아간다. 마음껏 그분의 권능을 축소시키고, 그분의 선함을 오해하고, 그분께 모든 책임을 전가시키곤 하지 않는가. 그래서 저자는 거듭 강조하길, ‘중요한 것은 창조주 하나님을 우리 믿음의 대상으로 삼는 일’이라고 단호히 말한다.(p.30)
책을 읽어갈 때, 물론 힘든 면도 있었지만 새롭게 배우고 유익한 깨달음에 이르기도 했다. 그리고 저자가 '우리가 또 대표로 기도할 때, 단지 지난번 기도회에서 어구들을 썩 잘 조합해 냈다는 것과 우리 자신의 경건하고도 진지한 목소리를 무척이나 즐겼다는 것을 기억할 수도 있다.‘(p.109)는 말에 나의 믿음의 기도, 특별히 대표기도할 때의 나의 으쓱했던 태도를 반성해 보기도했다. 또 한편으론 이해되지 않는 면도 있었는데, 책에서는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는 바울이 우리 모두의 어머니라고 말한 교회의 귀감이다’라고 말하면서 갈라디아서4:26절을 참조해 놓았다. 성경을 읽어갈 때는 율법과 자유의 법에 대한 하갈과 사라에 대한 이야기로 이해되었는데, 이 구절이 어떻게 마리아에 대한 참조구절이 될까? 내 지식이 짧거나, 혹 영국 성공회가 추구하는 성경해석의 한 본문인지 의문이 들었다. 모친 마리아에 대한 의견은 확실히 성공회와 한국 개신교회가 다르지 않을까. 아무튼 여러모로 뒤돌아보고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톰라이트와 함께 이 책을 통해 할 수 있어 감사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