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술작품을 알아보는 눈이 좋지 못한 나는 오히려 다른 사람의 설명이나 평이 도움이 될 때가 있다. 전문가 정도는 아니더라도 예술가와 작품에 대해 잘 알고 예술에 대한 섬세하고 민감한 촉이 도드라진 지식인의 감상평은 미술작품은 논외로 하더라도 글 자체가 아름답다는 느낌이 들어 미술작품까지 좋아지도록 만들기도 한다. 이 책 <나의 서양미술 순례>가 그런 책이다. 저자는 프랑스 문학을 전공한 재일교포 교수로 그가 아주 젊었을 때 서양 여러 곳을 다니며 보고 느꼈던 작품에 대한 감상평을 에세이 형식으로 엮었다. 한반도 분단과 민족의 아픔을 가족사 전체가 끌어안고 있는 형국이라 저자의 글은 간단히 읽히지 않는다. 독재정권시절 생각의 차이로 부당하게 옥에 갇혀 모진 고생을 당한 그의 두형에 대한 그리움과 고민들이 책 속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이 책이 오랫동안 널리 읽히는 것은 그런 그의 개인적인 경험이 이 땅을 살아가는 보편적인 정서와 맞닿아 있었기 때문일 게다. 사랑 받는 글,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글은 개별적이어야 한다는 것, 극단적으로 개별적일수록 보편성을 획득한다는 유시민의 말이 이 책에 정확히 들어맞는 것 아닌가 싶다. 유시민 인터뷰(2016년) 공감을 일으키는 글쓰기 개별적인 것과 보편적인 것은 다른데, 진짜 보편적인 것은 개별적인 거에요.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우리가 일제시대를 살아봐야 유관순 누나를 이해하나요? 우리가 아우슈비츠에서 죽어봐야 유대인들의 심정을 아나요? 그건 아니잖아요. 우리가 프리모 레비의 책이라던가 이런 걸 읽으면 그대로 전해져 오잖아요. 아주 개별적인 사건, 개별적인 경험에 대한 얘긴데, 그게 정말 극단적으로 개별적으로 되었을 때 보편성을 획득할 수 있어요. 저는 그렇게 생각해서, 글을 쓸 때 굉장히 솔직하고 정직해져야 된다고 보는 거에요. 남과 비슷해지려고 하면 공감을 못 받아요. 그러니까 개별성과 보편성 사이에는 늘 긴장과 대립이 있긴 한데, 그것이 궁극적으로 보면 개별적인 게 보편적이라고 생각하고, 개별적인 걸 잘 살려야 한다고 생각해요. 보편성으로 쉽게 다가서려고 하다 보면 상투적이 돼요. 저도 좌파긴 하지만, 좌파 운동권에서 쓰는 언어들 있잖아요. 어떤 단체의 대표라던가 방송에서 말씀하시는데, 너무 상투적인 거에요. 그 사람이 안 느껴져요. 어떤 단체의 대표는 느껴지지만, 우리는 어떤 단체의 대표의 말을 듣는 게 아니라 어떤 사람의 말을 듣고 있어요. 그 사람이 나에게 전해져야지, 그 사람이 하는 말이 내게 전해져요. 근데 사람이 전혀 느껴지는 말 있죠. 그게 상투적인 말이에요. 보편성을 획득하려고 그렇게 하는 건데, 그렇게 가면 정말 보편성이 없어져요. 공감을 얻을 수가 없어요. 그래서 공감을 얻기 위한 제일 좋은 방법은 상투적인 데서 벗어나는 거구요. 상투적인 것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개별적으로 가야 해요. 개별적으로 극단적으로 갔을 때 보편성은 저절로 얻어진다. 그 사람이 전해져 와야 해요. 말이든 글이든, 그 말을 하는 사람, 그 글을 쓰는 사람을 내가 느낄 수 있어야 그 글과 말에 공감할 수 있는 거지. 사람이 안 느껴지는 순간 멀어지는 거에요. 이 언어라는 게 그렇게 상투적으로 들리는 말, 글을 듣거나 볼 때는 그 사람이 거짓말 한다고 느끼게 되요. 정직하지 않다고 느끼게 돼요. 상대방에 대해서 정직하지 않다고 느끼는 순간 소통과 공감은 어려워요. 그래서 저는 나답게, 그렇게 하다 보면 저절로 보편적인 공감을 일으킬 수 있다고 봐요. 제일 나답게 사는 게 제일 인간답게 사는 거에요. 저는 개별성과 보편성의 관계를 그렇게 생각하는데… 나는 인간이고, 호모사피엔스라는 종의 특성을 가지고 있는 개체잖아요. 그럴 때 각 개체의 삶을 종의 특성에 맞춰버리게 되면 개체의 의미가 없어지는 거에요. 그러나 개체의 특성이 종의 보편성을 벗어나게 되면 그것도 문제죠. 그러니까 사실은 나다움이라는 것은 한 종의 일원으로서 가지고 있는 특성과 생물학적 용어로 변이를 가지고 있는 개체로서의 개별적 특성이 나한테 다 있는 거잖아요. 이 둘을 다 살리는 게 나다운 거라고 저는 생각해요. 그래서 제일 나답게, 자기답게 사는 게 제일 인간답게 사는 거다. 이게 개별과 보편 사이의 관계를 되게 잘 묘사해주는 표현이 아닐까 해서 제가 즐겨 써요. |
| 고통의 역사 위에 피어난 서양 미술을 통해 인간의 존엄과 예술의 본질을 사유하게 된다. 서경식 특유의 깊은 시선과 섬세한 언어로 풀어낸 미술 이야기는 단순한 감상이 아니라 치열한 성찰로 이어진다. 예술과 삶, 기억과 역사를 잇는 진정한 순례의 기록. |
|
"나는 내 눈으로 그분의 손에 있는 못자국을 보고 내 손가락을 그 못자국에 넣어보고, 또 내 손을 그분의 옆구리에 넣어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못하겠소." 그러니까 나는, '자기들이 찌른 사람'을, 이래도냐 하고 들이대면서, 거짓말 같으면 이 상처를 손으로 찔러봐라 하는 강요를 당하고 있었던 셈이 된다. 서경식, 나의 서양미술 순례, 창비, 2015, p.14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