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40년대... 그 시대 사람들의 삶은 어떤 모습일까? 어떤 날이 평범한 일상이고 어떤 날이 특별한 하루였을까? 『잃어버린 이름』은 1940년대 한 소년의 평범한 일상과 특별한 날들이 담겨 있다. 이야기는 1933년 어느 추운 겨울날, 젊은 부부와 그들의 자녀인 어린 ‘나’가 조선을 빠져나는 내용으로 시작한다. 다리만 건너면 만주가 나오는데.. 그곳에 가면 여기에서처럼 마음을 졸이며 살진 않겠지... 하지만 우리가 무사히 이 다리를 건널 수 있을까? 아마 그 젊은 부부는 힘든 현실의 짐-늘 일제 형사들의 감시를 받고, 말 한마디 때문에 감옥살이를 해야 하는-을 조금이나마 덜어 놓을 수 있으리라는 희망과 혹시나 그 희망의 가는 끈을 놓치지는 않을까하는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그 기차를 타고 있었을 것이다. 증기도 나오지 않아 몹시 추워도, 손발이 꽁꽁 얼어 서서히 통증이 찾아 와도 그깟 육체적인 고통은 불안과 초조함에 밀려 느껴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 가족이 국경은 넘는 문제는 그리 간단하지 않았다. 일제의 감시망은 그들을 쉽사리 놓아 주지 않았다. 갑자기 등장한 일본 형사와 헌병에게 남편이 잡혀간다. 젊은 아내는 잔뜩 겁을 먹고 눈에서 나온 눈물이 겨울바람에 얼어 얼굴이 트는 줄도 모르는 채 덩그러니 플랫폼에 서서 남편을 기다린다. 남편은 돌아왔지만 갈 때와 그 모습이 다르다. 그런 남편을 보며 또 한번 아내의 마음이 아파온다. 그러나 그들은 다시 만났고 만주로 갔다. 다리 대신 얼어붙은 압록강을 건너서... 어렵사리 만주로 갔지만 그들은 결국 돌아왔다. ‘나’는 이제 커서 학교를 다닌다. 만주에서는 외국인 선교사들의 자녀들과 함께 공부를 했지만 전쟁은 그들을 더 이상 함께 있지 못하게 했다. 새로 다니게 된 학교는 ‘나’에게 평범한 일상이면서 특별한 날들을 만들어 주었다. 첫 번째 특별한 날은 전학 온 첫날이 되었다. 일제에게 결코 좋은 신민이 되지 못한 아버지 덕분에 ‘나’는 학교에 전학 온 첫 날부터 일본인 교사에게 두들겨 맞는다. 그 일본인 교사를 혼내준 ‘나’의 담임선생님은 결국 학교를 그만두어야 했다. 그날은 ‘호박대가리’라는 친구를 사귄 날이기도 하면서 그 ‘호박대가리’를 하늘로 보낸 날이기도 하다. 당시를 산 모든 조선인 학생들이 그러했듯이, ‘나’또한 군대 같은 학교를 다녔다. 모든 활동은 군대식이다. 일본군대식... ‘나’는 공부를 잘 해서인지 아님 아버지가 좋은 신민이 아니기 때문에서 인지 계속 반장을 한다. 일본 군대식 생활이 ‘나’에게 평범한 일상으로 자리를 잡아 가면서 또 한번 특별한 날이 찾아온다. 나의 이름을 버리고 갖고 싶지 않은 이름을 결국 가져야 했던 특별한 날... 일본인들 때문에 ‘나’는 조선인의 말, 조선인의 생활을 빼앗겼고 결국 이름까지 빼앗겼다. ‘나’가 커가면서 전쟁도 점점 심각해져 간다. 나라의 모든 사람들은 이제 전쟁과 관련한 삶을 일상으로 받아들인다. 전쟁을 위해 일하고, 전쟁을 위해 굶고, 전쟁을 위해 죽는... ‘나’의 일상 또한 그렇게 변했다. 그 일상 속에서 가끔 찾아오는 특별한 날들은 ‘나’에게 커다란 고통을 주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그 고통스러운 특별한 날을 더욱 특별하게 만든다. 나뿐만 아니라 일제 치하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특별했던 날, 황태자 전하의 영광스러운 탄생일에 ‘나’는 맞아서 퉁퉁 부어오른 몸에 붕대를 감고 연고와 빨간약(머큐로크롬)을 잔뜩 바른 얼굴로 연극 무대에 올랐다. 그리고 ‘나’의 대사를 몇 마디만 읊은 채 가만히 서서 눈물만 흘렸다. 왜 눈물을 흘렸는지는 모른다. ‘나’도 모른 눈물을 흘리며, 그렇게 그 날은 ‘나’에게 특별한 날이 되었다. 전쟁의 일상 속에서 ‘나’는 비상활주로를 공사하는 일을 하게 된다. 집에 돌아가지도 못한 채 온종일 손에 물집이 잡히도록 삽질을 한다. 밤에는 습기 차고 타르, 기름냄새, 곰팡이 냄새 등 역한 냄새가 가득 차 있는 천막에서 가마니를 침대삼아 잠을 잔다. 이런 삶이 일상이 되어 버렸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다. 곧 이 전쟁에 의한 일상을 끝이 나고 정말 특별한 날이 올 것이라고... 결국 그 특별한 날은 왔다. 전쟁의 일상에서 벗어나고, 일본 군대식 일상에서도 벗어나서 잃어버린 나의 이름을 찾은 그 날이 왔다. 이 시대를 산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라도 일상에서 가장 특별한 날이었던 그날이 왔다. 『잃어버린 이름』은 이렇게 1930년대부터 해방까지 우리 사람들의 일상을 그리고 있다. 작가가 쓴 섬세한 묘사들은 내 머릿속에 역사적 사실로만 들어있던 일제 시대의 모습을 그림으로 그려 주었고 한 장 한 장 그려지는 그림들은 그대로 내 마음속에 감정으로 남아진다.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을 어찌 모두 이해할 수 있으랴. 다만 백분의 일, 천분의 일이라도 느낄 수만 있다면 그 시대가 단순한 역사가 아닌 나의 현실, 나의 일상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다신 그런 일상을 경험하고 싶지 않다. 전쟁으로 인한 일상, 내의 것을 버리고 남의 것으로 살아야 하는 일상, 우리 할머니께서 지금까지의 삶 중 제일로 끔찍하다하신 그런 일상은 경험하고 싶지 않다. 그런 일상을 더는 아무도 겪지 말기를 기도하며 책장을 정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