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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거 건축의 양식과 형태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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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거 건축의 양식과 형태에 대하여1964년 지어진 동대문 근처의 건물. 지그재그의 입면에 수직 띠창이 구성되었다. 2019년 입면이 리모델링 되어 사진의 모습은 사라졌다.  20세기 주거건축의 연대기도시 속을 걷는 것을 좋아한다. 걷다보면 도로와 도로 사이, 빼곡이 들어선 건물들 속에서 각각의 건물들을 살피는 재미를 느낀다. 그렇게 많은 건물들을 졸업앨범처럼 하나씩 보다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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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거 건축의 양식과 형태에 대하여

1964년 지어진 동대문 근처의 건물. 지그재그의 입면에 수직 띠창이 구성되었다. 
2019년 입면이 리모델링 되어 사진의 모습은 사라졌다.  

20세기 주거건축의 연대기

도시 속을 걷는 것을 좋아한다. 걷다보면 도로와 도로 사이, 빼곡이 들어선 건물들 속에서 각각의 건물들을 살피는 재미를 느낀다. 그렇게 많은 건물들을 졸업앨범처럼 하나씩 보다 보면, 수많은 건물들의 외양과 형태 속에서 일정한 패턴이 있음을 발견할 때가 있다. 돌출된 창의 모양이라던지, 장식적인 측면이 가미된 벽감, 넓게는 재료의 사용이나 구축 방법에서 그 유사성이 드러나기도 한다. 단일한 도시 공간 속에서도 서로 다른 건물들의 혼재된 모습은 시간의 지층이 수평적으로 펼쳐져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곤 한다. 


그 중에서도 주거공간은 그 경향이 가장 두드러지는 유형 중 하나이다. 한국전쟁 이래, 대한민국의 도시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주제는 주택의 공급이었고, 그에 맞춰 각종 주거 유형이 쇼미더머니의 출연자들처럼 무대 위에 나타났다 사라지길 반복했다. 기술적 한계와 시대적 요구들, 문화의 차이 등이 서로 교차되며 단독주택부터 공동주택, 주상복합주택 등과 같은 다양한 주택 유형들을 직조하였고, 현재의 도시 경관을 구성되었다. 일제강점기, 혹은 그 이후 서구에 의해 이식된 근대적 공간들에 대해 비판적으로 판단할 겨를도 없이 대량으로 효율적인 거주 기계를 만들어온 과정이었다. 그래서 역으로, 직조된 주거공간을 다시 풀어 헤쳐보면 당대의 주거공간과 이를 둘러싼 상황들이 실밥처럼 튀어나온다. 가톨릭대의 전남일 교수는 이 정교한 해체 작업의 전문가라고 할 수 있는데, 그동안 한국의 주거사가 그 주된 대상이었다면 이번에는 시선을 조금 확장하여 모더니즘 시기부터 90년대까지, 독일의 주거 건축을 주제로 해체된 결과물을 이 저서에 꼼꼼히 눌러 담았다. 


독일에서 공부했기에 그가 독일의 주거건축을 다루는 것이 자연스럽지만, 그의 시선은 독일 한 국가에 국한된 것이 아닌 서구의 주거건축의 보편적 흐름에 향해 있다. 독일을 빼놓고 모더니즘을 논할 수 없듯이, 2차세계대전의 출발이자 좌우 이념의 중심지였던 것을 아울러 상기한다면 독일이 겪었던 주거 건축의 문제와 그에 대응한 계획의 과정은 근대 이후 주거건축이 지나온 길과 직접적으로 닿을 수 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근현대 주거건축사로 폭넓게 보아도 무방하다.   


특히 이 책의 핵심은 제목 옆에 길게 매달린 부제에 있는데, 주거건축이 가지는 양식적 형태와 미학, 그리고 계획과 관련된 다양한 사조에 대해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이를 거칠게 정리하여 이분법으로 분류한다면, 기술적 성취와 근대적 삶의 방식이 직접적으로 발현된 모더니즘 시기의 양식들과 클래식과 역사적인 맥락을 중시하며 지역적 색채를 담아내는 포스트 모더니즘의 변주로 크게 이해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계획적 측면에서 외형과 이를 수반한 평면 구성에 집중하였고, 주거건축의 양식으로 시대를 구분하고, 미학적으로 각 사례를 분석, 고찰하는 식으로 각 시기를 살핀다. 특히 구글세상의 어딘가에서 빌려 온 사진들이 아닌, 저자가 직접 방문하고 촬영한 각 사례의 사진들로 인해 독일 곳곳을 마치 답사하는 것 같은 즐거움을 준다. 모두가 불안한 2020년 코로나 시대에 격리된 책상에 앉아서 텍스트로 여행을 떠날 수 있다는 것 만으로도 저자에게 큰 고마움을 느낀다. 


한국의 주거 공간 또한 결국 위의 변주 사이 어디 쯤에 놓여 있기에 그 흐름의 변화를 이해하는 것은 결국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주거 공간을 이해하는데 또 다른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시차는 있어도 방향은 유사하다는 점에서, 지속적으로 우리의 주거공간과 비교하며 읽게 된다. 그리고 과거를 본다는 것은 결국 미래를 그리는 과정 속에 놓여 있지 않은가. 21세기가 한참 지난 지금의 주거 건축은 과연 어디를 향해 가고 있을지 나름의 상상과 함께 책을 읽는 사람의 입장을 정리할 수 있는 기회도 준다. 


누구나어디서든언제든지 거주하는 기계

르 꼬르뷔지에의 “집은 살기 위한 기계다(A house is a machine for living in)”는 건축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귀가 간지러울 정도로 많이 들었을 말이지만, 정작 기계라는 것이 어떤 맥락에서 나온 단어인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저자는 당시의 도시와 건축이 직면한 시대의 흐름과 요구에 대해 주거건축 양식의 관점에서 꽤 복잡했던 상황을 간결하면서도 명확히 보여 준다. 도시화가 급격히 진행되면서 주택 부족의 문제와 함께, 윌리엄 모리스를 필두로 산업화, 기술의 진보에 따른 대량 생산 체제를 받아들이며 '기계'를 긍정하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저자는 시각적으로 가장 확연하게 변화하는 건축 외양의 미학적 측면에서 왜 장식이 불안정성을 위장하는 유아기적 문명이자 죄악이 되었는지(p.84), 그리하여 어떻게 건축의 구축(tectonic)적 논리가 미학의 중심에 설 수 있었는지(p.97) 당시에 활동했던 건축가들의 활동과 남아 있는 작품을 통해 흥미롭게 이야기한다. 


근대 건축 운동에서 장식은 매우 불리한 위치에 서게 되었으며, 이를 대신하여 기능적인 형식, 단순하고 규칙적이며 기하학적인 형식에 대한 선호가 우위를 차지했다. 근대 건축운동에는 무엇보다도 거짓된 장식과 키치(kitch), 그리고 절충주의 형태를 받드는 부르주아 문화의 속물 근성에 대한 거부를 포함하고 있었다. 그보다 순수함과 진정성에 대한 갈망이 우선시되었으며, 모든 장식은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 되었다. 



베를린의 아티스트 그룹 사비 컨템퍼러리Savvy Contemporary가 1년 동안 유량하며 운영한 일종의 바우하우스 지식 창고. 바우하우스가 있는 독일 데사우에서 출발하여 홍콩까지 순회하며 바우하우스를 비평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이러한 변화 과정의 중심에는 국립 바우하우스(Staatliches Bauhaus)의 2대 학장 발터 그로피우스와 함께 재직 했던 그의 동료들의 활동이 있었다. 아돌프 마이어와 함께 디자인한 초창기의 좀머펠트 주택에서 드러났던 표현주의적 특성과 그에 벗어나 통합적 건축(integrated architecture)을 지향하며 대중의 참여가 가능한 공동주택으로의 변화 과정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 준다. 작년, 바우하우스의 100주년을 기념하여 세계 각지에서 관련된 전시가 경쟁적으로 개최되었고 국내에서도 관련된 전시 개최의 찬반이 꽤 큰 논쟁거리였던 것을 기억한다면, 바우하우스가 근대적 사고의 형식과 방향, 그리고 주거건축에 미친 영향이 틱톡의 잔상효과처럼 아직까지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기능주의는 거주자와 생산자, 건축가 사이의 관계에 대한 재정립을 필요로 한다. 특히 집합주택에 있어서 불특정 다수에게 알맞은 생활공간을 제공해야 하는 경우, 거주자의 삶의 방식과 공간의 문제에 합목적성을 띠고 대응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주택의 평면은 '보편성'이라는 특성을 지녀야 하며, 계층만 정해진다면 어떠한 거주자라도 살 수 있또록 계획되어야 했다. 이에 따라 주거공간은 거주자의 평균적 특성에 맞추어 표준화되었고, 그 시대 대중이 가장 일반적으로 공감하는 생활의 내용을 수용해야 했다. (p.98)


물론 그 과정이 돌아갈 수 없는 외나무 다리 위에 놓여 있지는 않았다. 1925년, [바우하우스 총서] 제 1권의 표제에서 전면적으로 등장했던 국제주의 양식(Internationale Architektur)과 더불어 1928년 결성되었던 근대 건축 국제회의였던 CIAM(Congres Internationaux d'Architecture Morderne)에서처럼, 건축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 건축적 형태와 사회적 형식의 개선, 그리고 정량화, 보편화를 아우르는 규칙성(regularity)에 대한 미학적 원칙으로 부상했던 것은 주지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표현주의로 수렴될 수 있는 과거 양식과 기능주의 간의 절충 또한 지역적 맥락 속에서는 유효했음을 저자는 놓치지 않는다. 1900년 대 초까지도 독일은 그 지역에 따라 북쪽의 벽돌로 표현되는 토착적 건축 형식과 중부의 절충식, 그리고 남부의 백색 건축으로 그 표현이 일률적이지 않았음을 보여 준다. 건축은 결국 그것이 자리한 장소와 호응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국제건축전시회(Internationale Bauausstellungen)의 약자였던 인터바우 전시회 중 피에르 바고가 설계한 8층 공동주택. 기능적인 구성 속에서 반복성을 탈피하려는 입면 구성이 엿보인다. 


이처럼 절충과 극단을 오가며 주거건축의 양상이 지역 별로 나타나는 시기를 지나, 2차세계대전 이후 베를린 서쪽 지구에 지어진 1957년 인터바우(Interbau) 건축 전시회을 계기로 주거건축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 종합되기도 했다. 진보된 기술과 재료를 통해 새롭고 상징적인 주거지를 보이는 국제적인 장이었던 이곳은 고층화와 반복적인 구성 속에서도 엘레베이터를 별도의 타워로 설치하거나, 그동안 보였던 지나치게 획일적인 공간 구성에 대한 반성과 함께 표현주의적 면모도 함께 보여주는 등 다양한 구성의 주거공간도 함께 나타났던 것이다. 이는 저자의 말처럼 저렴하고 평균적인 주거의 대량 공급이 아닌, 계획적, 그리고 미학적 측면에서 새로운 의미를 찾는 과정이었다. 물론 비용이라는 현실 속에서 60년 대 이후 그것이 제대로 실현되지 못한 것은 한계였지만, 어쩌면 이를 계기로 고밀화된 단지 형태의 주거건축이 돌고 돌아 우리나라에도 깊은 뿌리를 내린 것인지도 모른다.    


낡았지만 새로운, 역사와 지역성의 등장

국제주의와 기능주의의 경향은 70년대까지 꾸준히 이어지지만, 지나친 획일화와 몰개성에 대한 탈피의 시도들은 70년 대에도 지속적으로 시도되었다. 조형적인 측면에서 변화를 주려고 했고, 이는 기술의 실험과 결합되며 기존의 구성과는 다른 주거건축의 모습들이 등장하게 된다. 기존의 '나누기식(divisionally)'이 아닌 '더하기식(additionally)'의 계획 방법을 통해 단위 세대, 모듈의 결합과 증식으로 전체 건축물이 구성되는 방식을 취한 것이다. 이는 당시를 풍미했던 메타볼리즘의 속성과도 잘 맞아 떨어지는 부분이었다. 세계 각지에서 발표되거나 지어졌던 세포처럼 증식하거나, 서랍식 또는 플러그 인 구조의 공간을 사유하기에 알맞은 방법론이었다. 오토 슈타이들레가 뮌헨에 1974년 적용했던 프리패브 집합주택은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이기도 하다. 


1974년 오토 슈타이들레(Otto Steidle)가 설계한 Wohnanlage Genter Strasse. 
프리패브(prefab) 콘크리트로 집합주택을 구성하였다. 


70년대부터 서서히 주거의 수량에서 질과 환경으로의 관심이 이전되면서 도심부는 다시 주거지로서 서서히 각광받게 된다. 그러면서 도시 내에 누적된 역사성, 그리고 이를 표현하는 다양한 시대의 역사적 건물들에 대한 관심과 보호가 대두되면서 역사주의, 지역성과 같은 개념들이 수면 위로 올라오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움직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국제건축전시회가 또 다시 등장했는데, 베를린의 IBA 지구였다. 앞선 인터바우 전시회가 개최된지 30 여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역사적 지구의 통합이라는 목표 아래, IBA-Neubau (New Buildings)와 IBA-Altbau (Old Buildings)라는 두 가지 방법을 동시에 적용해 가며 공존을 모색했다. 


특히 주거건축에서의 가장 큰 변화는 그동안의 표준화 원칙을 버리고, 평면에 있어서 다양성을 모색했다는 점에 있었다. '형태로의 회귀'를 주장하며 건축 형태, 다양한 입면을 추구했다. 비례가 정확한 입면의 분할이라던지, 창의 형태, 아치, 고전적 기둥의 장식들이 추가되었다. 유럽과 미국에서 80-90년 대 유행했던 포스트모더니즘 조형을 앞서 엿볼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고전예술의 태양은 단 한번 빛났을 뿐이다.'라고 말한 모리시 모크나키(p.334)의 말처럼, 결국 역사성을 형태로 표현한다는 것은 고전의 모방 내지는 재구성으로 귀결될 수 밖에 없고, 이를 현대의 공간에서 어떻게 정교하게 적용할 수 있을지가 포스트 모더니즘 건축의 고민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근대건축에서의 지루함과 무미건조함에서 탈피한 풍부한 입면의 분절이 고전의 품위를 드러낸다. 이 또한 슁켈로부터 내려오는 독일 적 신고전의 전통이라 할 수 있다. 고전에서의 정신을 디테일한 장식으로 재현한 것이 아니라, 핵심적 공간 요소로서 재구성한 것이다. (p.336)
알도 로시의 표현은 포스트 모던 이후 주거건축이 추구하는 양 갈래 중 하나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하나의 갈래가 포스트모던의 다양성에 싫증을 느낀 후 등장한, 간결함을 추구하는 것이라면, 또 하나의 갈래는 이와 같이 고전 양식을 더욱 심화하여 재해석하는 경향이다. (p.345) 



한스 콜호프의 베를린 주상복합건물. 엄격한 비례와 그가 강조했던 여닫이 창의 모습. 


결국 누가, 얼마나 더 많이 고전을 해석하고 신중히 접근했느냐에 따른 것이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중적 취향이나 과거의 형식만 반복하게 되는 비판도 받을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포스트 모더니즘은 90년대 이후 무참히 사라졌지만, 이러한 논리는 언제나 재생산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미래에도 또 다시 유사한 방식으로 등장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대신 어쩌면 그 때는 그리스로마의 고전이 아닌 모더니즘이 새로운 고전으로 인식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어찌되었든 저자 또한 그 한계를 인식하면서도, 당시에 '잘 만든' 포스트 모더니즘 주거건축을 소개해 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로시 뿐 아니라 잘 알려져 있지 않았던 한스 콜호프의 건축 과정은 분명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있었다. 



주거 건축의 양식이 갖는 의미

그로피우스가 '예술적 재능이란 그 시대에 대한 최대한의 이념(Gesdanken)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말한 것처럼, 주거건축 또한 당대의 시대정신이 녹아 있는 것(thing)이자 공간이다. 특히 건축은 안과 밖, 표피와 내부의 공간으로 구성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사이의 관계를 언제나 염두에 둘 수 밖에 없다. 계획가는 대체로 그 둘이 일치하기를 바라지만, 책의 다양한 사례들처럼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또한 지금의 주류 담론은 여전히 역사성과 지역성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그 또한 반드시 절대적인 것만은 아니다. 지금처럼 어느 시대보다 공간이 사람의 행위를 구속하지 않는, '대지'와 '행위'가 분리된 삶을 살아가는 환경 속에서, 건축 또한 자리한 장소에서 탈착될 가능성이 항상 존재한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거건축은 여전히 장소지향적이며 또 대량 생산의 논리가 작동하는 주요 영역이다. 21세기가 훌쩍 지난 현재에도 대부분 동일한 평면 구성을 가진 주거 공간 속에서 위, 아래 누가 사는지 모르면서도 함께 부대끼며 살아가고 있다. 경제적인, 그리고 사회, 문화적인 이유로 주거건축은 쉽게 바뀌지 못하는 한계도 있다. 그래서 그 현재의 주거건축이 밟아온 그 흔적들을 따라가는 것이 의미 있다. 핸젤과 그레텔이 뿌린 과자 부스러기는 새들이 다 쪼아 먹고 말았지만 다행히 주거건축에서는 아직까지 그 발자취들이 곳곳에 남아 있다. 저자는 독일을 대상으로 그것을 따라 다니며 소개해 준 것처럼, 이러한 과정은 어디서든 시도해볼 수 있는 흥미로운 연구 방법이다. 


저자도 건축양식은 그것이 새로이 출한한 시대에만 존재 의미가 있다고 말하며, 그것을 재현할 수 있다고 해서 그것과 동일한 의미를 받을 수 없다고 하였다. 공감한다. 저자의 목적처럼, 주거건축에서의 양식은 그동안 큰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분명 시대적으로 그 양상이 구분할 수 있을 정도로 차이가 있고 그 양식은 결국 그 시대를 거울처럼 비춘다. 100년 동안의 독일이 그랬던 것처럼, 나아감과 돌아봄의 반복 속에서 우리는 이 시대의 필요성을 찾는다. 근대성은 여전히 진행형인 것처럼, 건축에서의 양식 또한 다시 돌아볼 가치가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은 꾸준히 뒤적이게 될 것 같다.  




YES마니아 : 로얄 h****c 2020.06.23.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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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욕구의 집합, 주택(Wohn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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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기생충>이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으면서 주인공이 살던 ‘반지하’ 주택 또한 외신을 통해 조명 받고 있다. 반지하 주택의 연원은 남북 갈등이 고조되었던 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국가 비상사태를 대비하여 정부가 신축 저층 아파트의 지하를 벙커로 사용하도록 의무화하면서 반지하가 처음으로 등장했다. 반지하를 거주 시설로 사용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었으나 이후 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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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기생충>이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으면서 주인공이 살던 ‘반지하’ 주택 또한 외신을 통해 조명 받고 있다. 반지하 주택의 연원은 남북 갈등이 고조되었던 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국가 비상사태를 대비하여 정부가 신축 저층 아파트의 지하를 벙커로 사용하도록 의무화하면서 반지하가 처음으로 등장했다. 반지하를 거주 시설로 사용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었으나 이후 1980년대 주택 위기의 도래로 합법화되었다. 최근에는 영화 <기생충>에서 그러했듯 초고층 아파트 내지 고급 주택과 대비되어 현 사회에 내재된 사회양극화를 상징하고 있다. 지극히 한국적인 개념인 반지하 주택, 그 곳에는 한국의 과거와 현재가 모두 담겨있는 것이다. 이처럼 주거 건축이 내포하는 의미는 지극히 사회적이고, 정치적이다. 주거 건축의 역사를 따라가다 보면 그 사회를 읽을 수 있다는 것이다.

가톨릭대학교 소비자주거학과 전남일 교수는 이러한 점에 주목, <독일 근현대 주거건축>에서 근현대 시기별로 독일의 주거 건축 양상을 살펴보고 있다. 더 나아가, 각 시기를 관통하는 시대정신(Zeitgeist)을 서술의 축으로 삼고 있다.

개괄적 역할을 수행하는 1부에서는 근현대 주거건축의 미학적 의미를 소개하고 있다. 단위 세대(cell)를 기본으로 한다는 점, 그리고 생산성과 비용 문제에 있어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에서 여타 건축물과는 달리 양식의 다양성에 있어 다소 보수적이다. 그럼에도 주택의 외관은 물론 주거블록 내에서의 배치, 내부적 공간의 배열 등 다양한 요소들을 통해 건축가들은 시대 정신을 주택 건축에도 반영하고 있었다. 이 때 시대정신이란 한 시대에 지배적인 지적·정치적·사회적 동향을 나타내는 정신적 경향을 의미한다. 당대의 사회적 요구, 문화적 동향, 혹은 대중적인 트렌드가 주택 건축을 통해 드러난다는 것이다.

?이어서 2부에서는 20세기 초반에서 출발하여 현재까지, 건축운동 및 양식을 통해 각 시기별로 대두되었던 시대정신을 살펴본다. 1920년대 들어 즉물성(Sachlichkeit)이 강조되면서, 그로피우스 역시 ‘삶을 위한 기계’로서의 주택 건축에 골몰하게 된다. 즉, 미적 가치의 원천을 기능과 기능을 구현할 기술에서 찾는 기능주의 원칙에 입각한 것이다. 그리고 1925년 바우하우스 총서 1권의 표제로 ‘국제주의 건축(internationale Architektur)’가 채택되면서, 모든 지역에서 유효한 보편적인 건축을 의미하는 국제주의 이념이 탄생했다. 국제주의는 나치 시대를 거치며 토속적 양식으로 회귀하면서 잠시 쇠퇴하였으나, 전후 주택 공급의 부족으로 효율적인 주택 건축의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초고층 아파트·대규모 주택단지 등과 함께 후기 기능주의로서 부활하였다. 하지만 주택 공급이 어느 정도 안정되면서 거주의 양보다 질에 관심이 집중되면서 기능주의가 강조하는 획일성과 단조로움, 보편성이 비판받아왔고, 그 대안으로 지속가능성과 생태주의 등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다시 말해, 보편적인 거주자를 상정하고 획일적인 형태로 보급되던 주택 대신 보다 다양한 거주자 군상과 도시 전체와의 조화를 고려한 주택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신고전주의 등 다양한 사조와 결합되며 이 시기에 건축된 주택은 기존의 주택과는 사뭇 다른 양상을 보였다. 특히 1980년대 이후 단순함이 아름다운 것이라는 인식이 예술계 전반에 공유되면서 미니멀리즘을 반영한 주택이 대거 등장하였고, 이는 개인화된 라이프스타일과 프라이버시를 중시하는 현대인의 니즈에도 잘 부합하며 인기를 끌었다. 최근에는 딩크족과 같이 새롭게 등장한 구성원 조합은 물론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미분화된 생활양식을 반영한 주택도 등장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3부에서는 아무리 기술이 발전하여 복제와 재현이 용이해진다 하더라도, 진정한 ‘양식’은 당대의 요구를 실현함으로써 창조되는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독일에서의 주거건축은 소비나 자본의 논리에 경도되지 않은, 시대정신의 산물이라는 위상을 유지하고 있다. 그렇기에 시대적 욕구를 보다 명확하게 반영할 수 있는, 근대 양식을 벗어난 새로운 건축양식이 필요함을 피력하며 글을 마무리하고 있다.

?여행을 다니면서 본 유럽의 다른 도시들에는 도시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가 있었다. 도시마다 상징적인 건축물이 있고, 그 주제는 다른 건축물에서도 반복된다. 그러나 베를린을 처음으로 방문했을 때는 도시의 건축 양식에서 일관성이나 통일성이 한 눈에 보이지 않았기에, 도시의 성격을 뚜렷하게 파악하기 어렵다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오히려 그것이 여러 시대정신의 집합임을 알 수 있었다. 각 시대의 요구를 건축물로서 승화하면서 당대 독일 건축가들은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 것이었다. 전남일 교수가 독일 곳곳을 돌아다니며 직접 답사하고 사진을 찍으며 완성한 이 책을 읽으며 독일 근현대사는 물론, 사회적 열망의 변천사를 느낄 수 있었다. 특히 이 분야에 관해서 국내 자료가 희귀하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 있는 서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다만 저자도 서문에서 지적했듯이, 독일 분단 당시 동독의 주택에 관해서는 다루지 못하고 후속 연구의 몫으로 남겨두었다. 동서로 분단되었던 역사적 배경에서 기인한 건축 양식의 차이가 독일 근현대 건축사에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이전 건축 양식 혹은 레퍼토리의 반복보다는 재건축이 대세였다는 독일의 특수 상황을 감안한다면, 아쉬운 지점이다.

?한국에서는 지나치게 빠른 산업화로 인해 주택의 의미가 독일에서의 그것과는 다소 다르게 자리 잡았다. 주택에서의 ‘거주’가 중심이 되었기에 대중의 시대적 욕구가 반영될 수 있었던 독일의 주택과는 달리, 한국에서는 주택의 ‘소유’와 이를 통한 수익 창출에 방점이 있는 것이다. 즉, 한국에서의 주택 건축은 어느 정도 소비적 논리에 포섭된 경향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영화 <기생충>에서도 주택이 상류층과 하류층의 경제적 차이를 보여주는 장치로서 기능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또한 설사 당대의 요구가 반영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정부의 생각이었지, 건축가 자신, 혹은 일반 대중이 원하던 것은 아니었다. 주택은 빠른 산업화 속 생산의 대상이었을 뿐이었기 때문이다. 다행인 것은 최근 ‘집’의 의미가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젊은 세대는 더 이상 집을 부를 늘리는 수단으로만 보지 않는다. 대신 내가 머무르는 곳, 일상적인 욕구를 충족하는 곳으로 집을 생각하는 경향이 커지고 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집의 사용 가치를 다른 곳에서 찾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거시적으로는 시대정신, 미시적으로는 사람들의 니즈가 담긴 주택을 찾아볼 수 있길 기원해본다.
w*****7 2020.02.28.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