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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종의 컨셉북이다. 버스, 정류장이라는 이미연 감독의 영화가 나오고 아마도 비슷한 시기에 서점의 진열대에 깔렸을 책. 이 책에는 신경숙을 비롯해 영화와 관련이 있거나 없는 스물 두 명의 글쓴이들의 버스 or 정류장에 관한 기억이 담겨져 있다.
스물 두 개의 글 중에 가장 재밌는 것은 김지운 감독(조용한 가족과 반칙왕을 만든)의 글이다. 그 글에서는 성석제의 끼가 느껴진다. 어찌되었든 글을 읽다가 문득 아, 내게도 버스 or 정류장과 관련한 기억이 있을까 짚어본다. 그리고 딱 두 개만 끄집어내본다.
1. 읍내로 나가는 버스 - 고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이던가. 세상과 단절된 채 세상을 향해 나아갈 작정이었는지, 여름 한철 공부방으로 할머니댁을 선택한 적이 있었다. 그때까지도 나무와 짚을 태워 가마솥에 밥을 해야 했던 그곳에서 난 한 달을 보냈다. 아흔보다는 적고 여든은 넘기셨을 당시의 할머니는 후미진 그곳에서 한 달을 버틸 작정을 한 손자를 위해 매일 새벽 버스를 타셨다. 버스 정류장이 있는 곳까지 사십분을 걸어야 하고, 버스를 타고 또 사십분을 달려야 당도할 수 있는 읍내에 나가 살아 펄펄거리는 꽃게를 사오시기를 멈추지 않으셨다. 오며가며 세 시간의 거리를 무릎쓰고 항상 내 아침 밥상에는 꽃게탕이 마련되어 있었다. 그렇게 한 달여를 먹어 놓고보니 그 다음부터는 꽃게는 고사하고 모든 게를 멀리하게 되었다. 그로부터 사년여가 지나 할머니는 돌아가셨다. 마지막 일년 동안은 서울의 집으로 올라와 함께 계셨다. 나는 할머니를 위해 아파트 안팎을 고루 함께 거니는 수고 아닌 수고를 감수했다. 하지만 그분을 위해 버스를 타고 세 시간여를 움직인 기억은 없다. 그리고 지금도 나는 꽃게탕은 잘 쳐다보지도 않는다. 할머니의 짠한 손맛이 묻어나지 않은 꽃게탕은 내게는 꽃게탕이 아니기 때문이다.
2. 종점여행 - 교회에 다닌 적이 있었다. 딱히 신을 믿어서는 아니고, 그저 새벽녘 아무도 없는 예배당의 분위기가 좋았을 뿐이다.(방언하는 아주머니들이 없을 때라는 전제하에) 그곳에서 여자 아이를 하나 만났다. 나보다 한 학년이 아래였던 그녀와 태어나 처음으로 종점여행이라는 것을 해보았다. 일명 날라리과인 그녀와 내가 어떻게 친해졌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그녀와 내가 나눈 가장 긴 대화는 그녀의 생리통에 대한 것이었던 기억만 난다.(생리통이 있는 날이면 아예 학교를 쉬어야 할 정도였다고 말하는 그녀와 난 무슨 이야기를 그리 오래 나누었을꼬) 그리고 내 대학입시가 끝난 어느날 지금은 타박골이라는 이름의 유흥가가 된, 당시만 해도 백야와 블랙(아 뒷부분은 기억나지 않는다) 뭐뭐라는 딱 두 개의 카페가 존재했던, 신천의 어느 즈음에서 그녀를 만났다. 우리는 그중 하나의 카페에서 차를 마시고, 포장마차에서 술을 나누어 먹는 동안 모든 돈을 썼고, 왠지 헤어지기 싫었다. 그리고 우리는 새벽이 시작되는 그 정류장의, 아직은 어두운 기색이 완연한 정류장에서 아마도 그날의 첫번째 운행이었을 버스를 잡아 탔다. 번호도 기억나지 않고, 그러므로 당연히 노선도 알지 못하는 버스의 맨 뒷좌석에 자리를 잡은 우리는 데면데면 흔들리며 술기운에 노곤해진 서로의 몸에 기댔다. 떠오르는 말도 없고, 그렇다고 진한 스킨십을 나눌만한 사이도 아니었던 우리는 그렇게 마냥 흔들거렸다. 난방의 흔적이 없는 버스에서 우리는 조금씩 몸을 밀착시켰지만 그것으로도 온기는 채워지지 않았다. 잠시후 우리는 손을 잡았고 자신의 손이 시려울 때면 한번씩 상대방의 손에 입김을 불어넣어 주었다. 그러는 동안 버스는 반환점을 돌았고, 자신이 달려온 길을 거슬러 종점에 도착했다. 한번도 와보지 않은 그 버스의 마지막 정류장에 내려진 우리는 다시 한번 주머니를 뒤졌고, 아마도 기사 아저씨들을 위해 새벽 영업을 하는 듯한 구멍가게에 들어가 딱딱한 초코파이를 두 개 샀다. 그리고 한 구석에서 뜨거운 라면 국물을 들이켜는 아저씨들에게 곱지 않은 눈흘김을 받으며, 라면 국물을 향해 애처롭게 눈을 흘기며 얼어붙은 파이를 꾹꾹 씹었다. 그렇게 입안의 초콜릿이 깔끔하게 사라질 즈음 다시금 밖으로 나가는 버스를 잡아 탈 수 있었다. 돌아오는 길? 물론 우리는 다시 손을 잡았다. 왜? 추웠으니까. 우리들이 살고 있던 대단위 아파트 단지의 정류장에 내렸을 때 날은 겨우 밝아오고 있었다. 우리는 버스를 내리며 그제야 잡았던 손을 놓았다. 그리고 그후로는 그 손을 다시 잡아보지 못했다.
사실 버스, 정류장에 대한 기억을 끄집어 내자면 한도 끝도 없을 것 같다. 하루종일 버스표를 똑같이 그리는 것에 열중했던 친구의 뒷모습, 우둘투둘한 시골길을 곡예라도 하듯 튀기며 운행되던 버스 안에서의 멀미, 같은 버스를 타는 여학생과 시간을 맞추기 위한 지난한 노력, 앞자리 여학생의 머리카락 한 올을 손가락에 힘주어 쥐고 있다 급출발할 때의 반응을 지켜보던 반페미니즘적인 치기, 버스를 잘못타 예정보다 다섯시간이나 늦은 소풍의 귀가길에 형을 목놓아 부르며 울던 동생의 후줄근했던 면상 등.
컨셉북이라는 취지에 걸맞게 책은 재밌다. 특히 386 세대이거나 그보다 조금 윗질의 세대라면 간혹 와우, 기분좋게 글 속의 그들과 맞장구칠 수 있으니 더욱 재밌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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