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른으로 산다는 것 김혜남 웅진씽크빅/2021.8.5. sanbaram
우리는 일정한 나이가 되면 어른으로 취급받는다. 그러나 물리적인 나이가 충족된다고 하여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어른이 되는 걸까? 이에 대한 하나의 답을 <어른으로 산다는 것>이란 책에서 제시하고 있다. 서문에서 “어른으로 사는 것은 결코 슬픈 일이 아니다. 그것은 삶을 깊이 이해함으로써 인생에서 진정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고, 마음의 평화와 행복을 찾아가는 과정이다.(p.8)”라고 말하고 있다. 그래서 ‘지금 나이 드는 게 참 좋다’고 말하는 저자 김혜남은 고려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국립서울정신병원에서 12년 동안 정신분석 전문의로 일했다. 저서로 <서른 살이 심리학에게 묻다>, <심리학이 서른 살에게 답하다>, <나는 정말 너를 사랑하는 걸까?> 등이 있다.
<어른으로 산다는 것>은 네 개의 장으로 되어 있다. ‘1장. 내 맘 같지 않은 사람들, 내 뜻대로 안 되는 세상. 2장. 혹시 당신도 어른으로 사는 게 두려운가? 3장. 제2의 성장통을 겪고 있다면. 4장. 왜 나만 우울한 걸까?’ 등이다. 이 책에서는 심리학자의 입장에서 어른다운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어른답지 못한 행동과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의 마음이 어떠한지 이야기한다. “‘아이는 아이 다워야 하고, 어른은 어른다워야 한다’라고 말한다. 이 둘을 가르는 가장 큰 기준은 자기중심적인가, 현실적인가 하는 행동방식에 있다. 다시 말하면 쾌락원칙에 따라 행동하면 아이이고, 현실원칙에 따라 행동하면 어른이다.(p.18)” 그래서 아이가 하고 싶은 것을 참으며 현실의 이모저모를 너무 깊게 생각하면 ‘애늙은이’라 부른다. 반면 어른이 현실은 제쳐두고 자기가 하고 싶은 것만 하려고 들면 ‘철이 덜 든 사람’이라 부른다. 내 짐을 내가 들고 인생의 방향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 그 인생길을 가는 동안 누구를 만나고 누구를 만나지 않을 것인지 선택할 수 있는 자유, 아마도 그것이 나잇값의 대가로 얻는 가장 큰 선물일 것이라고 말한다.
“누군가에게 ‘사랑한다’ 라는 말을 들었던 순간을 기억하는가. 그말은 우리 가슴 밑바닥 속에 잠자고 있는 어떤 열망을 깨워 놓는다. 사랑이라는 단어 안에서 우리는 누군가와 온전히 하나가 되는 꿈을 꾼다.(p.39)” 더이상 외롭지 않고, 나의 모든 것을 이해받을 수 있고, 그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이 되는 꿈을 꾸는 것이다. 우리는 아주 어릴 적 엄마 품에서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으며 엄마와 하나인 듯 한 느낌을 가졌다. 그런데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면 이 느낌에 대한 기대와 희망이 불꽃처럼 다시 살아난다. 모든 것이 완벽하게 하나로 합쳐졌던 유아기의 포근하고 행복했던 기억에의 그리움이 밀려오는 것이다. 그러나 기대했던 것과 같은 완벽한 사랑을 느낄 수 없게 된다. 상처 없는 사랑은 없다. 중요한 건 사랑의 치명적인 상처를 어떻게 피해 가며, 상처를 입었을 때 어떻게 치유해 나가느냐가 중요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피터팬처럼 영원히 늙지 않고, 세속에 물들지 않는 천진난만함을 간직할 수 있다면, 피터 팬처럼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늘 신나는 모험과 아찔한 스릴을 즐기며 재미있게 지낼 수 있다면 그리고 피터팬처럼 세상 모든 사람들의 동경과 사랑을 받으며 어떠한 책임을지지 않아도 된다면 얼마 좋겠는가.(p.62)”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현대판 피터 팬은 대부분 중산층 이상의 가정에서 자라고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들에게서 많다. 그런데 이 피터 팬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리는 그들의 가벼움과 쾌활함 뒤에 숨죽이고 있는 또 다른 모습을 만나게 된다. 사랑을 절실히 원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동정과 보살핌을 받고싶어하는 아이의 얼굴. 사람들이 하지 않는 화가 난 아이의 얼굴. 그리고 항상 호언장담하는 얼굴 뒤로 두려움에 떨고 있는 아이의 얼굴이 보이는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이 같은 현실의 피터 팬들은 주위 사람들까지 고통스럽게 한다. 사실 아동기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행복했던 시절만은 아니다. 행복했던 어린 시절에 대한 집착은 성인이 되고 싶지 않은 우리의 마음이 만들어 낸 판타지에 불과한 것이다.
“우리는 행복해지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나지는 않았다. 태어난 것은 내 뜻과는 무관한 것이었다. 그러나 생명을 얻고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행복해지길 원한다. 그러면서도 행복은 내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주어지는 것이라 착각하고 살아왔다.(p.101)” 행복은 오히려 덜어냄으로써 찾아온다. 가지지 못한 것들에 대한 욕심을 덜어내는 것, 나에 대한 지나친 이상화를 포기하는 것뿐만 아니라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애도할 수 있는 능력이 꼭 필요하다. 왜냐하면 크고 작은 애도의 과정을 거쳐야 우리는 비로소 어른이 될 수 있다.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계속 떠나보냄과 맞아들임을 반복해야 하기 때문이다. 어차피 인생이란 여러 가지 이해하지 못할 일이 일어나는 불가사의한 것이다. 그 일들을 극복하고 행복을 찾는 것은 바로 당신에게 달려있다고 강조한다. 당신이 고통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 그것은 곧 행복을 느낄 수 있는 능력도 이미 당신에게 있음을 의미한다는 말이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절실히 원하기 때문에 상처받는 것이다. 기본적인 생존의 욕구 말고도 우리는 사랑받고 싶어 하고, 최고가 되고 싶어하고, 안전하게 있고 싶고, 또 나만의 자율성을 지키고 싶어 한다.(p.113)” 하지만 이러한 수많은 욕구들이 완전히 충족될 수는 없으며, 다른 사람들의 욕구와 충돌하면서 상처와 흔적을 남긴다. 그리고 그 상흔을 통해 우리의 한계를 깨닫고, 어떻게 해야 할지를 알게 되며, 세상을 배우고 인생을 이해하게 된다. “결혼은 본질적으로 비극적인 관계다. 상대로부터 채워지지 않는 욕구들이 미움과 증오를 키우기 때문이다.(p.47)” 그럼에도 결혼생활의 본질을 설명할 때 미움과 증오라는 잔혹한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우리를 움츠러들게 만든다. 만일 자신이 다정다감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배우자에 대해 미움과 증오 깊은 난폭한 감정이 생긴다는 것조차 스스로 납득하기 어려울 것이다. 용서란 내 마음에서 분노와 미움을 떠나보내는 작업이다. 그래서 내 마음이 다시 고요를 되찾아 더이상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현재와 미래를 바라보며 떠날 수 있게 하는 작업이라고 한다.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기다려야 한다. 기다림의 시간 동안 많은 일을 만나고 더 넓은 어른들의 세상과 부딪히게 된다.(p.153)” 그 속에서 좌절과 실망도 경험하고, 세상은 그리 만만하지 않으며, 어른들이 그다지 힘이 센 것도, 뭐든지 할 수 사람도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부모가 아이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줄 수 있는 만큼의 사랑과, 할 수 있는 만큼의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부모 노릇이 힘들다는 사람들은, 너무 좋은 부모가 되려고 애쓰지 말아야 한다. 이상적인 부모는 상상 속에서나 가능한 것이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생각만큼 어렵거나 쉽지 않다. 지금부터 당신의 느낌에 집중하라. 무언가를 느끼고 싶다면 세상으로 뛰어 들어가 온몸으로 부딪혀 보라고 한다. 인생의 가장 큰 행복은 사소한 것들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진정한 어른이 되어 갈 수 있다고 하는 말에 공감이 되었다.
|
|
우리나라 비정규직 근로자가 600만 명 시대'에 들어섰다고 한다. 은퇴한 베이비붐 세대를 포함해 50, 60대 부모들이 적극적으로 일자리를 구하면서 저임금 비정규직도 마다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중에 대졸이상이 31%를 차지하는 현실을 보면 나이들어 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실감한다. 이 통계만 보더라도 어른으로 산다는 것이 어려운 이유의 대부분은 경제적인 것이고 이 문제로부터 자유로운 어른이 거의 없는 것을 보면 개인적인 문제라기 보다 점점 더 구조적으로 고착화되어지는 이 사회에 문제가 있다. 이런 현실을 반영하듯 김혜남은 이 책을 통해 어른으로 산다는 것의 어려움을 이야기하며 다방면으로 문제의 원인을 분석하며 해결책을 제시한다. 그러나 그는 경제적이고 사회적인 접근이 아니라 개인이 가지고 있는 내적 상처를 진단하고 치유한다. ‘소중한 것들을 잃어버려서 아프고 괴로운데 그런 우리는 기다리고 있는 것은 냉엄한 현실뿐이다. 살아남기 위해 수 많은 경쟁을 거쳐야 하며, 어떤 것도 대가 없이 그냥 주어지는 법이 없다. 나이 들수록 책임감으로 더욱 고달파 하면서 인간미마저 잃게 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산다는 것은 슬프고 고되다. 게다가 현대 사회는 우울조차 두려워 한다. 우울을 패배와 무능의 결과로 보고 우울을 부정하는 것이다. (프롤로그 중에서)
저자가 제기한 문제에 공감하기 때문에 『서른 살이 심리학에게 묻다』를 통해서는 이 땅의 서른 살 젊은이들의 마음을 움직여 60만부의 책이 판매가 되었다. 이것만 보더라도 우리시대의 많은 젊은이들이 아픈 삶을 살고 있고 그녀로부터 따뜻한 위로의 말을 듣고 싶다는 반증이 될 수 있다. 자신이 힘들고 어려울 때 누군가 작은 사랑을 담은 말 한마디로 인해 커다란 힘을 얻게 된 경험이 있다면 그것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녀의 위로는 한걸음 더 나아가 중장년의 삶을 진단하고 따뜻한 위로의 손길을 내민다. ‘어른으로 산다는 것 – 플러스 에디션‘이란 제목으로 개작이 되어 이 책이 5년만에 재출간된 것을 보면 우리시대가 가지고 있는 삶의 어려움은 점점 증폭되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하는 중년들의 숫자가 가파르게 늘어나고 있는 현실을 반영한 것이 아닌가?란 생각도 든다.
훈남에 정장으로 말끔히 치장한 남자가 놀이공원에서 목마를 타고 있는 표지 그림은 이 책의 주제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이 한 구절은 그 원인을 확실하게 진단한다. 외모는 멋진 어른이지만 그 내면은 자라지 못해 어린아이로 남아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심리학은 언제나 어릴적의 상처를 끄집어 낸다. 모든 문제의 원인을 어릴 때 치유되지 않은 상처에서 찾는다. 그 상처는 육신이 아니라 내 정신이나 영혼을 아프게 하기에 겉으로 잘 들어나지 않는다. 그러기에 치유되지 않은 내면의 상처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겉으로 보았을 때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보이지만 어는 한 순간 자신의 내적인 상처를 건드릴 때 그 아픔으로 분노를 일으키며 사람이 달라진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당장 내 안에 가지고 있는 상처나 고통, 원한 등을 씻어내라고 한다. 영화 ‘데인저러스 메소드’의 주된 줄거리도 어릴 때 아버지에게 구타를 당한 기억으로 인한 굴욕감으로 괴로워하는 사비나가 융을 통해 트라우마가 치유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영화는 사비나가 부족하거나 못났기 때문이 아니라 아버지가 준 상처 때문이라고 말한다. 사비나가 아버지를 이해하고 용서했을 때 상처는 치유되고 그 아픔에서 벗어나지만 융과 사비나는 서로에 대한 성적충동을 이기지 못하고 불륜의 관계를 맺는다. 인간은 하나의 상처가 치유되면 또 다른 상처가 생기기 마련이다. 두 사람이 가지고 있는 서로에 대한 욕망은 어떻게 치유가 될 것인가? 결국 또 하나의 상처를 남기고 고통은 계속될 것이다. 이런 구절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그것은 우리가 슬픔을 어떻게 맞이하고 어떻게 떠나보내느냐에 달려있다.
“자신을 몇 %나 신뢰할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어른으로 사는 법의 핵심이다.
|
|
어린 시절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던 가장 큰 이유는 아이로서 세상에 대해 느끼는 불가항력으로부터 어른은 훨씬 자유로울거라는 근거없는 믿음 때문이었다. 이를테면 돈을 버니, 사고 싶은 물건이나 먹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살 수도 있고, 어른들에게 야단맞거나, 지겨운 학교를 다닐 필요도 없으며, 아이라고 금지된 여러가지 행위(늦은밤 TV시청이나 제한등급의 영화보기 등)나 다양한 장소에도 마음대로 갈 수(술집, 오락실, 당구장, 다방 등) 있는 권리 등이 그것이다. 멋지게 차려입고 회사로 출근하시는 아버지의 모습이나, 밤 늦게 거나한 취기로 따듯한 통닭을 사오셔서 뿌듯해하시는 모습 등도 어른에 대한 막연한 동경을 만들어내는데 일조했지 싶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그런 동경은 아이와 부모라는 관계 속에서만 보여지는 어른이라는 존재의 지극히 작은 한 조각을 토대로 만들어진 불완전한 것이다. 더 많은 책임이 주어지고, 더 많이 외롭고, 더 많은 고민을 안고 살아야하지만, 그 외로움이나 고민을 해소할 수 있는 수단이 훨씬 더 적은게 어른의 위치라는 것을, 그래서 끊임없이 자신을 단련시키고 긴장시키지 않으면 세상으로부터 어느날 갑자기 소외당하거나 버려질 수 있다는 것을 아이들이 미처 헤아릴 수는 없기 때문이다. 부모와 자식, 스승과 제자간 훈육과 귀감이라는 관계 속에서만 어른을 접해온 아이들의 입장에선 상상조차 어려운 또 다른 세상의 모습이니까.
빨리 어른이 되고 싶다는 또 하나의 이유는, 단지 나이를 먹고 덩치가 커지기만 하면 현재 해결이 난해하거나 불가한 여러 문제를 거뜬하게 짊어지고 헤쳐나갈 능력이 생길거라는 어린애스런 사고방식 때문이다. 그러나,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그래서 어른이 된다는 것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스스로가 자신의 나이, 지위, 역할에 맞추어 자신의 미련과 동경, 몽상 등을 잘라내야 한다는 것을, 그래야 어른들만의 사회 속에서 온전한 어른으로 대접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어른이 되기 전까지는 알지 못한다.
때로는 어른이 되어서도 그 사실을 명확하게 깨닫지 못하거나, 깨닫더라도 그 깨달음을 어떻게 발전적 실천으로 연결고리를 이어가야할지를 몰라 망설이고 주저하거나 아예 손을 놓아 버리는 이들도 있다. 사회의 시스템이 고도로 정교해지며 스케일이 큰 인프라의 통제 하에서 하나의 작은 역할만을 기계적으로 수행해야하는 현대사회의 어른들의 경우는 특히 더 그렇다. 사회적응을 위한 교육기간은 전에없이 길어졌지만, 그 교육의 결과로 그들의 머릿속을 채운 건 정교하게 맞물린 상호작용의 사회 안에서 실수해 어그러지지 않고 잘 돌아가는 방법 뿐이다. 전체적인 사회 시스템에 대한 구조적 이해나, 삶을 알차게 살아가는데 필요한 노하우와 마음가짐, 행복정도를 최적화시키는 타인과의 공감 능력, 필요한 인관관계의 범주와 가정을 돌보고 전통을 세워나가는 방법 등은 어떤 교육과정 내에서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 조금 심하게 표현하면 이런 시스템 속에서 나이듦은 시스템화된 사회의 자양분 내지는 순정 부품화라는 의미는 있을지언정 어른이 된다는 것과는 다소 별개의 문제가 된 듯도 싶다. 이렇게 덩치 큰 성인이 된 많은 이들 중 스스로 노력을 통해 깨닫고, 자신을 훈련시킴으로써 어른으로서의 온전한 자리를 잡아나갈 수 있는 이들의 비중이 얼마나 될까.. 많은 이들이 그렇게 미처 어른이 되지 못한 채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아 키운다면, 그 아이들 역시 자신의 부모들로부터 어른에 대해 무엇을 배울 수 있을지. 부모의 입장에서 무력감을 느낄 수록 이런 생각들이 머리속에 자리를 넓혀간다.
가끔은 요즘 아이들사이에 생기는 여러가지 문제들의 책임이 미처 어른이 되지 못한 어른들에게 있다는 생각도 든다. 왕따 문제만 해도 그렇다. 어린시절부터 아이들이 스스로 친구를 만들게 지켜보기 보다는, 아이의 교우관계를 돕는다는 핑계로 이 아이는 이래서 가까이해선 안되고, 저 아이는 저래서 놀면 안된다는 이른바 <함께 놀 수 없는 아이들의 명단>을 부모가 만들어주고 있지 않는가. 그런 가르침 하에서 자란 아이들이 비슷한 수준과 능력, 취향 및 생각을 하는 아이만을 찾고, 그렇지 않은 아이들을 상대하는 건 당연하다. 부모의 가르침에 충실히 따른, 부모가 의도한 결과니까. 그런데, 결국은 이것이 다른말로 하면 바로 <집단 따돌림>이고 <왕따>가 아닐까.
이 책은 어른이 된다는 것을 쉽게 생각하는 어른들에게, 자신은 평균이나 누군가보다 전반적으로 우월하다고 간주하고 사는 나를 포함한 많은 어리숙한 어른들이 꼭 읽어봤으면 하는 책이다. 삶을 살면서 꼭 필요한 타인과의 공감 문제을 일깨우고, 행복을 누리기 위해서 필수인 버림과 비움의 미학을 알려주며, 스스로가 갈피를 못 잡은 채 아직 어린 아이의 마음으로 힘겹게 어른의 삶을 살아야하는 이들의 고뇌를 어루만져주기 때문이다. 어른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즉석에서 손가락을 꼽아가며 나름대로 정의할 수 없는 어른이라면 이 책을 읽는데 할애할 시간을 부디 아끼지 말길 바란다. |
|
'사는 게 뭘까?', 혼자 고민할 때가 있다. 누구도 딱 부러지게 '이것이다' 대답할 수 없는 근원적인 질문에 대해 나라고 무슨 정답을 내놓을 수 없기는 매한가지이지만 '사는 건 말이지, 삶에서 쌓은 기억들을 조금씩 나누어 주는 일이야. 그게 가족일 수도 있고, 친구일 수도 있고, 오늘 처음 만난 사람일 수도 있고, 만나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면 길가의 나무일 수도 있고, 문득 바라본 하늘일 수도 있고, 꼬물거리며 기어 가는 개미일 수도 있겠지. 그마저도 없다면 그냥 텅 빈 장소일 수도 있겠지. 언젠가 그 장소에 다시 가보면 그때 두고 떠났던 기억이 반갑게 나를 맞을 테니까.' 혼자 속으로 생각하곤 한다. 그런 생각이 들면서도 다른 사람은 어떨지 궁금하기는 하다.
김혜남 작가의 수필집 <오늘 내가 사는 게 재미있는 이유>를 읽었다. 왠지 낯이 익은 제목이다. 제목만 보았을 때는 혹시 몇 년 전 세상을 떠난 위지안 교수의 유작이 새로 나왔나 생각했었다. 유방암 4기의 몸으로 자신의 블로그에 남겼던 그녀의 병상기록 <오늘 내가 살아갈 이유>를 읽고 정말이지 나는 뭉클한 감동을 느꼈더랬다. 읽는 내내 먹먹해진 마음에 몇 번씩이나 눈물을 훔치기도 했고 말이다. 그러나 <오늘 내가 사는 게 재미있는 이유>의 저자는 유감스럽게도 위지안 교수가 아니다. <서른살이 심리학에게 묻다>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김혜남 교수가 이 책의 저자라는 사실에 나는 조금 놀랐다. 책의 제목을 갖고 시비를 걸 일은 아니지만 하필이면 왜 이런 제목을, 생각했었다. 그러나 책을 펼쳐 들고 조금만 읽어 보아도 저자가 왜 위지안의 책 <오늘 내가 살아갈 이유>와 비슷한 제목을 골랐는지 그 이유를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다.
짐작하겠지만 김혜남 작가도 환자의 몸이다. 그것도 파킨슨병이라는 불치의 병을 15년째 앓고 있단다. 이제 그녀는 잘 나가는 정신과 전문의가 아닌 보잘 것 없는 환자일 뿐이다. 나는 위지안 교수의 책을 읽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도대체 왜 그 책에 열광했을까?' 생각한 적이 있다. 작가의 과거 경력이 화려해서? 아니다. 글솜씨가 뛰어나서? 그것도 아니다. 공자나 노자처럼 학문의 깊이가 있어서? 그건 더더욱 아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뭐란 말인가?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그때 내가 그 책에 빠져들었던 일차적인 이유는 저자에 대한 동정심 때문이었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사람도 사는데..., 하는 심리, 바로 그것 때문에 나는 한결 편안해질 수 있었고, 살아갈 날이 나에 비하면 턱없이 짧을 것이라는 이유로 작가를 동정했었다. 말이나 글에서 느끼는 우리의 공감은 적어도 비교우위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물론 그 하나의 이유 때문에 감동하지는 않는다. 위지안 교수는 적어도 자신의 아집이나 에고를 모두 내려놓은 듯 편안해 보였었다.
"나는 내가 불치병 환자가 되어 의사로부터 몇 년 안 남았다는 소리를 듣는다면 남들과 다른 반응을 보일 줄 알았다. 그래도 의사니까 이성적으로 판단해 현실을 빨리 받아들일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울고불고 원망한다 해도 병이 사라지는 건 아니니까 말이다. 그러나 나는 남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내가 왜 그런 병에 걸려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고, 현실을 받아들이기가 너무 무섭고 끔찍했으며, 세상이 너무 원망스러웠다." (p.19)
책의 내용은 작가의 경험으로 채워져 있다. 자신의 병 때문에 발생한 일이며, 병에 걸린 이후에 사람들과의 관계며, 그럼에도 긍정적으로 살아가는 이유며, 스스로 깨달았던 삶의 노하우들을 꼼꼼히 적고 있다. 'chapter 1.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 chapter 2.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발짝 내딛는다는 것, chapter 3. 오늘 내가 재미있게 사는 이유, chapter 4.아들과 딸에게 보내는 편지, chapter 5. 삶과 연애하라' 의 5부로 구성된 이 책에서 나는 작가의 '버킷 리스트 10' 이 인상 깊었다. 1.그림 그리기, 2.우리나라 바다 한 바퀴 돌기, 3.다른 나라 언어 배우기, 4.맛있는 요리를 만들어서 대접하기, 5.나에게 상처 준 사람들에게 욕 실컷 하기, 6.세상의 모든 책 읽어 보기, 7.책 한 권 쓰기, 8.남편과 무인도에 들어가 일주일 지내기, 9.가족들과 행복한 크리스마스 보내기, 10.조용히 온 데로 다시 가기. 나는 마지막 10번째 버킷 리스트를 읽으며 짠해지는 마음을 어찌하지 못했다.
작가는 정신과 의사답게 자신의 문제는 아주 조금 풀어 놓았을 뿐 정신과 의사로서의 당부와 조언이 비교적 많았다. 작가의 몸은 점점 더 상태가 안 좋아지고 있음은 물론이다. 그럼에도 재미있게 살아가는 이유, 아니 그 고통을 이기고 재미있게 살 수 있는 이유가 독자들은 궁금하리라.
"그러나 생각을 멈추고 그냥 삶을 살아 보면, 연애하는 마음으로 기대와 설렘을 가진다면, 세상은 당신이 미처 생각지 못한 새로운 모습을 보여 줄 것이다. 또한 당신이 그 세상을 보고 감탄한다면 무의미한 오늘이 신나고 재미있는 하루가 될 수 있을 것이다." (p.287)
앞에서도 말했지만 나는 '삶이란 경험으로 축적된 내 기억을 어떤 대상에게 나누어 주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자면 평탄하게 산 까닭에 아무것도 들려줄 게 없는 인생을 살아서는 안 된다. 내 인생은 다른 어떤 인생보다 더 드라마틱해야 한다.누구나 내 마지막 순간에 내 머릿속 기억을 서로 차지하려고 안달한다면 나로서는 무척이나 행복할 것이다. 나는 내 삶의 기억이 소진되어, 어딘가에 뿔뿔이 흩어지기를 소망한다. 예컨대 홈쇼핑에서 삶의 기억도 판매된다면 내 삶의 기억이 순식간에 완판되기를 소망하는 것이다. 작가가 불치의 병을 앓으면서도 하루하루 재미있게 사는 까닭도 그와 같지 않을까 싶다. 마지막 순간에 완판을 꿈꾸면서 말이다. |
|
때로는 단순한 말이 도움이 될때가 있다. 오늘을 사랑하라. 삶과 연애하라는 말 같은. (삶과 연애하라는 이 책의 가장 마지막 챕터 제목이기도 하다.) 만약 이런 문장을 공공화장실 소변기 앞에서 보았다면 아무런 감흥이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우연히 읽기 시작한 김혜남씨의 이 책은 그런 내용임에도 파긴슨 병과 십년이상 싸우고 있는 그녀의 인생철학이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이었는지 단숨에 끝까지 읽혀졌다. 카페에서 커피를 리필해가면서 야외테이블에 앉아 보며 몇몇 문장은 노트에 옮겨적기까지 했다. 그리고 나는 노트북을 꺼내 생각나는대로 이 글을 적고 있는 중이다. 지금 이 순간의 감정을 다시 복기해본다. 내가 지금 정신적으로 힘든 시기인가? 그렇지는 않은 것 같은데. 인생이 재미가 없나? 그렇지도 않은것 같다. ~같은 것 같은데라는 말을 자주 쓰는것 같은데(지금도) 스스로의 감정에 솔직하지 못한거 아닌가? 어떠한 말이나 행동을 할때는 남을 위해서 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나를 위해서 하라는 말이나 인생을 재밌게 살라는 말, 인생은 결국 즐거운 시간들의 합만큼만 의미있는 것이라는 말 등이 참 와닿았다. 배려라는 이름으로 나를 잃어가고 있는건 아닌지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의 인생을 평가할 때 내 삶이 다른 사람들을 기쁘게 했는가도 중요하지만 먼저 내 인생의 기쁨을 찾았는지가 더 중요하기에. 매일매일 성장한다는 마음으로 살자. 마지막 부분의 문구도 인상적이다. 나이듦의 흔적일까. 중국의 현자가 물었다. 학문이 무엇입니까? -사람을 아는 일이다. 선은 무엇입니까?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다. 그래도 아래 문장을 마지막으로 다시한번 적어본다. '인생은 즐거운 시간의 합만큼만 의미있는 것이다.' 자꾸 되뇌이게 된다. 지금 나는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가. |
|
지난 스승의 날에 반갑게도 2-2 녀석들이 떼거지로 909 종점에서 종점 거리를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들여 우리 학교로 찾아왔다. 샘 책 좋아하는 걸 기억하고는 케익과 꽃다발과 함께 내밀던 이 책!! 김혜남 선생님 책은 "서른살이 심리학에게 묻다": http://minihp.cyworld.com/20966544/281617348 으로 만난 바 있는데 이번에 신간이 나왔구나. 파킨슨 병을 이렇게 오래 앓고 계셨는지 처음 알았다. 오늘 들은 설교에서도 고난과 고통을 통해 오히려 삶의 의미와 기쁨을 찾을 수 있다고 하셨는데, 책 제목과 부제처럼 김혜남 선생님은 책 내내 아픈 후로 삶을 더 재미있게 살려고 노력하시는 듯해 보였다. 녀석들은 왜 내게 이 책을 선물했을까?? 혹시 학교에서의 내 모습이 재미없고 힘들어보였던 건 아닐까??(너무나도 말 잘 듣던 2-2와 함께하던 해에 나는 참 좋았는데. 담임과 정보부장 일을 함께 하느라 업무량 때문에 지치긴 했지만 담임반 학생들 때문에 힘들진 않았다고 기억하는데, 학급에서 내 표정을 접하던 너희는 내가 본인들 때문에 힘들어했다고 생각하는 걸까.) 무엇보다 홀로 지내기를 편하게 생각하며 은연 중에 타인에게 벽을 쌓는 여성 이야기, 결혼의 좋은 점에 대한 이야기들을 읽으며 많이 배웠다. 마음을 공부하고 다룰 줄 아는 전문가가 자신의 연륜을 바탕으로 생을 먼저 산 언니처럼 부드럽게 들려주는 이야기에 마음이 열렸다. "아직도 결혼 못해서 어떡해?"라는 오지랖 어린 주변 어른들 이야기보다 훨씬 합리적으로 납득이 되는 이야기이다. "이 길이 맞을까 저 길이 맞을까, 우리는 늘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어떤 길로 가는 게 맞을지는 모르지만 내가 걸어간 길을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은 나의 몫이다. 배우자를 찾는다고 했을 때 그가 나와 맞을지는 누구도 모르는 거다. 어쨌든 그와 결혼해서 살아 봐야 맞는지 안 맞는지 알 수 있고, 설령 잘 안 맞아도 배우자를 내 남편 혹은 내 아내로 만들어 가는 건 내 몫이다. 물론 선택한 길이 틀릴 수 있고, 최선을 다했는데도 낭떠러지에 도착할 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두려워 한 발짝도 떼지 않으면 영영 아무 데도 못 가게 된다." 26쪽. "너희들이 언젠가 내게 물었지. 누군가를 만났을 때 그가 진정한 사랑인지 어떻게 아느냐고. 더 좋은 사람이 나타날지 누가 아느냐고. 그러니까 사랑에 너무 깊이 빠지지 않는 게 똑똑한 거 아니냐고. 그런데 운명의 짝은 불현듯 나타나는 게 아니라 서서히 만들어지는 거란다. 콩깍지가 걷혀도 우리는 그 사람을 사랑하고 더불어 사는 법을 배울 수 있다. 그의 장점과 단점, 약점과 강점 모두 총체적으로 받아들이는 거지. 그래서 사랑을 한다는 건 어마어마한 일이다. 나와 전혀 다른 세계를 살아온 사람을 껴안는 거니까." 195쪽. 최근에 학교 선생님들과 "미움받을 용기"를 읽으면서 칭찬의 폐해에 대해 이야기 나누었다. 실제로 주위에서 모두에게 칭찬 받으려고 눈치보며 말과 행동하는 사람을 볼 때 안쓰럽다. 이제 성인이라면 자신이 중요하게 여기는 점에 대해서는 당당하게 말하고 행동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다. 아래 내용은 이 책에서 사람들의 인정 욕구가 왜 이렇게 과도해졌는지를 밝히고 있는 부분이다. 결국 인정 욕구와 불신감은 한패였나보다. 사람을 믿을 수 있을 때, 내가 이렇게 말하고 행동해도 이 사람이 떠나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믿을 때 미움받을 용기를 가지고 말과 행동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더불어 주체적인 인간을 키우는 일이 그 자신의 인생을 위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 번 절감한다. "현대사회는 속도와 확산의 시대다... 그럴 때는 어떻게든 짧은 시간에 상대에게 강한 인상을 남기는 것이 중요해진다. 즉 남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중요해지는 것이다. 게다가 요즘 아이들은 아주 어려서부터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맡겨져 자란다. 바쁜 부모들은 아이의 양육을 다른 사람들의 손에 맡기면서 아이가 다른 사람들과 잘 지내는지에 더 관심을 가진다. 아이들이 일찍부터 타인에게 자신이 어떻게 보일지에 무척 민감해지는 것이다. 그런데 남이 날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중요해질수록 삶은 매우 불안정해진다. 자신의 생각이나 느낌에 대한 확신이 줄어들고, 자꾸 타인의 시선에 민감하게 반응하게 되고, 타인의 요구에 순응해야 할 것 같은 상태에 놓이기 때문이다. 이제 사람들은 타인을 절대적으로 필요로 하면서도 타인의 평가를 두려워하고, 동시에 자신을 통제하는 타인에게 분노하며 가까이 하고 싶어 하지 않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게다가 언제든 나에게 등을 돌릴지 모르는 타인을 어떻게 믿겠는가. 그 결과 사람들은 누구도 믿지 못하게 된다." 131-132쪽. 몸과 마음을 정신없이 움직이며 바쁜 일상을 살 수 있는 지금이 행복하다는 사실을 저자는 일깨워준다. 하지만 반대로 이렇게 분주할 때 재미와 의미 있는 삶이 아니라 그저 떠밀려 살아지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보며 살라고 거동이 불편한 온 몸으로 호소한다.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는 지금 더 재미있게 살고 있다고 이야기하지만, 예전에도 삶을 즐기며 살았으면 좋았을 거라고 책 내내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 오늘은 순간을 음미하는 재미있는 삶인가. 작은 일에 화내며 투덜거리고 싶어질 때마다 선생님을 기억해야겠다.
|
|
* 맘마미아2 : “인생은 짧고 세상은 넓어. 멋진 추억을 만들고 싶어!” * 오늘 내가 사는 게 재미있는 이유 : 파킨슨병을 앓으면서도 유쾌한 심리학자가 인생을 즐기는 법 *욥을 위한 변명 : 해석에서 공감으로, 6개월의 마지막 여정 초등학교 시절 미술대회에 수없이 나갔습니다. 주변 사람들로부터 그림 잘 그린다는 칭찬도 꽤 들었기에 자신감이 있었습니다만 아쉽게도 그 흔한 입선 한번 하지 못했습니다. 한번은 비 오는 봄날, 비원에서 향원정을 그리고 있었는데 데이트하던 누나가 제 스케치를 유심히 들여다보는 것 아니겠습니까? “연필 한번 줘 볼래?” 부끄러움에 얼굴도 제대로 쳐다보지 못하고 스케치 연필을 전해주었습니다. 짧은 시간 누나는 향원정의 봄 풍경을 멋지게 표현했습니다. 웃으면서 하는 말 “물감으로 예쁘게 덧칠하면 돼” 순간 제 가슴이 떨리기 시작했지만 아쉽게도 그 그림도 상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왜 제가 상을 받지 못했을까요? 제가 처음 경험했던 열등감이었기에 작은 상처로 남아있는데 이제는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자신만의 시선과 감성으로 공간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이 없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지금은 엄마 배 속에 있는 것 같은 편안함과 감성이 꽃을 피우는 영화관을 좋아하는데 내 시선, 내 감성을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맘마미아2가 개봉하는 날 설레는 가슴으로 영화관을 찾았습니다. 제가 아는 친구는 옆자리에 다른 사람이 앉는 것을 싫어해 표 3장을 예매합니다. 옆자리에 아무도 앉지 않는 공간을 확보한 후 영화에 집중하는데 그 작은 사치를 부러워한답니다.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저는 조조 영화를 좋아합니다. 이유는 그 벗과 비슷합니다. 숨 쉬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적막한 공간을 몇 사람이 채우고 있기에 영화는 자신만의 빛깔을 뽐내는 단풍처럼 제 감성을 예쁘게 물들입니다. 보통의 영화는 서사가 중심이 되지만 뮤지컬 영화는 이야기보다 노래와 춤, 아름다운 배경이 주가 되기에 감성이 호강합니다. 여기에 익숙한 리듬에 맞춰 약간의 몸동작도 가미할 수 있기에 이런 장르의 영화는 극장 문을 나서는 순간 “아! 행복해”라는 감탄사로 끝나게 됩니다. 맘마미아2가 좋은 영화라고 기억되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한순간 나를 행복하게 해 주었으므로” 더군다나 젊음의 한때를 ABBA와 함께 보낸 추억이 있는 나이라면 가슴속에 숨겨 놓았던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전하고 싶은 충동을 갖게 합니다. 이것이 음악의 힘입니다. 또 하나의 이유는 이 영화가 인생의 봄, 여름을 예쁘게 포장해 놓았기 때문입니다. 맘마미아2는 인생에 대한 불안, 걱정이 없습니다. 도나의 젊은 시절과 사랑을 멋지게 포장해 놓았기에 관객들도 쉽게 공감하며 행복한 삶을 꿈꾸게 됩니다. 영화 속에는 인생의 가을, 겨울이 거의 없습니다. 있다 할지라도 행복한 모습뿐입니다. 그러나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대부분 인생의 봄날을 지나 가을, 겨울로 향하고 있을 것입니다. 이 계절의 특징은 꿈꾸는 것보다 자신이 살아온 삶에 대한 추억을 이야기하는 것이 더 어울리기에 화양연화(花樣年華), 리즈 시절이란 단어로 자신을 포장합니다. 인생은 봄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원하지 않는 인생의 가을, 겨울이 찾아옵니다. 물론 황혼 녘의 인생을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습니다. 나이 들어서도 얼마든지 가치 있고 멋진 인생을 사는 분들을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병과 죽음이 가까이 와 있는 것이죠! 화려한 빛깔로 서쪽 하늘을 물들이던 석양이 한순간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것처럼 우리의 인생도 종말을 맞이할 수 있는 현실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정신과 의사보다 작가로서의 명성을 가지고 있는 김혜남은 80만 부가 팔린 베스트셀러 《서른 살이 심리학에게 묻다》 등을 통해 많은 독자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녀가 7년 만에 《오늘 내가 사는 게 재미있는 이유》란 신작을 발표했습니다. 제목만 보면 저자는 의사에 교수, 베스트셀러 작가등 모든 사람이 부러워할 조건을 가지고 있기에 그녀의 삶은 누가 봐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첫 페이지를 펴는 순간 그 생각이 얼마나 잘못되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녀도 인생의 가을, 아니 겨울 초입에서 만난 병마와 함께 힘든 싸움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흔은 누구에게나 인생의 절정기라 할 수 있습니다. 인생의 절반을 달렸기에 아직도 꿈꾸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이 가장 큰 축복입니다. 그런데 저자는 마흔세 살의 나이에 파킨슨병 진단을 받았습니다. 제가 이 병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무하마드 알리가 이 병을 앓다 죽었다는 것뿐입니다. 저자의 글을 읽어보면 이 병이 얼마나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드는지 알 수 있습니다. 김혜남은 15년간 파킨슨병을 앓으면서도 삶을 포기하지 않고 꿈꾸기를 멈추지 않았기에 인생의 소중한 교훈을 배울 수 있습니다. 지식전달이나 일방적 교훈을 전달하는 책이라면 반감이 있을 수 있지만, 그녀가 체험하고 이겨낸 삶의 기록이기에 책 속에는 진정한 감동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배우기를 포기하지 않았기에 저자는 오늘도 하고 싶은 것이 참 많습니다. “중국어 공부도 제대로 해 보고 싶고, 진짜 끝내주는 요리를 만들어 사람들에게 대접하고 싶고, 서해 남해 동해를 한 바퀴 쭉 둘러보고 싶다. 그렇게 지금 이 순간에도 꿈꾸기를 멈추지 않아서인지 여전히 사는 게 재미있다. 앞으로 병이 다시 악화되어 책을 더 이상 쓸 수 없게 되더라도 나는 그때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 하면서 재미있게 살고 싶다”라고 말합니다. 자신에게 찾아온 인생의 어둠 때문에 좌절하고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있다면 이 책은 분명 짙은 구름 사이를 뚫고 나온 한 줄기 햇살처럼 삶을 빛나게 해 줄 것입니다. 뮤지컬 ‘레미제라블’의 마지막 광경은 제 눈물샘을 가장 많이 자극했기에 명장면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장발장은 사랑하는 딸 코제트를 축복하고 ‘Bring Him Home’을 부르며 죽음을 맞는데 알피 보(Alfie Boe)의 미성과 함께 제 가슴을 더 먹먹하게 하는 것은 이 노래의 가사입니다. ‘하늘에 계신 주님 절 이제 데려가 보호해 주세요. 당신이 있는 곳에 나도 있게 해 주세요. 날 데려가 주세요‘ 얼마나 감동이 되었으면 이 노래를 제 장례식 때 진혼곡으로 쓰고 싶었을까요? 아니 쓸 것입니다. 부모님을 비롯해 친숙했던 이름들의 부음 소식을 들을 때마다 죽음은 한여름 밤에 내리는 소낙비처럼 어느 날 갑자기 자신에게 찾아올 수 있는 어두움입니다. 그럼에도 감사한 것은 장발장의 고백처럼 하나님이 계신 곳에 자신도 있을 수 있다는 믿음 때문에 죽음은 소망과 함께 맞을 수 있습니다. ‘욥을 위한 변명’은 그런 면에서 소중한 가치가 있습니다. “누구를 위해 사는가? 무엇을 위해 사는가?” 라는 무거운 질문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책의 저자인 안석모는 목사이고 감리교 신학대학 교수로 후학들을 가르치다 폐암에 걸려 60세의 나이로 고인(故人)이 되었습니다. 그는 죽기 전 6개월의 투병과정을 페이스북에 올렸고 그를 사랑했던 친구들은 이 책을 통해 그의 삶을 기억하도록 했습니다. 누군가에게 그리움이 된다는 것은 그만큼 그 사람이 잘살았다는 증거겠죠? 안석모 목사가 죽음을 앞에 두고 있을 때 그를 진단한 한의사는 “책을 놓으라” 고 권하지만, 저자는 “책을 끊는다면 무슨 재미로 사나”라는 혼잣말을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가장 이상적인 죽음을 ‘구구 팔팔 이삼 사(9988234)’로 표현합니다. 구십 구세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이삼일 앓고 4일째 간다는 뜻이라는데 이렇게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죽음이 비극적인 이유는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암 선고를 받았을 때 “눈물짓지 않고 애써 태연 하려 하였다. 더욱이 나는 목사이지 않은가!”라고 담담히 말합니다. 목사이기에 죽음을 맞이하는 자세도 달라야 합니다. 이것을 당위라고 믿기에 죽음은 자신에게도 부담과 함께 아픔으로 다가옵니다. 이렇게 안목사의 병상일지는 살고자 하는 희망과 목사이기에 죽음도 의연하게 맞이할 수 있는 존엄 속에서 쓰여지고 있습니다. 죽음과 사투를 벌이고 있는 그의 글은 정직한 내면의 고백이기에 이 책을 통해 많은 부끄러움을 발견합니다. 그러나 더 성숙한 믿음의 자세를 안목사는 친구들에게 전합니다. ‘신앙과 종교가 내게 힘이 되고 의미가 있는 것은 오히려 이 질병을 통하여 삶을 보다 깊이 있게 보고, 생각하고, 고통의 의미를 찾아보려고 노력하는 가장 좋은 길을 제시한다는 데에 있다. 아니, 그런 길 자체가 신앙이고 종교이다.’(99쪽) 저자는 이 믿음을 가지고 투병 생활을 지속하기에 그는 죽음의 문턱에서도 의연한 모습을 가지고 있고 이것이 주변 사람들에게 감동으로 비칩니다. ‘욥기를 위한 변명’은 살아있는 자에게 삶의 귀중함을 깨닫고 엉터리로 살지 말 것을 각성하게 합니다. 9월이 시작되었습니다. 아침, 저녁에 부는 선선한 바람을 피부에 느끼면 가을이 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계절의 가을보다, 제 인생의 가을, 아니 겨울에 대해 생각을 합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어!” 이 각성은 삶에 긴장감, 절실함을 가져다줍니다. 꿈꾸는 삶이 아니라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현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인다면 삶의 지혜를 가지고 성숙한 인생을 살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은행잎이 황금색으로 물드는 가을에 덕수궁 돌담길에서 시작해 교보문고를 거쳐 삼청공원에 이르는 길을 좋아합니다. 가을이 깊어지는 10월이면 꼭 그 길을 홀로 걷고 싶습니다. 인생의 겨울 앞에 서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께 희망을 두고 삶을 아름답게 마무리한 인생의 선배들을 통해 기분 좋은 가을내음을 맡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와 같이 걸을까요?”
|
|
신경정신과의원 원장으로, 아내로, 엄마로 남부러울 것 없던 저자는 2001년 마흔세 살의 나이에 파킨슨병 진단을 받았다. 자신에게 갑작스럽게 닥쳐온 불행을 받아들일 수 없어, 세상과 하늘만 원망하며 누워있기를 한 달 만에 문득 깨달은 하나는 '나는 아직 죽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 후 저자는 지금껏 살아온 인생에 '환자로서의 인생' 하나를 더해 살기로 했다. 하루 하루를 마지막 날처럼 치열하게 산 덕에 오히려 더 멋진 삶을 살고 있는 저자는 병을 앓고 난 후의 인생을 살면서 배운 삶과 깨달음에 대해 책에 담았다.
이런 책은 지리멸렬한 인생 같은 내 하루에 '레드불'같은 환기를 던져준다. 아울러 그저 잘 먹고 잘 자고 잘 즐긴 하루가 보람이 아니란 것도 새삼 느끼게 해 준다. 무엇보다 불행은 못난 사람만 골라 찾아오는 게 아니라는 바보같은 생각도 들게 한다.
잘 사는 것은 무엇일까? 내게 행복은 무엇일까? 에 대한 고민은 아무리 오래하고 자주해도 과하지 않다. 사람에게 멍때릴 시간이 필요한 이유는 바로 이런 생각을 하려는 때문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는데 큰 영감과 도움을 줄 수 있는 책이다.
특히 저자는 60만 권을 판매고를 자랑했던 베스트셀러 <서른 살이 심리학에게 묻다>를 투병 중에 쓸 만큼 글맛도 좋다. 잔잔하게 스며드는 감동과 위로가 필요하다면 커피 한 잔과 함께 이 책을 준비할 일이다. 맛뵈기로 나를 흔든 문장들을 함께 담는다.
|
|
저자는 41세가 되던 해에 파킨슨병을 진단받고 15년 동안 투병하면서도 병원 진료를 꾸준히 했다. 병이 악화되어 식구들에게 폐를 끼치기 싫어 제주도로 요양차 내려 갔으나 더 악화되어 다시 돌아와 친정어머니의 간병을 받으며 식구들과 함께 책을 5권이나 내면서 행복을 누리며 산다. 어떤 경우라도 긍정적인 생각으로 임하면 좋은 결과가 오니까 희망을 버리지 말고 일상에서 소소한 행복을 찾아 누리며 즐겁게 인생을 살자. |
|
처음 책을 펼쳐들고 읽기 시작할즈음에는 이 책을 다 읽고 어머니에게 읽으시라고 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날씨가 궂을때는 더욱더 심해지는 통증에 앞으로 남은 평생을 이렇게 고통스럽게 살아간다는 건 지옥보다 더 한 고통이라며 도저히 못살겠다고 하시지만 나로서는 해드릴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다. 수술 후유증, 붙지 않은 뼈가 고통을 더하지만 인간의 힘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서 그저 본인 스스로 견뎌내야 할수밖에. 솔직히 나도 나 자신의 통증앞에서는 무기력해질 수밖에 없듯이, 어머니 또한 그러실 것이고 본인의 그 극심한 고통은 세상 어느 누구도 알 수 없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15년간 파킨슨병을 앓으며 몸이 마비되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함 앞에서 본인의 체험을 담담히 이야기하고 있는, 하지만 그 솔직한 고통의 표현 앞에서도 끝까지 버텨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고 있는 '오늘 내가 사는게 재미있는 이유'는 내가 느꼈던 것을 감동적으로 표현해낸 것이고, 고통스러워하는 어머니에게 희망을 드리고 싶은 내 마음을 나보다도 더 명확히 끄집어내주는 그런 글이었다. 말 그대로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 원망스럽고 나의 존재를 파괴하고 싶을만큼 마음이 무너지고 있을 때, 그녀는 거창한 것을 이야기하지 않고 그저 눈앞의 한 걸음을 떼는 이유, 도저히 희망이 보이지 않는 암흑뿐이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과의 싸움에서 지지말고 버텨야 하는 이유에 대해 이야기 한다. 몇걸음만 걸으면 누구나 쉽게 갈 수 있는 집 안 화장실인데 겨우 그 걸음 하나를 걷지 못해 무너져 내리는 마음이 되었을 때, 갈 수 없는 자신의 한계와 아픔에만 신경을 쓰며 불행해하지 말고, 다른 사람처럼 성큼성큼 걸을 수 없으니 마비되어 움직이지 않는 발을 기를 쓰며 어떻게 해보려고 하지말고, 움직일 수 있는 다른 발을 더 지탱하며 한 걸음만이라도 떼어보자 했을 때 결국은 화장실까지 갈 수 있었다는 에피소드는 정말 많은 것을 느끼게 해 주었다. 나의 단점에 대해 불평만 하고 나는 왜 겨우 이런 능력밖에 없는 것일까, 원망만 하며 살아간다면 내가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에 더 집중을 하고, 나의 못난 점을 더 보완할 수 있는 다른 무엇인가를 찾으려고 노력한다면 세상을 살아가는 태도가 바뀌고 세상과 나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이 바뀌고 그렇다면 또한 나의 삶이 바뀌지 않겠는가.
처음 책을 읽을때는 비슷한 고통을 겪고 있는 이들에게 위안이 될 수 있는 책이라고만 생각을 했는데, 읽어나갈수록 많은 공감을 하고 삶의 자세를 배우고 내가 생각하고 있던 많은 것들에 대한 동의를 얻은듯 해 너무 좋았다. 즐겁게 살려고 노력은 하지만 아직은 노력일뿐 모든 일이 다 즐겁지는 않지만 이런 생각조차 이제는 바꿔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누구나 완벽해질수는 없는 것이고, 즐겁게 살려고 노력하면서 때때로 많이 즐거움을 느끼는 것 자체가 바로 즐겁게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리라 생각하기로 한다. 오늘보다 내일이 더 즐거운 날이 되지 않을까, 생각을 해 보게 되는 것은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어차피 사는 거 재미있게 살다 가면 좋지 아니한가"라는 저자의 말에 백만배 공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