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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 여기서 다루는 영화는 소위 인정받는 예술 영화이다. 그런 영화를 보는 것만으로 머리가 아프겠건만 그것을 그 옆에 철학카페에 가서 이야기를 나눈다? 골치 아프겠다. 어라,, 출판사의 이름은 '이론과 실천'이란다. 머리에 쥐가 나도 단단히 나겠다. 허나 나는 이책을 무척 공들여 읽고 있다. 또한 참 잘 쓰여지고 참 잘 기획된 책이라는 생각을 한다. 소장하고 싶을 정도로. 다루어진 영화18편에 중심으로 다루어진 철학가 역시 그와 비슷하나 난 그들 중 4분의 1정도밖에 잘 몰랐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전문서적이라기엔 가볍고, 일반인이 있는 교양서라고 하면 조금은 무겁지만 버겁지 않은 내용을 담고 있다. 허나, 철학과 신학이 무관하지 않듯이 성경을 아는 사람은 더욱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난 아니다.
1. 희망 난 희망이라는 말을 쓰기 보단 소망이라는 말을 즐겨쓴다. 굳이 철학자가 아니라도 소망이라는 말을 자신도 모르게 애용하는 것은 인간의 내부엔 표출되지 않은 철학이 쌓여있기 때문이리라. 이루어지지 못함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것이 소망이요, 다만 존재에의 힘으로서 전해지는 것이 희망이란다. 즉 소망에는 목적어가 존재하지만 희망에 있어서 목적어란 존재하지 않는단다. 바로 이것이 희망의 본질이다. 이러한 희망이 있기 위해선 믿음과 사랑이 필요하단다. 희망을 주는 존재에 대한 절대적 믿음으로 존재가 자신을 배신 할 것이라는 두려움도, 또 그 두려움으로 인한 도피도 없이 그저 묵묵히 믿고 행해야만 희망은 만날 수 있단다. 허나 믿음만으로는 될 수 없는 것이 역시 희망이다. 믿음이 사랑을 통하여 앎을 전달하고 그 지식이 곧 희망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어렵게 가지는 것이 희망이란다. 그런데 우리는 희망을 너무 쉽게 소망하는 건 아닌지, 그러기에 절망도 잦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물론 역시 난 아니다. 난 희망 별로 없다.
♥아름다움, 교태, 파렴치함, 남자를 움직이는 힘-바로 이런 것들이 그리스 신화가 상징하는 여인의 속성이다. 이 때 안태어나길 정말 잘했다. ♥판도라가 급하게 닫아 나오지 못한 재앙인 희망, 그것이 왜 재앙일까? 책에선 절망과 연결하여 심도깊게 다루었으나 내 생각엔 희망이 없다면 포기가 빨라지지만 희망이 있다면 집착과 허둥됨이 생긴다. 그것 자체가 괴로움일 수 있기 때문은 아닐까? ♥믿음이 지식보다 우선해야한다. 그것은 公理가 定理가 된 것이 기하학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초등학교 수학책에선 '약속'이라고 부르나보다. 함께 그러하기로 한 지식.
2. 행복 행복이란, 인간이 최종적으로 추구하는 그 대상이리라. 그러기에 다소 식상한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유일하게 여러 장 중에서 사용된 영화를 다 본 장이기도 하다. 인생은 아름다워, 사랑의 블랙홀, 체리의 향기...내가 좋아하는 영화이기도 하다. 특히 이 책에서 다뤄진 사랑의 블랙홀 편은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하고 힘나게 한다. 난 자유인이라는 것에 얼마나 가까운가?하는 생각을 했고, 그나마 자유라는 것이 나와 멀리 있는 것이 아닌, 난 자유인에 가까울 수 있음을 답하게 했다.
시작은 알랭의 '행복론'이다. 행복은 가만히 기다리는 자에게 오는 것이 아니라 원하고 만드는 이의 것이라는 어찌보면 상투적인 그의 행복론이 이 장의 기저이다. 귀도가 행복할 수 있는 여건이든 그와 반대의 여건이든 간에 행복만들기에 온 힘을 다하여 싸우는 모습은 그가 충분히 행복할 만한 자격이 있는 자임을 증명한다. 특히나 극한의 상황에서도 아들을 행복하게 해 주기 위해 병정놀이를 멈추지 않는 것은 그가 얼마나 자신의 삶 속에서 아름다움을 포착하고 그것으로 인해 행복을 누리고 있는 멋진 인간인지를 보여준다. 이에 반해 우리는 정말 행복할 수 있는 여건임에도 불구하고 불행하다 느끼는 경우가 많다. 굳이 불행이라 여기지 않아도 그저 행복하지 않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다. 나 역시도 아~ 행복해!라고 느끼는 순간은 어쩌다 찾아오는 것이지 늘상 나와 함께 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사랑의 블랙홀'의 필이 반복되는 삶을 통해 알았듯 삶의 권태로움, 무의미함 때문일 것이다. 어느 순간 "내가 왜?"라고 깨닫는 순간 무의미한 삶 때문에 몹시 절망하고 허무해진다. 나 역시도 그러했고 지금도 그러하다. 이것에 대한 답은 죽음과 헛된 희망이란다. 근데 더 좋은 답은 반항이란다. 그 언젠가 읽었던 '나는 선생님이 좋아요.'에서 말한 저항이라는 말과 함께 할 수 있을 것이다. 삶이 무의미하다고 깨닫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이다. 그것을 느껴본 사람이라면 충분히 삶을 의미롭게 만들 수 있으며, 고로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이다. 바로 여기서 이 책에선 자유인이라는 개념을 말해준다. '절망에도 불구하고 자기자신으로 존재하려는 자아긍정의 용기를 갖고 있는 위대한 자.' 말 그대로 '지멋대로 하고 사는 자(쾌락을 좇는 이)'가 아닌, 반항 속에서 행복을 추구하는 삶의 의미성을 찾는 사람이 진정한 자유인이라는 말이다. 인간에게 쾌락이란 좇는 순간 다가오지 못하는 존재이다. 따라서 우리는 쾌락을 좇아 무한한 욕망으로 인한 절망을 겪기보단 존재자체의 기쁨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 어느날 문득 본 밤하늘의 아름다움이라던가, 어느 쇼프로그램을 보며 즐거워하는 나를 보는 즐거움이라던가, 노인이 체리향기의 맛을 느끼는 순간이라던가 하는 이유없는 자체의 기쁨을 알아야 우리는 행복할 수 있다. 다시 말해, 행복하기 위해서 주변이 변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변해야 한다는 말이다. 거기에 좋은 말이 인용되었다. 어떤 터키 인이 의사에게 찾아가 "손으로 몸을 만지면 몹시 아파요. 머리를 만져도 아프고, 다리를 만져도 아프고, 배를 만져도 아프고, 손을 만져도 아파요."라고 했더니, 의사는 신중하게 진찰해 본 다음 "당신은 몸이 아픈 것이 아니고, 손가락이 부러졌습니다."라고 했단다. 행복은 그런거란다. 아직은 잘 모른다. 너는 행복하니?
3. 시간
고등학교 시절 무심코 생각했던 시간에 관한 깨달음이 있었다. "나는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버리고 있는 것이다. 혹은 반대로 시간이 나를 버리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 이후로도 시간에 대한 뜬금없는 깨달음이 나와 함께 한 것처럼 시간이란 존재는 인간에게 있어 잊고 살 수는 없는 것인가보다.
김진표의 노래 중에 '시간을 찾아서'가 있다. 굳이 이 노래에 '잃어버린'이라는 말을 붙이지 않아도 여기서 말하고 있는 시간이 현재나 미래가 아닌 과거라는 것에 크게 의심하지 않게 된다. 이것은 애시당초 시간이란 과거적인 개념이라는 것을 반증한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시간의 개념 역시 '과거'라는 시간이다. 지나버린 시간에 대한 개인성과 그것의 회복가능성, 그 죄의식에서 벗어남에 대하여 이야기 한다. 러브레터를 통해 시간이란 과거와 현재의 공통적 양상을 통해 상기되는 그 무언가를 통해 기쁨을 느끼고 자신의 존재를 찾아가는 정신적 개념이라고 말한다. 정신적 개념으로서의 시간은 박하사탕을 통해 인간의 과거가 마냥 아름답지 않아도 그것을 떠올리고 되돌아가보게 하는 것은 과거라는 시간을 통해 현재의 내 순수성을 복구해야하는 존재임을 이야기한다. 그래, 여기까지는 영화도 알겠고 철학도 알겠고, 그 안에서 다루는 시간도 알겠다. 듣도보도 못한 영화라서일까? '솔라리스'라는 영화를 통해 저자는 과거와의 화해를 권유한다. 자신의 충실하지 못했던, 순수하지 못했던 과거의 시간에 대한 죄의식을 없애기 위해 우리는 그것을 맞닥뜨리고 악수해야한다고 권유한다. 그래야만 우리의 시간은 살아있는 시간이 된다는 것이다. 과거과 화해하지 못한 자들은 살아있는 시간을 정지해 놓은 것처럼 갈팡질팡 불안할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 요지는 이렇다. 그런데 참 읽기에 버거웠다.
다시 시간에 대하여 생각해본다. 우리가 규정짓고 구분짓는 과거, 현재, 미래는 인간의 편의에 의한 그야말로 학문적 편의에 의한 상대적인 질서이다. 허나 시간은 절대가치를 가지며, 과거가 곧 현재가 될 수도, 미래가 현재가 될 수도, 과거가 미래가 될 수도 있다. 그것은 물리적인 구분이 아니라 그 시간을 의미화하는 인간이 결정지을 수 있는 문제이다. 따라서 내가 미래지향적인간이라서 긍정적인 느낌을 주고, 과거지향적 인간이라서 부정적인 느낌을 주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어떻게 의미화하는가가 내 삶을 행복하게 만들 수도 그 반대의 것으로 만들 수도 있다. 너무 또 시간을 행복과 연관시켰나보다. 나도, 이 책의 저자도 말이다. 시간은 그냥 시간으로 두면 안될까 하는 엉뚱한 생각도 해 본다. 4. 사랑 파니핑크, 내어머니의 모든것, 매그놀리아. 어느 한 편도 제대로 본 것이 없다. 다만 이들이 엮인 사랑이라는 주제에 대하여는 부족함 없으리 만치 많이 생각 해보았으리라. 그러기에 기존의 나의 생각과 별반 다를 것 없어, 큰 깨달음은 없었다. 일찌기 나의 생텍쥐페리가 '사랑없이는 살 수가 없다.'했듯이, 이 책의 앞부분에 나온 타르코프스키가 인간의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사랑'뿐이라고 했듯이 '사랑의 중요성'을 피력한다. 허나, 우리가 사랑받는 즐거움에 넋을 빼고, 그것을 바라며 목을 길게 늘어뜨리는 것에 애쓰는 것에 일침을 가하듯 '사랑도 능력'이라고 강조한다. 우리가 사랑은 자신있다는 듯이 그 대상찾기에 혈안이 되어 있는 것을 비난하며,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라고 충고한다. 그러기에 흔히들 그러하듯 아가페적 사랑에 더 가치를 둔다. 사랑도 능력이라. 그 말에 전적으로 동감이다. 자신의 사랑에 무력감을 느끼고 그것으로부터 할큄을 당하고 아파하여야 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아직은 내가 제대로 된 사랑을 할 만한 능력이 없구나...하는 생각으로 대처해야한다는 말 아니던가? 얼마나 편리한가? 절대적인 것에 대한 무력감이 아니라 자신의 능력에 대한 모자람만 느끼면 된다니 정말 감사한 노릇이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는 것. 나의 신조이기도 한 애피애기면 백전백승, 이 말에 전적으로 부합한다. 우선 나를 사랑하자. 허나 이 책을 통해 또다시 알게 된 것이 있다. 아니 이미 알고 있었으나 새삼 깨달은 것, 바로 자기애와 이기심은 다른 개념이라는 것, 아니 프롬의 말에 따르면 정반대의 개념이라는 것이다. 나를 사랑하고 그 후에 타인을 사랑하는 것은 그저 사랑의 중심이 이동하는 이타적 개념이지만 자기의 이익만 애써 채우며, 스스로를 보호하기만 하는 것은 철저히 이기적인 개념이란다. 백번 옳은 말이다. 관계를 통해 나와 그가 '나와 너, 즉 우리'가 된다는 사랑의 능력. 내가 흡수한 이야기는 여기까지다. 이후에 '내 어머니의 모든 것'과 '매그놀리아'를 통해 모성애의 본능됨과 부성애의 희망성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으나 크게 내 가슴을 울리는 내용은 아니었다. 깨달음은 경험과 무관할 수 없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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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영화를 볼 줄 모르는 사람이다. 극장에서 영화를 본 적이 거의 없으며, 비디오 역시 빌려보지 않는다. 책과 다르게 영화는 그 영상을 통해 시청자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다 못해 억압하며, 영상은 모든 것을 너무도 완벽하게 구현해내고 있기 때문에 그 이상의 아무것도 요구치 않는다. 내게 영화는 그랬다. 그 이면에 숨겨져있는 담론들에 대해서까진 한 번도 생각해 본적이 없다. 현실과 영화는 너무도 똑같이 느껴졌고, 그래서 나에게 영화는 無였다. 어쩌면 이런 속성을 가진 영화이기 때문에 철학에 다가가는 하나의 교두보로서 작용할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철학을 위한 주제별 영화강의’에서 얻어진 내용들이라고 이야기하는 작가. 이 책은 철저히 철학을 ‘위한’, 그것도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 최근 들어 보다 쉽게 풀어써 내려간 수많은 철학 서적들이 쏟아지고 있는 것과 그 맥을 같이 한다고 할 수 있을 듯 하다. 게다가 ‘영화’라고 하는 하나의 훌륭한 매개체를 통해 철학을 풀어내고 있는 작가의 노력은 철학에 다가가고자 하는 이가 아닐지라도 영화에 대한 이해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것이었다.
영화를 전혀 모르는 나로서도 읽으면서 한 번 이 영화를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으니, 이미 영화를 시청한 이들에게는 작가가 이야기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자신의 기억속에 아련히 남아있는 그 조각들을 짜맞추어 나가면서 느낄 수 있었을 듯 하다. 영화는 일상의 반영이며, 적절한 현실성과 허구성의 접목이다. 때로는 너무도 현실적으로 느껴지기 때문에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며, 때로는 너무도 허구적으로 느껴지기 때문에 웃음을 자아낸다. 하지만 작가가 포착한 것은 전자가 아닐까 싶다. 영화가 담고 있는 소재들은 다분히 포스트모더니즘적이다. 영화감독은 아주 사소한 사물들에도 의미를 부여하며 그에 대해 우리에게 어떠한 설명도 하지 않는다. 그저 시청자들이 영상을 보고 스스로 느끼며 해석하길 바랄 따름이다. 난 영화를 제작하는 이가 실제적으로 꿈꾸었던 것들과 작가가 영화를 보고 해석하는 것 사이에 어떠한 차이점이 있는지, 작가가 영화감독이 원하던 그 방향의 해석을 하고 있는지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단순히 표면적이고 영상 속에 갇혀 평면적으로 움직이는 것 마냥 보였던 화면들이 작가를 통해 그 이면에 담겨있는 또 다른 의미를 부여받고 살아 움직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희망, 행복, 시간, 사랑, 죽음 그리고 성. 이와 같은 주제는 굉장히 미시적임과 동시에 거시적일 수 있다. 현재 우리의 삶에 막강한 영향을 끼치는(우리는 그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존재 아니던가?) 요소들임에도 불구하고 이와 같은 단어를 접했을 때 우리는 아무말도 하지 못한다. 그 막연함 속에서 빚어지는 많은 오해들-일반인은 다가가기 어렵다는 식의-이 이 책을 통해 조금이나마 풀어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영화를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영화에 대한 또 다른 다가감임과 동시에 철학이라고 하는 하나의 부수적(물론 작가는 이를 ‘주’로 파악하고 있지만 말이다.) 요소에 대한 입문도 가능할 것이다. 철학과 신학의 경계를 고민하던 나에게는 물론 약간의 난해함으로 다가오기도 했지만 말이다. [인상깊은구절] 노신(1881-1936)의 글 중에 "땅 위에 원래 길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많은 사람이 걸어가면 그것이 길이 된다"라는 구절이 있다. '인간에의 길'도 본래 있었던 것이 아니다. 그 길은 어쩌면 '죽음을 향한 존재'로서의 우리가 죽음을 삶에로 끌어들임으로써, 곧 '죽음을 향해 미리 달려감'으로써 비로소 드러나는 그런 길인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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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소설을 읽으면서 가장 궁금했던 것은 ‘작가들이 과연 책 뒤에 있는 해설만큼 다 고려하고 글을 썼을까?’ 라는 거였다. 나로서는 그저 재밌게 읽은 한 편의 소설일 뿐인데, 평론가들이 주석을 달아놓은 것을 보면 간단한 소설 하나가 아니라 작가의 철학을 바탕으로 정교하게 구성된 하나의 이야기였다. 그 해설의 의미가 옳고 그름을 떠나서, 어린 내게는 ‘작가들이 정말 그것들을 다 고려하고 창작했을까?’가 가장 큰 관심꺼리였다.
그렇다면.. 영화는? 정말 관객을 자극하고 웃기기 위해 만들어진 속 빈 영화도 있지만, 대부분의 영화들은 감독이 자신의 철학을 바탕으로 정교하게 만든 하나의 이야기라고 대답하는 것이 바로 <영화관 옆="" 철학카페="">다.
그저 감동적이라고만 생각했던 <러브레터>안에 프로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철학이 들어가 있고, 제목부터 야한 영화라고만 생각했던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에는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가 깔려있다. <파니핑크>와 <솔라리스>는 또 어떤지.
여담이지만, 예전 <매트릭스>에다 철학적 담론을 끼워넣어 해석하는 것을 보고 질렸던 적이 있다. ‘고작 이야기할게 그것 밖에 없단 말인가?’ 라고 투덜대면서. 하지만 <영화관 옆="" 철학카페="">는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에게, 또 철학을 사랑하는 사람 모두에게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우리의 삶 = 영화가, 어떠해야 하는지 = 철학이 가르쳐주기 때문이다. [인상깊은구절] 영화 <체리의 향기="">에서 노인은 자살하려는 사내에게 자신도 예전에 목을 메어 자살하려고 했던 경험을 이야기했을 때, 사내는 “그래서 달라진 것이 무엇이냐?”라고 묻는다. 죽으러 갔다가 따온 체리 한 바구니가 당신을 죽음으로 몰아가던 상황에 무슨 영향을 줄 수 있었냐는 것이다. 이에 대해 노인은 “내가 달라졌다.”고 말한다. 그리고 몸이 아파서 의사를 찾아간 한 터키인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어떤 터키 인이 의사에게 찾아가 “손으로 몸을 만지면 몹시 아파요. 머리를 만져도 아프고, 다리를 만져도 아프고, 배를 만져도 아프고, 손을 만져도 아파요”라고 했더니 의사는 신중하게 진찰해 본 다음 “당신은 몸이 아픈 것이 아니고, 손가락이 부러졌습니다.”라고 했다는 것이다.체리의>영화관>매트릭스>솔라리스>파니핑크>섹스,>잃어버린>러브레터>영화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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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영화에 대해 글을 썼다. 영화를 전공하거나 그쪽 직업을 가지지 않은 사람들도 많은 책을 냈다. 특히 인문학을 하는 사람들이나 문학을 하던 사람들이 철학적 시각을 통해서 영화를 보거나(또는 영화를 통해 철학적 사유의 아이디어를 얻거나) 문학을 비평하듯이 영화를 비평하는 작업을 많이 했다. 그런데, 영화 쪽 사람들은 이걸 그다지 반기지 않는 모양이다. 영화란 철학이나 문학과는 다른 언어와 다른 매체를 이용하고 다른 형식이기에 그만큼 차이가 많기 때문이다. 똑같은 줄거리에 똑같은 인물과 배경을 가진 소설과 영화라도, 표현의 방식이 나름대로 다르고 이런 작은 차이가 "전혀 다름"을 만들어 내는 법이다. 그러기에 영화 쪽 사람들의 이런 비판적인 견해에 고개를 끄덕일 수 있다. 그러나 인문학자나 그밖에 영화 밖 사람들의 시각은 "전문적"이지 않기에 오히려 신선할 수 있다.
『영화관 옆 철학카페』는 철학자의 시선으로 영화를 보여주고 있다. 행복, 희망, 시간, 사랑, 죽음, 성과 같은 보편적 주제를 다루었다. 이 주제들을 우리가 자주 들어본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칸트, 사르트르, 그리고 프로이트, 마르쿠제, 프롬 등에 이르기까지 여러 철학자들의 인생과 세상에 대한 깊고 넓은 사유들을 풀어내고 있다. 각 장이 주제별로 나뉘어져 있어서 그 주제에 대한 관심이 커졌을 때 읽기에 좋다. 책에 나오는 영화를 굳이 보지 않아도 글의 내용을 이해하는 데에는 큰 지장이 없지만 영화를 한 편씩 보고 나서 읽는 맛도 꽤나 쏠쏠하다. 내가 영화를 보고 느낀 것과 철학자가 본 것은 어떻게 다른가도 비교해볼 수 있고, 영화를 다시 "읽어보는" 재미도 느낄 수 있다. [인상깊은구절] M. 부버는 "너와 나는 오직 온 존재를 기울여서만 만날 수 있다. 온 존재에로 모아지고 녹아지는 것은 결코 나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 나는 너로 인해 '나'가 된다. '나'가 되면서 나는 너라고 말한다. 모든 참된 삶은 만남이다"라고 너와 나의 관계를 인간 실존의 본질로 규정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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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관옆철학까페]는 읽은지 꽤된 책이지만, 다시 들춰보게 될때 완전히 다른 느낌을 받게 하는 아주 특별한 책중에 한권이다. 만약, 당신이 영화를 매우 좋아하는 사람인동시에, 철학에 또한 깊은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나는 이책을 당신에게 "선물"하고 싶다.
내가 이책에 관심을 갖게 된 가장큰이유중의 하나는, 신기하게도 김용규씨가 선정한 영화들이 대부분 내가 "굉장히"좋아하는 영화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놀라운 사실때문이었다.
대부분의 영화관련 에세이들이나 본격비평집들이 선정하고 있는 영화의 장르가 대부분 특별한 기준없이 매우 폭넓고 다양한데 비해, 김용규씨가 선정하고 있는 영화들은 대부분 "철저한 작가주의 영화"들이 그 기준이 되고 있다는 점은 이책을 나로하여금 완독한 이후에도 매우 주기적으로 다시 들춰보게 하는 분명한 사유가 되게끔 한다. 이러한 이유외에도 내가 이책에 흥미를 느낀 또다른 이유는, 희망-행복-시간-사랑-죽음-성이라는 여섯가지의 큰 주제별로 묶인 깔끔한 책의 구성방식때문이다. 이러한 구성방식하에 분류된 영화들은 그 주제의식과 형식이 놀라울정도로 김용규씨가 해석해놓은 철학이론과 책의 구성방식에 합당한 저력을 보여준다.
이책은 책의 문두에도 밝혀져있지만 김용규씨가 일반인을 상대로 했던 "철학을 위한 주제별 영화 강의"를 토대로 하고 있기때문에, 읽는이로 하여금 이해하기 어려운 철학이론을 부여잡고 끙끙거리게 만들게 하는 형식적 "거리두기"를 자행하지 않는다. 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 아우구스티누스, 사르트르, 비트겐슈타인, J.라캉을 넘나드는 이 방대한 양의 주제별 영화분류는 저자의 탁월한 해석능력과, 영화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영화를 이해하는데, 혹은 철학이론을 보다 "쉽게"이해하는데 훌륭한 안내서가 되어준다.
영화비평의 완벽한 기본은 "철학"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기본진리를 잊지 않은 당신이라면, 철학과 영화에 대한 첫걸음을 시작하는데 도움받고싶은 양서를 찾고 있는 당신이라면, 이책은 어두움속에서 헤메이는 당신의 컴컴한 길목을 비춰줄 훌륭한 가로등이 되어줄것이다.
"철학"은 누구에게나, 매우 "보편적"인 학문으로서 인식되어야 한다는 사실에 조금의 이견이 없는 나에게 이책은 이책을 구입했을 당시나, 지금이나, 앞으로나 무엇이든 보다 더 자세히 들여다보게 만드는 "현미경"이 되어준다. 몸서리치며 좋아했던 [안개속의 풍경]을 키에르케고르의 명제와 G.마르셀의 여정과 희망이라는 범주안에서 유려하게 해석해낸 부분이나,
영원히 잊지 못할 걸작중의 걸작 [중앙역]을 키에르케고르와 기독교중심의 이론으로 재해석해놓은 부분 혹은, 내가 가장 존경하고 좋아하는 페드로알모도바르의 걸작 [내어머니의모든것]을 사랑을 다룬 서양 최고의 고전인 플라톤의 "향연"을 언급하며 묶어낸 이 유려한 문장과 해석부분은 여전히 수십번 들여다보아도 황홀하다. 그리고 이책을 오랫동안 손에서 놓지 못하게 만든다.
어떠한 영화비평문보다 알차게, 또한 독창적인방법으로, 그러나 겸손하면서도 알기쉽게 적어놓은 김용규씨의 [영화관옆 철학까페]는 영화와 철학을 동시에 좋아하는 당신에게 선물하고 싶은 책이다. 한번본후에 다시는 책장에서 꺼내고 싶지 않게 만드는 책과는 비교할수 없는 진한 여운과, 사라지지 않는 학문적 향기를 머금은 훌륭한 양서이다.
[책중에서]
-내어머니의 모든것:모성애의 본질-
"제52회 깐느영화제에서 최우수 감독상을 수상한 스페인감독 페드로알모도바르의 영화 [내어머니의모든것]은 감독 스스로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 어머니가 되고 싶은 사람들, 그리고 내어머니께 이영화를 바친다"라고 말했듯이 모성애에 관한 이야디이다. 그러나 그것은 한여인이 그녀의 자식에게 갖는 사랑으로서의 모성을 다루지 않는다. 오히려 자기에게 상처과 고통을 준자, 젖가슴을 달고 몸을 파는 여장 남자, 에이즈 환자의 아이를 밴 수녀, 마약중독자등에게 베푸는 '무차별적 사랑'을 다룬다. 때문에 영화 [내어머니의 모든것]은 본질적으로 '신적사랑' 곧, 아가페Agape에 대한 이야기이며 설사 그것이 모성을 다룬다고 할때에도 이 모성이란 '...때문에'사랑하는 '에로스Eros적 모성'이 아니라 '...임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아가페적 모성'에 대한 이야기인것이다.
'에로스'와 '아가페'의 구분은 플라톤 철학과 기독교 사상이 놀라울 정도로 많은 점에서 평행선을 이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분명히 갈라서는하나의 분기점이다. 플라톤의 대화록 [향연]에 의하면 에로스는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의 탄일 축하연에서 만난 풍요의 신 포로스와 결핍의 신 페니아의 사이에서 태어났다. 때문에 에로스는 어머니를 닮아 모든것에서 가난하고 결핍된 자이지만, 아버지를 닮아 언제나 풍요를 그리워 하며 그것에 이르려는 중간자아로서 지고선(summ bonum)에 대한 영원한 동경과 열병적 연모를 그 본성으로 한다. 거짓을 벗어나 참됨에, 악함을 벗어나 선함에, 추함을 벗어나 아름다움에 이르려는 열병적 연모를 본성으로 가진 에로스는 언제나 중간자로서 대지를 침상으로 삼는 방랑객이면서도 빛나는 성좌아래 모든 천상의 것들을 갈구하는 자요, 생과사를 놓아주는 매개이지만 동시에 안내자이다. 때문에 예언자인 무녀 디오티마가 에로스의 존재를 소크라테스에게 알렸을때 그는 에로스를 죽을수밖에 없는 존재인 인간을 불명, 영원한 존재로 승화시킬 영약조제사로서 파악했던 것이다."(P226~227) [인상깊은구절] 영화 [내어머니의 모든것]은 본질적으로 '신적사랑' 곧, 아가페Agape에 대한 이야기이며 설사 그것이 모성을 다룬다고 할때에도 이 모성이란 '...때문에'사랑하는 '에로스Eros적 모성'이 아니라 '...임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아가페적 모성'에 대한 이야기인것이다. |
| 대형 서점에 가보면 이 책은 영화코너가 아니라 철학코너에 진열되어 있다. 그 정도로 이 책이 철학에 둔 비중은 상당히 크다. 그냥 영화 줄거리를 나열하고 작가의 느낌이 좀 들어간 그런 시시한 영화평, 심심풀이로 읽을 수 있는 수준의 책은 아니다. 계속 생각하도록 만드는 책이다. 그러면서도 영화 자체에 대한 소개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사실 이 책에 소개된 영화 중에 일반 대중이 모두 좋아하고 아는 영화는 그리 많지 않다. 중앙역, 나라야마 부시꼬, 솔라리스 등등 제목마저 생경한 영화가 많다. 희망, 행복, 시간, 사랑, 죽음, 성이라는 6개의 키워드에 맞춰서 여러 영화가 소개되어주고 있다. 이책은 이렇게 영화와 철학을 같이 접목시키면서 전개되고 있다. 각 키워드에 맞춘 설명들과 철학들을 가만히 듣고 있으면 과연 영화와 철학이 어울릴수 있는 단어들일까? 하고 생각이 들기도 하고 어찌보면 그렇게 닮은 점이 있는 둘이다. 정말 그냥 지루한 책일것이라는 생각과는 달리 누구나 한번씩은 들어봤던 영화들의 제목이 나오면 은근히 비쳐나오는 웃음과 톱니바퀴같은 삶 속에서 왠지 탁트인 오아시스같은 샘물을 축이는 것과 같은 책이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