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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디디며 헛짚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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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한 사업가의 와이프가 있다. 바로 초등학교 동창. 과거가 어찌했을지는 몰라도 지금은 사모님 소리를 듣는 그 친구. 누구보다 여유 있고, 누구보다 행복해보이지만 친구의 시집살이는 ‘헐~~~~’을 외치지 않고는 들을 수가 없다. 하지만 지금의 그 친구를 보면 전혀 맘고생은 하지 않은 편안한 외모를 가지고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 아닐까? 친구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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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한 사업가의 와이프가 있다. 바로 초등학교 동창. 과거가 어찌했을지는 몰라도 지금은 사모님 소리를 듣는 그 친구. 누구보다 여유 있고, 누구보다 행복해보이지만 친구의 시집살이는 ~~~~’을 외치지 않고는 들을 수가 없다. 하지만 지금의 그 친구를 보면 전혀 맘고생은 하지 않은 편안한 외모를 가지고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 아닐까? 친구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친구의 외모와 배경만 보고 부럽다거나, 복이 넘친다고 말한다. 하지만 지금도 진행 중인 맘고생을 안다면... 쉽게 부럽다는 말은 하지 않을 것이다. 예전엔 나도 그랬던 것 같다. 겉으로 보이는 화려함, 편안함만을 가지고 그 사람의 인생을 부러워했던 적이. 나에게 오지 않은 행복이 어떻게 그 사람들에겐 당연한 것들인지.. 나는 전생에 어떤 죄를 지었기에 이리도 힘든 것인지. 나를 비난하고 내 부모님을 미워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젠 안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그렇게 보이기 위해 혹은 보이게 된 배경에는 나름의 굴곡들이 하나 둘 쯤은 있는 거라고. 그래서 가끔 삶에 대한 묘한 풍자의 시를 만나면 반갑고 즐겁다. 나 뿐 아니라 대다수의 사람들이 나와 똑같은 고민을 하고, 그 고민 속에 해답을 찾아간다는 사실을 알게 되니까.

 

그게 그거라고

아무도 안 만나고

아무 짓도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을 때가 많다.

 

아무 데서 아무나 만나

아무 말이나 안 가리고

해버리고 싶을 때도 있다.

 

어느 게 다행이고

어느 게 불행인지

어느 게 더 만만하고

어느 게 더 군색한 건지

 

어딘가로 떠나는 철새들이

그게 다 그거 아니냐고

살똥스레 저물녘을 끼룩거린다. (29)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거나, 무슨 말이든 다 쏟아내고 싶을 때... 설이 다가와서 그런지.. 가슴이 답답하고 뭐든 아무 말이나 하고 싶어지기도 한다. 참고 산다는 것. 특히나 내 성격에 참고 견딘다는 건 쉽지 않은 일. 하지만 나 하나만 조용히 참고 있다면 편안해지는 것을. 그걸 스스로에게 강요하고 산 것은 아닌지... 아이가 자라면서 조금씩 목소리를 내게 된다. 싫은 건 싫다고 하지 않겠다고. 이렇게 말하는 것이...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리고 만만해지는 건지.. 사실 잘 모르겠다. 다만.. 가끔은 홧병이 걸리지 않을 정도의 강약은 조절하며 살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을 때도 있지만, 가끔은 아주 가끔은 아무 말이나 안 가리고 하고 싶을 때가 있다. 누구의 며느리, 누구의 딸, 누구의 아내, 누구의 엄마가 아니라 그냥 인간 누가되어 뒷감당 생각지 않고 마구 쏟아내고 싶을 때가 있다. 시가 대단한 건 사람의 마음에 잠재되어 있는, 숨어 있는 그 감정을 깨우기 때문 아닐까? 나이를 먹는 모양이다. 시들이 그냥 시로 다가오지 않고 내 생활의 일부로 다가오니 말이다. ^^

 

 

YES마니아 : 로얄 k*****3 2017.02.02. 신고 공감 8 댓글 18
리뷰 총점 종이책
[2016 결산][헛디디며 헛짚으며] - 모악시인선 1
"[2016 결산][헛디디며 헛짚으며] - 모악시인선 1" 내용보기
2017. 1. 3.  제 8회 구상문학상을 수상한 시집 [헛디디며 헛짚으며]는 모악시인선의 첫번째 시집이기도 하다.잘 알려지지 않은 정양 선생님은 1942년생으로 1968년에 윤동주에 대한 평론으로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당선하여 등단하신 분이다. 전반적으로 모순된 세상에 대한 비판을, 이상하게 돌아가는 세상에 대한 따끔한 일침을,해학적으로 풀기도 하고, 비장한 목소리로 웅변하기도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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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1. 3.

 

제 8회 구상문학상을 수상한 시집 [헛디디며 헛짚으며]는 모악시인선의 첫번째 시집이기도 하다.

잘 알려지지 않은 정양 선생님은 1942년생으로 1968년에 윤동주에 대한 평론으로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당선하여 등단하신 분이다.

전반적으로 모순된 세상에 대한 비판을, 이상하게 돌아가는 세상에 대한 따끔한 일침을,

해학적으로 풀기도 하고, 비장한 목소리로 웅변하기도 한다.

읽다보면 웃음이 킥킥 나기도 하고,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기도 하는데,

다 읽고 나면 가슴이 뻥 뚫리는 통쾌함과 더불어 먹먹한 감동도 있다.

 

 

We have to

 

중간고사 끝난 다음 주 노총각 영어선생이

붉으락푸르락한 얼굴로 용출이를 불러내더니

답안지 한 구석을 손가락으로 꾹꾹 찍으며서

시험이 장난이냐 이 쌍녀르 새끼야

쌍소리 묻은 쓰리빠로 철썩철썩

용출이 낯바닥을 때리다가

쓰리빠도 내던지고 주먹질로 발길질로

미친 듯이 퍽퍽퍽 두들겨팼다

용출이는 맞을 때마다 더 큰 소리로 울었다

억울하지 않으면 아무리 맞아도

소리 없이 맞는다는 걸 우리는 안다

선생님 나간 뒤 용출이를 부축하여

애 저 지랄이냐고 아이들이 물었다

해브 투로 짧은 글 짓는 문제에

우이 해브 투 핸드플레이라고 썼더니 저런다고

눈물을 훔치며 용출이는 더 크게 울었다

저 하던 짓 들킨 줄 아나보다고

아이들이 한 마디씩 거들며 키득가렸다

아이들 대여섯이 용출이를 손가마 태워

강용출강용출 연호하는 사이사이에

그보다 더 큰 소리로

우이 해브 투 핸드플레이도 합창하면서

교실과 복도와 운동장을 누볐다

손가마 탄 채 용출이도

연신 눈물을 훔쳐가며 웃었다.

 

예전에는 남학교에서 선생님들의 구타가 일상적이었다는 얘기를 들은적이 있다. 이 시에서도 학생의 짓궂은 답을 너그럽게 받아들이지 않는, 자신의 화풀이로 삼는 선생님이 등장한다. 마치 영화 속의 에피소드 같은 장면이 연출되며, 구타하던 선생님은 퇴장하고 아이들은 구타당하던 아이를 손가마에 태우고 영웅처럼 연호를 한다. "우이 해브 투 핸드플레이"를 합창하는 것은 선생님도 들으라는 듯이 시위를 하는 것일까? 잠시 핸드플레이가 무슨 손장난일까 하다가... 뜻을 알고는 푸하하 하고 웃었다. 아이들 표현에 "저 하던 짓 들킨 줄 아나보다고"하는 장면은 총각선생님의 화를 낸 연유를 거기다 갖다 붙이며, 용출이는 잘못이 없다는 결과를 도출해 낸다. 장난꾸러기들의 시위와 마음에 여유가 없는 선생님의 과격함을 교차시키며 궁핍했던 삶에도 정겹던 친구들의 우정이 따뜻함을 느끼게 하는 시다. 

 

 

 

화학선생님

 

중간고사 화학시험은

문항 50개에 전부 OX 문제였다

선생님은 답안지를 들고 와서

수업시간에 번호순으로 채점결과를 발표하셨다

기다리지도 않은 내 차례가 됐을 때

"아니 이 녀석은 전부 X를 쳤네. 이 세상에는

옳은 일보다 그른 일이 많다는 걸 어떻게 알았지?

제대로 채점하면 60점인데 기분 좋아서 100점"

그러시고는 다음 차례 점수를 매기셨다

모두들 선생님의 장난말인 줄로만 여겼는데

며칠 뒤에 나온 내 성적표에는 화학과목이

정말로 100점으로 적혔다 백발성성한

지금도 그 점수를 믿지 않지만

이 세상에는 세월이 흐를수록 그른 일들이

옳은 일보다 많아지는 것도

나는 아직 믿을 수가 없다

 

처음 시와 확 비교가 되는 시다. 조금도 여유가 없던 영어선생님과는 달리 화학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자신의 말에 책임을 지면서도 너그러움을 잃지 않는 선생님이다. OX문제에 전부 X를 쳤는데, 그걸로 점수를 주는 것도 부족해서 100점을 주다니... "... 이 세상에는 / 옳은 일보다 그른 일이 많다는 걸 어떻게 알았지?"라고 말하는 데서 은근히 잘못된 세상을 힐난하는 것도 같고, "기분 좋아서 100점"이라고 하시는 것은 기분파같지만, 결국은 미안해서라도 더 열심히 공부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지 않았을까 한다. 옳은 일이 많은지, 그른 일이 많은지 세어보질 않아서 모르겠지만, 그래도 세상에는 좋은 일이 조금은 많기에 이만큼이라도 유지되는 것을 아닐까...라고 조심스레 화학선생님의 말씀을 부정하고 싶다.

 

 

 

이게 나라냐

 

국방부 시계는 거꾸로 매달아도

잘만 돌아간다던데

학살인지 교통사곤지

생목숨을 生水葬 시킨 세월은

맹골수도에 거꾸로 처박힌 채로

유신시대로 삐라시대로 서북청년단시대로

한반도의 세월을 무식하게 되감는다

옛날에 눈 질끈 동여매고도

공중 나는 새를 떨어뜨리던 신궁이 있었다든가

수사권도 기소권도 없이 백성들은

되감기는 세월의 과녁을 정확하게 쏜다

이게 진상이냐 이게 구조냐

이게 루머냐 이게 불온이냐

이게나라냐이게나라냐이게나라냐

바다도 비좁다고 파도는 몸부림치고

꽂히는 화살마다 부르르 떤다

 

이 시에 더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까. 청문회에서 국회의원보다 더 확실한 증거물을 보내주는 시민들이 기억난다. 그게 바로 "되감기는 세월의 과녁을 정확하게" 쏘는 백성의 화살인가보다. 백성들이 과녁을 향해서 화살을 날릴 때마다 "꽂히는 화살마다 부르르"떨기를, 진심으로 기원하고 기대해 본다.

 

 

 

맹장은 어디쯤인가

 

강원도 가는 길에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아랫배가

송곳에 찔린 듯 뒤틀린다

동행하는 동료가 아무래도 맹장 같다고

늙발에 배 가르고 수술하느니

탕약으로 견뎌보라고 한다

어렵사리 찾아간 한의원 원장님이

맹장을 탕약으로 다스리는 사람이

요즘 세상에 어딨냐고 터지기 전에

서둘러 종합병원에 가보란다

한의원 들락거리는 동안

아랫배 잠시 가라앉아 라디오의

목포는 항구라는 노랫가락도 귀에 들리고

길가 현수막에는 강원도가

한반도의 허파라고 허파가 빨갛게 적혀 있다

강원도가 허파라면 허리라면 등짝이라면

목포가 여수가 부산이 항구라면 항문이라면

염통인 듯 간인 듯 밥통인 듯 사타구닌 듯

콩팥인 듯 쓸개인 듯 자궁인 듯한 데들은 다

한반도의 어디쯤인가

머리통은 어깨는 목줄기는 갈빗대는

따내버릴 맹장은 또 어디쯤인가

냉큼 따내지도 못하고 어떻게든

탕약으로 다스렸으면 싶은 한반도가

통째로 자본주의의 맹장쯤 되나

언제 또 뒤틀릴지 모를

탕약으로 견디고 싶은 아랫배를

종합병원 입구에서 가만가만 짚어본다

 

지구의 허파는 어디고, 한반도의 허파는 어디고... 하며 말들을 하는데, 정양 선생님은 맹장 수술을 앞두고 한반도의 맹장은 어디인지 궁금해한다. 이런 것을 궁금해 한 사람이 또 있을까. 맹장을 탕약으로 다스린다는 말도 안되는 바람을 갖다가, 결국은 종합병원을 찾는 시인의 모습에서 현재의 우리의 모습을 본다. "한반도가 통째로 자본주의의 맹장쯤 되"서 지금 뒤틀리고 있다고, "언제 또 뒤틀릴지" 모른다는 표현은 정말 기막힌 표현이다. 탕약으로는 안되고 반드시 수술이 필요한 한반도임을 아랫배를 짚으면서 눙치는 시인의 재치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핏발 선 눈을 가리고

 

겉보기엔 멀쩡한 내 왼쪽 눈은

시력이 형편없다 있으나마나 한

왼쪽은 아예 맛보기 알을 넣고

오른쪽 시력에만 맞추어 안경을 끼고 산다

시력도 형편없는 게 말썽은 많다

왼쪽 눈에 자주 핏발이 서고 따끔거린다

눈병도 오른쪽보다 꼭 먼저 옮는다

오른쪽에 맞추어 따라다니느라 깜냥에

힘에 부쳐서 그런다고 한다

차라리 없으면 좋겠다고 투덜거렸더니

안경 너머로 건너다보며 간호사는

그나마 그 자리에 있는 게 얼마나 고맙냐고

외눈보다는 훨씬 낫다고 나를 타이른다

사실 나는 이제껏 외눈으로 살지 않았나

핏발 선 눈을 안대로 가리고 거리에 나선다

남은 눈알에 헛힘이 쏠리고

발이 헛디뎌지고 손잡이가 헛짚인다

시력이 형편없어도 무슨 구실은 했던지

외눈으로 세상을 가늠하기가 만만찮다

핏발 선 눈을 끝내 가리고

헛디디며 헛짚으며 갈 데까지 가봐야겠다

 

시집의 제목인 "헛디디며 헛짚으며"라는 시는 없는데, 그 문장을 윗시에서 발견했다. 아마도 이 시가 이 시집의 대표작이 아닐까 생각해 보다. 잘 보이지 않는 왼쪽눈이기에 없어도 그만이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가리고 나니 불편하고, 계속 "헛디디며 헛짚으며" 걷게 되는 것이다. 불편한 왼쪽 눈에 핏발이 서서 안대로 가리고 거리로 나섰는데, 과연 목적지까지 제대로 갈 수 있을까 불안불안하기만 하다. 하지만, 시인은 "헛디디며 헛짚으며 갈 데까지 가봐야겠다"라고 맺으며 결코 뒤로 물러서지 않는 단호한 모습을 보인다. 우리의 삶이, 우리의 시국이 우리 눈에 계속 핏발을 세우고 있지만, 어쩌면 우리도 자꾸 헛디디고 헛짚으며 가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이대로 물러나지 말라고, 이대로 포기하지 말라고, 갈데까지 가보라고 시인은 우리에게 용기를 북돋고 있는 것은 아닐까.    

 

 

 

겨울밤

 

할멈은 안방에서 할아범은 거실에서

티비 켜놓은 채 잠든다

전기세 아낀답시고 먼저 깬 쪽이

살살 다가가 전원을 끄면 피차

용케 알고 잠을 깨어

다시 자려고 다시 켠다

누가 뭐라고 쑤월거려야 비로소 잠드는

그 소리 그치면 곧바로 잠에서 깨는

전기세보다 캄캄한 어둠보다

더 캄캄한 적막이 잠결에도 두려운 내외

아무리 낮은 볼륨으로 잠이 들어도

캄캄한 두려움이 늘 곁에 눕는다

 

늘 TV를 켜놓고 소파에서 잠드신 할머니가 살짝 와서 끄면 안자고 있었다고 우기시며 다시 켜라고 하시던 모습이 생각난다. 그 생각을 하면 웃음이 난다. 이 시에서는 TV를 켜면 편안하게 주무시던 두 노인이 TV를 끄면 오히려 다시 깨는 모습을 통해서 노인의 심리를 말하고 있다. "낮은 볼륨으로 잠이 들어도 / 캄캄한 두려움이 늘 곁에 눕는다"는 노인의 심리. 어둠보다 적막이 두렵다는 노인 내외의 심리. 아직은 노인의 심리를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어렴풋이 짐작이 가기는 한다. 그래서 우리 할머니도 그랬었구나라는 생각에 괜시리 마음이 짠해진다. 노인이 되면 두려울 것이 하나도 없을 줄 알았는데, 지혜가 무궁무진해져서 모든 세상의 이치를 통달할 줄 알았는데, 죽음까지도 너그럽게 받아들일 줄 알았는데, 적막을 두려워 하다니... 노인이 되기 전에 적막에 익숙해지도록 연습을 해야할까. 고민해 보는 순간이다.

 

 

 

정양시인의 시를 읽으며 많은 생각을 했다. 나이가 들면 저절로 세상을 보는 안목이 생기는 줄 알았는데, 저절로는 아님을, 온갖 풍파를 겪고 세월을 겪어내면서 배우고 익히는 것임을 다시 한 번 느껴본다. 시 속에서 학창시절의 추억을 해학적으로 풀어내시고, 시국에 대해서는 거침없이 성토하시고, 삶의 무게를 깊이있게 보여줌으로써 너그러운 할아버지를 느끼게 하시는 정양 선생님. 앞으로도 건강하셔서 갑갑한 세태에 대해 시원한 청량제 같은 시를 많이 써주셨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c*****p 2017.01.03. 신고 공감 7 댓글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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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슬자리도 서울살이도 모두 헛걸음이라는 (헛디디며 헛짚으며)
"벼슬자리도 서울살이도 모두 헛걸음이라는 (헛디디며 헛짚으며)" 내용보기
시를 노래하는 시 114벼슬자리도 서울살이도 모두 헛걸음이라는― 헛디디며 헛짚으며 정양 글 모악 펴냄, 2016.4.4. 8000원  부옇게 동이 트는 기운을 느끼면서 새벽에 일어납니다. 시계가 없어도 새벽을 알고 아침을 느낍니다. 딱히 시계에 기대지 않으면서 하루를 열고, 아침밥을 지으며, 밭자락을 살피다가, 하루 살림을 되새깁니다.  어버이가 시계에 기대지 않으면서 지내니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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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노래하는 시 114



벼슬자리도 서울살이도 모두 헛걸음이라는

― 헛디디며 헛짚으며

 정양 글

 모악 펴냄, 2016.4.4. 8000원



  부옇게 동이 트는 기운을 느끼면서 새벽에 일어납니다. 시계가 없어도 새벽을 알고 아침을 느낍니다. 딱히 시계에 기대지 않으면서 하루를 열고, 아침밥을 지으며, 밭자락을 살피다가, 하루 살림을 되새깁니다.


  어버이가 시계에 기대지 않으면서 지내니 아이들도 시계를 바라보지 않습니다. 어버이가 시계를 따지지 않으면서 하루 살림을 지으니 아이들도 그저 하루 내내 새롭게 놀이를 지으면서 누립니다. 이 같은 시골살림을 꾸리면서 옛사람 발자국을 짚어 봅니다.


  어수선한 벼슬자리나 서울살이를 등지고 시골로 가는 사람이 제법 있어요. 많지는 않아도 예부터 꾸준히 있습니다. 벼슬이나 서울을 등지며 시골에서 지내는 삶이란 무엇일까요. 벼슬이나 서울을 바라보며 지내는 삶이란 또 무엇일까요.



줄 틀리는 아이들을 단속하면서 / 뭉치자 삼천만 깨뜨리자 삼팔선을 선창하면 / 아이들은 머리를 흔들어가며 따라 외쳤다 / 그것들이 모두 통렬한 반미구호라는 걸 / 그걸 만든 친미정권도 선생님도 / 까맣게 모르던 1948년 / 내 국민학교 2학년 때였다 (깨뜨리자 삼팔선)



  1942년에 태어나 교사로 오랫동안 일했다고 하는 정양 님이 쓴 시집 《헛디디며 헛짚으며》(모악,2016)를 조용히 읽습니다. 이 시집을 펴낸 출판사는 전라북도 전주에 있다고 합니다. 여러 시인하고 소설가 들이 모여서 뜻과 돈을 모아서 출판사를 작게 열었다고 해요. 전북 완주군에 모악산이 있다는데, 모악 출판사는 바로 이 ‘모악산’ 기운을 받아서 삶을 노래하려는 책을 펴내려는 뜻이지 싶습니다.



어느 게 다행이고 / 어느 게 불행인지 / 어느 게 더 만만하고 / 어느 게 더 군색한 건지 // 어딘가로 떠나는 철새들이 / 그게 다 그거 아니냐고 / 살똥스레 저물녘을 끼룩거린다 (그게 그거라고)


거울 속 까맣게 탄 얼굴이 낯익다 / 날더러 몰라보겠다고 하는 이들도 / 정작 나를 몰라보지는 않는다 / 더 탈 데도 없는 내 얼굴을 이제는 / 오뉴월 땡볕도 낯설어하지 않는다 / 이렇게 농사꾼이 되는 거라고 짐짓 / 김칫국도 마셔가면서 틈 날 때마다 / 산밭에 와서 땀을 흘린다 (땀)



  일흔 줄을 넘어선 정양 시인은 ‘산밭’에 틈을 내어 가서는 땀을 흘린다고 합니다. 벼슬자리나 서울살이가 아닌 ‘산밭뙈기’에서 오뉴월 땡볕도 한여름 뙤약볕도 실컷 쬐면서 새까맣게 얼굴이며 살갗이 탄다고 해요.


  요즈음 어느 시골이든 모두 비슷할 텐데, 오뉴월에 밭일이나 논일을 하는 분들은 챙이 긴 모자에 긴소매에 긴바지에 수건까지 목에 두르고 땀을 흘리지만, 이렇게 꽁꽁 싸매도 얼굴이나 살갗은 까맣게 탑니다. 참 용하지요. 햇볕은 어느 틈바구니를 헤집고서 살갗을 까맣게 태울까요.


  우리 집 아이들은 모자 없이 여름볕을 고스란히 쬐면서 뛰어놉니다. 여름볕이 아무리 따가워도 모자를 쓸 생각도, 뭔가를 걸칠 생각도 없습니다. 어쩌면 이 아이들은 햇볕이 얼굴이나 살갗을 태우는 결을 좋아할는지 모릅니다. 나도 어릴 적에 개구지게 뛰놀면서 땡볕이나 뙤약볕을 두려워하지 않았어요. 머리카락 끝으로 땀이 풀풀 날리면서 신나게 뛰놀았습니다.



정년퇴임한 지 여러 해 된 / 목숨도 얼마 안 남은 동료들이 / 남는 건 시간뿐이라며 / 틈만 나면 고스톱으로 시간을 죽인다 (시간 죽이기)


할멈은 안방에서 할아범은 거실에서 / 티비 켜놓은 채 잠든다 / 전기세 아깝다며 먼저 깬 쪽이 / 살살 다가가 전원을 끄면 피차 / 용케 알고 잠이 깨어 / 다시 자려고 다시 켠다 (겨울밤)



  정년퇴임을 한 여러 동무는 “남는 건 시간뿐”이라면서 그 남는 겨를에 고스톱을 친다고 해요. 정년퇴임을 하기까지 늘 바빴을 텐데, 여행도 책도 영화도 아닌, 집살림을 건사하거나 요리를 배워 본다든가 하는 살림이 아니라, “남는 시간에 시간 죽이는 고스톱”을 한다고 합니다. 〈시간 죽이기〉라는 시를 읽으면서 조용히 웃습니다. 그러나 이 웃음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쓸쓸하기 때문입니다. 어느 모로 보면 재미난 모습이라서 빙긋 웃음이 날 만한데, 어느 모로 보면 어쩐지 애처롭습니다.


  우리한테 주어진 삶은 ‘시간 죽이기’를 할 만큼 넉넉할까 하고 되돌아봅니다. 우리가 앞으로 걸어갈 길은 ‘시간 죽이기’를 하면서 흘려보내도 될 만할까 하고 헤아립니다.



시인 윤동주가 옥사 당한 것은 / 그가 독립투사나 저항시인이어서가 아니고 / 순결한 조선의 청년이었기 때문입니다 / 일본제국주의는 조선 청년의 / 그 순결한 영혼이 본능적으로 두려웠지요 // …… // 바르샤바조약군은 폴란드를 점령하자마자 / 맨 먼저 달려가 쇼팽의 피아노를 / 산산조각으로 때려 부쉈습니다 / 해맑고 아름다운 쇼팽의 선율을 그처럼 / 군국주의는 가장 두려운 것으로 여겼답니다 (갈채, 제5회 눌민문화제)



  어쩌면 우리는 날마다 뭔가를 헛디디는 살림은 아닌가 싶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으레 뭔가를 헛짚는 삶은 아닌가 싶습니다. 살림이나 삶뿐 아니라, 사랑이나 사람(이웃·동무)까지도 헛디디거나 헛짚듯이 제대로 건사하지 못하는 하루는 아닌가 싶습니다.


  벼슬자리도 서울살이도 모두 헛걸음이지는 않을까요. 이름을 드날리려는 몸짓이나 돈을 더 거머쥐려는 몸짓도 모두 헛손질이지는 않을까요. 손수 삶을 짓지 못한다면, 손수 살림을 짓지 못한다면, 손수 사랑을 짓지 못한다면, 손수 꿈을 짓지 못한다면, 이때에는 언제나 헛짓이요 헛놀음이요 헛삶이지는 않나 싶습니다.



눈 덮인 세상 어디나 고향 같고 / 눈길 닿는 데마다 포근하지만 / 아무 데나 가서 아무나 만나 / 아무 말이나 하고 싶지만 (도둑눈)



  내가 밭자락에 앉아서 호미를 놀리면 아이들은 어느새 내 곁에 모여서 흙놀이를 합니다. 자전거를 몰아 골짜기나 바다로 마실을 가면 아이들은 내내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춥니다. 아침저녁으로 밥을 차려 “자, 밥 먹을 사람?” 하고 부르면 아이들은 참새처럼 제비처럼 벌처럼 쌩하고 달려와서 밥상맡에 둘러앉습니다. 내가 두 손에 책을 쥐면 아이들도 책순이나 책돌이가 됩니다.


  껍데기나 허울만 있는 헛살림이 아닌, 알맹이와 열매가 소담스러운 속살림을 생각해 봅니다. 함께 짓는 속살림을 생각해 봅니다. 서로 사랑하는 속살림을 생각해 봅니다. 1948년 어느 날 학교에서 시킨 “깨뜨리자 삼팔선” 이야기부터 “산밭에서 땀을 흘리는 할배 농사꾼” 이야기가 흐르는 작은 시집 하나를 가만히 어루만집니다. 2016.6.16.나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시읽기)



h*******e 2016.06.16. 신고 공감 1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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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디디며 헛짚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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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구입 헛디디며 헛짚으며 정양 저 예스24 | 애드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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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구입
헛디디며 헛짚으며
정양 저
예스24 | 애드온2

 

 

마음에 드는 시집이다.

총 4부로 이루어져 있는데.

 

1부는 시인의 학창시절에 대한 시다.

2~3부는 정년퇴임 전후에 쓴 시고,

4부는 중국에 교환교수로 있을 때 쓴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시인의 일생을 빨리 감기로 본 것 같은 느낌이다.

시대를 대변하는 통찰력 있는 시들도 좋았고.

인간미 넘치는 시들도 좋았다.

 

 

 

 

 

 

 

 

 

 

 

 

 

 

 

 

 

 

 

 

 

 

 

 

 

 

 

 

 

 

 

 

 

 

 

 

 

 

 

 

 

 

 

w******d 2016.10.01.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