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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후명 작가를 알진 못한다. 당연히 그를 알지 못하기에 그의 책들 또한 알지 못한다. 그를 이 책을 통해 또 앞으로 나올 작가의 소설 전집을 통해 알아보고자 하는 마음은 없다. 다만 이 책이 내 눈길을 끈건 바로 강릉이라는 제목 때문이다. 강릉은 작가의 고향이다.그리고 자신이 글을 쓰는데 많은 도움을 준 곳이라고 한다. 과연 작가는 자신의 고향인 강릉을 어떻게 풀어냈는지 궁금했다. 작가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만나다 보면 나 역시 잊고 있던 곳, 내가 태어나 작가처럼 여덟 살 때 떠난 후 좀처럼 찾질 못하는 잊고있던 고향에 대한 기억이 떠오르겠지하는 생각이 이 책을 손에 들게 만들었다.
열편의 이야기를 통해 만나는 강릉은 변명을 하자면 먹고살기 바빠서, 앞만보고 달려가도 언제 이탈 될지 모르는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뒤돌아볼 여유를 갖지 못함으로 잊고 있던 고향에 대한 추억이 떠올랐다. 정말 오랜 시간 잊고 있던 그 곳. 가족과 또 어렸을 때 함께 뛰어놀던 친구들 모두가 떠난 그 곳. 어렸을 때 그래도 동네 한가운데 가게가 있었지만 지금은 남아 있는 사람들보다 빈 집이 더 많다는 그 곳. 어렸을 때 추억이 묻어 있는, 지금의 내가 있께 해줬던 그 곳의 대한 추억이 이젠 희미해져 기억이 떠오르지도 않던 곳. 가끔 술한잔 기울일 때 떠오르면 좋으려만 전혀 떠오르지 않던, 잊고 있던 곳에 대한 향수어린 그 곳에 대한 추억 속으로 흠뻑 빠져들게 만든 나름 즐거움을 준 소설 강릉.
그러나 열 편의 단편으로 만나는 이야기들이 대체적으로 모두 비슷 비슷 하다. 열 편의 각기 다른 단편들이지만. 한 편의 이야기를 마치고 다른 편의 이야기로 들어가면 이게 과연 다른 이야기 인지, 아니면 전편에 이야기가 또 이어지는 것인지에 대해 생각나게 한다. 그것도 마지막 편의 이야기를 마칠 때까지 든다. 개인적인 생각으론 비슷한 색을 처음부터 끝까지 유지함으로 인해 조금은 가독성을 떨어트린다. 조금은 색다른 소재의 이야기. 진지함이 묻어나는 이야기,웃음을 유발하는 이야기,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이야기등 많은 장르의 이야기들이 있다만, 작가가 의도한 것이겠지만 여러 이야기 장르가 한데 어우러졌다면 조금은 읽는 즐거움이 있었을 텐데하는 아쉬움이 조금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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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만해도 동네 서점이 성업을 했을 때다. 그 당시 직장 초년생인 나는 발령 동기들과 함께 월급날이면 서점엘 들러서 책을 고르고, 서로 책을 돌려 읽곤 했다. 그 때 처음으로 이 책의 작가 소설가 윤후명을 만나게 되었다. 당시 <하얀 배>로 그 해의 이상문학상을 수상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물론 지금 그 내용은 가물하다. 하지만 그 이름은 언제나 기억에 남아 책을 고르거나 할 때면 그 상을 수상한 작가들의 이름이라면 한번더 살펴보게 된다. 그렇지만 결혼과 출산과 육아라는 시간들을 거치며 조금씩 소설을 읽는 일들이 줄어들면서 서서히 작가들의 이름보다는 전문가들의 이름을 더 기억하게 되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또 다시 그 시절의 작가들의 이름이 그리움의 대상이 되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저자는 자신에게 강릉이 그러하다고 말하고 있다. 처음이며 결국은 자신이 돌아가게 될 것이기도 하다고. 그는 이 책에서 여러편의 단편들을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은 2년전 한 출판사에서 제안한 그의 소설 전집을 출간의 스타트를 끈는 작품이다. 그만큼 그는 이 책 속 작품을 선정하는데 고심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이 책을 통해 그의 처음이자 마지막에 놓일 강릉을 이 속에 한껏 담고 있음이다. 책 속 여러 작품에서 소설과 시를 넘나들며 전개되는 이야기들이 나타나고 있다. 아마도 그는 이 작품들을 통해 결국 그의 모든 작품은 시나 소설로 분류되어지지 않기를 바라는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이 속에는 알타이족장에게 드리는 편지도 등장을 하고, 일본인 여인과의 에피소드도 작품으로 소개된다. 그리고 또 다시 대관령을 한 번 찍고, 시인지 소설인지 구분 없이 넘나들며 작품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또 핀란드 역의 소녀를 마주하게 된다. 하지만 종국에는 강릉의 호랑이에 관한 이야기로 돌아온다. 소설가는 아마도 자신의 시작인 강릉에서 출발하여 결국 고비를 넘고, 알타이를 넘어도 결국 그는 그의 시작인 강릉으로 돌아옴을 이 첫 작품집에서 말하려는 것이리라. 사실 예전에 읽었던 그의 작품의 내용이 생각이 나지 않음은 시간이 많이 흘렀음도 그러하겠고, 내 기억력의 감퇴도 일조하겠지만 다시 그의 다른 작품을 읽으며 곰곰 생각해야 하는 그의 작품의 특징도 한 몫하지 않았나 싶다. 다행히 여러편의 단편들로 이루어져 있으니 찬찬히 하나하나 순서를 지켜 읽으면 될 듯하다. 아마도 저자는 순서를 지켜 읽기를 바랄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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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인 윤후명작가는 연세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1967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면서 21세의 나이에 윤후명은 시인으로 등단했다. 그 이후 시인으로써 많은 창작 활동을 하면서 여러 직장을 전전긍긍하는 피폐한 생활을 하기도 하며「명궁(名弓) 이라는 시집을 발간하기도 한다. 시인으로 출발한 윤후명은 이어서 197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소설로 다시 등단하여 소설가로의 길을 걷게 된다. 이런 특이한 이력을 가지고 있는 윤후명은 여느 다른 소설과는 달리 자신의 얘기를 정신 없이 늘어놓는 특이한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는 예전의 소설이 가지고 있는 허구적인 틀을 바탕으로 쓰여진 산문과는 달리 지극히 사적인 경험을 다루고 있는 새로운 형식을 갖고 있는 것으로 문단의 주목을 받게 된다. 윤후명은 현재까지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작가로써 이 책 '강릉'은 등단 50년이라는 세월을 보낸 저자의 전집을 처음을 신작으로 배열한 저자의 전집 중 첫권이다. 특히, 이번 소설집의 특징은 여덟 살에 떠난 고향 강릉에 대한 토막 기억들을 연결하고 있다. 소설집 '강릉'은 작가가 어린 시절 강릉에서 겪었던 일상의 이야기뿐 아니라 오랜 세월이 흘러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 겪은 일들을 풀어내고 있는 일종의 ‘자전소설’로 볼 수 있다. 윤후명 소설은 어찌 보면 소설이라 하기 보다 여행기라고 봐도 될 정도로 여행이 소설을 이끌어나가는데 바탕이 되어 전제되어 있다. 소설 속의 나는 작가의 분신으로서 '나'를 통해 자신을 확연하게 드러내고 있으며 집이라고 하는 현실을 떠나 새로운 삶을 탐구하기 위한 이상을 향해 끊임없는 여행의 길을 떠난다. 여러 매체를 통해, 소설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옮겨놓은 윤후명 작가의 글을 찾아보았다. 작가는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소설은 새로운 것을 추구해야 하고 본인은 끊임없이 그 새로움 찾아가며 소설을 쓴다고 말이다. 현실은 '나' 에게는 상실감이기도 하며, 존재의 불안감이기도 하고, 고독, 절망이다. '나' 는 자신의 공허감과 결핍을 매꾸기 위해 자기 자신의 이상의 세계 즉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여행을 떠날 수밖에 없다. 이런 것을 전제로 윤후명 소설은 자기 자신을 찾기 위한 이상을 향한 발걸음을 소설에 담고 있는 것이다. 그럼 그가 찾으려는 이상은 무엇이며 어떤 모습인지 도대체 무엇을 향해 그렇게 헤매고 있는가? 작가가 이야기하고 싶어하는 것이 도대체 무엇일까? 특히 전집으로 엮어 펴낸 이번 책 '강릉'은 '강릉'이라는 지정학적인 고향으로의 회귀는 작가의 시나 소설에 낙인처럼 따라다니는 운명 같은 것임을 느끼게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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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는 시인이자 소설가인 윤후명님의 삶이 그려져 있습니다. 제목 강릉에서 짐작했듯이 윤후명님의 고향은 강릉이며, 고향을 통해서 작가 스스로 놓치고 있었던 기억들을 끄집어 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작가의 소설의 첫 시작은 고향 강릉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강릉에 두번 다녀왔습니다. 제가 간 강릉은 여름이 아니었습니다.강릉에는 유명한 해수욕장이 있지만 여름철에 가면 제대로 된 강릉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다른 지역과 다른 동질감을 느끼는 곳이어서 내가 살고 있는 곳과 강릉은 먹는 음식에서 차이가 있을 뿐 비슷하였습니다. 특히 작가 스스로 감자에 대한 기억들.. 그 감자에 대한 기억 또한 저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감자와 고구마를 주식으로 먹으면서 살아왔던 삶은 나의 부모님 또한 마찬가지였던 것입니다. 작가로서의 정체성.. 시인이자 소설가였던 윤후명 님에게 있어서 누군가 툭 던지는 말에 대해서 스스로를 한번 돌아 보게 됩니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그녀가 자신을 생각하는 것과 자신이 자신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차이가 있었습니다. 자신은 시인이라고 생각하였지만 세상은 시인 윤후명이 아닌 소설가 윤후명으로 기억하고 있는 것입니다. 소설가였기에 자신이 쓰고자 했던 것을 우리보다 더 많이 알고 싶었던 사람. 그래서 스스로 삼국유사에 관한 소설을 펴내면서 역사에 대한 무지를 느끼게 됩니다. 세상 사람들은 삼국유사에 대해서 알고 있지만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는 것.그건 어쩌면 삼국유사가 우리의 정체성의 일부분이긴 하지만 전부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럼으로서 꼭 알아야 할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소설가로서 삼국유사를 쓰려면 일연이 쓴 삼국유사에 대해서 역추적해 나가야 합니다. 자신이 알고 있는 이야기와 모르고 있는 것들. 그럼으로서 스스로 우리 지명과 삶 곳곳에 삼국유사와 연결되어 있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됩니다. 고향이라는 곳은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요. 25년만에 찾아온 고향. 그 고향은 25년 전의 고향과는 다른 모습이었습니다.위치는 그대로인데 자신의 기억 속에 있는 것들은 제자리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럼으로서 누군가에게 자신의 기억을 재생했을 때 설명을 해 주어야만 찾아갈 수가 있습니다. 개발이라는 이유로 25년 전 기억들의 퍼즐들은 하나 둘 사라졌으며 그것을 찾기 위해서 시행착오를 겪게 됩니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경제 발전을 이유로 지금보다 더 살기 좋은 세상으로 바뀐 것이 마냥 좋지 않다는 것입니다. 소설을 읽으면서 나의 고향에 대한 기억들과 겹치는 이야기도 있었으며, 나의 고향은 지금 어떤 모습일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고향에 대해서 좋은 기억 안 좋은 기억들.. 그 기억들은 바로 나의 인생이었습니다. 때로는 고향에서 상처를 받음으로서 외면하기도 하였던 그곳..그러나 문득문득 떠오르는 곳이 바로 고향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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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후명 작품을 처음으로 접하기 때문에 어떤 이야기를 어떤 식으로 표현하고 있을까라는 기대를 가졌다. 왜냐하면 이상문학상을 비롯하여 수많은
작품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는 약력은 윤후명 작품에 대한 기대를 하게되었다. 단편소설 10편으로 이루어진 강릉이라는 이 작품의 전체적인 느낌은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라는 점이다. 물론 "쉽지 않다"라는 느낌은 지극히 개인적인 느낌이라고 말하고 싶다. 본인의 독서량에 따라 혹은 이해력에
따라서 이 책을 이해하는 바가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오히려 역량이 되는 독자에 따라서 대중적인 소설 책보다 이런 책이 훨씬 맛있다고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의 역량으로는 이 작은 서적을 소화하는 것이 버거웠다라고 고백한다.이런 느낌을 받는 근본적인 이유는 소설의 분위기가
고등학교때 국어 시간에 공부했던 문학작품으로서의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때는 문학작품을 읽어나간다라기 보다는 해석한다는 표현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소설을 즐기기보다는 선생님의 풀이를 통해서 공부를 했었다. 이 소설을 읽고 내가 느낀 점은 고등학교 때 선생님의 풀이를
통해서 이해했던 문학작품과 같은 느낌이 들었다는 점이다. 이런 느낌이 드는 가장 큰 이유는 소설 속에는 수많은 장르가 복합되어 있었다.
수필으로서의 분위기, 기행문으로서의 분위기, 시로써의 장르등이 혼합되어있기 때문에 장르를 넘나들때마다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고 저자의 생각 역시
너무나 자유롭기 때문에 내용적인 측면에서도 경계가 없다는 느낌이 들었다. 저자가 시인이면서도 소설가이기 때문에 문체는 철학적이면서도 시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가 표현하고자하는 바는 저자의 자유로운 생각에 근거한다. 시가 가진 자유로움과 소설이 가진 스토리를 혼합하고 있기 때문에
저자가 표현하고자 하는 생각을 따라가는 것이 이해력이 부족한 나에게는 쉽지 않았었다. 이 책은 독서역량이 어느 수준에 이른 사람들에게는 훌륭한
서적임에 틀림이 없다. 저자의 철학적 이야기와 저자의 관점, 문체, 문학성에서도 읽을 수 있고 배울 수 있는 콘텐츠가 많기 때문이다. 아직은 이
책을 소화하기에는 저의 독서역량이 부족하지만 이 책을 반복적으로 읽어본다면 윤후명 저자의 문학성을 충분히 느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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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윤후명/은행나무/고향 강릉과 중앙아시아로의 끌림을 담은 소설집~
인간의 삶은 과거와 현재, 미래라는 시간의 연속선 상에 놓여있는데요. 인간은 일생동안 시공간적 이동을 통해 흔적을 남기기도 하죠. 자신을 가장 확실하게 나타내는 시공간은 아마도 현재의 위치일 겁니다. 하지만 자신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곳은 대개 과거의 고향이겠지요.
《둔황의 사랑》을 통해 알게 된 윤후명 작가의 소설집을 오랜만에 읽으며 작가에게 끌리는 곳이 소설의 배경이 되고 시의 공간이 되는구나 싶었어요. 작가에게 있어서 태어난 강릉에서의 추억은 언제나 피비린내 나는 전쟁의 상채기였군요. 또한 단군의 고향인 중앙아시아로의 끌림은 민족의 고향에 대한 끌림이었을테고요.
두번째로 나온 <알타이족장께 드리는 편지>에서 알타이가 현재 러시아의 한 자치공화국 이름임을 알게 되었는데요. 옛 흉노족의 땅이었던 알타이에서의 고려인 음유시인과의 만남은 반가움과 슬픔의 교차점이었을 겁니다. 훈족(흉노족)의 유럽으로의 이동, 둔황에서 발견된 신라의 승려 원효의 《대승기신론》, 한국에 있는 둔황의 유물들을 보면 알타이와 흉노족과 우리 민족의 연결성도 흥미로웠고요. 고향인 중앙아시아에 남겨진 우리 민족의 흔적이 많음에 놀랍습니다. 작가의 말처럼 중국 사서에 오랑캐라 불렀던 동이, 서융, 북적 등의 북방 초승달 지대와 한민족의 관련성, 북방 민족의 인류사적 주체 역할에 대한 연구는 우리의 정체성에 대한 연구이기도 하기에 그런 연구가 활발해졌으면 합니다.
둔황 시가지에 세워진 비천녀 조각상과 한국 동종 무늬의 비천녀 상의 유사점을 통해 실크로드의 문화 전파를 이야기하고 있는데요. 중앙아시아에 남겨진 고려인의 삶과 고대로부터 남겨진 한국인의 흔적을 재조명하는 일은 개인적으로도 관심이 많았기에 작가의 이야기에 끌렸답니다. 민족의 고향인 중앙아시아나 둔황에서 만난 우리의 이야기는 고향을 떠난 유목민의 역사 같아서 색다르기도 했어요. 개인적이든 민족적이든 고향이 주는 정신적 안정감과 끌림은 분명 강력함을 느낀 소설집이었어요. 그런 고향으로의 회귀는 작가의 시나 소설에 낙인처럼 따라다니는 운명 같은 것임을 느낀 소설이었어요. 작가의 소설집을 보며 《둔황의 사랑》을 다시 읽고 싶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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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시인으로 등단한 작가 윤후명님께서 소설가의 길을 걸으며 오랜 시간 준비한 작품들을 연작으로 출판하게 되었는데 그 시작을 알리는 작품인 "강릉"을 만나본다. 강릉의 호랑이 전설에서 시작된 작가의 여정은 고비를 지나 알타이를 넘어 다시 작가 자신에게로 돌아오게 되는데 그 연작의 시작이 "강릉"인 것이다. 작가의 고향인 강릉에서 시작을 하게 되는 이야기속으로 들어가 본다. 작가가 직접 밝혔듯이 이 작품은 강릉의 호랑이 전설이 이야기의 전반을 이끌어주고 있다. 여러 이야기들이 여러 갈래의 길을 향해 전개되어지다가 다시 어느 시점에서는 모이게 되고 또, 다시 갈라지고 모이기를 반복하면서 이 이야기는 전개되어진다. 소설이라기 보다는 작가의 생각을 아름다운 언어들로 섬세하게 그려가고 있는 수필이나 일기를 보는 듯 하다. 시인으로 등단해서 소설가의 길을 걷고있는 작가의 이력에서 볼 수 있듯이 이 작품에서는 아름다운 시와 소설을 접해놓은 듯한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너무나 섬세하게 그려지는 풍경들 속에서 아련한 추억속으로 자연스레 빠져드는 내 모습을 볼 수 있어 좋았다. 한 편의 아름다운 시집을 들고 소설속 주인공처럼 추억속을 노니는 듯한 기분으로 책장을 넘긴다. 소설속 주인공과 함께하는 호랑이에게 잡혀 "머리만 남은 소녀"를 만났을 때는 무엇인가 모를 환상속에 사로잡히게 된다. "소녀의 혀"를 통해서 말하려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아름답다..아마도 작가는 소설속 주인공을 통해 우리 말의 아름다움과 우리들 자연의 아름다움을 말하고 싶었던것 같다. 중국이라는 거대한 나라의 북방민족으로 치부되며 작아져야 했던 우리의 아름다움을 알리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하고 생각해본다. 우리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알리지 못했던 안타까움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일꺼라고 짐작해본다. 아름다움을 찾아 다양한 길을 나서는 작가의 처음 시작은 작가의 고향인 강릉의 바다에서 시작된다. 도시가 고향인 내가 전혀 느낄 수 없는 고향 바다의 아름다움으로 시작하는 것이다. 그런 연작의 시작을 함께 할 수 있어서 너무나 행복했다. 또, 작가가 긴 여정속에서 찾기를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너무나 궁금해진다. 우리 말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한편의 시집 같은 소설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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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은 이 책 《강릉》의 저자인 윤후명님의 고향이다. 《강릉》을 읽으면서 작가의 옛 이야기를 읽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때로는 수필인 것도 같았고 일기인 것 같기도 했으며 기사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장수바위’를 찾으면서 ‘나’는 너무도 친근했던 고향이 낯설어 짐을 발견하고, 어머니의 뼈를 뿌린 바다를 바라보며 호랑이에게 잡아먹히고 머리만 남은 처녀의 혀를 찾는다.
한참 만에 만나 ‘나’의 고향에서 ‘잠시’ 동안 혼자 남겨진 여자는 약속 시간에서 한참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는 남자를 발견하고 너무도 반가운 마음에 반기려 하지만 다가서지 못한다. <가까이 다가갔을 때 이상한 걸 느꼈던 거예요. 마치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 같았던 거예요. 순간 무서웠어요. 그래서 발길을 돌리지 않을 수 없었어요.> (본문 p.175) 어쩌면 고향은 과거와 맞닿아 있어 현실에서 다가서기 두려워지는 그런 공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고향이 다른 지역과 차별성을 갖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부모님의 이야기와 함께하기 때문인 것 같다. 아주 연세가 많으셨던 선친에게 들었던 옛 이야기들이 이 책 《강릉》에 담겨져 있어 마치 아버지와 교감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과거의 흔적을 찾기 위해 너무도 친숙했던 낯선 공간을 여행하는 ‘나’의 모습에서는 앞으로 내가 마주할 그 낯선 고향의 모습이 어떠할지에 대해 먼저 경험할 수 있었다.
《강릉》에는 지명은 물론 인명도 실명으로 나온다. 때로 인터넷 검색을 통해 책에 언급된 이가 저자와 어떤 관계가 있는 사람인지를 검색해 보기도 했다. 사실 나는 강릉에서 짧은 기간 살았던 경험이 있다. 그 기간 동안 메르스로 인해 단오제가 취소되기도 했었는데 그 ‘사실’도 이 책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책에 언급된 ‘성산’이 어느 지역인지도 잘 알고 있다.
또한 동해 바다에서 떠오르는 그 장엄한 아침 해를 보며 왜 일출을 소의 혓바닥으로 비유했는지도 이해가 됐다. 이 소설 《강릉》에서 ‘나’는 일출을 보며 그녀와 입을 맞추고 그 숨막히는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있다. 바다로 향하는 방파제에 부딪히는 파도소리도 느낄 수 있고 산 속 외딴 곳에 떨어진 산지기 외딴 집을 찾아 함께 여행도 떠나본다.
나와 관계가 없다고 생각했던 ‘낯선 집주인’이 처녀인 여자에게 왜 자신의 묘자리를 비유적으로 알려 주었는지, 대관령과 강릉의 바다, 지역이 저자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도 이 소설 《강릉》을 통해 만나볼 수 있었다.
무엇보다 시인을 꿈꾸었던 저자가 직접 쓴 많은 시들을 이 책을 통해 만나볼 수 있었다. 시를 품고 있는 소설, 시가 이끄는 소설, 내 생각을 대변해주는 시를 통해 《강릉》으로 마음속 여행을 떠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윤후명님이 가장 잘 안다고 생각하는 장소 강릉, 그 강릉의 헌화로를 만나고 지금은 사라진 추억의 장소들로의 여행도 흥미로웠다.
몇 권 되지는 않지만 ‘00 문학상 수상집’ 책들이 책꽂이에 몇 권 꽂혀 있다. 당연히 윤후명님의 단편 소설이 수상작으로 결정된 그 해의 작품집도 있다. 앞으로도 신작으로 자주 만나 뵈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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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시원에 닿아 있는 곳 『강릉』 윤후명 지음, 은행나무, 2016
경향신문과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각각 시와 소설이 당선되면서 등단한 윤후명은 70평생을 언어의 탁마琢磨를 통해 우리말이 가진 울림과 특유의 정서를 씨줄과 날줄로 교차시킨 독자적인 세계를 올곧게 구축해 오고 있다. 대표적 문학평론가 김윤식 선생은 “그의 문장은 빼어나고 빼어나서 견줄 사람이 없다”고 평할 정도로 우리나라 문단의 가장 치열한 문장가로 알려져 있다. 시적인 문체와 독특한 서술방식을 통해 무미건조하고 숨 막힐 것 같은 일상에서 삶의 본질적인 쓸쓸함과 그리움을 예리하게 포착해 내는 그의 문장 앞에서 나는 번번이 베이곤 했다. 윤후명 작가에게 지심도가 마음의 섬이라면 강릉은 마음의 육지이다. 노작가는 어느 신문 인터뷰에서 여덟 살에 강릉을 떠나 육십 이 년이 걸려 먼 우회로를 돌아서 마침내 일흔 살에 고향에 돌아왔다고 말했다. 그에게 ‘강릉’은 단순한 지명에 머물기보다는 자신의 존재와 철학까지를 일컫는 믿음을 포함하는 말인 셈이다. 몇 해 전 윤후명 소설가와 독자들이 함께 가는 ‘강릉 문학기행’에 끼였던 적이 있다. 5월의 따스한 봄 햇살을 받으며 그가 쓴 여러 작품들의 무대가 되었던 임당동 성당, 객사문, 경포대, 헌화로 바닷길 등을 걸었다. 그때 본 강릉의 산은 푸르렀고 물은 깊었다. 대지는 부드러웠으며 공기는 달았다. 주홍빛 산당화 꽃향기가 그윽한 오죽헌 마당에서 노작가는 낮고 담담한 목소리로 고향과 작품을 이야기했다. 일흔 세월을 살아 온 삶의 궤적이 독자들의 가슴을 훑고 지나갈 때마다 그들이 내는 희미한 한숨과 탄식이 공기를 흔들고 지나갔다. 『강릉』은 내년 등단 50주년을 앞둔 윤후명 작가의 신작 소설집이다. 작가 생애에 있어 출발점이자 귀환점인 고향 ‘강릉’을 모티프로 쓴 열편의 소설이 실려 있는 ‘윤후명 소설전집’의 첫 권이기도 하다. 그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삶은 늘 위태롭고 외롭다. 그리움과 기다림을 함께 지니고 살면서 인생에 유별난 목적을 갖고 있질 않다. 삶의 ‘편도’를 산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도망침에 익숙한 사람들이다. 책에는 전집을 꾸리면서 새로 쓰고 고쳐 쓴 작품도 있지만 <산역山役>처럼 오래된 소설도 있다. 197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인 <산역>은 ‘작가의 말’에서 밝힌 것처럼 전쟁과 함께 작가의 고향 강릉의 큰 산과 큰 바다에 얽힌 어떤 사랑의 운명의 기록이다. 한 인간의 태어남을 배경으로 삶의 어느 편린에 스며 있는, 고래의 부패한 내장에서 얻을 수 있는 용연향龍涎香같은 사랑 이야기다. 그런데 하필 오래된 그 작품에 오랫동안 눈길이 머물렀다. 다시 읽어보니 정말 내가 전에 읽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낯익으면서도 새롭게 다가왔다. 특히 설명이 아닌 묘사와 이미지로 큰 반전을 보여주는 마지막 대목이 그렇다. “돌아가신 네 아버지가 너에게 남기셨어. 바다가 보이는 산도.” “돌아가신 아버지?” 그녀는 한꺼번에 밀려와 벼랑에 부딪치는 먼 파도 소리를 듣는 듯했다. 어머니는 석상처럼 무겁게 머리를 끄덕이는 것으로 모든 사실을 한꺼번에 설명하고 있었다. (330쪽) 그것은 텍스트가 마구 뱉어내는 의미를 머릿속에 구겨 넣느라 소설의 참맛을 잊어버린 현대의 독자 대부분이 갖는 공통된 반응일 것이다. 소설이 메시지를 전하는 전령 노릇이 다는 아니지 않은가. 이 책에 실린 열편의 소설은 서사 이외의 다른 장르의 요소들을 자유롭게 드나들게 함으로써 이미지로 호출한 삶의 본래 모습을 우리 곁으로 가깝게 불러낸다. 『강릉』은 모든 인간의 일들 속에 깃든 어떤 ‘원류原流 혹은 시원始原’과 닿는 감동의 감정선이 길게 남는 소설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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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누구에게나 고향은 살갑고 애착이 가며 자기 삶의 일부를 담당하는 장소이지 저자 윤후명의 고향이라 알려진 강릉! 강릉 단오제를 모티프로 한 소설은 강릉 호랑이 전설을 상징적으로 표현해 내고 한편 눅진한 연배의 소설가로 익히 알려졌다기 보다 숨어있는 보옥과도 같은 수 많은 사람들이 향수에 젖거나 추억을 더듬듯이 저자의 옴미버스형식의 소설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