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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판발행 2002년 2월 25일 구입한날 2002년 5월 25일
나무 강가에 키 큰 미루나무 한그루 서 있었지 봄이었어 나, 그 나무에 기대앉아 강물을 바라보고 있었지
강가에 키 큰 미루나무 한그루 서 있었지 여름이었어 나, 그 나무 아래 누워 강물 소리를 멀리 들었지
강가에 키 큰 미루나무 한그루 서 있었지 가을이었어 나, 그 나무에 기대서서 멀리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고 있었지
강물에 눈이 오고 있었어 강물은 깊어졌어 한없이 깊어졌어 강가에 키 큰 미루나무 한그루 서 있었지 다시 봄이었어 나, 그 나무에 기대앉아 있었지 그냥, 있었어 *** 나무는 한곳에 붙박이처럼 있는데 그곳을 찾는 이들의 사연이 시가 되는구나... 향기 길을 걷다가 문득 그대 향기 스칩니다 뒤를 돌아다봅니다 꽃도 그대도 없습니다 혼자 웃습니다 *** 그 사람의 모습에 대한 기억은 여러 가지의 형태로 저장이 되어 있지... 뒷모습이든 걸음걸이든 목소리든 그 사람에게 나던 좋은 향이든... 뜬구름 구름처럼 심심하게 하루가 또 간다 아득하다 이따금 바람이 풀잎들을 건들고 지나가지만 그냥 바람이다
밖을 본다. 산, 구름, 하늘, 호수, 나무 운동장 끝에서 창우와 다희가 이마를 마주대고 흙장난을 하고 있다 호수에 물이 저렇게 가득한데 세상에, 세상이 이렇게 무의미하다니.
*** 사는게 무료하고 의미없게만 여겨지던 때 만났던 시라 그런지 이 시집에서 가장 와닿았던 시였다. 맨발 가을비 그친 강물이 곱다 잎이 다 진 강가 나무 아래로 다희가 책가방 메고 혼 자 집에 가는데, 그 많은 서울 사람들을 다 지우고 문재 는, 양말을 벗어 옆에다 두고 인수봉을 바라보며 혼자 술 먹는단다. 이 가을 저물 무렵, 다희도, 나도, 나무도, 문재도 고요한 혼자다.
*** 혼자, 라는 단어. 쓸쓸한 느낌이라기 보다는 고즈넉한 느낌을 준다. 김용택 시인의 혼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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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 시인, 김용택. 자연과 아이들을 사랑하는 시인, 김용택. 그의 시 속에서는 풋풋함과 인간미 그리고 자연미가 느껴진다. 구수한 사투리 속에 숨어있는 사랑을 좋아하기에 <나무>를 골랐다. 하지만, 얼마전 김용택 시인이 <조선일보> 논단 필자로 활동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어떤 생각으로 이 신문의 필자로 참여하게 되었는지 나는 잘 모른다. 다만, 조선일보로 대표되는 보수이데올로기의 강력한 힘들이 지금 시대와 사람들을 피폐시키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김용택 시인이 그런 이데올로기의 장에 들어간다는 것은 어떻게 해석을 해야 할까. 김용택 시인의 시가 힘없는 자, 소외된 자에 대한 사랑을 노래했던 것이 아닐까. 과연 이 세상에 정치적이지 않은 생각과 행동이 있을까.
<나무>라는 시는 전작들과 비슷한 감동을 준다. 김용택 시인의 순수함이 아직 사그라들지 않았음을 대변해주는 것 같다. 다만, 장편시에 대한 생각은 아직도 이해하지 못한 김용택 시인의 내면인 것 같다. 그리 할이야기가 많았을까. 그리 풀어내야 할 이야기가 많았을까. 그리도 주저리주저리 풀어놨어야만 할까. 왠지 <나무>라는 시집은 두번 읽지 않을 것 같다. 김용택 시인의 순수함은 어디까지 튀어갈 것인지...걱정된다. [인상깊은구절] 아, 사람들은 아직도 꽃이 아름답다 하지만 나는 봄바람 속 이 화사한 봄꽃들이 싫으이 오, 사랑은 어디에서 어디로 오는가 파랗게 자란 풀잎들 사이로 아름답게 흘러가는 시냇물은 어디에 가서 까맣게 죽는가 그대 곁을 스치다가 병든 내 사랑은 어디에서 꽃피는가 희고 노란, 그리고 연분홍으로 꽃들은 오늘도 오염처럼 내 몸을 스치는데 오, 내 사랑은 어디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이 봄 나는 내 몸 어딘가에 열꽃처럼 숨어 있을 이 지루한 서정이 싫으이나무>나무>조선일보>나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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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말하는 시 99 시와 배롱나무 ― 나무 김용택 글 창작과비평사 펴냄, 2002.2.25. 전라도라는 시골로 삶자리를 옮겨서 지내지 않았어도 배롱나무를 볼 일은 으레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온 식구가 전라남도 고흥군으로 옮겨서 조그마한 마을에 조용히 깃들면서 늘 배롱나무를 만나면서 여러모로 생각에 잠기곤 합니다. 도시에서나 다른 고장에서는 이 나무를 두고 ‘백일홍나무’라든지 ‘목백일홍’이라고도 합니다. 우리 마을이나 고장에서는 ‘백일홍’ 같은 이름을 안 씁니다. 도시에서 찾아온 손님이 ‘백일홍’ 꽃송이가 참 곱네요 하고 말을 여쭈면, 마을 분들은 이 말을 못 알아듣기 일쑤입니다. 나이가 제법 있는 분들은 ‘배롱나무’라는 이름뿐 아니라 ‘간지럼나무’라는 이름도 즐겨씁니다. 봄꽃들이 지는 날, 너의 글을 읽는다. 땅위에 떨어져 있던 흰 꽃잎들이 다시 나무로 후루루 날아가 붙는다. (올페) 김용택 님 시집 《나무》(창작과비평사,2002)를 읽으면서 나무를 가만히 헤아립니다. 우리 집 마당에서 자라는 나무를 헤아리고, 우리 마을에서 자라는 나무를 헤아립니다. 이웃 여러 마을이나 우리 고장에서 자라는 나무도 곰곰이 헤아립니다. 고흥 읍내로 가 보면 큰길에 나무가 거의 없습니다. 더군다나 그늘이 드리우는 나무조차 없습니다. 남녘은 여름에 불볕이요 봄가을에도 땡볕이 꽤 센데, 그늘을 드리울 만한 나무를 제대로 건사하지 못한다고 할까요. 어느 모로 본다면, 들에 나락을 심고 밭에 남새를 심으니 그늘을 안 좋아할 수 있습니다. 나무가 마을 둘레에 있으면 나락이나 깨나 고추를 말리기 어렵다고 여길 만합니다. 그러나 예전에는 나락을 논에 볏가리를 쌓아서 말렸습니다. 더욱이 예전에는 나무를 땔감으로 삼았으니 나무를 함부로 다루는 일이 있을 수 없고, 마을 둘레에는 ‘숲정이’라는 이름이 따로 붙을 만큼 고운 숲을 이루기 마련이었어요. 어머니는 동이 가득 남실거리는 물동이를 이고 서서 나를 불렀습니다 / 용태가아, 애기 배 고프겄다 / 용태가아, 밥 안 묵을래 / 저 건너 강기슭에 / 산그늘이 막 닿고 있었습니다 / 강 건너 밭을 다 갈아엎은 아버지는 그때쯤 / 쟁기 지고 큰 소를 앞세우고 강을 건너 돌아왔습니다 (이 소 받아라, 박수근) 나무가 있는 마을하고 나무가 없는 마을은 사뭇 다릅니다. 나무가 있는 마을에는 마을사람뿐 아니라 길손이나 나그네도 다리쉼을 할 만한 곳이 있기 마련입니다. 나무가 없는 마을에는 마을사람도 길손도 나그네도 다리쉼을 할 만한 곳이 없기 마련입니다. 높다란 건물만 빼곡하게 선 도시에서는 그야말로 쉴 곳이 없습니다. 돈을 치르고 들어가야 하는 찻집이나 밥집이 되어야 비로소 쉴 수 있으나, 돈이 없고서야 이러한 곳에 들어갈 수도 있고 느긋하게 있을 수도 없습니다. 나무가 잘 자라서 그늘을 드리우는 풀밭이나 평상이라면, 어른뿐 아니라 아이도 마음껏 뛰놀 수 있습니다. 나무가 없고 자동차와 건물만 빽빽한 도시에서는 어른도 느긋하게 쉴 자리가 없으며, 아이는 아무 데에서나 뛰거나 달리지 못합니다. 고향산천을 막무가내로 뜯어고치는 건설의 포크레인 소리, 여기저기 엄청나게 파뒤집어 쌓아놓은 흙더미. 아, 아, 하루라도 좋다 건설 없는 평화로움 속을 나는 거닐고 싶다. 정말 우린 왜 사는가? (세한도) 시집 《나무》에는 삽차 이야기가 곧잘 나옵니다. 삽차가 고향마을 들과 내와 숲을 망가뜨리는 이야기가 곧잘 나옵니다. 삽차를 모는 일꾼은 위에서 시키니까 삽차를 몰밖에 없습니다. 삽차를 몰도록 시키는 웃사람은 언제나 ‘개발·발전’을 외칩니다. 그런데, 웃사람이 외치는 개발이랑 발전은 늘 ‘시골이랑 숲을 망가뜨리거나 무너뜨려’서 ‘시멘트와 아스팔트로 새로운 도시를 일으키거나 공장을 늘리는’ 모습입니다. 한없이 부드러운 손을 뻗어 다른 나뭇잎을 건드리며 / 서로 신비로워서 깜짝깜짝 놀라는 저 몸짓들을 좀 보라지 / 어, 저 오리나무 아래 연보라색 아기붓꽃 보아 / 고사리도 손을 쪽 폈구나 두릅잎도 피고, 찔레순도 자랐네 / 너는 둥글레 싹이구나 캄캄한 땅 속에서 얼마나 천천히 솟았기에 (숲) 무화과밭에 가 보면, 무화과나무 가지를 철사로 단단히 감아서 땅바닥에 붙인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무화과알을 따기 좋도록 한다고도 하고, 무화과나무는 가지를 삭둑 잘려야 더 굵은 알을 맺는다고도 합니다. 능금나무도 배나무도 모두 앉은뱅이나무이기 일쑤입니다. 포도나무는 열 해 즈음 포도를 맺으면 잘 맺는 셈이라고 합니다. 백 해는 우습고 천 해는 가볍게 산다고 하는 나무인데, 오늘날 문명사회에서 발전과 개발을 외치는 흐름으로는 나무 한 그루가 백 해는커녕 쉰 해나 서른 해조차 못 삽니다. 천 해를 살면서 넉넉히 모든 사람과 짐승과 벌레한테 나누어 줄 열매인데, 사람들끼리 더 많이 거두어서 더 많이 팔고 더 많이 쓴다고 하는 발전논리와 개발논리에 휩쓸려서 나무를 괴롭힐 뿐입니다. 가을비 그친 강물이 곱다 / 잎이 다 진 강가 나무 아래로 다희가 책가방 메고 혼자 집에 가는데, 그 많은 서울 사람들을 다 지우고 문재는, 양말을 벗어 옆에다 두고 인수봉을 바라보며 혼자 술 먹는단다. (맨발) 여름이 저무는 들녘이 곱습니다. 가을로 들어서는 하늘이 곱습니다. 여름과 가을 사이에 부는 바람이 곱습니다. 나무 한 그루가 곱습니다. 소나무이든 방울나무이든 느티나무이든 감나무이든, 어느 나무이든 모두 곱습니다. 우리 마을 어귀를 밝히는 배롱나무도 곱고, 우리 집 마당에서 의젓하고 씩씩하게 크는 후박나무도 곱습니다. 아침 낮 저녁으로 나무한테 인사하면서 내 마음도 곱게 거듭납니다. 나무하고 함께 사는 사람이라면 모두 나무 같은 마음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시골에도 도시에도 싱그럽고 예쁘면서 멋진 나무가 가득하기를 빌어요. 사람들 가슴속에 고운 사랑이 피어날 수 있기를 꿈꾸어요. 4348.8.28.쇠.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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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맞다. 김용택 선생은 원래 시인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를 그저 글쓰는 사람으로 알고 있다. 사실 그는 선생이기도 하다. 이 모든 것이 헷갈리기만 한데 그는 전혀 그렇지 않는가 보다. 아이들을 가르치고, 시를 쓰고, 산문도 쓰고, 영화도 보고, 또 영화평도 쓰고, 그리고 동화도 쓴다. 그의 삶은 이렇듯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보고, 느끼고, 간직하는 것 모두가 그에게는 소재이다. 이 시집에는 자연을 파괴하는 자들에 대한 분노, 어머니와의 살궃은 대화, 아내와의 대화가 마치 일기처럼 펼쳐진다. 아니 이게 시집이야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삶이 여러 조각으로 쪼개어져 있는 사람일 것이다. 그게 시지, 그럼 시가 대체 뭐간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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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북적거리던 서울을 떠나 이곳 작은 마을에 내려왔을 때, 정말이지 하루하루가 감사함의 연속이었다. 어찌나 신기하고 예쁘고 아련하고 정겨운 게 많은지... 새벽마다 구름이랑 숨바꼭질하며 재잘대는 별들의 계절따라 자리바꿈을 하는 초롱한 미소떨기랑, 길 섶에 알아주는 이 없이 다소곳이 피어 건드리지 않아도 수줍어하는 들풀이랑 들꽃들, 터질듯이 부풀어 금방이라도 출산할 듯 뚝뚝 떨어져 가는 붉디붉은 저녁 놀, 먼 데 줄지어선 산들의 틈 사이로 깊고 푸른 밤의 색깔들을 밀어내고 보랏빛 안개를 피워무는 아침 해...
언제였던가, 내가 사는 이곳 근처에 김용택시인이 살고 계시단 걸 알았다. 영화에 대한 단편적 글이 담긴 책을 보다가 말이다. 그래서 남편과 함께 어느 일요일 오후에 그 마암분교란 데를 찾아나서기도 했었다. 지리를 몰라서 마암분교는 끝내 찾지 못했지만 우연히 들어선 비포장 산길 아래로 청아하게 펼쳐진 고운 저수지를 보물발견하듯 얻고나서 벅찬 감동에 오래도록 기뻐했던 생각이 난다. 아마도 그것이 옥정호인 듯 싶다.
이름만으로도 간지럽고 사랑스러운 들꽃들이 지천이라는, 매화꽃, 복사꽃, 살구꽃이 만발한다던, - 아마 산수유꽃도 안개처럼 곱겠지 - 돌돌돌 흐르는 강줄기 속에선 하루종일 햇살이 미끄럼타고 놀겠고, 그 속에 다슬기는 퍼런 오줌을 지릴까... 웬지 섬진강은 상상 속에서라도 정겹다. 그곳에 시인이 살아서 더 살갑다. 그리고, 이 시집 속에 주절주절 읊어 놓은 그곳의 풍경들이랑 아랫목같은 마음들이 스멀스멀 글자를 타고 조용한 내 방 가득 흩어진다. 참으로 행복한 순간이다. 이 행복감을 척박한 도시인들이 얼마나 실감할까 안타깝기도 하고.
시 속에서 얼핏 비쳐진 이문재님의 말, - 형, 이, 씨, 시는 짧은 것이시여. - 허나 어떠랴, 정작 시란 것이 그렇다 하더라도 그냥 이대로도 좋기만 한 걸... 그냥, 시인이랑 강가 언저리에 쪼그리고 앉아 산그림자 지는 거랑, 햇살 미끄럼 타는 거랑, 느시렁느시렁 걸어오는 염소 걸음새랑, 어서 기대어 앉으라고 이파리 흔들어 손짓하는 나무가 부르는 소리만 들을 수 있다면 한 마디 인간의 말소리는 끼워넣지 않아도 배부르고, 포근하고, 나른하고, 행복할 것만 같다. [인상깊은구절] 강물은 흘러도 해는 강을 건너고 앞산이 높아도 햇살은 앞산을 넘어가는데 저 건너 강 건너 해 넘어간 저 앞산에 피는 꽃이 지금 피는 꽃이냐 지는 꽃이냐 산비탈에 붉디붉은 산복숭아꽃아 아내는 긴 잠에서 깨어나 인적 없는 저문 강으로 저문 산을 잡으러 가네 저문 물을 잡으러 가네 혼자서 가네 -어둠속에 꽃이 묻힐 때까지-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