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제는 오랜만에 대학 동창들을 만나 술을 마셨다. 새벽녘에야 집에 돌아와 침대에 누운 나는 취기로 흐려진 눈으로 천정만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러던 문득 나는 몇 일 전 읽었던 이 책이 떠올랐다. 직장생활 5년차, 그 동안 나는 몇몇 사람들을 거의 매일 만나고, 그들과 많은 이야기한다. 하지만 나도, 그들도 ‘인간적인 관계’ 또는 ‘가슴으로 만나는 사람’이 되는 주제 넘는 기대하지 않는다. 어느새 우리는 예의는 모자라지 않을 만큼만, 관심은 부담되거나 넘치지 않을 만큼만 베푸는 미묘한 경계선을 조심스럽게 밟아가는데 익숙해져 있다. 그들은 그 끊임없는 접촉 후에도 내 마음 속에 들어오지 않으며, 나 또한 그들 속으로 들어가지 않는다. 1년에 몇 번, 어제 같은 날, 나는 학창 시절 일주일에 서너번 만나 엉덩이가 괴이는 나무의자에 참으로 오래도 앉아 소주를 마시며 ‘누가 누구랑 연애한다더라’나 ‘어제 신촌 바닥에는 누가 술에 취해 누워 있었더라’ 따위의 얘기를 나눴던 사람들을 다시 만난다. 그들과 헤어지고 돌아오는 나에게는 몇 일 정도는 유효할 수 있는 일만의 따뜻함이 소중한 듯 마음 속에 담겨 있다. 그리곤 새삼 내가 얼마나 매말라 있는지와, 그 시절을 얼마나 그리워하는지를 깨닫게 되는 것이다. 물론 읽은지 오래지 않아 아직은 단기기억 속에 저장되어 있을만한 데이터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읽는 데 걸린 30여분의 시간에 비해 이 책은 많은 여운을 남기고 있다. 그리고 이 책이 준 여운은 내가 1년 만에 만나는 그들이 주는 느낌과 많이 닮아 있다. 누구나가 가지고 있을 그들 앞에서만은 우리는 배불뚝이에 빨강 코를 단 어릿광대 짓을 하더라도 부끄럽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굳이 잘난척하여 그들 위에 서고자 하는 욕심도 없고 머리 숙임도 조아림도 군림도 없는 단지 친구이고 동료이고 사람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어찌 보면 이런 관계가 되었을지도 모를 인류끼리의 갈등, 학살, 전쟁의 아이러니를 짧지만 흡인력 있게 그려내고 있다. 어린 시절 우스꽝스런 화장과 어머니의 치마에서 뜯어낸 레이스를 꿰매 단 아버지를 몸서리치도록 싫어했던 화자가 아버지의 광대짓에 담긴 의미를 알게 된 순간 그의 조아림과 인간에 대한 배려의 의미를 알게 된다. 전범의 재판장에 아버지의 광대옷을 입고 선 그의 외침은 진정한 광대는 권력과 아집으로 동족을 학살한 이해 못할 그들이며, 이를 막지 못한 무능력한 우리였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본문을 읽기 전 별 의미 없이 스치고 지나쳤던 저자의 ‘탐정소설가’로서의 약력은 후반부의 멋진 반전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처짐 없이 긴박하고도 간결하게 끌고 나가는 것은 저자의 역량이었다. 탐정 소설가 작가가 주는, 영화 ‘The usual suspect’에 준하는 반전을 100% 맛보기 위해서는 책 서두의 ‘역자 서문’은 본문을 읽고 난 이후로 미뤄두는 것도 좋지 않을까 생각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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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절한 역사 속에서도 양심을 지키며 살아간 한 가족의 코 끝 찡한 이야기!" "어떻게 이 짧은 소설이 전 세계를 울렸을까?" 처음에는 책 표지의 이 한 문장에 시선이 꽂혀 읽게 되었다. 어떤 내용을 담고 읽길래 짧은 소설로 전 세계를 울렸다는 건지 궁금증을 안고 읽어보니, 과연 그럴 법했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중반까지만 해도 대체 왜?라는 의문이 가득했는데, 후반부 이야기를 마무리 짓는 결론을 읽으면서 과연 '그래서 그랬구나'하는 이해에 다다를 수 있었다. ===== 줄거리 살펴보기 ===== 주인공인 나는 이 세상에서 누구보다도 어릿광대 삐에로를 가장 증오한다. 어릴 적 아버지는 기회만 있으면 언제든지 아마추어 어릿광대로 분장하고 어디로든 달려나갔기 때문이다. 우리 가족끼리 보낼 수 있는 화창한 토요일과 일요일을 망치면서도, 아버지는 어릿광대 역할을 하며 보냈다. 심지어 그에 대한 대가를 한 푼도 요구한 적이 없었다. 나는 그런 아버지가 수치스러웠지만, 그의 연기를 보면 희한하게 감동적인 무언가가 느껴지고는 했다. 하지만 사람들이 우리를 가난뱅이 취급할 때면 아버지의 공연장을 따라가는 것조차 너무 싫었다. 실제로 우리는 가난뱅이가 아니었고, 아버지는 초등학교 선생님이었다. 학교에서는 인기 있는 선생님이었고, 학생들이 가장 좋아하는 선생님이었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여전히 아버지는 세상에서 가장 슬픈 어릿광대였다. 나는 평소 정상적인 아버지를 가진 이들을 부러워했다. 그러다 초등학교를 졸업했을 즈음 아버지가 무대에 서는 이유가 단지 희극배우로서의 소명을 이루려고 했던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어렴풋이 깨닫게 된다. 아버지가 어릿광대로 살아야만 했던 진짜 이유를 나는 아버지의 사촌 동생인 가스똥 삼촌을 통해서 듣게 되는데, 이를 통해 가스똥 삼촌 부부를 보는 시선도 달라지게 된다. 처음에 나는 가스똥 삼촌 부부를 그다지 좋게 보지 않았다. 하지만 과거 속에 묻힌 진실을 듣게 되면서 비로소 나는 아버지가 하는 속죄의 의미와 가스똥 삼촌 부부의 진정한 모습을 제대로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내가 몰랐던 그 진실로 인해 이 소설은 짧은 소설이지만 전 세계를 울린 소설이 된다. 아버지와 가스똥 삼촌은 젊은 시절 레지스탕스 세포조직에 일원이 된다. 당시 레지스탕스는 프랑스가 나치 독일에 점령된 상황에서도 굴복하지 않고 저항한 사람들로, 이 일로 두 번이나 위험한 상황에서 목숨을 건지게 된다. 첫 번째는 변압기를 폭파시키던 순간이고, 두 번째는 인질로 붙잡혔지만 대신 자수한 사람 덕에 목숨을 부지하고 살아갈 수 있게 된 것이다. 추후 이 일의 전말을 알게 된 아버지와 가스똥 삼촌은 평생 그 일을 가슴에 묻고 자신들을 도와주고 살려준 이들을 잊지 않기 위해 각자 양심에 따라 살아간다. 아버지는 인질들을 지키던 보초병, 베르나르 비키를 기리기 위해 평생을 무상으로 어릿광대 역할을 하며 평생 몸을 낮추고 살았다. 자신들을 살려주기 위해 애썼던 희생을 기억하며 속죄하며 살아간 것이다. 가스똥 삼촌은 자신들의 잘못으로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남편이 죽고 거기에 더해 자신들을 대신해 죽은 아내와 결혼함으로써 평생 책임을 이어 받는 선택을 하게 된다. 이로써 평생 책임감과 양심에 따라 살아가게 된다. 과거 아버지와 가스똥 삼촌의 잘못된 선택으로 누군가에게 목숨을 빚진 이야기를 듣게 된 후 나는 그렇게 증오하던 어릿광대를 받아들이게 된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40년이 지난 후 레지스탕스라는 경력 뒤에 숨어서 반인륜적 범죄를 저지른 전범자 모리스 파퐁의 재판이 열리는 날, 나는 아버지의 어릿광대 옷을 입고 아버지 세대를 산 사람들을 대신하여 모리스 파퐁의 재판에 참석한다. ===== 인상적으로 다가온 문장들 ===== ----- "내 이름은 베르나르야. 모두들 나를 베른이라고 부르지." (...) "어젯밤의 샌드위치는 내무반에서 준 내 식사였어." (...) "걸리면 나도 구덩이에 처박히는 신세가 되고 말 텐데!" (...) 그가 먹거리를 찾아 나섰을 때도 우리는 고맙다는 말조차 하지 않았단다. 그가 돌아와 장작에 구운 감자를 구덩이 밑으로 내려주더구나. 70~73페이지 中 ----- 인질들을 혼자 지켜보며 보초를 서던 베른은 사실 이들을 돌봐주고 살려줄 의무가 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구덩이 속에서 긴장하고 굳어있던 이들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식량을 나눠주고, 또 긴장을 풀게 해주면서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게 돕는다. 이런 그의 노력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봤던 아버지는 아마도 그를 기리며 그의 직업이었던 어릿광대를 또 다른 직업으로 삼아 사람들에게 베푸는 일을 했던 것이 아닐까 싶다. ----- 두에 역에 있는 변압기를 폭파했다고 자수한 그 사람은 우리가 모르는 사람이었어. (...) 그 사람의 부인이 독일 놈들에게 그 사람을 넘긴 거야. (...) 그 부인은 결혼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았는데, 새신랑이 생사의 기로에 있었어. (...) 그 부인은 죽어가는 남편을 바라보며 그가 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뜻있는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거야. 그래서 독일 장교를 찾아가 남편이 변압기를 폭파시킨 범인이라고 고발했단다. 88~89페이지 中 ----- 어쩌면 상황을 가장 냉철하게 판단하고 실행에 옮긴 사람은 바로 니꼴이 아닐까 싶다. 어쩌면 남편의 말을 듣고 그녀는 일찍이 변압기를 폭파한 진범에 대해 추측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미 전신이 화상으로 뒤덮여 죽어가고 있던 남편이었기에, 그녀는 그들을 살리고 남편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직접 고발함으로써 빨리 사태를 수습한 것이다. 후에 그녀를 찾아온 두 청년을 내치지 않고 따뜻하게 안아준 것을 보면, 그녀가 얼마나 훌륭한 사람이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주인공인 나는 가스똥 삼촌의 이야기를 듣고 난 후에야 뒤늦게 그것을 깨닫게 된다. ----- 마지막 숨을 거두기 직전의 남편은 침대에 누워 아내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자신이 혼자서 변압기에 다이너마이트를 설치했다고 자백했단다. (...) 독일병이 그에게 총을 쏘자 몸에 감겨 있던 붕대가 날아가고, 그의 화상 입은 몸에는 커다란 구멍이 뚫려 버렸다고 하더구나. 독일 놈들이 우리를 풀어준 이유가 바로 이거였단다. (...) 그 남편은 두에 역의 전기공이었고, 변압기가 폭발하는 바람에 화상을 입었거든. 그 사람은 뼛속까지 화상을 입었어. 바로 우리가 그 사람을 죽게 한 것이지. 그런데 바로 그 사람이 우리를 구해준 거야! 우리는 그가 역에 있는 줄도 모르고 변압기를 폭파 시켰던 거였어. 90~91페이지 中 ----- 어쩔 수 없었다고 둘러내고 양심의 가책 없이 잊고 살 수도 있는 시대였고 상황이었다. 하지만 아버지와 가스똥 삼촌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아무리 험난한 전쟁통에 혼란한 시대였다고 하지만, 아버지와 가스똥 사촌은 그때 자신들을 살려준 이들의 은혜를 평생 잊지 않고 살았다. 그들이 목숨 걸고 내어준 친절과 신의를 끝까지 지켜낸 것이다. ----- 나는 벽에 붙어 있는 <다리> 영화 포스터를 바라보았다. 거기에는 "베르나르 비키의 영화"라고 씌어 있었다. 그가 바로 인질들을 지키던 바로 그 보초병이었다. 그 어릿광대 군인 말이다. 아버지는 빨간 머리 가발을 쓰고 평생 몸을 낮추고 살았다. 몸을 낮추었다는 것은 말 그대로 항상 사람들에게 공손하게 고개를 숙이며 살았다는 뜻이다. 96~97페이지 中 ----- 자신의 어린 시절을 그토록 증오로 가득 차게 만든 어릿광대가 사실은 자신의 아버지를 살아있게 만든 장본인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의 심정은 어땠을까? 원망과 미움이 급격히 감사와 존중, 배려로 바뀌지 않았을까. 그래서 그 마음을 이어받아 그는 아버지의 어릿광대 옷을 입고 전범 모리스 파퐁의 재판에 가게 된 것이 아닐까 싶다. ===== 마무리 ===== 전쟁과 같은 큰 사건이 지나간 뒤에 남는 것은 폐허와 죽음밖에 없다. 하지만 가끔 이 소설처럼 배려나 존중, 희생이 엿보이는 순간들을 간혹 목도할 때면, 어쩐지 온몸에 전율이 이는 느낌이 든다. 아마 이러한 이유로 이 소설이 짧지만 전 세계를 울리는 소설이 된 것이 아닐까 싶다. 내용상 100% 허구적인 이야기는 아닌 듯하고, 저자가 첫 페이지에 할아버지와 아버지에게 헌정하는 것으로 보아 저자 자신의 경험담을 새롭게 각색해서 쓴 내용이 아닐까 싶다. 비록 잘못을 저질렀지만, 그럼에도 자신들을 살리기 위해 애쓰고 희생한 이들을 끝까지 기리고 은혜를 잊지 않으려 베푸는 삶을 살았던 이들. 이들처럼 사람들이 양심적인 삶을 산다면, 아마 이 세상은 지금보다 조금 더 따뜻한 세상이 되지 않을까 한다. |
| 이런 질문을 해본다. 전쟁중 동료3명과 함께 적군의 포로가 되었다. 퇴각하는 적군이 제의를 한다. 우리중 1명만 사살하고 나머지는 풀어 주겠다고, 대신 희생 될 1명은 우리들 스스로가 선택해야 한다고. 이런 경우에 당신은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확실한 신념에 찬 결정이 나지 않는다면 이 책을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단돈 5000원으로 여러분의 영혼을 구할 수 있읍니다. 불교에서 禪이란 하나의 간단한 화두를 풀기 위해서 정진하는 과정이다. 던져진 화두를 푸는 과정에서 진리를 발견해 내는 것이다. 짧은 소설이다. 마치 던져진 화두처럼 너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는 소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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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세상에 진실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희망이 있을 수 있겠는가?" 라는 말을 내던진, 세계를 울린 아름다운 소설이라 표현했다. 수많은 독자 리뷰와 읽지 않고는 안될 만큼의 후한 점수가 매겨진 소설이다. 처음엔 역사적인 면이 드러났지만 그런 역사로 하여금 생겨난 인간의 용서와 그 용서 앞에서의 희망을 나타내고 있고, 특별한 기교도 어떤 꾸밈도 없이 솔직하게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소설이다. 초등학교 교사이지만 어릿광대의 분장으로 나타나는 아버지의 모습과, 자기의 가족들. 자신이 미처 알지 못하는 어떤 사실을 알게되고 그 사실앞에서 진정으로 그들을 존경할수 있다는 내용을 담은 짧지만 긴 여운을 남겨주는, 읽고 나서 가슴 한 가득히 짜릿함이 전해져 오는 소설이였다. 독자 리뷰를 쓰면서, 나 역시 생각하지 않고 별 5개를 줄수 있는 별 5개가 결코 과하다고 생각하지 않은 처절한 감동이 있는 소설이다. [인상깊은구절] 아버지, 내일 저는 최선을 다하려고 합니다. 최선을 다해서 어릿광대의 노릇을 하렵니다. 그렇게 해서 저는 그들을 대신하여 그들의 이름으로 다시 태어난 인간이려고 합니다. 믿어주십시오! 아버지! |
| 처음에 책을 받아보고선 속았다고 생각했었다. 책을 실제로 보고서 산 게 아니라 독자리뷰를 보고 책을 구입했는데 책을 받았을때 그 부피와 가벼움에 실망하고 내가 왜 진작에 책을 실제로 보지 않았을까라는 가벼운 후회가 밀려왔다. 책을 3분의 1가량 읽었을때까지도 그저 성장소설이려니 하며 그리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읽어나갔는데 읽으면 읽을수록 나를 잡아 끄는 힘에 사로잡혀 멈출 수가 없었다. 자신이 원하지 않은 상황에서 다른 무고한 이들의 죽음 앞에서도 특유의 유머로써 그들을 위로하고 힘이 되어준 독일병사와 자신들 때문에 죄없이 죽어간 한 남자와 그의 지혜로운 부인에 대한 속죄로 한평생 댓가 없이 어릿광대를 하며 다른이에게 웃음을 선물해준 아버지를 보면서 아직도 세상은 이런 아름다운 사람들때문에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이 짧은 이야기가 내 가슴 한켠에 작은 불씨 하나를 켜 놓은 듯 마음이 훈훈해졌다. |
| 책의 뒤에나 나옴직해야할 책 내용의 요약 정리로 인해 마지막 반전의 기쁨을 송두리째 도둑질 당했다. 짧은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역자의 리뷰가 열페이지나 나와있다. 독자에게 사전지식을 주려했던 의도라고 여겨지나 마지막의 반전 도둑질 = 사전 도서구매 탐색시간+ 결정후의 갈등시간+ 책값+ 독서 투입시간을 어떻게 보상할것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전을 느끼진 못했지만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를 보는 듯한 아련한 감동을 받았다. 그만큼 이 소설은 많은 생각을 남기게 하는 역량을 지니고 있다. 역자리뷰를 읽지 않았다면 식스센스나 유주얼 서스펙트의 닭살을 맛볼 수 있었을텐데...그런 작은(?) 분노를 제외한다면 내 지인들에게 모두 권해주고 싶은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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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종일 비가 내린다. 반짝이며 저마다 가슴을 쭉 펴고 햇살을 향해 키재기 하듯 피어오르던 하얀 철쭉이 풀죽은 모습으로 비에 지고 있다. 오늘처럼 그랬을까? 종일토록 햇살은 구름을 이겨내지 못하고 저편에서 발만 동동구른 채, 어두운 공간으로 스미듯 내리붓는 빗줄기를 안타까워했을까. 그 처절한 정원, 그 처절한 구덩이, 그 처절한 공간을 적시던 빗줄기가 오늘처럼 구슬펐을까?
재작년에 동유럽을 여행하다가 아우슈비츠에 들렀었다. 지금 남아 있는 흔적만으로도 얼마나 나치의 흉악함이 혹독했는지 몸서리가 쳐질 정도였다. 그전까지 오랜 도시들의 아름다움에 빠져 다소 흥분되어 술렁이던 관광객들이 그 포로수용소를 보고나선 한결같이 침통한 표정으로 침묵에 빠졌었다. 가슴이 무너지는 아픔, 처절한 죽음들, 반인륜적 행태..그런데, 그곳에 작은 희망이 보였다면? 그곳에서 대학생으로 보이는 젊은 이들이 삼삼오오 조용히 다니면서 화장실을 청소하고, 낙엽을 치우는 모습을 보았다. 그들은 폴란드인이 아니었다. 독일 학생들이라 했다. 세계의 유태인들이, 특히 이스라엘의 유태인 학생들이 보란듯이 자기 영역인 것처럼 소란스럽게 몰려다니며 관람하는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그들은 그들의 선조가 저지른 만행에 조금이라도 속죄하는 뜻으로 일부러 시간을 내어 그곳에 와서 험한 일을 거드는 자원봉사를 한다고 했다.
이 소설 속의 장면, 훅하고 숨을 멎게 했던 장면, 감동으로 인해 명치 끝이 아련히 아파오고, 묵직한 그 무엇이 가슴을 치밀어 올라 오던 그 장면, 독일인이 만든 영화를 경건하게 바라보던 그들의 시선이 눈시울을 적시게 했던 그 장면에서 난 아우슈비츠의 그 독일 청년들이 떠올랐다. 그 작은 희망이 말이다.
짧지만, 그래도 인생은 아름다운 것이며, 값진 것이라는 걸 깨닫게 해주는 큰 감동을 주는 책이다. 아울러 처절한 시간에 어떻게 인생의 매듭을 지어가야할 지에 대한 지혜를 전수해 주는 책이기도 하다.
갑자기 생각이 밥물 넘치듯 들끓는다. 악이란, 선이란,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이란, 희생이란, 진정한 부끄러움이란, 인간의 목숨이란, 인생이란.. [인상깊은구절] 죽고 사는 일을 타인의 손에 맡기거나, 다른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대가로 자신이 살아난다면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포기하는 것이고, 악이 선을 이기는 것에 동의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네. 악의 편에 있는 독일 군복을 입고 있는 나 자신이 부끄러울 따름이야. |
| 이 책이 다룬 주제는 비단 프랑스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독일의 지배를 받았던 프랑스나 일제치하의 36년을 지낸 우리에게도 이 책은 의미를 지닌다. 이 책의 주요 모티브는 나치의 꼭두각시 프랑스 정권인 비쉬정부에서 일했던 모리스 파퐁이라는 한 인물의 재판으로 시작한다. 비록 40여년이 지났지만 그를 끝까지 재판에 회부하는 프랑스와 일제 청산이 이루어지지 않은 우리나라는 묘한 대비를 이룬다. 이 책의 주제가 단순히 '잘못된 과거를 청산하자' 라는 메시지로 흘렀으면 이만큼 평가를 받지 못했을 것이다. 이 책에는 그 이상이 있는데 그것은 인간의 역사, 그리고 인간에 대한 애정, 존중이 담겨있다. 이 책의 대략적인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한다. 작가의 아버지는 교사이지만 삐에로 복장을 하고선 자주 광대역을 연기한다. 이런 아버지가 나에겐 무척 수치스럽지만 아버지는 이 일에 어던 사명감을 느끼듯 매우 열정적으로 임한다. 이런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하던 나는 삼촌으로 부터 나치정권하에서 아버지와 삼촌이 겪은 이야기를 듣고 그들을 이해함은 물론 아버지를 존경하며 나조차도 삐에로 복장을 하고 모리스 파퐁의 재판장을 찾는다. 이런 일이 가능했던 일은 모두 인간에 대한 무한한 애정이 있기 때문이다. 이와 비슷한 일을 겪은 우리들에게도 이 책이 주는 의미는 특별하다고 생각한다. |
| 정말로 재밌고, 군더더기가 없는 소설이다. 레지스탕스 활동을 하던 아버지와 삼촌은, 기차역 변전소를 폭파시킨 후 독일군에 붙잡힌다. 독일군은 진범으로 아버지와 삼촌을 잡은것이 아니라, 진범에게 자수를 권하기 위한 희생양으로서 두 사람을 붙잡은덧이다. 우연히도 희생양이 사건의 진범이 되어 이 소설의 아이러니는 시작되는 것이다.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이야기 속에 과거와 현재, 개인과 사회, 애정과 정치, 민족과 세계 동포주의 등 다양한 이야기들이 재밌게 얽혀져 있다. 수 없이 다루어진 역사 청산의 얘기에 번득이는 아이디어로 새로움을 만들어 냈고, 웃음과 감동이 어우려져 있고 거기에 기막힌 반전과 구성의 절묘함까지.... 111페이지의 짧은 소설을 읽고 과분한 대접을 받은 듯 하다. 대학시절 어느 세미나에서의 일이다. 주제는 한국 근현대사에 관한 것이었고, 특히 일제 점령하의 조선에 관한 것으로 기억한다. 세미나 도중 내가 다음과 같은 주장을 펴자 좌중의 분위기는 얼어 붙었다. "일본에 점령되어 30년이란 세월이 지났을때, 여전히 독립을 꿈꾸는 사람이 신기한 것이다. 삶은 계속되는 것이고 그냥 포기하고 사는게 당연한것 아닌가? 나라가 바뀌고 정권이 바뀌는게 민초의 삶과 무슨 상관 있는가?" 그때 나의 궤변에 선배는 '역사의 합법칙성'이니 '변증법적 역사관'이니 되도 않는 얘기로 날 설득하려 했다. [처절한 정원]은 내가 수긍할 수 밖에 없는 답을 주었다. 구덩이에 파묻혀 서로 죽를 순서를 고르는 프랑스인에게 독일군 보초 베르나르 비키가 한 대답이 바로 그것이었다. 15년전의 나의 궤변에 제대로 된 반박 논리를 댈 수 없는 분은 이 책을 펴서 비키가 죽음을 앞 둔 프랑스인에게 한 말을 찾아 보시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