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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하 반상순의 [물구나무 예수]는 물결 이라는 필명의 오강남 교수와 온라인 게시판 상에서 열띤 토론의 결과물이라고 책 머리에 소개하고 있다. 따라서 이 책을 더 잘 이해가기 위해서는 오강남의 [예수는 없다]라는 책을 짝으로 읽어야 할 것이다. 오 교수는 매우 비판적이고 급진적인 신학적 관점으로 성경에 대한 기독교인들의 신념에 도전하는 글을 쓴 바 있다. 특히 그는 기독교의 하나님만을 절대시하는 기독교인들의 독선적인 태도를 종교 다원주의적인 관점에서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이에 대하여 저자는 종교학과 신학, 그리고 자연과학, 고고학 등 해박한 지식과 정교한 논리로 오 교수의 주장을 논박해 간다. 그의 논지는 분명한 논리가 있어 보이며 특히 기독교의 본질을 절대자인 "하나님"과 "나"의 인격적인 관계로 파악하고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는 그 특성 자체가 한 분 인격신에 대한 정절을 생명처럼 여길 수 밖에 없음을 역설한다.
그에 따르면 타 종교는 인격신을 전제로 하지 않으므로 정조의 개념이 발달하지 않았다. 그러나 기독교인은 신에 대하여 혹은 종교에 대하여 철학적으로 사유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 에게 두손 들고 나아가는 것이다. 즉 심리적인 신뢰 상태인 신(信)에 머물지 않고 신앙(信仰)하는 것이 기독교 신앙의 본질이다. 여기서 앙(仰)이란 두 손을 들고 절대자 앞에 무릎꿇고 나가는 모습을 한자로 형상화 한 것이다. 기독교인들은 순수를 생명으로 여긴다. 순수란 "섞이지 않음"을 의미한다. 순수란 가장 자기 다운 자기 색깔을 내는 것이다. 섞이면 또 다른 혼합체가 되는 것으로 순수를 잃어 버리는 것이다. 순수는 한 분의 님에 대하여 정절을 지키는 것을 의미한다. 바로 이점에서 기독교가 다원주의를 거부하는 이유임을 저자는 정확하게 꿰뚫어 본다. 기독교 신앙의 본질은 절대자에 대한 정절을 지키는데 그 본질이 있으므로 다원(多元)을 수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저자는 다원주의의 본질을 상대주의로 보는 것 같다. 상대주의에서 진리는 상대적이다. 절대적인 표준이 없다. 절대 적인 표준이 없는 세계에서 다수가 정의의 표준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지적한다. 다원주의가 소수일 때는 핍박받는 자리에 있지만 다수가 될 때는 폭력의 도구가 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다원주의는 자신들의 너그러움과 포용력을 자랑하면서 왜 기독교인들을 생긴 그대로 받아 주지 못하는가 라고 자문한다. 물구나무 예수는 오강남 교수의 [예수는 없다]라는 책의 치우침에 균형을 잡아 주고 중심 없음에 중심을 제시하며 빈약한 근거에 성경과 건강한 논리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탁월한 책이다.
나는 한 독자로서 [물구나무 예수]에서 주장하는 바 기독교 신앙의 본질을 지지한다. 단지 저자나 나 자신이나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일편단심가가 처절하게 순수한 가슴의 고백이었으면 좋겠다. 사랑은 그 자체가 목적일 때만 순수함을 유지할 수 있다. 고백은 사랑의 공개적 표현이다. 그 고백에 어떤 다른 목적이 끼어 든다면 그것은 더이상 신앙고백일 수 없다. [인상깊은구절] 우리는 성경을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보고 예수님을 살아계신 하나님으로 보는 자들이다. 그리고 그 예수를 선택할 때 그의 운명까지도 함께 선택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