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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保守와 진보進步는 사회를 이끌어가는 두 축이다.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관계보다는 보수와 진보가 서로 경쟁하며 앞으로 나아갈 때 그 사회는 보다 나은 사회, 그리고 지속가능한 사회를 이룰 수 있으리라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사회를 보면 참 아이러니하다. 보수라 불리는 사람들이 보수의 가치를 찾지 못하고 자신 혹은 패거리의 이익에 집착하면서 수구꼴통이 되는 바람에, 그나마 보수적인 가치를 조금 떠드는 사람들이 진보라는 이름표를 달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이 땅에서 보수라 칭하는 사람들의 면면을 보면 참 가관이다. 식민지시절 일본을 위해 일했음에도 청산되지 못한 사람들, 미군정시절 자신들의 권력욕을 위해 검은머리 미국인으로 살았던 사람들, 그리고 자신의 영달을 위해 과거 권위주의 정권에 빌붙거나 예찬한 사람들이 보수라는 이름으로 똘똘뭉쳐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기에 급급하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이해하지 못할 일이 또 있다. 모든 사람이 조금만 관심 있으면 알 수 있는 일들을 그들은 왜 모르는지 알 수가 없다. 예를 들면 4대강사업이나 미국산 쇠고기파동 시 촛불시위 등에서 나타난 그들의 인식수준은 우리들 같은 일반 범부들보다도 낮은 것 같다. 일부러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모르는 체 하는 건지, 아님 정말로 그것이 진실이라고 믿는 건지 아리송 할 때가 많다.
내가 보수주의자인지, 진보주의자인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 기본은 보수주의자가 아닐까 싶다. 단지, 지켜나가야 할 것은 지켜나가되 좀 더 나은 것이 있다면 바꾸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정도 일 게다. 그럼에도 자칭 보수주의자들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하도 꼴통 짓을 해대니 평범한 사람들이 모두 진보주의자가 되어버린 것처럼, 나 역시 그렇게 해서 진보 쪽으로 기울었지 싶다.
나는 tv 보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전혀 안보는 것은 아니지만 간혹 보게 되더라도 일부 프로에 국한된다. 헌데 지난 총선 전에 우연히 한 채널을 보게 되었다. 토론이나 대담 프로 특히 종편은 아예 거들떠도 안 보는데, 채널을 돌리다 보니 유시민과 어떤 사람이 얘기하는 프로였다. 그리고 그 사람 이름이 전원책이라는 것과 대표 보수논객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유시민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안다고 할 수 있었지만 전원책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기에, 아니 자칭 보수라고 떠드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알려고 하지도 않았기에, 조금은 호기심이 생겼다. 그러던 차 이 책을 접하게 되었다. 그리고 보수라는 말하는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했기에 망설임 없이 읽기 시작했다.
'전원책의 정치비판'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민주주의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옮겨놓은 것이다. 그는 민주주의의 원 뜻은 고상하기 그지없지만 현실정치에서의 민주주의는 완벽한 허구라고 주장한다. 다만 현재까지 인류가 찾아낸 최선의 정치체제이기에 그나마 굴러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가 말하는 민주주의의 허구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하나는 민주주의에서 말하는 주권재민이다. 주권재민은 공동체 구성원인 시민이 통치의 주체가 된다는 말이지만 실상은 거리가 멀다고 그는 말한다. 민주주의는 자기와 동등한 동료시민들의 결정에 승복하는 것을 전제하지만, 현실적으로는 통치자의 지배에 대한 복종의 형태로 나타난다며, 이는 민주주의가 보편화되는 수많은 단계를 거치면서 스스로 통치하는 구조라는 원래의 뜻과는 전혀 다른 내용이 되었다고 비판한다. 아니, 집단 속의 하나인 인민의 뜻을 모아 집단으로서 공동체의 의사를 결정한다는 것은 처음부터 불가능 했다고 한다. 모든 사람들이 동일한 이해관계에 있지 않고, 대중은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합리적 무지상태에서 특정인 또는 특정세력에 이용당할 수 있는 길이 열려있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민주주의를 실행하는 원리인 다수결과 대의제이다. 그는 이것 또한 불합리하기는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국민의 권리라고 하는 선거는 제시된 선택지 중에서 하나를 고르는 것에 불과하고, 다수결은 어떻게 구분하든지 가지지 못한 자가 가진 자보다 다수이기에 공정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그는 또한 민주주의의 역사는 우상의 역사라고 말한다. 오늘날 대중민주주의는 대중조작과 이를 통한 이미지정치라며, 통치자는 잘 짜여진 각본에 의해 대중조작된 우상이고, 대중은 그런 우상들이 단지 선의에 입각하여 공동체에 헌신하기만을 바라는 무력한 잡초라는 것이다. 대중은 우상을 스스로 숭배하지만, 우상은 실정했을 때 모든 책임을 모두에게 돌린다. 그 결과 민주주의는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이상한 제도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그는 한결같이 민주주의의 허구와 문제점에 대한 독설을 이어나간다. 언뜻 읽다 보면 그럴듯해 보이고, 일견 맞다 싶으면서도 과연 저자가 주장하는 것이 무엇일까 하는 생각이 끊임없이 들었다. 특히나 다수결의 부정의를 설명하면서 가지지 못한 자가 다수이고 분배라는 이름아래 소수를 약탈하는 것이라고 하는 데에 이르러서는 이 땅의 보수라는 사람들이 가지는 생각의 끝이 어디 있는지를 보는 것 같아 씁쓸하기까지 하다. 물론 그는 이렇게 말했다. '무능하든, 운이 없든, 불행하든, 게으르든 간에 가지지 못한 자가 다수이고, 재능과 노력으로든, 근검절약 했든, 운이 따랏든 간에 가진 자가 소수이다'라고.. 그는 경우의 수를 다 집어 넣는다고 장황하게 얘기한 것 같지만 책을 읽는 내내 머릿속에 든 생각은 가지지 못한 자는 게을러서이고, 가진 자는 노력하고 근검절약 해서라는 논조로 읽혔다면 내가 너무 예민하게 받아들인 걸까? 또한 그의 정치비판을 따라가다 보면 이 책을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정치불신을 넘어 정치자체를 혐오하게 만들 가능성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사실이든 아니든, 이 땅의 국민들은 집단 속의 한 개인이고,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그는 과연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이 책을 썼을까? 지난 총선에서 설사 그들이 나라를 팔아먹어도 1번만을 찍겠다는 어느 유권자의 말이 생각난다.
아무튼 이 땅의 보수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한번 알아보고자 이 책을 읽었지만, 결과는 기왕의 생각을 더 굳혀주기만 한다. 한 권의 책을 읽고서 그 사람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는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지만, 더 알아보겠다고 하느니 차라리 낮잠이나 한숨 자는 것이 나을 것 같다는 생각만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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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책의 신간 <잡초와 우상>을 힘들게 읽었다. 어렵지도 않은 책을 힘들게 읽은 이유는 간단하다. 너무 재미없기 때문이다. 저자는 민주주의의 오류가 어떻고 정치인의 위선이 어떻고 하는 등의 공염불과 같은 얘기를 어마어마한 분량의 각주와 함께 지난하게 설명한다. 현실적으로 크게 와 닿지 않는 정치학 교과서에나 나올 법한 따분한 내용을 왜 글감으로 삼았는지 모르겠지만 이마저도 자기만의 매력적인 언어로 풀어내지 못하고 있어 따분한 글을 읽어야 하는 독자만 곤욕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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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환 작가의 잡초가 찾아내는 도시 명당은 몇가지 포인트에서 많은 흥미를 느낄 수 있었다. 첫째, 사람들의 관심이 많은 풍수와 지리를 도시와 연결해서 풀어준다. 보통 풍수, 지리라고 하면 시골 마을이나 산, 강과 같은 자연을 떠올리게 되는데, 우리 가까이 있는 도시 명당을 주제로 하니 신선하였다. 둘째, 그 도시 명당을 풀이하는 키워드로 잡초를 든 것이다. 잡초는 우리 주위에 흔하게 볼 수 있다. 너무 흔해서 더 눈길이 가지 않는 존재인데 그 잡초가 도시 명당을 알려주는 단서가 되는 것이다. 셋째, 특정 지역의 풍수를 설명한 것도 재미있었다. 많은 사람이 방문하는 북촌과 안국동, 송현동 같은 서울의 알려진 지역을 대상으로 한 것이 흥미 있었다. 시작은 방학동 은행나무였다. 1991년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서 600년 이상 된 은행나무 고목이 죽게 된 것이다. 600년 이상 고목이 살고 있다는 것은 그 지역이 그만큼 생명체가 살기 좋은 지역일 것이다. 결국 그 방학동의 은행나무는 보존될 수 있었고 환경과 개발의 극적인 타협이 이루어진 사례가 되었다. 가까운 지역에 오래된 고목이 있다거나 식물이 많이 살고 있는 곳은 사람이 살기에도 좋은 곳이다. 그래서 고목이나 식물 군락 지역을 보존하는 것이 지역을 홍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책은 첫머리에서 풍수지리의 허구를 일깨워 준다. 조상의 묘를 이장한다거나 풍수지리의 힘을 이용해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은 잘못된 믿음이다. 집안에 우환이 생기면 조상의 묘를 이장하는데, 우환이 없는 집안은 이장하지 않는다. 따라서 문제가 있는 사람들의 잘못된 문제 해결 방법이다. 예종이 세종대왕의 무덤을 이장한 것도 세종이 아버지 세조를 왕으로 책봉하지 않은 데 대한 불만의 표시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따라서 풍수지리가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운명을 바꾸는 것도 아니고, 사업을 성공하게 하는 것도 아니다. 삶의 쾌적함을 높여주는 것이다. 저자는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 어메니티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사람이 살기 좋은 가장 쾌적한 환경을 제공해 주는 것 이것이 풍수지리가 우리에게 줄 수 있는 혜택이다.
사람이 불되 너무 세게 불지 않고 산들바람 정도 부는 곳, 강이나 천이 있되 너무 깊거나 얕지도 않고 1미터 정도의 천이 있는 곳, 예를 들면 한강이나 중랑천보다 청계천이 더 쾌적한, 어매니티가 있는 환경이다. 산도 너무 높은 것보다 낮은 듯하면서 쾌적한 산이 더 좋다. 이런 곳을 찾을 수 있는 능력이 풍수지리이다.
그리고 이 책의 주인공 잡초, 잡초 중에서도 생존 조건이 까다로운 풀들이 있다. 햇볕을 오래 받아야 하고 바람도 적당해야 하고 사람의 손도 많이 타지 않는 곳, 그런 곳에서만 사는 풀들이 있는데 그런 곳은 사람이 살기에도 최고의 지역이다. 부동산을 보러 다닐 때 그런 풀들이 살면 그 주위의 아파트는 계약해도 무방하다. 지칭개가 그런 풀이다. 지칭개는 햇볕이 잘 비치고, 돌풍이나 센 바람에 민감해서 자라는 장소가 뽀리뱅이나 개망초에 비해 훨씬 한정적이지만 풍수의 명당을 드러내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잡초가 찾아내는 도시 명당’은 풍수지리의 허구를 꼬집으면서도 우리 삶에 쾌적함을 주는 풍수지리의 기능을 설명한다. 우리 주위에서 찾을 수 있는 식물, 잡초를 통해 우리 가까이 있는 풍수지리를 체험할 수 있다. 최근 도시화의 진행으로 고층 건물이 늘어나고 지역의 형태가 바뀌다 보니 풍수지리도 바뀌는 현상이 나타난다. 도시가 발전하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고층 건물로 인해 일조량도 줄어들고 바람의 방향이나 세기도 바뀌어 풍수지리적으로 좋지 않고 어메니티도 떨어지는 것은 아쉬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