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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는 유홍준을 그다지 좋아하는 편은 못된다. 영남대에서 조용히 연구할 때는 모르겠으나 <우리 문화 유산 답사기>가 베스트 셀러가 되면서 이름이 일반인에게 많이 알려지고 나서는 이곳저곳 많은 곳에 얼굴을 보이게 되는데, 그는 속은 어떨지 모르나 겉으로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상당한 엘리트 의식을 내비치고 있으며, 그로 인해 권위적인 모습을 보인다. 사석에서 그를 본 적이 있는 한 선배 또한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고 얘기한 것을 들은 적도 있으며 문화재청장 시절 남대문 전소에 대한 대응을 보아하면 역시 그런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또한 저자로서의 그는 문체에 정말로 치명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는데, 우리 것을 알리고 사랑하고 해설하는 그의 글에 외국어가 정말 많이 나온다. 코멘트, 가이드 등 우리 말로 바꾸어 써도 무관한 말을 써 가며 우리 문화 유산을 설명하고 있는 그의 글을 보면서 울화가 치밀어 오른 적이 많다.
그러나 그러한 점들에도 불구하고 <우리 문화 유산 답사기>를 통하여 우리 문화 유산을 일반 대중에게 알리고 여러 가지 문화 운동과 답사 등을 활성화 시키며 대중화 시킨 점은 폄하없이 받아들여야 할 그의 업적이며, 상당수에 이르는 그의 글도 연구자 뿐 아니라 일반인이 읽기에 그렇게 어렵지 않은 언어로 쓰여져 여전히 접근성이 높도록 저술하고 있는 점은 높게 평가받을 만 하다.
2002년에 나온 그의 <완당 평전> 세 권도 그러한 면에서 문체의 약점과 연구의 치밀함(연구 부분은 사실 내가 평가할 수는 없겠다) 그리고 주제의 높은 접근성 등이 어우러진 글이다.
완당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흔하지 않으되, 그의 글씨가 대단하다고는 하나 도대체 뭐가 그렇게 대단한 것인지 또한 학자로서, 선비로서, 인간으로서 그의 삶이 어떠했는지 아는 사람은 흔하지 않다. 그러한 점을 안타깝게 여긴 저자가 연구를 거듭하고 많은 자료를 모아 완당의 삶을 순서대로 저하고, 그의 많은 저작과 글씨, 그림 등을 그 시대순에 많게 보여주고 해설한 책이 바로 이 책 세권이다.
내용의 몇 가지 사항은 재론의 여지가 있을 수도 있겠으나 그러한 자세한 내용의 옳고 그름을 논하는 것은 전공자들의 몫일 테고 일반 독자로서는 엄청난 양의 도판을 통해 완당의 글씨와 그림들과 각종 자료들을 보며 자세한 해설과 역사적 가치, 맥락 등을 보는 것에 대해서 오직 감사하면서 읽어갈 따름이다.
작심하고서 써내려간 이 책들은 내용이 상당히 많지만 쉽게 쓰여져 있어서 800페이지가 넘는 본편 1, 2권을 2-3일 만에 읽어내릴 수 있었다. 완당이라는 조상 큰 어른에 대한 호기심과 추사체라고 말만 들어왔던 많은 글씨가 어떻게 쓰여지고 어떤 점이 대단한가.. 라는 의문점을 풀어내리는 재미에 책이 넘어가는 속도가 예상 외로 빨랐다. 원래는 2주 정도 생각하고 꺼낸 책이었는데..
우리 것에 대한 앎이 너무 부족하고 노력도 없다는 반성을 항상 한다. 이러한 책들의 도움을 받아 조금씩 나아가고 있는데, 이 세 권의 책을 읽어 내니 뿌듯하다. |
| 이 책 자체가 하나의 완당에 대한 논문이라고 해도 전혀 손색이 없다. 풍부한 도판과 참고자료, 지금까지 익히 알려진 유홍준 교수의 글솜씨가 어우러져 놀라운 책이 되었다. 이 책을 읽고나면 완당만이 아니라 서예에 대한 새로운 눈이 트이게 되리라 생각한다. 다만 이 책을 읽기 위해선 완당이 살았던 시대에 대한 배경지식과 약간의 미술에 관한 지식, 그리고 한문 실력이 요구된다. 물론 그냥 넘겨가며 그림과 글씨만 볼 수도 있겠지만 그러기엔 너무 아까운 책이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책의 가격이다. 지나치게 책이 비싸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양장본과 반양장본이 아니라 일반본으로 조금 더 싼가격에 책이 나올 수 있었으면 한다. 안그래도 생소한데 가격까지 비싸면 일반인들이 접근하기 더 어려울 것 아닌가. |
| 김정희 만큼 당당한 사람이 있었을까...아니, 우리 역사를 통틀어서 그런 위인은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중학교때부터 역사에는 지대한 관심이 많았기에 이것 저것 닥치는 대로 읽었고,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때문에 평소 존경해 마지않던 유홍준 교수님이 완당평전을 내셨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책의 내용은 확인하지도 않고 덜컥 3권 다 사버렸다. 그리고 중간고사, 거기다가 모의고사까지 겹쳐 한쪽 구석에 첩박아둔지 한달하고도 20여일. 그리고 그때서야 펴 들었다. 아 얼마나 멋진 책인가. 이 책만큼 한 인물의 삶을 멋지게 조명한 책이 있었을까...온갖 미사여구를 다 붙여도 모자랄 만큼 이 책은 멋진 책이다. 완당선생의 필체가 마치 책 안에서 숨쉬는 것 같고, 또 그 필체를 유홍준 선생 특유의 빛깔로 걷어내고 있다. 유홍준 선생의 탁월한 문장구사력에는 정말 누가 비견될 수 있을까. 단 한가지 단점이 있다면 이 책의 가격이 너무 비싸다는 점이었다. 인터넷으로 주문했을때는 아무생각없이 구매했었지만....막상 확인하니 장난이 아니었다...하지만...모든것은 유홍준 선생이 쓰셨다는 사실에서 용서가 되었고, 더불어 나에겐 김정희라는 인물에 대해 속속들이 알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셨기에 돈은 결코 문제가 되지 않았다. 김정희라는 인물에 대해 모르시는 분. 혹은 조금만 알고 게신 분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일 것이다. |
| 유홍준교수를 다들 알고 계실 겁니다. 그 분이 20년 동안 자료를 모아 쓴 추사 김정희에 관한 평전입니다. 800 여 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으로 1, 2권으로 나누어 출판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이 많은 분량을 어떻게 읽어나가지 하고 걱정을 했는데 후반부로 갈 수록 점점 가속도가 붙어 술술 읽히더라구요.저는 4일만에 읽었는데 몰입해서 읽으면 더 빨리 읽을 수도 있을 겁니다. 이 책의 압권은 방대한 자료에 있습니다. 추사 김정희에 관한 자료는 거의 올린 듯한 느낌을 받을 정도로 그의 시,서,화를 수렴해서 싣고 있답니다. 제주도로 유배를 다녀온 후로 글씨에 욕심이 빠지면서 그만의 독특한 글씨체를 확립해감이 무아지경의 경지라고 할만합니다. 유홍준 교수는 그를 우리나라의 최고 서예가가 아닌 동양 서예사에서 청나라 시기에 김정희를 최고로 꼽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당대에 백남준이나 작곡가 정명훈보다도 훨씬 입지가 높았다고 평가할 수 있다고 하네요. 한가지 더 덧붙일 것은 완당이 서예가로 이름나 있는데 사실은 시를 더 잘 썼다고 평가한 것이 인상적이었답니다. 서예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일독을 권합니다. |
| 어렵게 느낄수 밖에 없는 고미술학과 문화유산에 대해 이처럼 단숨에 읽혀 내려가게 할 사람은 유홍준교수님 뿐이라는 생각을 들게 하는 또 다른 책이었습니다. 추사 김정희로만 알고 있던 김정희는 이 책을 읽고나서 더이상 추사만이 아니었습니다. 단지 추사체를 썼던 서예가 김정희가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많은 호를 사용했던 것도 처음 알았습니다. 경학과 고증학 금석학 불교의 선 시서문에 능통한 정말 대단하다고 밖에 말할 수 없는 그런 천재였슴을 알았습니다. 이웃 중국에도 널리 알려진 그런 학자였습니다. 책속에 과거를 치루기 위해 달달 경전을 외우는 선비들을 통탄해 하던 완당의 모습을 보며 지금의 대학 입시교육을 떠올렸습니다. 제가 공부해왔던 학창시절도 떠올려 보았구요. 진흥왕 순수비를 열정적으로 찾으며 복원하려했던 모습도 감동적이었구요. 저 멀리 제주도 유배시절의 연구욕과 습작,...놀랄만합니다. 제주도와 북청의 귀향살이는 오히려 후세에 사는 우리들에겐 복이 되는것을 생각하며 죄송하기도 하구요. 문화 유산답사기와 완당평전을 통해 잘 알지 못하는 조상의 문화 유산을 쉽게 이해 할수 있어 유홍준 교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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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홍준 선생의 일생의 대작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는 책이다. 한 사람의 면모를 파악하는데 일생을 바쳐야 한다는 것 자체가 놀랍고 어려운 글임에도 읽히는 글로 만든 지은이의 노력이 장마다 느껴지는 아름다운 책이다. 수집한 글, 그림이 놀라왔고 발로 좇아다닌 굽이 굽이가 글에 베어나 있었다. 완당의 세상이 이토록 넓었던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추사체라는 한 단어 밖에 모르던 나에게 다양한 완당을 경험하게 해 주었다. 완당의 글로 오늘을 비춰 보면 더욱 그 글의 깊이가 느껴진다. 교육에 대한 그의 글에는 아이 적에 총명한 사람이 어떻게 미혹되는지를 알려 준다. '종횡무진하고 끝없이 광대한 고전적인 글을 보지 못하고'라는 문구는 정말 오늘날과 같은 모양새가 아니던가. [인상깊은구절] 모든 사람이 아이 적에는 대개는 총명한데, 겨우 제 이름을 기록할 줄 알 만하면 아비와 스승이 전주와 첩괄로 그를 미혹시키어, 종횡무진하고 끝없이 광대한 고전적인 글을 보지 못하고, 한번 혼탁한 먼지를 먹음으로써 다시는 그 머리가 맑아질 수 없게 되는 것이 그 첫째이다. |
| 3일간에 걸쳐서 물을 쏟듯이 <완당평전>을 읽었다. 한 보름 전쯤 새벽에 잠이 들지 않아서 우연히 테레비를 켜니 이 책의 저자인 유홍준 교수가 광주의 박물관에서 강의했던 것을 방영하고 있었다. 바로 추사 김정희에 대해서 강의를 하고 있었고, 새벽 깊은 줄도 모르고 그 프로를 보았다. 거기에서 내가 김정희에 대해 알던 것은 사막의 모래알 하나 정도이구나 하는 것을 느꼈고, 얼마 후 책을 주문해서 읽게 되었던 것이다. 추사 김정희라고 하면 아마 거의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추사체를 창안한 사람이나 금석학의 대가였다는 정도만 알 뿐 그 사람의 진면목을 제대로 평가하는 사람이 드문 것은 사실이다. 추사는 글씨뿐만 아니라 시와 그림에서도 뛰어났으며, 경학과 사서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박학다식이었고, 24세에 연경에서 옹방강과 완원 등을 만난 이후로 금석학에 관심을 기울여 금석학에서 단연 우뚝 선 고봉이 되었다. 이 뿐만 아니라 청나라의 학예인들과의 끊임없는 교류를 통하여 학문을 더욱 연마하여 청대 고증학의 제일 거봉이 될 수 있었다. 추사의 일생을 통찰해보면 어린 시절과 청장년 시절에는 명문가의 후예로서 평탄한 삶을 살았고, 노년에 이르러서는 당쟁으로 10년 여 세월을 제주도와 북청에서 유배된 삶을 살았다. 이런 굴곡진 인생을 통하여 추사는 자신의 서예를 '추사체'라는 불멸의 서체로 승화시켰다. 저자는 <완당평전2> P699에서 "열 가지, 백 가지 방면에서 모두 뛰어났던 완당을 후예 사람들은 그가 가장 잘한 것은 글씨다, 아니다, 글씨에 덮여 있는 시가 뛰어남을 모르고 있다, 아니다, 완당은 시와 글씨 같은 예술이 아니라 금석학, 고증학에 더 뛰어났다, 아니다, 완당의 학문과 예술은 모두 선학에서 연유한 것이니 그것이 완당의 참모습이다 등등 논자에 따라 완당을 달리 보고 또 달리 말하고 있다."라고 하면서 홍한주의 <지수염필>의 말을 근거하여 "완당은 정녕 현대적 의미의 빼어난 미술사가였다."고 평하고 있다. 이상의 모두가 추사 김정희를 평가하는 말이니 김정희라는 인물이 어떠했는지는 조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추사 김정희에 대한 평을 한가지 덧붙이고 싶다. '추사 김정희는 위대한 교육자였다.'라고. 이 책을 읽어가면 그가 가르치고 인도했던 수 많은 제자들을 볼 수 있다. 소치 허련,우봉 조희룡, 강위, 위창 오세창의 아버지인 역매 오경석, 흥선대원군으로 유명한 석파 이하응 등 유명한 분들이 그의 제자들이다. 이 책은 800페이지에 가까운 결코 작지 않은 두께의 책이다. 그러나 페이지 곳곳마다 있는 글씨와 그림 등 사진을 보면서 읽으면 결코 지루하거나 물리지 않는 책이다. 이렇게 충실하게 글씨와 그림 사진을 덧붙여 주어 추사의 작품을 감상하게 해준 저자 유홍준 교수에게 참으로 고마움을 보낸다.지수염필>완당평전2>완당평전> |
| '추사 김정희 조선시대 명필로 한 시대를 수놓았던 사람', 어린 아이들 부터 어른까지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완당은 유명인이다. 이 유명인 추사를 마땅히 존경 받아야 하는 인물로 바꾸어 놓은 책이 유홍준의 『완당평전』이다.『나의 문화유산답사기』란 책을 쓰며 본래의 직업인 미술 평론가에서 벗어나 있다가 『정직한 관객』으로 본래의 평론가로 돌아왔다.『화인열전』을 넘어 이제 알려고 하면 산처럼 높고 바다보다 깊은 ‘완당’에 대해 평론을 겸한 전기를 쓰고 있다. 내가 완당에 대해 조금이나마 지식을 알게 된 것이 최인호의 소설 『상도』를 통해서 였다.『상도』를 읽으면서 그가 훌륭한 분인 것을 알게 되었다면, 『완당평전』을 통해서는 왜 우리가 완당을 존경해야 하는지를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지금까지 완당은 시, 서, 화, 불교, 금석학, 고증학, 경학 한 방면에서만 조명을 받아왔다. 하지만 완당은 이 모든 방면에서 “a”이상의 성적을 내었던 것이다. 지금까지 모든 방면에 걸쳐 조사를 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완당의 훌륭함은 시간이라는 상자속에 갇혀 있었다. 이 다 방면을 다 아울러 조사하기 위해서 유홍준 선생은 20년이란 시간을 보내었다고 한다. 완당의 학문적 교류는 세가지로 나눌 수 있다. 먼저 중국 학자들과의 교류이다. 24세에 연경에서 만났던 학자들과 책. 탁본. 서화를 교환하며 습득한 지식을 자기 것으로 소화하여 청에서도 놀랄 정도의 발전하였다. 이 것이 완당의 지식기반이 된다. 그리고 당대 학자인 홍대용, 박제가등과의 학문적 교류를 통하여 닦아온 지식기반을 완성하게 되고, 예술계에서는 자신의 필체와, 그림 등을 다른 후학들이 본 받아 완당 바람을 일으키기에 이른다. 이 책의 특징은 여러 가지의 할 일에 가려져서 드러나지 않았던 특히 제주도 유배지에서의 인간적인 완당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완당의 글씨는 어릴적 부터 여러 차례 글씨체가 바뀌었다. 어깨에 힘이 들어가는 장년, 글씨체 또한 기름지고 오른쪽 어깨가 들어올려 졌지만, 제주도 유배지에서는 몰아치는 비바람과 파도는 완당의 자만심을 가지고 갔다. "만년에 바다를 건너갔다(제주도 귀양살이) 돌아온 다음부터 구속받고 본뜨는 경향이 다시는 없게 되고 여러 대가의 장점을 모아서, 스스로 일법을 이루게 되는 신이 오는 듯 기가 오는 듯, 바다의 조수가 밀려오는 듯 하였다" 고 박규수가 말 하였다. 다른 사람을 신경쓰며 엘리트주의에 빠져있던 ‘추사’에서 스스로의 일법을 이룬 완당의 서체를 완성한 과정을 볼 때 서체는 곧 그의 인생 이였던 것이다. 일세를 풍미한 완당 바람이 세월이 지나 21세기에 다시 불고 있다. 아직 ‘완당평전’은 끝나지 않았다. 이제 이 바람을 타고 완당이란 인물에 대한 평전을 확실하게 마무지 지어야 하겠다. |
| 이 책을 처음 본 것은 신문에서 였다. 신문에서 추사 김정희에 대한 책이 나왔다고 해서 관심있게 보았었다. 제목이 '완당 평전'이라는게 좀 이상했지만(완당이 김정희의 호인지 모를 정도로 난 김정희에 대해 무지했다) 겉표지를 보니 참 인상적인 눈매를 가진 초상화가 있어서 맘을 끌었다. 이 책을 볼 수 있었던 것은 나의 한문 선생님 덕택이었다. 서점에서 보려해도 시간이 없었고 사려고 했지만 책값이 만만치 않은 관계로(참고로 난 고등학생이다) 보지 못하고 속만 태우다가 마침 한문 선생님께서 이 책을 빌려 주신 것이다. 정말 고마웠다. 완당이 김추사의 호라는 것을 알게 된것은 이 책을 열어보고 나서였다. 작가의 말처럼 나 역시 '추사를 알지만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중에 하나였던 것이다. 김정희에 대해서 아는 것은 아주 단편적인 것으로 우리나라 실학과 금석학의 대가, 그리고 추사체를 만든 사람이라는 것만 알고 있었고, 또 '상도'를 통해서 알게된 몇안되는 일들 만을 알고 있었다. 그런 나에게 '완당평전'은 하나의 충격이었다. 책을 열어보고 놀란것은 그림과 사진이 전부 칼라로 되있다는 것이다. 책의 상태가 무척 맘에 들었다. 만약 이 책을 흑백으로 했다면 어떠했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이 책이 비싼 가격을 가질수 밖에 없던 이유가 있었다. 책을 읽다보면 많은 그림이 나오는데 무지한 나로써는 그저 감탄 밖에는 다른것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아쉬운것이 많은것이 사진이나 탁본으로만 전하고 소실되거나 누가 가지고 있는지 모르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우리나라가 낳은 위대한 예술가의 흔적이 아무렇지도 않게 방치 되어 왔다는 사실에 나는 너무나도 안타까웠다. 책에는 내가 몰랐던 새로운 내용들이 많았다. 우선 완당의 생애이다. 완당의 집안이 조선시대를 풍미하던 세도가의 집이었다는 것도 처음 알았고 그렇게 놓은 벼슬까지 지냈다는 것도 놀라웠다. 그런 사람이 학문에 전념했다는 것이 놀라웠다. 그리고 난 그가 글을 잘쓰고 그림을 잘그리는 줄 알았지만 다른것도 능한 팔방미인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모든게 새롭고 신기했다. 새로운 바다를 바라본 느낌이랄까. 이책의 작가의 해박한 지식과 깊은 조예도 이 책이 빛을 낼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이다. 만약 그가 없었다면 내가 이 책을 볼 수 있었으랴. 새삼 지은이에게 감사의 마음까지 느꼈다. 모든것에 능통했지만 그로 인해 세상의 질시를 받았던 완당은 그래도 자신의 길을 갔다. 이 책을 보고 느낀점은 그것이다. 나 또한 나의 길을 가겠다고... 내가 솜씨만 된다면 이 책에 대해서 더 예찬하고 싶지만 나로선 이정도 밖에 할수 없다. 다만 이 글이 책의 빛을 가리지 않을까 걱정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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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전 읽기의 미덕은 일상의 안존에 대한 각성과 현실의 체념에 대한 자성에 있다. 한 위대한 삶을 통해 나의 최선이 얼마나 가소로운 것이었으며 나의 불가피함이 얼마나 성급했는가를 깨닫는다. 완당, 그를 어떻게 간결하게 요약할 것인가. 저자처럼 '山崇海深' 하며 선문답을 흉내낼 것인가, 후지츠카의 '청조학의 제일인자는 완당'이라는 상찬을 빌어다 쓸 것인가. 난감하기 그지없다. 혹 읽지 않은 분이 있다면 읽어 보라고 권할 밖에 다른 도리가 없을 듯하다. 이미 읽은 분들은 나의 이 심정을 족히 이해하리라. 조선시대 4대 명문가인 경주 김씨의 장손, 판서를 지낸 아버지 김노경, 완당의 12촌 대고모가 영조의 계비인 정순왕후, 6살 때 이미 '입춘대길'이라는 글씨를 써서 대문에 붙인 신동, 24세에 사미시 합격, 그 해에 아버지를 따라 자제군관 자격으로 연행(燕行), 34세에 과거 급제, 서자를 위해 손수 [동몽선습]을 필사해 준 아버지, 청나라 학자들과 엄청난 수준과 양의 학예교류를 한 국제학자, [황청경해] 1,400권, 360책을 1만리 길을 2년 거려 실어온 달리 더 말할 길 없는 열정, 북한산 진흥왕 순수비를 포함한 고비에 대한 열정과 상상을 뛰어넘는 금석에 대한 박식, 우리나라 최고의 명필, 시, 서, 화의 대가, 부인의 죽음을 애도하며 통곡한 지아비, 두 번의 유배를 통한 평범과 보편을 획득한 한 인간 등등 학생들은 다소 부담스러운 책이겠지만 꼭 기억해 두고 읽어 보기를 권한다. 어떤 책이 그렇지 않을까마는 내 무지와 교만을 한 쪽 한쪽마다 통렬하게 꾸짖는 책이었음을 다시 한 번 더 말해 둔다. 선생의 일갈을 몇 소개한다. "나는 70 평생에 벼루 10개를 밑창 냈고 붓 일천 자루를 몽당붓으로 만들었다" "아무리 구천구백구십구분까지 이르렀다해도 나머지 일분만은 원만하게 성취하기 어렵다. 이 마지막 일분은 웨마난 인력(人力)으로는 가능한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이것이 인력 밖에서 나오는 것도 아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