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살모사의 눈부심'은 17C 오스만 제국을 배경으로 톱카프 궁전에서 이루어지는 권력쟁탈과 하렘에 기거하는 후궁들, 이 소설을 전개해 나아가는 흑인환관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술탄의 권력쟁탈과 그들의 후궁, 그리고 술탄과 후궁의 연결고리인 환관은 이 소설의 큰 3대 축을 이루며 각각의 이야기 전개에 윤활제가 되어준다. 이 소설을 직접 읽기 전 한국외국어대학교의 '문환콘텐츠를 통한 현대중동사회의 이해'라는 교양특별강좌에서 만난 이난아 교수님의 강의를 통해 '살모사의 눈부심'과 그에 나타난 술탄의 하렘에 대해 어느정도의 지식을 습득했다. 이난아 교수님은 '터키 문학에 나타난 술탄의 하렘'이라는 글을 통해 수세기 동안 '에로티시즘' 자체로 우리들에게 소개되어 온 '하렘'이 소설 '살모사의 눈부심'을 통해 그 본질을 보여준다고 하였다. 그 내용인즉 하렘이 외면적인 화려함과는 달리 고통받는 여성들의 거처였으며 하렘의 주인인 술탄은 비정상적인 에로티시즘을 가지고 있었고 이에 따라 하렘 여성들의 고통이 컸다는 것이다. 또한 권력투쟁으로 난무하는 살인과 하렘의 일개 후궁에서 왕후가 되고 후에 술탄의 어머니가 된 황태후의 야욕은 하렘의 본질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난아 교수님이 지적한 소설 '살모사의 눈부심'에 나타난 하렘의 이미지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내가 받았던 느낌과는 사뭇 다르다. 아니, 달랐다기 보다는 교수님이 발견한 부분을 일반 독자인 나로써는 발견하지 못했다. 내가 발견하지 못한 부분은 '슬픔과 죽음의 이미지로써의 하렘'이다. 물론 하렘의 습하고 어두운 구석에서 눈길조차 받지 못하고 늙어가는 여자들, 술탄이 사랑하는 여자처럼 뚱뚱해지기 위해 밤낮없이 토할 때까지 먹는 여인들의 모습을 보고 조금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그냥 충격을 받은것에서 멈췄지 그 이상 가지는 않았다. 결론적으로 이 소설은 내게 '슬픔, 죽음'의 이미지보다는 '아름다움, 신비로움'의 이미지로 다가왔다. '슬픔과 죽음의 이미지로써의 하렘'은 학자다운 시각에서 이 소설을 접근했을 때나 가능한 것이었던 듯 하다. 그저 감동과 재미를 추구하는 일반 독자에게는 후궁들의 처참한 모습들이 에로티시즘을 위한 그저 하나의 소재일 뿐이지 짚고 넘어가고, 가슴에 새기게 되는 부분은 아닌 것 같다. 그저 그들은 하렘의 신비스러움과 아름다움, 권력쟁탈의 스릴에 빠진다. 소설 뒷부분에 나온 카잔, 마키스 데오도라키스의 평을 보면 그것을 잘 알 수 있다. ' 그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책! 기대할 수 없었던 경이로움이 끝없이 펼쳐진다. 나는 이 소설의 가치만큼 빛나는 소설을 아직 읽은 기억이 없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리반 엘리의 작품은 다른 작가들이나 시인들로부터-그렇다, 이 소설은 한 시인에 의해 쓰인 것이다- 받게 되는 느낌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결국 이 소설을 내용적인 측면에서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권력의 영화적 미화'라 할 수 있다. 권력쟁탈이라는 소재를 하렘과 환관의 이야기로 신비로움과 흥미를 주며 술탄의 눈에서 흐르는 눈물과 아들을 끝내 죽이지 못한 술탄의 인간다움을 통해 현실세계에서는 추잡하고 더러운 인간의 본성을 영화적으로 미화한 것이다. 작가의 의도가 어쨌든, 역자의 의도가 어쨌든, 독자가 받아들이는 것은 이에 국한된다. 이난아 교수님은 말한다. '하렘은 서구인들이 생각하듯이 성적인 이미지가 아니라 왕가의 치열하고도 민감한 권력투쟁의 장이었으며, 노예기관이었다는 점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고. 이것이 만약 작가가 의도했던 것이었다면 작가는 이 소설 속에서 더 적나라한 묘사를 하고 신비로움을 주는 장치보다는 현실적인 나열을 했었어야 할 것이다. 하렘은 문학작품이나 예술작품을 만드는 데 있어서 정말 무궁무진한 소재라고 생각한다. 이제는 하렘의 신비스러움이라는 소재에서 벗어나 좀더 사실적이고, 현실적인 작품이 나와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것이 대중에게 전달되도록 말이다. 소재도 흥미롭고 내용도 재미있는 소설이다~ 어렵지 않아 책을 많이 읽는 자라면 한 두 시간이면 읽을 수 있을 듯하다^^ 많은 사람이 봤음 한다~ |
| 하렘의 베일에 사인 이슬람 제국의 으시시한 음모와 피비린내 나는 정쟁의 이야기들을, 이번엔 소설로 읽을 수 있었다.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술탄을 모시는 환관의 시점으로 서술된 이 이야기는 권력의 마성에 대한 소설이다. 절대적 권력을 가진 인간이 어떻게 인간성을 잃어가는가, 권력과 권위에 앞에서 가족의 사랑이나 인간애의 가치가 얼마나 허무하게 사그러드는가를 보여준다. 황제가 되고 나면 반란을 사전에 방지한다는 명분 하에 형제를 모조리 죽이는 비인간적인 절대 권력자의 모습에서 권력의 비인간적인 속성과 역사에 실재로 일어났던 사실이 얼마나 비참한가.. 하렘의 여인들은 절대자를 위한 소유물이었을 뿐이고 그 와중에서 정상에 오른 황태후는 내 배로 난 아들도 버린다. 권력은 그만큼 인간을 악마적인 존재로 만든다는 걸 볼 수 있다. 이런 유아독존의 술탄이 자기 아들을 위해 자신을 포기해버리기로 마음 먹는 것은 매우 뜻밖이다. |
| 하렘 여인들의 울음소리, 뒷덜미를 낚아채 죽음으로 끌고가는 검은 그림자들의 무리…. 이스탄불 하렘궁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은 등줄기를 오싹하게 한다. 그러다가는 허탈하게 하고, 그러다가는 웃게 만들고, 그러다가는 고개를 숙이게 하고… 이내 책장을 덮을 쯤엔 하렘궁의 보석과 인간의 욕망과 사랑에 눈이 멀고 만다. 이 책은 내게 그런 책이었다. 삶과 죽음, 빛과 어둠, 당신과 나 ‘사이’에 있는 ‘무엇’을 말해주는 책! <살모사의 눈부심="">은 당신의 팔과 팔 사이의 권력욕, 다리와 다리 사이의 애욕, 눈과 눈 사이의 인간애를 그려놓고 있다. 오스만제국의 정사(正史)를 알게 되는 재미와 소설적 상상력이 흥미진진하게 당신을 이끌 것이다. 터키에 다녀온 사람이라면, 터키에 곧 가게 될 사람이라면, 터키에 가고파 밤마다 꿈꾸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으라!살모사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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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만 투르크 궁정에서 벌어지는 특이하고(잔인하고) 신비롭고 애로틱한 설정과 소재가 눈길을 끈다. 오스만과 이슬람 문화에 관련된 문학 자체를 경험해 볼 기회가 많지 않기 때문에 책자체만으로 희소한 가치가 느껴진다. 하지만 그것들 말고는 그다지 꼬집어 말할 수 있는게 없다. 이것은 독자로서 가지는 불만이기는 한데, 줄거리가 너무 짧고 단순하지 않았나 하는 느낌이 든다. 물론 문장은 탁월했고(번역도 훌륭했다고 생각..) 짤막한 이야기꺼리도 풍부하고 독특했다. 그런데 그것들은 이국의 신기한 문화 체험일 뿐이다. 아, 그런 시대도 있었나보구나. 하는 느낌이랄까. 그냥 역사의 '에피소드' 하나를 슬쩍 읽는다는 기분이다. 생각보다 너무 빨리 읽어버린 책이다. [인상깊은구절] 어렸을 때 베네치아인 선생이 입에 침이 마르도록 가르친 것인데, 라틴어 사전에서 '맹세'라는 단어는 '성서(Testamentum)'다. '구약'은 '베투스 테스타멘툼(Vetus Testamentum)', '신약'은 '노붐 테스타멘툼(Novum Testamentum)'이다. 테스타멘툼은 오랜 전통에 따라 남자의 고환을 일컫는 '테스티스(Testis)'에서 파생되었다. 이것은 정말 놀랄 만한 연관성이다. 이 사실을 쉽게 알게 된 것은 결코 아니었다. 나는 수년 동안 고환과 성서 간에 어떤 관련이 있는지 궁금했다. 그리고 오랜 연구 끝에 이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고대 예루살렘의 남자들은 전쟁에 나가기 전에 광장에 모여 원을 만들고는 서로의 고환을 잡고 맹세했다. 인간의 몸에서 가장 민감한 데를 걸고 하는 맹세는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을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이 전통에서 '테스타멘트(Testament : 고환을 걸고 한 맹세)'라는 단어가 생겼던 것이다. '성서' 또한 '맹세'와 같은 것은 그것이 적합하다고 여긴 때문이다. |
| 살모사의 눈부심... 그 제목에 혹해서 사버렸는데, 생각보다 분량이 작은, 장편이라고 하긴 좀 내용이 약한 소설이었다. 또 심리소설이라고 하기엔 그저 좀 긴 독백이나 회상 정도로 느껴졌다. 글씨도 크고, 책도 얇아서 단숨에 읽어버렸지만, 그렇게 재미있다거나 감동적이다거나 마음을 당기는 소설은 아니었다. 빛과 어둠이 교차하는... 등등의 찬사는 좀 오버라는 느낌이다. 하지만 뭐랄까, 이국적인 느낌, 우리에겐 좀 낯선 이슬람에 대한 분위기를 맛보는 즐거움이랄까, 그런 것은 괜찮았다. 그리고 하렘을 관리하는 환관 슐레이만의 심리를 따라가다보면 간혹 웃음도 나오고, 정말 솔직한 인간다운 모습을 잘 그려냈다는 생각도 든다. 좀 색다른 소설이 읽고 싶다면 한번쯤 읽어볼만한 책인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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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만투르크 제국의 전성기라고 할 수 있는 16~17세기, 이 제국의 수도인 콘스탄티노플(현재 터키의 이스탄불)에 있는 제국의 궁전에서 어느 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엄청난 일이 벌어진다. 그러니까 제국의 황제, 신에 가까운 왕이며 아시아와 아프리카와 유럽의 세 개 대륙에 걸친 영토를 다스리는 술탄이 어느 날 궁전의 하렘(왕궁 내 후궁들이 거처하는 장소)에 감금되었다. 그들은 술탄과 하렘의 여자 귤베덴을 한 방에 넣은 다음 음식을 넣을 수 있는 조그만 틈을 제외하고는 아예 벽돌과 회벽으로 발라버림으로써 산채로 방에 묻어 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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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엔 그 제목의 특이함과 그리고 중세 이슬람의 이야기가 배경이라는 이국적인 분위기에 이끌려서 책을 사서 보았다. 술탄의 노예가 자신의 관점에서 술탄과 그 궁,그리고 그의 인생에 대해서 한편의 서사시처럼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구성이 상당히 흥미롭고 특이하다. 특히 노예인 그가 술탄을 경배하는 모습과 술탄이 그의 지위를 누리지 못하고 감옥에 갇힌 것과 같은 생활을 하는 모습에 대한 묘사가 상당히 뛰어나다. 하지만 이 소설은 이국적인 정취보다도 지루하다는 생각이 더 들고 내용이 조금 빈약하다는 느낌이 많이 든다. 비록 짧은 페이지의 책이지만 책의 내용이 좀 더 충실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강하게 느껴지는 건 나만의 생각일까? |
| 처음으로 읽어 보는 터키 소설이었지만 단순히 이국적인 분위기만을 느끼게 하는 소설은 아니었다. '비잔티움 제국사'에서 느꼈던 음모와 피비린내 나는 정쟁의 이야기들을, 이번엔 소설로 읽을 수 있었다, 물론 시대적 배경은 좀 후대이지만.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술탄을 모시는 환관의 시점으로 서술된 이 이야기는 권력의 마성에 대한 소설이다. 절대적 권력을 가진 인간이 어떻게 인간성을 잃어가는가, 그리고 권력욕 앞에서 우리가 '천륜' 이라고 믿는 것들의 가치가 얼마나 허무하게 사그러드는가를 보여 준다. 황제가 되고 나면 찬탈 음모를 사전에 방지한다는 명분 하에 자신의 남자 형제를 모조리 죽이는 술탄, 기분이 나쁘다는, 혹은 너무 마음에 든다는 이유로 사람들을 죽이는 이 절대 권력자의 모습에서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인간을 악마적인 존재로 만든다는 걸 볼 수 있다. 그런 일이 비일비재한 사회이기 때문에 소설 속의 술탄이 자기 아들을 위해 목숨을 버리기로 마음 먹는 것은 매우 의외였다. 죽음의 터널을 두 번째 통과하면서 권력의 허무함을 깨달은 것은 아닐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