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흔히 이백은 향략의 시인이요 두보는 우국의 시인이라한다.그의 시들을 보면 이말이 맞는 것같다. 이백의 시가 화려하고 탐미적이며 귀족적인데반해 두보의 시는 민중적이고 소박하면서 우수에 차 있다. 그는 가장적으로 조실부모하고 고모의 손에 큼 만큼 유년기가 행복하지못했다.그리고 몸에 병도 많았다.가정적으로도 행복하지못했고 과거낙방도 여러번 격엇다. 그래서인지 그의 시들은 다소 어둡다. 아마 두보가 할동하던 시대는 이미 당나라가 쇠락해가고 있었기 때문이리라..벼슬길에서도 순탄하지못햇다.황제의 눈박에 나 자리를 쫓겨난 일이 말해주듯 관리생활이 길지못했다. 그런 슬픔과 억울함이 시 곳곳에서 배어나온다.무엇보다도 힘없는 한 민초로서 지배자의 폭정에 항거하는 모습이 눈에 띈다. 석호리에서보면 민중의 비참한 현실을 묘사하면서 -세금을 내지못해 부역-인신봉양으로 세금을 채워야하는-내색하진 않아도 그들의 슬픔과 애절함에 눈물을 자아내게한다. 또한 관리의 횡포와 기근의 참담함도 시의 소재에 자주 띈다. 이전에는 시의 소재로 오르지 않은 것들이다.-올해 형주는 몹시 가물어 사람이 사람을 먹는다네..-앞구절에서 관리들의 화려함과 대조적으로 기근에 바진 민중의 비참함을 외면하지 말라는 호소이다. 하지만 태산에 올라와 같이 그에게도 호연지기를 고취하는 사내대장부의 모습이 있었다. 한마디로 가슴이 후련하다. 한편으론 가장이되어 가족과 헤어진 슬픔-아내를 그리는 시에서는 애절함이 느껴진다. 그리고 드물게 여성적인 청아한 싯귀도 있다.-내일 아침 금관성엔 꽃송이가 비에 젖어 무거우리- 여성들에겐 굉장히 청신한 싯귀로 다가오리라..두보의 시가 어두운 줄만 알았는데... 하지만 그의 시가 역사에 남는 건 민중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은 저항성때문인 것같다. 여러 시인들 중 두보처럼 민중의 고통을 묘사한 사람이 드물다. 이때문에 시성이란 칭호를 받는 것이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