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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암 큰 스님이 남기신 구도기의 제목이 "一生敗闕" 이라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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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체국아저씨가 책을 건내주시면서 책 제목이 이상하네요. 이러시는거에요. 저도 잘 모르지만요. 읽고 보고 싶었는데 책이 왔네요.
예전에 아빠 살아계실때는 절에 갔던 기억이 나네요. 절에 가면 맛있는 비빔밥도 주고 경치도 좋아서 감상만 하고 왔었거든요.
스님들의 출가라는 것이 인간세상에서 누르고 살게 되는 모든 것을 버리고 머리를 깍고 나서 자기가 하고 싶은대로 할수 없으면서 고통을 참는거라고 알고 있다. 우리시대 고승18인의 출가기가 진솔하게 담겨있었다.
나는 네게 중이되겠다고 찾아오는 이가 있으면 가급적이면 이를 만류한다. 수행자의 길은 멀고도 험하기 때문이다. 잘만하면 한없이 좋은길이나, 잘못하면 이중의 조를 짓는게 바로 중노릇이다. 우선은 부모님과의 연을 끊고 떠나니 자식 도리 못하는 죄를 짓는 것이고, 다음은 신도들이 지극정성으로바친 삼보정재를 함부로 탕진하는 죄를 짓는 것이다. 출가자들은 계를 받기에 앞서 그동안 법기로 길러 준 은혜에 보답하고자 마지막으로 부모님에게 세 번 절을 올린다. 그리고 세속의 명리에 이끌리지 않겠다는 호심출가의 의미로서 체발을 한다. 이렇게 바위처럼 심지가 단단해진 후에야 출가를 할 수있는 것이다. 출가는 계를 받는 것이고, 중노릇은 계율을 지키는 것이다 부처님이 제자들에게 계는 수행자들을 보호할 것이므로,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설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이글을 읽는 동안에 스님이 되는 길이 힘든다는걸 느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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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기독교 신자다 그런데 불교에 관심이 참 많다. 교회나 성당은 시내에 얼마든지 있지만 절은..특히 우리나라 절은 직접 시외로 나가야 찾아갈 수 있다. 큰 절은 거의 산속에 있다. 게다가 스님들을 보면 대체 어떤 이유로 속게를 떠났을까 항상 궁금했다. 특히 동자승들...그 어린 아이들이 어떤 이유로 절에 들어가게 되었을까 참 궁금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참 여러가지를 느끼게 해주었다. 정말 태어나서부터 뭔가 다른사람과는 다른 모습이었던 사람도 있고 정말 평범한...혹은 사고뭉치였던 사람도 있었다. 공통되는 것은 한가지... 불교에 입문하여 인생에 무언가 채워지지 않던 것을 얻었을 것 같다는것... 특히 박헌영의 아들로 태어났다는 원경 스님의 인생은 정말 한 편의 영화 같았다.
사람마다 결핍된것이 있다. 다들 무엇으로 채우느냐는 차이가 있다. 어떤 사람은 물질적인 것들로 채우려 할 것이고... 어떤 사람은 지식으로 채우려 할 것이고... 이 분들은 그 결핍을 깨우침으로 채우고 있다.
인생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하는 책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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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生敗闕(일생패궐)은 이번 생은 망했다를 표현한다. 제목만으로 봤을 때 좋지 못한 이야기가 담겨 있을 것 같지만, 불교계에서는 반의어로 표현되었다고 보는 것이 맞다고 한다. 이 책은 18인의 고승들이 출가한 계기에 대하여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스님들이 말하는 일생패궐. 스님들은 열반에 드는 순간이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고 한다. 스님들이 말하는 열반은 일생패궐과 무슨 관계가 있을까? 망했다는 말이 그분들에게 무슨 의미로 다가갈까? 깊이있는 불교신자는 아니지만, 불교라는 종교를 가지고 있는 나로서 일생패궐에 대한 의미를 알기엔 제목만으로는 부족했다. 분명 의미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우리시대 고승 18人의 출가기를 하나 하나 읽어 나갔다. 한분 한분의 출가기를 읽어 나가며 나는 그들의 삶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부모님을 여의고 출가한분부터 어머니를 따라 출가한 분까지 그분들이 출가를 했던 연유는 다양했다. 세속의 인연을 벗어던지고 구도의 길을 떠난 사람들이 겪었던 고초들 18人의 스님들의 출가기는 어찌보면 우연이 아닌 필연이라는 공통점이 있을 것이다. 정신적 고통과 육체적 고통을 이겨내며 이 시대의 진정한 고승으로 거듭난 18인의 스님들 중 만봉 스님을 제외하고는 모두 생존하시는 인물인데, 만봉 스님은 90년이라는 시간동안 수행의 길을 걸어 최근에 열반에 드셨다고 한다. 불교를 몰라서 이 책을 선택하지 못하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다. 불교는 모를지라도 18인의 스님이야기는 당신에게 잔잔한 감동을 안겨줄 것이라고... <나옹 선사>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 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 하네. 사랑도 벗어 놓고 미움도 벗어 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 하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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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직자들은 하늘에서 낸다는 옛말이 있다. 선듯 가고 싶다고 용기 내기 힘든 길이며, 가고 싶다고 갈 수 있는 길도 아니며, 아무나 갈 수 있는 길도 아니다. 그토록 힘든 길이 고행의 길이며 수도자들의 길이며 구도의 길이다.
나와 종교는 다르지만, 그래도 과거엔 국교가 불교였다. 탄압도 받고 천대도 받았지만 그래도 불심이 깊은 신도들이 많았기에 여전히 나라의 사랑받는 종교로 자리 잡고 있다. 그래서 여기저기 여행을 떠났다 산속에서 만나는 사찰은 언제나 정겹고 고요하고 평안함을 준다. 종교가 다르더라도 어려서부터 산에 가면 사찰이 있었듯 그곳엔 회색 승복을 입고 계신 스님들이 계셨다. 스님들의 삶이라...스님들의 이야기라 이 책에 대한 기대가 컸다. 그들의 깨달음의 아주 작은 부분이라도 얻고 싶고, 느끼고 싶었다. 구도의 삶과 불가의 용어, 법구경이 많이 나와 전체를 다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미약하게나마 깨달음을 얻은 바 있어 읽는 내내 행복했다.
이 책에 소개된 열여덟 분의 스님들은 불가의 길로 들어서는 과정이 참으로 운명적이다. 당시의 상황이 그래서 어쩔 수 없었다는 분들도 계시지만, 한 분 한 분의 살아오신 이야기를 글로 읽다가 마침내 불가에 입문했다는 문구가 나올때는 하늘이 혹은 부처가 이 사람을 선택했구나 하는 생각 외엔 다른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들의 삶은 스님이 되기까지 참 고되고 힘들고 어려웠다. 그런 어려움을 딛고 불가에 입문해서 또 다른 고행의 길. 끝없이 펼쳐지는 자신과의 싸움과 인내하는 삶이 한결같이 요구된 길이 펼쳐졌을 것이다. 중간에 힘들다고 한눈을 팔 수 아프다고 소리칠 수도 없는 구도의 길을 묵묵히 견뎌내신 분들의 한마디 한마디는 인생을 달관하신 도인들의 모습과 같아 보인다.
사람들은 고민이 생기거나 풀리지 않는 숙제가 있을땐 산으로 들어간다는 얘길 들은 적이 있다. 나도 늘 시끄럽고 소란스런 세상을 등지고 조용한 산 속에서 깨달음이나 마음의 평안을 얻고 돌아오고 싶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한때 사찰 체험 행사가 붐이였던 적이 있지 않았나? 사람들도 조용하고 평안한 마음의 고요와 고승들의 깨달음을 덕담처럼 듣고 위안받고 싶었기 때문은 아니였을까. 올해는 무슨 일이 있어도 절에 가서 삶의 지혜를 얻어오도록 사찰 체험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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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터 :
이번 생은 망했다
처음 이 책을 알게 된 것은 샘터사 블로그에서였다. 일주일에 두어 번 샘터사를 찾는 데에는 지극히 개인적인 욕심이 한몫을 한다. 샘터사의 책에서 자주 여유를 얻는 것도 있고 게다가 책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데에도 있다. 일상생활에 치이고 혼자만의 망상에 치이다가 파김치 된 어느 날 나는 이 책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한 달 뒤에 지금은 이 책을 만나 가슴이 따뜻해졌다. 서툰 독자는 '나도 입산해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게 된다.
샘터사 블로그에서 <이번 생은 망했다>를 만나고 순간 숨이 턱 막혔다. '망했다... 망했다... ' 이 말은 거의 사용하지 않고 있었다는 것을 나는 깨닫는다. 함부로 쓸 수 없는 말이고, 그리고 어감 자체가 절망을 안고 있다고 근거도 없이 그렇게 생각해 왔다. '망했다...' 한참 동안 눈을 떼지 못하고 '망했다' 중얼거렸다. 그리고 지극히 개인적이기 때문에 나는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망했다'일까, 아니면 그 반대일까. 명확한 답변을 내놓지 못하고 여름 장마 속에 있다. 새벽 창 밖에서 내리는 비가 혼자 앉은 방을 빗소리로 가득 채운다.
"망했다."
나는 이 시대의 명승들을 전혀 모른다. 성철 스님을 겨우, 요란한 광고를 통해서만 알고 있을 뿐이다. 광고를 통해서 알고 있을 뿐이다. 요즘 들어, 이제야 나는 90 퍼센트의 광고에 의해 키워졌다는 것을 책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광고 이미지로 성장했고, 살고 있고, 그리고 앞으로는.
산사를 찾아도 바람이 지나는 풍경소리가 좋아서, 코를 스치는 솔 냄새가 좋아서였을 뿐 그곳에서 일상을 보내는 사람, 스님을 뵙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외곬으로 살아온 탓에 나는 합리주의를 주장하면서도 비합리적인 뉴스를 통해서 본 스님들의 분쟁들이 먼저 떠오른다. 오래 전에 본 뉴스였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는 길거리에서 우연히 스님과 스치면 그 뉴스와 브라운관에 들어찬 손찌검이 생각난다. 종교에 귀의한 스님들이 왜 속인들의 경멸을 감수해가며 분쟁을 일으켰는지에 대해서 생각해볼 만한 여력이 내게는 없었던 것이다.
<이번 생은 망했다>에는 진짜 스님들이 계신다. 그리고 이 책에는 여전히 사람의 숨결을 끌어안고, 사람됨을 끝까지 안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스님들이 계신다. 만해 한용운님께서 일본에서 들여온 '대처'승이 아닌 스님들께서 일상적인 삶을 뒤로 하고 어떻게 삶을 살아가는지를 엿볼 수 있다. 스님들의 사람다운 모습들을 통해서 적어도 나는 나만의 삶이 아닌 모두의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다시금 깨우치는 계기를 공으로 얻은 셈이다.
여러 스님들의 말씀 가운데, 가정형편의 이야기가 적지 않게 나온다. 돈은 현실이다. 하지만 돈만이 그들을 불도의 길로 이끈 것이 아니라는 말씀을 한다.
"나를 보는 스님의 눈은 소처럼 크고 맑았다 (...) 아버지는 헛기침만 내뱉을 뿐 가타부타 말이 없었고, 어머니도 말없이 조용히 자리만 지키고 있었다. (...) 살림 때문에 학교에 보내지 못하는 게 못내 마음에 걸리는 모양이었다."
혜자 스님은 이렇게 화두를 <이번 생은 망했다>에서 끄내고 있다.
"부모님을 떠난다는 게 두려움의 실체라면, 스님처럼 될 수 있다는 게 동경의 실체였다. 공부를 시켜준다는 스님의 말이 자꾸만 귓바퀴에 맴돌았다. (...) 스님이 집에 들른 후 머지않아 부모님이 나를 불렀다. (...) 흠모의 대상이었던 스님을 찾아간다는 게 여간 기쁘지 않았으면서도 마음 한편에서는 설움이 복받쳐 올랐다. 떠나면 부모님을 다시 못 볼 것 같아서였다."
기회비용이라는 것이다. 경제용어로 무엇을 하나 선택할 경우 버려야 할 무엇의 가치가 기회비용이라는 것이다. 혜자스님은 무엇을 버려야 했을까. 생모를 만나고 혜자 스님은 이렇게 말씀을 한다.
"어색하기만 했던 만남인데도 피붙이여서 그랬는지 헤어지려고 하니 가슴이 묵직했다."
우리는 출가를 다 버리고 떠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고승께서도 더는 가지려 들지 마라고 경계한다. 어느 가톨릭도 그러하고 여타 종교들도 삶에 필요한 최소한의 것에만 허용할 뿐 소유욕을 경계하는 말씀이 생활방침이다. 사물에서 욕심이 생기듯, 사람의 몸이 생리(본능), 물질적인 것에 지대한 영향을 받는 것을 익히 아는 터라 그러한 경계가 얼마나 중요한 지침인지 알고 있다. 떠날 수 있을까. 떠나기까지의 그 무수한 생각이 행간에서 뚜렷이 드러난다. 떠날 수 있을까. 떠나지 못하는 내 모습 역시 다른 스님들의 출가담에서와 마찬가지로 혜자스님의 말씀에서도 아련히 드러나 보인다. 떠나기 위해 버려야 할 것들에 미련이 이렇게 많다. 그 미련은 현재뿐 아니라 미래에 혹시 내가 갖게 될 그 무엇엔가에까지 닿아 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감당하기가 어렵고 견디기 힘든 일이다.
스님들의 이야기가 속세에서 사문을 넘는 그 순간까지만 서술되었다면 이 책은 정말 아름다운 서정시, 슬프고 단아한 이야깃글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말씀은 사문을 넘고, 삭발염의를 하는 그 순간을 넘어서 독경 속 나날들이 생생하게 그려지고 있다. 진정 길은 삭발염의를 하고, 탁발승으로 전국을 돌아다니든 절에서 밥 짓는 불목하니를 하든 무엇을 하든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서 진정 불도의 길을 타박타박 걷게 되는 것이다. 이 책은 그러한 삶의 자세를 알려주고 있다.
죽음은 삶과 하나라는 말을 곧잘 듣는다. 듣는 것을 느끼고 깨닫기까지에는 많은 시간이 걸린다. <이번 생은 망했다>는 불제자가 되도록 종용하는 책은 아니다. 그러면 무엇을 위해서 숲을 넘어뜨려 종이를 만들고, 많은 사람들의 손을 거쳐서 책으로, 엄청난 권수의 책을 유통시켰을까. 무엇을 말하고자 <이번 생은 망했다>를 굳이 엮어냈을까. 짐작건대 그것은 살아있는 경험을 통해서 스님들이 우리에게 삶의 자세를 넌지시 가르쳐주고자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가볍지 않고, 그리고 엮인 글마다 하나의 궤를 끼고 도는 이야기들이 <이번 생은 망했다>에 담겨 있다. 각기 다른 삶이 다르지 않는 글말을 통해서 귓전을 친다.
“이번 생은 망했다. 하지만 나는 아직 살아 있다. 사계절 순환처럼 내 일상도 반복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아직 숨을 쉬고 있다. 계절의 반복처럼 나는 수없이 실패하고 절망하고 비통해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다른 말, 그래도 다시,가 아니라 다른 말 '이번 생은 망했다'라고 낮게 읊조리며 엉덩이를 털고 일어나 걸을 것이다.”
적어도 내게는 좋은 책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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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통해서 일상의 쉼없는 고난과 갈등에서 한발짝 떨어져서 명상의 시간을 갖고 싶었다. 비록 구도자의 삶을 살수는 없겠지만 조금 더 남에게 넉넉해지고 나에게 단단해 지고 생각이 따뜻한 사람이 되고 싶은...
세상의 모든 것을 다 버리고,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인연의 끈을 자르고 종교에 귀의한다는 것은 나에게 불가사의한 일이기도 하다.
일상의 작은 일에도 절망하고 작은 실패에서 좌절하며 작은 기쁨에 열광하며 소소한 즐거움들이 삶이라고 생각하는 소인은 세상을 등지기에는 모든것이 미련이다.
작은 시작으로 큰 아픔으로 시작한 불가의 생활은 모두들 고되고 자신을 뛰어 넘는 부지런함으로 점철되어 있다.
마음을 평안하게 하고 한없이 생각하고 참선하는 모습은 쉽게 흥분하고 쉽게 나락에 떨어지는 여린 사람으로는 부러운 일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불가에 귀의한 사람의 시작을 보았다. 경이롭다. 나를 떠나서 산다는 일과 그것이 종교라는 힘이 있다는 것이 머리를 멍하게 한다. 삶과 죽음이라는 누구나 갖고 있는 풀 수 없는 명제에 다가가기 위해 공부하고 수행하는 스님들의 모습은 감동이다. 가슴이 아프기도 하고 그럴 수 밖에 없는 인생이 안쓰럽기도 하다.
이 시대를 대표하는 스님들의 출가수행기를 읽으면 간혹 스님들의 풍경이 느껴지기도 한다. 생활에 끌려 사는 일반소민으로 조금 더 넉넉해지고 조금 더 자비로와 지고 싶다. 종교가 없는 나도 주말에 절에 가서 고요해지고 싶은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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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승 18인의 출가기를 보면서 나랑 많이 비슷한 구석이 있음을 알았다. 복잡한것 같지만 때론 단순하다는거^^결정적 순간일때 빛을 발하는 간단명료함..ㅎ 스님들이 글솜씨가 뛰어나신분이 많다고 생각했는데 역시나 속세에서 한가닥 하신분들이 꽤 된다.나름 문학소년소녀를 꿈꿨던 그때 그시절 형,이모,들 또래라서 좀더 가깝고 편안하게 느껴졌다.망할뻔한 인생들을 불가에 뛰어들면서 새로운 세상을 만나고자 하는 간절함이 지금의 모습을 만든것 같다.망한 인생은 아니지만 더 이상 크게 망하지 않기 위해 발버둥치는 인간군상을 볼수가 있었고 다 같은 것이라 여겨졌다.똑같은 인간들이 느끼고 깨닫는건 모두 같지않고 다르니 참 오묘한 이치인것 같다.다양하고 앞일은 모른다는거...알면 재미도 없고 의욕도 생기지 않을것이다.남이 뭐라해도 내가 편하고 좋으면 그만인데 남탓만 하다가는 생이 참 지지리할것 같다.가식에 젖어 가혹한 인생보다는 기쁨을 함께 누릴수 있는것들을 찾아보아야 한다.출가한 이유들도 너무나 어이없고? 심각한것이 없는것 같았다.나도 모르게 그 누구도 모르게 홀연히 발걸음이 산사로 옮겨졌다고 하니 전생이 있던지 뭔가 있는것이 아닐까?정해진 무엇처럼...무서운게 업보라더니..예나 지금이나 전과자들이 몸을 피신하고 스님복장을 하고 숨어 사는곳이 절이라는곳이라는것을 간혹 듣곤해서 인상이 험학한 스님들은 왠지 꺼림칙했다.그러나 그들중에 몇몇은 행자가 되고 종국에는 스님의 길을 간다고 한다.이것또한 죄진자들의 쉼터가 이미 정해진것 같다.큰스님이라는 말에 의미는 단순히 나이가 많음에 있는것이 아니고 산전수전을 겪은 경험이 많다는 것인데 사람들은 위대하고 새로운 것이 있다고 믿는것 같다.사실 책속에 있는 주인공들은 그렇지 않다.별것 아닌것을 크게 볼줄아는 자만이 큰스님을 알아보는것같다.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내가 아는만큼 보이는것이다.내용이 딱딱하지 않고 일기처럼 수필처럼 출가와 수행기를 적어놓은 이글들은 찌든삶에 큰 위안이 되고 힘이 될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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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나에게 있어서 독특했고 의미가 있었다. 불교 신자가 아니기 때문에 더 그랬다. 일단 이 책은 제목부터 끌렸다. 그리고 그 제목엔 의미가 있었다. 제목 하나만으로도 나는 "일생패궐"이라는 사자성어를 배우게 되었다. 그리고 이 낱말 하나가 매우 인상깊게 다가왔다. 엮은이가 한 스님의 유품에서 발견된 필사 두루마리 제목이 바로 일생패궐이었는데 엮은이 역시 그 글을 읽으면서 손을 뗄 수가 없었다고 했고 또 제목부터 압도됐다고 표현했다. 그 감동은 차라리 전율에 가깝다고까지 표현했는데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그에 못지않은 느낌이 나에게도 있었다. 이번 생은 망쳤다는 뜻인데.. 제목이 참 그럴듯하게 잘 붙여졌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듯 제목에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었기에 의미 있었고.. 내용을 하나하나 읽어가면서도 참으로 명확한 답을 얻을 수는 없지만.. 뭔가 깊은 생각을 해보도록 이끌어주었다.
내용에서도 스님들의 언어가 따로 있는건지 아니면 엮은이가 불교계 언론사 기자를 했었기에 그런 분위기를 잘 그려낸건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왠지 모를 분위기 있는 글귀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읽기 어렵지는 않을까 하는 염려도 있었지만 전혀 그렇지는 않았다. 여러 스님들의 출가를 다루다보니 오히려 짤막하게 다루어진 것 같다. 그것이 나에게는 오히려 더 좋았다. 부담없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읽은 후의 느낌은 불교신자들이 읽어보기보다 오히려 불교신자가 아닌 나같은 사람들이 부담없이 여운의 느낌을 가져보기 위해 읽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것을 떠나서라도 우리보다 훨씬 먼저 스님으로서 생을 사신 분들의 인생 이야기를 다양하게 접해볼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인것 같다. 그리고 그것은 내게도 흥미로운 일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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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생은 망했다' 도대체 뭘 망했다는 건지.. 아님 나도 망하러는 건지.. 이런 여러 가지 생각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나는 그래서인지 이책에 더끌렸다. 한암 스님은 네차례의 오도 과정을 담은 구도기를 하필이면<일생패궐>이라고 지었을까?
이책에는 이 시대를 대표하는 스님들의 출가수행기가 엮어져 있습니다.
마지막 입는 옷에는 주머니가 없다-지종 스님
중생, 내 염불이 닿는 곳-지선 스님
육남매를 사문에 들게한 부처님 -본각 스님
나는 여러 스님들의 이야기를 듣고 많은 것을 느낄수 있었다. 그리고 나 역시 불교신자인데 18명의 스님들을 잘알지 못했다. 이책을 통해서 많은 스님들을 알수 있었고 스님들의 마음까지도 알수 있었던 것같다.. 더불어 한분 한분의 스님 소개에서 사진이 한장씩 나와 있었는데 얼굴에 미소가 너무 온화해 보였다.. 이 책을 읽는 순간 나도 모르게 스님들의 팬이 되어 버린것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