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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과의 대화 속에서 사상이 발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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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불교는 정적인가 내가 가지고 있는 불교에 대한 이미지는 현세를 초월하기 위해 도를 닦는 것이었다. 유교가 근대 이전 동아시아 사회의 정치 문제를 담당하는 봉건사상이었다면 불교는 사회 문제를 담당하는 봉건사상이었다고 생각했다. 유교와 불교에 대해 가지고 있는 기존의 이미지가 워낙 정적인 것이었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전근대 시대의 보수성이 그대로 투영되어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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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불교는 정적인가

내가 가지고 있는 불교에 대한 이미지는 현세를 초월하기 위해 도를 닦는 것이었다. 유교가 근대 이전 동아시아 사회의 정치 문제를 담당하는 봉건사상이었다면 불교는 사회 문제를 담당하는 봉건사상이었다고 생각했다. 유교와 불교에 대해 가지고 있는 기존의 이미지가 워낙 정적인 것이었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전근대 시대의 보수성이 그대로 투영되어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모든 사상, 모든 시대는 정적일 수 없다. 우리가 유럽의 중세를 변화가 없는 정적인 시대로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중세라고 불렸던 시대 동안 유럽은 근대로 나아가기 위한 많은 변화를 겪고 있었다. 아시아도 마찬가지였다. 비록 변화의 시간은 느리게 흘러갔지만 근대 이전의 아시아도 끊임없이 변화를 겪고 있었다.

동아시아를 받치고 있던 두 사상, 유교와 불교도 변화하는 시대에 대처하기 위해 스스로를 탐구했다. 특히 개항 이후 서구의 사상과 종교가 물밀 듯 밀려오자 새로운 시대의 혼란과 구질서의 붕괴를 대처하기 위해 불교와 유교는 적극적으로 대처할 수밖에 없었다. 구한 말 흥선대원군이 주도한 위정척사 운동은 이러한 대처방법 중 보수적인 것이었다면 앞으로 다루고자 하는 책의 불교 사상가들은 기존의 것을 개혁함으로써 변화에 대처했다. 김영진의 『중국 근대사상과 불교』는 불교를 통해 시대에 대처한 중국의 근대사상가 19인을 다루고 있다. 이들은 각자 경로는 다르지만 불교를 수용하고 탐구했고, 이러한 연구가 근대 초 중국의 혼란스러운 현실을 개혁하기 위해 사용되기를 원했다. 몇 몇은 혁명가로서 불교를 수용했고, 몇 몇은 불교 사상가로서 불교를 수용했으며, 몇 몇은 유학을 더욱 발전시키는 수단으로써 불교를 수용했다. 이들의 사상변화의 흐름을 따라가 보는 것은 종교 혹은 학문이 추구해야 하는 길을 알려주는 선례를 보여 줄 것이다.

 

2. 시대의 혼란에 맞서다

근대 초 중국은 혼란의 시기였다. 부패하고 무능한 청 왕조는 서구의 침략에 맞설 만한 힘이 없었고 낡은 유학은 시대의 변화를 제대로 짚어내지 못했다. 당시의 젊은 지식인들은 시대의 혼란을 뚫고 나가기 위한 새로운 앎에 목말라 있었다. 이런 그들에게 불교는 현실 문제를 개혁하기 위한 수단으로 다가왔다.

불교를 통해 현실을 개혁하고자 했던 중국의 지식인들은 매우 다양한 형태로 현실에 개입했다. 양런산과 어우양징우와 같은 인물은 지나내학원이라는 학술 공동체를 만들고 이끌어 불교의 학문적 연구 틀을 세운 인물이었다. 이들을 통해 탄스퉁 같은 인물은 불교를 배웠고 민중을 위한 삶을 살기 위해 혁명에 몸을 던졌다. 일제시대 조선의 지식인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친 량치차오도 불교의 영향을 받은 인물이었다.

이들에게 불교는 어떤 것이었을까? 가장 격정적인 시대를 살았던 탄스퉁은 대승불교의 가르침을 실천하고자 했다. 그는 『인학』이라는 책에서 강력한 실천 의식을 보여준다. 탄스퉁은 ‘충결망라’(衝決網羅)라는 외침으로 강상윤리로 대표되는 전통 사유의 종결을 선언한다. 탄스퉁의 이런 선언은 자신을 구성하는 모든 것을 전복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탄스퉁은 캉유웨이 등과 함께 무술변법운동을 주도했다. 그러나 서태후와 보수 세력의 쿠데타로 인해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

탄스퉁 뿐 아니라 많은 중국의 지식인들이 불교를 통해 세상을 바꾸려고 했다. 양두는 입헌군주제를 주장해 위안스카이를 황제의 자리에 세우려고 했지만 실패하고 도망치는 신세가 된다. 이 때 불교를 깊이 있게 공부했으며 결국 저우언라이의 도움으로 공산당에 가입한다. 양두는 당시 불교를 연구했던 사람들 중에서 가장 극적인 변화를 보여준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양두가 중국의 현실을 변화시키기 위해 꾸준히 고민했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불교를 접했고, 양두가 가진 고민과 합쳐지면서 불교는 비로소 힘을 가지게 되었다.

 

3. 현실과 부딪쳐야 사상이 발전 한다

근대 이전 중국의 불교는 고루한 학문이었다. 불교 개혁을 이끌었던 런산이 “금산사에 주석하는 승려 가운데 누구라도 300자로 편지를 쓸 수 있는 자가 있다면 나 런산의 목을 쳐도 좋다”라고 말할 정도로 불교는 내부부터 정체되어 있었다. 중국 불교의 찬란했던 전통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였다.

그러나 근대 초 중국의 불교가 지식인들에게 깊은 가르침을 줄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불교를 현실에 반영하고자 하는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양런산을 비롯한 지식인들이 유교와 다른 불교의 가르침에 감화되어 불경을 공부한 이후, 후학들은 현실의 고민과 나아갈 길을 불교 속에서 찾고자 했다. 그 결과 불교의 사상은 발전할 수 있었다. 끊임없이 현실과의 접점을 찾았기 때문에 가능했다. 김영진의 『중국 근대사상과 불교』가 단순한 종교연구서가 아닌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김영진은 근대의 경계에서 불교를 통해 현실을 바꾸려고 노력했던 사상가들을 통해, 현실과 연결되지 않은 사상은 정체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알려준다. 한국의 불교가 최근 정체되고 있는 이유도 아마 이러한 것들 때문일 것이다. 한국의 불교는 현실의 중요한 사안에 대해 거의 개입하지 않는다. 불교뿐만 아니라 다른 종교도 마찬가지이다.

비단 종교만 그럴까. 우리가 고민하고 공부하는 학문들도 현실과 밀접하게 연관을 맺지 않으면 발전할 수 없다. 1980년대를 뜨겁게 달구던 ‘사구체 논쟁’도 현실과 점점 동떨어지는 이론 논쟁으로 발전하더니 흐지부지 끝나지 않았던가. 1990년대 초․중반 한국 좌파 진영의 유행이었던 문화이론도 한국의 현실과 적합하지 않은 외국 이론의 무분별한 적용으로 인해 비판의 도구로서의 기능을 일정부분 상실했다. 이론의 발전은 현실에 대한 고민 속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 근대 초 중국에서 불교사상이 발전할 수 있었던 사실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점이다.

 

4. 근대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한국 뿐 아니라 동아시아 사회에서 근대는 해명되어야 할 중요한 시기이다. 지금의 한국과 동아시아를 만든 단초들이 근대에 들어있기 때문이다. 박노자는 『우승열패의 신화』에서 량치차오의 진화론적 세계관이 일제시대 조선의 지식인들에게 미친 영향을 분석했다. 그리고 이러한 진화론적 세계관이 해방 이후 지식인들의 사고에도 크게 영향을 미쳐 현재의 한국을 구성하는 한 축이 되었다는 것이다.

중국의 근대사상과 불교가 연결되는 지점을 탐구하는 작업도 마찬가지의 의미를 가진다. 현재의 중국이 어떠한 경로를 거쳐 만들어 졌는지, 그 과정에서 불교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통해 중국의 현재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또한 근대 초의 혼란을 뚫고 나가기 위해 노력했던 지식인들의 삶을 통해 그 치열했던 문제의식을 배울 수 있다. 특히 불교를 탐구했던 지식인들은 당시 고통 받는 민중의 현실을 바꾸기 위해 현실과 이론의 접목을 시도했다. 종교의 사회적 역할을 가장 잘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다. 또한 학문이 추구해야 하는 모습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1***m 2007.08.09.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