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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지배하는 7가지 욕망의 심리학 시리즈의 5번째 책, 100쪽도 안 되는 분량, 게다가 내가 좋아하는 인간의 본성에 관한 주제. 이 책을 처음 잡고서 나는 아주 만만하게 생각했다. ‘이 책 정도면 1시간이면 다 읽을 수 있겠지’라고 생각하면서 시작을 했다. 그러나 이 책은 결코 쉬운 책이 아니었다. 내가 느낀 심정은 바로 ‘Don't judge a book by it's cover!’였다. 이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먼저 저자에 대한 소개를 봤다. 저자인 필리스 A. 티클은 종교 전문지의 편집자와 강연을 하는 사람이다. ‘뭔가 기대하고 다르게 전개된다’고 생각이 든다. 인간의 욕망이나 본성은 생물이나 심리학 측면에서 접근하는 것으로만 생각했던 나에게 ‘뭔가 어려운 부분이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서서히 들기 시작했다. 인간다운 특성, 즉 인간의 본능이 무엇이냐에 대해 우리들은 오랜 동안 이야기해왔다. 다른 동물과 구분되는 인간만이 가지는 특성이 그것이고, 이를 인간의 본능이나 욕망이라고 하기도 하고 종교에서는 인간의 죄라고도 한다. ‘시기, 탐식, 화, 게으름, 탐욕, 정욕, 자만’이 인간이 가진 7가지의 본능이고 욕망이며 죄이다. 특히 “탐욕은 다른 모든 죄의 모체이자 기반이며 뿌리이자 짝이다“라고 이 책 <탐욕 - 우리를 지배하는 7가지 욕망의 심리학>(민음사.2007년)의 저자는 서문에서 독자들에게 이야기하고 있다. 그렇다면 인간에게 탐욕이 없다면 죄가 없어지고 정말 유토피아를 만들 수 있겠는가. 결코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죄의 근본이 되는 탐욕조차도 뭔가 우리 인간의 생존과 번식에 긍정적인 측면이 있었기에 인간 사회에 널리 퍼졌을 것이다. 그렇다면 탐욕이란 것은 필요악이라는 것이고, 이런 탐욕을 사회적인 제도로서 어느 정도 통제가 필요했을 것이다. 저자는 탐욕이 가지고 있는 의미가 시대에 따라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서구의 예술(문학과 미술)과 대중문화 속에 숨겨져 있는 심상(Imagination)이라는 프리즘을 통해서 파악하고 있다. 먼저 ‘종교 시대’의 탐욕이다. 종교의 시대는 서기 1500년까지의 시기를 말한다. 즉 유럽에서 종교가 모든 권위의 정점에 있었던 시기를 말하는데, 히에로 나무스의 그림 『일곱가지 대죄』와 『건초수레』를 통해 탐욕을 설명하고 있다. 일곱가지 그림으로 인간의 죄를 설명하고 있는 『일곱가지 대죄』에서 탐욕을 나타내는 인물은 부패한 판사인데, 그는 한 손으로 판결을 내리면서 다른 손으로는 뇌물을 받고 있다. 그러니까 이 시대의 탐욕이란 우리가 흔히 생각할 수 있는 인간의 탐욕스러움을 표현하고 있다. 두 번째는 ‘근대 이성의 시대’의 탐욕으로 흔히 이 시대는 종교개혁으로 인해 종교적 권위가 세상에서 약해지고 인간이라는 주제가 중심에 서는 이성의 시대를 말한다. 이 시대에 토마스 홉스는 죄의 규정이 사회적 계약, 즉 집단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했으며, 루소는 계몽주의 사상가들은 원죄를 인정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그 과정에서 죄와 탐욕은 종교적인 쟁점 안에 머물지 않고 도덕적인 문제가 되어 서양 사상의 본류로 합류했다. 물론 보수적인 사상에서는 여전히 도덕의 연장선상에서 종교적인 문제로 다루었다. 마지막으로 ‘권력과 부를 향한 현대’의 탐욕이다. 저자는 현대의 시작을 니체가 신이 죽었다고 선언한 해인 1882년이라고 보고 있다. 벨기에 화가 제임스 엔소르의 그림을 통해 현대의 탐욕이 예전과 거의 유사하게 죄를 다룬고 있다고 말한다. 이것은 20세기에는 죄만이 아니라 종교 일반을 더 극적으로 다루게 되리라는 것을 예고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현대인이 현대를 표현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21세기 초를 판단하는 것은 후대가 할 일이다. 그렇기에 저자도 탐욕의 현대적 이미지를 창출하는 것에 곤란을 느낀다고 하면서 본문을 끝낸다. 100쪽도 안 되는 책이었지만, 다 읽고는 쉽게 이 책을 정복하겠다는 애초의 내 생각자체가 탐욕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했다. 상당한 시간을 가지고 사색하면서 읽어봐야 탐욕의 정체를 파악할 수 있을만큼 어려운 책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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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인정하겠습니다. 처음 에스프레소를 먹고 내려놨다가, 한 3번 정도 더 시도해본 후에야 맛을 익혔듯, 이제 겨우 두 번 훑은 '탐욕'은 아직 제게 먼 에스프레소와 같습니다. 뒷커버에 써져있는 '작은 양이지만 강렬한 맛을 담고 있는 독한 에스프레소와 같은 책.'이란 말이 정말 딱 들어맞는 것 같습니다.
처음 이 책을 보았을 때는 정말 아무 생각없이 가볍게 끝낼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 거기에 제가 가진 탐욕스런 마음도 자연적으로 순화되어버릴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서문부터 저는 헐떡이기 시작했습니다. 순간 내가 한국말을 못하나라고 생각할 정도 였습니다. 그만큼 이 책의 한줄 한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집중력과 생각이 필요했습니다.
저자는 어떻게 보면 쉽게 접근할 수 있을 듯한 그림을 통해 각각의 시대에 반영된 탐욕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각각의 탐욕은 바로 '종교적인 죄악으로서의 탐욕', '근대의 이성적인 탐욕', '권력과 부를 향한 현대의 탐욕' 입니다.
아직도 각각의 탐욕에 대해 제대로 이해했는지, 이렇게 글을 쓰는 것이 맞는지 자신이 없습니다. 다만, 마지막 작가가 제시해준 희망적인 메세지를 옮겨보고자 합니다.
'지난 2000년을 살펴보면 길이 꺾일 때마다, 인식이 달라질 때마다, 관심사가 바뀔 때마다 탐욕과 그 자식들은 늘 우리에게 매질을 하고 겁을 주고, 부추기고 꾀어내 여기까지 오게했다. 이곳, 도니체티가 묘사한 여기는 포연이 걷힌 영혼의 전쟁터다. 진보의 대담한 색채도 걷히고 우아하게 몸을 떨면서 죽어가는 정신이 모습을 드러낸다.'
정말 탐욕은 금기시 되기도 하고, 가볍게 여겨지기도 하면서 지금의 우리를 만들었을지 모릅니다. 종교적으로 전쟁으로 묘사되기도 하고, 현대를 생성한 심상으로 묘사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지금 바로 이순간 우리는 여전히 탐욕과 싸움 혹은 협력하면서 살아가고 있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작가가 탐욕을 그린 도니체티의 그림을 통해 책을 마무리 지으면서, 그것이 어떤 것인지 규정지어 부르기 어려워하면서도 공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듯, 나 역시 탐욕에 대해 어떠한 규정도 짓지 못 한채, 작가의 의도를 반도 이해하지 못 한채 이 책을 덮음을 아쉬워하면 인정할 수 밖에 없는 듯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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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욕'은 인간에게 가장 치명적인 모든 욕망의 모체이며 개인과 국가의 파멸을 가져올 수 있는 최대의 유혹이자 악의 근원이 된다고 한다. 과연 그럴까... 모든 종교마다 악의 근원을 '탐욕'으로 몰아세우고 있고 질타를 가하고 있다. 하지만 저자가 밝히고 있듯이 우리 인간은 아무리 오랜 세월 투쟁하고 저항을 해와도 인간이 태어나는 순간부터 탐욕은 시작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내가 소유한 것보다 더 많은 것을 갖고 싶고, 그 이상을 갖고자 노력하고 유혹에 빠지기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탐욕'은 인간이 저지르는 일곱가지 욕망 중에서도 가장 모태가 되고 있으며 최악이라고 하지만 그 욕망이 없다면 인간은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지금보다 더 잘 살고자하는 의지가 없을 것이며 희망도 가지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에게는 적절하게 균형을 잡아주는 긴장이 필요하다고 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용기, 신념, 인내, 사랑, 희망, 분별, 정의의 선이 있다면 그것들의 분신인 자만, 시기, 화, 정욕, 게으름, 탐식, 탐욕의 균형추가 맞아야만 살아갈 수도 있다고 한다. 저자는 종교적인 죄악으로서의 탐욕, 근대의 이성적인 탐욕, 권력과 부를 향한 현대의 탐욕으로 세 부분으로 나누며 탐욕의 변천사를 보여주고 있다. 탐욕은 종교적인 죄악으로 비난을 오랜 세월동안 받아오고 있고 전염성 강한 질병으로 불리우기도 하면서도 인간이 숨을 내쉬는 것만큼이나 익숙하게 우리의 욕망을 자극한다. 종교적인 시기에는 청빈을 종교적으로 인정하고 지향하였기에 탐욕은 죄의 근원이었고 벗어나야만 하는 악의 유혹이었다. 실질적으로 벗어나기는 힘이 들었다. 근대의 이성적인 탐욕 시기에는 1517년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으로 시작으로 종교적인 재구성이 일어나며 자율성이 증대되고 이성이 분출하는 시기가 되며 좌와 탐욕은 종교적인 쟁점에서 사회의 도덕적 쟁점으로 옮겨가게 된다. 탐욕은 여러 모습으로 위장하며 탐욕스런 인간자체보다 탐욕스러운 행위를 행할 수밖에 없었던 사회적인 문제로 보기 시작했다. 권력과 부를 향한 현대의 탐욕의 시작은 저자는 1882년 니체가 신은 죽었다고 한 선언한 해로 보고 있다. 현대인들은 탐욕, 시기, 증오를 중심으로 권력추구라는 탐욕의 다른 위장에 열광하기 시작했고 점점 더 부를 원하게 되었고 다양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현대는 종말로, 부, 탐욕에 빠진 사람들이 동시에 늘어나는 현상을 보이면서 탐욕을 지지하기도 하고 비난하기도 하는 등 많은 인식의 변화를 겪고 있다.
마호메트에 의하면 '탐욕'이란 마땅히 필요한 것 이상을 바라는 마음을 가리킨다 라고 하며 "등을 똑바로 펴고 살 수 있는 정도" 이상을 바라는 게 곧 탐욕이라고 하였다. 하지만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사회에서 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나에게는 너무나 지키기 힘든 '비움'이다. 책을 읽는 동안 든 생각은 '탐욕'이 인간이 가지는 기본 욕구이며, 벗어나려고 노력을 해도 쉽지가 않음을 알게 된 지금이라면 그 '탐욕'을 비난만 할 것이 아니라 인간이 살아갈 수 있는 원동력의 한 부분이라고 볼 수 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절제라는 미덕이 꼭 함께 해야만 하는 조건이 따르기는 하지만 해볼 만하지 않을까하는 희망을 가져본다. 개인에서 시작한 탐욕이 사회전체를 파멸로 이끌 수 있는 힘을 가진 '탐욕'의 힘을 과소평가하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나 역시 '탐욕'이 마음 속에서 들끊기 시작하면 제어하기가 힘들고 얼마나 강력한 무기를 가진 것인지를 알기에 조심스럽고 힘이 든다. 하루에도 몇번씩 탐욕은 나의 마음을 지배하고 온통 한가지 생각만을 강요하기도 하기때문이다. 하지만 만에 하나 그 탐욕스러운 욕망에서 벗어난 적이 한번씩 생기기 시작한다면 탐욕의 분신인 '절제'가 균형을 맞추어 주는 것이 아닐까하는 기대를 하게 되며 작은 희망을 갖게 된다. 너무 낙관적인 생각이며 '탐욕'의 힘을 과소평가하는 것일까... 나는 원한다. 권력과 부 그리고 영원한 젊음을 적절한 수준에서 탐욕과 절제와 함께 누릴 수 있기를....... |